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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인명사전/한 국 인 명/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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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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婆娑王(?-112)

신라의 제5대 왕(재위 80-112). 일명 파사 이사금이며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다. 즉위 후 검소·절약하고 백성들을 사랑하여 존경을 받았다. 94년 가야가 마두성에 쳐들어오자 이를 물리쳤고, 101년 월성을 쌓아 백성들을 그 곳에 옮겨 살게 하였다. 이듬해 음집벌국·실직·압독 등을 병합하였으며, 108년 비지·다벌·초팔 등을 합병하여 국위를 떨쳤다.

편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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片康烈(1892-1928)

독립 운동가. 호는 애사, 본관은 연백이며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하였다. 한학을 공부하다가 1907년 영남 의병장 이강년의 부하로 들어가 선봉장이 되었다. 이 때 전국의 의병들이 양주에 모인 뒤 서울을 향해 진격하였는데, 앞장서서 용감히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관련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3·1운동 때에는 황해도 지방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감옥살이를 하였다. 1921년에 만주로 건너가 양기탁 등과 함께 '의성단'을 조직하였으며 중국 창춘에 있는 일본 적십자 병원을 습격하였다. 이어 봉천 시가전 등을 지휘하다가 체포되었다. 신의주에서 7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심한 고문으로 병을 얻어 죽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복장이 수여되었다.

평강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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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岡公主

고구려 평원왕의 딸. 어려서 자주 울어 그때마다 평원왕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여 울음을 그치게 하였다. 16세 때 평원왕이 상부의 고씨 집에 출가시키려 하자 이를 거역하고, 궁궐을 뛰쳐나와 바보 온달을 찾아가 결혼하였다. 그 후 온달에게 학문과 무술을 가르쳐 고구려에서 제일가는 장군이 되게 하였다.

평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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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原王(?-590)

고구려의 제25대 왕(재위 559-590). 양원왕의 아들이며 온달의 장인이다. 중국의 진·수·북제·후주 등 여러 나라와 친교를 맺었으며, 586년 장안성으로 천도하였다.

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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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訓

신라 중기의 승려. 의상의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751년 경덕왕 때 불국사가 건립되자 주지로 들어갔다.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표훈은 천궁(天宮)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경덕왕이 그에게 태자를 낳게 해 달라고 하자, 하늘로 올라가서 천제에게 부탁을 올렸다. 천제는 '아들은 낳게 해 주겠으나, 그 아들이 태어나면 나라가 몹시 위태로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 왕후는 태자(후의 혜공왕)를 낳았으며 경덕왕이 죽자 8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 후 천제의 예언대로 나라가 어지러웠으며 도처에 도적이 들끓었다. 표훈이 죽은 후 신라에는 성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흥륜사 금당에 신라 10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안치되었다. 저서로 <화엄경 문의 요결 문답>이 있다.

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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品釋(?-642)

신라 선덕 여왕 때의 무신. 김춘추의 사위이다. 대야성의 도독으로 있을 때, 부하인 검일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원한을 샀다. 642년 백제의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공격해 오자, 검일이 적과 내통하여 성 안의 창고에 불을 질러 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윤충이 항복하면 죽이지는 않겠다고 하자, 성문을 열어 부하들을 먼저 내보냈으나 복병에 의해 부하들이 모두 전멸되었다. 이에 품석은 처자를 죽인 다음 자결하였다. 이때 성안에 남아 있던 부하 죽죽도 군사를 모아 성문을 닫고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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品日

신라 태종 무열왕 때의 장군. 화랑 관창의 아버지이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칠 때 아들 관창과 함께 출전하였다. 664년 문무왕 때 김인문 등과 함께 고구려의 돌사성을 공격하였다. 668년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쳐들어갈 때, 귀당총관으로서 공을 세웠으며 백제의 유민들이 소동을 일으킨 63개의 성을 빼앗았다.

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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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千得(1910- )

수필가·시인·영문학자. 호는 금아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40년에 상하이 호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에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를 지내면서 시작법과 영시를 연구하였다. 1932년 <신동아>에 <소곡>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광복 후 경성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를 지냈다. 1954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연구하였으며, 196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그는 순수한 정서에 의한 생활의 서정을 시나 수필로 노래하였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고, 문화훈장·인촌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서정시집> <금아시선>과 수필집 <금아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