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지리/한국지리의 개요/한국의 자원과 산업/한국의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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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원[편집]

韓國-資源

‘어떤 목적을 위해 자연계(自然界)에서 얻고 생산되는 물질’을 자원(resources)이라 한다. 자원의 내용은 시대·장소에 따라서 달라진다. 우라늄광이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그러나 과거에는 한낱 자연계에 존재했던 광물에 불과하였으며, 인류가 우라늄을 자원으로 구득하는 일은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자원은 인간이 생산활동을 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물적 원천, 예를 들면 제철공업의 원료가 되는 철광석이나 석탄 및 석회석(石灰石), 또는 제철을 할 때 있어야 할 에너지원인 전력을 생산하는 수력(水力) 등을 자원으로 취급한다. 이 외에도 경제조직 등을 자원에 포함시키는 수도 있다.이렇게 보면 자원의 종류는 무한하게 많다. 그래서 자원은 여러 가지로 분류가 된다. 자원은 분류방법에 따라서 천연·인공 자원과, 지상·지하자원 및 동물·식물·광물 자원 등과 같이 여러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사람이나 토지 자체를 인적 자원·토지 자원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화학 공업의 발전에 따라서 공기·물 자체도 자원으로서의 역할이 높아져 자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미국의 ‘국가자원위원회’에서는 이상과 같은 자원 외에도 그 범위를 넓혀서 공장·농장 등의 생산시설, 사회제도와 조직, 국민의 의지·건강·관습·종교까지도 자원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의 농업자원[편집]

-農業資源

우리나라의 농업에 있어서 가장 곤란한 것은 경지(耕地)가 좁은 점이다. 그러한 관계로 우리나라는 경지의 확장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 왔다. 산지를 깎아서 산복(山腹)까지 계단 경작을 하는 한편, 간척으로 농지를 넓히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급진적인 공업 발전과 사회 간접산업의 진척이 있었지만 농토의 감소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1960년대 초기까지에는 한국의 농업은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후 국내의 공업이 크게 발달하였고, 철도망과 도로망이 형성됨에 따라 농경지가 점차로 감소 현상을 나타내고, 1일생활권의 형성에 따라 근교농업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상품 작물과 고급 채소의 재배가 발달하였다.쌀 ― 쌀은 조선시대 이후 우리나라의 농촌에서는 소위 환금농물(換金農物)이라고 부르는 중요한 상품 농산물이었으나 오늘날까지 이 상태는 크게 변동이 없다. 다만 1977 미곡 연도 이후 비로소 쌀의 자급률이 103%에 이르러 정부에서 미곡 증산책을 완화하였으며, 특용작물 재배 농가가 늘어남에 따라 쌀의 환금농물로서의 기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맥류(麥類) ― 농가의 자급용인 보리(大麥), 쌀보리(裸麥) 등의 맥류는 경지면적이 감소추세에 있다.목화(棉)·삼(大麻)·모시(苧麻) ― 이들 공업원료작물은 외국 농업과의 경쟁, 또는 다른 화학 공업에 의한 대용품과의 경쟁으로 한국의 목화·삼·모시의 생산량은 감소되어 가고 있다.채소류는 마늘·양념류의 재배증가로 총 재배면적이 1998년 대비 4.3% 늘었으나 김장배추 등의 흉작으로 생산량은 0.1% 감소된 997만t이 생산되었다. 무는 재배면적이 1998년 대비 6.2% 줄고 생산량도 12.0% 감소한 140만 9,000t이 생산되었다. 배추는 재배면적이 1998년보다 4.5% 감소되었고 생산량도 11.2% 감소된 246만 8,000t이 생산되었다.고추는 재배면적이 7만 5,574㏊로 전년보다 15.7% 증가되었고, 생산량은 21만 5,382t으로 46.3%가 증가되었다. 마늘은 재배면적이 4만 2,416㏊로 전년보다 13.6% 증가되었으나 작황과 기상여건 호조로 1998년보다 22.8% 증가한 48만 3,778t이 생산되었다.양파는 재배면적이 1만 6,131㏊로 전년보다 8.9% 늘어났으나 작황이 전년보다 다소 부진하여 93만 5,828t이 생산되어 7.3% 증가에 그쳤다. 기타 채소는 전년보다 6.4% 증가한 445만 8,000t이 생산되었다.

한국의 임산자원[편집]

-林産資源

우리나라 국토면적의 약 70%는 임야(林野)로 되어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의 생활자재는 임산자원에서 얻어지는 비율이 높았다. 한국의 가옥은 대체로 재목(材木)과 종이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활연료 또한 장작, 나뭇가지, 숯 등을 주로 이용하여 산림황폐에 주요인이 되었다.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산업화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연탄, 석유, 가스, 전기가 대체 연료로 널리 보급되어 더 이상 산림파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산림을 가꾸고 보호해야 할 이유는 단순히 자원보호나 환경보호 측면에서만이 아니고 벼농사(稻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하천의 유지 측면에서도 임산자원의 보전은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임산자원이 고갈되어 가는 근거로서 삼림의 연간 총벌채량(年間總伐採量)이 연간 생장량(年間生長量)보다도 많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총생장량의 숫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숫자를 얻기 힘든 관계로 임산자원의 보호 유지에 큰 문제를 던져 주고 있다.어떻든 한국의 임산자원은 광복과 전란 등 행정상의 공백기에 이르러 남벌될 대로 남벌되어 도로·철도 연변과 취락 가까이에 있는 산림은 거의 황폐 상태에 이르렀다. 5·16군사정변에 의한 군사정부가 수립되면서부터 산림정책에 일대 혁신을 일으켜 산림녹화, 입산금지, 1벌 10식(一伐十植) 등의 녹화정책과 아울러, 연료를 연탄과 유류로 대체한 데서 우리나라의 산림은 비약적으로 녹화되었다.

<李 泳 決>

한국의 수산자원[편집]

-水産資源

예부터 한국의 수산자원은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동해(東海)의 대구·명태·청어·꽁치·전갱이·오징어, 황해(黃海)의 조기·넙치·가자미, 남해(南海)의 멸치·고등어·갈치·방어 등과 김·우뭇가사리 등의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의 수산 자원은 크게 고갈되었다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우리나라 어업경영(漁業經營)은 소규모이고 수노동(手勞動)에 의한 연안어업(沿岸漁業) 중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어업은 농업이나 광업과 마찬가지로 노동 생산성이 극히 낮은 영세어업이 주류를 이룬다. 자본이나 시설이 빈약한 많은 영세어민이 연안어업에 진출하여 남획을 일삼게 되었다. 이 결과로 자연적인 원인도 있으나 우리나라 연안의 수산자원은 감소 일로에 있고, 청어·고래 등은 생산량이 격감되어 가고 있으며 정어리는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이에 따라 정부는 어선건조(漁船建造)·어항수축(漁港修築) 등과 같은 생산시설 확충과 원양어업의 육성 및 수산물 수출진흥 등의 수산진흥 시책으로 어가(漁家)의 소득 증대와 어종 보호에 힘쓰고 있다.해역별(海域別) 어업생산량의 추이를 보면 일부 연안어업이 다소의 부진을 보였을 뿐 전반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 증산되었다. 이 중에서도 원양어업은 매년 놀랄 만큼 성장을 보였고, 이보다 성장률은 낮으나 근해어업·양식어업도 성장되었다. 이에 따라 어업구조 면에서 원양어업의 생산비중이 계속 높아져 가고 있는 반면 연안어업의 비중은 계속 감소되어 가고 있다.한편 해양수산부는 연근해어업의 업종을 재편하고, 조업구역을 조정하는 등 연근해 자원구조에 맞게 연근해 어업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어획량관리중심체제로 전환하여 자율적인 어업관리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한·일어업협정 체결[편집]

韓日漁業協定締結

1994년 11월 바다의 질서를 정한 유엔해양법 협약의 발효로 바다 관할권이 12해리에서 200해리까지 확대되었으나 한·일간의 거리가 400해리가 채 되지 않아 바다 경계선을 별도로 정해야 한다.1998년 1월 23일 일본측이 일방적으로 기존 어업협정을 파기했다. 그러자 한·일 두 나라는 새로운 상황에 맞게 영토문제와는 상관없는 어업협정을 우선 체결하기로 해 17차례에 걸친 실무자회의와 고위급 회담을 거쳐 1998년 9월 25일 기본원칙에 합의했다.또한 상대국 EEZ(배타적 경제수역)의 입어조건에 대해서도 1999년 2월 5일 양국 수산당국자간 합의로 완전타결됐으나 1999년 2월 5일 합의된 실무협상에서 발생한 쌍끌이 어업 누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9년 3월 8일부터 10일간 일본 도쿄에서 추가협상을 진행, 1999년 3월 17일 쌍끌이어업, 복어채낚기, 갈치채낚기 등의 입어척수(총 137척)를 추가로 확보했다.

한국의 지하자원[편집]

-地下資源

자연(自然)은 사회상태에 따라 다른 뜻을 갖는 것과 같이 자원도 과학의 발달, 국가 사회의 필요 등에 따라 다른 가치를 지닌다.우리나라 각지에 거의 무진장하게 분포되어 있는 석회암(石灰岩)은 쓸모없는 암석에 지나지 않았으나 시멘트 공업과 석회공업(石灰工業)의 발달에 따라서 오늘날에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자원으로 등장하였다.또한 텅스텐(重石)도 비슷한 환경하에 있다. 텅스텐은 특수강, 고속도강(高速度鋼) 제조 등에 불가결의 광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수요량이 없고, 대부분의 텅스텐광을 미국·일본 등으로 수출하였다. 즉 군사적인 수요(需要)가 있어야 하고, 우리나라는 텅스텐광에 관한 한 선진 각국의 수요 여하에 따라 좌우되어 온 형편이다.우리나라는 국내시장이 좁고, 대부분을 수출시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외국의 수요 감소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나라에 풍부한 텅스텐의 생산량과 수출량은 급격히 감소되었다.한편 함경북도 무산(茂山)의 철산은 그 매장량으로 보아 아시아 최대급의 철산의 하나이다. 즉 매장량이 11억t이나 되는 자철광의 철산이다. 그러나 이 철광은 38% 내의 빈광이기 때문에 비교적 일찍 발견되었으면서도 개발에 착수하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빈광처리법(貧鑛處理法)의 발달과 세계적인 철강(鐵鋼) 수요의 격증에 따라 1935년부터 무산 철산은 개발을 보게 되었다. 특히 무산 철산은 자력선광(磁力選鑛)을 거쳐 청진으로 수송된 후에 제철되었으며 상당량의 철광석은 선광을 거쳐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오늘날에는 청진제철소 외에 무산 제철소에서 제철된다.해수 중에는 극히 미량이기는 하나 금(金)이 함유되어 있으며 전기분해에 의하여 이를 채취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채금하는 데는 막대한 경비를 요하므로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이와 같이 자원이라 하여도 사회적 수요가 격증하고 기술이 진전됨에 따라 비로소 지하자원으로 개발되는 것이며 수요량이 감소되면 지하자원의 개발도 따라서 줄어든다.또한, 자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기술은 일반적으로는 큰 의의가 없다. 기술이 있어도 막대한 경비를 요하면 이미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잃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원이라는 의의를 부여하는 것은 기술보다도 그 기술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경제적

여건이 되는 것이다. 동일한 자연적·기술적 조건하에 있으면서 시대와 장소를 달리함에 따라 자원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의 동력자원[편집]

-動力資源

우리나라의 태백산맥 주변에는 풍부한 양의 무연탄(無煙炭)이 매장되어 있다. 그러나 1930년경까지는 이의 개발이 거의 고려되지 못하였다. 그러던 것이 태평양 전쟁이 터져 석탄의 수요량이 늘어나면서 석탄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결과로 태백산 주변의 석탄은 일본의 기술과 자본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우리나라 제주도 남해의 해저인 제5 및 제7구(區) 수역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우리나라의 기술과 자본만으로서는 개발을 할 수가 없으므로 미국 또는 일본과 합작하여 개발에 착수하였다.그러므로 자원의 개발은 먼저 자연에 부여(賦與)되어 있어야 하며 다음에는 기술적으로 개발이 가능하여야 하고, 그리고 끝으로 경제적 조건과 부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수자원[편집]

- -水資源

우리나라는 수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국토 조건을 가졌으나 수자원(水資源)의 원천이 되는 강수 특성이 계절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 까닭에 농업을 비롯하여 발전용수나 공업용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고대부터 홍수와 한발의 악순환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면서 농업용수 개발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였다.또한 우리나라의 생활필수품인 소금·어류 등은 하천의 상류 지방으로, 곡물·임산물 등은 하류 지방으로 운반하였으며, 또 각지의 강나루터는 교통의 요지로 번성하였다. 대체로 하천의 유역 면적이 50∼60㎢ 이상의 수량이 많은 강에는 도선(渡船)이 발달한다. 그리고 나루터에는 도함(渡函)이라고 부르는 관리를 두어 수운정리를 하였다.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수차(水車)를 이용하여 왔으며, 하천에 섭이나 호박돌을 쌓아 하천의 일부를 1m가량 막아 올려 1m 내외의 낙차를 얻어 3m 내외의 직경을 갖는 수차를 회전시켜, 정곡(精穀)·제분용 물레방아의 동력으로 이용되었다.1920년부터 식량대책의 일환으로 황해안에서는 소규모의 간척 사업이 진행되었다. 1926년에는 부전강 수계 및 장진강 수계에서 각각 20만kW와 33만 4,000kW의 수력발전소가 준공되었는데 모두 수로식(水路式) 발전이었으며, 계속하여 유역변경(流域變更)에 의한 고낙차(高落差) 지점의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댐의 설계 및 시공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대규모의 수력개발이 이루어졌는데 2차대전 중에 건설된 수풍(水豊) 댐은 70만 kW의 발전 시설을 갖는 발전소로 댐의 높이는 약 100m이고 유효저수량이 76억㎥나 되었다.생활용수 공급 시설로는 1895년에 부산시 상수도 건설을 효시로 하여 해방 전까지 83개의 시읍에 상수도 시설이 있었는데 이들은 거의 하천에서 직접 취수(取水)하여 급수하는 것으로 부산시 상수도와 같이 저수지에 의한 것은 적었다.1936년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전의 격화에 따라 우리나라는 그들의 대륙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이 중시되었다. 따라서 북한지역에 대해서는 공업지대에 공업 용수를 공급하는 시설을, 남한 지역에 대하여는 식량증산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자원개발이 북한 지역에서는 수력개발(水力開發), 남한지역에서는 관개수리(灌漑水利) 사업이 주가 되었다.광복 후에는 1962년까지 치수나 이수 사업이 전재복구사업의 일환으로 외국원조와 빈약한 일반국고로 추진되었다. 그러다가 근래에는 공업화에 의한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그 기반인 동력(動力)·공업용수 확보 및 도시생활용수 수요가 증가됨에 따라 다목적댐의 건설에 중점을 두었다.그 결과, 제1차 경제개발계획 기간에 남강과 섬진강의 다목적 댐 공사를 끝냈다. 이어서 춘천 발전소가 완성되고, 5차 경제개발계획까지 의암댐·소양강 다목적댐·팔당댐이 완성되고 아산호와 남양호가 준공되었다. 이어 낙동강 안동댐·삽교호·대청댐·아산호·미호천의 3개 댐이 완성되었다. 1985년에는 충주댐이 완성되었고, 청평·삼랑진에는 양수식 발전 시설까지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87년에는 합천댐이 완성되었다.한편 밀양·횡성·용담댐 등이 완공되면 총 21억 9,150kW의 수력 에너지를 확보하게 된다.

한국의 인구[편집]

-人口

인구는 노동이나 자본과 함께 생산요소의 하나를 이룬다. 한 나라 인구수의 대소는 정치적·군사적 관점으로는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즉 어느 지역의 인구의 다소는 그 지역의 생산(과소비의 양과 관계하며 이들은 정(正)의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전쟁 때 인해전술을 쓴 것이나, 미국이나 일본이 앞을 다투어 중국에 접근하게 된 것도 중국의 12억이라는 대인구 집단을 갖는 시장이 중시되었기 때문이다.오늘날 생산기술의 발전단계에 있어서는 소인구국에서 성립시키기가 어려운 생산 부분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다시 말하여 대규모의 생산을 필요로 하는 생산 부문은, 좁은 국내 시장을 갖는 나라에서는 운영하기 어렵다.이와 같은 사정은 특히 자동차 제조업과 같은 중화학 공업이나 출판업에서 알 수 있다. 서부 유럽에 있는 나라들은 EEC를 형성하였고, 영국 자체의 영연방(英聯邦)을 구성한 까닭도 인구에 연유되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좁은 시장과 농촌의 구매력의 저조 등이 시장 형성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경제개발계획을 시행하여 농어촌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남북회담도 궁극적으로는 남북의 부전평화통일(不戰平和統一)을 전제로 하여 시작된 것이기는 하나 남북한을 합한 7,000여 만 인구가 갖는 시장, 경제력이 더 큰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남북한을 합한 인구수는 세계 전체 국가 중에서 20위 안에 든다.단지, 인구가 많음으로써 시장을 형성하는 것 외에 국민소득, 국민적 정력, 개개인의 질(학문) 등에 크게 좌우된다. 또한 사람의 육체적 조건, 주민의 기질, 지적 수준 등이 경제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인이 공상하고, 독일인이 설계하고, 미국인이 생산한다”라는 격언과 같이 민족이나 주민에 따라 기질이 다르고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우리 민족에 단결, 총력의 힘만 불러일으키면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수한 인구집단이 될 것이다.

자원의 보존[편집]

資源-保存

인류의 자원에 대한 욕구가 인구의 증가와 문화의 진전(進展)에 따라 무한하게 커짐으로써 자연계(自然界)에서 얻으려는 물자의 양도 무한하게 커졌다.그러나 천연자원의 부존은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구(地球)상에 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고, 지역에 따라 그 양(量)에 많은 차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석유(石油)·우라늄 등과 같이 극단적으로 특정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자원이면서도 근대 공업이나 인간생활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를 구득하려는 욕망을 크게 자극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이 자원을 둘러싸고 국경 문제, 영토 문제를 일으키고, 이른바 자원전쟁(資源戰爭)을 일으킨다. 에스파냐가 지국령 사하라 지역을 포기하게 된 동기도 풍부한 인광석(燐鑛石)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열강의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 이 구에스파냐령 사하라를 둘러싸고 인접한 모로코·알제리·모리타니 등이 서로 병합하려고 지금까지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일이나, 또는 해저에 유전이 있을 가망성이 크므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해저 공동개발 계획에 중국(中國)이 간섭하는 것도 이의 보기가 된다.식물자원과 동물자원은 그 자체가 번식력을 갖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실제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산림자원은 한 동안 그 축적량이 크게 감소되었다가 근년에는 그 축적량이 증대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입산금지와 남벌(濫伐)·도벌(盜伐)을 막는 일을 철저히 하고, 자연보호에 힘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삼림자원은 고갈 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실정이다.문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주택·공장·도로 등에 빼앗기는 토지 때문에 삼림면적이 감소되는 것이며, 또 토양의 황폐로 인한 삼림의 파괴가 원인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벌채에 의한 삼림자원의 감소를 억제하기 위하여 각 지역에 인공림의 조성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인공림의 조성에 따라 식물자원은 재생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것이 실증되었다. 그러나 삼림의 재생은 일정한 시간적 경과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벌채와 재생과의 사이에는 시간적·양적인 밸런스가 있어야 한다. 결국 과벌(過伐)함으로써 삼림자원이 고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동물자원도 남획 등으로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대어장(大漁場)이 남획으로 괴멸 직전에 이른 것도 있고, 어느 종류의 유용동물은 멸종한 것도 있다. 우리나라 동해안의 정어리는 자연적인 원인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원인인지 우리나라 근해에 나타나지 않는다.베링해나 남빙양(南氷洋) 등에서는 연어·송어·고래 등과 같이 국제협정을 맺어 포획을 제한함으로써 이들 수산동물의 보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였다. 또한 목축업의 발달과 사육 방법의 개량·시설의 확장 등으로 동물자원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토지자원(土地資源)은 그 자체는 감모를 회복시키는 힘이 없으나 인력으로 토지자원을 재생시킬 수 있는 자원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농산물을 계속 재배함으로써 감모된 지력(地力)을 회복시키게 되었다. 또 윤작(輪作)이나 이농(移農) 등으로 지력의 회복을 도모하고,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관개(灌漑)·수리(水利)시설의 발달과 화학비료의 증산 등으로 지력은 재생산자원으로 간주되었다.수자원(水資源)은 대기(大氣)를 통하여 순환하는 동안에 거의 무진장한 자원으로 간주되었다.오늘날처럼 자원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국가간의 자원에 대한 자극이 커지고 전쟁의 우려는 한층 증대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세계의 원유 매장량이 점점 적어지고, 반대로 석유에 대한 수요량이 급증하는 과정에서는 중동 지방(中東地方)의 원유를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관광자원(觀光資源)도 각종 산업에 의해 아름다운 풍경이 파괴되고, 삼림(森林)이 남벌되고, 수질(水質) 등이 오염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근래 세계 각국이 관광자원의 보전과 개발에 주력함으로써 새로운 관광지(觀光地)가 개발되어 가고 있다.이상과 같은 여러 자원들이 국내법(國內法)은 물론, 국제협약(國際協約) 등을 맺어서 천연자원이 보전되고 개발되어 가고 있는 것은 퍽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