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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미 술 용 어/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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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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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本 manuscript 어원적으로는 여러 가지 소재에 손으로 쓴 문장 전부를 포함하지만,일반적으로 인쇄된 판본이나 간본(刊本)한 것에 대응하여 필사된 서적을 말한다. 고대나 중세의 문서류는 돌이나 점토판 혹은 금속판에 새겨진 것, 나무조각이나 대(竹) 조각에 필사된 것을 제외하면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에 서사한 사본의 형식으로 전승되었다. 고대에는 권자본(卷子本, 두루마리)이었으나 서양에서는 3∼4세기 이후 책자본(冊子本)이 주류가 되었다. 그후에 나타난 이슬람 사본에서도 책자본이 주류를 이룬다. 사본은 서(書, 캘리그래피)로도 중시되지만 호화로운 사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본문의 장식삽화나 표지의 장정이 회화, 공예작품으로 독립시켜 취급되는 수도 많다. 15세기부터 인쇄본이 보급됨에 따라 점차 없어지고 있다.

사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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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實主義 Realisme 객관적 현실을 존중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예술제작의 태도 내지는 방법. 리얼리즘(프랑스어로는 레알리슴)을 말한다. 묘사 대상을 양식화, 왜곡화(歪曲化), 추상화, 이상화 하는 방법과 대립하여 대상의 세부 특징까지 정확히 재현하고 기록의 수법에 접근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의 존중은 그 본질적 특징 파악을 지향하기 때문에, 우연적이거나 말초적인 세부 묘사는 외면적인 것으로 배척되고 이상화가 삽입되게 되므로 실제로는 상당히 폭넓은 표현방식이 포함된다. 협의로는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에 의하여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의 주제와 방법이 의미를 잃고, 대신하여 1840년대에 쿠르베, 샹프뢰르, 밀레, 도미에 등에 의해 일어나서 1850년대에 절정에 달한 프랑스의 미술운동을 말한다. 이는 역사나 알레고리를 주제로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전통적인 미적대상을 골라 그리는 것도 아니다. 대표자인 쿠르베가 1855년에 개최한 개인전과 그 서문에서 '자기가 속하는 시대의 풍속, 관념, 여러 실상을 자기가 본 대로 그린다'고 말한 것에서 짐작하듯이 일반시민 또는 하층 계급 사람들의 생활이나 노동을 현실로 보고, 미추(美醜)를 불문하고 그 참모습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이밖에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운동으로서는, 20세기의 소련에 있어서의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창도 아래 전개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세부 묘사의 진실성 외에 전형적인 상황에서의 전형적 성격의 재현을 지향함)이나, 추상표현주의의 대극적(對極的) 반동으로서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구미에 나타난 수퍼리얼리즘이 있다. 후자의 새로운 사실주의는 실물과 착각할 정도의 완전한 재현으로 세부의 클로즈업, 기계적 복제(複製)의 응용 등 각종 수법을 포함한 현대의 카피 문화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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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의 자연풍경을 주제로 하는 동양화의 한 분야. 중국에서 일어나서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그 기원은 한대에 있어서 산악을 신선이나 진귀한 짐승이 사는 영적세계로 봐서 신선사상의 유형과 관계가 깊고, 공예의장에 나오는 산악무늬는 관념적, 도식적 표현으로 되어 있다. 육조시대에 이르러서는 산수의 투시도법적 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고 고개지(顧愷之)는 선산(仙山)을 교리적(敎理的)으로 그렸다. 또 종병(宗炳)은 기억중의 산천을 그려서 와유(臥遊, 想像上의 周遊)를 행하였다는 일화가 있으며 흉중구학(胸中丘壑)의 이념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신선산수는 당대에 새롭게 전개되어, 8세기 초두 이사훈(李思訓), 이소도(李昭道) 등은 첩첩이 쌓이고 솟아난 선산을 구륵(鉤勒, 輪郭線)과 농채(濃彩)로 그려서 청록산수(靑綠山水)의 화풍을 대성했다. 한편 같은 시대의 오도현(悟道玄)은 표춘적인 속필로 대화면의 산수를 그려서 소위 '산수의 변'을 일으켜 산수화는 자연주의와 표현주의를 겸한 예술로서 전개하게 된다. 그 성과의 일단이 당묘벽화 속의 산수표현으로 엿볼 수 있다. 중당 이후에 일어나는 수묵화는 산수화의 중요한 표현수단이 되고, 5대(10세기 전반)의 형호(荊浩)는 붓(선)의 사용법과 묵(수묵)의 표출성을 시도한 유필유묵론(有筆有墨論)을 주창하게 된다. 오대∼북송 초기에 산수화는 두드러지게 발전하여 종래의 인물화에 대신하여 회화의 중심적 부문으로 되었다. 화북에서는 관섬파(關陝派, 陝西派)의 관동(關仝), 범관(范寬) 등이 황토침식지대의 초봉을 그렸으며, 제로파(齊魯派)의 이성(李成) 등은 황량한 평원산수(平遠山水)를 목적으로 하여 제각기 일파를 이루었다. 뒷날 북송화원의 곽희(郭熙)가 양자를 총합해서 화북산수화를 대성했다. 이것을 이곽파(李郭派)라고 했다. 강남에서는 남당궁정의 동원(董源), 거연(巨然)이 습윤한 풍토를 그렸다. 이것이 소위 강남화의 계통으로 뒷날에 동거파(董巨派)라 불리우며, 후대의 문인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북송 후기에는 사대부 사이에서 묵희(墨戱)가 유행, 미불이나 미우인(米友仁) 등에 의한 주관적인 운산화가 일어났다. 북송 말∼남송 초기에 활약한 이당(李唐)은 바위를 그리는 필법이었던 준법 등의 양식화를 추진했지만, 그것은 남송 후기의 화원을 대표하는 마원(馬遠), 하규(夏珪) 등에게 이어져서 원경을 공백으로 하여 시적 정취를 양성하는 소위 '변각의 경(邊角의 景)'의 전형적 구도를 만들어냈다. 한편 송말에서 원초의 목계(牧谿), 옥간(玉澗) 등의 선종계 화가는 강남화의 전통인 자유로운 수묵의 수법으로 자연의 진수를 포착하는 산수화의 걸작을 남겼다. 원대 초기에는 남송 원체화의 서정성과 기교주의의 반동으로 조맹부 등이 복고주의를 제창해서, 북송 이전의 고졸(古拙)한 산수표현이 이상으로 되었다. 이후 산수화는 전통적 수법에 의해 자연을 그림 속에서 재구성하고 거기에 따라서 개성을 표현하는 독특한 예술성을 전개햇다. 원래의 보수적인 경향은 이곽파, 미법산수, 원체화 등의 추종 세력이 되어서 나타나지만 조맹부가 가장 높이던 동거파의 화풍이 문인들에게 숭상받아, 원대 말기에 황공망·오진·왕몽·예찬 등 원말4대가(元末四大家)가 각자의 개성양식을 완성한 이후, 명·청시대를 통하여 문인화가의 전거(典據)로 되었다. 명대(明代) 절파(浙派)의 산수화가 직업화가에 의한 원체화나 이곽파 화풍의 통속화였다는 것에 대하여, 명대 중기에 일어나는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 등의 오파(吳派)는 원말4대가를 통하여 문인화의 계보를 계승하고 있으며, 다시 그것을 이어 받은 명말의 동기창(董其昌)은 후자를 남종화라 칭하여, 전자의 북종화보다 나은 것이라는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을 주창했다. 또 청초의 4왕5운은 오파의 전형주의를 이어받아 청조화단의 정통파를 형성하지만, 같은 시기의 신안파(新安派)나 금릉파(金陵派) 혹은 석도(石濤) 등 개성주의 화가는 전통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으로 이후 남송화계의 정통파와 나란히 근래에 이르는 개성파의 원류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조선조 초기에 궁정의 도화서 화원인 안견(安堅) 등이 이곽파의 화풍을 섭취하였으며 강희안(姜希顔), 이상좌(李上佐) 등은 명대 절파(浙派)의 영향이 현저하다. 조선조 중기 이정(李楨)을 거쳐서 17세기에는 정선이 진경도(眞景圖)를 그려서 한국풍 산수화가 성립되었다. 후기(17∼18세기)에는 윤두서(尹斗緖)·심사정(沈師正) 등이 중국 청초의 개성파 문인화의 영향을 받는다.

살롱 도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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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Automne 가을전람회(秋展). 프랑스 미술전의 하나. 1903년에 프랑시 주르당을 리더로 해서 마티스, 마르케, 루오, 뷔이야르 등이 창립한 살롱. 르누아르, 르동, 카리에르 등의 대가와 유이스망(Joris Karl Huysmans, 1848∼1907), 베르하렌(Emile Verharen, 1855∼1916), 로제 마르크스(Claude Roger­Marx, 1859∼1913) 등의 문필가가 이것을 지지했다. 드랭, 블라맹크, 반 동겐, 브라크 등은 2, 3년 늦게 참가한다. 살롱 나쇼날의 보수성에 반발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매년 가을 파리에서 열린다. 수년 후에는 이 살롱에서 포비슴과 퀴비슴이 탄생했다. 회화뿐만 아니고 조각, 장식미술 등 많은 부분을 포함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살롱 드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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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de Mai 5월 전람회(五月展). 프랑스 미술전의 하나. 1943년대 독일 저항문화운동의 하나로서 파리의 신진화가들이 설립. 1945년 제1회전을 열고 이후 매년 개최, 프랑스 화단의 신진이나 중견을 결집하는 초대전이고 대가와 외국작가도 참가한다.

상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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象徵主義 Symbolisme 1880년대 후반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실주의적인 문예상의 운동. 이것은 시인 모레아스(Jean Moreas, 1856∼1910)의 '상징주의 선언(1886년 9월 18일, 피가로 지<紙>)에 의해 명확해졌지만,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 1842∼1898), 랭보(Arthur Rimbaud, 1854∼1896) 등을 중심으로 하여, 특히 시어(詩語)의 음악성을 중시하려 했던 것이다. 미술상의 상징주의는 이들 시인의 영향 아래 조금 늦게 나타난 반사실주의적인 경향을 지향했으나, 문예의 경우처럼 명확한 주장이나 운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직접적으로는 비평가 오리에(Georges Albert Aurier, 1865∼1892)의 논평 <회화에 있어서의 상징주의>(1891)에서 고갱을 중심으로 한 퐁 타방 파(이 파는 오리에의 논평에 의해 종합주의라고도 불리웠다) 및 고갱이 타히티로 떠난 뒤 오리에의 주장에 가까운 나비파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후의 논평에서는 고갱 등의 음악적·장식적인 구성을 목표로 한 작품보다도 도리어 신비적인 주제를 취급하고, 종교적·상징주의에 포함되어 있다. 퓌비스 드 샤반느, 르동, 귀스타브 모로, 카리에르, 앙소르, 클림트 등이 대표자로 간주된다.

상파울루 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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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enal de S o Paulo 1951년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창설한 격년제의 종합적인 국제미술전.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같이 중요시 되어, 서로 중복이 되지 않게 상파울루 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되고 있음.

서정적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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抒情的抽象 Abstraction lyrique 1947년과 50년대 말 사이에 등장한 무의식적 미술형태. 주로 액션 페인팅, 앵포르멜 미술, 타시슴 등을 뜻하는데, 서정적 추상이란 개념은 원래 기하학적 추상에 대립되는 용어이다.

석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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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ographie 평판에 의한 판화. 다른 판화에서는 원판을 절단하거나 새겨서 제판하지만, 그런 조작을 전혀 하지 않고 제판을 한다. 본래는 두겁고 무거운 석판석을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아연판이 가볍고 일그러지지 않으며 취급하기 쉽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어, 손으로 돌리는 석판인쇄기로 찍는다. 1798년 독일의 제네펠더(Johann Napomuk Alois Senefelder, 1771∼1834)가 발명한 것이나 지방막이 물을 튀긴다고 하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그림을 지방이 묻은 초크로 석판의 판면에 그려 판면에 물을 적신 후, 지방성의 잉크를 석판 위에서 롤러로 돌리면 초크로 그린 부분만 잉크가 묻는다. 19세기의 미술가들이 받아들여 보급된 방법인데, 포스터 및 다른 상업 미술에도 사용되었다. 좋은 점은 제판사(製版師)의 협력을 얻는다면 누구라도 제작할 수 있다는 것과 인쇄매수가 많다는 것이다. 특별히 처리된 전사지에 전용잉크로 도형을 그리고, 인쇄용의 판면에 전사할 수도 있다.

선종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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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宗伽藍 선종에서 행한 가람형식. 고대사원의 좌우대칭의 엄정함을 답습하면서, 승려의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필요한 승당 등 일상생활의 시설이 중시된 가람. 중국당∼송시대에 선종이 흥륭함에 따라 형성되었는데 불전, 법당, 승당, 고방(고리), 산문(삼문), 서고, 욕실 등 '가람7당'의 제도가 만들어졌으며 큰 사찰에서는 불탑, 강당, 종루 고루 등이 첨가되고 특히 田(전)자형 플랜의 500 나한당과 쌍탑이 부속되는 것도 있다.

세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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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ature 세밀한 묘법으로 제작된 소형의 그림. 예컨대 16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메달 초상화, 카드의 그림, 18세기 로코코의 부인용 화장용구에 그린 그림 등. 보통 미니어처의 역어(譯語)로 많이 쓰이나, 사본을 장식하는 삽화나 장식화를 가리키는 미니어처와 말뜻이 다르다. 미니어처는 16세기 라틴어의 미니멈(minimum, 최소)이나 프랑스어의 미뇽(mignon, 소형의, 귀여운)과 결합되어 소화상, 미세화 즉 세밀화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세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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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서민의 일상생활을 받아들여 그 전형적 정경을 일정한 입장에서 그린 회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거의 풍속화와 같다. 다만 후자에 있어서는 궁정생활과 승원생활 등을 그린 것도 포함되나 세속화에서는 농민과 직인 상인 등 하층계급 생활을 그린 것에 한하므로 종교화 및 역사화와 대립된다. 서민생활이 회화의 주제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은 일반시민이 사회활동의 중심세력으로 된 근세 이후의 일이며, 최초는 목판화나 동판화 같은 비교적 간단하고 소규모인 회화형식이었으나 곧 유채화(유화) 등 본격적인 작품의 출현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근대국가에 있어서는 신분적 계급제도가 해소되는 경향에 있고, 그것에 수반하여 세속화도 의의를 잃어서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은 사진과 영화, 텔레비전으로 포현하게 되었다.

소박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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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intres na fs 아카데믹한 이론 및 기술과 무관한 아마추어 화가. 앙리 루소와 세라핀을 발굴한 빌헬름 우데에 의하여, 근대회화에 있어서 독특한 영역의 하나로 처음 '소박회화'라는 개념이 세워졌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대부분 비직업적인 화가에 의한 일군의 작품이 그것이고 자연 발생적인 솔직함, 풋내나는 양식화와 데포르마숑을 공통의 특징으로 함. 아동화와 정신병자의 작품에 유사한 경우도 있다. '소박회화'라는 것은 표현의 타입이나 작풍에 관계되는 개념으로, 소박화가와 일요화가와는 기념이 다르다. 프랑스의 소박화가에는 보샹, 비방, 봉부아, 페로네, 미국의 소박화가에는 오브라디, 필드 등. 영국의 윌리스, 스위스의 디트리히, 에스파냐의 비반코스, 온두라스의 벨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메이에르 등도 들 수 있다.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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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relle 아라비아 고무 등으로 섞어 반죽한 수용성 물감에 의한 회화기법. 그에 의해 제작된 작품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꿀, 설탕, 글리세린 등은 화구에 습기를 첨가하는 것이다. 수채화구의 특성이 투명함에 있으므로 투명 수채화구라 불리우며, 백색안료를 혼합한 불투명 수채화구와 구별된다. 진하고 연한 것, 밝은 색조와 흰 종이의 효과를 살려 표현하는 기법을 쓴다.

수퍼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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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realism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라고도 함. '리얼리즘 이상의 리얼리즘'의 뜻으로 제2차대전이후 미술의 한 경향을 나타낸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이 동향은 팝 아트와 인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필립 펄스타인(Pilip Pearlstein)의 뉴 리얼리즘의 영향이 엿보인다. 사진을 이용하여 인물이나 도시 경치를 그리되 주관을 배제하고 실물과 꼭 같은 인간상을 작성함. 그 때문에 샤프 포커스 리얼리즘(Sharp Focus Realism), 포토 리얼리즘(Photo Realism), 포토 아트(Photo Art)라고도 칭함. 대표작가로는 척 클로스(Chuck Close, 1940∼), 로버트 벡틀(Robert Bechtle, 1932∼), 리차드 에스테스(Richard Estes, 1936∼), 존 솔트(John Salt, 1937∼), 로버트 코팅엄(Robert Cottingham, 1935∼), 리차드 맥린(Richard Mclean, 1934∼), 랄프 고잉스(Ralph Goings, 1928∼), 조형작가로는 듀안 핸슨(Duane Hanson, 1925∼) 등이 있음.

쉬르레알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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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realisme 초현실주의. 20세기 예술사조 조류의 하나.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제1선언'에 의해 일어난 운동. 미술, 시, 문학, 정치 등 넓은 범위에 걸쳐, 상상력의 해방과 합리주의에 대한 반역을 제창하며 인간 자체의 자유와 변혁을 지향한 점에서 영원한 질문을 던져 주는 사상이다. 다다이슴에 의한 부정과 파괴를 이어받아, 처음 브르통, 수포(Philippe Soupault, 1897∼), 엘뤼아르(Paul Eluard, 1895∼1952) 등 시인과 에른스트, 미로 등의 화가들이 오토마티슴의 법으로, 광인, 영매(靈媒), 꿈, 환각 등에 나타나는 의식화의 비합리적 영역에 메스를 가하였다. 이는 프로이드 심리학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미술에서는 콜라주, 프로타주, 데칼코마니 등의 수법으로 불안한 환각을 정착시킨 에른스트가 대표적 작가이다. 1930년 경부터, 코뮤니즘 정치에 참가한 아라곤 등과 내적세계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브르통 등에 의해 분열된다. 미술에서는 편집광적 비판적 방법으로 환상의 즉물적(卽物的)인 표출을 표현한 달리가 후기의 대표적 화가로서 등장한다. 특히 제2차대전 중 미국에 망명한 쉬르레알리스트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의 힘으로 추상표현주의의 탄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통제의 체제에 따랐다는 이유로 달리나 에른스트를 제명한 브르통은 제2차대전 후에도 고립된 위치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다가 1966년에 사망했다.

쉬프레마티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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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rematisme 절대주의, 지고(至高)주의라고도 한다. 혁명 전후에 소련에서 말레비치가 제창한 회화이념. 1913년 말레비치의 작품으로 시작된 후 동조자를 얻어 운동이 확산되었다. 회화의 재현성을 부정하고, 순수감성을 절대적으로 하는 비대상(非對象)회화를 지향했다. 모스크바에서 발간된 <퀴비슴에서 쉬프레마티슴으로>(1915)가 최초의 선언이지만, 바우하우스 총서인 (비대상의 세계, 1928)가 이념의 집대성이다.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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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ind glass 색유리를 짝 맞추어서 창에 낀 것. 이 기법은 고대 로마 시대에서 비롯되어 비잔틴 시대로 이어지고, 다시 이슬람과 서구로 전파됨. 이슬람에서는 여러 가지 색유리 소단편을 스투코 등으로 짝맞추고 그 창틀로 추상문, 식물문 등을 나타내는 전통이 각지로 퍼져 오래 계속됐다. 서구에서는 개개의 색유리판에 그리자유라는 흑갈색의 유(釉)를 바른 후 열처리해서, 인상(人像)의 세부에 선을 그려넣거나 음양을 입히는 일이 카롤링 조 이후 행해졌다. 유리의 접합(接合)에는 아연틀을 사용하고 이를 철틀로 보강해서 창에 끼워 창면 전체를 하나의 화면으로 구성함.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건축구조상 창이 작았으나, 고딕구조가 차차 발전됨에 따라 창이 대형화하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종래의 벽화구실을 하게 되었다. 더욱이 투과 광선을 이용한 그 색채는 유례없는 것으로, 고딕시대를 통하여 프랑스 북부를 중심으로 매우 발달하였다.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찬란한 색채의 구성에 있었으나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실적 표현을 가능케 했기에, 차차 유리면에 그려지는 필화로 바뀌고 중세 말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동안 본래의 미를 잃게 됨.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고 중세 성기의 기법은 11세기 말 수도사 데오필스의 저서 속에 상술되어 있음.

시각예술탐구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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視覺藝術探究- Groupe de Rocherche d'Art Visuel 프랑스의 미술가 그룹. 가르시아 로시(Garcia Rossi 1929∼), 줄리오 파르크(Julio Le Parc, 1928∼), 프랑수아 모를레(Francois Morellet, 1926∼), 프란시스코 소브리노(Fransisco Sobrino, 1933∼), 죠엘 스탱( Joel Stein, 1926∼), 이바랄(Yvaral, 1934∼)에 의해, 1960년 파리에서 결성됨. 예술현상을 정감적인 가치로서가 아니고, 순수한 시각적 불확정성(착각, 움직임, 빛반사)으로 추구함. 1963년 파리 청년 비엔날레에 환경적 작품 <미로>를 공동제작해서 주목을 끌었다. 1968년 해산.

신고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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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古典主義 Neo­Classicisme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건축, 조각, 회화, 공예의 각 장르에 걸쳐 서구 전체를 풍미한 예술양식. 고전, 고대(그리스·로마)의 부활을 목표로, 고고학적 정확성에 강한 관심을 두고 합리주의적 미학에 바탕을 둔다. 고대적 모티브를 많이 쓰고 냉철한 표현의 완성을 특징으로 한다. 고대에의 관심은 이미 18세기 초부터 보이지만, 특히 헤라크라네움(1783), 폼페이(1748)의 발굴, 그리스나 소아시아 조사 여행 등에 자극되어 18세기 말에는 지배적으로 이에 기울어졌다. 미학적으로는 빈켈만의 (1755)나, 피라네지의 (1761, 로마인의 사치와 건축에 관하여) 등의 영향이 결정적이었고, 19세기에는 나폴레옹의 로마에 대한 동경이 한층 더 이 경향을 굳혔다. 대표적인 예술가로서는 건축에서는 영국의 로버트 아담, 윌리엄 첸버스, 프랑스의 스프로, 독일의 신켈 등이고, 조각에는 프랑스의 우동과 이탈리아의 카노바이며, 회화에서는 독일의 라파엘 멩스, 영국의 벤자민 웨스트, 프랑스의 비앙 등이 있지만, 특히 비앙의 제자인 J.L. 다비드에 의해 가장 뛰어난 성과가 이루어 졌으며, 이는 앵그르에 계승되었다. 신고전주의는 19세기 아카데미즘 예술의 기본원리로서 오래 이어졌으나, 그와 동시에 먼 고대나 이국(異國)에 대한 뜨거운 동경과 관능적인 경향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낭만주의 예술의 선구자로서의 구실도 하였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에서도 한때 '신고전주의 예술'이라는 명칭이 있었으나, 이는 별개의 것이다. 또 이집트 미술, 현대 건축 등에도 편의적으로도 신고전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수가 있다.

신인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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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印象主義 Neo­Impressionnisme 신인상파라고도 한다. 19세기 말의 프랑스 회화운동 또는 양식의 하나. 슈블르, 샤를 앙리(Charles Henry, 1859∼1926) 등의 광학이론이나 색채론에서 계발되어 인상주의를 계승하면서, 이에 이론과 과학성의 뒷받침을 부여하려는 것. 분할된 균일한 필촉(筆觸)에 의하여 시각혼합을 철저히 하는 것을 기술상의 최대 특색으로 한다. 1886년 최후의 인상파전(展) 때에 처음으로 명료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쇠라와 시냐크가 그 대표적인 존재이다. 앙그랑, 뤼스, 크록스, 뒤부아 피에 등도 이 파의 화가이고 또 카뮈, 피사로, 고갱, 반 고흐 등은 일시적으로 이파를 겪어 나갔다. 과학성과 이론성의 추구라는 특색 때문에 금세기의 퀴비슴이나 미래파에 영향을 끼침.

신조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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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 Plasticism 20세기 전반의 네덜란드의 예술운동. 몬드 리안에 의해 이름이 지어졌다. 1917년 판 도스부르흐, 몬드리안이 중심이 되어 레이덴에서 발간된 <데 스틸>지가 이 운동의 핵을 이루어 판 데어 렉(Bart Van der Leck, 1786∼1958), 반 돈 겔로. 아우트 판 토프(Robert van t'Hoff, 1887∼), 윌스(Jean Wils, 1891∼) 등이 참가했다. 색채와 선의 순수한 관계를 주장하고 그 순수성을 보편성과 연계지어 회화, 조각, 디자인, 건축 등을 같은 원리로 통일시키려 했다. 몬드리안은 '신형상'이라고 말해 왔는데 이대까지의 미술, 건축, 디자인 등과의 단절을 강조하기 위해 1920년 '신조형'이란 명칭을 제창하고 그 이론을 1925년 바우하우스 총서의 으로 간행했다. 1924년 도스부르흐가 엘리멘터리즘을 주장하자 이듬해 몬드리안은 <데 스틸>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신조형주의와 바우하우스, 구성주의, 그외 '다다' 등과 교류를 갖고 1927년부터 간행을 시작한 모흘리 나기, 아우트 등에 의해 만들어진 잡지 <Ⅰ10>이 그들과의 교량 역할을 하였다. 1930년대 초까지 계속되어 회화, 조각, 디자인, 건축에 많은 영향을 주어 20세기 추상예술운동으로 큰 공적을 남겼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순수미술 보다 실내장식, 디자인 등에서 많이 응용하고 있다.

실크 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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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k screen 공판(孔版)의 일종. 영어로는 특히 예술적인 것에 한하여 세리그래피(serigraphy)라고도 하는데, 프랑스어(serigraphie)에는 그 구별이 없고 실크 스크린 전반을 가리킨다. 기법은 나무 또는 금속의 테에 붙인 비단, 나일론, 테트론, 스테인리스 스틸 등의 가는 구멍을 통하여 스퀴저로 잉크나 화구(물감)를 판 아래 놓인 소재에 직접 인쇄한다. 원판은 스크린 전용의 재료를 사용하여 직접 그리는 방법, 본을 만든 종이를 붙이는 커팅 방법, 사진 제판법이 있다. 판 형식이 가장 단순한 공판 방식이기 때문에 인쇄되는 소재와 형상에 구애되지 않고 적응성이 풍부하며, 그 이용 범위는 조형예술(판화 등)을 비롯하여 정밀기기의 구조 회로, 표지(標識), 계기(計器)류, 인테리어 디자인 용의 소재 등 각 산업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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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彫 sunkrelief 부조의 한 기법. 표현대상의 윤곽선 안쪽을 파서 낮게 하고 입체감을 주는 표현법을 사용한다. 가장 많이 돌출한 부분과 소지의 표면의 높이가 일치한다. 소재의 표면전체를 파는 번거로움이 없고 도상의 파손을 적게 하는 이점이 있다. 또 명문 등을 파는 일도 편리하다. 고대 이집트 신전의 외측 벽면부조와 공양비에 많이 이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