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미술/미 술 용 어/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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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편집]

Art Nouveau 대략 1890년에서 1910년 사이 서구제국(諸國)을 중심으로 개화한 예술운동 양식의 총칭. 명칭은 '신예술'의 뜻으로 1895년 파리에서 개점한 빙 상점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외에 모던 스타일(영), 유겐트 슈틸(독, 오스트레일리아), 스틸레 리바티(이) 등 나라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름이 있다. 장식미술, 건축을 중심으로 회화, 조각에서 일상풍습에까지 파급하여 다양한 표현을 전개, 식물적 모티브에 의한 곡선의 장식가치를 강조하여 장식과 평면(공간)과의 유기적 연관성을 추구하여 그래픽(비아줄리), 입체디자인(반 데 벨데, 갈레, 티파니), 건축공간(오르타, 매킨토시, 가우디) 등에 있어서 독창적인 작품을 남겼다. 1870년대에 이른적, 사회적으로 영국의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의 영향을 받아 갈레 등 낭시 파의 흐름도 햡쳐서 세기말 상징주의와 나비 파(派)에 평행하여 발전. 대소 예술 및 각 장르의 총합, 절충적 역사주의에 근거를 두지 않는 신양식의 창출을 기획, 신소재를 도입하여 일상생활 환경과 배경의 혁신을 지향하였으나 본질적으로는 유미적(唯美的)이고 개인주의적 경향이 있어 기능 및 기계 생산에 진정한 대응을 못한 채 금세기 초 상업주의의 비속화 속에서 자멸하였다. 그러나 후기의 독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이는 기하학적 구성(에크만〔Otto Eckmann, 1986∼1902〕, 요셉 호프만, 클림트)은 직접적으로 20세기의 원천이 되며, 운동 전체가 20세기 건축·디자인에 미친 의의와 영향은 매우 크다.

아르데코[편집]

Art Deco 1910년대∼30년대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구에서 시작된, 후기 아르누보에서 바우하우스 디자인 확립까지의 중간적인 장식 양식. 명칭은 '장식 미술'의 뜻. 1925년 파리의 현대장식·산업미술국제박람회의 약칭에서 유래하며 '1925년 양식(style 1925(프))'이라고도 함. 빈 공방, 퀴비슴, 발레 뤼스 등에 착상하여 직선과 입체의 지적구성, 억제된 기하학적무늬의 장식성에 특색을 두었으나 손작업 중심의 일품제작 전통에서 탈피하지는 못했다.

아쿼틴트[편집]

aquatinte 부식 동판화 제판기법의 일종으로 회색에서 흑색까지의 면의 그라데이션을 만드는 기법. 판면에 송진 등 수지분말로 다공질의 지(地)를 만들고 부식을 반목하여 그라데이션을 깊게 함. 이 기법은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화가 장 밥티스트 르 프랭스(Jean-Bptiste Le Prince, 1734∼81)의 발견이다. 비슷한 기법에 솔트 아쿼틴트(salt aquatint(영)), 샌드페이퍼 아쿼틴트, 슈거 아쿼틴트, 설파 아쿼틴트 등이 있다.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편집]

Arts and Crafts Movement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공예혁신운동. 러스킨의 강한 영향 아래 윌리엄 모리스를 주도자로 하여 애슈비, 크레인 등의 작가 등이 추진했다. 이 운동은 무명의 직공들이 만든 중세 수공예에서 예술본래의 모습을 찾고 기계에 의한 양산을 부정하고 수공예의 존중을 강조하였으나,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기술의 진보에 따르는 제반 성과와 전면적으로 대립하는 결과가 되어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구, 칠기, 벽지, 포장, 삽화, 타이포그래피 등과 디자인 장식 예술 등의 영역에서는 많은 혁신을 나타내어 아르누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암면미술[편집]

巖面美術 art rupestre 암벽이나 암괴에 그리거나 새겨진 채화, 각화(刻畵), 부조. 동굴 암벽에 행한 채화·각화(동굴벽화)와 암굴부조(暗窟浮彫)는 유럽 구석기시대 후기의 프랑코 칸타브리아 미술에 국한됨. 암굴채화는 레반트 미술, 사하라 미술, 부시맨 미술, 인도 선사미술, 오스트레일리아 미술 등에 나타나며 암굴·암면·암괴의 각화는 미국의 네바다나 동캘리포니아, 페루, 칠레, 볼리비아, 중국 감숙성, 한국, 오만, 시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발견됨. 또한 뉴기니 인(人)이나 서아프리카의 도곤 족처럼 현존 부족민에 의해서도 암굴채화가 그려지고 있음. 채화의 안료로는 철산화물, 망간산화물, 석회석, 목탄 등에서 얻어진 황, 적, 갈, 흑, 백색 등으로 청색계통은 없음. 각화에는 선(線)각화와 고타법(敲打法)에 의한 방법 등이 있음.

압스트락숑 크레아숑[편집]

Abstraction-Creation '추상·창조'의 뜻. 1932년 파리에서 결성된 비구상주의 그룹. 앙투안 페브스너, 가보, 칸딘스키, 몬드리안, 들로네 부처, 벤 니콜슨, 모홀리 나기, 브랑쿠시 등이 참가했다. 엄밀한 비구상 추구에 있어서나 국제적 확산에 있어서 중요한 운동이었으나 제2차대전으로 자연히 해산되었다. 기관지는 (1932∼1936, 추상, 창조, 비구상예술의 뜻).

앙티미슴[편집]

Intimisme '친애하는', '친밀한'이라는 의미의 형용사 앙티므(intime)에서 파생된 말. 서양 근대회화상의 유파라고 하기보다는 경향을 나타내는 말. 일상적인 신변의 광경과 가정내의 정경, 모자상 등을 제재로 가정적인 친밀감이 넘치는 회화를 말하며, 그와같은 경향의 화가를 앙티미스트(Intimiste)라 부른다. 비야르와 보나르가 대표적이며, 그런 의미에서는 나비 파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더 앞선 세대의 카리에르와 카사트, 다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초기 플랑드르파 회화(플랑드르 미술), 물랭의 화가 작품 등에도 같은 특색이 나타난다.

액션 페인팅[편집]

Action Painting 제2차 대전 후 주로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추상회화의 경향. 추상표현주의와 중복되는 부분도 있다. 비평가 해롤드 로젠버그에 의해 명명(命名)되고 그가 '자기초월'이라고 정의한 것처럼 그리는 행위자체에 중요성을 부여함. 유럽 풍의 자기표현의 질서와 조화있는 소우주를 초월하려 하는 것. 폴록, 드 쿠닝 등이 대표적인 화가.

앵포르멜[편집]

Informel '부정형(不定形)인 것'이란 뜻. 프랑스의 비평가 미셀 타피에가 주창하고 지도한 2차대전 후에 나타난 추상회화의 한 경향. 1951년 파리의 니나 도세 화랑에서 개최된 '격정의 대결' 전(展)이 그 최초의 데모스트레이션이었다. '앵포르멜'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쓰여진 것은, 다음해 파리의 파케티 화랑에서 열린 '앵포르멜이 의미하는 것' 전(展)에서였다. 포트리에, 뒤뷔페, 볼스 등의 40년대 초기 작품을 선구로 하여 마튜, 리오펠, 아펠, 카포그 로시 등을 중심이 되어 이 운동에 참가했다. 실존주의와 정신풍토가 같으며 액션 페인팅과 시대를 공유하는 운동으로서 기존의 미학을 폐기하고 동력학, 위상기하학, 집합론적 극미(極微)와 극대 등의 개념을 도입하여 '별개의 예술'을 창조하려고 하였다.

엄격양식[편집]

嚴格樣式 Severe style 그리스 미술사에 있어서, 초기 클래식(B.C.500∼B.C.450) 중에서도 페르시아 전쟁 이후부터 파르테논의 건축개시까지의 시기(B.C.480∼B.C.450)를 특히 엄격양식시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 시대의 미술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에토스'(ethos, 고귀한 정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구수하고 은근한 엄숙성이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대표적인 작례로는 <델포이의 마부상>,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장식조각, <아르테미시온의 포세이돈> 등을 들 수 있다.

에칭[편집]

eau-forte (1) 판화 용어. 부식동판화의 대명사와 같이 쓰이는 수가 많은 제판기법으로 주로 선에 의한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그 기법에 의한 인쇄물. 동판면을 내산성 방식제로 얇게 덮고 바늘로 도형을 그려서 판면의 금속을 노출시킨 다음 부식액을 거기에다 작용시켜 오목판(凹版)을 만든다. 선의 굵고 가늠과 강약은 액의 농도, 온도, 부식시간의 장단으로 조절한다. 에칭 작품의 가장 빠른 시기는 1513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이전부터 금공기법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처음은 철판이 사용되었다. (2) 서양 유리공예의 용어. 유리 표면을 약품에 의하여 부식시켜 문양 등을 나타내는 기법. 내산성의 피막으로 유리면을 덮고 필요한 디자인을 끊어내어 불화수소 같은 강한 산에 담근다. 커팅으로는 불가능한 곡선을 얻을 수 있고 또 부식의 조절에 의하여 다양한 표현도 가능하다. 고저의 차가 심한 부조에 적당하므로 가레 등이 이 기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에콜 드 파리[편집]

Ecole de Paris 파리(Paris) 파. 넓은 의미로는 각 시대의 여러 가지 미술·공예의 영역에 존재하였으나 특히 1925년 경부터는 당시 파리에서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던 국외 예술가들의 호칭으로 쓰기 시작함. 그중에도 모딜리아니, 수틴, 파스킨, 키슬링, 후지타, 샤갈 등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킬 때가 많았다. 그들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불안과 애수가 감돌고 있었다. 이들 화가들은 조국을 상실한 자로서, 가난하며 비참한 파리생활을 하면서 각자의 민족적 자질을 훌륭히 꽃피웠다. 또한 제2차대전 후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파리에서 활약하는 내외 예술가들의 총칭으로도 사용했다. 특정한 유파가 아니고 미술의 중심지로서 파리의 위광을 말하는 단어였다.

에튀드[편집]

etude 습작(習作). 예술작품의 대상이 되는 것을 연구하며 공부하기 위하여 연습으로 그리거나 또는 점토(粘土)로 만들거나 하는 것. 최종적인 작품을 위한 초벌 그림과 같은 것도 당연히 이것에 포함된다.

엔코스틱[편집]

encaustique 일종의 납화 또는 그 기법. 밀납화라고도 한다. 원래의 뜻은 '구워서 넣은 그림'이라는 정도의 뜻. 납을 주재료로 하는 용매인데 녹인 안료를 가열하거나 혹은 가열한 인두를 사용해서 목판과 돌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화법으로, 화면은 독특한 광택을 가지며 습기에 강하다. B.C. 4세기 그리스의 화가 팜필로스(Pamphilos)의 고안에 의한 것이라 전해오나, 폼페이 등의 고대벽화와 파이윰 주변에서 발견되는 미라의 나무관의 초상(2∼3세기) 등에도 나타남. 초기의 이콘에 계승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엘리멘터리즘[편집]

Elementarism 판 도스부르흐에 의해 제창된 조형이념. 1924년 도스부르흐는 신조형(新造形)주의를 너무 관념적이고 교조적이라고 비판, 대각선에 의한 동적이며 불안정한 효과를 가지는 구성을 시도했다. 1926년 그는 <데 스틸>지상(誌上)에 그것을 '엘리멘터리즘'이라 명명하고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세자르, 도메라, 포르뎀베르헤 힐데바르트(Friedlich Vordemberge GildeWart, 1899∼) 등이 영향을 받았다.

역사화[편집]

歷史畵 Peinture d'histoire 역사상의 사건을 주제로 한 회화. 넓게는 신화·전설 등의 사건을 그린 것도 포함되며 또 작가와 같은 시대의 사건을 그린 그림도 포함되는 수가 있다. 제재가 되는 사건은 그 민족주지의 사건으로 가끔 사건의 중심인물로 활약하는 민족적 영웅이 등장하며 거기에는 일종의 이상화된 표현도 가해진다. 그러므로 역사화의 의의는 사실에 충실하기 보다는 사건의 역사적인 중대성이나 장면의 극적구성에 있다. 역사화 내지는 같은 양식을 가진 채색부조의 기원은 전승(戰勝)을 기념·찬양하는 전승국의 그것으로서, 수메르와 이집트 등 고대로 소급될 수도 있으나 대표적인 예로는 폼페이에서 출토한 <알렉산더 모자이크>일 것이다. 중세에 와서 한때 중단 되었으나 14세기 이탈리아에서 그리기 시작하자 다시 넓게 전파되어 17∼19세기 초에는 유럽의 아카데미에서 회화의 가장 고귀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격차가 있는 사건을 정확하게 재현하고자 노력한 기록적 역사화는, 서양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시작되었고 이것도 인상주의 대두 이후 급속히 쇠퇴하고 말았다.

영모화[편집]

翎毛畵 동양화의 화제. 영(翎)은 새의 날개, 모(毛)는 동물의 털이란 뜻. 작은 새, 개, 고양이, 원숭이, 다람쥐 등의 소동물을 주제로 그 털을 아름답고 정밀하게 그리는 소위 '털 그리기'의 묘를 발휘하는 그림. 동물만을 그린 것은 주수도(走獸圖)라고 한다. 송대의 화원화가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오르가니슴[편집]

Organisme 미술에 있어서 유기적 생명감을 존중하는 태도. 기하학적 경향이나 특히 건축, 디자인의 기능주의에 대립하는 유기적인 경향을 뜻한다.

오르피슴[편집]

orphisme 20세기 프랑스 회화의 한 경향. 오르페우스에서 연유한 명칭. 아폴리네르가 1910∼1914년경 로베르 들로네의 작품에 나타난 퀴비슴의 새로운 전개를 보고 이렇게 불렀다. 퀴비슴 초기의 엄격한 구성을 이어 받으면서 미래파의 다이내미즘을 포괄하여 원색을 시적, 음악적으로 구사하게 하였다. 들로네, 레제, 피카비아, 뒤샹 등이 있다.

오브제[편집]

objet 일반적으로는 물체, 대상, 객체 등을 의미하나 미술에서는 쉬제(sujet(프), 주제)에 대응하여 일상적 합리적인 의식을 파괴하는 물체 본연의 존재방식을 가리킨다. 다다이슴의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의 일상적인 위치를 변질시킨 것이고 쉬르레알리슴의 상징기능인 오브제는 성적욕망과 환각을 불러 일으키는 작용을 가진다. 제2차대전 후의 폐물을 사용한 조각(⇒정크 아트, 아상블라주)은 공업사회에 있어서 오브제의 새로운 전개이다.

옵셋[편집]

offset 밑그림의 데생과 일단 인쇄된 종이의 화상을 원압(圓壓)프레스를 통하여 다른 종이에 다시 박는 것. 공업인쇄에 있어서는 프로세스인쇄라고도 불리우며 평판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다방면에 쓰인다.

옵티컬 아트[편집]

Optical Art 팝 아트에 대하여 옵 아트(Op Art)라 약칭되는 수가 많다. 시각적인 예술을 뜻하며 특히 착시(錯視)에 의해 시각적 효과가 나타나는 작품을 가리킨다. 이 때문에 키네틱 아트와도 관련된다. 앨버스, 바자렐리를 선구로 하고 대표작가로는 라일리, 세질리, 아누스키위츠(Richard Anuszkiewicz, 1930∼), 아감 등이 있다. 1965년의 '감응하는 눈(眼) 전(展)'(윌리엄 세이츠 William C.Seitz 기획, 뉴욕 근대미술관)에 의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원근법[편집]

perspectif 어원인 라틴어의 아르스 페르스펙티바(ars perspectiva)는 페르스피케레(perspicere, '투과하여 보다'의 뜻)에서 유래한다. 공간(실내, 풍경) 중의 물체를 전체와 관련지어 포착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인데,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의 평면(화면)상에 재현하는 회화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건축, 정원, 도시계획 및 무대장치 등의 시각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사용하는 개념이다. 서양에서는 사실을 지향하는 고전·고대와 근세의 미술에 있어 원근법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아졌다. 측면시(側面視), 수족(手足)의 교차와 단축(短縮) 등의 표현, 특히 배경으로 되어 있는 건축과 풍경의 묘사는 이미 폼페이 벽화(B.C.1세기) 등에 명확한 유례가 있고 비트루비우스에 의하면 무대장치의 원근법은 B.C.5세기 아테네의 화가 아가타르코스(Agatharkos)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양의 원근법은 회화를 구성하는 색과 선의 두가지 요소에 의하여 각각 발전했다. 그중 (1) 색채 원근법은 색의 심리효과를 화면에 응용해서 원근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적극성의 인상을 주는 빨강은 가까운 것에, 또한 소극적인 청색은 먼 것에 쓰인다. (2) 선(線) 원근법은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기하학적인 기초위에 법칙이라고 할만큼 유일하게 체계화된 원근법이다.

이오니아 양식[편집]

-樣式 Ionic style 그리스 미술의 한 양식. 도리스 족의 침입으로 펠로폰네소스에서 소아시아 연안과 에게 해의 여러 섬에 쫓겨 간 이오니아 인들에 의하여 전개된 양식. 우아하고 섬세하며 경쾌하다. 일괄하여 여성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질을 띠며 아르카이크 조각에 있어서는 남성적인 도리스 양식과 현저한 대조를 나타낸다. 그러나 도리스 인의 침입 후에도 이오니아 인이 잔존하였던 아티카에 있어서는 도리스 양식과 융합하여 예를 들면 파르테논 신전과 같이 세련된 고전양식으로 승화되었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편집]

Industrial design 공업디자인. 협의로는 공업제품의 형태, 색채, 표면처리 등의 미적·조형적인 면과 촉감, 사용, 용도, 표면처리 등의 면에서 공업제품과 인간 사이를 더욱 좋은 관계로 만드는 일. 그 사상적 원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윌리엄 모리스에 의한 영국의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1859∼1890경)이 그 발단이 된다. 기업활동과 공업생산적 수법을 인정하면서 인간과 공업활동 상호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공업 디자인의 사상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인상주의[편집]

Impressionnisme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회화운동으로 그 영향은 유럽과 아메리카로부터 동양에까지 미쳤다. 1874년 봄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드가, 르누아르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일군의 화가가 관선의 살롱에 대항하여 최초의 단체전을 파리의 사진작가 나다르의 아틀리에에서 열었다. 이때, 신문기자 루이 르루아(Louis Leroy)가 모네의 출품작 <해뜨는 인상>(1872,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을 비꼬아서 그들을 인상파라 불렀다. 제3회전(1877) 이후는 그들 자신이 이것을 정식 호칭으로 채용하였다. 인상파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하며 인상주의라는 용어도 거기에서 파생하였다. 인상주의는 사실주의를 이어받아 특히 외광파(外光派)의 옥외제작을 중시함. 인상파는 밝은 색채를 사용하면서 외계의 사물을, 그 존재감에 있어서 보다 많은 빛을 받고 공기에 둘러싸인 인상에서 표현한다.

인테리어 디자인[편집]

interior design 실내 장식의 뜻. 인테리어 데커레이션 혹은 실내장식이란 말은 옛부터 있었으며, 서양건축의 천장과 벽 또는 방바닥의 표면을 다른 재료를 써서 마무리짓는 화장이나 마무리 위에 회화나 부조를 하고 샹들리에, 거울, 가구류에 의장을 집중시켜 실내를 하나의 양식으로 만드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아르누보와 제체션 이후부터는 생활방식, 개인의 능력, 개인의 이상에 부합하도록 실내를 설계하는 것을 인테리어 디자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르 로에 같은 건축가는 가구를 만들고 훌륭한 실내설계를 하였다. 현대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능이 확립되어 있어 경향은 배, 항공기, 단위주거 내부의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됨.

일러스트레이션[편집]

illustration 삽화(揷畵), 도해(圖解). 특히 서적(사본, 인쇄본 등), 잡지, 신문, 광고 등에서 문장내용을 보충하거나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첨부하는 그림. 또는 직접 이 목적 때문에 만든 그림은 아니더라도 문장에 관련을 가지고 인용된다면 삽화의 역할을 한다. 문장에 첨부되면서 직접 그 내용에 관계가 없는 경우는 삽화라기보다 오히려 장식화에 해당된다. 그러나 현대에는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라는 직능이 본격적인 화가와 그래픽 디자이너 사이에 개입되어 있어, 그들이 그리는 '삽화풍의 그림'은 문장에 수반되거나 또는 수반되지 않더라도 일러스트레이션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