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태자/제14장
사랑은 섧다
[편집]사월 팔일———이날에 만도 사녀는 관불회(灌佛會)에 참여할 양으로 새로운 옷을 입고 절로 모여 들었다. 왕도 이날에 특별히 토함산(吐含山) 불국사(佛國寺)에 거동을 하신다 하여 진골(眞骨)의 귀족들은 왕의 거동을 따라 불국사로 모여 갔다.
삼천 간이라는 불국사에는 장막과 깃발이 날리고 천여명 대중은 찬란한 가사 장삼으로 범패(梵唄) 소리 우렁차게 왕을 맞았다. 근래에 항상 비감이 많아진 왕은 대웅전 부처님 앞에 겸손한 죄인 모양으로 수없이 합창 배례를 하였다. 왕이 한번 합창하고 절할 때마다 천명 대중과 천명 남녀 귀족들은 왕을 따라 합창 배례하였다.
금빛이 찬란한 부처님 앞에는 촛불이 춤을 추고 만수향의 음침한 향기로운 연기가 구름 모양으로 가끔 부처님의 얼굴을 가리었다.
왕은 천년 종사에 명운을 한 몸에 지고 사람의 마음을 믿지 못할 것을 깨달음에 부처님의 힘이나 입어 나라를 보전할까 함이다. 동으로 만들어 놓은 부처에 무슨 영혼이야 있으랴마는 왕은 마음으로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염하고는 수없이 합창한다. 춤 추는 불전의 촛불 빛에 왕의 두 빰에는 구슬 같은 눈물이 번쩍거리었다. 향과 촛불을 맡은 노승 밖에 왕의 눈물을 본 사람이 없건 마는 법당 앞에 모인 수천 대중의 마음에는 자연히 비감한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는 김충도 있었다.
이날 종일 중들은 상감마마의 보조 무궁을 위하여 빌었다.
이날에 법당 앞 다보탑(多寶塔) 편에는 신녀(信女)들이 서고 석가탑 편에는 (釋迦塔) 신남들이 섰다. 백만 장안에서도 아름다운 선관 선녀들만이 뽑히어 온 듯하여 눈빛같이 흰 비단 옷을 입고, 신남 신녀들은 이 세상 티끌 묻은 사람들 같지는 아니하였다. 천년 영화에 발에 흙을 묻히어 보지 아니한 귀골들은 어디 내어 놓아도 우표하게 희고 날씬하였다.
발 하나 옮기는 것, 손 하나 옮기는 것, 웃는 것, 말하는 것 다 법도가 있고 아름다왔다. 더우기 여자들이 그러하였다. 몸에 입에 옷 머리 단장, 발에 신은 신발까지도 모두 값진 것이면서도 야하지 아니하고 나올 때에 입고 나오는 모양으로 모두 몸에 착들어 맞고 그 빛깔 그 모양 구김살 하나까지고 그 주인을 높게 귀하게 보이는 듯하였다.
절 마당에는 향기가 진동한다. 그것은 법당에서 흘러 나오는 만수향의 영혼까지도 푹 가라앉히는 향내뿐이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아름다운 젊은 살에서 나오는 향기였다. 깊은 궁전 곡에만 있던 귀인들이 봄철의 향기를 받아 두 뺨이 발갛게 상기를 한 것뿐이 아니라, 꽃 피고 새 지저귀는 무르녹은 봄바람에 가슴 속에 숨은 인생의 청춘이 버들 찾는 꾀꼬리 모양으로, 꽃 찾는 벌 나비 모양으로 상기가 되고, 하염없는 한숨을 쉬는 그러한 상기였다.
이런 때를 한번씩 다 지나본 얼굴에 주름 잡힌 늙은이들은 근심되는 눈으로 젊은 아들과 딸들의 눈치가 가는 곳을 지킨다. 그러나 꼭꼭 봉해 놓은 항아리, 벽도 뚫고 스며 나갈 듯한 젊은이들의 사랑의 눈치를 무엇으로 막을랴. 젊은이들의 눈은 길 잃은 조그마한 새 모양으로 이리저리 헤매다가 마침내 앉을 곳을 찾는다. 앉을까 말까 그 옆으로 뱅뱅 돌다가 마침내 앉을 자리에 앉아서는 누가 그 나뭇 가지를 흔들기로 누가 돌팔매를 치거나 독한 활을 겨누기로 날아날 생각이너 하랴. 차라리 앉은 자리에서 독한 살을 맞아 끓는 피로 앉았던 나뭇 가지를 물들이고 푸떡푸떡 죽어 떨어지기를 원한다.
사월 파일! 어떻게나 졸은 날인고, 어떻게 기다리는 이날에 부처님이 마야부인의 사랑의 품에서 나온 모양으로 신라의 아름다운 총각과 섹시들의 가슴에서도 귀여운 사랑이 움 도든 날이다. 봄과 부처님과 만수향과 젊음과 ——— 이날은 사랑의 날이다.
우국의 열정이 넘치는 김충의 가슴 속에도 봄날의 사랑이 움 돋을 자리가 있었다. 왕이 수없이 불전에 예배하는 양을 보고 눈물 흘리던 그의 눈앞에는 역시 눈물에 젖은 어떤 처녀의 얼굴이 보였다. 마치 봄 벌판 잡초 속에서 고개를 숙인 꽃 한 송이 모양으로 수없이 많은 처녀들 속애 그 처녀 하나가 가장 빛났다.
<뉘 집 딸인고?>
하고 김충은 자주 그 처녀를 바라보았다. 그 처녀의 눈도 두어 번 김충의 눈과 마주치었으나 처녀는 심상하게 눈을 다른 데로 돌리고 말았다.
<석굴암(石窟庵) 석불과 같구나.>
하고 김충은 그 처녀를 비평하였다. 과연 그 처녀의 풍후한 두 뺨이라든지 우뚝 선 코라는든지 가늘한 눈이라든지 인자하고도 꼭 맺힌 얼굴 모양이며 천근 같이 무겁게 땅을 턱 내려 누르고 선 몸이라든지 그러면서도 탁한 기운은 한 점도 없고 맑고 영채 나는 기운이라든지 석굴암 석불은 보는 듯하였다. 그렇게 생각할 때 김충의 가슴은 한없이 설레였다.
이윽고 재를 파하는 종이 댕댕 울고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합창을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그런 뒤에는 사암들은 탑을 싸고 돌기를 시작하였다. 신남들은 석가탑을 싸고 돌고, 신녀들은 다보탑을 싸고 돌았다. 둘씩 길게 줄을 지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면서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고 탑을 빙빙 돌았다. 김충도 남과 같이 싸고 돌았다.
한바퀴가 다 돌아 간 때마다 김충은 신녀들은 줄에 가까이 올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김충은 고개를 들어 그 처녀를 찾았으나 혹은 저쪽 끝에 잇고 혹은 자기가 그 목을 돌아 가기 전에 그 처녀는 먼저 돌아 가 버렸다.
그러나 몇 번에 한번씩 두 사람은 공교하게 꼭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러할 때에는 김충과 처녀의 눈이 한번 마주치었으나 그것도 잠깐 동안이요, 서로 멀어지고 말았다.
열 번 스무 번이 지나간 뒤에는 점점 사람이 줄어지었다. 사람이 줄어지면 한 바퀴 도는 동안이 빨라지어 두 사람이 동시에 마주칠 때도 차차 늘었다.
팔십 번이나 돌았는가 김충은 손에 든 염주를 세기를 잊어 버렸다.
그러나 그 처녀가 돌아 갈 때까지 돌면 백 번이 차리라고 생각하고 돌았다.
처녀의 얼굴은 점점 상기하여 붉게 되었다. 김충도 상기가 되어 얼굴이 후끈거림을 깨달았다. 사월이지마는 오늘은 특별히 양기가 두텁고 더웠다.
바람은 한 점도 없고 나뭇잎 하나도 까딱하지 아니한다.
사람은 점점 줄어 간다. 김충은 처녀의 이마에 땀 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자기의 이마를 만지니 역시 땀이 맺히었다.
걸음 걸울 때마다 삭삭거리는 옷 소리, 짝짝 여자들이 끄는 신 소리, 가끔 들리는 벼슬 높은 이의 패옥 소리, 그 속에서도 김충은 그 처녀의 옷소리와 발자취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백이요.』
하고. 늙은 중이 목탁을 두드리며 소리를 높여 염불을 하고 무슨 주문을 외울 때에 돌던 사람들은 돌던 바퀴를 마자 채우고는 땀을 씻으며 물러난다. 그 처녀는 맨 나중 바퀴를 채우느라고 좀 빠르게 돌아 갈 때에 김충과 마주 만났다. 김충이 무심코 빙그레 웃는 것을 보고 그렸다.
「탑돌이」가 끝난 뒤에 점심을 먹었다.
왕은 먼저 환궁하시고 늙은이와 벼슬 높은 이들도 왕을 따라 돌아 가 버리고 절에는 젊은 신남 신녀들만 남고 나 많은 이라고는 처녀들의 시녀뿐이었다. 혹은 나무 그늘에 앉아 손에 꽃을 들고 새 소리를 들으며 쉬기도 하고, 혹은 이리 저리로 둘씩 셋씩 떼를 지어 가기도 하였다.
김충은 혼자 법당 뒤 늙은 소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날은 젊은 남녀를 위하여 있는 날이다. 귀족의 자녀는 황룡사(黃龍寺)·사천왕사(四天王寺)·분황사(芬皇寺)·흥륜사(興輪寺) 또는 불국사(佛國寺) 같은 큰 절로 모이고 그다음 가는 집 자녀들은 그 다음 가는 절에 모여 부처님 앞에 복과 사랑을 빈다.
『사월 파일에 심은 것은 칠월 백중에 거두어라.』
이것은 개무덤의 오려와 잚은 남녀의 사랑이다. 사월 파일에 젊은 남녀가 사랑을 심었다가 칠월 백중에 다시 절에 모일 때에 오려 이삭 모양으로 거둔다는 뜻이다.
왕도 환어하시고 나 많은 이들도 왕을 따라 돌아 가건 마는 젊은 사람치고는 해지기 전에는 돌아 갈 길이가 없다. 만일 날이 밝으면 서악에 비낀 초생달과 함께 돌아 갈 것이요, 만일 날이 흐려 첫여름의 가랑비가 내리면 수없는 등불이 반짝거리며 촉촉히 옷을 적시어 가지고 집위, 시월 상달, 정월 대보름은 계집애들이 밤에 늦게 들어 가도 부모의 책망을 면하는 날이다.
불국사 솔밭 사이에는 꽃 같은 사람들로 수를 놓았다. 호화로운 남자들은 수레에 숨겨 가지고 왔던 술을 내어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이 구석 저 구석 시냇굽이나 샘물 있는 곳에는 처녀들이 모여 손을 씻었다.
칡베 장삼 입은 젊은 중들은 일도 없으면서 젊은 사람들 사이로 염불을 외우며 왔다갔다하고 허리 꾸부러진 늙은 중들은,
『또 무슨 일이나 아니 생기고 이날이 무사히 지났으면……』
하고 우무러진 입술을 우물거린다.
대개 이런 날은 반드시 젊은 사람들 사이에 무슨 티각 태각이 나고야 마는 까닭이다.
서울에는 여러 백 집 대가가 있다. 그중에 서로 친하게 지내는 집도 있지마는 서로 원수로 지내는 집이 더욱 많았다. 한 집이 세력을 잡아 다른 집을 누르면 그 집이 세력을 잡을 그때에는 저 집을 누른다. 이 모양으로 원수는 해가 가고 대가 갈릴수록 더욱 깊어지어 기회 있는 대로 서로 싸운다. 어찌어찌하다가 한 집이 아주 멸망을 하여 버리기 전에는 이 싸움은 끝날 날이 없다.
김성의 집과 김충의 집도 그러한 처지요, 유렴의 집과 김률의 집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람들의 자손이 이러한 곳이 모였다가는 대수롭지 아니한 일이 빌미가 되어서는 큰 싸움이 벌어진다. 늘은 주이 근심하는 것은 이러한 일이다.
김충은 아무쪼록 사람 많지 아니한 으슥한 곳을 택하여 늙은 소나무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들어 우거진 소나뭇 가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보며 여기서 저기서 울려 오는 남자의 소리, 여자의 소리, 서로 부르는 소리, 흥에 겨워 노래하는 소리를 들리는 대로 듣고 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리 잘 살아 백년도 못 사는 인생이라.』
이러한 구절도 들리고,
『꽃아 어린 꽃아오는 나비 막지 말아 춘광이 덧없으니 고운 양자 매양하리.』
이런 구절도 들리고 심한 것은,
『오늘 밤 삼경 울거든 부디부디 잊지 말고 문고리 벗겨 놓으오.』
하는 것도 있고, 어떤 작자는 술 취한 목을 길게 뽑아,
『處世岩大夢 (세상이 꿈 같으니) 胡烏勞其生 (애는 써서 무엇하리) 所以終日酒 (그러므로 종일 취코) 頭然臥前楹 (앞 퇴에 누웠노라)』
하고 당나라에서 건너 온 이태백(李太白)의 시를 읊조리는 것도 돌린다.
김충은 이런 노래들을 듣고 잇다가 고개를 수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발앞으로 다람쥐 하나가 뛰어 지나간다.
『나리만님 여기 계시우?』
하고 두껍쇠가 김충의 옆으로 뛰어 온다. 두껍쇠는 김충의 집 종이다.
어려서부터 골을 내면 배가 불룩하기 때문에 두껍쇠라고 부르고 자기도 그 이름을 좋아한다.
두껍쇠는 김충의 서너 걸음 앞에 서서 심충의 수그린 낯을 들여다 보며,
『또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우! 오늘같이 졸은 날 남과 같이 어여쁜 아가씨들이나 따라 다니며 노시지도 아니하고……두껍쇠놈도 이렇게 흥이 나는데.』
하고 두 팔을 벌리며,
『정저궁 어화 좋은지고 닐리리 닐리리.』
하고 얼씬얼씬 춤을 춘다.
김충도 픽 웃었다.
『너는 무엇이 그리 좋으냐?』
『그럼 안 좋아요?』
하고 두껍쇠는 노랫 가락으로,
『시절은 봄이요 인생은 청춘이로구나, 봄은 몇 날이며 청춘은 몇 날이리, 고운 님 뫼시고 밤새도록 놀리로구나.』
하고 길게 뽑고 나서,
『어떠시오? 처년 만년 못 살 인생이, 한 세상 맘대로 놀다가 죽을 계시, 근심이고 걱정은 무슨 걱정이에요. 소인이 보니깐 아까 나리마님께서 매우 마음에 드는 어른이 있는가 싶으니, 그 양반이나 따라 가서 말을 붙여보세요.』
하고 킥킥 웃는다. 김충은 두껍쇠의 떠버리는 말에 마음이 들뜨는 듯하였다. 그래 웃으며,
『이놈 어디서 그런 덕담은 다 얻어 배웠니? 허 그놈.』
하고 두껍쇠의 넓적한 얼굴을 본다. 얼른 보기에 어리석은 듯하지마는, 그 가느란 눈에 익살솨 슬기가 다 들어 있다. 또 두껍쇠가 하는 소리는 서울 장안에 젊은 사람들이 누구나 다 하는소리다. 「인생이 몇 날이리, 부귀영화도 다 믿을 수가 없다. 고운 님 뫼시고 밤새도록 취하고 놀자」하는 것은 백만 장안의 젊은 남녀가 말로 외우고 노래로 부르고 시로 짓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일 뿐 아니라, 모두 그렇게 생각도 하고 행하시도 한다. 좀 무슨 일을 해보려면 왕까지도 근래에도 「고운 님 뫼옵고 취하고 밤 새우는 일」을 자주 하게 되어 대궐안에서는 잦은 닭이 울도록 풍악 소리가 울어 나왔다.
듣고 보면 김충의 생각에도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 큰 집이 다 기울어지는 판에 바지랑대 하나로서 버티려면 될 것인가. 한번 가면 다시 못 올 「인생의 청춘」을 「근심·걱정」으로 보낼 것은 무엇인가? 김충이 청루 주시로 돌아 다니던 것도 그 근본을 캐어 보면,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것일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려서 스승에게 드던 충의(忠義)의 교훈이 김충의 마음에 깊이깊이 박혀 뽑으려도 뽑을 수 없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돌아 보라. 백만 장안에 어느 누가 충의를 생각하는가. 지금 세상에 충의를 생각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털끝만큼이라도 충의를 생각하던 사람은 애매한 죄명을 쓰고 죽임을 받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조정에서 쫓겨 나고, 서울에도 발 붙일 곳을 못 찾아 산으로 바닷가로 세상을 피하여 달아나지 아니하는가. 그래도 시중 유렴이 군계의 일학(群鷄의 一鶴)으로 조정에 남아 있더니, 그조차 벼슬을 내어 던지고 남산 저쪽 산골짜기 별장에 숨어 버리고 김충 자기도 미관 말적이나마 집어 던지고 나와서 청루 주사로 방황하니 이제 충의의 끈이 영영 끊어져 버렸다. 지금 불국사 송림 속에 모인 수백명 남녀도 모두 천년대가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조리 고운 임 뫼옵고 밤새도록 취하고 놀려하거든 김충 혼자 충의 열사로 스스로 높은 체한들 무엇하랴? 이러한 생각이 김충의 마음에 지나간다.
김충은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술이나 한잔 있었으면.』
하고 두껍쇠를 보았다. 한잔 먹고 취하여 실컷 노래라도 부르고 싶어진 것이다.
두껍쇠는 김충의 말을 듣고 어디로 뛰어 가더니 얼마만에 술병 하나를 들고 나무뿌리 돌뿌리를 함부로 차며 뛰어 온다.
『자 보아요 ————썩 좋은 술이요.』
하고 술병을 내어 김충을 준다.
『웬 술이냐?』
『얻어 왔지요.』
『어디서————누구한테?』
『누구한테는 알아서 무엇하시오? 우리 댁 나리마님이 술이 잡숫고 싶어서 침만 꿀떡꿀떡 삼키시니 한 병 내라고 그랬지요. 했더니 시원시원히 주던걸요. 자, 한 병 잡숫고 잡수시다가 남거든 소인도 한 모금 주시옵고, 그리고 기운을 내시어서 그 아가씨한테나 찾아 가 보시요.』
하고 두껍쇠가 서둔다.
김충은 떡으로 한 병마개를 뺏었다. 병 속에서는 무르 녹은 송순주 향기가 나와 김충의 코를 찌른다. 김충은 그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인하여 병을 입에 물고 쌉살하고 달착지근한 전국 술을 꿀떡꿀떡 여남은 모금을 들이켰다.
두껍쇠는 먹고 싶은 듯이 침을 삼키고 섰다가 빙긋 웃으며,
『어떠오?』
하고 묻는다.
『술 좋다.』
하고 김충은 병을 한번 흔들어 보고 또 댓 모금 더 마시더니, 또 한번 병을 흔들어 보고는 두껍쇠를 내어 주며,
『아따 너 먹어라.』
하고 입을 씻는다.
『이걸 다 주시오?』
하고 두껍쇠는 술병을 받아 들며 손에 들었던 생강 한뿌리를 김충에게 주며,
『안주요.』
한다.
김충이 생 껍데기를 벗기는 동안에 두껍쇠는 돌아 서서 고개를 잦히고 병엣 술을 들어 마신다. 마시고 나서 흔들어 보고는 또 마시고 쭉쭉 소리를 내고 둘이빤다.
『이놈 병까지 마실라.』
하고 김충이 웃으니,
『이 병이 썩 오랜 병인데 술이 배어서 어리들 빨아도 술맛인걸요.』
하고 두껍쇠는 병 껍데기까지 핥고 나서,
『한 병 더 얻어 와요?』
하고 빈병을 흔든다.
『그만 먹을란다.』
하고 김충은 얼굴이 화끈하는 것을 깨닫는다. 아까 처녀를 볼 때에 화끈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김충은 술 기운이 도는 눈으로, 사방을 한번 돌려더니,
『이놈아.』
하고 두껍쇠를 부른다.
『왜 그러시우?』
『너 아까 그이가 어디 있는지 보았니?』
하고 김충은 그 처녀를 생각하고 물었다.
『그이랏게?』
하고 두껍쇠는 시치미를 뚝 뗀다.
『아까 나와 같이 마지막 바퀴를 돌던 이 말이다.』
하고 김충은 두껍쇠는 시치미를 뚝뗀다.
『아까 나와 같이 마지막 바퀴를 돌던 이 말인다.』
하고 김충은 두껍쇠를 노려 본다.
그제야 두껍쇠가 선웃음을 치며,
『아, 그 아가씨 말씀이요?』
하고 공연히 껄껄대고 웃으며,
『그럼 몰라요?————이 두꺼비가 몇 천년 묵은 두꺼빈데 그걸 몰라요?
벌써 나리마님 눈치가 심상치 않길래 벌써 소인이 뒤를 따라 가서 그 아가씨가 어느 댁 아가씨며 이름은 무엇이요, 나이는 몇 살이요, 죄다 알아 왔단 말이야요. 그러노라면 소인에게 좋은 일도 생긴단 말이야요.』
하고 벌써 입이 얼었다.
『네게도 좋은 일?』
하고 김충은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나리마님께 좋은 일을 하여 드리면 소인에게도 좋은 일이 생긴단 말씀이요. 그 유렴 시중댁 아가씨의 몸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하거든——— 이름은 시월이요, 나이는 열 일곱——— 아주 소인에게는 선녀란 말씀이요.』
하는 두껍쇠의 말은 점점 억눌해진다.
김충은 유렴 시중 댁 아가씨란 말에 놀랬다. 그러면 그 처녀가 유렴 시중의 딸이던가?
『유렴 시중 댁 아가씨?』
하고 김충은 수줍은 듯이 몇 번 물었다.
예 남교 『 , (南郊) 유렴 시중 댁 아가씨의 몸종이란 말씀이요———그 선냐 같은 우리 시월이가 시월이라고 이름은 나쁘지마는 두껍쇠만이야 못할라고요, 하하하하.』
하고, 두껍쇠는 점점 말이 굳어지며 상전의 일은 잊어 버리고 제 소리만 지절댄다.
김충은 참다 못하여,
『이놈아, 소리만 하느냐? 유렴 시중 댁 아가씨가 누구냐 말이다.』
그제야 두껍쇠가 정신을 차린 듯이 머리를 긁으며,
『상감님 발등의 불보다 제 발등의 불을 먼저 끈다고, 소인은 소인의 말만 하였읍니다. 헤헤, 아차 무슨 말을 내가 하려다가 잊어 버렸나? 옳지 시월이가……』
하고, 또 시월이 말을 꺼내려다가 다시 머리를 긁으며,
『아따 큰일 났는걸, 시월이가 고만 속에 가득 차서 입만 벌리면 시월이가 튀어 나옵니다. 어, 쾌씸한 두껍쇠 놈이로군. 하하하하, 히히히히……』
하고 한바탕 웃다가,
『저, 저, 유렴 시중 댁 아가씨가 지금 나이 열 여덟살이신데 이름은 계영(〇英) 아가씨라고요. 시월이 말이 아주 재주가 도저하시고 거문고를 잘 타신다나요? 시중마마께서 남교 정자로 나가신 담에는 일절 출입을 금하시다가 오늘은 특별히 나오시게 한 것이라고요. 상감마마께서 남 교정자로 나가신 담에는 일절 출입을 금하시다가 오늘은 특별히 나오시게 한 것이라고요. 상감마마나 뵈옵고 곧 돌어 오라고 하시었다고요. 그런데 장관입니다. 저 김성 서불한 마맛댁 작은 나리마마, 또 김률 아손 댁 작은 사라마마, 선필(善弼)장군 댁 나리마마, 아마 십여 명이나 계영아기 앞으로 왔다갔다하고 어르는 판인데, 계영마마는 눈도 거들떠 보시지 아니하겠지요. 어떻게 도고하기고 새침하신지 서릿가루가 팔팔 날리는 것 같아요. 계영아가씨 한번 눈만 들어 보시면 곧 말을 붙일 판인데 아무리 그 앞으로 잔기침을 하고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 지나가는 것만큼이나 여기셔여지요. 어디 나리만님 한번 가 얼러 보시오. 그리고 나리마님께오서 계영아가씨하고 백년 해로 하시게 되거든, 소인도 시월이 하고 백년토록 두 분 마마를 모시게 하여 주시오. 그렇게 되면 얼씨구나 좋을씨고 지화지화 좋을씨고.』
하고 말 끝에 춤을 추며 비틀거린다.
『사월 파일에 못 심은 씨는, 칠월 백중에 거두기 망계라.』
하는 옛말과 같이 오늘 이 자리에서 계영아기의 마음을 사지 못하면 다시 만날 길이 망연할는지 모른다.
김충은 용기를 내어 옷깃을 바르고 두껍쇠더러 길을 인도하기를 명한 뒤에, 이놈 오늘 술잔이나 『 , 취한 김에 또 그 공연한 트집을 잡아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말썽을 만들지 말렸다.』
하고, 신신 당부하였다.
『예, 말썽을 만들 리가 있겠읍니까? 하지마는 어는 누구든지 나리마님을 건드리는 놈만 있으면 이 두껍쇠놈의 몽둥이가 가만히 있지는 아니합니다——— 대가리에서 발뒤꿈치까지 잔채를 쳐 놓고야 맙지요.』
하고 끝이 주먹다시같이 뭉퉁한 몽동이를 한번 들이서 곁에 선 소나무를 갈기니 딱하고 요란한 소리가 나면 나뭇 가지가 모두 흔들리고 마른 잎이 우수수 떨어져 두 사람의 옷을 때린다. 새잎사귀 때문에 떨어지는 낡은 잎들이다.
눈에 뜨이는 얼굴들은 대개 슬기운을 띄었다. 인생의 향락에 취하여 있으면서도, 새로운 향락을 끝없이 바라는 사람들의 눈에는 말할 수 없이 음란한 빛을 띄웠다. 부드러운 흰 살, 거기에 착 달라 붙는 비단 옷, 향기로운 술, 마른 나뭇 가지에까지 물이 돌게 하는 첫여름————이라기보다는 늦은 봄바람, 이 속에 있는 젊은 남녀의 무리, 위로 임금으로부터 아래로 사삿집 종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태평과 오륙십년 어지러운 세상에 음탕한 세태(世態)에 물든 무리, 집에서 보는 것, 길에서 보는 것, 글로 보고 말로 듣는 것이 오직 음탕뿐인 속에 자라난 그들, 더구나 사월 팔일이라는 새 사랑 움 듣는 날————이것만 생각하더라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이다. 더구나 천년 동안 흙을 만져 보지도 못한 귀골(貴骨)들 피에는 씻기고 씻긴 향락의 피가 흐르거든, 게다가 성당(盛唐)이래의 당나라의 향락 기풍을 받아 들였거든……
젊은 남자들은 술이 반취하여 그래도 허리에 가느단 칼들은 차고 갈짓(之) 자 걸음으로 아가씨네 앉은 자리앞에 와서는 전에 아는 사람에게 대하는 모양으로 극히 공손하게 극히 은근하게,
『춘부대감 기체 안녕하시오?』
하고 인사를 붙인다. 이날에 이곳에 모인 사람치고는 대감 댁 사람 아닌 이가 없는 때문이다.
그러면 여자는 몸을 일으켜 의아한 눈을 들어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만일 그 남자가 마음에 들거든 빙그레 웃고,
『어느 댁 작은 사랑 어른이신지?』
하고 도리어 묻는다. 그러면 남자는 한걸음 여자의 앞으로 더 가까이 가며,
『나를 잊으시오?』
하고 이손이면 이손, 일길손이면 일길손,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직품대로 아무의 아들 아무의 손자 아무라고 이름을 말하고 혹은 아무 데 사는 아무라고 사는 지명까지 말한다.
그때에 여자가 만일 말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면,
『그러시오니까. 규중에 있는 몸이 존성 대명(尊姓大命)을 듣자온 일 없읍니다.』
하여 끊어 버리고, 만일 더 말이 하고 싶으면,
『성화는 듣자온지 오래오며 이처럼 물어 주시니 황감 하오이다.』
하고 또 한번 웃는 모양을 보인다.
비록 처녀들이 오빠와 같이 왔더라도 그들은 소년들 틈에 섞이어 놀고ㅡ 다만 누이가 누구와 수작을 하는가를 먼 곳에서 바라보는 법이다.
이렇게 말을 붙여 보고는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아니하면 그대로 지나가서 또 다른 여자와 수작을 붙이고 만일 어떤 처녀가 심히 마음에 들면 두 번 세 번 우연히 지나다가 생각이 난 것처럼 그 앞에 걸음을 멈추고는 한두 마디씩 이야기를 붙이고 받고 하며, 혹은 시(詩)로 주고 받기도 하거니와 대개는 당나라 시 한쪽을 남자가 읊으면, 여자도 그 대답될 만한 것 한쪽을 부르는 일이 많다. 가령,
『심림인불지(深林人不知)』
하고 남자가 부르면 여자도,
『명월래상조(明月來相助)』
하고 대구를 하는 것이다.
만일 여자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운상상의화상용운(雲霜常衣花想容)』
하고 이백의 청평조사(淸平調詞)를 부르고, 그때에 만일이 짝되는 여자가 상당히 바림기가 있으면,
『회향요대궐하봉(會向瑤臺月下逢)』
으로 회답한다. 이러한 여자가 근년에는 한 파일에 하나씩은 있어서 온 장안의 이야깃 거리가 된다고 한다.
혹은 남자가 글귀로 못생긴 여자를 빈정대는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빈정대는 수도 잇다. 작년에는 어떤 남자가 얼굴 빛이 검은 여자를 향하여,
『옥안불급한아색(玉顔不及寒鴉色)』
을 불러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다고 한다.
계영아기에게 가장 많은 남자가 모여 든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두껍쇠의 말과 같이 계영은 여러 남자의 문안에 대하여,
『누구시온지오?』
하는 한 마디로 다 물리쳐 버렸다.
『저도 계집이려든.』
하고 저 잘난 것을 자신하는 젊은 남자들은 「내야 설마」하는 생각으로 나도 나도 하고 와서 건드려 보았으나, 계영은 여전히 분도 거들떠 보지도 아니하고,
『고루하여 성화를 일이 없사옵니다.』
하고 칼로 베는 듯이 똑 따버렸다.
『세차다.』
『매운걸.』
하는 비평이 여러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아비가 고집 불통이니까 딸 역시 고집인걸.』
하여 제 망신은 가리려는 이도 있고,
『아마 마음에 든 누가 있나보다.』
하여 자기의 까인 면목을 살려 내려는 이도 있다. 그러나 고집장이 유렴의 딸이기 때문에 고집장이라는 말이 가장 세력이 있는 듯하였다. 어쨌든 젊은 사람(모두 한다 하는 집 자손들이다)들은 모두 하번씩 계영에게 대해서 다시는 근접할 생각을 못하고 다만 먼 곳에서 계영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때에 당대 서도요, 높기로는 임금 다음이나, 세력으로는 임금 웃길을 가는 서불한 김성의 맏손자 김술(金述)이 나섰다. 김술이 가는 곳에 항상 수십 명 젊은 사람들이 이름은 친구나 실상은 신하 격으로 따라 다녀, 그 말이면 아무도 거스르는 이가 없었다. 다투어 김술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 곁에 가까이 가서 김술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보려 한다. 그래서 마치 왕벌 가는 곳에 일군 벌들이 악을 쓰고 따르는 모양으로 김술이 잠깐 자리를 옮기면 모든 무리는 그 뒤를 따랐다.
『대감 한번 가 보시오.』
하고 한 사람이 김술을 충동니다. 김술 집 자손들은 나이 이십만 넘으면 급손(級飡)이요, 파진손(波珍飡)이다. 서불한 김성의 집에 가 알지로만 태어나도 대아손(大阿飡) 중아손(重阿飡) 을 떼어 놓은 당상이다.
『내 어디 가 볼까?』
하고 김손은 일어났다.
『마오. 가서 망신하면 무엇하오.』
하고 붙드는 이도 있었으나, 세상에 나온 뒤로 일찍 하고 싶은 일을 못하여 본 일이 없는 김술은,
『내 얼러보마 저도 사람이려든.』
하고 찬란한 급손(級飡)의 자주빛 관대에 패옥 소리도 낭랑와게 종자(從者) 두 사람만 데리고 계영의 장막을 향하였다. 뒤에 남은 패들은 병에 남은 술을 기울이고 하회가 어찌되나 바라보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였다.
김충이 계영의 장막에서 수십보나 되는 곳에 왔을 때에 김술은 바로 계영의 앞에 이르러 아낙네에게 하는 예로 먼저 읍하고,
『춘부대감 기체 어떠하시오?』
하고 계영에게 말을 붙이었다.
계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대로 잠깐 몸을 일으켜,
『자친 기운 안녕하십니다.』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눈도 들지 않고 가만히 섰다.
김술은 한걸음 계영에게로 가까이 다가 서서 계영의 아름다운몸을 훑어보며,
『나를 모르시오? 나는 급손 김술이요.』
하고 빙그레 웃는다.
『규중에 천한 몸이 고루 과문하여 성화흘 받든일이 없사옵니다.』
하고, 계영은 한번 눈을 들어 서리같이 싸늘하고 엄숙한 눈매로 김술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아버지를 항상 원수로 여기고 온갖 흉계를 다하여 몰아 내려 하던 원수 김성의 손자 김술은 계영아기가 몰랐을 리가 없다.
김술은 계영이 자기를 모른다는 말에 화를 더럭 내며,
『나를 혹 몰라 보아도 서불한 김성마마를 모를 리는 만무하니, 나 급손, 김술은 그 손자요.』
하고 계영을 노려 본다.
김술의 말에 계영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서불한 김성은 이름으로 들은 법도 하거니와, 그댁이 본래 내 집과 알맞는 사이가 아니어든 내게 말씀하시는 것만 부질없는 일이요.』
하고 자리에 앉아 버린다.
이 말에 김술의 기름진 얼굴이 푸르락누르락하며 눈초리가 위로 올라간다.
자기와 말 한 마디 하여 보는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는 알지언정, 이 하늘 아래 자기더러 부질없는 말한다고 할 사람은 있을 것을 믿지 못하였다.
더구나,「서불한 김성의 이름으로 들은 법은 하거니와」하던 계영의 낯빛과 어조가 말할 수 없이 자기를 멸시하는 듯하여 김술의 가슴 속은 벌컥 뒤집히는 듯하였다.
김술은 계영의 앞으로는 한덜음 더 들어 가며,
『이봐라, 지금 한 말은 정신 있어 한 말이냐, 내가 누군 줄을 알고 한 말이냐, 철없는 어린 계집이 실수로 한 말이냐, 다시 한번 바로 혀를 놀려 보아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김술이 계영아기 앞으로 대드는 것을 보고 시월이 두팔을 벌리고 김술의 앞을 막아 서며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비켜라! 아무리 예법을 모르는 북방 오랑캐의 종이기로 어는 안전이라도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느냐 비켜라!』
하고 대든다.
김술이 더욱 노하려 주먹을 들어 시월의 뺨을 치며,
『요년! 요년!』
하고 벌벌 떠니, 김술을 모시는 두 사람 달려들어 시월을 끌어 낸다.
시월이 아니 끌리려고 몸부림을 하며,
『어느 놈이든지 우리 댁 아가씨 몸에 손가락 하나만 대어 보라. 그놈의 간을 씹어 먹고야 말리라.』
하고 자기의 팔을 붙든 사람들의 손을 물어 뗀다.
김술이 허리에 찼던 칼을 빼어 둘러 메며,
『내 서불한 김성마마를 몰라 보는 년의 모가지가 쇠로 되었는가를 시험하리라.』
하고 계영을 위협한다.
계영이 상긋 웃고 일어나며,
『좋은 말이로다. 그 칼로 내 목을 치라. 천년 신라의 우로를 받고도 오랑캐 왕건의 개가 되어 그 발을 핥고 제 임금을 배반하는 역적 김성의 집 칼이 무엇으로 되었나 시험하여 보리라. 시중 유렴의 딸이 칼이 무서워할 줄 알았더냐? 자 쳐보아라!』
할 때에 그 소리는 하늘에 오를 듯이 힘이 있고 눈에는 불이 번쩍이는 듯하였다. 숲속에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큰일났구나 하고 일어나서 무서워 감히 가까이는 오지 못하되 먼 발치에서 어찌되는가 하고 주먹을 땀을 쥐고 보고 있다.
김술은 계영의 얼굴과 말에 두려움이 생긴 듯이 한걸음 뒤로 물러간다.
이때에 시월이 자기를 붙들었던 사람들의 팔목을 물어 떼어 입에 피를 묻혀 가지고 뛰어가 계영의 앞을 막아 서며, 허 못난놈 전장에를 『 , ! 나가면 쥐구멍만 찾아도, 힘 없는 부녀 앞에서는 호기가 당당하구나.』
하고 빈정거렸다. 밤으로 도망하여 온 것을 가리킨 것이다. 이 말만 들으면 김술은 부끄러움과 분함을 못 이기어 죽을지 살지를 몰라, 어떤 친구 하나의 목을 벤 것으로 유명하다.
과연 김술은 칼을 들어 시월을 치려 하였다. 그러나 김술의 칼이 미처 시월의 목에 떨어지기 전에,
『이놈아, 내 몽동이 맛부터 보아라.』
하고, 지금까지 김충과 함께 소나무 그늘에서 보고 있던 두껍쇠가 내달아 김술의 뒤통수를 방망이로 대가리가 깨어지라고 내려 갈겼다.
김술은 칼을 던지고 땅에 거꾸러졌다.
두껍쇠는 나는 기운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이 김술을 따르는 두 사람 중에 칼을 들고 덤비는 한 사람을 갈기니, 그 사람은 거꾸러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칼을 끌고 달아난다. 두껍쇠는 댓 걸음 그 사람을 따라 가다가,
『허, 이놈들 허울만 좋았지 기운은 한땀도 없구나.』
하고 껄껄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 김술이 겨우 정신을 차려 비씰거리고 일어나나 코와 입으로는 피가 나온다. 김술이 일어나 칼을 버리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 두껍쇠 몽둥이를 들고 따라 가니, 김술이 두껍쇠를 보고 겁하여 땅에 자빠지며 두 손을 합창하여 차마 말을 못하고 살려 주기를 빈다.
두껍쇠는 몽둥이를 짚고 김술의 피 묻은 얼굴을 들여다 보며,
『이놈 몇 푼어치 못되는 놈이 건방지게 —————우리 댁 나리마님 분부만 아니시면 대번에 골을 까서 주린 까마귀나 한밥 먹이련마는 따라지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니, 하늘 높은 줄이나 알아라!』
하고 고개를 돌려 「퉤!」하고 침을 뱉고 몽둥이를 끌고 돌아 온다. 계영과 시월이는 놀라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잠시 기절을 하였다. 사람은 많이 계영의 장막 앞으로 모여 들어 약량에서 약을 내어 주는 이도 있고, 기절한 두 사람의 팔다리를 주무르는 이도 있다. 그러나 김술의 후환이 두려워 모두 뒤를 힐끗힐끗 돌아 본다.
김충은 여전히 아까 섰던 나무 밑에 서 있다. 두껍쇠는 것을 보고 몽둥이를 메고 뛰어 간다, 사람들은 두껍쇠가 뛰어 가는 곳으로 눈을 보내어 거기 김충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껍쇠는 가만히 김충을 바라보았다. 김충은 두껍쇠가 한 일을 옳이 여긴다는 뜻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김술은 여러 사람의 부액을 받아서 간신히 제자리에 돌아 가 누웠다.
사람들은 다투어 김술의 얼굴에 피를 씻고 팔다리를 만지고 약을 먹이고 김술의 칼날도 없는 빈 칼집을 떼어 들도 울지 웃을지 어찌할 줄을 몰랐다.
김술은 숨을 돌리자마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못 견디게 굴었다. 공연히 발길로 차고 팔로 둘러치고 짜증을 내었다. 사람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삥 둘러 서서 서로 눈치만 보았다.
『나를 때린 놈이 어떤 놈이냐?』
하고 김술은 소리를 벼락같이 지르고 일어났다.
『대아손 김부(大阿飡金傅) 집 종 두껍쇠놈이요.』
하고 한 사람이 아뢰었다.
『김부? 효종의 아들!』
하고 김술은 경멸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김술이 김충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김충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손인 자기의 체면에 옳지 아니한 것 같고 이손이요 시중이던 효종이 겨우 자기와 동등한 듯하였던 까닭이다.
김충의 집 종놈의 손에 몽동이로 얻어 맞은 것이 골이 쪽쪽으로 흔들리고 눈망울이 빠지는 듯하여 기운을 쓸 수가 없어 도로 펄썩 주저앉는 것을 사람이 사방으로 붙들었다. 그제야 김술이 좀 기운을 내어,
『그래 너희들 중에는 그 두껍쇠놈의 모가리를 잘라 오는 놈이 한놈도 없단 말이냐—————저 유령이놈의 식구를 모조리 도륙을 하고 효종이놈의 집안을 씨도 아니 남기도록 없애 버리지를 못한단 말이냐? 아이고 분해라!』
하고 이를 뿍 간다.
그러나 아무도 두껍쇠의 몽동이를 대적하려고 나서는 이는 없고,
『진정하오, 진정하오.』
하고 어름어름할 뿐이다.
김술은 더욱 분개하여,
『진정이 무슨 진정이냐? 두껍쇠놈이 왔을 양이면 그놈의 상전이 왔을 터이니, 우선 두 놈의 모가지를 베어 내수레 뒤에 달기 전에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고 살기가 등등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내가 두 놈의 모가지를 베어 오리다.』
하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은 두껍쇠의 몽둥이와 김충의 칼이 무서운 줄을 안다. 김충은 해인사에서 어떤 신전에게 삼년 동안 칼 쓰기를 배워 칼을 두르면 몸이 공중에 날고 전신이 칼빛이 되며, 소나기가 쏟아지더라도 몸에 비 한 방울 아니 맞는다는 소문을 듣는 사람이요, 두껍쇠의 몽동이는 대야성 싸움에 혼자서 삼백명 군사를 두들겨 내었다는 무서운 몽둥이다.
나무를 치면 나무가 중동이 뚝뚝 부러지고 서악(西岳) 바위를 때리 매바위가 벙싯하고 틈을 내었다는 무서운 몽둥이다. 서뿔리 덤비다가 한 개 얻어 맞으면 눈코도 분별치 못하게 육장이 되고 말 것이니, 그런 일은 생각만 하여도 진저리가 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에서 김충과 두껍쇠를 대적하는 것이 이롭지 아니하니 차라리 돌아 가 금군을 풀어 임금의 명이라 하고 김충과 유렴의 일족을 잡아 들여 마음껏 원수를 갚는 것이 좋은 뜻을 말하였다. 그러나 김술은 듣지 안하고 몸소 김충과 자웅을 결단하기를 주장하였다.
『내 칼, 내 칼. 이 겁 많은 놈들아, 내 혼자 두 놈의 모가지를 베리라.』
하고, 칼을 찾을 때에 한 사람이 빈 칼집을 두 손으로 받들어 김술에게 드렸다.
『칼날은 아까 넘어진 곳에 버리고 오시었소.』
하고 칼집을 들고 선 이가 대답을 한다. 김술은 빈 칼집을 받아 들고 칼날 꽂히었던 구멍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섰다.
이때에 두껍쇠가 한손에 뭉투툭한 몽둥이를 끌고 한손에 김술의 칼날을 번쩍번쩍 내아 두르며,
『칼날이 여기 있소.』
하고 소리를 치며 가까이 온다.
사람들은 모두 황겁하였다. 김술도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도망할 처지도 못되어 일제히 칼자루에 손을 대고,
『이놈!』
하고 두껍쇠를 노려 보았다.
두껍쇠는 잠깐 멈칫하던 몽둥이를 어깨에 들려 메고, 김술의 칼도 어깨에 둘러 메고 태연히 가까이 와서,
『여기 있소. 우리 댁 나리마마께서 이 칼 갖다 드리라 하오.』
하고 칼을 공중에 던지어 칼끝을 손으로 받아 쥐고 칼자루를 김술에게 쑥 내밀었다.
김술은 손을 내밀아 그 칼을 받아 드는 듯 마는 듯 그 칼로 두껍쇠를 치려 하였다. 두껍쇠가 몽둥이를 들어 칼을 막으며,
『망년이시오. 모처럼 칼을 갖다 주는 사람을 상급은 못 줄망정 칼로 치는 것이 당하오? 나는 혼자요 대감은 여러 무리를 거느렸으니 나를 죽이기는 바쁘지 아니하되, 우리 나리마마 전갈이나 다하거든 죽일지라도 칼은 칼집엔 넣으시오.』
하였다.
김술은 하릴없이 두껍쇠의 몽둥이에 눌린 칼을 들어 흙을 떨어 칼집에 꽂았다.
두껍쇠는 김술과 모든 사람을 한번 둘러 보더니,
『전장에 나아가 군사는 버리고 도망할지언정 위로서 내리신 칼일랑 버리고 도망하시지 맙소사고. 대장군마마 체신에 빈 칼집을 차고 달아나는 꼴이 하도 창피하니 이 칼날은 돌려 보냅니다고.』
하고 몽둥이를 끌고 물러났다.
김술은 두껍쇠의 말에 두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칼을 빼어 들고,
『이놈 닫지 말아.』
하고 두껍쇠를 따른다.
두껍쇠 우뚝 서서 돌아 보며,
『닫기는 천병 만마가 몰아 오기로 달을 내가 아니오마는 볼 일을 다 보았으니 돌아 가는 것이요. 만일 싸울 뜻이 있거든 이번엘랑 칼을 아니 잃도록 옷고름에 단단히 비끄러매도 여러 놈이 한목 대드오. 한놈 싸우기 파리 잡는 것 같에서 시끄럽소.』
두껍쇠가 껄껄 웃고 달아나는 것을 김술이 따르고 삼십여 명 김술의 사람들도 모두 하릴없이 칼을 빼어 들고 따른다.
두껍쇠는 김충이 하라는 대로 김술이를 끌고 김충의 앞으로 와서 몸을 비켜 김충의 뒤에 섰다. 김술은 칼을 두러 멘 채로 김충의 앞에 선다. 숨만 씨근거리고 말을 못한다.
김충은 칼도 빼려 아니하고 팔짱을 낀대로 소나무에 기대어 서서 웃으며,
『칼날 보낸 것은 받았소?』
하고 물었다.
『그래 받았다. 그 칼로 네 모가지를 베러 왔다.』
하면서도 김술은 얼른 대들지를 못한다.
김충은 여전히 웃으며, 그렇게 함부로 칼을 『 빼지도 말려니와, 부득이 칼을 빼더라도 던지고 달아나지는 마시오. 보기 흉업소.』
하였다. 김술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 감히 싸우기를 겨루느냐? 내가 네 모가지를 저종놈의 모가지와 한 끈에매어 내 수레 뒤에 달지 아니하고 돌아 갈 줄 알았더냐? 내 마땅히 금군을 풀어 너희 집 씨를 멸할 것이로되 대장부 울분한 일을 보고 시닥을 참을 수 없어 너와 한 칼로 싸우려 하니 개 같은 모가지를 눌여 내 칼을 받거나 감히 싸울 생각이 있거든 대들라!』
하고 자못 호령이 추상과 같다.
김충은 또 한번 김술을 비웃어 덕을 한번 쳐들고,
『개라 하니 네야말로 대대로 왕건의 개어니와, 내 십년에 갈은 칼을 너 같은 하룻강아지의 피로 더럽힐까 자하하였거니와, 마일 그처럼 네 소원이어든 내 칼의 매운 맛을 보여도 꺼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던지시 칼자루에 손을 대어 서리 같은 칼날을 빼어 들고 나섰다.
김술은 칼을 들어 삼십명 자기 무리를 돌아 보며,
『사정 없이 이 진헌의 강아지를 엄살하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자기는 뒤로 물러서 소나무 하나를 등지고 서서 두 손으로 칼자루를 붙들고 어름어름한다.
삼십명 무리는 일제히 칼을 빼어 들고 김충을 엄습하나 김충은 다만 칼을 들어, 들어 오는 칼을 막을 뿐이요, 나아가 사람을 찌르려 하지는 아니한다. 그러하여도 김충의 한 칼이 능히 삼십여 명의 칼을 막았다.
이 광경을 보고 두껍쇠는 몇 번이나 몽둥이를 들었다 놓아다 하면서도 상전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는 두 다리만 들먹거리고 침을 삼키고 보고 있었다.
삼십명 무리가 김충의 한 칼에 쇠꼬리를 피하는 하루살이 떼 모양으로 이리 저리로 밀리는 것을 볼 때에 김술은 겁이 났다. 김충이 하려고만 하면 삼십 명 무리를 대번에 베어 버리고 그 무서운 칼날은 자기의 가슴을 겨눌 것만 같았다. 김충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장난하는 어른 모양으로 칼을 둘렀다. 삼십명 무리도 차차 겁이 났다. 그래서 아무쪼록 뒤로 돌며 소리만 질렀다.
한바탕이 이렇게 한 뒤에 김충이 칼을 내리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것을 보고 두껍쇠가 몽둥이를 들고 나섰다.
나리마님 칼이 『 울겠소. 저런 스라소니 무리는 소인의 몽두이가 제격이요.』
하고,
『이놈들 내 몽둥이에 대가리 맞을라. 대가리가 아깝거든 땅바닥에 납작 엎디어 꼼짝 말아라.』
하고 껑청껑청 뛰며 몽둥이를 내어 둘렀다.
두껍쇠 몽둥이 바람에 칼 몇 개가 부러져 떨어지고 선필 장군(善弼將軍)의 아들이 이마빼기에서 피를 쏟고 아이고 하고 쓰러지었다.
피를 본 두껍쇠는 피를 본 호랑이 모양으로 더욱 기운을 얻어 날뛰었다.
삼십명 사람들은 두껍쇠 바람에 칼을 끌고 달아나 버렸다. 이것을 본 김술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나무로 깎아 세운 사람 모양으로 소나무에 등을 딱 붙이고 벌벌 떨었다.
두껍쇠는 사람들이 다 달아난 뒤에도 남은 기운을 억제할 수 없는 듯이 몽둥이를 한참이나 두르다가 껄껄 웃고 사방을 돌아 보고,
『허허, 잘도 달아난다. 달아나기로는 모두 명장들이로구나.』
하고, 벌벌 떨고 섰는 김 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몽둥이가 들먹들먹한다.
이때에 김충이,
『두껍쇠야.』
하고 불렀다.
그제야 두껍쇠가 몽둥이를 끌고 김 충의 앞으로 간다. 두껍쇠가 돌아서서 가는 것을 보고 김 술은 겨우 팔다리를 수습하여 달아나고 선필 장군의 아들도 비씰거리고 칼 하나를 쥐어 들고 달아난다.
그런 뒤에야 먼 발치로 피하여서 보던 사람들이 다시 몰려나와 김 충과 두껍쇠를 에워 싸고 말은 못하고 이 무서운 두 장수를 보기만 하였다.
『저이가 못난이 대아손의 아들이야.』
하는 이도 있고,
『응, 역시 속에 든 재주가 있으니까.』
하는 이도 있었다. 못난이 대아손이란, 김 충의 아버지 김부의 별명이다.
사람 줏대가 없다 하여 못난이 대아손이라는 별명을 들으나 기실은 그다지 못난이도 아니었다.
김 충은 두껍쇠를 시켜 계영아기를 집으로 모시고 가게하였다. 작별할 때에 계영아기는 김 충에게 무수히 사례하였으나, 김 충은 다른 말이 없이 다만 계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계영의 마음에 여우다운 김 충의 모양이 깊이깊이 박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장안에는 김 충과 김 술의 싸움 이야기로 찼다. 보고온 사람들은 못 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고, 또 그 이여기흘 들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온 듯이 다른 사람에게 또 전하였다. 모두 김 술이 패한 것을 고소하게 여기고 김 충과 두껍쇠를 더할 수 없이 칭찬하였다.
『하지마는, 김술이가 가만히 있을까?』
하고 김 충의 장래를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더 할 수 없는 창피를 당한 김 술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김 술은 집에 돌아 오는 길로 그 조부 김 성에게 오늘 불국사에서 김충에게 수모당한 말을 하였다. 그리고 두껍쇠의 몽둥에게 얻어 맞아 닭의 알만큼이나 부르터 일어난 뒤통수를 보였다.
아들도 일찍 죽어 버리고 손자 하나만을 애지 중지하던 김 성은 깜짝 놀라는 양을 보이고 인하여 그 무서운 눈에 분노하는 불이 번쩍하였다.
『그래, 그놈의 모가지를 베어 왔느냐?』
하고 김 성은 소리를 질렀다.
『못 베어 왔어요.』
하고 김 술은 고개를 숙였다.
이 말에 김 성은 서안을 치며,
『그래,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원수를 못 갚고 그 꼴을 하고 집으로 돌아 온단 말이냐? 내 가문을 더럽히는 놈 같으니. 김 충의 모가지를 들고 들어 오기 전에는 다시 내 눈앞에 보이지 말아라.』
하고 호령을 하였다.
김 술은 같이 갔던 무리들이 모두 겁이 나서 달아났단 말과 자기는 끝까지 싸왔으나 혼자서는 당할 수 없더란 말을 하고, 금군을 풀어 원수를 갚아 달란 말로 주부에게 빌었으나 김 성은 듣지 아니하고 머리를 흔들며,
『가문을 더럽히는 놈은 집에 들일 수없다. 네가 가진 벼슬도 내일부터는 파직이 될 것이니, 김충 부자와 유렴 부녀의 목을 베어 오기 전에는 집에 들지 말라.』
하고 입을 다물었다. 김 성은 이번 기회에 김 술의 분을 돋우어 항상 말썽되고 미운 두 강적을 없애 버리려 한 것이다. 아무리 김 성이라 하더라도 조그마한 자기의 사사 혐의로 금군을 움직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김 술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것을 보고 김 성은 안석에 몸을 기대며 빙그레 웃고 혼잣말로,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유렴 김부 두놈을 어떻게 처치할까 하였더니 이제는 걸려 들었구나 허허.』
하고 마침 꽃 같은 받들고 들어 오는 인삼 달인 것을 유쾌하게 들이킨다.
시녀가 약 그릇을 가지고 물러나간 뒤에 김 성은 이윽히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방에 모시는 동자를 불러,
『재암성 장군 부르라 하여라.』
하고 분부를 내리고는, 또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으로 퍼렁거리는 촛불을 바라보고 있다.
이때에 마침 재암성 장군 선필(載岩城將軍善弼)은 그 아들 민홍(敏弘)이 김 충의 종 두껍쇠의 방망이에 얻어 맞아 이마가 붓고 터지고 겨우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집에 돌아 온 것을 보고, 또 김 술이 그와 같은 봉변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김 성의 집을 찾아 온 것이다.
벼슬로 말하면 일개 장군에 지나지 못하지만 선필은 김 성의 심복으로 처음부터 김 성과 왕건 사이에 뜻을 통하는 셋사람이 된 것이다. 선필을 재암성 장군으로 둔 것도 재암성이 고려에 가는 통로의 중간에 잇기 때문이다. 벼슬은 비록 재암성 장군이러 하더라도 재암성에 가 있는 일은 얼마 없고, 대개 서울에 있어서 김 성의 모사가 된다. 선필이 서울 떠나 임지(任地)로 가는 날은 반드시 김 성이 왕건에세 무엇을 은밀히 통할 일이 잇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왕건이 김성에게 무엇을 통할 일이 있는 때문이다.
선필은 키가 작고 눈이 가늘고 노란 수염이 아랫턱에만 조금 나고 목소리가 가늘고 얼른 보기에, 한 궁한 선비와 같건마는 그 조그마한 눈에서는 끝없는 꾀가 흐르고 목소리는 가늘망정 언변이 좋아 거짓말이 다 참말 같았다. 본디 미미한 다문의 출생으로 어찌어찌하다가 왕건의 눈에 들어 마침내 김 성의 심복이 된 것이다.
선필은 들어 오는 길로 허리에 찼던 칼을 떼어 동자에게 주고 공손히 김성의 앞에 절을 하고 나서 김 성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으며,
『작은 대감께서 김 충에게 봉변을 하시었다 하오니, 얼마나 염려되시오니까?』
하고 가정 공손한 어조로 인삿말을 한다.
김 성은 껄껄 웃으며,
『나는 술이놈을 내어 쫓았네. 가문을 더럽히는 놈을 집에 들일 수가 있다. 자네도 그리하소.』
하였다.
선필은 눈을 깜박깜박하며,
『내어 쫓으시면?』
하고 물었다.
『김부 부자와 유렴 부녀의 목을 베어 가지고 오면 다시 문에 들인다고 하였네.』
하고 김 성은 선필의 눈치를 슬쩍 본다. 선필은 잠깐 고개를 숙이고 한번 침을 삼키며,
『과연 지당하시오.』
하고 상긋 웃는다. 그것은 김 성의 뜻을 알았단 말이다. 김술을 내어쫓는다 함은 아무리 하여서라도 김 부 부자와 유렴을 없이하라는 뜻이요, 김 성이 선필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리하였으니 선필도 김 술을 도와 이 일이 이루도록 힘쓰라는 뜻이다. 이만큼만 말하고 한번 빙긋 웃으면 다 알았다는 것이요, 또 선필이 한번 웃으면 김성도 선필이 알아 들은 줄을 알아 보는 것이다.
선필은 이윽히 눈을 감고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소인도 대감을 본받아서 자식놈을 내어 쫓겠읍니다.』
하고 갑저기 얼굴에 수색을 띄우며,
『그러하오나 한 가지 걱정이 있읍니다. 김 충은 검술이 비범하옵고 또 듣사온즉, 김 충이 불측한 뜻을 품어 많은 도당을 모은다 하며 그 도당이란 것이 모두 무뢰난화지배(無賴難化之輩)라 죽기를 노라리로 아는 놈들이온즉 가벼이 볼 수 없사옵고, 또 김 부를 건드리면 진헌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옵고, 유렴 시중을 건드리면 민심이 요란할 듯하오니 장히 어려운 일인가 하옵니다.』
선필의 말에 김 성도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에 수색이 돌았다.
조물성(曹物城)싸움 이래로 왕건은 진헌을 두려워하며 신라에 대하여 모르는 체하는 태도를 취하고, 진헌을 왕이 자기에게 대하여 무신한 것을 분히 여겨 이를 갈고 있으니, 만일 김 부의 집을 건드려 진헌에게 또 한 핑계를 주면 진헌은 반드시 싸움을 돋을 것이요, 그리하더라도 왕건이 움직이지 아니하면, 진헌의 군사는 무인지경 같이 서울로 밀어 들어 올 것이요, 또 시중 유렴은 백성들이 높이 우러러 보는 사람이니 가볍게 그를 건드려 민원을 사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김성도 자기가 백성들 중에 미움 받는 줄을 모르는 바가 아니요, 뭇백성들의 힘 없는 입이 어떻게 무서운 것인 줄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건댄, 아무때라도 유렴과 김 부를 없애 버려야 할 것이다. 그 두 사람을 두고는 마치 두 팔에 무슨 무거운 것이 매어 달린 듯하여 마음대로 일을 할 수가 없을 뿐더러 못난이 대아손이라는 김 부가 결코 못난이가 아니요, 가딱하면 진헌을 등에 지고 자기를 내려 누를 줄을 김 성은 알아 본다. 김성에게 무섭기는 시중 유렴보다도 도리어 김 부다.
김 성은 오래 침음하다가,
『선필의 지혜도 마침내 끝이 있었던가?』
하고 웃으며 선필을 한번 긁었다.
선필은 김 성의 긁는 뜻을 벌써 알아 차리고 역시 웃으며,
『모내기(蛟川)에 물이 마르기로 선필의 꾀가 마르리까.』
하였다. 이것은 자기에게만 맡기라는 뜻이다.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은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심중에는 유렴과 김 충을 없이하여 아주 후환을 끊어 버릴 계책이었다.
김 술이 집을 쫓기어나 서악(西岳) 밑에 집을 잡고, 칼쓰는 장사와 자객을 많이 모아 들여 마당에 볏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고 밤낮으로 칼 쓰기를 익힌다는 소문이 서울에 낭자하였다. 그것은 김 충과 계영아기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함인 것은 누구나 다 알았다. 이런 일도 선필이가 꾀를 낸 것은 물론이다.
김 충은 김 술이 금군으로 자기 집을 에워 쌀 줄만 알았다가 그렇지 아니한 것을 의외로 생각 하였을 뿐더러, 그 일이 있은 지 십여 일 후 김충의 조부 효종의 팔십 되는 생신에 김 성이 몸소 와서 치하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더욱 의의로 생각하였다. 그때에 김 성은 「어린것들 싸움에 무슨 계관하랴」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날 김 충은 김성에게 인사도 하지 아니하고 몸을 피하여 버렸다. 그것은 김 성에게 절하기를 싫어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김 충의 집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짐 술은 원수 갚을 준비를 하면, 다른 편으로 김 성은 모르는 체하는 속에 도리어 무서운 흉계가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김 성은 다만 효종을 찾아 볼 뿐이 아니요, 남교(南郊)에 류렴을 찾았다.
지금 진헌이 날로 군사를 모아 조련하고 서울을 엄습한다고 장담하니 이 일을 어찌하랴 하는 의논을 한다는 것이 김 성이 유렴을 찾아 본 핑계였다.
그때에도 유렴은 도리어 김 술이 불국사에서 계영에게 무례한 말을 한 것을 사례하고, 이렇게 국보 간난(國步艱難)한 때에 아이들의 조그마한 사혐으로 피차에 정의가 소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말하였다. 유렴도 김성의 말에 감동하여 진헌을 대할 계책을 말하고 크게 정사를 혁신하여 나를 바로 잡기를 김 성에게 권하였다.
김 성은 떠날 때에, 내가 어두웠소 『 . 지금 생각하면 대감의 말씀이 다 옳았소. 왕건은 분명히 이심(二心)을 품은 모양이요.』
하고 왕건을 잘못 믿었던 것을 후회하는 뜻을 간곡히 말하였다.
유렴이나 김 부가 그렇다고 김 성을 믿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로되, 이렇게 찾아 가서 은근하게 정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다소간 마음이 아니 풀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유렴은 정직한 사람이요, 김 부도 못난이라는 별명을 들을 이만큼 충후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김 성의 뜻을 아주 의심하려고도 아니하였다.
그뿐더러 김 성이 도리어 김 충과 유렴의 집에 찾아 가 사례하였다는 말을 듣고 세상 사람들도 이 일을 다 의외로 생각하고,
『그래도 서불한은 서불한이다.』
하고 김 성에게 대하여 호의도 가지게 되었다.
유렴은 불국사 사변을 듣고 날로 김 술의 원수 갚을 것을 두려워하다가 김 성이 왔다 간 뒤에야 비로소 적이 마음을 놓고, 하루는 사람을 보내어 김 충과 두껍쇠를 청하여 딸 계영을 구원하여 준 뜻을 감사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날에 김 충은 유렴 집에 상객이 되어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유렴은 아들이 없고 오직 후실에 계영 하나가 있었을 뿐이므로 유렴 내외는 김충을 친아들같이 귀애하는 저을 표하였다.
계영도 한자리에 앉아 김 충을 대접하고 맛있는 먹을 것을 권하였다.
계영은 이날에 약간 얼굴에 상기가 되어 그 뺨이 복숭아꽃같이 불그레하고 눈에는 수삽한 태도를 가진 중에도 억제할 수 없는 기쁜 웃음을 띄었다.
무슨 일이 있어 하얀 계영의 두 발이 사뿐사뿐 꽃 무늬 놓인 돗자리 위를 걸어 갈 때에 은은한 향기가 김 충의 코에 맡히는 듯하였다. 계영은 옷 속에 당나라에서 온 울금향을 찬 모양이다.
유렴 시중도 술이 반쯤 취하여 난간에 의지해 후원의 녹음을 바라보며 나라 일이 점점 글러 가는 것과, 이 나라 일을 바로 잡을 사람이 없는 것을 말하고는 길게 탄식하고 김 성의 죄상을 말하였다. 그러나 유렴의 말은 아무리 슬픈 말이라도 과도한 슬픔을 보이지 아니하고 비록 김 성의 죄상을 말할 때에도 예를 잃은 말을 쓰지 아니하였다. 그의 그리 길지 아니한 성긋한 흰 수염과 크도 적도 아니한 얼굴은 모두 온화하기 춘풍과 같다.
그러나 그의 부드러운 말에는 마디마디 추상과 같이 변할 수 없고 범할 수 없는 의리가 품겨 있었다. 김 충은 전부터 유렴의 덕행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늘 . 사사로이 접하여 더욱 그의 덕을 흉모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계영의 아름다운 모양에, 한편으로는 유렴의 온후한 덕에 김충은 일찍 이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기쁨을 맛보고, 유렴이 주는 대로 사양치 않고 술잔을 받아 먹었다.
『옛날은 세상이 이렇지 아니하였더니, 내가 젊었을 때만 하여도 세상에는 악인보다 선인이 많았고 경문대왕 시절에만 하여도 그래도 누구누구하면 나라 일을 제 일 보다 먼저 하는 선비가 많았더니마는, 위홍(魏弘)이 때부터 세상이 아주 뒤집혀 버렸나니. 그때에 우리는 아직 젊었거니와 국학(國學) 선비들은 위홍을 베려고 도끼를 메고 상소를 하고, 하다가는 죽건마는 그래도 뒤를 이어 또 하였더니. 그러다가 거인(巨人) 선생이 옥에 매일 때에 나도 저 죽는 일길손 신홍과 동학한 선비들과 같이 섬거적을 쓰고 대화문 앞에 엎디어 상소를 하였더니. 거인 선생은 참말 우리 신라에 마지막으로 나신 어른이었다니. 글로 말하면, 고운(孤雲)이 나을는지 모르지마는 거인 선생은 대의(大義)를 듣고 사람을 화(化)하시는 큰 힘이 있어서 선생이 일찍 한번이나 자기 몸이나 집을 생각해 본 일이 있었을까 ————없었을 것이로세. 그 어른이 주야로 생각하는 것은 대의려니 ————충성이러니. 그래도 우리 나라 명운이 오늘날까지 부지해 오는 것도 그 어른의 힘이나. 응 또 한 분 있었네. 백의 국선(白衣國仙)이라고 세상에는 나오지 아니하고 주류 천하하면서 보국안민(保國安民)을 가르친 이가 있었다니. 궁예와 진헌도 백의 국선에게 배웠다 하나 도리어 나라에 환이 되었지마는 ————그런데 이제는 없네. 아주 우리 신라의 의인의 통(統)이 끊어졌네.』
하고 유렴은 길게 한숨을 쉰다.
유렴의 회구담에 김충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자기가 나라 일이 뜻대로 아니 된다 하여 청루 주사로 방랑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비록 뜻 같은 사람을 차아 하나 둘 의를 맺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는 거인 선생에게 비겨 여러 층 떨어지는 하잘 것 없는 사람같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의인이 통이 끊어질 리가 없다. 내가 의인의 통을 이를 사람이 아니냐.>
하는 자부심도 생겼다. 그래서,
『설마 의인이 통이 끊어질 리가 있읍니까? 하늘이 우리 신라를 버리지 아니하실진댄 반드시 의인이 나리라고 믿습니다.』
하고 정색하고 옷깃을 바로하며 말하였다. 이 말에 유렴은 대답이 없이 물끄러미 김 충을 바라보더니,
『하늘이 우리 신라를 버리시었네.』
하고 고개를 수그린다.
유렴은 김 충이 충의의 마음을 줄을 안다. 그러나 김 충의 상을 보고 말하는 바를 들으매, 비록 재주도 잇고 충의도 있으나 백이숙제와 같이 열사는 될는지 몰라도 회천의 웅도를 이를 영웅 기상이 없었다. 연전 조정에서 김충이 왕건의 사자를 베라는 말을 할 때에도 유렴은 김충의 뜻을 가상하였으나, 그 용모를 보고 어성을 들을 때에 큰일을 이룰 영웅 기상이 없는 것을 속으로 한탄하였었다. 지금 보아도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하였다.
태평성대에 태어났다면 간간 악악(侃侃㗁㗁)의 사는 될 것이언마는, 난세에 태어난 김 충은 오직 충렬사(忠烈士) 밖에 못되리라고 유렴은 본 것이다.
김 충은 유렴의 말에 심히 불안하였다. 자기의 큰 뜻과 재주와 큰 충성을 몰라 보는 듯하여 마음에 한껏 노여웠다. 그러나 유렴의 말은 언언 구구가 다 진리인 듯하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 충은 슬펐다.
『그러면 이 나라와 이 창생을 어찌하시려 하옵니까?』
하고 김충은 정색하고 물었다.
유렴은 이윽히 침음하더니,
『내 어찌 차마 말하리——하늘의 뜻을 낸들 어이 알리.』
하고, 처마 끝에 흩날리는 꽃이 바람도 없는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늙은 몸이 오직 죽을 날을 기다릴 뿐이로세.』
한다.
그 말이 심히 수참하여 곁에서 들던 부인도 눈물을 떨어뜨리고 계영도 고개를 돌린다.
칠십 평생을 충의로써 나라를 붙들려고 싸우다가 마침 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늙은 재상의 이 말은 과연 슬펐다.
김충도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설마 그러리까. 천년 구방에 그런들 영웅 열사가 없으리까.』
하고, 계영은 느끼는 소리로 늙은 아버지룰 위로하고 새로 술 한잔을 따라 드렸다.
밖에서는 두껍쇠가 술이 취하여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온다.
유렴은 술잔을 권하는 딸의 등을 어루만지며,
『가엾다. 너는 말세에 태어났으니 내가 죽은 뒤에 너는 어찌되리?』
하고 술을 마신 뒤에,
『계영아, 내 마음이 심히 비감하는 네 거문고나 한 가락 아뢰라.』
하고 김 충을 향하여, 변변치 못한 거문고언마는 『 제가 늙은 아비를 위로한다고 애써 배우는 것이니 들어 보라.』
한다, 김 충은 눈물 머금은 눈을 들어 계영을 보았다. 시녀가 자져온 거문고를 무릎 위에 놓은 계영의 자태는 이 세상 사람들과는 같지 아니하다. 불국사에서 계영을 볼때에는 「석굴암 부처님」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제 보건대, 마음에 술픔만 가득히 찬 사람과 같았다 ———— 그것이 더 아름다왔다.
계영은 옥으로 깎은 듯한 손가락으로 줄을 고른다.
계영이 타는 곡조 중에는 귀남교(貴南郊)라는 것이 있었다.
『갈까나 갈까나 남교를 갈까나 이 몸이 늙었거든 머물러 무엇하리 세상을 하직하고 남교를 돌아 갈까나 남교가 어드메냐구름 밑에 밭이로다 남교의 거츤 발을 소 몰아 갈까나 봄바람 불어 오니 만물이 즐기거든 수심 둔 마음이 매 즐길 줄 모르놋다왕사(王事)를 못 잊으니 봄바람도 시름인지 언덕에 외로이 앉아 슬픈 노래 부르더라.』
이것은 시중 유렴이 손수 지어 계영을 시켜 거문고에 올린 것이다.
계영은 아버지의 뜻을 아는지라 이 노래를 읊을 때에 아버지와 같이 수심하고 같이 슬퍼하였다.
유렴은 계영의 노래를 듣고 나서,
『낙이불음(樂而不淫)하고 애이불상(哀而不像)하는 것이 군자의 소리언마는 마음에 , 슬픔이 깊으니 자연 상(傷) 하는 소리를 내게 되네.』
하고 한탄하였다.
석양이 되어 바람이 일어나니 늙은 시중 집 후원의 꽃이 눈같이 날리고 새들은 꽃 날리는 것을 슬퍼하는 듯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어지러이 날며 지저귀었다.
김 충은 날이 이미 늦은 것을 말하고 일어나 시중과 부인께 절하고 다시금 계영에게 은근히 예하고 물러나왔다.
계영도 얼굴을 붉히고 인사를 하였다.
집에 돌아 온 뒤에도 김 충의 눈에는 계영의 모양이 아른거렸다. 무엇을 하여도 손에 붙지 않고 남교곡을 타는 계영의 손만이 생각혔다.
그러나 저녁에는 동지들이 모이는 곳에 아니 갈 수가 없었다. 모이는 곡은 모기냇가(蛟川岸) 어떤 술집, 거기는 아무렇게나 웃을 입은 무리들이 벌써 모여 앉아서 술상을 앞에 놓고 술 파는 계집을 회롱하고 있었다. 그 집은 개천가로 뒷문이 나고 뒷문 밖에는 조그마한 배가 늙은 수양버들에 매여 있었다. 개천 가로 향한 창에는 발갛게 불이 비치고 거문고 소리, 북소리, 계집의 가느란 노랫 소리며, 술 취한 사내들의 굵은 노랫 소리가 흘러 나오고 개천 위에도 등을 켠 놀잇배가 서너 개 가는 물길을 일으키며 물을 따라 흘러 내려 가는 것이 보였다.
김 충도 함께 작은 재를 저어 늙은 수양버들을 찾아 내려온다. 잔잔한 물에는 사월 보름의 물 머금은 달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노 짓는 소리가 연하게 찰찰 들린다.
이 동네는 이름조차 버들골인 청루 주사만 있는 장안의 혼락향이다.
집집의 미인이 손을 기다리고, 집집의 익은 술이 용수 언저리에 철철 넘는다. 장안의 부호가 자제들은 황혼이 되면 이곳으로 모여 들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 추고 삼경이 넘도록 놀다가 놀다가 지치면 향기 나는 강남 비단 이불에 술 팔던 미녀로 더불어 붉은 꿈을 맺는다. 이 모양으로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새로운 환락을 따라 헤매는 것이 장안 소년들이 하는 일이다.
김 충은 근엄한 집에 자라 이러한 곳에 발을 들여 놓기를 꺼렸다. 이삼년 내로 나라 일에도 마음이 떨어지고 세상도 시들하여 친구가 끄는 대로 이곳으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하였다. 술이 취하고 아름다운 계집의 노래를 들고 앉았으면 모든 시름은 다 없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차차 새로운 일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곳에 와서 술을 먹고 노는 사람들 중에 범상하지 아니한 인물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미친 듯 무심한 듯 술을 마시고 계집을 회롱하건마는 마음에는 큰 뜻을 품은 자가 적지 아니함을 깨달은 것이다.
김 충은 이리하여 이곳에 수십명 친구를 얻었다. 그 중에는 김 충과 같이 제일골의 귀족도 있으나 대개는 시골서 올라 온 선비가 호반들이었다. 몸에 글이나 칼이나 활의 한 가지 재주를 가지고도 때를 만나지 못하여 비분강개한 마음을 술과 노래를 잊는 무리들이다. 술이 대취하여 담론이 임립할 때에 그들은 간혹 본색을 탄로하여 혹은 강개한 시를 읊으며 혹은 일어나 술춤을 추어 천하를 덮을 듯한 기운을 보였다. 그러나 성명을 물을 때에는 대개,
『주도(酒徒)!』
하고 껄껄 웃고, 성명을 말하는 이가 드물었다. 주도리함은 물론 술군이란 뜻이다. 김 충도 성명을 바로 말한 일은 없었다.
술 파는 계집들 중에도 일점 의기가 있어 비록 차림차림은 허술하더라도의 기 있는 남아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한 계집의 집에는 그러한 의기 있는 건달이 많이 모여 들었다. 지금 충이 찾아 가는 난희(蘭姬)라는 가희(歌姬)도 그러한 계집 중에 하나다. 그 이름이 난희가 된 것도 일길손 신홍이 난희를 사모한 것이라고 한다. 나이는 아직 이십이 넘지 못하였으나, 예전 난희와 친구로 지냈다는 그의 어미가 원래 글 잘하고 의기 있는 노기이기 때문에, 그의 딸 되는 난희도 결코 녹록지 아니하였다.
만일 돈푼이나 있는 젖 비린내 나는 아이들이 자기를 희롱하러 들면, 말이나 노래로 빈정거려 망신을 시켜 돌려 보내기가 아수였었다. 한번 김술이 난희의 아름다움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부를 때에 난희는 웃으며,
『김 술아 불러? 난희의 집 강아지도 사람을 알아본다고 일러라.』
하였다고 한다.
김 충이 난희를 안 것은 지난 해 가을 어떤 건달 친구에게 끌려 간 때다.
그 친구는 대야주(大耶州) 사람이요, 기골이 장대하여 글도 잘하고 칼도 잘쓰는 의기 남아다. 성명을 알 수 없으나 목소리가 크다 하여 통칭 쇠북이라 하는 사람이다. 그가 김 충과 몇 번 어느 주석에서 만난 뒤에,
『나를 따라 오라 좋은 것을 보이리라.』
하고, 김 충을 난희의 집으로 끌고 와서 김 충과 난희를 마주 앉히고,
『이제 제자와 가인이 서로 만났다.』
하고 술을 내어 즐겼다.
『영웅이 때를 만나기 어렵고 가인이 제자를 만기 어려우니 모두 다 천추의 한사(恨事)라. 내 오늘에 양인의 천추 한을 풀었노라.』
하고 쇠북은 혼자 좋아하였다.
그때부터 김 충은 난희를 알게 되고, 또 쇠북을 더욱 믿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지 얼마 후에 쇠북은,
『때가 오면 다시 만날 날도 있으리라.』
하고 어디로 가 버리고말고는 이내 종적이 묘연하였다. 김 충은 난희에게 쇠북의 말을 물었으나 난희도 거의 본색을 알지 못하였다. 김 충과 난희기 알기 전에 쇠북은 날마다 난희의 집에 와서 술을 마시고 난희의 노래를 듣고는 금 한덩이를 내어 주며,
『받으라 이것으로 의기 남아가 오거든 술 대접이나 하라.』
하는 것이 예사였다고 한다.
쇠북의 종적이 묘연하게 된 뒤에도 쇠북은 항상 이 버들골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김 충은 그가 비범한 사람인 줄을 알거니와, 그의 종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김 충의 배는 난희의 집 앞 수양버들 밑에 닿았다. 달빛에 버들은 안개를 머금은 듯하였다.
김 충이 오는 것을 보고 방에 벌여 앉았던 사람들은,
『어찌 늦은고?』
하고 앉기도 전에 술잔을 권하였다. 난희도 반기는 듯이 김 충을 맞았다.
모두 다 취홍이 도도한 모양이나 김 충은 전과 같이 흥이 나지 아니하였다. 오늘 시중 유렴 집을 다녀 온 후로는 모든 것이 다 변한 듯하여 이 자리에 앉았을 생각도 없는 듯하였다.
여러 친구들은 김 충에게 억지로 술을 권하였다. 김 충도 용렬하게 권하는 술을 사양할 사람은 아니라, 권하는 대로 받아 먹기는 하나 흥은 나지 아니하였다.
이 눈치를 먼저 알아 차린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난희다. 사랑의 눈은 살을 꿰뚫어 본다.
『어디 편지 아니하시오?』
하고, 참다 못하여 난희가 김 충을 보고 물었다. 그 눈에는 아끼는 빛과 근심하는 빛이 찼다.
『때 못 만나 대장부가 마음이 편한 날이 있으랴. 마음이 편치 못하거니 몸인들 편하랴.』
이 말에 떠들던 사람들도 잠잠하고 김 충을 바라보았다. 과연 김 충의 얼굴에는 무슨 근심하는 빛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 김 충이 누구인 줄을 알 만한 극히 가까운 친구요 동지들이다 말하자면 . , 지나간 삼년 동안 버들골에서 골라 사괴인 인물들이다. 「김 성을 없이 하자」,「한번 천하의 의사와 호걸을 모와 회천의 웅도를 세워 보자」하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천하의의 기 남아로 자처하여 목숨을 보기를 터럭같니 난다는 무리들이다.
그중에서 김 충은 두목이다.
김 충의 칼을 쓰는 재주나 빈재로도 두목이 될 만하거니와, 또한 그의 지위와 재산으로도 두목이 된 것이다. 이 무리들은 대개는 집을 버렸거니나 애초에 집이 없거나 또는 무슨 죄를 저지르고 세상에 숨어 다니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불사 가인 생업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이는 김 충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누구에게 고개를 숙일 작자들도 아니요, 당장 의식과 술을 얻어 먹고 있는 김충에게라도 고개를 숙일 위인들은 아니다. 오직 그들을 휘일 수 있는 것은 의리뿐이었다. 그러므로 김 충이 어떠한 귀족인 줄을 안 뒤에도 그들은 너, 나하고 말과 대우를 고치지 아니하였다.
고울부(高蔚府) 사람으로 장군 능문(將軍能文)을 베려다가 하마터면 죽을 것을 옥을 깨뜨리고 도망한 정보(廷輔)라는 사람이 김 충을 보며,
『웬일이야? 김 술이 놈이 자네 집을 치려고 한다더니 무슨 일이 생기는 모양인가? 그걸랑 염려 마시오. 내 잇거니 그까진 김 술이 놈의 오합지졸을 두려워하랴. 자, 술이나 마시오, 에라 난희야 술 쳐라.』
하고 제 무릎을 툭 친다.
김 충은 넘치는 술잔을 받아 반쯤 마시고 술상 위에 놓으며,
『여보소, 이 사람들아, 내 오늘 시중 유렴을 뵈웠거니와 진실로 국가의 명운이 경각에 달렸은즉, 우리가 이렇게 술이나 마시고 놀 때가 아닐쎄.
내일 북으로 왕건이 들어 올는지도 모르고, 모레 서로 진헌이 엄살할는지 모르거든 조정에는 이것을 막으려 하는 충신이 없고 오히려 도적을 끌어 들려 하는 적신이 찼으니, 이 일을 장차 어찌하랴? 우리가 진실로 회천에 웅도를 둔다 할진댄, 이러고 잇을 때가 아니로세. 내 오늘 시중 유렴을 뵈오니 시중은 국가의 명운이 다한 뜻을 말하고 천년 종사를 버틸 인길이 없음을 한탄하였으나, 내 스스로 등에 찬땀이 흘렀네. 김 술이 비록 내 집을 불사르기로 그것은 두려워할 내 아니언마는, 국가의 흥망이 경각에 달렸거든 아무 일도 하는 바 없으니, 살아서 하늘을 바라볼 낯이 없고 죽어서 선조를 어찌 대할까? 우리 무리 이미 뜻이 같고 또 사ㄱㅚ인지 오래거니와, 아직 술 벗이라 의로써 서로 맺지 못하였으니, 왕사를 위하여 사생을 같이 하기로 오늘밤에 맹세를 하지 아니하려는가? 내 이제 왕건과 진헌을 물리치기까지 다시 이 술잔을 아니 잡기로 이 잔은 깨뜨리노라.』
하고 옥잔을 들어 소반 , 위에 던지니 잔이 부서져 조각조각이 사방으로 뛴다.
갑자기 방안에는 살기가 등등하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엄숙한 기운이 돈다.
김 충이 술잔을 깨뜨리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그대와 사생을 같이 하리라.』
『천하가 다시 태평하거든 태평연에서 다시 잡기까지 술잔을 잡지 아니하리라.』
『진헌의 피를 마시기 전에는 다시 술을 마심이 없으리라.』
하고 각각 잎에 놓인 술잔을 깨뜨렸다. 그것을 보고 김 충은,
『그대들은 오늘밤으로 각각 떠나 천하에 두루 다니며 의사와 호걸을 모으라. 나라에 큰일이 임박하였으니 시각을 지체할 수가 없다. 큰일은 반드시 가을이 지나기 전에 오리라.』
하였다. 이것은 김 충이 유렴 시중의 집에서 돌아 오는 길에 「김 성이 진호를 죽이려 자객을 고려로 보내었다」
하는 말을 들은 까닭이다.
사람들은 한참 잠잠하였다.
김 충은 다시,
『그대들은 가려는가?』
하고 재촉하였다.
『가리라.』
하고 사람들은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삼십명 호걸들은 천하의 의사와 호걸을 모으려고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김 충은 사람이 다 나간 뒤에,
『난희야, 너는 다시 나를 보려고 생각지 말아라. 좋은 장부에게 시집 가잘 살아라.』
하고 견대에 남은 금은을 쏟아 주고 일어나려 하였다.
난희는 김 충의 소매를 붙들며,
『국사라 하옵시니 첩이 막지 아니하리이다. 그러하오나 첩의 몸은 이미 마마께 바치었거든 다른 사람에게 갈리는 만무하옵니다. 몸이 비록 마마를 따르지 못하더라도 첩의 일편 단심은 마마를 따르는 줄 아옵소서.』
하고 느껴 울었다.
김 충이 이 결심을 한 것은 물론 오랜 일이다. 오늘 이곳에 동지를 모은 것도 이러한 일을 의논하려 한 것이어니와, 유령 집에 갔던 것이 이렇게 급격한 처결을 하는 동기를 주었다.
시중 유렴의 말도 말이어니와, 계영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 거의 모든 것을 잊어 바릴 만한 것을 보고 집에 돌아 와서 눈에 계영의 모양만 아른거림을 볼 때에,
『대장부의 뜻이 이로 하여 꺾이리로다.』
하고 분연히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정한 젊은 김 충은 사랑하는 분연히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다정한 젊은 김 충은 사랑하는 난희가 울고 매어 달리는 것을 볼 때에는 창자가 끊어지는 생각이 아니 나지 못하였다. 김충은 다시 앉아 난희의 손을 잡고,
『진실로 네가 아름답다. 얼굴보다도 마음이 더욱 아름다운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나 나는 큰일에 몸을 바친 사람이라 인정을 돌아 보지 못하리라 ————난희야, 잘 있으라. 난희야, 부디 잘 있으라.』
하고 나와 버렸다.
김 충은 이로부터 가슴 속에 움 돋는 사랑을 죽여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계도 생각지 말자 난희도 생각지 말자 난희도 생각지 말자 하였다.
의리는 큰 것이요. 사랑은 작은 것이었다.
과연 며칠 아니 되어 진호(眞虎)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이 왔다.
『진호가 죽었다?』
하고,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큰일이 날 것을 짐작하였다. 진호는 진헌의 사위다. 진호가 죽으면 진헌은 반드시 가만히 있지 아니할 것이다.
게다가 진호가 죽은 것은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신라에서 온 사람과 술을 같이 먹고는 그날 밥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 참이다.
왕건은 진호를 친조카 모양으로 대우하였다. 그에게 좋은 집을 주고 많은 비복을 주고 무시로 궁중에 들어 오기까지 허하였다. 왕건은 진호를 후대하는 것이 진헌을 누르는 수단인 줄을 왕건을 원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왕건은 진호의 시체를 왕자의 예로 실어 진헌에게 보내고 깊이 슬퍼하는 뜻을 표하였으나, 진헌은 왕건을 원망하여 왕건이 보낸 볼모왕신(王信)을 종로에서 효숭하여 그 목을 젓 담아 왕건에게로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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