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태자/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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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편집]

『허, 오늘도 비가 아니 올 모양인걸.』

신라 서울 황룡사(皇龍寺) 절 담 모퉁이 홰나무 그늘에는 노인 사오인이 모여 앉았다. 그중에 한 노인이 까만 안개 속으로 보이는 빨간 해를 보며 이렇게 한탄한 것이다.

『비가 무슨 비야.』

하고 다른 노인 하나가 무릎에서 기어 내리려는 발가숭이 어린 아이를 끌어 올리면서,

『칠월 칠석도 그대로 넘겼는데 비가 무슨 비야.』

『글쎄 말이야.』

하고 커단 새털 부채를 든 노인은 긴 수염을 내려 쓸고 휘 한숨을 쉬며,

『초저녁에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더니 그만 소식이 없고 말았어.』

『이대로 사흘만 더 가면 문내(門川)물도 마르겠다던걸.』

『문내 물이야 설마 마르겠냐마는 대궐 안 일정교(日精橋)·월정교(月精橋) 밑에는 벌써 물이 말랐다던걸.』

『안압지(雁鴨池)에도 물이 말라서 자라·거북이가 다 달아나서 요새는 우물 물을 길어 댄다는데 우물 물도 거의 말랐대여.』

『대궐 큰 우물에서 용이 올라 가 버렸다니까 물도 마를 테지…… 아무려나 큰 재변이야.』

그중에 머리카락이 눈같이 희고 너무 늙어서 허리와 등이 꼬부장한 노인 하나가 길단 눈썹 밑으로 까만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내가 근 백년을 살았지마는 근년처럼 이렇게 재변이 많은 것은 처음 보았어. 아아, 어서 죽어서 좋지 않은 모양은 압 보아야 할 터인데.』

하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황룡사 법당 있는 편을 향하여 합장 배례를 한다.

『참 영감 말씀이 옳으시오. 내가 알기에도 금상(今上)때 처럼 재변 많은 것은 처음 보았어. 글쎄 이렇게 가문적이 있었나………허, 흉한 일이어.』

하는 것은 새털 부채를 들고 파리를 날리는 점잖은 노인이다.

『아이들 말이 북문 밖 대숲에서는 지금도 밤에 바람만 불면 귀기리죽으리 귀기리죽으리 하고 응용하는 소리가 난다던걸.』

하고 이번에는 어린애 안은 노인이 무서운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하는 말이다.

『쉬———』

하고 맨 처음에 말하던 자주 옷 입은 노인이 손을 내어 부르며 말소리를 낮추어,

『그것은 작년 오월 근종(近宗)의 난이 있은 후————말하자면, 종로에서 근종과 그 삼족을 오차를 해 죽인 때부터 나는 소리어, 근종이가 죽으면서 이를 아드득 아드득 갈고 하는 말이, 저 당나귀가 나라를 망한다. 내가 죽어 혼이 되어서라도 저 당나귀를 찢어 죽이고야 말리라 ———— 이러지 않았나.』

하고 자주 옷 입은 노인은 누가 엿듣지나 어니하나 하는 듯이 시방을 둘러보더니, 안심한 듯이 어성을 좀 높이어,

『허기야 근종의 말이 옳지 아니한가. 금상이 즉위하신 뒤로 나라이 하루나 편안할 날이 있었다. 십 오년 동안에 역적 난리가 세 번이나 나고 해마다 흉년이 들어 병이 돌아 살벌이 떠……본디야 여간하시었나.

국선(國仙)으로 계실 적에야 풍채 좋고 글 잘하고 여간했으면 헌안 대왕께서 임해전(臨海殿)에서 한번 보시고 당장에 부마를 삼으시고 그리고는 곧 태자를 봉하시었겠나. 하지만 사람은 알 수 없는 일이어, 그렇게 총명하고 인방 있던 이가 어찌하면 즉위해서 삼년이 못되어서 그만 그렇게 되고 말까. 허기야 김 이손(金伊飡) 때문이지마는 다 국운이 불길해 그리하여.』

『다 국운이지.』

하고 새털 부채 든 노인은 부채를 재우 흔들며,

『그게 다 둘째마마 탓이어, 그 어른이 돌아 가시자 뒷대궐아기를 죽여, 또 금상께 독약을 드리고 예방을 하여서 이상한 병환이 나게 하여서 저렇게 귀가 길게 되시고 총명이 흐리시지 않았나 ——— 내가 다 아는 일인 걸.』

하고 자랑 삼아 말을 한다.

이때에 어디서 급히 달려 오는 말 발굽 소리가 나더니 붉은 옷 입은 이, 푸른 옷 입은 이가 말을 달려 황룡사로 들어 간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없어질 때를 기다려서 새털 부채 든 노인은,

『대궐에서 나오는데 아마 상감마마께서 위중하신가 보군. 국사(國師)를 부르시는 모양인데.』

하고 이 말에 꼬부라진 노인은 또 합장을 하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여러 노인의 눈앞에는 풍채는 좋으나 두귀가 흉헙게 길게 솟은 금상의 거동하시는 모양이 눈에 띈다. 이윽고 금빛이 번쩍번쩍하는 찬란한 가사를 등에 건 국사(國師)가 까만 칠하고 장식에 금으로 아로새긴 가마를 타고 대궐에서 나온 두 벼슬아치의 옹위를 받아 황룡사 문을 나와 대궐로 들어간다 노인들과 길가에 있던 . 백성들은 모두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고 국사의 가마가 다 지나갈 때까지 눈을 치어 들지 못한다.

대궐 안에는 상대등(上大等)·시중(侍中)·이손(伊飡)이하 만조 백관이 반렬 찾아 모이어 말없이 대내에서 나오는 소식을 기다리고, 금상마마침전에는 큰마마·버금마마 두 분과 왕자 세 분, 공주 한 분, 황룡사 중들, 시위들이 상감마마의 앓아 누우신 자리 가으로 둘러 서서 용안(龍顔)에 점점 깊어 가는 검은 기운을 보고 혹은 눈물을 씻고, 혹은 고개를 돌린다.

아직도 스물 아홉 밖에는 아니 되시었건마는 오랜 병과 근심으로 용안은 뼈만 남게 수척하시고 이상한 병으로 한 뼘이나 넘게 솟은 두 귀가 베개 위에 힘없이 놓여 있다.

상감마마는 어젯밤에 근종(近宗)이 피묻은 칼을 들고 들어 와서 두 귀를 버히는 꿈을 꾸시고 놀라신 때부터 병세가 갑자기 위중하게 되었다.

새벽에는 대궐 뒷마당에서 고구려 군사와의 백제 군사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 더욱 성상의 환후를 근심하게 되었다.

무열왕(武烈王)·문무왕(文武王) 때부터 대궐 뒷마당에서 백제 군사, 고구려 군사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 반드시 국상이 난다고 하기 때문이다. 헌안대왕께서 승하하실 때에도 백제 충신 계백(階伯)이가 칼을 들고 침전에 들어오는 꿈을 꾸시었다고 한다. 이렇게 백제와 고구려의 원통한 흔들은 백년 이백년이 되도록 스러질 줄을 모르고 기회만 있으면 신라를 괴롭게 한다.

이윽고 황룡사의 늙은 국사가 들어 왔다. 두 분 마마는 국사 앞에 합창을 하고 열 네 살, 열 세 살, 열 살의 세 왕자와 일곱 살 된 만공주(蔓公主)도 두 분 마마 모양으로 국사를 향하여 합창하였다. 눈물 머금은 여러 눈은 모두 국사에게로 몰렸다. 국사는 떠나 가려는 상감마마의 목숨을 불러 들이려면 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같이 사람들은 믿었다. 국사는 들어오는 길로 연해 합장하여,

『나무아미타불.』

을 불렀다. 열 번이나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나서는 방안에 있는 사특한 귀신을 다 몰아 내는 모양으로 장삼 소매를 두르며 방안으로 일곱 바퀴를 돌고 나서 옥체 가까이 앉았다. 상감마마는 무엇에 놀라시는 듯이 잠깐 눈을 뜨시더니 다시 감으시고 몸을 한번 떨었다. 두 분 마마께서는 놀라서 상감의 곁으로 오시었다. 상감마마께서는 다시 한번 눈을 뜨시어,

『버금마마.』

하고 한 마디를 부르시었다 . 버금마마를 큰 마마보다 더 사랑하시고 잊지 못하심이다. 큰마마께서는 잠깐 얼굴을 찡기시었다.

『태자.』

하고 열 네 살 되신 왕자를 가리키시었다. 태자는 뛰어와 부왕폐하 옆에 앉아 울었다.

상감께서는 국사를 돌아 보시고 두 분 마마를 돌아 보시고 세 분 왕자와 만공주를 이윽히 보시고 가만히 눈을 감으시었다.

그리하고는 다시 뜨지 못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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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