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경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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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전보가 온 것이 해진 무렵이여서 부득이 밤 연한 시차를 탈수밖에 없었다. 급행이면 다섯시간도 안걸리는데를 이 차는 일곱시간 이상을 잡아 먹고 평양에는 해가 물끈 솟아 올을때에야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는 시골은 평양서도 일백 육십리나 자동차로 들어가는 성천이라는 적은 고을이다. 이차에서 내려서 성천가는 척차를 얻어 타면 오정전에 목적지에 이를수 가있다. 고단은 하지만 평양서 하룻밤 묵지 않는 것이 편리는 하다. 어데 냉면집에 들려서 어북장국이나 한그릇 사 먹고 시간 되기를 기대려서 자동차에 올르리가 생각하는 것이다.

짐이랄 것은 없지만은 적은 가방이 하나 있는것을, 마침 아이들도 모두 잠이 들었으니 정거장까지 배웅내고 온다고 안해는 앞서서 빽을 들고 사회동집을 나섰다. 요즘 승객이 많은 때에 둘이서 양편쪽문으로 갈라서 올라타야 한자리 길수에 올것이 아니냐고, 굳이 말리는 내 말에 안해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거리에 나서니까 마침 손님을 내려 놓고 돌아가는 빈 택씨가 있었다. 안해와 나는 그것을 잡아 탔다.

젊은이의 죽엄과는 달리 팔순을 지낸분의 상사인지라, 택씨에오라 잠시 덤덤히 앉어 있던 안해는 곧 이런 말을 나에게 건널수 있었다.

「이번엔 또 어델 구경하실려오」

일년 가도록 벤벤한 여행도 못하고 사철 집에만 백혀있는 나다. 지도로 보면 조선이 그리 큰 지역은 아닌데 내 발이 이른곳은 얼마도 안된다. 이름있는 명승지나 고적지도 못가 본곳이 가 본곳 보다도 훨씬 많다. 일년에 몇번씩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것, 그것은 양친과 일가친척이 살고 있는 고향을 찾을때 분이다. 이런일 저런일로 한해에 한두 차레식은 고향을 다녀 오게 된다. 언제나 다니는 일정한 코─스, 경성발, 평양발, 성천착, 기차에서 자동차, 그리고 이것을 꺼꾸로, 한것. 사오년동안 이것을 되푸리하다나니까 약삭바른 궁리가 솟아났다. 이 피할수없는 단조로운 여행 코─스에다 적다란 곁 가장자리를 붙여놓고 조곰식 나의 여행을 윤택한것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다. 내 고향을 중심으로 해서, 온천, 명산고찰, 역사적고적, 고아상, 공업지대, 이름난 고을, 그런것을 한번 여행에 한고장식 구경하고 온다. 묘향산, 낙낭고적, 고구려고적, 강서고분, 숭로리세멘트, 진남포항구, 겸이포제련, 사동탄광, 양덕온천, 동등이 스캣뜔에 들어있다. 평안도가 끝나면 철도연선을 따라 황해도, 함경도의 순서로 정양과 박람을 겸해서 형편따라 한번 귀성에 한군데씩 고명깜으로 돌아 다니려 하는것이다. 벌써 몇차례 실행해 보았다. 나같은 가난한 사람으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고 가끔 생각해 보군 하였다. 이번행차만은 예측쪼차 못했던 조모상이 원인된 갑짝 여행이고 보니 그런 생각을 갖어볼 여가도 없었던 것인데, 안해가 그것을 택씨 안에서 뚱 그처 놓은것이다.

「글쎄」

하고, 이런 기회마저 놓치지 않고 이용할려는 안해의 타산이 재미로워서, 나는 한참 생각해 보다가,

「광산구경이나 하구 올까」

하고 대답하였다. 안해는 차가 태평동을 지내는 것을 힐끗 차창으로 내어다 보고는,

「어느 광산이요」

하고 재처 묻는다.

「광산이라면 회창(檜倉) 금광이지, 가까운 곳으로 게보다 더 큰데가 있소」

안해는 평안도태생이 아니어서 내 고향의 부근 지리에는 결코 소상한 편이 아니었다. 회창금광 이야기도 몇차례 들었기는 하였을것을, 그저 귓등으로 플리면서 들었었던지, 가만히 속으로 「회창금광」하고 뇌여보고 있었다.

「고을서 한 백리가지오. 산금액으로 보나 근대적시설루 보나 대유동광산의 대음은 간다든걸」

「그렇게 큰거얘요」

하고 안해는 깜짝 놀랜다.

「광부를 이천명이나 쓴다든데」

나는 귀동냥으로 얻어 들었던것을 차가 정거장앞에 이를때까지 늘어 놓아서 안해에게 들려 주었다.

차는 연착이 되는지 푸랫트?폼에 들어 가서도 우리는 가방을 놓고 멍청하니 한참동안이나 서 있었다. 안해는 귤을 한구덕 샀다.

「식당두 잠것을텐데 목이 부주주 할때 목축음이래두 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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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단녀 오실려믄 몇일 더 지체하시겠군요」

「갔다 그 이튼날 올테니까 하루나 이틀 상관이지」

「장레 치르군 니어 떠나실려우」

「삼우제는 보구 떠나야 할껄」

「이럭 저럭 일주일은 걸리겠군요」

「그렇게는 되겠지오」

열차가 폼에 들어 왔다. 이리 저리 몰리는 승객의 물결우으로 눈을 돌리고야 비로소 차안이 몹시 혼잡할것을 다시 깨닫는다. 나는 군중에 휩쓸리어 허둥지둥 출입구쪽으로 몰려 가서 몸을 부벼 꽂고 내리는 손님이 끝나기를 안타까히 기대리고 있는데, 안해는 잠시동안에 쫓아 오더니,

「자리 하나 잡았어요」

하고 나를 부른다. 나는 그의 신속한데 놀랬었다. 차창밑으로 찾아 단니다가 안에 서있는 학생을 부뜰고 한자리 부탁했다는 것이다. 가방은 벌써 그학생의 손을 거쳐서 내가 앉을 자리를 직히고 있을것이라한다. 안해는 자리를 잡은것은 못내 기뻐하였다. 나는 안해의 손에서 귤구럭을 받아들고 폼에 섰다가 벨이 울릴때에야 안해와 갈라저서 승강구에 올랐다. 안해의 그림자가 히미해 질때까지 나는 승강구에 서 있었다.

차안으로 들어 갈려고 하니까 문이 메이도록 아직도 사람의 내왕이 빈번하였다. 자리를 잡지 못한 여객이 보꾸러미를 끼고 이방 저방 빔 자리를 찾어서 헤메이는 것이다. 나는 세면소안에 잠시 길을 비켰다가 내왕이 드물어진 뒤에야 한으로 들어 갔다. 이쪽 저쪽 내 가방이 놓인 곳을 눈녁여 살피면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짐과. 마주 오는 사람과, 의자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사람들로 하여, 나의 보행은 여러 차레나 방해를 입었으나, 중턱쯤 가서 나는 이내 내가방을 발견할수 있었다. 가방 옆에는 허줄한 장사치같은 사람이 앉어있고, 맞은 자리에도 낡은 스?파외 국민복을 입은 중년배와 늙은 부인네가 자리잡고 있어서, 내 좌석을 잡어 주었다는 학생이 동석이 아닌것을 곧 알수가 있었는데, 바로 내 가방이 놓인 의자에 궁둥이를 기대고, 완강하게 생긴 허름한 부인네 하나가 아이를 안고 젖을 멕이다가, 내가 오니까 슬몃이 자리를 비끼고 건넌쪽으로 몸을 옮기는것이 보이였다. 그때에 건너쪽 창문가까이 앉었던 학생이 얼굴을 내어 대이며,

「그 보스톤?빽의 주인이시오」

하고 나에게 물었다. 자리를 잡어 준 학생이 이분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이내 소리 난 편으로 낯을 돌리고,

「네, 자리를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모자를 벗어서 인사를 하였다. 동긔방학은 아직 이를터인데, 무슨 일이 생겨서 귀향하는 것일까, 산구 (山口) 고상 (高商)의 교표를 단추로한 수물안짝의 그 학생은 오히려 부끄러움을 얼굴에 나타내이며, 무어라고 혼잣말을 입속으로 중얼중얼 하였다. 「천만에말슴입니다」를 또롯히 내놓고 하지 못하는것이, 어쩐지 나의 어린 시절처럼 느껴져서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외투를 벗고, 가방을 선반에 얹고, 그리고 귤구럭을 무릎옆에 간직하면서 의자에 앉을수가 있었다. 차는 벌써 다음 정거장에 이르렀을는지 덜컹덜컹 두어번 하드니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잠시 좌석을 둘러보고, 그들의 얼굴에 기름때와 피곤의 빛이 흐르는것으로 미루어 그들이 경성이남에서 차에올은 손님이라는걸 알수가 있었고, 또 그들이 하결같이 잠을 청하고 있는 것도 곧 이해할수가 있었다. 나도 가치 눈을 붙이고 잠을 이룬채 육칠시간을 보낼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눈을 붙여도 잠은 이내 오지않았다. 중기가 끓어서 방안은 더웠다. 더우면 공기는 한층 더 혼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안해가 사준 귤을 생각하고 그것을 연겊어두 알을 까먹었다. 다섯알이 한구럭이여서, 남어서 세알을 옆구리에 창겨두고 나는다시 눈을 붙이었다. 조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시체를 모신 방안과 그옆에 앉어 있는 상제들과, 방애 쭈루루니 쭈꾸리고 있었을 복인들과, 그리고 방안에 그득히 찻을 밤경꾼의 웅성대는 모양이 멍하니 머리에 떠올랐다. 밤경꾼들은 화루와 투전들을 하는것이 고향의 습속이다. 뜰안에는 베수건을 쓴 부인네들이 부엌과 광과 움과의 사이를 무엇을 손에 든채 바뿌게 내왕하는것이 보이고, 토방과 댓돌에는 집신과 구두와 고무신의 혼잡 혼집, 대문에 매여달린 커다란 초롱불, 구석 구석이 임시로 가설해 놓은 휘황한 전둥의 광촉, 은은히 들리는 곡성, 부인네들의 높다란 통곡성. 뭉게 뭉게 떠올으는 환상을 뿌리치듯이 하고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 아싸 내 의자에 허리를 기대고 섰든 때 묻은 옷을입은 부인네가 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지못하고 잠시동안 이 부인네를 바라보았다.

부인네는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었다. 하나는 대여섯할 났을 사내 아이로 낡은 메리야쓰 내복만 입고 저편을 향하여 어머니의 치마주름에 매달려 섰다. 한 아이는 아직도 젖 붙이 어린것으로 어머니의 가슴에 부축되어서 혼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머리까락이 노오랗고 털 밑에는 소똥이 깔려있다. 인중께는 까만 콧딱지가 말라붙어 있고, 콧물이 흐르는 자죽만 밝았다. 부인네는 귤껍질을 머리밧 우에다 올려놓고, 깊숙이 들어간 눈을 딱 바루 떠서 맞은편 선반있는 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섰다. 제 물건을 직히기 위하여 선반을 뚫어지게 바라 보는것이 아니라, 눈둘곳이 없어서 그대로 노한 얼굴로 한군데만을 바라보고 있는 표정이었다. 광대뼈가 쑥 나오고, 젖가슴께는 때묻은 융 속옷이 밀려 올라와서 아이가 빨다놓은 젖통께를 가리우고 있었다. 오줌자리가 누렇게 보이는 요로 아이와 허리를 감고 퍼런 물을드린 띠개로 꾹 중허리를 자라매었다. 희색치마가 말려 올라가서 그밑으로 분홍바지가 보이고 몇군데씩 기운 고무신이 커다란 발을 싸고 있다. 사나이 아이가,

「나 배 고파, 흐응」

하면서 홱 얼굴을 이편으로 돌렸다. 양손에 뀰껍질을 들고 바른손에 든것은 연성 입으로 질긴 질신 씹고 있었다. 나는 힐끗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대로 노한 표정, 뚜우하게 내밀고있는 두툼한 입술, 그것은 다물은채 아뭇말도 대꾸하랴 하진 않었다. 눈도 그냥 선반을 바라본채. 나는 그외 머리에 올러앉은 귤껍질을 보았다. 머리가 아픈 것일까. 조곰이래도 시원해 질까하여 향기로운 귤껍질을 머리에다 이고 섰는것일까. 나는 이내 내 귤을 생각하였다. 내가 눈을 무릎밑으로 떨어 트렸을때 아이의 손에 들린 귤껍질은 조곰 아까 내가 배껴 버린 껍질인것을 나는 곧 지각할수가 있었다. 일순, 나는 부끄러움이 홱 내 얼굴에 치밭여 올으는것을 느끼고, 내 시야로부터 그들의 모자를 몰아 내일 작정으로 얼른 눈을 감었다. 눈을 감은 뒤에도 어린 아이의 먹을것을 졸르는 소리는 끊지지 않고 내 귀를 울렸다.

어대로 가는 부인넬까. 만주나북지로 이민하는 부인네일까. 이런 행장을 한 부인네를 보고 사람들이 곧 연상하듯이 나도 그런것을 생각해 보았다. 어데서 탄분일까. 서울이남, 호남이나 영남에서 탄것이라면 여태 자리를 잡지 못했을리 없을것 같다. 서울서 탄것일까. 그러나 서울이라면 사나이 아이의 양복을 언제 베껴놓을 겨를이 있었을 것인가. 그리고 완강한 몸임에도 불고하고 그의 육체의 몸가늠에서 흐르는 피로색, 아이업은 오대기가 흩어진 품, ―시방 금시 차에 올은 승객의 차림차리나 몸매누시로 볼수는 없을것 같았다. 역시 남쪽 어느 작다란 정거장으로부터 북지나 만주로 가있는 남편을 찾어서 길을 떠났던 것인데, 만원된 차중을 서울 까지 서서 오다가, 승객이 교대되는 서울서도 짐과 어린놈들때문에 민첩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대로 장승처럼 저 모양으로 차가운데 서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을것 같었다. 혹시 내가 앉어있는 이자리를 겨누었다가 학생이 날래게 가방을 놓은때문에 그만 자리를 빼앗겨버리고 그러자니 다시 몸을 기동하기가 거북해서 그만 아주 영영 자리를 구해 내지못한것이나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들 모자의 좌석을 앗은것은 마치 나 자신인것처럼 느껴져서 이들의 거동에 대해서 나는 어떤 책임을 지는것 같은 중압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내가 그들 대신으로 선다는것도 학생시절의 순정이가면 몰라도 어쩐지 자연스럽지 않고 게면쩍게까지 생각되는 것이다. 나는 먹다남은 귤을 아이에게 줄려고 생각했으나 남들이 모는 앞에서 남에게 먹을것을 주는것도 평상시의 나로서는 부그러움없이 실행치못하는 행동이었다. 나는 가만히 눈을떴다. 어머니는 아까 모양대로 나무토막처럼 서있다. 어린놈과 내눈이 마주쳤다. 내 눈낄을 어리놈은 재바르게 눈치채었다. 그는 가만이 어머니의 치마를 놓고 옆으로 걸어왔다. 아모 눈에도 띠이지 않게 나는 그의손에 귤규럭을 쥐여주고 이내 천연히 몸을 고친채 눈을 감아버렷다. 머리를 뒤에다 실리고 오래전부터 잠이 들은 것처럼. 그러나 아이가 다시 어머니의 치마밑으로 갔을 무렵이었다.

「웨 남한테 먹을걸 달락하노」

나의 귀에 분명히 들려온것은 「달락하노」 뿐으로 「웨 남한테먹을것」 운운은 그의 어조러서 내가 마음대로 추상 한것이다. 하여튼 나는 청각을 맑게 가시고 귀를 기우리지 않을수는 없었다. 다행히 다음안은 계속해서 들리지 않었고 내가 이윽고 눈을 가늘게 떠서 부인네를 바라 보았을때엔 그는 역시 언제나의 모양대로 뚝 버티고 선반있는 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에 잠이 들어서 얼마나 수면을 취하였는지, 아이의 돌라대는 소리를 자장가처럽 듣다가 내가 펄뜻 눈을 뜨고 부인네를 건너다 보았을때, 그들은 아직도 자리를 집지 못하고 그대로 서있었다. 시계를 보니까 개성도 신막도 지냈을 시간이었다. 몸을 고쳐 앉으면서 차안을 둘러보니까 중도에서 차에 올은 사람들인지 자리가 없어서 서있는 승객이 서너사람 더 늘었었다. 업은 아이는 젖을 빨고 있고, 그동안에 귤은 모다 먹어버렸는지 사내아이는 소리를 높여서 먹을것을 졸랐다. 과자라도 있었으면 주고 싶었으나 담배밖에 입에 넣을것이라곤 아무것도 가지고있지 못한 내다. 그러고있는데 어머니는 아이를 돌려업고 두어발자국 저편으로 걸어 가드니 허리를 굽히었다. 그곳에 그의 보꾸러미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싼것인지 알수없으나 커다란 바가지는 한짝 밖으로 업히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 보퉁이에서 벤또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 벤또속에서 꼬드라진 밥 한덩이와 김치무 한토막을 꺼내서 보채는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그것까지 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뒤에 그것마저 먹어버린 것인지 이번에는 물을찾고는 다시 어린놈을 달래는 고리가 또 다시 나의 귀를 시끄럽게 하였다.

「물이사 이 밤중에 어데서 나노」

어머니의 핀잔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한참뒤에 아이를 앞세우고 세면소있는 편으로 나가는 여인네의 몸이 내 어깨에 스치는것을 난느 지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저렇게 하면서 어떻게 만주나 북자까지 갈수 있을것인가」

생각하면 하나의 방관자에 지내지 않는 나의 마음도 그대로 망연할뿐이었다. 그러나 날이 밝고 차가 평양가까히 와서였다. 모두 평양서 내릴 준비들을 하고 있는데 부인네는 아이에게 능글어진 양복을 입히면서 앞자리에 앉은 사나이에게,

「대음이 평양이지오? 노리까에 할락하믄 한참 기대리는기오」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역시 평양에서 내리는 손이었던가. 평양선이라면 어데로 가는 것일까. 순천서 갈라저서 개천, 희천으로 만포진까지 들어가는것이 있으니, 그는 역시 노동을 팔려 초산, 북진같은 국경지대에 가있는 남편을 찾아 멀리 길을 떠난 부인네였던가. 내가 평양서 내릴때에 그도 보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두 아이를 부축해 돌보면서 저편 문있는대로 나가고 있는것이 보였으나 내 일이 바뻐서 다시 뒤돌아 보지도 못하고 나는 총총히 푸랫트?폼을 나와 버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