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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葬送行進曲[장송행진곡][편집]

그런 일이 있은지 한 주일 후, 마침내 백영호씨와 공작부인의 결혼식날인 오월 초 열흘은 다가 왔다.

그날 부민관 앞뜰에는 ── 마치 가마귀떼 처럼 몰려드는 자동차, 자동차, 자동차의 행렬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정각 새로 두시를 기다리는 이층 중강당 넓은

「홀」에는 화려한 화환의 행렬과 함께 사람의 물결이 넘칠듯이 흐느적거렸다.

축복하는 사람, 선망하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 사실, 젊은 공작 부인과 늙은 백영호씨와의 이 결혼식은 무지개와도 같이 가지각색의 색채를 띄고 그들의 눈에 비쳤으리라.

정각까지는 아직 이십 분 ── 문학수는 맨 앞줄 가족석에 앉아있는 정란의, 어쩐지 창백해 보이는 얼굴을 멀리서 바라보고 남모를 불안에 가슴을 두근거리었다.

그리고 정란은 지금 「피아노」앞에 묵묵히 앉아있는 그의 동무 마리야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바라다 보는 것이다.

마리야는 지금 두 손을 가만이 건반에 얹고 그럴상싶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긴장된 눈동자로 악보를 드려다보고 있다.

그 마리야의 옆 모양을 멀리 내빈석에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 저 사법주임 임경부가 또 한사람 있다.

그는 지금 「포켙」에 쓸어 넣은 오른편 손으로 정란에게 온 주홍빛 협박장을 어루만져 보면서 물결처럼 흐느적거리는 이 수 많은 손님들 가운데 그 정체모를 마인 ── 백영호씨와 공작부인의 결혼식을 장송곡으로 축하하고 저 하는 무서운 악마의 눈동자를 자기 얼굴 위에 감각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만일을 염려하여 「홀」앞문과 뒷문에 사복한 경찰들을 파수시켜 놓고 뜻하지 않은 재화가 돌발하는 순간 「홀」문을 앞뒤에서 꼭 잠가버릴 작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고 임경부는 자신에게 타이르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는 조금 아까 「피아니스트」김마리야양을 불러다가 혹시 이상한 편지를 받은적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김마리야는 그런적은 없다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던 때문이었다.

정각이 가까왔다.

팔십이 넘은 듯한 늙은 주례자가 기침소리와 함께 등단하여 이제부터 백영호와 주은몽의 결혼식을 거행하겠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신랑 백영호씨가 둘러리들을 곁에 세우고 천천히 입장하였다.

뒤를 이어 신부 주은몽이 공작의 꼬리처럼 활짝 펴진 면사포를 끌며 「웨딩 ‧ 마 ─ 치」와 함께 행복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하였다. 「웨딩 ‧ 마 ─ 치」는 조금도 거침없이 두사람의 원앙처럼 다행다복한 앞길을 축하하며 장엄한 「톤」 「리듬」을 가지고 계속된다. 이윽고 주례자의 기나긴 상투적 교훈과 축하의 말이 끝나자

『이제부터 신랑은 신부에게 예물을 주는 것으로서 선량한 남편되기를 서약하고 신부는 신랑으로부터 예물을 받음으로서 정숙한 아내가 되기를 선언하겠읍니다.』

이리하여 예물을 주고 받은 다음 각계명사의 축사가 있고 축전축문의 낭독이 있은 후 신랑신부가 팔을 끼고 퇴장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란은 지금 「피아노」앞에서 백납처럼 낯빛이 변한 김마리야의 얼굴을 발견하고 전신이 오싹함을 깨달았다.

『마리야!』

정란이 놀란 상반신을 의자에서 일으키며 그렇게 불렀을 때, 그러나 다시

「홀」안을 울린 것은 행복에 찬 「웨딩 ‧ 마 ─ 치」 그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어찌된 셈인지 마리야의 양손이 흰 건반 위에서 죽은 듯이 움직일줄을 몰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피아니스트」에게로 쏠렸을 때, 마리아의 손가락은 다시 「키 ─」를 『콰앙』하고 눌렀다.

순간, 사람들은 자기들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것은 독자제 군도 이미 예상하고 있는바 저 재 (灰[회])빛에 쌓인 음침하고도 애도를 품은 「쇼팡」의 장송 행진곡 그것이 아닌가.

마침내 불안과 공포와 초조에 떨고있던 정란의 예감은 명중하였다.

행복의 길을 열어야 할 결혼행진곡이 죽엄의 길을 찾고있는 장송 행진곡으로 변하였다는 이 무서운 사실, 이 불길한 사실을 눈 앞에 보는 군중은

『이게 무슨 곡조냐?』

『장송곡이 아닌가?』

『빨리 피아노를 멈춰라!』

하고 저마다 떠들기를 마지않았으나 마치 납인형(蠟人形)처럼 핏기를 잃은

「피아니스트」김마리야의 손가락은 아직도 미친듯이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리야! 고만둬! 피아노를 고만둬!』

하고 부르짖는 정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비로소 마리야는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구슬땀이 비오듯 흐르는 얼굴을 한번 번쩍 들었다가 그만

『와악! ──』

하는 울음 소리와 함께 정란의 품 안에 쓸어지고 말았다.

바로 그 때 그렇지 ── 않아도 수라장처럼 어지러워진 화려하던 홀 안을 시꺼먼 공포의 장막으로 둘러 싸 버린 무서운 사건이 또 한가지 일어 났다.

그것은 바로 저 신랑 신부가 실로 이 뜻하지 않은 불길한 음악 소리에 행복의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숙였던 머리를 번쩍 들어 어지러워진 식장 안을 휘 돌아 보던 그 순간이었다.

신부 주은몽의 눈동자가 불현 듯 군중의 일각(一角)을 바라보자 그만

『악!』

하고 고함을 치며 신랑 백영호씨의 팔목에 새파랗게 변해 버린 얼굴을 묻으면서

『악마! 악마!』

하고 부르짖었던 때문이다.

백영호씨는 깜짝 놀라 신부의 몸을 껴안으며

『뭐, 악마? 누가, 누가, 악마란 말이요?』

하고 부리나케 물었으나 극도의 공포를 느낀 듯한 신부는 얼굴을 파묻은 채 군중이 어물거리는 오른편 쪽 한 모퉁이를 손가락질 하며

『저기, 저기 이제 방금……』

하고 간신이 입을 떼는 신부 공작부인의 목소리는 마치 십리 밖에서 들려오는 모기 소리처럼 가늘다.

그 때 임경부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식장안을 흔들었다.

『여러분 조용히들 하시요! 그리고 대단히 미안합니다마는 아무리 바쁘신 분이 있더라도 식장 밖으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그러니 떠들지들 말고 약한 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요. 한시간 후에는 경찰관이 여러분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하여 드릴 것입니다.』

그 때는 벌써 사복한 경찰들이 「홀」문을 물샐 틈 없이 잠가버렸다. 뚜껑을 덮은 커다란 모말안에서 지금 수백명 군중은 벌떼 처럼 떠들고 있을 뿐 ──

『이처럼 경사스러운날 이렇게 상스럽지못한 취조를 감행하지 않으면 안될 경찰관의 고충을 헤아려 주십시오.』

임경부는 먼저 신랑 백영호씨의 허락을 은근이 구한 후에 아직도 사지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신부 주은몽을 향하였다.

『오늘 이런 심문을 하는 것을 널리 용서해 주시요. 그리고 신부께서 이제 보신 그 악마란 자를 이 가운데서 골라내 주지 않으면 안되겠읍니다.』

그러나 공작부인은 백영호씨의 팔목에 매어달린채 무서움에 찬 눈동자로 수 많은 군중을 노려볼 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소?』

백영호씨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신부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한참동안이나 식장 안을 휘 둘러 보고있던 신부는

『보이질 않아요. ──』

하면서도 시선으로는 이구석 저구석 군중을 헤치며 그 어떤 무서운 그림자를 쉴새없이 찾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임경부는 신부를 출입구 옆에 놓인 교의에다 앉히우고 한 사람씩 그 앞을 지나서야 홀 밖으로 빠져나가는 손님들 가운데서 악마의 정체를 골라 내기를 신부에게 청하였다.

손님들은 하는 수 없이 자기의 필적과 주소 성명을 남기어 놓고 한사람 한 사람씩 마치 시험관 앞을 지나는 수험생처럼 공작부인 앞을 지나서야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명 두명 열명 수무명 ── 이리하여 식장안에는 가족 몇 사람을 남겨놓고 손님들은 모두 무사히 시험관 앞을 통과하였으나, 아아 이 어떻게된 노릇인가……

『없어 졌어요! 보이질 않아요.』

하는 신부의 목소리와 얼굴빛은 한층 더 떨리었으며 한층 더 창백해진다.

『그럴리가 있나?』

『그럴리가 있겠소?』

바람같이 나타났다 바람과 같이 자취를 감춘 악마였다.

『이상한 일입니다.』

『없을리가 있나?』

누구보다도 혀를 차며 놀란 것은 임경부와 백남수다.

『이상해요. 이제 방금 보았는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신부는 또 한번 텅 비인 식장 안을 돌아다 보는 것이다.

『음 ──』

하고 임경부는 한번 신음한 후에

『실로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이다. 인력으로는 도저히 엿볼 수 없는 요술사의 재주다!』

하고 한번 더 혀를 찼다.

『그가 귀신이 아니고 사람인 이상 앞뒷문을 꼭 닫아버린 식장안 어느 구석에서 필연적으로 신부의 눈에 안띌리가 없을 터인데 ──』

하는 백남수의 말에 임경부는 하옇든 이상한 사건입니다 『 . 저번 날밤 이선배라는 화가가 막다른 골목에서 연기처럼 없어지고, 이제와서 또……』

『사실 우리들은 이번 사건에서 과학(科學)과 이성(理性)을 완전히 잃어 버리고야 말았읍니다.』

사실 백남수는 허황한 백일몽(白日夢)속에서 헤메고 있는 자신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대체 이제 신부께서 보신 그 악마라는 사람은 누굽니까? 조금도 숨김없이 세세히 말씀해 주시요. 저번 날밤 부인을 해하고저 단도를 던진 그 도화역자와 동일한 인물에 틀림이 없겠는데 ──』

그때 정란이가 「피아니스트」마리야의 손으로부터 석장의 붉은 봉투를 받아 임경부에게 내주면서

『이것을 보다면 마리야가 왜 「웨딩 ‧ 마 ─ 치」를 도중에서 끊고 불길한 장송곡을 치지 않으면 아니된 까닭을 잘 아십겁니다.』

『빨간 봉투?』

임경부는 그렇게 외치며 신부에 대한 질문을 잠시 정지하고 먼저 마리야의 자백에 귀를 기우리었다.

임경부가 받아 쥔 세개의 빨간 봉투 ── 발신인의 주소 성명이 써 있지 않은 이 석장의 편지는 저번 정란이가 받은 그것과 대동소이한 내용을 가진 무시무시한 협박장이다.

역시 주홍빛 편지였다. 그 중 한귀절을 여기에 소개해 보자.

(마리야! 이번이 세번째의 명령이다. 네가 만일 백정란이 한달 후 피뭉치로 변해버릴 운명에 있다는 사실을 미리 짐작한다면 너는 결코 떠들지 말고 조용히 나의 명령에 복종함이 좋으리라. 한달 안에 나는 정란의 사령(死靈)을 위하여 장송곡을 칠 터이다. 마리야! 너도 만일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하거든 꿈에라도 나의 경고를 헛된 협박이라고 믿어서는 안되리라. 그리고 너는 경찰의 힘을 빌 생각을 하여서는 안된다. 무슨 연고로…… 경찰의 위력도 나의 이 철석과 같은 의지를 추호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며 온전치 못하리라. 나의 이 위대한 힘, 자연을 초월한 마술사의 재주를 너는 저 백영호 씨와 공작부인의 결혼식장에서 목격할 것이다. 과연 이 대담하고도 무시무시한 마인의 선언은 지금 수 백명 군중 앞에서 훌륭히 실행되지 않았는가!

임경부는 이 어리석은 마리아의 행동을 픽 하고 코웃음을 치려는 자기 입술을 꽉 깨물고 신부를 향하였다.

『그러면 아까 보신 그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 주시요.』

공작부인의 입으로부터 간신히 흘러나온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것은 주은몽이 열 여섯 살 되던 여름이었다.

어렸을 때 양친을 잃은 은몽은 그 해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할머니와 함께 금강산 백도사 에서 (百道寺) 더위를 피하고 있던 그 때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고 ── 수 많은 절간이 산재해 있는 금강산에서도 이 백도사라는 절은 가장 초라 하였으며 손님이라고는 은몽이네 둘 밖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매미소리와 해를 보내는 적적한 절간 생활 ── 육십 고개를 넘은 늙은 주지 한사람과 열 여덟살 먹은 소년승려(少年僧侶) 해월(海月)이 이 백도사의 주인공이었다.

은몽의 할머니는 늙은 주지와 옛말하기를 즐겨 하였으며 어린 은몽은 홍안 미소년 해월이와 매일 산골짜기로 싸돌아 다니기를 무엇보다도 좋아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은몽과 애기승 해월이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위었다는 공통적인 쓸쓸한 신세는 그렇지 않아도 타기쉬운 소년소녀의 연약한 가슴 속에 기름을 부었다.

『해월아!』

『은몽아!』

그들은 이렇게 부르며 불리우기를 좋아하였다. 하나가 쫓기는척 하면 하나는 반드시 따랐다. 하나가 따르는척 하면 하나는 반드시 쫓기었다.

이리하여 그들 앞에는 「아담」과 「이브」의 그림이 그림 그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해월은 「아담」이 아니었고 은몽은 「이브」가 아니었다.

저녁노을을 머리에 이고 해월이와 은몽이 바위위에서 나란히 앉은 어떤 날 ──

『내년 여름에도 꼭 와야 해!』

『꼭 오고말고! 내가 뭐 거짓말 할라고?』

『일 년이 몇 일인지 너 아니?』

『아이 참. 삼백 예순 다섯 날이지.』

『삼백 예순 다섯 날? 아이구!』

『뭐가 아이구야?』

『꼭 와야한다! 안 오면……』

『안 오면?』

『너를 찾아 가서……』

『나를 찾아 와서?』

『너 정말 꼭 와야 한다!』

『꼭 온대도 그래?』

『안 오면 난 찾아 가서 너를 죽일 테야!』

『왜 죽여?』

그러나 해월의 입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 할머니의 뒤를 따라 백도사를 떠나는 은 몽의 등 뒤에서 애기 중 해월은 울었다.

그러나 은몽은 화려한 서울에 한 걸음 들여 놓자마자 해월의 존재는 영원히 망각했던 것이다.

그해 가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천해 고아가 된 주 은몽은 몇 푼 되지 않은 학비를 가지고 오랫동안 그리워 하던 동경으로 무용 연구 차 건너갔다.

그 후 은몽은 해월의 소식을 알려고도 하지 않아서 전연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은몽이 공작부인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데 ─ 뷰한지 얼마 안 되어 그는 돌연 해월이란 이름이 씌어 있는 주소 불명의 주홍 빛 봉투를 받고 놀랐다.

── 팔년 동안 너를 찾아 십삼 도를 편답한 해월이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너를 발견했다. 일 년이 며칠인지를 네가 안다면 팔 년이 며칠인지도 가히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세상이 귀여워 하는 공작부인, 나는 노방의 거지 같은 초라한 도승 ── 그러나 나는 너의 육체의 비밀을 알고 있다.

애기 중 해월의 아내였던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모일 모시 모처에서 만나자는 말이 씌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어요.』

공작부인은 얼굴을 붉혔다.

『그 후 또 한번 붉은 협박장이 온적이 있었어요. 나를 죽이겠다고 ── 그리고 붉은 봉투와 편지는 피(血)를 의미한다구요.』

『음 ── 복수를 의미하는 붉은 봉투 ── 도승 해월이, 해월이!』

임경부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백도사의 중 해월이가 역시 주홍 빛 도화복을 뒤집어 쓰고 공작부인에게 비수를 던지는 것을 머리 속에 그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