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미 술 용 어/ㅂ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바로크 미술

[편집]

Baroque 포르투갈어의 '비뚤어진 진주'라는 뜻으로 1600∼1750년 사이의 유럽 미술양식을 말한다. 르네상스의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하여 장식이 지나치고 과장된 건축과 조각에 대한 경멸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르네상스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팽창하는 17세기 유럽의 시대정신과 발 맞추어 외향적이고 격동적이며 회화에서는 격렬한 명암대비와 풍요로운 경향이 보였다. 바로크 회화의 창시자로는 17세기 초 이탈리아의 카라바조가 있었고 그의 영향은 곧 에스파냐와 북유럽으로 퍼져 그 추종자를 '카라바제스키'라 불렀다. 특히 루벤스, 렘브란트를 낳은 플랑드르와 네덜란드는 바로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에스파냐에서는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등이 활동하였다. 조각에는 이탈리아의 잔·로렌초·베르니니가 대표적인 작가. 이들은 동적, 환각적인 표현으로 '성 테레사의 도취'나 '성 베드로 성당'의 내부장식과 광장의 콜레네이드를 완성하여 바로크 최대의 조각가로 군림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니콜라 푸생 같은 작가가 있었으나 오히려 르네상스적인 '루이 14세 양식'이 성행하였다.

바우하우스

[편집]

Bauhaus 1919년에 그로피우스에 의해 바이마르에 창설된, 새 '건축술'의 확립과 건축가 육성을 목적으로 한 종합조형학교 겸 연구소. 1925년 정치적 압박으로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이전, 다음해 26년 그로피우스 설계의 새건물에서 수업을 재개, 기능주의적 색채가 보여짐. 1928년에는 한네스 마이어, 1930년에는 미스 반 데르 로에가 소장에 추임. 1932년 9월, 주(州) 정부의 압력으로 폐쇄되어 베를린에 옮겨 사립학교로 재발족했으나 1933년 3월 '문화볼세비즘의 소굴'로 간주, 또 나치스에 폐쇄해산됨. 그로피우스가 말한 '건축술'은 협의의 건축기술이 아니고 건축, 건물공간, 가구조도(家具調度)를 포함한 인간환경 전체의 조형을 뜻하여, 중세의 대성당과 같이 건축을 현대의 총합예술로 차원을 높이는 것이 그 목표였다. 그 때문에 '모든 예술창조를 모든 공작기술, 공학적 훈련과 함께 건축으로 재통일하는' 신조형교육의 시스템이 실시됐다. 기초과정의 설치, 마스터(제자중에서 우두머리란 뜻)에 의한 지도제의 채용 등이 그것임. 초빙된 조형교수에는 시기, 임기의 차이는 있으나, 파이닝거, 마르크스(Gerhard Marchs, 1889∼), 클레, 슈렘머, 칸딘스키, 모홀리 나기, 이텐, 뮈헤(Georg M che, 1895∼), 알버스, 바이어가 있고, 바아하우스 해산 후에 그 이념은 이 예술가들을 매체로 하여 세계각지로 퍼져, 모던 디자인 육성의 기초가 되었다.

비디오 아트

[편집]

Video Art 비디오를 모체로 하는 예술.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하여 70년대에 들어와서 성행하게 된 움직임.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테크놀로지의 예술적 가능성 추구에서 예술가에 의한 비디오 이용이 시작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사진을 대신하는 개인의 영상 표현 매체로서 더욱 성하여지고 있다. 미국, 캐나다에서 먼저 성행했으며 유럽, 일본, 그리고 한국 등으로 확대되어 갔다. 한국의 백남준이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로 지목되어 있다.

비주얼 디자인

[편집]

visual desing 시각전달 디자인이란 뜻. 상업디자인에서 나온 말로서 시각에 호소하여 의지의 소통을 꾀하며 일종의 언어대계를 확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