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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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夜 [암야]의 野獸[야수][편집]

필자는 여기서 탐정소설가 백남수가 가지고 들어온 한 장의 편지가 저 공작 부인의 애인 김수일(金秀一)이란 화가로부터 공작부인에게 온 편지라는 사실만을 독자제군에게 알려 두고 그 편지를 뜯어보기 전에 사법주임 임 경부가 이 괴상하기 짝이 없는 살인미수 사건에 대하여 어느정도 까지 수사가 진행되었는지, 그것이 너무도 궁금해서 독자 제군을 ×× 서 사법주임실로 인도하고자 한다.

명수대 공작부인의 저택에서 가장무도회를 배경으로 일어난 사건에 접하였을 그 순간부터 이 사건만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힘으로 해결하리라고 자타에게 장담하였던 임경부였다.

그러나 사건은 임경부가 생각한 것 처럼 결코 단순하지는 않았다. 사건이 한걸음 한걸음 전진해 나갈수록 예상외로 복잡다난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뿐만인가, 경찰 당국을 ── 아니 임경부 자신을 마치 어린애 같이 비웃으면서 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령과 같은 범인의 재주! 그 신비로운 재주와 실로 위대한 힘을 가진 범인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뭐가 뭔지 도무지 걷잡을 수 없는 초조뿐이 그의 가슴을 덮어 누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불란 탐정의 조력을 빌리기는 사실 죽기보다 더 싫었다.

『그 교만하기 짝이없는 놈의 힘을 빌다니 ── ?』

그는 언제든지 그렇게 외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사건에 관하여 임경부의 공로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임경부는 부하 박태일 부장을 금강산 백도사로 파견하여 공작 부인 주은몽의 증언이 참인가 거짓인가를 조사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에 관한 제일보(第一報)가 작일 은정리로부터 들어왔다.

── 십년 전까지 해월이라는 중이 백도사에 있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자세한 것은 후보로 ── 제 이보가 들어온 것은 오늘 아침이다.

── 주은몽이 백도사로 피서 갔던 사실은 이것을 증명할 재료가 전무 ── 그리고 지금 제삼보를 가지고 박태일부장 자신이 백도사로부터 돌아와서

「테이블」을 사이에 끼고 상세한 보고를 임경부에게 하고 있는 중이다.

『백도사는 바로 비로봉 밑에 있는 극히 초라한 절인데 십년 전까지 해월이라는 애기중이 (당시 스물 안팍이었다고 한다.) 법능(法能)이라는 늙은 주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현재 백도사로 주지로 있다는 중의 입으로 증명 되었읍니다 . 이 주지는 죽기 바로 삼년 전에 백도사로 와서 그의 뒤를 이었는데 법능은 항상 해월의 말을 입에 담았다하며 칠년 전에 그만 해월이 중 노릇에 싫증이 났는지 어디론가 바랑을 메고 떠나 버렸다고 ── 』

『그래 주은몽의 말대로 해월이 홍안 미소년이었던 것도 사실이라던가?』

『그 점을 캐 물어보니 과연 미소년이었다고 법능도 일상 말하더라고, 그리고 해월은 그 때부터 폐병 제 삼기에 있었다고요 ──』

『그러면 주은몽이 할머니와 함께 피서 갔던 사실은 판명이 안되었는가?』

『그러니 말씀입니다. 현재있는 주지는 그런 것을 알 도리가 없고 법능도 이미 죽어버린 지금에 이르러 그런 것을 알아 볼 재료가 전혀 없읍니다.』

임경부는 잠자코 박부장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하옇든 주은몽의 말과 늙은 주지 법능의 말이 일치하는 이상 주은몽이 백도사로 피서 갔던 사실은 확실하다 …… 그러면?』

임경부는 그 때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며 모자를 집어 쓰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삼청동 주은몽을 방문하려는 것이다.

『도승 해월이? 화가 김수일?「씰크햇트」의 이선배? 이 세 사람이 모두 같은 인물이 아닐까?』

그렇게 공상하면서 임경부는 황혼의 거리를 걸어간다.

이리하여 임경부가 삼청동을 향하여 걷고 있을 그 때 백영호씨의 아랫층 침실에서는 은몽과 정란이가 한 장의 편지를 들고 뛰어 들어온 백남수를 바라보면서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리 흥분했어요?』

정란이가 오빠의 얼굴과 손에 든 흰 봉투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을 때 남수는 침대 옆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김수일!』

하고 봉투를 은몽의 무릎위에 놓았다.

『예? 김수일?』

은몽과 정란은 동시에 그렇게 외치고 머리를 모으며 봉투를 드려다보니 과연 그것은 주소는 적히지 않았으나 틀림없는 김수일의 서명이었다.

『하옇든 속히 뜯어 보셔요!』

잠깐동안 얼리벙벙 해졌던 은몽은 남수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봉투를 떼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김수일의 필적이었다.

은몽은 그 낯익은 필적이 김수일의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은몽의 가느다란 목소리는 약간 떨리면서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은몽씨!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은몽씨의 다복다행 하리라고 믿는 신혼생활을 축하 하나이다.

은몽씨!

나는 은몽씨를 잊으려 하였읍니다. 다시는 은몽씨를 생각지 않고 다시는 은몽씨 앞에 이몸을 내놓지 않고 그리고 다시는 은몽씨에게 나의 필적을 전하지 않으려고 결심하였읍니다. 그러나 은몽씨, 나는 지금와서 새삼스러이 지나간 일을 끄집어 내어 은몽씨의 가슴을 쓰라리게 하고 싶지는 않으나 그것은 나를 진심으로 버리고간 은몽씨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처럼 생각하는 나자신의 추측이 그릇 되었을런지는 알 수 없아오나 스스로 오식(誤植)의 인생을 걷고 있는 은몽씨의 고달픈 심정과 외로운 영혼이 나로하여금 붓대를 들게 한 것입니다.

은몽씨! 나는 수일 전 ×× 일보를 우연히 손에 들었을 때 은몽씨가 나에게 준 0간곡한 부탁을 읽었읍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믿고 은몽씨 그대를 믿고 있는데 내가 어찌 은몽씨를 해하려는 그 도화역자 일리가 있겠오.

매일 보도되는 시내의 신문은 나를 일컬어 공작부인에게 칼을 던진 무서운 악마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은몽씨 나는 결코 은몽씨가 믿고 있는것과 같이 은몽씨에게 비수를 던진 범인은 아니올시다. 그러면 나는 무슨 이유로 화가도 아니면서(은 몽씨, ×× 서 사법주임 임경부의 조사로 말미암아 은몽씨도 이미 아시다싶이 나는 결코 화가가 아니올시다. 그리고 김수일이란 이름도 결코 나의 본명이 아니올시다.) 그럼 왜 화가로 자칭하고 은몽씨와 교제를 하였는가? 무슨 이유로 그날 밤 나의 친구 이선배가 끝끝내 정체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는가?

나와 이선배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이냐? 이 모든 의문을 지금 이 자리에서 풀어드리지 못하는 나자신을 얼마나 원망하오리까!

그러나 은몽씨 나를 믿어 주십시요. 나는 절대로 은몽씨를 찌른 범인이 아니올시다. 언젠가 한번은 은몽씨 앞에서 거짓없는 나를 은몽씨에게 소개하리라는 것 만을 여기서 굳게 은몽씨와 더불어 약속하면서 하루바삐 백도사의 도승 해월이가 채포되기를 충심으로 비나이다.

은몽이 편지를 읽고 났을 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이윽고 젊은 어멈이 한장의 명함을 들고 들어온다.

『이런 분이 찾아 왔는데요.』

임경부였다.

남수는 몸소 현관까지 마중나가 임경부를 맞이하면서

『잘 오셨읍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전화를 걸려고 생각하던 중인데 ── 』

이 말에 임경부도 무슨 반가운 소식이 있는 것을 짐작하고

『무슨 기쁜 소식이라도 있읍니까?』

하고 물으니 남수는 임경부를 방으로 인도하면서

『있습니다! 우리는 김수일이라는 화가 ── 아니 가짜 화가의 소식을 얻었읍니다.』

『뭐? 김수일?』

『네, 김수일!』

남수와 임경부가 방으로 들어 왔을때 은몽은 아직 편지를 손에 든 채 들어오는 두 사람을 멍 ── 하니 바라볼 뿐이다. 그 멍 ──한 표정은 무엇인가를 심각히 생각하는 것 처럼 보이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사색을 잃어버린 인형같이도 보였다.

그러나 임경부가 은몽과 정란에게 인사를 하며 침대 옆으로 다가올 때 은 몽은 비로소 꿈에서 깬 사람 처럼 표정을 가다듬고

『오시느라고 수고 하셨읍니다.』

하는 인사와 함께 손에 들었던 편지를 내어 주었다.

『허어! 이것이 그 편지……』

임경부는 편지를 받아 들고 무엇보다도 봉투에 박힌 일부인(日附印)을 들여다 보면서

『광화문국(光化門局)』

하고 중얼거렸다.

임경부는 편지를 읽는다. 사람들은 잠자코 전등불에 번쩍이는 임경부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경부께서는 그 편지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임경부가 편지를 읽고 났을 때 옆에 있던 남수가 그렇게 물었으나 경부는 무거운 표정을 그 넓은 이마에 그리면서 묵묵히 앉아 있다가

『이 필적은 틀림없이 김수일의 것입니까?』

하고 은몽을 향하여 얼굴을 들었다.

『네! 분명히 그이의 필적입니다.』

그러면 그이와 근 일년 『 동안이나 교제해 오시면서 결국 부인께서는 그의 이름도 모르고 그의 직업도 모르셨다는 말씀이지요?』

『네 ──』

은몽은 무안한 듯이 머리를 숙였다.

『교제는 어떤 정도의 교제였읍니까?』

은몽은 잠시 동안 대답이 없다가

『어떤 정도라고……그것을 구체적으로 경부께 아뢰라는 말씀이라면 그것은 너무…지나친 질문이 아닐까요?』

정색을 하고 자기를 쳐다보는 은몽의 쏘는 듯한 눈초리에 임경부는 당황히 그것을 막으며

『너무도 교양없는 질문을 용서하시요. 다만 질문의 본의만을 양해해 주신다면 고맙겠읍니다.』

『저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있었다고, 저번에는 여러번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그러면 그이가 자기를 배반하고 백영호씨와 결혼하신 부인께 그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혹시 부인을……』

『그는 선량한 사람입니다. 쾌할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이 편지에 표시된 것이 결코 거짖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혹시 그이의 사진같은 것을 가졌으면……』

『한장도 없읍니다.』

그 순간 임경부의 머리에는 이 김수일이란 인물과 저 백도사의 중 해월이란 인물이 혹시 같은 사람이나 아닐까 하는 의혹이 또 다시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너무도 탐정소설적 공상일지 모르나 저 해월이가 김수일이란 이름으로 부인과 교제……』

하고 말끝을 채 잇기도 전에 공작부인 주은몽의 입에서는 돌연

『하하하하 하하하하 ……』

하는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임경부는 퍼붓는 듯 쏟아지는 은몽의 웃음 소리가 자기의 너무나 어리석은 공상을 조소하는 줄 문득 깨닫고 일순간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은몽은 서너번 연거퍼 웃고나서

『그것은 너무 지나친 공상이지요. 아무리 제가 눈이 멀었다고 ──』

사실 탐정소설 같은데는 극도로 진보된 정형외과(整形外科)의 수술을 이용하여 사람의 용모를 변장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그것은 결국 소설속의 이야기가 아닌가 은몽이 . 백도사에 피서 갔던 것이 해월이 열 여덟 살 때라 하니 그 후 십 여년의 긴 세월이 흘렀다 하더라도 그리고 제아무리 변장을 재주있게 하였다 하더라도 더구나 잠깐 동안이면 모르거니와 근 일년 동안이나 교제해 오는 동안 반드이 비밀이 탄로될 것은 정한이치가 아닌가. 은 몽이 주책없이 큰 소리로 웃어 버린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그 때 이층 응접실에서 백영호씨와 혜성전문학교에 희사할 칠십 만 원의 토의를 하고 있던 오상억 변호사는

『그럼 정식발표와 모든 수속은 좀 더 신중히 고려한 후로 하게하고 오늘은 이만 실례 하겠읍니다.』

하면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거 너무 늦어서 미안하네.』

백영호씨가 오상억을 현관까지 전송하였을 때는 벌써 삼청동공원 일대에 짙은 암흑의 장막이 소리없이 덮어 누르고 있을 때였다.

이리하여 백영호씨가 이랫층 침실로 들어가니 거기는 독자 제군도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김수일의 편지를 둘러싸고 임경부 이하 여러사람이 흥분한 얼굴로 백영호씨를 쳐다본다.

임경부는 결국 이 한장의 편지로 말미암아 아무런 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다만 부하 한명을 금강산 백도사에 파견시켰던 전말을 보고하고 백영호씨의 현관을 나섰다.

임경부는 팔뚝 시계를 드려다 보았다. 여덟시 사십 분이다. 밖은 침침하다. 소낙비가 쫘하고 금시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다.

넓은 정원을 거쳐서 전등이 어슴프레 비치는 정문을 나섰을 때 임경부는 문득 저편『풀』에 접한 담장밑에 검으스름한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그 순간 임경부의 머리를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한개의 무서움 ──

『도승 해월이?』

하고 마음속에 외쳤을 때는 벌써 그 괴상한 그림자는 저편 솔밭새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을 때였다.

무서운 악마 ── 귀신과도 같은 저 백도사의 복수귀는 다시 그 커다란 마수를 펴기 시작하는 것이다.

『위험!』

주은몽의 신변에는 지금 몸서리치는 위험이 절박했다. 어느 때 어디서 저 뱀과 같은 해월이가 또 다시 시퍼런 비수를 던질 것이냐?

임경부는 발걸음을 도리켜 다시 현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요란한 초인종 소리에 뛰어 나오는 남수를 붙잡고 이제방금 담 밑에서 본 수상한 그림자의 이야기를 한 후 안으로 들어가 ×× 서에 전화를 걸었다.

『박태일군인가? 지금 곧 경찰 십 여명을 데리고 이리로 오게. 올 때에는 될 수 있는대로 소리를 내지 말고 정문앞까지 와서 나를 기다리게.』

임경부의 이 흥분된 어조는 사실 사람들의 마음을 여지없이 서늘하게 하였다.

종이장처럼 핏기를 잃은 은몽의 하얀 얼굴, 그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정란, 늙은 백영호씨의 당황한 거동, 남수의 흥분된 얼굴 ……

『그러나 그리 염려할 것은 없읍니다. 이제 곧 경찰대가 도착할테니 ── 』

임경부는 그리고 들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캄캄한 밤이다. 꽃밭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아이 무서워!』

정란은 임경부가 열어 젖힌 달창 밖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어둠속에서 쏜살같이 날아 들어오는 한자루의 칼날을 불현 듯 머리에 그려보고 몸을 떨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무섭지 않아요?』

그러나 은몽은 대답대신 정란의 몸을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역시 컴컴한 창밖을 뚫어질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더니 은몽은 정란의 귀에다 입을 대고 가만이 속삭이는 것이다.

『정란! 나는 멀지않아 그 중놈의 손에 죽을 사람이야. 나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어. 그놈이 나를 죽이려고 결심한 이상 나는…… 나는 도저히 그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이야.』

『어머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마음을 좀 더 굳게 가져야지!』

『아니야! 그것은 정란이가 아직도 그 놈을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는거야.

뱀 앞에 개구리 고양이 앞에 쥐새끼 같은 나의 목숨!』

『어머니, 어머니!』

『아아, 저주 받은 인생! 저주 받은 나의 일생!』

은몽은 무섭다기 보다도 슬퍼서 느끼는 것이다. 두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이윽고 경찰대가 도착하였다. 임경부는 경찰대를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수상한 그림자가 자취를 감춘 숲사이를 수색하게하고 한패는 담장을 빙 둘러쌌다. 제 아무리 날개를 가진 해월이라도 이 엄중한 경비망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으리라.

임경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아, 아무 염려 마시고 마음을 푹 놓고 주무십시요.』

하고 은몽과 정란을 침실에 남겨두고 바로 옆방인『아뜨리에』로 들어가서 백영호씨 부자와 밤이 깊도록 은몽의 신변을 지키기로 하였다.

밤은 점점 깊어간다. 아홉시, 열시, 열 한시, ── 열 한시가 조금 지나서부터 한방울 두방울 내리던 비가 갑자기 쏴 하고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억센 빗줄기는 바람과 함께 들창을 덜그렁 덜그렁 두드린다. 음침한 밤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걷잡을 수 없는 초조와 불안을 마음에 느끼며 저도 모르게 깊고깊은 공포의 연못 속으로 잠겨드는 것이다.

남수는「커 - 텐」을 젖히고 폭풍우가 쏟아져 내리는 창밖을 한번 휘 돌아보며

『경부께서는 아까 보신 그 수상한 그림자란 결국 착각 ── 잘못 보신 게 아닙니까?』

하고 묻는 말에 임경부는 적지않게 불쾌한 얼굴 빛으로

『잘못 볼리가 있소? 확실히 이 두눈으로 담장밑에 엉거주춤히 쭈그리고 앉은 사람의 시컴은 그림자를 보았는데 ──』

임경부가 변명하면 할수록 남수는 그의 경솔한 태도를 마음으로 힐란하는 것이다. 그것은 남수만이 아니라 백영호씨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동안 숲속를 수색하던 경찰대로부터 두번이나 보고를 전해 왔으나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열 두시를 친다. 비는 아직도 쉴새 없이 내리고 있다.

침실에서 들려오던 정란과 은몽의 이야기 소리도 이제 끊긴 것을 보니 아마 잠이 든 모양이다.

백영호씨는 그 때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이제는 잠이 들었겠지 어디 ──』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침실로 통하는 「또어」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끝끝내 자기방으로 돌아가길 무서워하던 정란은 은몽의 침대위에서 함께 고요히 잠들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백영호씨는

『앗!』

하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한자루의 비수가 붉은 봉투와 함께 바로 침대 옆 벽 위에 박혀 있지 않은가? 벙싯하게 열린 들창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