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태자/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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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상[편집]

칠월 초여드렛날 오시나 지나서 천아상 아뢰이는 소라 소리가 서울 장안에 울렸다.

『뚜뚜우 뚜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무엇이 타는 듯한 누린 냄새를 머금은 까만 안개가 천지에 자욱하여 바로 반월성 대궐 위에 비치인 해는 피에 찍어 낸 듯이 빨갛다. 바람 한 점 없고 장안 이십만호의 지붕 기왓장에서는 금시에 파란 불길이 팔팔 일어날 것 같다.

『다 죽었네, 다 죽었어.』

『물 마른 웅덩이에 오글오글하고 올팽이 떼 모양으로 다 익어 죽고, 말라 죽네.』

하고 백성들은 옷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한탄들을 하였다.

황룡사 담 모퉁이의 홰나무 그늘에는 노인들이 더 많이 모여서 수군수군한다. 할아버지 무릎에서 기어 내리던 어린 아이는 잠이 들고 꼬부라진 영감은 무슨 불길한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합창하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흰 새털 부채를 든 노인은 여전히 옛날 일, 지금 일을 끌어내어 나라가 망할 날이 가까운 것을 예언한다. 이 노인들뿐 아니라, 요새에는 백성들이 모여만 앉으면 입만 벙끗하면 모두 불길한 소리뿐이었다.

『나라이 망한다.』

『세상이 뒤집힌다.』

『끝날이 온다.』

『인제 사람이 파리 죽듯 죽는다.』

모두 이런 불길한 소리뿐이다. 손자를 무릎 위에 안은 할아버지도,

『웬 걸 이것들이 자라나서 낙을 보겠노. 세상이 몇 날 안 남은 것을.』

하였고 장가 드는 신랑이나 시집 가는 신부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도 노인들은 휘하고 한숨을 지었다.

봄에 커다란 살별이 스무 날이나 두고 대궐 위에 비친 것이나, 지동이 세 버너이나 난 것이나, 금상께서 새로 지어 재작년에 낙성한 황룡사 구층탑 추녀 끝에 세 발이나 되는 구렁이가 매달려 죽었다는 것이나, 대궐 안에 밤이면 근종의 원혼이 울고 돌아 다닌다는 것이나, 북문 밖대숲에서 「 귀기리죽으리 귀기리죽으리」하고 흉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너, 대궐 우물에에 용이 올라 가 버리고 일정교·월정교 밑에 물이 마르고 문내 물빛이 핏빛이 되었다는 것이나 어느 것 하나도 불길치 아니한 것이 없었다.

『세상이 몇 날 없어.』

백성들은 이렇게 가엾은 한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뚜뚜우 뚜우.』

하고 천아상 소리가 길게 느리게 슬프게 장안에 울어날 때에는 더구나 금시에 세상 끝이 온 것 같았다. 이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하던 일도 그치고 하던 말도 그치고 숨쉬기조차 그치고 길 가던 사람들은 우뚝 서고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바깥으로 뛰어 나왔다.

『뚜뚜우 뚜우.』

더욱 길게 더욱 가늘게 끌다가 소리가 사라질 때에 백성들은 대궐 위에 덮인 까만 안개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 마치 슬픔에 찬 나라와 백성들을 뒤에 두고 하늘로 올라 가는 젊은 임금의 혼령을 바라보기나 하려는 듯이 ————— 그러나 누린내 나는 까만 안개뿐이요, 푸른 하늘도 흰 구름도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이윽고 장안 팔백 여든 절이라는 수많은 절에서 슬픈 쇠북 소리가 웅웅 울어 나온다. 길게 느리게, 길게 느리게 웅웅 울어난다. 천년 장안의 백만 백성의 가슴 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설움이 부그르 끓어 올랐다.

노인들은 눈물을 씻고 나무아미타불을 수없이 불렀다. 깊고 깊은 대궐 속에서도 울음 소리가 울어난다. 공중에 나는 까막까치들도 소리를 그치고 슬퍼하는 듯하였다.

젊은 임금님이 오래 앓으시다가 돌아 가시었다는 것만 해도 슬픈 일이다.

백성들은 국상 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소복을 입고 대궐 문 앞으로 몰려들어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높여서 망곡하는 이가 그치지 아니하였다.

『그 어른이 잘못인가 모두 간신놈들일래.』

하는 이도 있고,

『버금마마 때문에.』

하는 이도 잇고 나라 일을 그르친 것은 대행마마의 허물이 아니라고, 대행마마는 어디까지든지 총명하시고 인자하신 이라고 이렇게 백성들 간에는 말이 돌았다. 평소에 다소간 원망하던 일까지도 그런 말은 입적도 아니하고 오직 승하하신 상감님을 위하여 슬퍼하는 것이 옳은 줄로만 여기었다. 어른들은 깃것과 베옷을 입고 아이들도 쌍상투에 흰 댕기를 늘였다. 한 고을 또 한 고을 국상 난 기별이 펴지는 대로 소복과 흰 댕기와 울음이 퍼지었다. 천년 동안 임금을 높이고 사모하던 정은 아직도 가시지를 아니하였다. 이때 서울서 동쪽으로 백리나 가다가 개목이라는 포구에서 한 삼리나 북으로 치우친 활터라는 동네 앞 모래판에서는 열 너덧 살로부터 팔구 세 된 장난 군이 아이들 수십명이 모여 놀고 있다. 아이들은 허리에 나무 막대기 군도를 차고 어께에는 장난감 활과 전통을 메고, 그 중 ㅓ떤 아이들은 수수깡 말을 타고 병대 조련을 하는 중이다. 구령을 부르고 칼을 두르는 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오고 가끔 고함도 지르고 달려가기도 하고 매우 위의가 엄숙하다.

누구나 그중에서 깨아진 철바가지투구를 쓰고 긴 활도를 둘러 전군을 호령하는 애꾸눈이 아이를 보았을 것이다. 비록 애꾸눈일망정 두 귀 위에 달린 윤 흐르는 검은 머리의 쌍상투라든지 장대한 골격이며 위풍 있는 용모와 풍채라든지, 그 어리지마는 웅장한 음성이라든지 나이는 십 삼세밖에 안되어 보여도 어딘지 모르게 점잖은 태도가 있는 것이라든지, 누가 보아도 범상한 아이가 아닌 것은 짐작할 것이다. 아이들이 돌을 모아 성을 쌓고 관혁을 세우고 활을 쏘고 탈을 두르며 내닫고 한창 어우러져 놀 때에는 동내 앞에 어떤 부인 한가 나서며,

『미륵아, 미륵아.』

하고 부른다. 이 소리에 애꾸눈이 대장은 원망스러운 듯 하고 부른다. 이 소리에 애꾸눈이 대장은 원망스러운 듯이 헌 바가지 투구와 활과 칼을 내어 던지고 부르는 부인 곁으로 달아난다. 대장을 잃어 버린 다른 아이들도 흥이 깨어지어 하나씩 둘씩 이리로 저리로 나무 환도를 내어 두르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아난다. 그중에서 두 아이만 차마 미륵이를 떠날 수 없다는 듯이 뒤로 슬슬 따라 간다.

『글쎄, 또 장난이야 ———— 그렇게 일러도 또 장난만 한단 말이냐?』하고 부인은 미륵의 손을 끌고 조그마한 집으로 들어 간다. 그러나 아이를 때리지도 아니하고 크게 꾸중도 아니한다. 그날 밤에 부인은 미륵을 앞에 불러 놓고,

『내가 오늘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하고 미륵을 바라보며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미륵은 어머니한테 장난 만고 글을 배우거나 일을 하라는 꾸중을 거의 날마다 들어 왔지마는 오늘처럼 이렇게 한밤중에 엄숙하게 꾸중을 들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미륵이도 웬 셈을 모르고 눈이 둥글하여 어머니의 입만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비록 누추한 옷은 입었을망정 그 얼굴과 태도에는 어딘지 모르게 예사 마을 여자가 아닌 빛이 있다. 중늙은이의 주름과 고생에 초췌함이 있다 하여도 어느 구석에 귀골스러운 것이 있다. 어머니는 미륵을 앉히어 놓고 일어나서 장 속에서 무슨 보통이 하나를 꺼내어 미륵의 앞에 놓고,

『자 이것을 끌러 보아라.』

하고 미륵에게 명령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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