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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전후의 라틴아메리카[편집]

第二次大戰前後- Latin America

이미 제2차 대전 전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제국(諸國)에 대하여 강력한 경제적 지배력을 갖고 있었으며, 대전 중 나치 독일의 세력을 축출하고 또한 영국·프랑스 등의 후퇴도 있고 하여 종전(終戰)까지는 문자 그대로 '미국의 뒤뜰'로서 지배하게 되었다.

한편, 제2차 대전 중 라틴아메리카 제국은 연합국측에 참가했으나 직접적으로 전화(戰火)를 입지 않았다. 주로 원료·식료품 등의 공급을 맡았고, 또한 서구와의 경제 관계도 진전되어 공업화(특히 경공업)가 상당히 진척되어 원료 및 식료품의 수출증가와 공업품의 수입감소로 외화축적도 증가하였다. 이 같은 사정은 민족부르주아지의 성장을 촉구함과 동시에 사회주의의 영향을 불러일으켰다.

리우조약·미주기구[편집]

Rio 條約·美洲機構

대전 후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동향 속에서 중요한 요인은 미국의 압도적인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지배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제도화한 것이 리우조약과 미주기구이다. 이것들은 먼로주의(불간섭주의)와 팬아메리카주의가 2차대전 후 새로운 조건하에서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대전 중인 1945년 2월 미국은 멕시코에서 열린 미주회의에서 '미주의 연대(連帶)와 상호원조에 관한 선언'(채펄터페크 헌장)을 채택하고 이를 통하여 지역적인 집단방위와 상호협력의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1947년 9월, 미국을 비롯한 중남미 20개국이 리우 데자네이루에서 미주(美洲)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 조약은 총 26개조로서 "조약국 상호간의 분쟁은 유엔에 의탁하기 전에 미주기구의 협의에 따라 해결하고자 한다"는 정신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1948년 4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열린 미주회의에서는 리우조약 정신을 보다 강화시키며, 미주회의와의 연대를 굳게 하고자 이 지역의 모든 기구를 집대성하여 미주기구(OAS)를 창설토록 했다.

미주기구는 미국의 중남미 정책에서 신먼로주의의 지배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서 이 지역의 진보적인 반식민지 운동의 억제력이 되기도 했다. 특히 쿠바를 고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나 1975년 7월 이후에 OAS의 쿠바의 봉쇄는 끝났다.

페론주의[편집]

Peron主義

제2차대전 이후에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의 조류(潮流)를 대표하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었다. 페론은 1946년의 총선거에서 반(反)미적 슬로건을 표방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페론 정권은 대전중에 축적한 외화(外貨)를 기초로 하여 사회복지의 여러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도시노동자·실업자·무산자·농촌 노동자를 포섭하였다. 그때까지 노동운동의 경험을 갖지 못했던 노동자들은 페론의 기만성을 간파하지는 못했다. 페론은 민족부르주아지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동자와 군부를 이용하여 파쇼적인 독재지배를 확립하였다. 공단 공사(公團·公社)의 창설에 의한 국가자본주의 정책을 취했지만 대지주제도는 그대로 존속하고 외국기업에 대해서 적극적인 반대정책을 취하지는 못했다. 이와 같은 페론의 정치이념과 정치제도를 페론주의라고 부른다. 브라질의 바르가스 정권의 반미주의 정책도 이와 같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1973년 복귀한 페론 부부는 정권을 인수했으나 1976년 군부쿠테타로 실각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숙명론[편집]

Latin America-宿命論

라틴 아메리카 제국(諸國)은 대부분 경제적 낙후와 정치적 불안정 및 독재라는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에스파냐·포르투갈의 식민지에서 20세기 초 독립을 달성하였으나 시민세력이 그대로 지배 세력화하였고 원주민은 식민과정에서 대량으로 학살, 소수민족화하여 문화까지도 완전히 소멸되어 있는 상태이며 식민지 농업경영을 위한 흑인노예가 대량으로 수입되었고 이로 인해 원주민·크로엘레(식민지 태생의 백인)·흑인 사이의 심한 혼혈이 발생했다. 메스티조라 불리는 이들은 독립 후에도 피지배계급으로서 인디오·흑인들과 모노컬처 임금노동자로 전락, 정치적·경제적 권리 일반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식민지 시대의 대농장주·대지주들은 독립 후에도 그대로 토지·농장과 특권을 소유하고 인디오·메스티조 흑인에 대해서는 인종적 편견을 지녔으며 이들 지배계급들은 에스파냐·포르투갈의 문화전통을 그대로 유지, 이베리아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정치권력과 경제력은 이들에 의해 분배·유지되고 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지배종교인 가톨릭은 지배계급과 유착, 피지계급에게 지배계급에 대한 굴종과 종속이라는 숙명론을 종교적 명분하에 심어주고 있었다. 따라서 독재정치의 연속은 정해진 수순이었으며 국민의 대다수인 인디오·메스티조·흑인들은 빈곤과 독재정치 아래서 좌절감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고 먼로주의 이후 팬아메리카니즘을 표방한 미국은 원료공급·판매 시장화 목적으로 경제적 침투를 가속화함과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좌경·사회주의의 억제를 명분으로 라틴 각국의 우익 독재정권에 대한 지원을 노골화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내정에까지도 관여하였다.

그 결과 정치적 후진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라틴 각국은 엄청난 규모의 외채와 선진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 자립기반의 공동화와 원료 수출시장화, 고 인플레이션과 빈부격차의 극단화, 교육투자의 부재 및 문맹률의 심화 등 그 낙후도는 위기적인 수위에 이르고 있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1950년대 말 쿠바를 시작으로 좌파 사회주의 세력이 강력하게 대두되었으며 미국에 대한 반감도 이와 함께 국민 저변에 확대되었다. 1970년대 가톨릭 내부에서 일어난 '해방신학'이나 민족주의 계열 학자들이 제기한 '종속이론주변자본주의 이론'들은 라틴의 숙명론이면서 동시에 그 탈피를 위한 나름대로의 비전의 제시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바티칸과 기층세력의 탄압으로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라틴 각국은 군사·독재 정권타도와 민주화라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하게 되고 양측의 타협으로 중반 이후 민간정부가 수립되기는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국가구조는 변함이 없고 군부 또는 시대적 조류에 일시 후퇴한 것뿐이며, 정치적으로는 의회민주주의의 구축, 경제적으로는 빈곤탈피와 경제개발이라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이 이베리언·메스티조·아프로·인디오 문화의 통합과 국가안정을 위한 대개혁의 과정에서 구 지배계급과의 당연한 충돌과 그들의 저항 역시 민간정부로서는 엄청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의 대두[편집]

社會主義-擡頭

라틴의 변질된 자본주의, 우익 군사독재, 미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은 좌파 사회주의의 대두를 가져왔다. 이는 라틴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그 움직임이 구체화됨으로써 무장봉기·혁명으로 발전, 내전 상태에 이른 국가가 많았으나 완수한 예는 쿠바뿐이고 칠레는 1970년 총선으로 좌파 민간정부가 수립되었으나 1973년 피노체트 장군의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쿠바[편집]

Cuba

에스파냐 식민지였다가 미·에스파냐 전쟁으로 미국에 속한 후 1902년 독립했다. 1952년 쿠데타로 집권한 바스티타는 친미보수세력과 결탁, 독재정치를 실시하다가 1959년 카스트로가 이끄는 사회주의파에 의해 축출되었다. 1960년 미주기구의'산호세 선언(경제봉쇄)', 1961년 미국의 쿠바 침공, 1962년 쿠바 위기 등 속에서도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1960년 '아바나 선언'이후 라틴의 사회주의 지도국을 자처했다. 친소반미·비동맹노선을 견지하고 있는데 제3세계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군사지원과 각종 테러집단에 대한 원호로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76년 사회주의 신헌법을 채택하였는데 최고권력기간은 국가평의회의이다.

니카라과[편집]

Nicaragua

1936년 이후 지속돼 온 친미·반공노선의 소모사 족벌독재체제는 1979년 좌익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을 주축으로 하는 혁명세력에 의해 붕괴되고 1980년 국가재건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주도권을 장악한 FSLN이 사회주의로 선회하자 우파가 반산디니스타전선(콘트라)을 결성, 내전상태에 돌입하였다. 콘트라는 미국 및 서방측의 지원하에 반FSLN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미국 및 친미 라틴제국은 경제봉쇄조치를 취하였다. 1989년 5월 양측은 극적인 합의에 도달, 1990년 2월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전국야당연합(UNO)의 차모로(女)가 당선, FSLN 정부는 붕괴되었다. 온건·보수·다원주의를 채택했다.

신생국의 독립[편집]

新生國-獨立

라틴 아메리카의 1970∼1980년대 정치현상 중 두드러지는 것이 중미(中美) 지역에서의 소국(小國)들의 독립이다. 그 경제규모나 군사력으로 보아서는 국제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으나 국제연합에서는 평등한 의결권을 가지므로 현대 국제연합의 난제 중의 하나이다.

그레나다[편집]

Grenada

1974년 2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1983년 친소파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동년 10월 친소좌경화 저지를 명분으로 미국이 침공, 1984년 총선으로 민간정부가 수립되었다. 1990년 총선에서는 국가민주당이 승리하여 브레이스웨이트가 총리가 되었다. 브레이스웨이트가 1994년에 사임하자 뒤를 이어 브리건이 새총리로 취임했다. 1999년 미첼 총리가 취임했다.

도미니카 연방[편집]

Commonwealth of Dominica

1978년 11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의원내각제 형태의 이원집정제 비무장국이다.

바하마[편집]

Commonwealth of Bahamas

1973년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입헌군주국이며 의회는 양원제이다.

벨리즈[편집]

Belize

1981년 9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입헌군주국이며 의회는 양원제. 과테말라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양국간에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있으며 영국군이 주준하고 있다.

세인트 루시아[편집]

St. Lucia

1979년 2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입헌군주국이며 의회는 양원제이다.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편집]

St. Vincent and the Grenadines1979년 10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입헌군주국이며 내각책임제이며 의회는 단원제이다.

세인트 크리스토퍼 네비스[편집]

St. Christopher and Nevis1983년 9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의원내각제이다.

앤티가 바부다[편집]

Antigua and Barbuda

1981년 앤티가와 바부다가 통합하여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회는 양원제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편집]

Trinidad and the Tobago

1976년 8월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 의원내각제 중심의 이원집정제이며 산유국이다.

수리남[편집]

Surinam

1975년 독립. 소수흑인이 다수 인도계 주민을 지배, 정정이 불안하다. 독립 이후 내전상태에 돌입했으며 1989년 양측간 휴전협상이 성립하였으나 실효는 불확실하다. 대통령제이다.

민주화혁명[편집]

民主化革命

라틴 아메리카의 우익군부 독재정권은 집권기간 중 미증유의 인권탄압과 테러·공포정치로 일관하였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기업의 자본과 결탁, 경제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민족주의자와 좌파를 중심으로 계속되어 온 국민의 민정복귀와 개혁 요구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권을 이양받은 민간정부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의 후진성 타파와 급진 좌파세력의 견제, 국민적 갈등의 통합과 군부의 재집권음모 등 출범 초기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소위 좌익게릴라 소탕을 명분으로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 불리는 미증유의 대국민 테러·인권탄압을 자행했다. 1982년 4∼5월 포클랜드 군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전쟁에 돌입했으나 패배, 반독재 시위가 격렬해지자 민정이양을 선언, 1983년 급진당(UCR) 알폰신 후보가 신페론당을 누르고 대통령선거에서 승리, 민간정부가 출범했으나 군정 당시의 인권탄압 사태의 책임자 처벌 재판과정에서 반발한 군부가 수 차례의 쿠데타를 시도하였다.

1964년 민간정부를 붕괴시키고 집권한 브라질 군사정권 역시 인권탄압 사태는 아르헨티나와 차이가 없었다. 이에 항거한 민주화 시위는 1983년 경제·재정위기로 최고조에 달했고 1985년 대통령선거(간접선거)에서 선거인단이 민주운동당(PMOB) 네베스(취임 직전 사망)를 선출함으로써 민정복귀가 이루어졌다. 동년 5월 대통령직선제, 공산당 합법화, 노조활동 정당화, 국가안보법 철폐를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안이 의회를 통과, 민정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1973년 쿠데타로 아옌데 민간정부를 몰살시키고 집권한 칠레 피노체트 군사정권은 의회·정당을 해산시키고 군사평의회를 설치, 장기독재를 실시해 오다가 국민의 저항이 거세지자 1987년 좌파를 제외한 정당활동을 인정하였다. 1988년 집권연장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가 패배하였음에도 사임을 거부하였으나 1989년 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반군정파(反軍政派)의 아일윈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1990년 민간정부가 출발했다.

이상은 남미의 대표적인 예에 불과하고 정정이 안정된 베네수엘라를 제외하면 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가 이와 같은 과정을 겪어 왔으며 볼리비아·수리남·파라과이는 1980년대 들어서도 민간정부가 군부쿠데타로 전복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이한 예로서 그레나다·파나마의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의 무력개입에 의해 타도되고 민간정부가 출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