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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회창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성복날 장레를 치르고 삼우제까지 보고는 나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상제가 일곱명에 복인은 수십명이 넘는 장례인지라, 예상했던것 보다 나는 자유로운 행동을 취할수가 있었다. 큰댁에서 상을 당하였기 때문에 나는 침식은 언제나 내 잡에 와서 하였다. 별로히 고단할것도 없어서 삼우제 본 이튼날 작정대로 나는 회창으로 광산구경을 떠나기로 하였다.

회창길은 처음이었다. 고을서 백리가량 남쪽으로 산골자기를 찾어 들어간다고 한다. 아홉시에 자동차가 떠나는데 언제나 만원이라고 해서 나는 차부에까지 일찌감치 올라가 시간을 기대렸다. 사돈뻘되는 사람이 그곳 면장으로 있는데, 그의 소개를 얻으면 광산의 기계시설을 소상히 구경시켜 줄것 이라고 집을 떠날때에 아버지는 그 분을 찾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그밖에도 누구 누구 고을서 나가 사는 사람들의 성명을 들으시고는 잊지말고 한사람 한사람 찾아보고 오라 말씀하셨다.

「말조심하구 산금액이나 그건건 모두 방첩에 걸린런디 모르니 수텁같은데 애여 적디 말아라」

그러한 주의까지도 잊으시지 않었다. 대리점에 들어서니까 회창갈 운전수나 대리점주임이나 모두 아는 사람이었다.

「이번 할머니 돌아가신데 왔꾸만」

하고 그들은 반갑게 인사한다. 그러면 회창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들은 거긴 무슨 볼일이 있느냐고 한결같이 물었다. 광산구경 간다니깐,

「웅 광산에. 법정히 크디, 세괏게 채레 놨디」

나와 소학교쩍 동창인 대리점주임은 사투리로 그러한 말을 하였고, 그러나 그때에 전화가 찌르릉 울려와서 책상옆에 붙어서 계산서를 정리하든 여자차장에게,

「너 던화 좀 받아라」

하고 턱으로 전화통을 가르켰다. 곤색 제복을 입은 차장은 전화통으로 가더니 잠시동안에 전화를 끝마추고 돌아와서,

「경찰서에서 한사람 간대요」

하고 말한다. 그 말에 말문이 열린듯이,

「참 광산사고는 어떻게 됐나. 마저 죽었나, 살아날 가망이 있다나」

하고 우리들 보다는 소학교의 하급생이든 운전수에게 묻는다. 잘 피지 않은 날로를 부저까락으로 쑤시고있던 운전수는 낯을 들면서,

「하나는 즉사하구 셋은 둥상, 넷은 경상인데, 경상은 그뒤 별일이 없구 둥상은 구하기 힘들같다구 함데다. 경찰서에서두 그것때문에 아마 도사 나가갔디오」

머리를 맨숭하게 깎고 몸집이 거창한 운전수는 작업복 밑바지에서 장갑을 꺼내끼면서 아무런 수식도 없이 제 쟁긴 모양처럼 둥퉁하게 지꺼리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그적께 오전에 땅속 오십예돌 되는 항내에서 낙반(落盤)이 되어 착압기를 쓰든 넷은 즉사 혹은 중상을 입고 그옆에서 곡광이질을 하든 넷은 경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하작업에서는 항용 일어 나는 일이지만 근대적시절을 자랑하는 큰 광산에서도 그런 사고가 발생하는가 생각하면 사람의 생명과 그것을 걸고 지하 몇십척에서 채광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의 생활에 대해서 역시 깊은 감동이 가지 않을수 없는것이었다.

그러자, 이내 시간이 되여서 우리는 차에 올랐다. 앞자리가 비어서 나는 문옆에 안면있는 세무서직원과 함께 나라니 앉고, 경찰서에서 간다든 손님은 경부보인데 나와는 지면이 없는 사람으로 가운데쯤 자리를 정하고 앉었다. 동구앞을 나올때까지 차안은 두어자리 비인채로여서 이럴바엔 일부러 대리점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신작노에 나서니까 세넷씩 뭉켜섰다가 손을 드는이, 술막에서 새벽 해장술에 취했다가 뛰쳐나오는 패당들, 비였던 자리는 이내 꽉 차고, 틈색이에 쭈꾸리고 앉는이, 허리를 꾸푸리고 꺼끕서는이, 내가 앉은 앞은 차장석인것이 네댓사람 엉켜서 내 무릎우에 실리고 보니 앞도 옆도 보이지 않고 담배와 술에 썩은 악취만이 확 확 얼굴에 끼얹힐뿐 나는 그저 질식할뜻한 체취에 싸여서 답답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정원 이상을 태우는 이러한 관습은 휘발유절약으로 인하여 내왕회수를 주린 대음부터 어느 선로에서나 묵인되는 행사라고 하는데 정복경관이 탄 차로서 이 모양이니까 당국의 이에 대한 태도도 짐작할수 있을것이리 생각하였다. 가다가 멎어서는 태우고 내리우고 태우고 그리고 이렇게 빈번히 내리고 으로고 하는승객의 거개가 농촌분인것이 나의 눈에는 신기하였다. 십리 이십리같은것 전 같으면 조반전에 단녀 오군 하든 길이었다. 그것을 그들은 지금 오리 십리에도 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을 차에 訶?이십리같은것 전 큰 소리로 떠들기를 즐긴다. 친구끼리 오순 도순 나누어도 좋을 말을 이들은 귀먹어리 들이 이야기 하듯이 큰 소리로 떠든다. 돈 내구 이 고생을 하면서 어떤 놈이 다신 타나 봐라 하고 곧잘 떠들어 대지만 그들은 돌아 오는 길에도 이렇게 만원된 차에 꺼끔서서 운전수와 차장의 수모를 사면서 이십전 삼십전씩을 길우에 뿌려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차안이 부산하고 떠들썩하고 보니 나는 옆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눌수도 없었고 아까 얻어들은 광산사고에 대해서는 운전수나 또는 그것을 자세히 아는 분께 물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든것이 도시 그럴 경황도 없어지고 말없다. 차는 너다리라는 장거리에서 잠시 정거하였다. 조끼바람 양복쟁이 들이 두서넛 껑충 껑충 뛰어 나온다. 다행이 타는문이 내리는 분보다 적었다. 숨을 돌리고 멍청하니 앉었노라니 유리창을 누가 떵떵 뚜들긴다. 역시 소학교쩍 우인으로 여기 나와서 객주를 영업으로 하고있는 친구였다. 마침 오늘 살진 개를 하나 잡어 앉혔으니 내려서 추념하고 가라고 졸른다. 급히 단녀가야할 행차라고 백배사죄하고 겨우 술추념자리에서 삐저나왔다. 다시 차에 올을려니 나와 세무서직원이 탔던 자리에는 첫눈으로 보아 신랑신부인듯한 두 양주가 옹그리고 앉어 있었다.

「긴상 이리루 들어오시오. 두분께 자리를 양도했습니다.」

세무서직원은 저 안쪽 뒷칸대에 앉어서 어리벙벙해서 차장대에 서있는 나에게 손짓을 하였다.

신랑은 얇다란 세루 두루마기를 입고 잘 맞지도안흔 분홍색 중절모를 올려놓은 이십전의 소년이었고 신부는 초록 저고리에 남배자, 그런데 치마는 품은 낮지마를 틀림없는 베르벳도였다. 그 자색 베르벳도 치마밑에 엿뵈이는것은 해저서 두군데나 꾸여매인 꺼먼 고무신.

「어떻게된 신랑신부가 저런모양으로 반마를 합니까」

「글쎄요 요즘 무슨 고정된 풍속이 있습니까. 간편할때로 아무렇게나 하는것이겠지요」

나의 물름에 세무서 직원은 그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학생시절에 자동차로 평양을 단닐때에도 차창으로 혼례풍경은 자조 구경하였었다. 대체로 말이나 나귀를 탔었다. 때로 신랑까지도 승교를 탄것이 있었다. 옥색 명주두루마기에 모자는 그때에도 학생모나 중절모 심지언 도리우씨를 쓰는이까지 있었으나 세 두루마기는 보기 힘들었고 더구나 베루벳도는 그때에는 유행하지도 않었거니와 치마는 변함없는 홍상이었다.

신랑신부는 한 십리 더 가서 동리사람들의 영접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래도 이연히 차는 만원이어서 역시 내리고 오르고 오르고 내리는것을 게속하면서 커다란 고개를 넘어 목적하는 회창에 이르렀다. 연선의 풍경도 주마간산격으로나마 구경할수 없는 부산하고도 정신없는 백리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