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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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人[마인]의 命分書[명분서][편집]

공작부인이 가장 화려하게 꾸며 놓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가장무도회는 저 벙글벙글 웃으면서 돌아가는 무기미한 도화역자가 던진 한 자루의 비수로 말미암아 공포의 수라장으로 변하였으나 다행히도 공작부인이 받은 어깨의 상처는 예상외로 극히 가벼워서 오월 초 열흘에 거행될 결혼식에는 추호도 지장이 없으리만치 회복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늙은 신랑 백영호씨의 남다른 두터운 간호의 보람도 많았다.

그는 거의 매일 젊은 약혼자 옆을 떠날 줄 몰랐다.

『은몽씨!』

그는 어떤 날 오후, 공작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춘색이 파랗게 어린 한강 일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불렀다.

『왜그러세요?』

긴 속눈섭 밑에 숨었던 공작부인의 까만 눈동자가 반 만큼 웃으면서 흑요석(黑耀石)처럼 백영호씨를 쳐다보았다.

『한 주일 후면 은몽씨는 나의 아내!』

감개무량한 듯 그는 다시 찾아온 자기의 청춘을 혀끝으로 대굴대굴 굴리면서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공작부인의 얼굴에서 그 순간 부처처럼 표정이 사라졌다.

『은몽씨는 이 늙은이의 아내란 말에 아무런 불쾌도 느끼지 않으십니까?』

『그런 말은…… 그런 말씀은 이후 다시는 저에게 들려 주시지 마시고 물어주시지도 마세요.』

거의 애원하듯이 굴러 나오는 공작부인의 목소리였다.

『아름답지 못한 질투라고 생각하시지 마시오 ── 저번달 은몽씨가 경찰관에게 한 증언 ── 김수일이란 화가와 연애관계가 있었다는 말을 이 늙은이는 어떻게 생각해야만 될런지……』

공작부인은 잠시 동안에 대답이 없다가 간신히 입을 연다.

『김수일씨는 나의 감정의 연인, 그리고 백영호씨는 나의 이성의 연인 ……』

그 순간 백영호씨는 한편 젊은이 처럼 모욕을 느끼었으나 다음 순간,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그의 핏기 없는 피부와 그의 힛득힛득 흰 머리털이 그의 귀밑에서 조용히 타이르는 것이다.

『잘 알아들었읍니다. 나는 은몽씨의 말에 대하여 분노를 못느끼는 나 자신을 잘 알고있읍니다.』

『걱정 마세요. 연정의 대상도 가지각색……나는 벌써 꿈을 사랑하는 어린 소녀는 아니예요.』

『은몽씨!』

하고 그때 백영호씨는 힘있게 불렀다.

『…………?』

『만일 내가 가진 백만원이란 재산이 이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소유로 변하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은몽씨는 역시 이 늙은 백영호와 결혼해 주시겠읍니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공작부인의 어조는 약간 높았다.

『은몽씨! 고맙소! 이 늙은이가 만일 시인이었던들 이 고귀한 순간을 이대로 보내리까 ──』

백영호씨는 불현 듯 공작부인의 어깨를 껴안았다.

이와같은 의사를 언제가 『 한번은 은몽씨에게 조용히 표시해 보리라고 기회만 있으면 입을 열었으나 도무지 말문이 꽉 막혀서……사실은 지금 경비난으로 폐교의 운명에 임한 혜성전문학교(惠星專門學校)을 위하여 칠십 만 원을 제공할 셈으로 교장 황세민(黃世民)씨와 누차 교섭을……』

감격에 찬 백영호씨의 목소리를 공작부인은 들은체 만체하고 머엉하니 서 있더니 어깨에 얹은 백영호씨의 손을 슬그머니 내려 놓으면서

『저기 남수씨가 오십니다.』

하고 정문을 가리키었다.

『응, 그러면 나는 이 길로 황교장을 찾아봐야 되겠소.』

백영호씨의 가슴을 누르고 있던 우울 ── 황금의 힘이 공작부인을 황홀케 하지나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던 우울을 일시에 떨쳐버린듯 그는 발걸음도 가볍게 공작부인의 저택을 나섰다.

백영호씨가 나간 뒤로 공작부인의 방을 들어서는 탐정소설가 백남수는

『무슨 소식을 전했기로 아버지가 저렇게 희색이 만면해서……』

하고 의아의 눈썹을 모으면서 표정없는 공작부인의 백옥같은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회 사업을 하신답니다. 칠십 만 원의 제공을 ……』

『칠십 만 원?』

태연스럽게 말하는 공작부인의 청천 벽력과도 같은 한마디에 백남수는 순간 얼굴이 핼쓱하게 핏기를 잃어버렸다.

『뭘 그리 놀라세요? 아버지께서 훌륭한 사회 사업을 하신다는데……』

『그러나 그게 사실입니까? 칠십 만 원을…… 그래 무슨 사업을 하신답디까?』

『해성전문학교를 살리신다고요.』

『해성전문학교를? 아버지가? 아니, 저 백영호씨가……』

남수가 이처럼 놀라는 것은 결코 이유 없는 일은 아니었다.

팔년 전 어디론가 행방 불명이 된 형 ── 백남철(白南鐵)이 작년 가을 실종 선고(失踪宣告)를 받은 이상, 당연히 상속권은 남수에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속재산의 십분지 칠이 눈깜짝할 사이에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사실도 사실이려니와 그 보다도 한층 더 남수를 놀라게 한것은 아버지 백영호씨의 사람된 품이었다.

『아버지 같은 위인이 사회 사업을 하다니? 칠십 만원을……』

『왜 아버지는 사회 사업을 하면 안돼요?』

공작부인은 의미있는 웃음을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안되죠.』

『어째서?』

『음 ──』

남수는 터져 나오려는 말을 목구멍에서 꽉 막으려는 듯 혀를 깨물었다.

『백영호씨가 공작부인의 미모에 눈이 어두어져서 공작부인을 위하여 적지 않게 산재(散財)한 것은 말하자면 예외의 일이지요.』

『예외의 일이라니오?』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써 보았다는 말입니다. 현재 은몽씨가 쓰고 있는 이 집값만 해도 오만원 ── 백영호씨가 오만원을 허어! 게다가 이제와서 칠십 만 원을 교육사업에 던진다. 옛적부터 하는말이 구두쇠가 돈 쓰는 법을 알게되면 황천에서 호출장이 온 것이라고 하더니만 행복스러운 결혼식을 한주일 앞두고 염라대왕이 백영호씨를 황천으로 모셔 갈 모양이 아닌가……』

『호호호! 남수씨도 재미있는 말을 제법 잘 하셔.』

공작부인은 유쾌한 듯이 웃었다.

그러나 이 남수의 농담섞인 말이 한개의 무서운 현실로서 독자제씨의 눈앞에 나타날 것도 멀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그렇고, 경찰당국에서는 아직 저 김수일씨를 범인이라고 인정하는가요?』

하고 공작부인은 말머리를 돌린다.

남수는 잠시동안 묵묵히 앉아있다가.

『당국뿐만 아니라 나 역시 김수일이란 인물을 의심하고 있어요. 첫째로 그가 무슨 이유로 돌연 「중앙 ‧ 아파 ─ 트」에서 자취를 감추었을까요?』

『그건 지난번에도 말한바와 같이 그는 영원히 나의 눈앞으로 부터 떠날 셈이겠지요.」

김수일을 변명하고자하는 공작부인의 태도는 어느 듯 백남수의 탐정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면 김수일이란 인물은 어째서 은몽씨와 만날때만 「중앙 ‧ 아파 ─ 트」를 사용했을까요 ── 그의 본 주소는 어디에요? ──』

『뭐요? 저와 만날 때만 「중앙 ‧아파 ─ 트」를 사용했어요?』

공작부인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그럴리가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당국이 조사한 결과 김수일이란 이름을 가진 화가는 서울에는 없답니다.』

본적이 평양부 남문정이라는 것도 거짓말이랍니다.』

공작부인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었다.

그러니 은몽씨는 『 김수일이란 가짜 화가 ── 가짜 신사와 교제를 하여온 것이지요.』

『그럴리가 있어요?』

『그런걸 어떻거우. 대체 그이와는 언제부터 교제를 하였소?』

공작부인은 잠깐 주저하는 모양이더니 이미 경찰에도 말한바라 숨길 것 없다는 듯이 작년가을 ×××개인전람회에서 알게 되어 단 한번 본 그이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이 쏠려 그후 몇번 그가 거주하는 「중앙 ‧ 아파 ─ 트」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흥!』

하고 남수는 한번 코웃음을 치고나서

『그래 무도회날 밤, 이선배란 작자가 무슨말을 가지고 왔읍디까?』

『김수일씨를 생각해서 이 결혼을 그만두라고요. 그래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절을 했더니만 그럼 이후에 다시 수일씨를 찾지말라고 ──』

『그래 은몽씨는 그날 밤 은몽씨를 해치려고한 그 도화역자가 결코 그 김수일이란 사람은 아니란 말씀이지요?』

『그이가 그렇게 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공작부인은 머리를 숙으렸다가 다시 들면서 「테이블」설합에서 한장의 종이를 꺼내어 「펜」을 들었다.

김수일씨! 지금 경찰당국의 무서운 혐의는 오직 수일씨에게로 쏠리어가고 있읍니다. 나는 수일씨를 어디까지나 믿고 있읍니다. 수일씨가 저를 해한 저 도화역자의 정체라고는 꿈에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일씨는 무슨 이유로 자취를 감추었읍니까? 어째서 저와 만날 때만 「중앙 ‧ 아파 ─ 트」를 사용했읍니까? 한시바삐 나타나서 이러한 의문을 풀고, 받고 있는 무서운 혐의에서 벗어나십시요.

주 은 몽

『남수씨 수고스럽지만 이 글을 신문에다 광고해 주세요. 무슨 소식이 있을지 모르니까.』

남수는 그것을 받아들고 읽더니

『생각 잘 하셨읍니다. 그러면 지금 곧 돌아가는 길에 ××일보사에 들르겠읍니다.』

하고 황급히 명수대 저택을 나섰다.

그 때 공작부인과 헤어진 백영호씨는 효자동 해성전문학교 교장실에서 황세민 교장과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필자는 여기서 황세민씨에 관한 세평을 간단히 소개할 필요을 느낀다. 그것은 이 한 편의 이야기에 있어서 표면에는 그리 흔히 나타나지 않지만 맨 나중에 이르러 그는 실로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십이 넘은 황세민 교장은 십년 전, 삼백 만원이란 거액의 돈을 품고 아메리카로 부터 표현히 귀국한 독신자(獨身者)다. 그 후 그는 고아원, ×××중학교, ××도서관, 혜성전문학교 ── 이와 같이 사재를 모두 교육 사업에 바친 독실한 사회사업가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금액이 어디서 들어 왔으며 그가 어떠한 과거를 밟았는지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특히 영어와 중국 말에 능통하였으나 남달리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것은 하여간 지금 황교장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백영호씨의 모양은, 마치 고양이 앞에 쥐와도 같았다.

『혜성을 위하여 칠십 만원을 제공할 결심을 했읍니다. 그러나 공식 발표와 모든 수속은 결혼식 후로 밀어 주시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자네의 의향만 그렇다면 그떻게 해도 무방하지.』

『고맙습니다. 그러면 후일 다시……』

걸상에서 일어 서는 백영호씨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격이 넘쳐 흘렀다.

『고맙기야 이 편이 더 한층 고맙지. 하옇든 우리들은 손과 손을 마주 잡고 미미하나마 사회를 위하여……』

황교장은 백영호씨의 손을 붙잡고 힘있게 서너 번 흔들었다.

교문을 나서는 백영호씨의 가벼운 발걸음을 황교장은 커 ─ 텐을 열어 젖히고 머엉하니 바라보았다.

이리하여 한 주일 후면 공작부인과 백영호씨의 결혼식을 부민관에서 거행하게까지 결정되고 무려 수천 장의 결혼 청첩장이 각계 명사들에게 발송된 어떤 날이다. 실로 뜻하지 않았던 악마의 무서운 명령이 청천벽력처럼 떨어졌던 것이다.

여기는 다방 백구 ── 자욱한 연기속에서 손님들은 차를 마시며 달콤한 레 ─ 코드 음악에 귀를 기우리고 있었다.

저편 파초 나무 그늘 밑 ── 전등 불이 어슴프레 흐르는 구석 복스에는 아까부터 누구를 기다리는지, 연방 팔뚝 시계를 들여다 보는 한 사람의 청년 신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저 백영호씨의 딸 정란의 약혼자인 의학 박사 문학수 그 사람이다.

양미간을 약간 찌프린 그의 얼굴에는 무엇인가 헤아릴 수 없는 수심과 초조의 빛이 뭉게뭉게 떠돌고 있었다.

『무슨 이야길가?』

그는 주머니에서 아까 정란으로부터 온 한장의 속달 엽서를 꺼내어 또 다시 읽어 보는 것이다.

학수씨 ─ 오늘 밤 여덟 시에 다방 「백구」로 꼭 와 주세요. 저는 지금 까닭 모를 어떤 무서운 처지에 빠져 있읍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 백 정 란 문학수는 속달을 받던 그 순간부터 정란의 소위 『까닭 모를 무서운 처지 ──』라는 것을 가지 각색으로 상상해 보았으나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 때 문이 휙하니 안으로 열리면서 정란의 낯익은 회색 투피스가 문학수의 시선을 붙들었다.

핼쓱하니 핏기를 잃은 정란의 얼굴을 바라 보는 순간 문학수도 이유 모를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란의 몸뚱이는 자욱한 연기를 칼로 베이듯이 헤치고 복스와 복스 사이를 허덕거리면서 학수의 곁으로 다가와 마주앉는다.

『이일을 어떻게 해요.』

정란은 복스에 몸을 던지면서 방안을 두루두루 돌아다보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로 ── 왜 그리 얼굴빛이 나빠요?』

학수는 상반신을 내밀며 종이장 처럼 창백한 정란의 갸름한 얼굴을 걱정하였다.

『이유가 있어요! 이유가 ──』

정란의 목소리는 떨린다.

『이유라니 ── 무슨 이유가?』

『무서운, 무서운 이유가 있어요!』

『무서운 이유라니 ── 속히 말해봐요! 뭘 그리 두려워하는게요?』

『두려워할 까닭이 있어요. 그러나 ──』

정란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공포에 쫓기는 눈동자로 또 한번 방안을 둘러본 후에

『그러나 그것을 저는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어요. 그것을 말하면 안됩니다. 저의, 저의 목숨이, 생명이 위태하다고요!』

『목숨이? 생명이?』

그처럼 침착한 문학수는 저도 모르게 그만 목소리를 높였다.

안 『 됩니다! 음성이 너무 높아요. 조용히 말씀해 주세요.』

정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애원하듯이 학수의 말을 막았다.

정란의 표정은 무엇인가를 혼자서 망설이는 것이다. 터져 나오려는 그 어떤 호소를 입술을 꼭 깨물고 참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정란은 무엇을 결심한 듯이 손가락으로 핸드 ‧ 백을 열고 한장의 붉은 봉투를 꺼냈다.

『저는 지금까지 이 무시무시한 협박장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제 목숨이……』

『협박장?』

『네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나를……나를 죽이겠다고 ──』

정란의 눈에는 순간 눈물이 핑하고 돌았다.

『그러나 당신께 만은 ──』

정란이 핸드 ‧ 백 속에서 꺼낸 한 장의 봉투는 새빨간 봉투 ── 타오르는 듯한 주홍빛 봉투였다. 『백정란 앞』이라고 쓰인 이 붉은 봉투에는 발신인의 주소와 성명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광화문국의 일부인이 박혀 있을 뿐이다.

『빨간 봉투?』

문학수는 부리나케 봉투를 뜯었다. 편지지도 역시 핏빛같은 주홍빛이다.

정란, 너는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나의 명령을 거역해서는 안된다. 나는 까닭이 있어 다음과 같은 명령을 너에게 내리노라.

오는 초 열흘 오후 두시부터 공작부인과 백영호씨의 결혼식이 부민관에서 거행된다. 그리고 그 때 행복스러운 「웨딩 ‧ 마 ─ 치」를 칠 사람이 백정란 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정란, 나의 명령을 잘 알아두어야만 한다. 처음 신랑 신부가 입장할 때는 물론 너는 「웨딩 ‧ 마 ─ 치」를 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물을 교환하고 식이 끝난 후 신랑신부가 퇴장할 때 너는 절대로 「웨딩 ‧ 마 ─ 치」를 쳐서는 아니될 것이다. 너는 그 때 그 행복스러운 「웨딩 ‧ 마 ─ 치」를 치는 대신, 「쇼팡」의 「퓨 ─ 네랄 ‧마 ─ 치(葬送行進曲[장송행진곡])」를 쳐야한다. 인생의 최후를 애도하는 장송 행진곡을 쳐야한다!

백정란, 이는 나의 절대적인 명령이다! 네가 만일 이 명령에 거역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네 손으로 너의 하나 밖에 없는 아름다운 목숨을 끊는 것과 같은 결과를 맺으리라. 내가 너를 위하여 장송행진곡을 칠 것이다.

다시 말하노니 정란! 나의 명령은 절대다! 쇼팡의 「퓨 ─ 네랄 ‧ 마 ─ 치」를 완전히 치고 나는 순간까지 너는 이 비밀을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는 다른 피아니스트를 대신 세워도 아니 된다. 너는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그날 꼭 「쇼팡」의 장송곡을 쳐야 할 운명에 사로잡힌 자다.

공부작인에게 칼을 던진

「도화역자」로부터

『퓨 ─ 네랄 ‧ 마치!』

괴상한 명령서를 읽고 난 문학수는 얼마 동안 묵묵히 앉아서 정란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들여다 보다가 마침내 굵다란 신음 소리로 중얼거렸다.

『결혼 행진곡 대신에 장송 행진곡! 장난이라고 할진댄 너무나 악착스런 장난이다!』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 정란을 보아서는 자기는 하하 하고 쾌할하게 웃어 보이고도 싶었으나 어쩐지 문학수는 웃을 줄을 몰랐다.

『어떻게하면 좋아요?』

정란의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하옇든 심상치 않은 일이다. 한시 바삐 이 일을 경찰에 알릴 수 밖에 없소.』

『안대요. 안돼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돼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문학수의 손을 잡고 정란은 애걸하듯 끌어 앉히었다.

『정란씨!』

『──?』

『아무 염려 마시요. 말하자면 이것은 한개의 장난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까 ── 그러나 장난치고는 좀 지나친 장난이기 때문에 만일을 염려해서 경찰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것이 제일 무방하지 않아요? 입밖에 내면 죽인다고 하는 것도 결국 위협에 지나지 못하니까. 하옇든 나하고 같이 이 길로 경찰서에 가서 자세한 것을 이야기하고 만일 위험하다면 경찰의 적당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공연히 무서워만 해도 안되니까 ──』

이리하여 문학수와 백정란은 그 길로 ×× 경찰서 임경부를 찾아가서 자세한 사연을 이야기하였으나 그들에게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편지에 묻은 지문을 감정해 보았으나 물론 그런것을 남겨둘리는 만무한 일이다. 결국 정란이 대신 다른 「피아니스트」를 세우기로 하였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