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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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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조

[편집]

미륵이가 대궐에서 야료을 하는 때에 즉위하신 헌강대왕(憲康大王)도 즉위하신 이듬해에 역시 스물 다섯 살에 돌아 가시었다. 해마다 국상을 당하매 민심은 가라앉을 바를 모르고 물 끓듯하였다.

헌강대왕은 즉위하신 지 십 일년 동안을 그 어머니 되시는 문의 태후(영화 황후)와 상대등 위홍의 손에 쥐어 만승의 임금으로도 무슨 일 한 가지를 맘대로 해보지 못하였다. 왕은 본래 총명한 천품을 타고 나서 또 학문을 숭상하여 혹은 황룡사(黃龍寺)에 백고좌(百高座)를 베풀고 친히 불도의 설법도 듣고, 혹은 국학(國學)에 가시어 여러 박사들의 강론도 들으시고 도 당나라나 일본서 오는 사신이 있으면 여러 날을 두고 궐내에서 불려 들여 친히 그 나라의 여러 가지 문물과 사경을 들으시었으며 또 가끔 국내로 순행하여 혹은 민가에서 숙식하고 혹은 광야에 장막을 치고 숙식하면서 자세히 민정을 살피시었다. 그래서 당나라나 일본 사신의 말에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 나라에 행하려 하였고 또 민가에 옳지 못한 일이 있으면 곧 그것을 고치라고 상대등과 시중에게 명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왕은 옛날 어진 임금과 같이 어진 임금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잡아 보려고 무척 애를 쓰시었다.

그러나 왕의 힘쓰심도 아무 효력이 없었다. 어머니 문의태후와 상대등 위홍이 하나이 되어 벼슬에 사람 쓰기를 사정으로서 하고 매사에 왕을 속이고 눌렀다.

왕의 뜻을 알아 주고 왕과 같이 나라를 근심하는 사람은 시중 예겸(乂兼)과 이손 민공(伊飧敏恭)이었다. 그러나 예겸도 태후에게 등을 댄 사아대 등 위홍을 대항할 힘이 없고 민공은 더구나 벼슬 자리에 있지 아니하니 힘이 없었다.

예겸은 여러 번 왕께 간하여 상대등 위홍을 내치고 문의태후가 국정에 간섭 못하시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의태후는 왕이 십 칠세가 되기를 기다려 국정을 왕에게 맡긴다고 하였고, 왕이 십 칠세가 지난 뒤에는 어찌 모르는 체하랴 하여 전혀 모든 일을 맘대로 하였다.

문의왕후가 위홍과 불의의 관계가 있기는 경문왕이 앓아 누운 때부터다.

그러다가 경문왕이 승하하시고 상대등 위진을 내어 쫓은 뒤로는 아무도 꺼리는 바 없이 위홍은 주야를 불철하고 태후의 침전에 모시었다.

왕도 나이를 먹을수록 이 눈치를 알고 조정에서도 입 밖에 내어서는 말하는 이가 없어도 아는 이끼리는 서로 눈을 끔쩍끔쩍하고 점점 여항에까지 이러한 소문이 나게 되었다. 한번은 예겸이 참다 못하여 위홍을 보고,

『경문대왕을 생각하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위홍은 얼른,

『시중이야말로 전왕을 생각하오!』

하고 도리어 호령을 하였다. 이것은 위홍이 자기가 문의태후와 불의의 관계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하여 예겸과 정화마나 사이에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만들려는 꾀였다. 예겸은 얼른 그 꾀를 알아 차렸다. 그러나 위홍이가 한번 만들이 내려고 생각한 일은 아니하는 없는 줄을 알기 때문에 이때부터 예겸은 어느 날 어느 시에 자기의 머리에 벼락불이 내려 오려는가 하였다.

그러나 예겸은 위홍의 음흉한 보복의 불이 떨어지기 전에 먼저 손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이왕 위홍의 흉계와 세도에 몸이 위태할 것이면 한번 왕께 말하여 나라를 바로 잡는 일을 하자고 결심을 하였다.

때는 마침 삼월, 서울 장안 양달에는 앵두꽃 복숭아꽃이 방싯 터지려 할 때다. 예겸은 왕께 여쭈어서 경치 좋은 동해 바닷가 여러 고을을 순행하시기를 청하였다. 왕을 모시고 서울을 떠나서 순행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 일을 꾀하자는 뜻이다.

젊은 왕은 예겸의 말을 기뻐하였다. 더구나 대궐 안에 있으면 뒤숭숭한 일만 많고 만에 하나도 맘대로 되는 일은 없고 태후는 밤낮으로 위홍과 불의의 쾌락에 취하는 꼴을 볼 수 없고, 이러한 속에서 젊은 가슴을 아프게 하던 왕은 잠시라도 그런 대궐을 떠나가 동해 바닷가의 시원한 봄바람을 쏘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래서 곧 순행을 떠나시기로 전교를 내리시었다.

위홍은 여러 번 왕께 간하여 멀리 서울로 떠나시는 것이 마땅치 아니함을 아뢰었다. 그는 예겸이가 왕을 모시고 순행하는 동안에 어떠한 꾀를 지을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은 굳이 듣지 아니하고 또 태후는 항상 거추장거리고 눈을 꺼리던 왕이 멀리로 떠나는 것을 좋게 여기기 때문에 마침내 왕은 뜻대로 예겸 이하 수십명 가까운 신하와 간략한 시위하는 군사를 거느리고 순행의 길을 떠나시었다.

왕이 순행을 떠나신 뒤에는 위홍이 왕이나 다름 없었다. 이로부터 위홍은 밤낮 내전에 묻히어 대궐 밖에 나오지를 아니하고 배후와 의논하여 내직·외직에 많은 벼슬을 갈아 자기에게 싫은 자를 물리치고 자기의 뜻에 맞는 자를 세웠다.

그뿐 아니라 항상 말썽이 되는 정화마마를 황(晃)왕자와 함께 뒷대궐로 쫓아 보내고 말았다. 상궁들 중에도 태후와 위홍의 눈에 안 드는 것은 다 내보내고, 혹 위홍이가 두 번 거들떠 보거나 말 한 마디라도 붙이는 궁녀가 있으면 곧 태후의 명으로 혹은 위홍의 눈을 끌던 뺨을 도리고, 혹은 위홍의 말 대답을 한 입을 도리고, 혹은 젖을 도리고, 하문을 도리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위홍이만 내전에 들어 오면 궁녀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피신하였다.

위홍은 나이 오십이 넘었건마는 아직도 서른 댓 밖에 안되어 보이고 얼굴이 잘나고 풍채가 좋아 젊어서부터 수없이 남의 딸과 아내를 버려 준 사람이다. 사람들은 위홍이가 계집의 맘을 빼는데 무서운 조화를 가지었다고까지 말한다. 길에서라도 위홍의 눈에 한번 띄면 그 여자의 혼은 벌써 위홍에게 빼앗겨 위홍의 수레 뒤로 정신 없이 따라 간다고 한다.

위홍은 이 조화로 문의태후가 아직 경문왕의 왕후로 잇을 때부터 그 혼을 뽑았다. 맘으로 나이 더 젊고 자색이 더 아름다운 버금마마를 취하였으나 세력을 위하여 문의태후에게 혹한 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위홍은 정화마마도 필요만 있으면 자기 손에 넣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벌써부터도 태후는 만공주의 어리고 예쁜 자태에 대하여 일종의 질투를 가지어서 위홍이 들어 온 때면 공주를 가까이 못하도록 힘을 썼다.

대궐 안에서 태후와 위홍이 맘 놓고 행락을 하고 맘 놓고 벼슬을 들이고 내고 하는 동안에, 왕은 예겸과 함께 동햇가 모든 고을의 아름다운 봄경치를 보고 돌았다. 순박한 백성들은 아직도 천년 왕가의 옛정을 못 잊어 당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남녀 노유가 길가에 나와 엎드려 왕을 맞고 혹은 싱싱한 생선과 닭과 맛난 음식을 만들어 왕께 드렸다. 그리고는 젊은 잘나고 인자한 왕의 얼굴을 보고 말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하루는 어느 마을 앞을 지날 제 길가에서 나물을 캐다가 호미와 바구니를 곁에 놓고 허리를 굽히고 왕이 타신 연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처녀를 보았다. 비록 의복이 수수할망정 그 얼굴과 태도는 마치 돌 틈에 떨어진 야광 주 모양으로 빛이 났다. 왕은 타신 수레를 세우라고 명하고 그 처녀를 가까이 불렀다.

왕을 따라 가던 신하들도 모두 머물러 고개를 돌려 왕과 그 처녀를 바라보았다. 스무 살 밖에 아니 되는 젊은 왕의 얼굴에는 전에 못 보던 기쁨과 웃음이 떠돌았다. 왕은 손을 내어 밀어 처녀의 손에 든 바구니를 달라고 하였다. 처녀는 황송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바구니에 호를 받아 그 속에 담긴 향기 있는 나물을 뒤적뒤적 만지다가 그중에서 난초 잎사귀와 같이 생긴 풀 하나를 지어들고 처녀더러,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처녀는 잠깐 눈을 들어 왕을 우러러 보며,

『제비꼬리요.』

하였다.

『제비꼬리?』

하고 왕은 처녀를 바라보았다. 처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왕은 이름이 무엇이며 나이 몇 살이며 부모가 있고 없는 것을 자세히 물었다. 처녀는 들릴락말락한 가는 목소리로 아비는 사냥군이요, 나이는 열 여섯 살, 이름은 큰 아기라고 대답하였다.

왕은 모시는 신하를 돌아 보고 그 처녀를 뒷수레에 태우고 가기를 명하였다. 처녀는 어미가 기다리오니 보내달라고 울며 애걸하였으나 왕은 듣지 아니하였다. 그날 밖에 왕은 우레벌이라는 고을에 행재(行在)를 정하였다. 우레벌 백성들은 임금이 오셨다 하여 행궁(行宮)앞에 마른 행나무로 크게 횃불을 지피고 소리 잘하고 늙은이들을 불러 밤이 늦도록 두드리고 부르고 춤을 추었다. 왕은 백성들의 뜻을 가상히 여겨 남자들에게 술, 여자들에게는 피륙을 주라고 명하시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술이 취한 백성들이 흥이 더욱 깊어져서 백성들의 노랫 소리는 더욱 크고 횃불은 더욱 밝아졌다. 맨 나중에 동녀(童女)열 사람이 소매 넓은 자주 옷을 입고 머리에 꽃을 꽂고 왕께서 앉으신 방 앞 마당에 나섰다. 그들의 얼굴은 횃불빛에 비추어 갓 핀 모란꽃같이 빛나고 그중의 한 처녀가 손에 든 조그마한 북을 땅땅 울리며,

『뉘 은혜로 우리 사나.』

하고 선 소리를 주면 다른 처녀들도 각기 손에 든 방울을 흔들며,

『우리 임금 은혜로다.』

하고 회답하고 또 북 든 처녀가,

『동해 바다 마르도록.』

하고 선 소리를 주면 방울 든 처녀들은,

『우리 임금 살아지라.』

하고 춤 추고 돌아 간다. 그 소리를 따라 둘러 섰던 백성들도,

『동해 바다 마르도록 우리 임금 살아지라.』

를 외친다.

이 모양으로 열 차례 스무 차례 주고 받고 춤 추고 돌아 가는 동안에 사람들은 모두 태평의 기쁨에 취한 듯하고 임금도 취한 눈을 들어서 시중(侍中) 예겸을 돌아 보시며,

『백성이 기뻐하니 나의 기쁨이 크다.』

하시었다.

횃불이 네 번이나 새로 피인 뒤에 백성들은 흩어졌다. 그러나 우레벌의 태수(太守)는 노래하던 처녀 열 명을 황의 앞에 불러 세우고 그날 밤 왕을 모실 처냐를 왕이 스스로 택하시라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왕은 아까 나물 캐던 처——의 모양만 눈에 있으므로 앞에 서서 왕의 택하는 눈이 오기를 기다리는 열 처녀는 한번 슬쩍 볼 뿐이요, 아무 말이 없으므로 태수는 무료하여 열 처녀를 데리고 물러나갔다.

왕은 오늘같이 행복된 날을 처음 본 듯하여 심히 기뻐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거리끼는 것은 예겸이다. 시중지 않게 여기는 줄 알고 또 예겸이 밤이 깊도록 사처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왕의 곁에 있는 것이 그 때문인 줄을 아는 까닭이다.

좌우를 물린 뒤에 왕은 안석에 의지하여 가만히 눈을 감고 조는 모양을 보였다. 이것은 왕이 예겸의 뜻을 미리 짐작하고 그 말을 막으려는 꾀다.

예겸은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가끔 고개를 들어 바라보아 왕이 눈을 뜨기를 기다려도 끝이 없다. 좌우에 켜 놓은 촛불은 거의 닳아서 구부러진 불길이 꿈틀꿈틀할 때마다 벽에 비추인 왕과 시중의 그림자가 컸다 작았다 한다. 그러나 예겸은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과 왕께 바라는 생각이 클수록 예겸의 결심은 굳었다. 마침내 예겸은 왕이야 듣거나 말거나 할 말은 하리라고 고개를 숙여 이마를 방바닥에 대고,

『상감께 아뢰오. 지금 백성은 도탄에 있고 구백년 종사가 누란과 같이 위급할 때에 상감께서 옛날 은나라의 탕 임금의 본을 받아 몸으로 희생을 삼아 희천에 웅도를 가지심이 옳으신 줄로 아뢰오. 이제 백성들의 마음이 상감께로 돌아 와 부모와 같이 믿고 바라는 것이 크으니 조그마한 일로 왕의 덕을 손하게 마시기를 바라오.』

하였다.

왕은 그제야 번히 눈을 뜨며,

『시중의 말을 명심하고 듣소.』

하고 옳이 여기는 뜻으로 두어 번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왕의 대답에 예겸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일어나 세 번 절하고,

『그러면 뒷 수레에 실어 오신 처녀는 지금으로 돌려 보내오리까?』

하였다.

이 말에 왕은 적이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돌려 춤 추는 촛불을 바라보며, 이제 밤이 『 깊었으니 내일 아침에 일찌기 보냄이 어떠하오?』

하고 왕은 예겸이 아무리 말하더라도 돌려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예겸은 더욱 극진한 말로 어진 임금이니 큰 영웅이 정사를 어지럽게 하고 인망을 잃는 것이 열의 아홉은 여자에 관한 일인 것을 중언부언으로 간한 끝에,

『상감께 그 여자를 지금으로 돌려 보내라시는 분부 계시기 전에 신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오리다.』

하였다. 왕의 얼굴에는 괴로운 빛과 부끄러운 빛과 성난 빛이 오락가락하였다. 그러나 예겸의 말이 옳은 줄을 알고 또 지금 자기가 하려는 일이 반드시 후일에 무슨 불길한 결말이 있을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미미한 양심의 소리는 청춘과 술에 취하여 고삐를 끓고 날뛰는 왕의 마음을 붙들어 땔 힘은 없었다. 그래서 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사람이 살면 얼마를 사오. 인생의 봄날이 길면 얼마나 기오. 나도 시중과 같이 나이 많아진 뒤에 나라 일만 생각하겠소.』

하고 예겸을 돌아 보지도 아니하고 장지를 열고 결방인 침실로 들어 가 버리고 말았다. 예겸은 왕이 들어 간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일어나 길게 한숨을 쉬고 왕의 침실을 향하여 한번 절하고 안 돌아 서는 발을 억지로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마당에는 사람의 자취 하나가 없고 타다 남은 횃불만이 어둠속에서 번쩍번쩍한다. 예겸은 별이 총총한 하늘을 우러러 보고,

『돌아 가는 운수를 마침내 돌릴 길이 없나보다.』

하고 자기 숙소로 돌아왔다.

예겸은 지금까지 마음에 바라던 것을 다 잃어 버린 듯하여 슬펐다. 돌아가신 경문왕도 왕 되기 전에는 그렇게 총명하고 뜻이 크던 사람이언마는 한번 환락의 길을 밟은 뒤로는 언덕의 굴러 내려 가는 수레와 같이 걷잡을 수가 없이 마침내 백성들에게 원한과 비웃음거리가 되는 임금이 되고 말았다. 새 왕도 마침내 이렇게 되지 않는가 할 때에 예겸의 늙은 눈에는 충성의 눈물이 흘렀다.

이튿날 왕은 늦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예겸은 마음이 초조하여 몇 번인지 모르게 왕의 숙소까지 갔다가는 돌아 왔다. 왕을 따라갔던 모든 신하들도 백성들도 그렇게 규모 있고 부지런하기로 칭찬받던 왕이 늦도록 일어나지 아니하는 것을 한끝 이상하게도 생각하고 한끝 우습게도 생각하여 돌아 서는 곳마다 수군수군이야기가 되었다. 예겸은 이번에 왕을 모시고 순행하던 목적이 다 틀어진 줄을 깨닫고 왕께 여쭈어 명주 까지 가시려던 (溟洲) 것을 중도에 그치고 곧 서울로 돌아 가시기를 청하였다. 마침 왕이 서울을 떠나신 뒤로 우금 반삭에 상대등 위홍이 여러 가지 그릇된 정치를 한다는 소문과 영화·정화 두 마마 사이에 큰 싸움이 생기어 정화마마는 왕자 황(晃)과 함께 뒷대궐에 유폐되었다는 소문과 기타 여러 가지 상스럽지 못한 소문을 가지고 일길손(一吉飡) 신홍(信弘)이 온 것도 왕을 곧 돌아 가시게 하는 한 힘있는 이유가 되었다.

술이 깨고 한바탕 환락의 꿈이 깨이며, 왕은 예겸을 대하기가 부끄러워 예겸이 말하는 대로 대가(大駕)를 돌리는 애겸을 꺼려 그러하지 못하고 수삽하여 하는 처녀의 손을 잡고 머리를 만지며 차마 떠나기 어려운 은근한 정을 표하였다. 그리고 신표로 왕이 몸에 지니었던 쌍룡을 아로새긴 둥근 거울을 준 뒤에 그 곳을 떠났다.

왕은 나물 캐던 처녀를 들이셨다 하는 소문이 바람결과 같이 전국에 흩어졌다. 서울로 돌아 오시는 길에 백성들이 왕을 사모하는 정이 전번 가실 때보다 훨씬 냉랭하였다. 예겸이 그것을 보고 슬퍼함은 물론이요, 총명한 왕도 백성들이 자기에 대한 사모하는 뜻이 변한 것을 볼때에 마음이 괴로왔다. 그래서 왕은 전과 같이 아무쪼록 한 곳에 오래 머물려 하지 아니하고 아무쪼록 자기 얼굴울 백성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 수레를 급히 몰아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 왔다.

서울 백성들은 갈 때나 다름 없이 반갑게 왕을 맞는 듯하였다. 그래서 왕이 다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고 대궐 속에만 있으리라고 마음으로 작정을 하였다. 이렇게 작정을 할 때에 왕의 마음은 어둡고 슬펐다.

왕이 떠난 지 이십일이 못되어 대궐 안은 말이 못되게 변천되었다.

정화마마와 황아기가 뒷대궐로 간 것이며 많은 궁녀들이 혹은 악형을 받아 죽임을 받고 혹은 쫓겨난 것이며, 내직 외직의 많은 벼슬이 함부로 변동된 것이며, 모든 것이 왕을 괴롭게 하는 일뿐이다.

왕은 돌아 오신 이튿날 상대등 위홍을 불러 왕이 없는 공안에 여러 가지 큰 변동을 시킨 죄를 책망하였다. 왕은 낯을 붉히고 어성을 높이고 용상에서 발을 구르며 울분한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위홍은 다만,

『태후의 명이옵니다.』

하는 한 마디로 방패 막이를 하고 자기는 어디까지든지 발을 빼려 하였다.

왕은 항상 위홍의 벼슬을 갈고 싶었으나 태후를 무서워하는 왕은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위홍은 여전히 일국의 정권을 한손에 쥐고 백관의 출척과 궁중 부중의 크고 작은 일을 아무도 거리낌 없이 제 마음대로 하였다 이때에 젊은 왕족들 . 중에는 위홍을 내몰지 아니하면 나라가 망할 것을 말하는 이가 점점 늘고 그중에도 말 잘하고 글 잘하고 사람 자나기로 이름난 일길손 신홍은 가만히 여러 동지를 모아 일변으로 위홍을 내어 쫓을 꾀를 생각하고, 일변으로 자주 예겸을 찾아 이 일에 수령이 되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예겸은 왕께 대하여 한번 실망 한 뒤로는 점점 세상 일에 뜻이 없어 모든 것을 버리고 물러가 쉴 생각을 하였다. 이리하여 서울 안에는 불온한 기운이 안개 모양으로 떠돌기 시작하고 백성들은 불원간에 큰 난리가 나리라고 수군거리게 되었다.

사돌(沙梁部)에 일길손 집이라 하면 일대 호걸 신홍의 집으로 아무도 모를 이가 없었다. 신홍은 문벌 좋고 사람 잘나고 문무를 갖추면서도 벼슬에 뜻이 없고 주사 청루에 출입하며 천하 호걸과 사귀어 놀기를 좋아하였다. 누가 나라 일을 근심하거니 세상을 걱정하는 말을 할 때에는 손을 홰홰 내두르며 부어라 부어라 취하여 이 세상을 살자 하고 한량 없이 술을 마시었다.

그러나 뜻이 같은 벗을 만나 밤이 깊고 술이 취한 때에는 칼을 빼어 춤을 추며 슬픈 노래와 장한시를 읊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은 신홍을 한 호화로운 사람으로만 여기기니와, 적이 사람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신홍의 마음속에 큰 뜻을 품은 것을 알아 보았다. 더구나 근년에 위홍이 정권을 잡아 궁중 부중을 어지럽게 하고 총명한 왕의 뜻을 펴지 못함을 볼 때에 신홍은 울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임금의 곁에 있는 간사한 도둑을 베어 버릴 결심을 굳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일변 사랑문을 넓히며 천하의 호걸을 모아 들이고, 일변 조정에 있는 대관들중에 예겸 민공(敏恭) 같은 이를 찾아 뜻있는 바를 말하였다. 그러나 대관들은 일길손의 뜻을 반대하지 아니하면서도 힘을 같이 하자고 허락할 용기가 없어서 요리조리 말을 피하였다. 그러할 때마다 신홍은 분김에,

『너희도 다 같이 죽일 놈이다. 국록을 먹고 나라이 기울어지는 줄을 못 보는 체하는 놈들아.』

그래서 선홍은 이미 조정의 무리들과 더불어 의논할 자격이 없다 하고 세상에 이름도 드러나지 아니한 충 있는 열혈 있는 남아를 모아 썩어진 나라를 새롭게 하리라는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신흥은 충성과 용기가 있는 이니만큼 주밀한 꾀를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또 신흥이 밑에 모인 사람들도 대개는 비분 강개하여 가슴을 풀어 헤치고 칼 앞으로는 들어 갈 사람들이라도 꾀로 꾀를 막을 꾀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신홍의 집에 근래에 이상한 인물들이 자주 출입한다는 소문이 나고 또 민간에도 불원간에 무슨 큰일이 생긴다 하며,

『사돌에 사돌에 큰사람이 나와서.』

하는 도요까지 돌아 다니게 되매, 위홍은 벌써 의심이 나서 많은 염탐군을 거미줄 늘어 놓듯 놓아 신홍의 행동을 엿보게 하였다.

위홍과 신홍은 삼종 간이다. 위홍은 신홍보다 십여 년이나 나이 많으나 젊어서 서로 희롱할 때에도 항상 신홍은 위홍을 누르고 위홍은 신홍을 골리러 들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자란 뒤에도 서로 상종이 드믈었다.

그러나 위홍도 신홍은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받아 버릴 녹록한 남아가 아님을 도리어 그 의기가 자기보다 승한 것을 알므로 그에게 대하여 항상 일종의 시기와 의심을 가지고 왔다.

그러므로 위홍의 마음속에는 이번 일을 기회로 하여 신홍을 아주 없애 버리자는 생각이 들고 신홍만 없어지면 감히 자기와 겨룰 사람이 신라 천지에는 없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위홍은 일변 염탐군을 늘어 놓은 동시에 일변 신홍의 집에 다니는 문객에게 뇌물을 주어 신홍의 일을 염탐하여 본 결과 시농의 세력이 생각하던 바보다 큰 것을 알고 위홍은 놀랐다. 만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장차는 자기의 몸이 위태해질 것을 깨닫고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얼른 신홍을 처치해 버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신홍 편에서도 위홍이가 자기의 뜻을 벌써 알고 사방으로 염탐하는 줄을 알 일이 생겼다.

유월 유두가 앞으로 사흘을 남겼을 때다. 사돌 신홍의 집 후원 연당에 연꽃이 방싯방싯 피기 시작하여 식전과 황혼이면 맑은 향기를 놓았다.

신홍은 날마다 마시며 노래도 읊었다. 신홍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은 수상지인이 집 가까이로 왕래를 한다 하여 신홍이 혼자 후원에 소요 하는 것을 걱정하였으나 신홍은 그런 일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일전에 과연 심홍의 집 후원 나무숲에서 신홍을 엿보던 자객 하나를 잡았다. 그는 몸에 비수를 품고 있었다. 그는 몸에 비수를 품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자객을 붙들어 신홍의 앞에 끌어 왔을 때에 신홍은 웃으며,

『이놈 나를 죽이러 왔던?』

하고 어린애에게 묻듯이 물었다.

『네, 그저 죽을 죄로.』

하고 그 자객은 벌벌 떨었다.

『나를 죽이고 가면 무엇을 준다던?』

하고 신홍은 또 물었다.

『금 백 냥.』

하고 자객은 땅에 엎드렸다.

신홍은 사람을 불러,

『네 금 백 냉을 이놈에게 내어 주고 상대등 대감께 자객이 너무 약해서 못 쓰겠다고 편지하라.』

하고 크게 웃어 버렸다. 자객은 금 백 냥과 위홍에게 가는 편지를 받아 가지고 신홍 집 앞대문으로 나왔다.

신홍은 연당으로 돌며 반쯤 핀 연꽃과 그 밑에서 팔딱 팔딱 뛰는 고기와 개구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원종(元宗)·애노(哀奴) 두 사람을 보고,

『오늘 밤 달도 좋고 연꽃도 볼 만하니 한잔 마시지 아니할까?』

하였다.

원종과 애노는 신홍이 가장 심복으로 믿는 사람이다. 원종은 의기가 있고 애 노는 모략이 있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은 신홍의 두 팔과 같이 신홍의 곁을 떠나지 아니한다. 원종과 예노는 본래 첫뼈(第一骨)도 아니언마는 신홍은 문벌 같은 사람이나 다름 없이 두 사람을 사귀고 또 두사람은 어떤 연유로 죽을 지경에 빠진 것을 신홍의 의기로 살아 났기 때문에 신홍에게 대하여서는 목숨의 은인으로 충성은 다하는 터이라. 원종과 애노는 신홍의 뜻을 안다. 사흘을 지나 유월 유두 날이면 왕이 만조 백관을 데리고 표석정 물맞이 놀이를 한다. 이 기회를 타서 위홍 이하 모든 무리를 한 그믈에 싸 집기도 계책을 정한 것이다. 지금 신홍이가 달 좋고 꽃 좋은 것을 기회로 한잔 술을 마시자 하는 것은 성패와 성사를 앞에 둔 큰일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룻밤의 연락을 하자는 뜻인 줄을 두 사람은 안다.

길던 여름날도 다 가고, 왔다갔다하는 구름장조차 낙일을 따라 스러져 버리고 하늘에는 맑은 별과 거의 만월이 된 밝은 달이 걸리고 땅에는 연잎에 맺힌 이슬이 고기에게 놀라 굴러 떨어지어 거울 같은 물 위에 실물결을 일으킨다. 못가에 포기포기 칼같이 잎사귀를 뽑은 창포잎이 이따금 간들간들 흔들리는 것은 붕어와 잉어의 꼬리에 스친 까닭이다.

안압지(眼壓池) 본을 받아 못가에는 봉우리 셋 가진 조산이 있고 봉우리 끝마다 노송이 있고 노송 밑에 조그마한 정자가 있고 장자 앞 물가에는 혹은 버드나무가 긴 머리를 풀이 늘이고 혹은 조밥 꽃나무 빨간 꽃을 날리고 있다. 연당 한가운데 밑둥을 피석으로 쌓은 조그마한 팔각 정자가 있는데 거기는 「봉래도(蓬萊島)」라 「심진각(尋眞閣)」이라 이렇게 한 현판이 도로라 붙고 기둥마다 글귀를 새겨 붙이었다.

나무숲에서 밤새가 울고 풀속에서 벌레 소리 나기 시작할 때에 잔치도 시작되었다 부드러운 거문고 . 소리와 처량하고 비장한 옥퉁소 소리에 맞춰 아름다운 화랑(花郞)과 기생의 맑은 노랫 소리가 떠올랐다. 신홍은 난간에 기대어 울리고 술잔이 지나가는 툼에는 두렷한 깁 부채를 한가로이 흔들었다. 사십이 넘을락말락한 신홍은 아직도 창춘의 호화로운 피가 넘치었다. 신홍의 곁에 모여 앉은 객들도 모두 술이 반이나 취하여 노랫가락을 맞추어 무릎 장단을 쳤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사나 천년을 사나 만년이나 사나 영랑(永郞)·술랑(述郞)도 소식이 없네 살아 생전에 놀아 볼까나.』

하고 한 화랑이 노래를 끝내자 넓은 깁소매를 이마에 대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다른 사람들은,

『좋다!』

하고 무릎을 친다.

그러면 이번에는 한 기생이 작은 북을 들고 나서서 얼씬얼씬 한 바퀴 돌아 가다가 땅땅!하고 조그마한 손으로 북을 두어 번 울린 뒤에,

『인생이 꿈이라네 덧없는 꿈이라네 인생이 꿈이라면은 청춘은 꿈에 꿈을 꿈에 꿈 닭 울기 전에 놀고 놀까 하노라.』

하고 깁소매를 한번 둘러 향기로운 바람을 내며 풍정이 가득한 눈으로 모인 사람을 한번 둘러 본다.

칼과 활로 일생의 벗을 삼는 장사들도 무르녹은 여름밤 연꽃 향기 몰려오는 바람결에 철석 같은 마음이 녹는 듯하여 모두 난간에 몸을 기대고 반쯤 눈을 내려 감았다. 달빛을 담은 술잔이 오락가락할수록 취홍은 밤과 밤으로 더불어 더욱 깊어 갔다.

신홍은 도도한 흥을 이기지 못하는 듯 종을 불러 난희를 나오라고 명하였다. 난희는 삼년 전 장안에 이름이 높던 명기로 여러 귀공자의 사랑을 받다가 마침내 신홍의 총희가 되어 일시도 신홍의 곁을 떠나지 아니한 미인이다. 상대등 위홍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절대가인 난희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난희는 춤을 잘 추기로 이름이 있었다.

신홍은 취홍이 깊어 갈수록 마음 한편 구석에 일종 비감이 생겨 난희의 춤을 한번 보아야 그 비감이 풀릴 것 같이 생각한 것이니 일좌에 모인 사람들도 이러한 자리에 난희를 불러 내는 것을 의외로 생각하였다.

두어 번 사양한 뒤에 마침내 시녀 두 사람에게 옹위되어 난희가 수삽한 태도로 자리에 올라 왔다 . 몸에는 소매 넓은 붉은 갑옷을 입고 머리에 향기 높은 난초 한 송이를 꽂았다. 달빛에 비추인 난희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수심의 푸른 빛이 도는 듯하였다.

난희가 올라 오매, 다른 사람들은 잠깐 일어나 자리를 피하고 신홍이 난희의 손을 끌어 자기 곁에 앉히었다.

난희가 가장 추기를 좋아하는 춤은 「가야선무(伽倻仙舞)」라는 춤이다.

가야선무는 가야산에 살던 신선이 추던 춤이라 하여 가야금 가락에 아울러 추는 춤인데 춤 중에 가장 어려운 춤으로 이 춤을 아는 이가 몇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며, 가야선무를 잘 추면 구름 밖에서 신선의 옥퉁소 소리가 울려 온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신홍의 권에 이기지 못하여 난희는 손에 든 흰 깁부채를 동으로는 드는 듯 서를 가리키고 뒤로 던지는 듯 앞으로 던져 옷 소리도 없고 발자취 소리도 없이 가볍게 부드럽게 춤을 출 때에 그것은 마치 연못 위에 떠 노는 달 그림자와 같이 볼 수는 있어도 잡을 수는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어떤 연고인지 난희의 춤 추는 소매에서는 알 수 없는 슬픈 바람이 일어 보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 가는 듯하였다.

일좌가 천연하게 비감에 잠겼을 때에 늙은 청지기가 급히 들어 와,

『대감께 아뢰오. 대내(大內)에서 칙사가 와 계시오. 직각으로 입시하시랍시오.』

『칙사, 칙사?』

하고 신홍도 놀래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다 놀래었다.

신홍은 오랫 동안 궐내에 들어 간 일도 없고 불린 일도 없었다. 위홍이가 권세를 잡은 이후로 신홍은 일절 궐내에 발을 끊고 설, 가위 같은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궐내에 가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닌 밤중에 직각 입시하라는 칙교가 내리기는 심히 수상한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위홍의 간계라는 생각이 번쩍하였다. 난희도 어찌하려는고 하고 손에 들었던 부채를 던지고 신홍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홍은 잠깐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벌떡 일어나며,

『왕명이니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원종을 향하여,

『뒷일을 잘 알아 하라.』

하고 다시 난희를 보고 곁애 있는 화랑을 불러 이윽히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너희들이 일생을 같이 살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희는 신홍이 소매에 매어 달려 울고 원종과 애노도 신홍의 앞을 가로막고 가볍게 원수의 꾀에 빠지지 말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신홍은 듣지 아니하고 단신으로 몸에 환도 하나를 차고 칙사를 따라 성화같이 대궐로 들어 갔다.

신홍이 대궐로 간 뒤에 신홍의 집은 울음 판이 되었다. 아무도 무슨 일로 신홍이 입시하는 줄을 아는 이가 없건마는, 아무도 신홍이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아니한 까닭이다.

원종과 애노는 곧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장안 군데군데 숨어 있는 장사들을 즉각으로 황룡서 마당으로 모이라고 분부를 하고 애노로 하여금 집에 있어 모든 일을 지휘하게 하고 원종 자신은 신홍의 집에 있던 오십 명의 장사를 거느리고 신홍의 뒤를 따라 대궐로 달려 갔다.

지금까지 잔치가 벌어졌던 신홍의 집 후원 봉래도 심진각에는 울고 쓰러진 난희의 연연한 몸이 푸른 빛에 싸여 있을 뿐이었다.

신홍이 불려 간 곳은 반월성 대궐이 아니요, 임해궁이었다. 신홍은 이제나 저제나 하고 무슨 일이 생기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없이 임해전에 들어 갔다. 임해전 안압지로 향한 영월루(迎月樓)에는 왕이 예겸과 기타 무엇 가까운 신하를 데리고 술상을 대하여 계셨다.

신홍은 곧 왕의 앞에 꿇어 엎드려 명이 내리시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왕은 좌우를 물리고 예겸과 신홍만 앞에 불러 앉히고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 가는 것과 이것을 바로 잡으려면 힘있는 사람이 나서야 할 것을 한탄하여 은근히 신홍의 뜻을 물었다.

왕의 말씀은 심히 간절하였고 또 그 음성에는 굳은 결심의 빛이 보였다.

비록 달 아래에 한잔을 마신다는 것을 핑계로 앞에 술을 벌였으나 왕은 조금도 술 취한 기운이 없었다.

동해안을 순행하고 돌아 오신 뒤로 왕은 국사가 날로 그릇되어 가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또 예겸도 나물 캐는 처녀 일을 말하여 일천년 사직의 흥망 융체가 오직 왕에게 달린 것을 피눈물로 누누이 간하였다.

그러한 결과로 왕은 마침내 예겸의 말을 믿어 단연히 상대등 위홍과 그의 무리를 몰아 내고 널리 어진 사람을 구하여 정사를 일신하기로 뜻을 정하였다.

그러나 궁중 부중에는 모두 위홍의 무리요, 심지어 근시하는 궁녀들까지도 태후와 위홍의 뇌물을 먹는 염탐군이며 십 이 영문 군사의 두목이 모두 위홍의 무리인 것을 볼 때에 왕은 자기가 만승인 지위에 있으면서도 수족을 잘라 버린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깊은 뜻이 없을 때에는 근심도 없더니 큰일을 생각하고 보니, 왕은 힘없는 슬픔을 깨달았고 또 돌아 가신 부왕의 슬프던 일생을 생각할 수가 있었다.

여러 가지로 들려 생각한 끝에 마침내 왕은 예겸의 말대로 만사를 일길손 신홍에게 맡기어 건곤 일척(乾坤一擲)의 대사업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왕의 맘을 여기까지 끌어 오는데 예겸의 힘이 얼마나 컸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왕이 신홍을 불러 보실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신홍을 불러 보시는 일이 태후나 위홍의 귀에 들어만 가면 만사는 와해가 될 줄을 아는 까닭이다. 그래서 임해전 달 구경을 핑계로 별안간에 미행을 하시어 치사를 신홍에게로 보냈던 것이다.

신홍은 왕의 간곡한 말씀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왕께 이러한 뜻이 있으면 만사는 뜻같이 되리라고 속으로 기쁘고 하늘 나라를 도우시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신홍은 일어나 세 번 왕께 절하고,

『신홍이 비록 우둔하오나 간뇌 도지(肝腦塗地)하와도 천은 만일을 봉답하겠나이다.』

하고 아뢰었다.

왕은 신홍의 손을 잡고 손수 신홍에게 술을 권하시었다.

날이 샌 뒤에 여차여차히 할 일을 예겸과 의논한 뒤에 사람의 눈에 띄기를 꺼려 신홍은 오래 머물지 아니하고 곧 임해전에서 물러나왔다.

신홍이 관해문(觀海門)에 나와 마침 수레에 오르려 할때에 좌우로서 일대 복병이 신홍을 에워 싼다. 위홍은 벌써 왕이 신홍을 부르신 줄을 염탐하고 군사를 임해궁 사문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

신홍은 칼을 빼어 싸왔으나 한 몸이 여러 사람을 당하지 못하여 마침내 위홍의 군사에게 사로잡혔다.

신홍이 반월성 대궐로 입시한 줄만 알고 그리로 갔던 원종이 거느린 군사가 임해궁으로 달려 왔을 때에는 벌써 신홍은 어디로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다만 관해문 앞에 피에 젖은 시체가 가로 세로 쓰러진 것을 보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뿐이다. 원종은 임해문을 지키는 군사에게 신홍이 간 곳을 물으나 알지 못하고 하릴없이 일변 사람을 황룡사로 보내어 거기 모인 군사로 반월성을 들여 치라 하고 자기는 수병(手兵)을 몰아 문지기는 군사를 베고 임해궁을 들이쳤다. 원종의 거느린 장사들은 임해궁 내에서 가장 잘 싸왔다. 그러나 하나씩 둘씩 죽어 없어지는 것이 임해궁을 거의 다 둘려 찾은 때는 원종과 아울러 사오인 밖에 아니 남고 원종도 오른팔에 칼을 맞아 왼팔로 칼을 쓰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래도 신홍이 간 곳은 찾을 길이 없었다.

원종은 간신히 몸을 빼어 피 흐르는 팔을 안고 반월성으로 달려 갔다.

대화문 앞에서는 신홍의 군사와 위홍의 군사와 사이에 큰 접전이 일어났다.

위홍의 군사는 몇 번이나 반월성 안으로 쫓겨 들어 갔다가는 도로 나오고 쫓겨 들어 갔다가는 도로 나오고 쫓겨 들어 갔다가는 도로 나왔다. 그 많은 군사가 삼백명도 못되는 신홍의 군사를 무서워하여 손발을 놀리지 못하였다. 만일 원종이 반월성을 스쳐 들어 가려고만 했으면 곧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홍을 원수의 손에 넣고 그렇게 범궐(犯闕)을 하면 신홍의 몸과 명예에 해로울 것을 생각하고 대화문 밖에서 엄포만 한 것이다. 이 소동에 깊이 잠이 들었던 장안은 모두 깨어 일어나 무슨 큰 변이 나는가 하고 벌벌 떨었다. 사람은 커녕 강아지 하나도 문밖에 나오지 못하고 장안대로 상에는 파수하는 군사들의 동으로 서로 달리는 말굽 소리 뿐이었다.

열 이틀 달이 서악재에 걸리고 새벽을 재촉하는 쇠북 소리들은 에와 다름없이 응응 온 장안을 울렸다. 이러하는 동안에도 대화문 앞에서는 군사와 군사의 칼이 마추쳐 불꽃이 일고 화살이 푸르르 울 때마다 붉은 피가 흘러 땅을 적시었다.

이때에 신홍은 황쇄 족쇄로 금영군(禁營軍) 철정 속에 혼자 갇히어 있었다. 이튿날 평명에 신홍은 금부 나졸 네명에게 끌리어 어떤 방으로 갔다. 거기는 위홍이 친히 나와 좌기(坐起)를 열었다. 신홍은 높이 앉은 위홍을 바라볼 때에 전신에 피가 끓어 오르는 듯하였다.

위홍은 나졸을 명하여 신홍을 자기 앞으로 가까이 끌어 오라 하였다.

나졸들은 묶어 놓은 돼지 모양으로 신홍을 번쩍 들어다가 위홍의 앞에 꿇렸다.

위홍은 수족을 묶이어 땅바닥에 엎더진 신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픽 웃으며,

『이놈 내가 네 삼동 형은 되거든 인륜을 몰라 보고…… 그래 이놈 네가 나를 어쩔 테냐?』

하고 소리를 쳤다. 신홍은 엎더진 대로 고개를 돌려 위홍을 노려 보며,

『짐승의 입에서 인륜이라는 말이 당치 않다. 군부(君父)를 몰라 보고 나라를 도둑질하는 너 같은 대역부도 놈의 썩어진 간을 내어 선왕(先王)의 영 앞에 제사를 못지낸 것만 분하다. 국운이 불길하고 네 죄악이 아직 관영치를 못하여 내가 네 손에 잡혔거니와, 나 죽은 혼이 잇고만 보면 삼생구사를 하더라도 불충 불의한 대역 위홍의 간을 씹어 피를 뿜고야 말리라.』

하고 입술을 부쩍 깨물어 위홍의 얼굴을 향하고 뿌렸다. 붉은 피는 방울방울이 위홍의 얼굴과 옷에 묻었다. 위홍은 얼굴에 묻은 피를 씻으려고도 아니하고 도리어 껄껄 웃으며,

『허, 충신의 피는 푸르다더니 네 피가 붉은 것을 보니 아직 멀었구나.』

이 말에 신홍이 머리를 들어 깨어져라 하고 땅바닥을 구르며,

『내 어찌 충신이라 하랴. 너 같은 놈을 오늘까지 살려 두었으니 내 어찌 충신이라 하랴.』

하고 소리를 내어 울 때에 위홍의 얼굴과 웃에 묻은 신홍의 피가 유황불같이 푸른 빛을 발하고 신홍의 눈에서는 붉은 불꽃이 뛰었다. 이것을 보고 좌우에 섰던 사람들은 무서워 떨고 위홍의 눈도 한참은 죽은 사람의 눈과 같이 빛을 잃었다. 이에 위홍은 정신 없이 찼던 칼을 빼어 신홍의 목을 겨누고 부르르 떨었다. 신홍은 붉은 불꽃이 뛰는 눈으로 위홍을 노려보며,

『오냐, 내 목을 베어라. 그러나 이 후 몇 날이 못하여 네 목에도 칼이 들어 갈 날이 있으리라.』

하고 껄껄 웃었다. 위홍은 칼을 들에 메어 힘껏 신홍의 목을 쳤다. 붉은 핏기둥이 방안에 뻗고 신홍의 목이 떨어지어 방바닥에 굴렀다. 눈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일고 입에서는 푸른 피가 흘렀다.

위홍은 곧 금군 대장에 명하여 신홍의 머리를 종로에 높이 달고 신홍이 사당(私黨)을 거느리고 승야 범궐(犯闕)한 죄상을 기록하여 바방 곡곡에 방을 붙이라 하였다. 이윽고 졸로에는 높은 기둥이 박히고 거기는 피 흐르는 신홍의 목이 달리고 그 곁에는 대역 신홍(大逆信弘)이라고 대자를 써 붙이었다.

하나씩 둘씩 모이는 백성들은 문득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모인 백성들은 차차 울기를 시작하여 점점 울음 소리가 커지어서 마침내 울음 바다가 되었다. 백성들은 오늘 이곳에서 위홍의 머리가 달린 것을 보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백성들은 자기네를 살려 낼 마지막 사람이 죽은 것을 볼 때에 천지가 아득하여진 듯하였다. 처음에는 금영군 군사들이 우는 백성을 해치려고 하였으나 백성들의 울음이 더욱 커지는 것을 보고는 군사들 중에 더러는 손에 들었던 창을 땅에 집어 던지고 백성들과 어우려지어 울고 더러는 슬며시 뒷골목으로 빠지어 달아났다.

『위홍의 머리를 베어라!』

하는 소리가 백성들 중에서 일어나자, 울던 백성들은 고함을 지르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다.

이때에 어떤 사람이 「대역 신홍」이라는 패를 떼어 분지러 내버리고

「충신 신홍」이라는 새 패를 세웠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충신 신홍」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시 소리를 높여 울며 신홍의 버리를 단 곳을 향하고 합창하였다. 신홍의 부릅뜬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역적 위홍아!』] 하고 또 백성들은 소리를 질렀다. 백성들의 얼굴은 상기와 더위로 핏빛이 되고 눈에는 피와 눈물이 넘치는 듯하였다.

이때에 또 어떤 사람이 높은 장대 끝에 위홍의 화상을 그리고 그 곁에 「대역 무도 간신 위홍(大逆無道奸臣魏弘)」이라고 대서 특서하여 신홍의 머리를 단 기둥 곁에 세웠다. 이것을 본 백성들은 「와!」하고 소리를 치고 달려들어 위홍의 화상을 끌어 내려 찢고 밟고 입으로 물어뜯었다.

이때에 한 사람이 피 흐르는 신홍의 머리를 내리어 두 손으로 받들고,

『위홍을 잡아라!』

하고 반월성 대궐 가는 길로 나섰다. 백성들은 「우와 우와」하고 혹은 몽둥이를 들고, 혹은 돌멩이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힘없는 백성의 무리는 마침내 구름같이 몰아 오는 위홍의 군사의 칼과 창에 반은 줄고 상하고 나머지는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리하여 신홍의 계획은 틀어져 버리고 위홍은 여전히 태후와 불의의 쾌락을 누리면서 일국의 정권을 농락하였다. 신홍마저 없어지니 위홍은 끼릴 것도 없는 듯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예감은 마침내 쫓겨 나고 왕은 더욱 의롭게 되어 국가와 정사에는 조금도 참례할 수가 없었다. 그리되매 왕은 만사에 뜻을 잃고 오직 주색에만 침윤하여 밤낮을 잊었다. 이리하여 그렇게도 총명하던 왕은 반이나 폐인같이 되었다. 점점 몸과 정신이 쇠하여 즉위하신 지 십이년 스물 다섯이라는 한청 살 ————청춘에 그만 승하하시고 말았다.

헌강대왕이 승하하시매, 궁중에는 또 더러운 난리가 났다. 태후는 그 따님이신 만공주를 세우려 하고 정화마마는 당신의 소생인 황(晃)왕자를 세우려 한 것이다. 그러나 만사는 위홍의 손에 달린 것이 물론이다, 위홍은 태후가 싫어졌다. 벌써부터 태후보다 나이도 젊고 자색도 아름다운 정화마나에게 뜻이 있었건마는 권세를 위하여 아직까지 태후의 맘을 맟춰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헌강대왕이 승하하시니 이때야말로 평소의 뜻을 달할 때라 하여 태후의 간청을 물리치고 황왕자를 왕으로 세웠다.

정화마마는 오랫 동안 형님 되는 태후에게 학대를 받아 오는 분풀이를 할 때를 당하였다. 그는 태후에게서 나라와 사나이들을 한꺼번에 빼앗아 가지고 의기 양양하였다. 태후에게서 받은 것을 고대로 갚노라고 태후와 만공주를 뒷대궐로 내쫓아 가두고 반월성 대궐을 혼자 맡아 위홍과 함께 불의의 쾌락을 누렸다.

그러나 태후는 이 분을 참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하여서라도 동생 되는 정화마마의 원수를 갚고 국권과 위홍을 빼앗아 오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다. 그리하자면 사람을 잡으려면 그가 탄 말을 쏘는 격으로 새왕을 없이하는 것이 첩경이다. 이리하여 영화태후는 새왕을 죽일 무서운 꾀를 품게 된 것이다.

새 왕은 즉위할 때에 벌써 신병이 있으시었다. 왕은 본래 잔약한 몸으로 맘이 극히 어질고 약하여 날마다 궁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스럽지 못한 일에 항상 맘을 아프게 하고 병은 더욱 골수에 사무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즉위하신 후로는 어머니 되시는 정화마마의 추한 행동을 차마 못 보아 식음을 전폐하신 일이 자주 있었다. 이리하여 병은 점점 중하여 마침내 자리에 누워 약 잡수시기로 일삼는 몸이 되시었다.

왕이 어서 돌아 가시게 하기 위하여 영화마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다. 술객과 무당히 밤이면 뒷대궐로 도둑 고양이 모양으로 소리도 없이 들고 났다. 술객과 무당은 왕의 병이 더하게 하는 일 외에 또 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밤이면 꿈에 나타나 영화마마를 괴롭게 하는 뒷대궐마마의 혼령이었다. 영화마마가 뒷대궐에 옮아 온 첫날밤에 자리에 누워 잠이 둘려 할 때에 문뜩 몸이 으쓱하여 입에 칼을 문 뒷대궐마마의 혼령이 보인 뒤로는 며칠을 몸이 몹시 아팠다. 그런 뒤에 병은 나았으나 가끔 뒷대궐마마가 눈에 띄고 어떤 때에는 낮에도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늙어서 이런가?』

하고 영화마마는 자탄을 하였다. 대개 지금까지 서슬이 푸를 때에는 그러한 일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늙은 무당은 정직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귀신들로 운수 좋은 사람에게는 못 덤빕니다. 사람이 운수가 기울어지게 되면 귀신들도 운수 좋은 사람에게는 못 덤빕니다. 사람이 운수가 기울어지게 되면 귀신들도 업신여겨서 맘대로 덤빕니다.』

영화마마는 이 무당의 말을 마땅하게 들었다. 아무리 귀신이기로 감히 자기를 거역하고 자기를 건드릴 생각은 못 내리라 하던 기운도 즐어지고, 근일에는 모든 귀신이 자기를 비웃고 자기를 건드리려고 손을 내미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첫째에 뒷대궐마마, 둘째에 남편이시던 경문대왕, 그담에 위홍과 좋아한다 하여 젖을 도리고 팔목을 도리고 눈을 도리고 입을 도리고 하문을 도려서 죽인 수없는 궁녀들이 모두 피 흐르는 몸을 가지고 사방으로서 달려들며,

『오, 이냔! 이제도? 이제도!』

하고 자기를 건드리려는 듯하였다. 혼자 자리에 누웠으면 이런 흉물스러운 귀신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창 틈으로 병풍 틈으로 모여 드는 듯하여 전신에 소름이 끼치고 찬 땀이 흘렀다.

<위홍과 한자리에 있으면 이런 일이 없는데.>

하고 영화마마는 위홍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새 왕이 즉위하신 후로는 반년이나 넘도록 이내 위홍의 얼굴을 대해 본적이 없었다. 위홍은 동생 되는 정화마마의 자리 속에 전신이 타는 듯하였다. 위홍의 그 늠름한 풍채, 그 건강한 몸, 그 힘 ———이런 것이 모두 언제까지나 자기의 것으로만 알았더니 이제는 남의 것이다. 할 때에 영화마마는 참다 못하여 울고 울다가는 이를 갈고.

<이놈! 내가 너를 가만 둘 줄 알고.>

하고 치를 떨었다. 독한 눈쌀로 한자리 속에서 즐기는 청화마마와 위홍을 노려 보고 빨간 독을 바른 칼로 둘의 허리를 싹 잘라 버리기를 여러 번하였다.

그러다가 또 한번 더 위홍을 자기 것을 만들 생각을 한다. 경문왕이 여러 해 병으로 누워 영화마마가 홀로 있을 때에 국사를 의논한다는 핑계로 위홍과 자주 만나다가 마침내 자기가 앞에 엎드린 위홍의 몸에 매어 달리고 위홍도 자기 몸이 으스러져라 하고 껴안아 주던 생각이 난다. 그것이 벌써 십 오년 전이다. 십 오년 동안 뻗치었던 악운이 인제는 다한 듯하여 모든 귀신이 꿈과 생시를 물론하고 영화마마를 건드렸다.

그러나 영화마마는 아직도 힘과 운수가 자기의 손에 있는 주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무리 하여서라도 금상(今上)을 없이하고 권세와 위홍을 도로 제 손에 넣으려고 애를 썼다. 눈을 뜨면 왕과 정화마마를 없이할 독약과 에방이요, 눈을 감으면 사방으로서 피 흐르는 손을 내미는 원통한 귀신들이 있다. 영화마마의 얼굴 빛 눈매까지도 점점 무섭게 변하였다. 잠이 들면 무서운 잠꼬대를 하고, 깨어 있을 때에도 가끔 미친 사람과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근시하는 . 궁녀들은 마마의 곁에 있기를 무서워하였고 가끔 깜짝깜짝 진저리를 쳤다.

하루는 서악에 있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의 능이 터지고 비가 큰소리를 내고 넘어가고 그날 밤에는 대궐 뒷 뜰에서 백제 군사와 신라 군사의 우짖는 소리가 들렷다. 보았다는 사람의 말을 듣건대, 어떤 젊은 장수가 백달마를 달려 와서 말채찍으로 태종대왕의 능과 비를 쳤더니 능이 터지고 우뢰 소리를 내고 넘어갔다 하며, 또 어떤 사람의 말에는 고구려 옷 입은 여자 하나가 와서 마리채로 비를 감아 넘어뜨렸다고도 한다. 아무려나 이것은 백제의 원혼과 고구려의 원혼이 나와 다니기 시작한 것이요, 그것은 나라에 큰 쇠운이 올 징조라고 노인들은 눈을 끔쩍거리며 수군거렸다.

대궐 뒷들에서 백제 군사와 고구려 군사의 우짖는 소리가 들리매, 영화마마는 때가 왔다고 기뻐하였다.

모든 것은 마마의 뜻대로만 되는 듯하였다. 정강대왕(定綱大王)은 칠월 사일에 미음 한 그릇 잡수시고 환후가 더쳐 승하하시고 왕위는 대왕의 유칙(遺勅)으로 왕매되시는 만공주(蔓公主)께서 이으시게 되었다.

영화마마는 이렇게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을 기뻐하여 며칠 동안은 무서운 귀신들이 피 묻은 얼굴과 손을 내밀고 모여드는 꿈도 꾸지 아니하고 다시 태후로 나라의 권세를 잡을 것과 한참 동안 빼앗겼던 위홍을 다시 내 것을 만들 것만 생각하고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침내 헛웃음이 되었다.

새 왕이 즉위하시고 아직 대행 왕의 인사도 지나기 전 어느 날 밤에는 영화마마를 모시는 늙은 궁녀 하나가 무서운 소식을 마마에게 전하였다.

그것은 상대등이 쌍초롱에 불을 들라고 상감마마의 침전(寢殿)으로 들어 가더라는 소식이다, 이 말을 듣고 마마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한참 동안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얼마 있다가 마마는 겨우 말문이 열려,

『들어 가 오래 있더냐?』

하고 물었다.

궁녀는 두려운 듯이 마마의 낯빛을 엿보며,

『대감이 들어 가신 뒤에 상감마마께서는 술을 많이 올리라 하시옵고 방안에서는 웃음 소리가 나더이다.』

하였다.

마마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동생에게 빼앗겼던 위홍을 인제는 딸에게 빼앗긴 것이다.

마마도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이튿날 평명에 왕의 침전으로 가시었다 문밖에 지키던 . 궁녀들은 왕께서 아직도 일어나시지 아니한 듯 고하였다. 마마는 분기였으나 궁녀들은 마마의 앞을 막았다. 마마는 보석 위에 가지런히 놓인 남자의 신 한 켤레를 원망스럽게 노려 보았다. 그러나 딸은 왕이다. 대궐 안에 모든 사람들은 왕의 신하다. 자기도 왕의 신하다.

왕이 위홍과 함께 수라를 잡숫고 난 뒤에야 마마가 들어 가는 허락을 얻었다. 마마는 들어 가는 길로 피곤한 듯한 왕을 보고,

『어젯밤에 이 방에 누가 있었소?』

하고 물었다.

왕은 빙그레 웃으며,

『나하고 위홍하고.』

라고 대답하였다.

마마는 눈이 뒤집히고 입에 거품을 물며,

『그것이 옳지 않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왕은 퍽 웃으며,

『남편을 살려 놓고 남편의 신하와 한자리에 자는 이도 있거든 어머니의 곁서방을 좀 빼앗기로 그리 옳지 못할 것이 있소? 좋은 서방은 늙으신 어머니가 가지는 것보다 젊은 내가 가지는 것이 더 옳지 않겠소?』

하고 시들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리하여 영화마마는 권세와 위홍을 영영 그 따님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하고는 다시 밤이나 낮이나 산 귀신과 죽은 귀신이게 부대끼는 불쌍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새로 왕이 되신 만공주는 스물 네 살이었다. 얼굴이 아름답지는 못하나 골격이 장대하고 힘이 세고 호협한 기운이 있어 마치 대장부와 같았다.

그래서 꾀가 많고 몸이 건강하고 수십년 권세에 많은 경험을 가진 위홍도 왕의 앞에서는 기운을 펴지 못하고 쥐어 지내 왔다. 위홍을 희롱할 때에 마치 어른이 어린 아이를 희롱하듯 하였다. 육십을 바라보는 위홍이 어린 여왕의 장난감이 되는 양을 궁녀들도 가끔 보고 웃었다.

『위홍아!』

『네.』

『몇 살이니?』

『쉰 다섯 살이요.』

『아따 쉰은 떼어 버려라.』

『그러면 다섯 살이요.』

이리하면 왕은 웃고 두 손을 내밀어,

『손 다오.』

하면 위홍은 어린 아이 모양으로 왕의 앞으로 가서 주름 잡힌 두 손을 왕의 포동포동한 손에 올려 놓았다. 그러면 왕은 위홍의 두 손을 왕의 잡아 끌어서 어머니 모양으로 위홍을 번쩍 안아 쳐들어 무릎 위에 놓고 뺨과 등을 어루만지며,

『둥개 둥개 둥개야.』

를 부르고 웃었다. 그럴 때에는 위홍은 짐짐한 듯이 입맛을 다셨다.

왕은 가끔 불쾌하시면 위홍을 견디게 굴었다.

『대가리가 허연 것이 이게 무슨 짓이야.』

하고 위홍의 등을 밀어 문밖에 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리고 나시는 곧 다시 끌어 들여서 사랑하는 뜻을 표하였다.

『왜 늙었어? 왜 늙었어?』

하고 왕은 위홍의 허연 머리카락과 수염을 잡아 뽑았다. 아무리 늙은 줄울 모르는 위홍도 오십이 넘어 육십이가 가까우면 백발이 생겼다. 왕은 그것을 불만히 여겼다. 그래서 젊은 남자도 여려 번 불러 들여 보았으나 모두 위홍만 못하여 하루나 이틀을 데리고는 조그마한 골 원이나 한 자리씩 주어서 내쫓았다. 그리고는 다시 늙은 위홍을 불러 들였다. 그리고는 또 늙은 위홍이 그리워 그 젊은 사람들을 도로 내쫓았다.

『이 늙은 것에 내가 무엇을 보고 흑했어』

하고 왕은 가끔 위홍의 높은 코를 잡아 흔들었다. 그렇게도 여자의 마을 끌던 좋은 코에는 주름이 잡히고 기름기가 빠졌다. 왕은 젊은 위홍을 맘껏 가지고 놀던 어머니에게 대하여 무서운 질투를 가끔 가졌다. 그래서 가끔 위홍을 내어 문밖으로 밀어 내며,

『늙은 것 같으니 노파한테로나 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위홍은 문박에 우두커니 서서 왕이 다시 불러 들이기를 기다렸다.

이리하여 밤마다 왕의 방에는 위홍이 있고 위홍이 없으면 때때로 불러들이는 젊은 미남자가 있었다.

이 소문은 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전국에 퍼지었다. 그래서 얼굴 잘 나고 호협한 젊은 남자들은 한번 왕을 보려고 서울로 모여 들어 서울에는 과것날이 가까운 때 모양으로 깨끗한 젊은 가람들이 우글우글하였다.

그러면서도 왕은 정사를 폐하지는 아니하였다. 왕은 즉위하는 벽두에 전국의 죄인을 놓고 가나한 백성에게 일년 동안 세납을 탕감하였다. 그뿐 아니라, 혹은 황룡사에 백고좌를 설치하고 친히 행행하여 설법을 들으며 혹은 국악에 행행하여 여러 박사에게 오경의 강설을 들었다. 백성들은 이왕이 장차 어떠한 왕이 되련고 하고 모두 의심하였다. 어찌 보면 성군인 듯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음란한 여인인 것 같기도 한 까닭이다, 아무려나 왕은 범상한 사람이 나리라고 다들 생각하였다.

대각간(大角干) 위홍의 집은 모돌(牟梁部)에 있었다. 사백간 집이라고 이름 난 큰집이다. 하늘에 닿은 듯한 높은 대문에는 창 든 군사가 파수를 보고 대문 안에도 담과 후원으로 돌아 가며 목목이 군사가 파수를 보았다.

위홍이가 권세를 잡은 지가 몇 십번인지 모른다. 그러나 들어 오는 족족 파수하는 군사에게 잡히고 위홍은 일찍 한번도 자객의 칼끝에 손톱눈 하나 상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자객이 한번 들어 온 때마다 위홍은 자기ㅣ 운수가 어떻게 좋은 것을 생각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위홍도 맘으로는 편안할 날이 없어 그 큰집에 자기의 침실을 수십 곳이나 놓고 혹 대궐에 안 자고 집에서 잘 때면 밤이 깊기를 기다려서 집 사람들도 모르게 살그머니 그중의 어떤 한 방에 들어 가 잤다. 방방이 다 불을 켜 놓고 방방이 문밖에다 신을 놓았기 때문에 어느방에 위홍이 있는지 모조리 찾기 전에는 알 수없는 것이다. 오직 위홍과 자리를 같이 하는 첩뿐이다. 방도 여럿이요 첩도 여럿이어서, 초저녁에는 이 첩과 이 방에서 자다가 있다가는 저 첩과 저 방에서 자기 때문에 첩들도 위홍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이월에 사돌 신홍의 집 앞에 있던 바위가 개천가로 댓 걸음이나 비실비실 걸어 나갔다는 말과 그것을 신흥의 원혼아 자기가 아직도 서울에 머물러 있어서 원수를 갚을 날을 기다리는 징조라는 말을 들은 위홍은 근래에 더욱 겁이 많았고 또 나이 많아짐을 따라 젊을 때 무서움 없던 기운이 줄어짐을 따라 위홍은 모든 것에 무서움을 가지고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침실에 첩을 불러 들일 때에도 반드시 몸 수험을 하여 혹 칼이나 품지 아니하였는가를 알아 보고야 안심하였다.

따뜻한 봄철 어떤 밤이다. 위홍은 마침 집에서 잘 기회를 얻어 저녁을 먹고 나서 후원 첨들의 방 앞을 거닐었다. 첩들은 이날에 대감이 집에서 자는 줄 알고 모두 있는 힘을 다하여 단장을 하고 대감의 발이 행여나 자기의 방에 머물기를 고대하였다. 뚜벅뚜벅하는 발자취 소리가 박석 위로 울려 올 때에 아름다운 첩들은 가슴을 두근거리고 자기 방 문고리에 손가락이 걸리기를 기다렸다.

위홍은 촛불이 비추인 창과 그 창에 비추인 그림자를 보고 어렴풋이 그 그림자의 주인을 생각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창에 비추인 그림자들은 위홍의 발자취 소리가 바로 그 앞에 왔을 만한 때에는 한번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위홍의 맘을 끌자는 표인 듯하였다.

위홍은 맘 나는 데로 몇 방문을 열었다. 위홍의 얼굴이 방으로 들어 오면 미인들은 수삽한 듯이 일어나 맞았다. 위홍은 혹은 한번 슬쩍 바라보고 말기도 하고 혹은,

『몸 성한가?』

하고 말을 한번 마디 붙여 보기도 하고, 혹은 맘이 나면 손과 발도 한번 만져 보고, 혹은 한번 빙그레 웃기도 하고 그리고는 또 딴 방으로 간다.

위홍이 그냥 지나간 방에서는 문에 비추인 그림자가 스러지는 것이 보이고, 혹은 긴 한숨과 혹은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나도 맘에 드는 게 없군.』

하고 위홍은 화를 내어 몇 걸음 빨리 걸어 간다. 그때에는 두 분 마마와 왕의 생각이 난다. 제일 맘에 들기는 정화 마마여니와 그와는 오래 즐길 기회가 없었다.

『제게, 맘대로 안되는 세상!』

하고 위홍은 혼자 한탄하고 한숨을 쉰다.

위홍은 문뜩 어떤 울음 소리를 듣고 우뚝 섰다. 위홍은 울음 소리 나오는 창을 바라보았다. 그 창에는 사람의 그림자는 없이 울음 소리뿐이었다.

위홍은 그것이 난희인 줄을 안다.

위홍의 눈앞에는 난희(鸞嬉)의 아름다운 자태가 보였다. 그때의 위홍의 눈에는 웃음이 있었다. 그러나 난희의 자태가 보인 뒤에는 반드시 푸른 피를 뿜던 신홍의 얼굴이 보였다. 위홍은 손으로 얼굴을 한번 만지었다.

얼굴에는 지금도 그때 신홍의 피의 뜨거움을 감각하는 듯하였다.

신홍을 죽인 뒤에 맨 먼저 위홍의 맘에 드는 것은 물론 난희를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곧 난희를 붙들어 왔다. 붙들어 올 때에 난희는 그리 저항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붙들려 와서는 좀처럼 위홍에게 몸을 허하지 아니하였다. 처음에는 발악을 하였고 다음에는 먼저 남편의 거상을 입은 것을 핑계로 하였고 그 후에도 혹은 발악을 하고 혹은 병 핑계를 하고 혹은 밤을 새고 혹은 죽는다고 위협을 하여, 위홍에게 몸을 허하기를 막아 왔다. 위홍도 신홍이 기억이 새롭고 또 난희의 굳은 맘이 무서워서 난희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물 같은 여자의 맘이 반드시 변할 날이 있을 것과 한번 자기에게 허하기만 하면 다시는 떨어지지 아니할 것을 믿고 오늘까지 참고 기다렸다 오늘까지라는 . 것이 벌써 팔년이나 되었다. 그러다가 지금 난희가 슬피 우는 것을 볼 때에 아직도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 하였다.

서뿔리 건드리다가 또 발악을 하여도 창피하다고 위홍은 슬며시 그 방 앞을 지나가며 난희의 생각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아니하려 할수록 난희의 슬픈 울음 소리는 위홍의 구름 따라 오는 듯하였다. 그것이 이상하게 위홍의 맘을 괴롭게 하였다. 위홍은 어린 잎이 나불나불하는 은행나무 아래 서서 뒷짐을 지고 수없는 늙은 가지 틈으로 반짝반짝하는 별을 바라보았다. 꽃 향기를 품은 바라마이 위홍의 얼굴을 스치어 지나간 때에 위홍의 늙은 맘속에도 청춘의 하염없는 유혹의 바람이 불었다.

위홍은 결심한 듯이 발을 돌려 다시 난희의 방 앞으로 왔다. 방에서는 아직 연연하게 느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위홍은 기침을 하고 마루에 올라 서서 난희의 방문을 열었다. 난희에 젖은 별 같은 눈으로 그것을 대답하였다. 방에 켠 옥등잔 불이 문바람에 금실금실 춤을 추어 흰 벽에 비추인 두 사람의 그림자를 춤을 추인다.

위홍이 들어 오는 보고 난희는 일어나 아랫목 자리에 앉으며,

『오늘은 웬일이냐? 네가 전에 없이 단장을 하고 또 내게 자리를 권하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앉은, 난희의 울어서 볼그레한 뺨을 탐내는 듯이 보였다. 과연 난희는 단장을 하였다. 머리는 기름을 발라 빗고 평생에 안 입던 분홍 비단 바지에 짙은 자주 깃을 단 유록색 저고리를 입고 얼굴에는 분이 반이나 눈물에 씻기어 혈색 좋은 연한 살이 군데 군데 나온 것이 더욱 풍정이 있다.

난희는 길게 한숨을 쉬며,

『늦어 가는 봄을 마지막 보려고요.』

한다.

『늦어 가는 봄을 마지막 본다.』

하고 위홍은 난희의 말을 그대로 한번 불러 보더니 그뜻을 알아 들은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래도 네게는 아직 봄이 남았다.』

하고 자기의 반백이 너머 된 수염을 만진다.

난희는 힘없이 벽에 몸을 기대며,

『나의 봄, 시들은 봄, 꽃 없는 봄.』

하고 또 한번 하염없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나비 하나가 어디로서 들어 와 등잔불을 싸고 돈다.

위홍은 손을 내밀어 분홍 바지 무릎 위에 놓인 난희의 하얗고 보드러운 손을 덥썩 잡아 끌었다.

위홍이 난희의 손을 잡아 끌 때에 난희는 몸서리 치는 듯이 손을 뿌리치려 하였다 . 그러나 어느덧 난희가 가는 허리는 위홍의 팔에 껴안기었다.

『늦어 가는 봄을 헛되이 보낼 수가 있으랴. 아직 꽃은 필 것을.』

하고 위홍은 난희를 끌어 무릎 위에 얹었다. 난희는 더 반항하려고도 아니하고 붙들린 참새 모양으로 숨소리만 씨근씨근하였다.

에기하였던 반항과 발악이 없는 것을 다행히 여기어 위홍은 어머니가 젖 먹이는 아기를 안 듯이 난희의 몸을 꼭 껴안았다. 난희의 몸은 비단 같이 부드럽고 불같이 뜨거운 듯하였다. 위홍은 육십이 가까운 몸이 갑자기 젊어지는 듯하여 미친 듯이 몸을 떨고 난희의 몸은 전신이 향기에 젖은 듯하였다.

『난희야, 오늘 하루를 보려고 내가 육십 평생을 살았다.

시불한(舒佛邯)다 무엇이랴.』

하였다, 위홍이 본래부터 난희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이렇게 품에 안고 보니 새삼스럽게 더욱 아름다운 듯하였다. 위홍은 취한 듯이 숨이 차고 몸이 떨렸다.

또 어디서 들어 온 나비가 등잔불을 싸고 돈다. 가끔 날개로 불을 치고는 놀래서 물려나다가 다시 날아 든다.

난희는 가만히 두 팔을 뽑아 위홍의 가슴을 안았다. 그 뚱뚱한 가슴이 난희의 아름에 겨우 두 손 끝이 위홍의 등뒤에서 닿을락말락하였다. 난희는 손으로 위홍의 등을 위아래로 쓸어 만지었다. 그렇게 할수록 위홍의 숨결은 더욱 커지고 눈가는 더욱 술 취한 듯하였다.

난희는 위홍의 가슴에 한편 구리를 대었다. 엷은 겹옷을 통하여 염통 뛰는 소리가 쿵쿵 들린다. 난희의 등에는 위홍의 크고 힘있는 손이 떨면서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할 때마다 난희의 비단 저고리가 위홍의 손바닥에 스치어 바삭바삭하는 소리를 낸다. 위홍은 참다 못하여,

『난희야, 오늘 저녁은 내가 네 방에서 잘란다.』

하였다. 위홍은 지금까지 첩을 자기 방으로 불러 들일지 언정 일찍 첩의 방에서 잔 일은 없었다 ——— 그것은 무슨 일이 있을까봐 무서운 까닭이다.

그러나 오늘은 차마 난희의 방을 떠날 수가 없었다. 비록 잠시라도 한걸음이라도 난희 방에서 발을 내놀을 수가 없었다. 난희는 여전히 구리로는 위홍의 염통 뛰는 소리를 듣고 손으로는 위홍의 등과 허리를 만지면서 고개도 도리지 아니하고,

『주무시게 해 드리지요.』

하였다.

이 말에 위홍은 더욱 기뻐서 난희를 한번 더 껴안았다. 그리고는 곧 자리를 펴라 하고 난희를 안았던 팔을 풀었다.

난희는 일어나 반침을 열고 자리를 내어 깔았다. 다홍깃 단 초록 이불의 하얀 머리가 베개에 반쯤 걸렸다. 자리를 펴고 나서 난희는 등잔을 들고 방 한편 구석에 섰다. 위홍은 칼을 끌러 걸고 옷을 끄르면서 등잔 뒤에 선 난희의 수삽한 얼굴을 보고 그 날씬한 몸을 볼 때에 더욱 정욕이 불 일듯하였다.

위홍이 웃옷을 벗고 자리에 들어 가려 할 때에 난희는 나는 듯이 달려들어 뒤로서 위홍을 껴안았다. 위홍은 가슴에 무엇이 선뜻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앞으로 쓰러졌다. 위홍의 왼편 젖가슴 밑에는 날카로운 난희의 비수가 박힌 것이다.

난희는 힘을 써서 손에 쥔 비숫자루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이놈———— 내 남편의 원수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일어나서 벽에 걸린 위홍의 칼을 쭉 빼어 들었다.

위홍은 「응——」하고 몸을 비틀어 돌아 누웠다. 한손으로 피에 젖은 칼자루를 잡기만 하고 뺀 힘은 없이 눈을 떠서 난희를 본다.

『내 남편의 목을 찍은 칼로 네 목을 찍을 테다.』

하고 난희는 번쩍번쩍하는 칼을 위홍의 목 위에 둘러 매었다.

위홍은 정신이 아뜩하고 소리도 칠 수 없는 줄을 알면서 난희의 내려치는 칼을 막으려는 듯이 힘없이 한손을 들고 애걸하는 듯이,

『난희야 난희야!』

하며 가슴을 들먹거린다.

난희의 눈에서는 새파란 불꽃이 날았다.

위홍은 겨우 기운을 모아,

『난희야, 너 같은 열녀도 있는데 나 같은 불충한 놈도 있구나, 난난난희야 내가 열녀의 칼로 죽는 것만 다행이다.』

하고는 무슨 말을 더 중얼거리는 모양이나 어를하여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난희는 두러 메였던 칼을 내리고 가만히 위홍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피 묻은, 좋으나 주름 잡힌 얼굴은 금시에 해쓱해지고 가슴 들먹거리던 것도 점점 적어지다가 마침내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위홍이 숨이 끊어진 것을 보고 난희는 숨이 끊어지어 넘어진 위홍을 볼 때에 그의 목을 자르고 그의 가슴을 째고 간을 꺼낼 생각이 없었다. 위홍의 목과 간을 들고 신홍의 무덤 앞으로 뛰어 가서 신홍에게 제사를 드릴 생각도 없이지었다. 멍하니 뜨고 있는 빛 없는 위홍의 눈을 볼 때에는 난희는 가엾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위홍의 곁에 앉아 손으로 위홍의 눈을 감기고 이불을 들어 위홍의 시체를 덮어 버렸다.

난희는 이윽히 멍하니 옥등잔 불만 날개로 치고 돌아가는 나비를 보았다.

그 중 하나는 불에 몸이 데어 노란 기름에 빠지고, 한 나비만 여전히 날개를 불을 치그 돌아간다.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난희는 일어나서 안 앞으로 가서 벼룻집을 열고 먹을 갈았다. 그러하는 동안에 희의 눈에는 신홍이 죽은 지 팔년 동안 지나던 눈물 솟는 생애가 보인다. 몇 번이나 자기의 목숨을 끊어 신홍의 뒤를 따르려 하였던고, 몇 번이나 위홍을 죽일 기회를 엿보았던고, 몇 번이나 위홍에게 욕을 당할 뻔하였던고, 몇 번이나 차라리 위홍에게 몸을 허하여 위홍의 환심을 산 후에 죽일 기회를 얻을까 하는 생각이 났던고, 그러나 남편의 원수를 갚는 것도 중한 일이어니와, 내 몸의 정절을 깨끗이하는 것도 중한 일이었다. 백목 같이 깨끗한 몸을 짐승 같은 위홍에게 던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하는 동안에 한 봄이 가고 한 가을이 또 가기 일곱째 봄이 또 늦어 가려 하였다. 원통히 죽은 남편의 몸은 벌써 썩어서 재가 되어 버리고 어리던 자기의 눈초리에도 한 줄 두 줄 가는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그날에 위홍이 집에서 잔다는 말을 들었다. 근래에 위홍은 매일 대궐에서 자고 집에서 자는 일은 한달에도 며칠이 되지 못하였다. 이날을 놀치면 또 언제 기회가 올는지 몰랐다.

난희는 자기가 위홍을 잡을 무기가 자기의 아름다움 밖에 없는 줄을 안다. 난희는 팔년에 처음 단장을 하고 채색 옷을 입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른 때나 채색 옷의 고름을 맬 때나 난희의 가슴은 아프고 눈물은 흘렀다.

더구나 단정을 다하고 나서 품에 비수를 품고 거울을 대하여 앉을 때에 난희의 창자는 천 조각 만 조각으로 끊어지는 듯하였다.

단장을 하고 채색 옷을 입고 겨울을 대하니 옛날과 다름이 없다.

사돌집에서 신홍의 사랑을 받을 때와 다름이 없다.

<나는 아직도 젊다, 아직도 아름답다, 아직도 한창 재미 있게 살 나이다, 그러나 나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할 때에 난희는 얼마나 슬펐다.

난희는 거울을 대하여 엣 부르던 노래도 불러 보고 혼자 일어나서 엣 추던 가야선무(伽倻仙舞)도 추어 보았다. 노랫 소리도 예와 같고 춤도 추는 소매도 예와 같았다. 다만 같지 아니한 것은 난희의 신세이었다.

난희는 품에 품었던 비수를 빼어 보았다. 날은 파랗고 안개가 돈다. 팔 년 동안 품었던 비수다. 밤마다 내어 보고,

『남편의 원수를 갚아 다오.』

하고 사람에게 대해 말하듯이 말하던 비수다. 이것은 자기가 위홍에게 붙들려 온 뒤에 신홍이 자기더러 일생을 같이 하라고 하던 화랑(花郞)이 담을 넘어서 갖다 주고 간 비수다. 비수의 날은 파랗고 끝이 뾰죽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난희는 수없이 허공을 찔렀다. 찌를 때에 위홍이 피를 쏟고 거꾸러지는 것을 보고는,

『이놈 내 남편의 원수야!』

하고 소리를 지른 뒤에 위홍의 목을 찍고 배를 째고 간을 내어 입으로 씹고 ———— 이렇게 한번씩 되풀이하고는 다시 싸 두었다. 그러하던 비수다.

『오늘은————오늘은.』

하고 난희는 비수로 한번 허공을 찔러 보았다. 그리고는 또 한번,

『이놈 내 남편의 원수야!』

하고 한번 더 속으로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리고는 또 거울을 보았다.

<나는 아직도 젊은데 아름다운데 살 나이인데.>

하고 입술을 물고 눈물을 뿌렸다.

난희가 먹을 갈다 말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등잔가로 돌아 가던 나비가 마주 불을 치고 등잔 밑에 떨어져 바르르 떨었다. 또 개가 짖는다.

난희가 먹을 같다 말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등잔가로 돌아 갔던 나비가 마주 불을 치고 등잔 밑에 등잔가로 돌아 가던 나비가 마주 불을 치고 등잔 밑ㅇ[ 떨어져 바르르 떨었다. 또 개가 짖는다.

난희는 생각하기를 그치고 급히 급히 먹을 갈았다. 갈던 먹을 벼룻집에 던지고 붓을 들어 벽에 이렇게 썼다 ———

『主失遺, 孤隱身伊, 八年風霜難臣良, 八年風霜何以經隱古, 主惡讎報白良遺, 主惡讎報叱時尼, 爲白事伊, 無奴阿羅, 主怨讎報叱時尼, 主追良往白理良.』

이것을 번역하면 이러하다.

『임 잃고 외로운 몸이 팔년 풍상 어려워라. 팔년 풍상 어이 겪은고.

임의 원수 갚았으니 임 따라 가노매라.』

다 쓰고서 난희는 위홍의 칼을 들고 후원으로 나갔다. 밤은 고요하고 별은 반짝인다.

난희는 은행나무 밑을 지나 연당 가를 돌아 풀에 맺힌 이슬에 옷을 적시면서 후원 북편 끝 노송 밑에 다다랐다. 여기는 땅이 높고 가장 정결한 곳이다.

난희는 칼을 곁에 놓고 땅에 끓어 엎드려 황천과 후토와 일월 성신과 부처님과 부모와 남편의 혼령에게 원수 갚은 일을 고하고,

『나는 깨끗한 몸으로 임을 따라 가오. 임의 목을 베인 같은 칼로 내 목을 베고 따라 가오.』

하고 위홍의 긴칼을 빼어 한삼 소매로 한번 칼날을 씻은 뒤에 칼끝을 입에 물고 앞으로 거꾸러졌다.

점점 가늘어 가는 울음 소리가 들리다가 그것도 얼마 아니하여 끊어지고 향기로운 난희의 몸은 마치 기도하는 사람 모양으로 꿇어 엎드려 다시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이튿날은 왕이 임해전에 전춘연(餞春宴)을 배설하고 만조 백관과 흥륜사의 높은 중들과 국학의 박사와 이음 난 국선과 화랑을 부르시는 날이다. 왕은 일찍 일어나 목욕하고 머리를 감고 사오인의 궁녀를 재촉하여 가장 아름다운 의복과 가장 아름다운 단장을 하고 이날에 즐거운 연락을 시각이 바쁘게 기다렸다.

왕은 신상의 모든 행락이 자기를 위하여 있는 듯하고 자기는 영원히 젊어서 이 행락을 누릴 것같이 생각하였다. 이날에 하늘에는 구루미 없고 환한 해는 토함산 위로 거침 없이 솟아 올라 왔다.

『서불한 서불한!』

하고 왕은 단장이 끝나기도 전부터 위홍이 들어 오기를 기다리고 들어 오나 보라고 술 새 없이 궁녀를 자주 내보냈다. 왕은 자기의 새로 한 단장이 빛이 날기 전에 위홍이 보아 주기를 바란 것이다.

위홍이 아니 들어 왔다. 준흥도 왕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남자다. 「얼굴 잘난 시중」이라는 동요까지 생겼다.

왕은 준흥을 가까이 불러,

『내가 어떻게 보이오?』

하고 자기의 단장한 몸을 본다.

준흥은 눈을 들어 왕을 한번 우러러 보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하늘이 낳으신 성주(聖主)시옵고 미인이시옵니다.』

하였다. 이 말에 왕은 수삽한 듯이 웃었다. 그리고 어서 위홍이 들어 와서 그 입으로도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싶다 하였다.

준흥은 차마 위홍이 죽었다는 말이 나지 아니하여 머뭇머뭇할 때에 왕은 매우 초조한 빛을 보이면서,

『서불한은 웬일인가, 벌써 진시는 되었거든.』

한다. 그제야 준흥은,

『상대등은 죽었읍니다.』

왕은 낯빛을 변하여,

『그게 참말일까?』

하고 책망하는 듯이 시중을 본다.

준흥은 더욱 고개를 숙이며,

『위홍은 죽었읍니다.』

하였다. 왕은 이윽히 말이 막히더니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무슨 병으로?』

하고 묻는다.

『칼에 가슴을 찔려 죽었읍니다.』

『칼에?』

『네, 날카로운 비수에 왼편 젖가슴을 찔려 죽었읍니다.』

왕은 그 젖가슴을 잘 알매, 그것이 눈앞에 번쩍 보인다. 피부 좋은 위홍의 가슴은 젊은 여자의 가슴과 같이 살이 많고 부드러웠다.

『어떤 자객이 찔렀나? 왜 금군(禁軍)을 더 내어서 집파수를 더 엄중히 안 보았나?』

하고 왕은 두 손길을 마주 비튼다. 준흥은 속으로 우스웠다. 그러나 가장 슬픈 빛을 보이며,

『밖에서 들어 온 자객이 아니라, 집안 사람의 손에 찔린 듯하옵니다.』

하고 왕의 낯을 엿보았다.

집안 사람이라는 말에 왕은 더욱 놀라며,

『대궐에 들어 오려고 나서다가 찔렸나?』

하고 왕은 더욱 슬퍼하였다.

준흥은 더욱 속으로 우스웠다.

『대궐에 들어 오다가 찔린 것이 아니라, 첩의 방에서 자다가 첩의 손에 찔렸읍니다.』

하고 준흥은 비로소 위홍이 죽은 모양과 난희의 필적과 또 난희 죽은 모양을 아뢰었다.

준흥의 말에 왕의 입은 분노로 떨었다. 태후와 좋아할 때에 벌써 아내를 내어 쫓은 것은 물로이어니와, 왕과 때에 벌써 아내를 내어 쫓은 것은 물로 이어니와, 왕과 좋아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있던 첩까지도 다 내어 쫓는다고 하였고 집안에 계집 종도 두지 않는다고 위홍이 왕께 맹세를 하였다 그리하였거늘 . 어젯밤 젊은 첩의 방에서 자다가 첩의 손에 칼을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 왕은 지루의 분함과 속아서 분함이 한데 엉키어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왕은 오늘 연락을 폐하지 말고 위홍이야 죽었거나 말았거나 그대로 연락을 열되 더욱 질탕하게 하라고 준흥에게 명을 내렸다.

왕은 이날에 술을 마시고 여러 젊은 신하들과 희롱을 하였다. 그러나 맘속에 있는 분함과 슬픔을 잊을 수는 없었고 만조 백관들도 위홍이 죽은 줄을 알므로 일이 어찌되는지 몰라 마시고 노는 중에도 맘이 놓이지를 아니하였다.

그러나 왕은 끝까지 위홍을 미워하지 못하였다. 사오년 첫정 들인 사랑을 끝까지 미워하지 못하였다. 왕은 아직 왕이 되기 전부터 위홍과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은 위홍에게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는 시호(諡號)를 주고 몸소 거상을 입고 위홍의 장례를 왕의 예로 하기를 명하였다. 최 치원(崔致遠)을 머리로 하여 여러 학자들 그 옳지 못함을 상소로 여러 번 간하였으나 왕은 듣지 아니하고 혜성대왕(惠成大王)의 장례를 아주 왕례로 하기 위하여 위홍의 시체를 내전으로 들어다 놓고 전국에 조서(詔書)를 내려 국상을 입으라 하고 모든 공문에 양암(諒闇)이라고 쓰게 하였다. 이리하여 잔국은,

『이것은 우리 나라에도 없는 법이요, 당나라에도 없는 법이라.』

고 인심이 물 끓듯하나 왕은 모른 체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왕의 조서를 좇지 아니하였다. 하나도 국상을 입는 이도 없다. 위홍을 혜성대왕이라고 부르는 이도 없었다. 궐내에 들고 나는 벼슬아치들만 왕명대로 할 뿐이요, 그중에도 국상을 입기 싫은 이는 병이라 일컫고 집에 숨어 나오지 아니하였다.

왕은 자기의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 것을 분히 여겨 국장을 아니 입는 이는 모조리 잡아 엄벌하라는 조서를 내려 많은 백성이 붙들려도 가고 매도 맞았으나 그것도 시원치 아니하였다.

이때에 민간에는 여러 가지 동요가 돌아 다녔다. 그것은 대개 왕을 풍자한 것인데 누가 지었는지 모르거니와,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저마다 부르게 되었다. 그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우리나 난희는 임 따라 갔건마는 우리나 마누라 어느 임 따라 가리한 몸을 둘에 내 두 임 다 따를까.

우리나 마누라두 임 다 따라 가도 우리나 아기씨 어느 임 따라 가리 머리칼 올올이 그 임 다 따르려나.

이 동요에 마누라라 함은 물론 영화·정화 두 분 마마요, 아가씨라 함은 물론 왕이다. 두 분 마마는 따를 임이 물 뿐이지만 왕은 머리칼 올올이 따라도 모두 따를 만큼 임이 많단 말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

십만명 군사도 믿을 수 없어라 서불한 가슴도 칼은 박힌다네.

이 모양으로 왕과 위홍을 풍자하는 동요가 돌아 다니고 혹은 성문과 대궐문에 이상한 글들이 나붙기 시작하였다. 왕은 금군을 풀어 금발이 붙는 대로 떼고 동요를 부르는 자가 있으면 잡아서 엄벌을 하였다.

그래도 왕은 자기의 위령을 세우려고 강제로 흰 감투를 씌우려 하니, 백성들은 왕께 복종하지 아니하니 왕만 혼자 가슴이 끓었다.

그럴수록 왕은 위홍의 장례를 찬란히 하려고 장안에 있는 베와 비단을 사들이고 왕릉을 꾸미기 위하여 남산의 옥과 가야의 청석을 캐어 오라 하였다. 그러나 준비 아뢰었고 아무리 성화같이 독촉하여 농시 방정에 백성에게 세납을 거둘 길이 없음을 아뢰었다.

왕은 하릴없이 벼슬을 팔기로 하였으나 벼슬을 사는 사람도 많지 못하였다. 장안에 살던 부자들은 경보(輕寶)를 싸 가지고 밤마다 슬며시 서울을 떠나 사방으로 피란을 떠났다. 세상은 오늘 내일로 뒤집힐 듯하고 늦더라도 위홍의 장롓날에는 무슨 변괴가 나리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위홍의 빈전(殯殿)에는 왕과 두 분 마마가 소복을 입고 빈틈 없이 들어가 있었다 혹시 두 . 분이 서로 만날 때도 있고 세 분이 동시에 만날 때도 있었다. 그러한 때에는 서로 외면을 하였고 어떤 때에는 그중에 한 분이 홱 나와 버렸다.

태후는 말이 못되게 쇠하였다. 눈에는 항상 충혈되고 살도 많이 내리고 주름도 많이 늘었다. 질투와 원정의 괴로움이어니와, 가끔 양심의 가책이 괴롭다 남은 태후의 맘을 때렸다. 더구나 근래에는 경문대왕이 가끔 꿈에 보여서 괴로왔다. 대왕은 혹은 위의를 갖추고 혹은 병석에 누운 모양으로 태후에게 보였다. 왕은 대개 태후를 물끄러미 볼 뿐이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건마는, 그래도 싫고 무섭고 꿈이 깨면 전신에 땀이 흐르고 다시는 잠이 들지를 아니하였다. 태후는 위홍의 빈전에 들어 올 때마다 맘으로 위홍을 생각하고 이런 모든 불길한 꿈이 다시 꾸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

버금마마는 아드님이신 정강대왕이 돌아 가신 후로 염려를 하기 시작하여 어떤 때에는 주무시는 방에서 밤이 깊도록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고 때때로 늙은 여승들을 청하여 염불을 배웠다. 여승들은,

『아무리 죄가 많아도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면 왕생 극락하옵니다.』

하고 슬퍼하는 정화마마를 위로하였다. 마마는 위홍의 빈전에 들어 올 때마다 나무 아미타불을 불러 위홍이나 자기나 현세에 모든 죄를 받고 왕생 극락하기를 빌었다. 영화마마보다 맘이 약한 정화마마는 가끔 눈앞에 유황불이 이글이글 타는 지옥의 광경이 보이고 그 불구덩이에는 자기 형제가 위홍의 한팔씩을 붙들고 매달려 영겁에 끝나지 아니할 괴로움을 보는 양이 보였다. 그러할 때마다 정화마마는 몸에 소름이 끼치어 떨리는 목소리로 나무 아미타불을 불렀다.

날은 가물고 더워 위홍의 시체에서는 무서운 구린 내가 나기를 시작하였다. 겹겹이 칠을 한 관속에 넣었건마는 어디 틈이 벙긋하였는지 쥐구멍이 뚫렸는지 코를 쳐들 수 없게 냄새가 났다. 그래서 아무도 빈전에 들어 가기를 싫어하고 송경하는 중들도 문으로 코를 향하고 왕과 두 분마마도 들어 왔다가는 코를 쥐고 나와 버렸다.

왕은 차비원에게 엄명하여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차비원들은 다시 관 하나를 더 만들어 넣었다. 그래도 칠을 뚫고 냄새 나는 시습이 흐르고 이상하게 생긴 구더기와 벌레가 관에서 기어 나와 빈전 마루로 기어 다니었다.

왕은 많은 차비관을 형벌하고 갈아 대었다. 그러나 아무리 하여도 그 냄새와 구더기를 막을 수가 없었다. 이 냄새를 맡고 빈전 지붕에는 까마귀가 모여 들어 까욱거리고 빈전 마당에는 가끔 여유가 번뜻번뜻 보였다.

그중에 지혜 있는 차비관 하나가 지혜를 내어 빈전에 큰 향나무 토막을 태웠다 향나무가 타서 . 올라 연기가 빈전에 차고 빈전은 불 붙는 모양으로 연기가 나왔다. 그래도 효험이 없어 구린내는 여전하였다. 그래서 송경하는 중들도 문밖에서 코를 밖으로 향하고 아무도 빈전 안에 발을 들여 놓은 이가 없었으며, 그런 며칠 후에는 구더기가 문밖에까지 기어 나와 사람들은 발 밑에 그것이 보일 때마다 냉수를 끼얹는 듯이 깜짝깜짝 놀랐다.

이 때문에 빈전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온 대궐 안이 모두 흉가와 같이 되었다. 누구는 어느 구석에서 목 잘린 귀신을 보았다 하여 밤이면 아무도 밖에 나가기를 싫어하였고 빈전 안에서는 가끔 「이 놈 위홍아」하는 소리와 위홍이 「응응」하고 우는 소리가 들려 송경하는 중들이 경문을 내버리고 달아나기도 하였다.

왕은 심히 맘이 괴로와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궁중에 잡귀를 물리고 시체에서 냄새와 구더기를 막을 명승을 청하였다.

사방에서 많은 중들이 모여 들었다. 혹은 고깔 장삼을 입고, 혹은 송낙 쓰고 바랑을 지고, 혹은 늙은이, 혹은 젊은이, 가지 각색 중들이 모여 들어, 혹은 송경을 하여 경의 힘으로 위홍의 몸의 냄새와 구더기를 막으려 하고 혹은 붙가사의한 영혼이 있는 부적으로 혹은 신통력이 있는 진언으로 혹은 다라니로 혹은 염불로 혹은 염력(念力)으로 저마다 이 냄새 나고 구더기 끓는 죄 많은 혼을 제도(濟度)하려 하였으나 아무 효력이 없고 날이 갈수록 더욱 소리와 대궐 안에 잡귀의 설법은 더하여 갔다. 그래서 중들은 모두 지팡이를 돌려 짚고 코를 싸고 물러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동요는 더욱 늘고 왕을 풍자하는 글과 말은 더욱 유행하였다. 처음에는 별로 뜻이 깊지 아니하던 동요와 글뿐이었으나 근래에는 썩 잘 지은 글과 노래가 돌아 다니었다. 더러는 한문으로 지은 것이요, 더러는 이두(吏讀)로 지은 향가(鄕歌)였다. 이러한 글과 노래를 짓는 이가 반드시 이름 있는 문장일찌 분명하다 하여 왕은 글 잘 짓는 이를 수탐하여 모두 잡아 들리라 하였다. 이 통에 대야주(大耶州)에 사는 거인(巨人)이 잡혀 왔다, 거인은 나이 칠십이 가깝고 문장과 덕행이 일세에 높으나 세상이 어지러워 오매 가만히 산중에 숨어 이름을 듣고 찾아 오는 젊은 선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비분 강개한 말로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간악한 무리를 책망 하였다. 거인의 문하에 배운 선비들은 다 거인의 뜻을 본받아 우국 개세(憂國慨世)의 사(士)가 되어 전국에 흩어지어 선비들에게 그 뜻을 전하고 또 동지를 구하였다.

이리하여 거인 선생은 위홍 생전에 가장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거인은 잡혀 들어 와 국문을 당할 때에 향곡에 돌아다니는 노래와 글이 자기가 쓴 것은 아니나. 다 뜻이 옳고 또 민성(民聲)은 천성(天聲)이니 이 백성의 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들어 정사를 고치지 아니하면 나라가 망하리라고 두 발가락이 뽑히고 다리 하나가 분지러지면서도 제자리들에게 가르칠 때 모양으로 조금도 굽히거나 두려워하는 빛 없이 태연히 말을 하였다. 그 엄연한 위풍에 국문하던 사람들도 무서워서 말이 막히었다.

그러나 왕은 비방하고 혜성대왕을 비방한다는 죄로 거인을 종로에서 거렬(車廬)하라고 명하였다.

거인 선생이 옥에 갇히매 그의 문인들은 수없이 서울로 모여 들어 여러 번 상소를 하였다. 그러나 왕은 상소하는 선비들까지도 혹은 가두고 혹은 때리고 그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다. 거인을 죽이어 자기와 위홍을 비방하는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이고 이 기회를 타서 전국 백성이 일제히 위홍의 국상을 입도록 정령을 세우려 하였다.

내일이면 거인 선생을 종로에 끌어 내어 사지를 찢어 죽인다고 하여 장안이 물 끓듯하는 날에 거인은 옥 벽에 시 한 수를 썼다.

于公慟器三年早, 鄒衍悲五月霜, 今我幽秋還似古, 皇天無語伯蒼蒼.

그날 저녁에 문뜩 난데 없는 구름이 일어나고 우뢰와 번개가 집도 아고 악수가 쏟아지고 주먹 같은 우박이 떨어지다가 대궐 마당에 벼락이 떨어지어 아름드리 불덩어리가 푸른 빛을 내고 빙글빙글 돌았다. 왕은 크게 두려워 하늘을 향하고 합창하고,

『거인을 방면하겠읍니다.』

하고 빌었다.

왕이 빌기를 끝나매 벼락 불이 북으로 굴러 나가고 우뢰와 번개가 그치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어 거인을 옥에서 내어 놓았다. 이튿날 거인이 찢기는 것을 보려고 종로에 모였던 백성들은 어젯밤 우뢰 소리에 거인이 놓였단 말을 ㄸ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모인 중에 국상을 임은 자를 붙들어 「개 아들」이라고 부르며 때렸다. 소복을 하였던 사람들은 모두 감투와 옷을 벗어 버리고 도망을 하였다.

왕은 거인 선생이 오래 서울에 머무르는 것을 두려워하여 수레를 태워 대야주로 돌려 보내가를 명하였다.

왕의 보낸 수레가 문밖에 기다릴 때에 거인은 좌우의 문인을 부러 놓고 국운이 날로 기울어짐을 한탄한다.

그러나 몸이 이미 늙고 또 국문에 뼈가 꺾이고 피가 많이 흘렀으니 살아서 나라를 돕지 못할 것을 말하고 문인에게 각기 집을 잊고 몸을 잊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잡으라, 만일 운이 불길하고 힘이 부족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거든 나라와 함께 죽으라는 뜻을 말하고 인하여 지필을 드리라고 명하여 한 노래를 썼다.

나라이 기울어짐이어 하늘이 기울어짐 같도다 하늘이 무너짐이 어창생을 어이하리오 내 몸이 늙고 병 듦이어 오래 머물지 못하리로다 나라를 두고 가는 혼이 황천에 이어 눈을 감으리오 나라를 두고 감이어 피눈물이 흐르도 다 남산이 높고 오램이어 국운이 그와 같기를 빌었더니 동해의 깊고 푸름이어 오직 충신의 한만 끝이 없도다 죽는 이 만일 혼이 있을진댄 아홉 번 죽고 열 번 다시 나 천년 종사(宗社)를 지키고자 하건마는 혼이 흩고 넋이 슬진대 아아 창천 내 어이하리오.

쓰기를 마치고 붓을 던질 때에 거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좌우에 있던 문인들은 스승의 옷자락을 비어 잡고 목을 놓아 울었다.

문밖에 수레를 머물고 기다리던 과인들은 거인이 속히 수레에 오르기를 재촉하였다.

거인은 왕명이니 어기지 못한다 하여 문인들에게 붙들려 일어나 수레를 향하고 나오다가 문에 다 미치지 못하여,

『하늘아 하늘아 하늘아.』

하고 하늘을 세 번 부르고 운명하였다.

거인 선생의 해골이 서울을 떠나 대야주로 반장되는 날에 장안 백성들은 무두 길에 나와 목을 놓아 울고 보내었다. 앙장이 바람에 펄렁거리고 방울이 걸음을 맞추어 딸랑거리며 거인의 해골을 실은 수레가 남으로 향하여 나갈 때에 울음 소리는 갈수록 갈수록 더욱 높아졌다. 백성들은 거인의 수레가 아니 보일 때까지 두 손으로 눈물을 씻고 씻고 바라보고 돌아 서며 또 울었다.

거인 선생의 다리를 분지르고 거인 선생 죽은 일에 백성의 맘을 더욱 울분하게 하였다. 날이 갈수록 민심은 더욱 흉하여지고 위홍의 빈전에서는 더욱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끓으니 왕도 심히 맘이 초조하여 대구 화상(大矩和尙)의 말대로 인산을 급히 하기로 하였다. 대구화성은 노래를 잘 짓고 음률을 잘 아는 중으로 왕의 노래 스승이 되어

<삼대목(三代目)>이라는 향가집(鄕歌集)을 만든 중이다.

그는 왕께 이렇게 고하였다.

『가는 이를 어이 막으리 보낼 이는 보내소서 묵은 잎 속에서 세 움이 돋다니 묵은 잎 썩으면 새 움인 줄 이소서.』

하여 그윽히 위홍을 송장을 어서 치워 버리고 새 사람을 맞이 들일 것을 말하였다. 왕은 이 말대로 하루바삐 인산을 준비하기를 명하였다.

그런데 또 걱정이 생겼다. 첫째는 서울 육부 백성들 중에서 여사군이 아니 나는 것이요, 둘째는 능침 준비 그중에도 석물 준비가 안된 것이다.

위홍의 무덤 일을 하는 석수들은 백성들의 욕과 돌 팔매를 견디지 못하여 모두 삯도 아니 받아 가지고 달아나 버리고 말아서 역사를 시킬 길이 없었다.

혜성대왕의 인산 날이 되었다. 이달은 무섭게 더운 날이었다. 금년도 가물어서 훙년이 든다고 민정이 오오하였다.

백성 중에서 여사군이 나기를 원치 아니하므로 군사를 풀어 여사군을 잡아 들었다. 그러고도 부족한 것은 군사들이 메었다.

인산 행렬은 정강대왕보다도 장하였다. 왕이 국고의 재물을 마지막으로 다 떨어서 준비하니만큼 화려하고 굉장하였다. 그러나 인산이 지나가는 길가에는 어린 아이들 밖에 나서서 보는 사람이 없고 어린 아이들도,

「가자 가자」하고 서로 팔을 잡어 끌고 길을 피하였다. 백성들 사이에는 위홍의 장례를 보면 코가 막혀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돌았다.

그래서 인산 구경을 하고 싶은 아낙네들과 젊은 사람들도 코막힐 것이 무서워서 대여가 번뜻 보이기만 하면 침을 뱉고 고개를 돌렸다.

대여가 첨성대(瞻星臺) 앞을 지날 때에는 어디서 난데 없는 화살이 날아와서 위홍의 관에 박히고 또 좀더 가서 계림(鷄林) 숲을 지날 때에는 갑자기 수없는 돌팔매가 날아 와서 뚱땅 뚱땅 하고 위홍의 관을 때렸다.

그러 할 때마다 대여에서는 더욱 시습이 흐르고 냄새가 나서 여사군들도 한손으로 코를 쥐고 낯살을 찌푸렸다. 까마귀 한 떼가 냄새를 따라 데 여 위로 떠돌며 따라 왔다.

포석정(鮑石亭)도 지나고 거의 장지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날이 흐리고 뇌성 벼락을 하여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무서운 소나기가 지나갔다. 대여 소여며다 따라 오는 문무 백관들은 눈물을 흘렸다.

위홍의 관은 땅속에 들어 갔다. 수풀 속에서는 까마귀가 울었다. 문무 백관은 어디서 화살이나 돌 팔매가 날아 오지나 아니하는가 하여 연해 사방을 돌아 보아 참새 하나만 날아 지나가도 일제히 목을 움추렸다.

그러다가 모든 예식이 끝나자마자 자기 앞을 다투어 달아나고 말았다.

위홍의 무덤 앞에는 혜성대왕 능이라는 큰 비석이 섰건마는 백성들은 아무도 그것을 능이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위홍의 무덤이라ㅗ 하였고 그 후에 백성들이 밤이면 개 죽은 것을 갖다 버려서 위홍의 무덤에 개 주검이 쌓이어 썩게 되매, 무가 먼저 부르기 시작한 지 모르게 「개무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개 무덤이란 이름은 그후 대대로 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위홍의 장롓날에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인심이 흉흉하기는 점점 더하여졌다 나라에 돈이 말라 백성들에게는 때 아닌 납세를 독촉하고 하늘은 가물어 논은 틈이 벌고 밭은 노랗게 탔다. 백성들은 당정 먹을 것이 없고 또 추수할 가망도 없어서 집을 버리고 어린것들을 안고 업고 옷 보통이를 지고 이고 북으로 북으로 달려 갔다. 한강만 건너 가면 편안히 살 곳이 있는 줄로 믿은 까닭이다. 그리고 서울에도 거지떼가 날로 늘어 끼니 때면 대문을 꼭 닫어 걸고야 밥을 먹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배고픈 거지들은 우는 아이를 안고 들어 와서 숟가락을 들고 밥상에 마주 앉고, 혹은 부엌에 들어 가서 지어 놓은 밥을 맘대로 퍼 먹었다. 만일 그것을 못하게 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혹은 안았던 어린 아이를 마당에 던져 죽이고는 자기가 목을 매어 늘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지들이 하는 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못 먹어서 얼굴이 희어멀끔해지고 허리가 굽은 거지떼들이 지팡이를 끌고 먹고 싶은 눈을 번득거리며, 종로 네거리로 대궐 앞으로 꾸역꾸역 다니는 꼴은 참으로 참혹하였다. 「인제야말로 세상 끝날이 왔다」고 백성들은 시집 장가 가는 것과 아기 낳은 것까지도 시들하게 알고 슬퍼하였다. 죽는 사람이 있으면,

『잘 죽었지 살면 몇 날이 더 사나.』

하고 죽는 이를 부러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은 여전히 밤낮 젊은 남자를 들여 음란한 쾌락에 취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소허(少虛)가 달아난 것은 사중(寺中)에 큰 이야깃 거리가 되었다.

마을에 재 올리러 갔던 길로 이내 돌아 오지 않고 말았다. 허담(虛潭) 화상을 성을 내어,

『이놈, 간단 말도 아니하고.』

하고 소허를 원망하였다. 허담 화상도 인제는 늙어서 옛날의 호화롭던 기운도 줄고 맘이 약하여져서 선종과 소허 둘에게만 의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는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중에도 화상은 소허를 더 믿었다. 대개 선종은 우락부락하고 활 쏘기를 좋아하고 중의 계행(戒行)도 잘 지키지 아니하고 가끔 마을에 가서 술과 고기를 먹고 돌어 다니므로 허담 화상뿐 아니라, 사중 모든 중들이 선종은 중으로 일생을 보낼 사람이 아니요 반드시 무슨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소허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그는 어려워서는 선종을 따라 토끼 사냥도 다니고 장난도 하였으나 점점 나이 자라고 또 백의 선인의 제자가 된 뒤로부터는 더욱 말이 적어지고 중의 계행을 잘 지키고 또 불공을 잘한다 하여 사중에서 많은 신용을 얻고 소허 화상도 여생을 소허하게 의탁할 줄만 믿고 있었다. 그랬던 소허가 재올리려 갔던 길에 이내 어디로 달아나 버리고 만 것이다.

허담은 홧김에 선종을 졸랐다.

『너는 알겠구나, 그놈이 어디를 갔느냐?』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같은 소리를 물었다.

『내가 알어요?』

『고것이 누구더러 속말 해요?』하고 선종도 화를 내었다. 진실로 선종과 소허와는 십여년 내로 사형(師兄) 사제(師弟)의 관계로 방도 같아 치우고 밥도 같이 짓고 물도 같이 긷고 한자리에서 자고 하였건마는, 아무리하여도 뜻이 합하고 정이 통하지 아니하였다. 소허는 낫살이 먹어갈수록 더욱 꽁하였다. 남이 열 마디가 물어야 한 마디를 대답하고 그것도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 일이면 가느란 눈만 깜짝깜짝하고 길다란 몸을 늘 여기지개만 컸다. 성급한 선종은 가끔 기가 막혀 주먹을 부르쥐고,

『요것이!』

하고 소허를 때리려고 덤빈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또 소허 편에서는 선종을 겉으로는 무서워하면서도 속으로는 「소 샅은 것」하고 픽픽 웃었다. 그래서 선종과 소허와는 항성 튀각 태각으로 지냈다. 더구나 그 꾀만 남고 아니꼬운 것이, 점점 스님과 사중 사람들의 신용을 얻고 자기는 도리어 가끔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꼽고 분하였다.

그러나 선종은 소허가 범물(凡物)이 아닌 것을 안다.

<그놈이 일 저지를 놈인 걸.>

하고 선종은 여러 번 혼자 한탄하였다.

선종과 소허가 의 좋은 못한 것을 한탄하여 백의 국선은 여러 번 들을 앞에 불러 놓고,

『만일 큰일을 하려거든 너희 둘이 의로 합하여라.』

하고 일러 주었고 한번은 지금 국운이 날로 쇠하여 가니 바야흐로 천하가 사람을 구할 때라 이때에 너희들은 모든 사욕과 사혐을 버리고 창생을 건지려는 어진 다음으로 힘을 합하여 큰일을 이루라고 말한 끝에 지필을 들어 이렇게 열자를 써서 둘에게 한 장씩을 주었다.

『合則濟蒼生分則殺一身.』

그러나 선종과 소허는 조금도 그치는 빛이 없이 서로 낯춰 보고 서로 미워하였다. 이 때문에 백의 국선은 항성 마음을 슬퍼하였다. 선종·소 허두 사람의 재주와 기운을 사랑하여 크게 바라보는 바가 있었으나 마침내 고침이 없는 것을 보고,

『幽輩足以亡國嗚呼 蒼天安得其人.』

이라는 글을 써 놓고는 다시 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백의 국선은 천하를 두루 돌아 나라를 건질 사람을 찾다가 마침내 실망하고 만 것이다. 삼년이라 모시던 선생을 잃고 선종과 소허는 울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고치어지지 아니하였다.

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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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