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101장~1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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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편집]

여럿은 먹는 데 넋을 잃고 고두쇠를 보낸 것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참 고두쇠를 보내 놓았지. 그러면 오늘 밤이라도 톡톡한 일거리가 생길지도 모르네그려."

곰보가 코벌룸이의 말을 받는다.

"암, 그야 그렇고말고. 구슬아기가 가는 것을 정녕히 보고만 온다면야 주안상이 다 뭔가. 그래 우리들이 술타령만 하고 있을 사람들인가. 정작 일거리가 생긴 다음에야 너나 할 것 없이 목숨을 내어놓을 거란 말이거든. 그러니 자, 우리 술 한잔 더 먹어 두세나. 고두쇠가 금방 들어닥칠 줄 누가 아나베."

텁석부리가 한바탕 늘어놓은 말뿌리는 역시 술에 돌아가고 말았다.

"여보게, 놀이아가씨, 자 어서 술을 한 번만 더 내오게나."

놀이는 그 예쁘장한 눈을 한번 샐룩할 뿐이요, 말대꾸도 안 했다. 하도 같잖은 말이라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눈치다.

"고 예쁜 눈을랑 흘기지 말고, 또 뉘 간장을 녹이게. 어서 어서 여률령 시행(如律令施行)이나 하소."

하고 되우 취한 텁석부리는 제 옆에 서 있는 놀이의 등채나 밀듯이 비틀비틀 일어선다.

"왜 이래요."

놀이는 악을 바락 쓰고 몸을 빼쳐 달아난다.

"그러지 마소, 그러지 말어, 허허."

텁석부리는 비척비척 쫓아가며 놀이의 손목을 잡으려 하였다.

"원, 별꼴을 다 보아."

하고 홱 놀이가 뿌리치는 바람에 텁석부리는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질 뻔하였다.

좌중엔 웃음보가 터졌다.

"원 그런 걸신은 보다 처음 보아. 저 따위를 데리고 무슨 일을 한담."

샛바람은 끝끝내 아까 앙갚음을 하였다.

"요런 북어 같은 말라깽이가 주둥아리만 까가지고. 내가 칼을 쓰면 그래 네놈만 못할 줄 아느냐."

텁석부리는 개개 풀린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뇌까리었다.

"어디 그러면 한번 겨뤄 보자."

샛바람은 제 별명마따나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벽에 끌러서 걸어둔 제 환도를 떼어 든다.

"허, 이놈 봐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 견디어 봐라. 네깐놈이 검술을 몇 푼 어치나 안다고."

하고 텁석부리는 대번에 서리 같은 칼날을 뽑아 든다.

좌중은 와 일어섰다.

"이게 무슨 짓이람."

"칼 쓸 데가 그렇게 없어서 친구끼리 칼부림을 한단 말인가."

여럿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뜯어말리고 텁석부리는 코벌룸이가 가까스로 제자리로 끌고 갔다.

"어, 이 사람 그게 무슨 짓이람. 낫살이나 먹은 친구가."

"원, 별 우스운 꼴을 다 보겠네. 나는 이놈아, 나는 검술공부가 십 년이다, 십 년. 네깐 놈이야 한 칼에 당장 두 동강이가 날 것을."

텁석부리는 끌려가면서도 연해 큰소리를 하였다.

"에구, 이놈아, 네깐 놈이 십 년 아니라 백 년을 칼을 배웠으면 무슨 소용이냐. 털보 얼굴이 땅바닥에 뚝 떨어져 대굴대굴 구을기나 했지 별수 있느냐."

자리에 앉기는 앉았지만 제 성에 받치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샛바람도 지지 않았다.

"원, 되잖은 녀석 때문에 주흥이 다 깨졌구나, 허허허."

텁석부리는 한번 호걸스럽게 웃고 팔을 부르걷어 연신 엄포를 놓으며 이번에는 아주 점잖게 호령하였다.

"얘, 놀아, 어서 술 좀 내오너라."

"그래도 또 술이야."

하고 누가 킥킥 웃는다. 코벌룸이가 유난스럽게 넓은 콧구멍을 더 벌룸벌룸하며,

"암, 화해주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겠나."

하고 금성을 바라본다.

금성은 고주가 되어 그 야단통에도 제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서, 아서" 하며 손만 내저어 말리었고 싸움이 가라앉자 눈을 딱 감고 흔들흔들 부라질을 하고 있다가 코벌룸이 말에 개개 풀린 눈을 간신히 뜨고서,

"놀이란 년 어디 갔느냐. 어서 술을 내어오너라, 술 술."

하고 소리를 질렀다.

텁석부리가 칼을 쑥 뽑아 드는 바람에 겁을 집어먹고 방 한구석에 붙어 섰던 놀이는 싸움이 하도 싱겁게 끝난 것이 속으로 우스웠다.

"술을 더 잡숫고 또 싸움들이나 하면 어떡해요. 그 칼들을 빼 드시는 게 어떻게 무서운지, 호호."

"잔말 말고 어서 들어갔다 와."

금성은 소리를 질렀다.

놀이는 안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술이 없어요, 소흥주가 다 동이 났대요."

좌중은 서로 돌아보고 입맛을 다시며 흥이 깨어지는 듯하였다.

"뭐, 소흥주가 떨어졌어…… 그러면 다른 술도 없단 말이냐."

"꽃물을 받은 소주밖에 없대요."

"만물소주, 더 좋지 더 좋아."

곰보가 얼른 놀이의 말을 받는다.

"암 좋다뿐이냐."

하고 여럿은 침을 삼키었다.

이때 열어 놓은 영창 앞에 고두쇠가 나타나서 굽실 하고 숨이 턱에 닿는 소리로,

"서, 서방님 소, 소인 다녀왔습니다."

102[편집]

금성은 정신이 번쩍 나는 것처럼 곧 창 밖을 향해 돌아앉으며,

"오, 고두쇠냐. 그래 어떻게 되었느냐."

입에 침이 없이 물었다.

"가만 좀 곕시오. 소인이 숨을 좀 돌려야겠습니다. 후후."

연해 가쁜 숨길을 내어쉰다. 방 안의 눈과 귀도 모조리 고두쇠의 입으로 몰리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단 말이냐. 갑갑하구나. 어서 말을 못 해."

금성은 연상 재촉을 하였다.

"후, 후, 서 서방님 황송합니다만 소인에게 술 한 사발만 내립시오. 첫째 목부터 좀 추겨야……."

"그래, 그래, 술부터 한잔 먹어야 하고말고."

텁석부리가 고두쇠의 말을 가로채며 눈으로 술을 찾다가 술 가지러 가던 놀이가 고두쇠의 말을 듣느라고 그대로 오도카니 서 있는 걸 보자,

"원, 그 술 내오기 참 어렵고나, 쩟쩟."

하고 혀를 찼다.

금성이가 그 말을 듣자 힐끈 돌아보고,

"요년 놀아, 왜 내오라는 술을 내오지 못하고 뭘 하고 거기 섰느냐, 매친 년 같으니."

놀이는 샐쭉하며 텁석부리를 흘겨보고 들어가더니 재빠르게 오지 소주병을 통으로 들고 나왔다.

"요년, 어서 따르지를 못해."

금성은 놀이가 술병을 들고 앉을 겨를도 없이 또 불호령을 하였다.

놀이가 술을 잔에다가 따르려는 것을 넘겨보고 고두쇠는,

"고 깍쟁이 잔에 따라서야 어디 간에 기별이나 하겠다고, 대접이나 보시기가 없나."

"원 오늘은 저것까지 말썽이야, 내 원 참."

놀이는 입을 삐쭉 하고 종알거린 다음에 행주질이나 친 듯이 비워 놓은 나박김치 보시기에다가 가뜩 부어서 내밀었다.

고두쇠는 받아서 단숨에 들이켜고 연방 카 카 소리를 치면서 두리번두리번 교자상을 넘실거리는 것은 안주를 찾는 것이리라.

"인제 어서 얘기를 해. 그래 주만이가 그 목장이를 지나가더냐."

"카, 카, 참 독한뎁시오. 빈속이 되어서 대번에 핑핑 내어둘리는뎁시오."

"이놈아, 주만이가 가더냐, 안 가더냐."

초조한 금성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좋은 안주나 얻어걸릴 줄 알고 말꼬리를 질질 끌다가 제 주인이 역정을 내는 걸 보고 고두쇠는 움찔해지며,

"녜, 녜, 곧 아뢰겠습니다. 소인이 분부대로 그 길목장이를 지켰습지요. 저녁도 못 먹고 해질녘부터 가서 지키는 게 밤이 되어요. 개미 한 마리 얼씬해얍지요……."

"그러면 오늘 밤도 또 헛다방이란 말이냐."

금성은 고두쇠의 말을 가로채며 시무룩해진다.

"아닙시오. 소인이 허기가 지쳐서 아무것도 눈에 잘 보이지를 않아 오늘 밤에는 구슬아가씨께서 행차를 않으시는 줄 알고 또 너무 기다리실 듯해서 그냥 들어올까 하였으나 죽을 작정을 하고 한참을 더 기다리고 있으려니 어디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겠지요."

"말굽 소리가? 그래서……."

하고 금성은 괴었던 침을 삼키었다.

"비호같이 소인 앞을 지나가는데 구슬아가씨가 분명하겠습지요. 어떻게 말을 잘 타시는지."

"뭐, 주만이가 지나가더란 말이냐. 네가 정녕히 보았더냐."

"보고말곱시오. 그 뒤에 털이란 년이 아치랑아치랑 따라가는 것도 보았는뎁시오. 만일 잘못 보았으면 소인의 눈을 빼어 바쳐도 좋습지요."

"그래 그게 참말인가."

텁석부리가 턱을 창 밖으로 내밀며 묻는다.

"참말이고말곱시오."

"자네, 배는 고프고 컴컴하니까 헛것이나 보지를 않았나."

"아니올시다. 이 눈으로 분명히 보았습니다."

좌중에는 잠깐 긴장한 빛이 흘렀다. 술과 음식이나 흥껏 한껏 며칠을 두고 더 얻어먹어야 될 판인데 오늘 밤으로 이렇게 속히 일거리가 걸릴 줄은 몰랐다.

'하필 오늘 내가 왜 왔던고.'

속으로 후회하는 위인도 한둘이 아니었다.

금성은 주만이가 밤이면 불국사에 드나드는 듯하다는 말을 고두쇠에게 듣고 그 이튿날부터 고두쇠를 거의 밤마다 불국사에 보내어 염탐을 시키었다.

부여 석수장이와 무슨 짬짬이속이 적실히 있는 듯하다고 고두쇠가 여러 번 장담을 하였지만 그래도 하늘의 별보담 더 높게 아는 주만이가 그 따위 시골뜨기 석수장이하고 정분이 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능청맞은 고두쇠가 말을 보태어 그 석수장이와 주만이가 탑 속에서 끼고 누운 것까지 분명히 보았다는 바람에 금성은 펄펄 뛰고야 말았다.

주만이가 어느 날 밤 아사달을 작별하고 사다리를 내려서다가 보고 놀란 수상한 그림자의 정체는 기실 이 고두쇠이었다.

103[편집]

짝사랑이란 저편이 쌀쌀히 굴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것. 차마 못 당할 그 망신을 당한 뒤에도 금성은 주만을 단념하기는커녕 도리어 잊을 날이 없었다. 그 추상 같은 호령과 쌀쌀한 비웃음이 눈 속에 어리고 귀에 스미어드는 듯 도무지 떼치려야 떼칠 수가 없었다.

텅 비인 마음을 부둥켜안고 술판과 꽃거리로 헤매기도 이때부터이었다. 무슨 수로 어떻게 하든지 주만을 제 손아귀에 넣어 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다못해 분풀이라도 톡톡히 해보려고 벼르고 벼르던 금성에게는 이 소식이야말로 하늘에서 주신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높은 담과 겹겹이 닫은 대문과 수많은 하인들에게 옹위되어 깊고 깊은 별당 속에 들어 있으면 다시 어찌할 도리가 나서지 않았지만 휘넓은 절, 외따른 탑, 후미진 산길에서야 무슨 거조라도 얼마든지 차릴 수 있지 않으냐.

금성의 마음은 뛰었다.

그러나 섣불리 서둘렀다가 또 전번 모양으로 될 일도 안 되고 혼뗌만 할까 보아 겁이 났다. 이번이란 이번이야말로 단단히 차려야 한다. 오밀조밀하게 일을 꾸며야 한다.

궁리궁리한 끝에, 그는 제갈량이가 다시 살아나도 탄복할 만한 꾀를 하나 생각해 내었다.

그 꾀를 실행하기에 제 혼자 힘으로는 조금 벅찬 것이 흠절이었으나, 힘을 빌릴 사람이 그리 아쉽지도 아니하였다. 주사청루에서 사귀어 둔 '장안호걸'들을 이럴 때 안 쓰고 언제 쓸 것인가.

그 후로 금성의 사랑에는 거의 밤마다 먹거지가 벌어졌다. 그들은 금성의 말을 듣자 모두 팔을 부르걷고 분개하였다. 서라벌 한다하는 집 딸로 부여놈 석수장이 따위에게 미쳐 다니다니 치가 떨릴 노릇이 아니냐. 그런 계집애는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

오늘만 해도 고두쇠를 보내 놓고 하회를 기다리며 그 기다리는 동안이 무료하다고 해서 술판을 벌린 것이지 그들의 변명마따나 결코 술타령만 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고두쇠가 주만이가 적실히 불국사에 가는 것을 보고 왔건만 그들은 얼른 몸을 일으키려 들지 않았다. 한창 술이 빨리듯 당기는 판도 판이지만 정작 일거리가 생기고 보니 남의 초상에 단지하는 것 같아서 될 수만 있으면 슬슬 꽁무니를 빼고 싶었다.

"그래 적실히 주만이가 불국사엘 가더란 말이지."

텁석부리는 그래도 미심다운 듯이 또 한번 다지었다.

"여불없습니다."

고두쇠도 중언부언하는 데 성가신 듯이 볼멘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허, 그래."

하고 텁석부리는 힘없이 말하고 내밀었던 턱을 움츠러들인다.

"자, 여러분들 일어들 서보시지요."

하고 금성은 지척지척 일어선다.

"잠깐만 기다리오, 잠깐만."

텁석부리는 손을 내저어 금성에게 앉으란 뜻을 보이고,

"뭐 주만인가 하는 그 계집애가 불국사에 가기만 한 다음에야, 뭐, 그야 독 안에 든 쥐지 별수 있겠소. 그렇게 서둘 것도 없거든. 자 우리 내어 온 소주나 다 들이켜고 기운을 내어 가지고 서서히 일어서도 좋단 말이거든."

"옳소, 옳아."

코벌룸이가 대번에 찬성을 하였다.

"저희들에게도 여유를 좀 주어야 어쩌고저쩌고 할 틈이 있을 것 아니오. 한창 노닥거리는 판에 우리가 지쳐 들어가야만 꼭 잡을 수가 있는 것이거든. 사냥을 해도 쫓겨가는 짐승은 슬쩍 한번 늦추어 주어야 그놈이 기진맥진해서 잡기가 쉽단 말이야."

금성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앉으며 화풀이로 놀이를 호령하였다.

"요년 놀아, 뭘 하고 있느냐. 술을 내왔거든 빨리빨리 부어 드리지를 못하고."

놀이는 입을 배쭉배쭉하며 잔에 술이 철철 넘치도록 찔금찔금 재빠르게 부었다.

"얘 찬찬히 부어라. 그 아까운 술 흘린다."

하고 곰보는 철철 넘는 술잔을 들면 더 쏟힐까 보아, 잔 가장자리에 제 입을 갖다 대어 빨아 마신다.

꽃물 소주 한 두루미가 거의 다 말랐다.

"자, 이제는 그 년놈을 때려잡으러 가야."

하고 샛바람은 그 노란 얼굴이 더욱 샛노랗게 되어 가지고 누구보담 먼저 몸을 일으킨다.

샛바람이 일어서는 바람에 더러는 엉거주춤하게 자리를 떴다.

코벌룸이도 따라 일어나려다가 말고,

"여러분 그렇게 급할 건 없단 말이지. 그 년놈을 잡는데 어떻게 잡으면 잘 잡을까, 우리 여기서 난상토의를 하잔 말이어."

하고 벌써 몇 번을 작정한 습격방법을 또다시 이렁성거리었다.


104[편집]

"우리가 풍우같이 몰아 불국사를 지쳐 들어간단 말이거든, 응, 다들 알아듣겠어. 그래 가지고 다짜고짜로 그 석가탑인가 뭔가 년놈이 들어박힌다는 탑을 철옹성같이 에워싼단 말이야."

코벌룸이는 제가 아주 대장격이나 되어 삼군을 호령하는 말투다.

"그러고 볼 지경이면 저희가 아무리 기고 난들 그 천라지망을 벗어날 수가 있느냐 말이야. 그래서……."

"여보게, 고만두게, 고만두어. 그 소리는 대관절 이번까지 몇백 번을 하는 거야."

샛바람이 듣다가 못하여 한마디 티를 넣었다.

"원, 저런 사람 보게."

코벌룸이는 펄쩍 뛰었다.

"대체 무슨 일이고 작사불민하여 도리어 해를 입는단 말이거든. 백 번 아니라 천 번이라도 미리 일러 둘 것은 일러 두어야 된단 말이거든…… 가만있거라, 내가 어디까지 말을 하였던가."

"잊어버렸거든 고만하고 집어치우게, 집어치워. 아까 술안주로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아니야, 술을 한 잔 더 마셔야 새 정신이 돌아나실걸."

좌중은 짝자글 웃었다.

"어 무슨 버릇없는 소리들인고. 아무튼 그 년놈을 끌어내린단 말이어."

"한 가지가 빠졌네. 왜 저번에는 년놈을 단단히 비끄러매어 가지고 끌어내린다더니."

"비끌어매든 어쩌든 아무튼 끌어내린단 말이야."

"그 더러운 년놈을 끌어내릴 건 있나. 한 칼에 모가지를 뎅겅 베어 버리면 고만이지."

이번에는 텁석부리가 출반주 왈을 하였다.

"아냐, 그것들도 젊으나젊은 나인데 대번에 죽이는 것은 불쌍하지 않나베. 더구나 제 이름 말마따나 구슬같이 예쁜 구슬아기를."

곰보가 검고 얽은 제 상판과는 아주 딴판으로 가냘픈 목소리를 내며 저편을 두둔해 말하였다.

"자네는 그 년놈에게 톡톡히 얻어먹은 것이나 있나 보이그려. 우리 서라벌 처녀들을 욕보이고 제 가문을 더럽히는 그런 화냥년을 살려 두어서 뭣에 쓴단 말인가."

하고 샛바람이 입술을 떨면서 몰풍스럽게 내쏘았다.

"자 이것 보란 말이야. 백 번을 짜고 천 번을 짜도 번번이들 딴청을 부리니 내가 어떻게 다지지를 않겠느냐 말이야. 내가 만일 그 말을 끄집어내지 않았던들 이군들이 우 달려가서 뿌리뿌리 제멋대로 아사달을 죽이는 놈에, 주만이를 죽이는 놈에, 비끄러매고 끌어내리는 놈에, 안 비끄러매고 끌어내리는 놈에, 주만을 끼고 달아나는 놈에, 사람이 정신을 차릴 수가 있을 건가 말이야. 그러니 여기서들 작정을 딱 해가지고 들이치든지 내치든지 해야 된단 말이야."

코벌룸이가 줄기차게 늘어놓는 바람에 여럿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죽이기까지는 너무 과하고 년놈을 참바로 한데 친친 동여매 가지고 서라벌 거리거리로 조리를 돌립시다. 그러면 달뜬 계집애들의 본보기가 될 거란 말이지요."

누가 이런 제의를 하였다.

"그것도 미상불 안 좋은 건 아닌데 그러면 너무 왁자지껄해지지 않을까. 이손 유종의 체모도 봐주어야지."

또 다른 사람이 이렇게 반대를 하였다.

"첫째 끌고 다닐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오."

코벌룸이가 마지막 단안을 내리었다.

"이런 젠장맞을,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면 그러면 어떻게들 하잔 말이오. 중의 공사나 삼일이지, 그래 명색이 장안 안에서 이렇다하는 사람들이 이게 무슨 꼴들이란 말이오."

샛바람은 매우 못마땅한 듯이 한마디 뇌까리었다.

"아따 그렇거든 이녁이 좋은 수단을 이르구려."

"년놈을 다 죽여 버리자는밖에."

샛바람은 잇새로 배앝는 듯 또 한마디 뇌었다.

"자, 그러면 좌우 양단간 우리 주인의 의견을 들어 봅시다."

하고 텁석부리는 금성을 바라보았다. 금성은 초조한 듯이 여럿의 공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그 년놈을 꼭 잡아 가지고 수죄를 한 다음에 그 석수장이란 놈은 제 고장으로 쫓아 버리고 주만은 동여다가 나를 갖다 맡기시오."

"옳소, 옳소. 주인의 말이 옳소, 년을랑 주인을 갖다 맡깁시다. 자기야 구워먹든지 삶아먹든지 그렇게 골똘히 못 잊겠거든 장가를 들든지. 그러면 또 혼인술이 걸릴 것 아닌가베, 헤헤."

하고 누가 웃는다.

그들이 그 긴 공론을 마치고 더러는 말을 타고 더러는 걸어서 불국사를 향한 때는 벌써 밤이 이슥한 뒤이었다.

105[편집]

금성의 일행은 거칠 것 없이 불국사에 지쳐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어귀에서 문지기와 잠깐 힐난이 있었으나 금지 금시중 댁 공자 한림학사 금성의 행차란 바람에 그 육중한 대문도 쉽사리 열려진 것이다.

고두쇠가 앞장을 서서 우둥우둥 석가탑 가까이 오자 돌 쪼는 소리가 자지러지게 일어났다.

모든 기척이 끊어진 캄캄한 아닌밤중에 비 오듯 일어나는 그 소리는 어쩐지 신비롭고 거룩한 가락을 띠어 지쳐 들어가는 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이렇게 캄캄한데 어떻게 일을 할까."

코벌룸이가 소리를 죽이며 감탄하였다.

"돌 쪼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놈이 있기는 적실히 있는 모양일세그려."

샛바람이 중얼거렸다.

"그야 여불없습지요."

고두쇠가 제 염탐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을 자랑삼아 말하였다.

여럿은 슬근슬근 탑 그늘로 모여들어 전후좌우로 빙 돌아서 에워싸고 칼들을 쑥쑥 뽑아 들었다.

샛바람이 선뜻 사다리에 올라 탑 안으로 뛰어들며 서리 같은 칼날을 휘둘러 한번 엄포를 보이고,

"년놈 이리 나오너라!"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메아리 받듯 밑에서도,

"년놈 이리 나오너라."

소리소리 질렀다.

돌 쪼는 소리가 뚝 그치었다.

샛바람은 어느 틈에 아사달의 멱살을 잡아 낚아치며,

"이놈, 년은 어떻게 하였느냐."

물었으나 저편에서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이놈 왜 말이 없느냐. 년을 어디다가 숨겨 두었느냐. 바른 대로 아뢰어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한 칼에 네 목은 달아나고 말 것이다."

"……"

역시 아사달은 아무 대꾸가 없었다.

"년이 없다니!"

금성이가 실망한 듯이 중얼거리고,

"이놈 고두쇠야, 주만이가 가는 것을 네가 적실히 보았다지."

"녜, 녜, 가는 것을 여불없이 보았는뎁시오."

"그런데 없다니 웬 말이냐."

"글쎄올시다, 거기 어디 숨었겠습지요."

"그러면 관솔불을 다려라."

고두쇠는 준비하였던 관솔을 켜들고 사다리를 올라왔다. 좁은 탑 속은 대번에 환하게 밝아졌다.

아사달은 잔뜩 멱살을 추켜잡힌 채 검다 쓰다 말이 없고 주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허 이게 웬일일까. 그 아가씨가 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고두쇠는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탑 안을 살펴보다가 머리를 긁적긁적하였다.

"좌우간 그놈을 이리로 끌어내립시다."

밑에서 누가 제의를 한다.

"그놈을 이리로 끄집어내려 참바로 친친 동여매 놓고 구슬아긴가 뭔가 어디 있는가를 문초를 해봅시다."

"이놈 이리 내려가자."

하며 샛바람이 잡아끌매 아사달은 선선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이놈, 구슬아기를 어떻게 하였느냐."

내려서는 아사달을 중심으로 여럿은 우 몰려서고, 금성이 쓱 나서면서 문초의 첫 화살을 던지었다.

아사달은 묵묵히 말이 없다.

"이놈이 갑자기 벙어리가 됐단 말인가. 왜 말을 못 해."

이번에는 곰보가 한마디하고 술이 취해서 허둥허둥하는 다리로 아사달을 걷어찼다.

"이놈, 이놈, 바른 대로 말을 못 해."

여럿은 제각기 한마디씩 하고 이뺨 저뺨을 갈기고 쥐어질렀다.

아사달의 코와 입에선 피가 흘러내렸건만 그는 닦으려 하지도 않고 그린 듯이 서 있을 뿐.

"그놈도 여간 고집퉁이가 아닌 모양일세그려. 자 참바로 동여매고 욱대겨 봅시다. 그래 제놈이 말을 않고 배기나."

코벌룸이 말에 여럿은 모두들 찬성을 하고 고두쇠를 시켜 손과 팔과 두 발목까지 한데 동여 놓으니 아사달은 저절로 그 자리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이놈 이래도 말을 못 할까."

샛바람은 탑에서 내려와서 아사달을 걸타고 앉아서 두 손으로 아사달의 목을 냅다 눌렀다.

그때이었다.

"웬 놈들이냐. 여러 놈이 한 사람을 치고 때리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난데없는 호통이 그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106[편집]

이 난데없는 호통에 여럿은 아사달을 비끄러매고 때리고 차던 것을 그치고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관솔불빛이 거물거물하는 저편에 두 그림자가 뚜렷이 나타나 보이었다.

처음에는 그 우렁찬 호통에 벼락이나 떨어진 듯 깜짝 놀라 사시나무 떨듯 경풍들을 하였으나 저편이 단둘밖에 안 되는 것을 넘보곤 텁석부리가 이 별안간 나타난 방해자들을 향해 한 걸음 내달으며,

"너희놈들은 웬 놈들이냐. 우리는 까닭이 있어 이 석수장이를 문초하거니와 만일 우리 일에 헤살을 놓으면 너희놈들도 용서를 않을 테다."

"이놈들아, 문초할 말이 있으면 조용조용히 물어 볼 것이지 열 놈이나 달려들어 한 사람을 동여매 놓고 무수난타를 하다니 그런 더러운 행동이 어디 있단 말이냐. 아무리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세상이기로."

저편의 말씨도 갈수록 우락부락해 갔다.

"우리야 이 석수장이를 뜯어먹든지 삶아먹든지 너희놈에게 무슨 계관이 있단 말이냐."

뒤에 섰던 그림자가 앞으로 나서며,

"이 석수로 말하면 멀리서 오신 손님, 이 땅 이 절을 위해서 탑 둘을 쌓느라고 심혈을 뿌리는 갸륵한 사람, 내가 안 보았으면 모르지만 내가 본 다음에야 이 앞으론 이 사람에게 손가락 하나 다치지 못하게 할 터이다. 빨리 맨 것을 끌러 놓고 너희들은 냉큼 물러가라."

"원, 별 우스꽝스러운 소리도 다 들어 보겠구나. 네 말을 듣고 물러설 우리인 줄 아느냐. 너희나 목숨이 아까웁거든 어서 쥐구멍이나 찾아라."

"어쩐지 오늘 내가 칼을 쓰고 싶더니 너희들의 더러운 피를 묻히게 되는가 부다."

하고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칼을 뽑으려 할 제 또 다른 그림자 하나가 앞을 가리어 서며,

"서방님께서는 잠깐만 진정을 하십시오. 저 따위 놈들은 제 혼잣손으로도 넉넉히 처치를 해버릴 테니까요."

두 그림자는 하나는 경신이요, 하나는 용돌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두 동지는 그칠 줄 모르는 서회에 밤이 이슥하도록 수작을 주고받다가 경신이가 돌 쪼는 소리를 듣고 캄캄한 밤에도 일을 한다는 그 신통한 재주를 구경하고자 둘이 나왔던 길이었다.

용돌이가 칼을 뽑아 드는 것을 보고 텁석부리도,

"야 이놈 봐라. 내가 누군 줄 알고 덤비느냐."

하고 같이 칼을 뽑아 들고 대들었다.

그러나 두 칼이 몇 번 어우러지지 않아 텁석부리는 도저히 용돌의 적이 아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자꾸 뒤로 물러서며 쫓기기 시작한다.

제 편의 형세가 불리한 것을 보자 여럿은 아사달을 내버리고 우 몰려들었다.

어지러운 칼날은 어두운 밤빛을 누비질하며 한데 부딪쳐 불꽃을 날리며 쟁그렁쟁그렁 귀가 가려운 소리를 내었다.

"인명을랑 다치지 말게."

경신은 용돌을 주의시키며 차차 그 능란한 칼솜씨를 내어놓았다. 여럿은 두 사람에게 쫓기어 자꾸 뒷걸음질만 치게 될 때 세찬 경신의 칼끝은 선뜩선뜩 지나가며 더러는 귀가 떨어지고 더러는 칼 든 손가락이 잘라졌다.

"에쿠, 에쿠."

비명을 치며 칼을 떨어뜨리고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뿔뿔이 다들 헤어져 달아나고 맨 마지막으로 금성과 고두쇠가 남았다. 제 주인의 위기가 각각으로 닥쳐오는 것을 보고 고두쇠는 마지막 수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 어른을 다치면 정말 너희들은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리라. 이 어른이 누구인 줄 아느냐. 금지 금시중 댁 공자 한림학사 금성이시다."

"응, 바로 금지의 아들이냐. 이놈 참 잘 만났다. 이놈 듣거라. 네 아비는 나라를 좀먹게 하고 너는 무뢰한을 끌고 다니면서 외로운 나그네를 엄습하니 네놈의 죄는 절실가통이다. 네가 지금 당장 칼을 던지고 부복사죄하면 이어니와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놈들의 목숨은 붙여 주었거니와 네놈은 그대로 둘 수 없다. 짧은 목을 길게 늘이어 이 칼을 받으라."

경신의 호령은 산이 쩡쩡 울리었다.

"에구구."

막 제 목 위에 서리 같은 칼날이 떨어지려 할 제 금성은 칼을 집어던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두 손을 어깨 위에 쳐들고 칼 받는 시늉을 하였다.

"세상에도 비겁한 녀석. 내 칼이 더러워질까 보아 네 피를 묻히기 싫다마는 무슨 까닭으로 저 석수장이를 엄습하였느냐. 바른 대로 아뢰어라. 만일 추호라도 기이면 네 목을 붙여 두지 않을 테다."

107[편집]

고두쇠는 제 주인의 명색을 내세우기만 하면 여간한 사람쯤이야 찔끔을 하고 칼을 거둘 줄 알았었다. 나는 새라도 한번 호령에 떨어뜨릴 만한 서슬이 푸른 금시중의 세도가 아니던가. 이렇게 당당한 세도객의 아드님이란 말을 듣고도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치를 떨며 덤비는 이 난데없는 인물들이야말로 제 상전보담 더 무서운 양반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추상 같은 호령과 번개보다 더 빠른 칼끝에 고두쇠의 혼은 반나마 허공에 뜨고 말았다. 선 그 자리에서 오금도 못 떼고 벌벌 떨었다.

"네 말을 듣자 하니 이놈 집 종놈일시 분명하구나. 냉큼 가서 저 석수의 매인 것을 끌러 드려라."

경신은 금성의 머리 위에 칼을 빗기고 선 채 이번에는 고두쇠를 호령하였다.

"녜녜, 지당하신 분부올시다. 끌러 드리고말곱시오."

"이놈 잔말이 무슨 잔말이냐. 이른 말이나 어서 거행을 못 하고."

"녜, 녜."

고두쇠는 연거푸 대답을 하고 인제 제 목이 아니 떨어질 것을 알아차리고 천방지축으로 아사달의 곁에 가서 동여매인 것을 끄르기 부산하였다.

"금성이 듣거라. 너 무슨 원혐이 있관대 저 석수를 엄습하였느냐. 천리타향에 외로운 나그네를 보호는 못 할지언정 깊은 밤에 십여 명씩 오마작대하여 그를 해치려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금성은 제 머리 위에 번쩍이는 칼날을 치어다보며 소태나 먹은 듯이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왜 말이 없느냐. 너도 적이 생각이 있는 놈 같으면 잘못된 일인 줄 모르느냐."

금성은 무어라고 대꾸도 할 수 없고 무어라고 변명할 도리도 나서지 않았다. 다만 제가 끌고 온 '장안호걸'들이 원망스러웠다. 이날 이때까지 돈에 술에 밥에 흥껏 한껏 먹였거든 정작 자기가 위태한 경우를 당할 적에는 그대로 꽁무니를 빼고 말다니, 금성은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 굴렀으나 아무런 쓸데가 없었다. 주만과 아사달을 꼭 잡으려 한 노릇이 제가 도로 잡히고 말 줄이야.

"이놈이 벙어리가 되었느냐. 왜 말을 못 할꼬."

"잘못되었습니다. 그저 살려만 줍시사."

마침내 금성은 비대발괄하고 말았다.

"허허. 나는 금지의 아들이라기에 그래도 그 못된 가시라도 센 줄 알았더니 이런 겁쟁인 줄 몰랐구나. 오냐 살려 주마. 너 같은 인생을 죽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허허."

경신은 한번 껄껄 웃고 나서 빼어 들었던 칼을 칼집에 꽂았다.

칼을 꽂는 것을 보고 다 죽게 된 금성은 조금 피어났으나 너무 놀란 것이 아직 가라앉지를 못하고 새삼스럽게 부들부들 떤다.

고두쇠는 아사달을 끌러 주느라고 한창 곱이 끼이었다.

경신과 용돌은 금성을 내어버리고 아사달과 고두쇠의 앞으로 왔다.

"이놈 어째 입때도 다 끄르지 못했느냐."

용돌이가 허전거리는 고두쇠의 손길을 들여다보며 재촉하였다.

"매듭이 너무 단단히 매어져서 얼른 끌러지지를 않사와요."

"이놈 무슨 소리냐. 저리 비켜나서 관솔불이나 다려라."

"녜, 녜."

하고 고두쇠가 굽실거리는 허리를 채 펴지도 못하고 관솔불을 잡히고 있는데 용돌은 동여매인 이에게 달려들어 칼을 넣어 밧줄을 동강동강 끊어 버렸다.

"어 몹쓸 놈들, 단단히도 동여매었군."

경신은 제 수건으로 아사달의 입과 코에 묻은 피를 닦아 주고 나서,

"자, 일어서 보오. 어디 다른 데 다친 데나 없나."

아사달은 경신의 말을 따라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웬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 좀 걸어 보시오. 절리는 데나 없으신가."

경신은 비호같이 날뛰던 때와는 아주 딴판으로 여간 자상하지 않았다.

아사달은 몇 걸음 걸어 보고,

"다친 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어, 뜻밖에 큰 봉변이오."

하고 저만큼 엉거주춤하고 서 있는 금성을 돌아보며,

"금성아, 이리 와서 이분께도 잘못했다는 사과 말씀을 드려야 될 것 아니냐."

금성이가 채 오기 전에 고두쇠가 아사달의 앞에 넙죽이 엎드리며,

"그저 죽을 때라 잘못했습니다. 천만 용서하옵시기 바라옵니다."

"옳지 그래, 금성이 너도 네 종의 본을 받아 엎드려 빌어라."

"그저 소인이 서방님 몫까지 한꺼번에 사과를 올립니다."

"안 된다, 안 돼. 염불도 몫몫이란다, 허허."

경신이가 미처 말하기 전에 용돌이가 가로채고 나섰다.

금성은 할 수 없이 아사달의 앞에 꿇어 엎드리고야 말았다.

108[편집]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일어나라. 너도 소위 행세한다는 집 자식으로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앞으로는 행신을 조심하렷다."

경신은 아사달의 앞에 코가 땅에 닿도록 꿇어 엎드린 채 얼핏 일어나지도 못하는 금성을 준절히 타일렀다.

금성은 명령대로 부시시 일어는 났으나 오도 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박힌 듯이 서 있어 또 무슨 처분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경신은 용돌을 돌아보며,

"인제 가세. 신신치도 않은 일에 잠만 밑졌네그려, 허허."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휘적휘적 걸어간다.

"서방님, 서방님."

용돌은 떡 버티고 서서 금성의 주종을 노려보고 움직이지 않으며 경신을 불렀다.

그의 손에는 아까 아사달의 매인 것을 끊어 주던 칼이 아직도 시퍼렇게 번쩍였다.

"이놈들을 그대로 내버리고 갈 수 없습니다. 저 석수 아사달을 엄습할 때에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 터인데 그 곡절을 들어 봐야 될 것 아닙니까."

경신은 몇 걸음 걸어가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미상불 그것이 궁금하네마는 저희가 말을 하지 않는데 굳이 들을 필요가 있을까. 저희들도 사람인 다음에야 다시는 이런 행티는 못 부릴 것이니."

"서방님 말씀이 너그러우시기는 합니다마는 저것들을 보통 사람으로 대접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일에 무슨 앙심을 어떻게 먹고 또 저 고단한 석수를 괴롭게 할지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글쎄 자네 말도 그럴듯하네마는……."

"그러니 이놈들에게 아사달을 엿보는 곡절을 알아두어야 앞일을 헤아리기도 얼마쯤 도움이 될 것 아닙니까."

"그는 그래."

하고 경신은 다시 금성과 고두쇠의 앞으로 걸어왔다.

경신이 용돌을 보고 돌아가자는 말을 듣자 금성의 주종은 다시 살아난 듯이 안심의 숨길을 돌리었다가 형세가 다시 변해지는 것을 보고 진작 틈을 타서 달아나지 못한 것을 뉘우쳤다. 기실 용돌이가 칼을 거두지 않았으니 달아나려야 달아날 수도 없었지만.

"이놈 금성이 듣거라. 너도 지금 내 말을 들어 알았겠지만 너희들이 이 아사달을 습격한 곡절을 알리지 않으면 너희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 무슨 까닭이냐. 빨리 일러라."

"네, 저어……."

하고 금성은 어물어물하였다.

용돌은 칼을 한번 휘두르고 한 걸음 금성의 주종 앞으로 내달으며,

"바른 대로 알려야 망정이지 만일 그렇지 않으면 두 놈의 머리를 한 칼에 베어 후환을 없앨 터이다."

"에구구."

금성과 고두쇠는 일시에 비명을 치고 두 팔로 제각기 제 머리를 얼싸안았다.

"빨리 아뢰어라."

용돌의 호령은 갈수록 날카로웠다.

"녜, 아뢰겠습니다. 소인이 아는 대로 아뢰겠습니다."

하고 고두쇠가 금성을 보고 눈을 껌쩍껌쩍하며 수작을 건네었다. 제 주인에게 말을 할까말까 의향을 물어 보는 모양이었다. 금성은 되는 대로 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었다.

"그래도 어서 아뢰지를 못하고."

용돌은 또 한 걸음 다가들었다.

"녜, 녜, 아뢰고말곱시오…… 저어, 저어, 아가씨 한 분이 계시온데……."

아가씨란 의외의 고두쇠의 말에 용돌의 눈은 호기심에 번쩍이었다.

"아가씨 한 분? 그래 아가씨가 어떠했단 말이냐."

"그 아가씨로 말씀하오면 곧 저의 소인 댁 서방님과 혼인말이 있사온 아가씨온데……."

"그래서, 그래서."

용돌은 입에 침이 없이 채쳤다.

"그러하온데 그 아가씨께서 자주 이 불국사엘 오신단 말씀입시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저 석수가 지금 짓고 있는 석가탑에 출입이 잦으시단 말씀입시오. 오늘 밤만 해도 그 아가씨께서 적실히 저 석가탑 속에 계신 줄 아옵고 저희들이 우 몰려온 것이랍니다."

"그러면 그 아가씨란 이는 어디로 갔느냐."

"그러하온데 그게 이상야릇한 일이란 말씀입시오. 분명히 계신 줄 알았는데 정작 와보니까 계시지를 않단 말씀입시오. 이런 기막힐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그 아가씨의 이름은 누구란 말이냐."

용돌은 부리나케 물었다.

"그러면 계집싸움이던가."

경신은 시답지 않게 중얼거렸다.

109[편집]

금성 일파가 밤을 타서 아사달을 습격하였다가 경신과 용돌에게 혼뗌을 하고 쫓겨간 사단은 불국사 승려들 사이에 둘도 없는 화젯거리가 된 건 물론이거니와, 순식간에 온 서라벌에 쫘아 하고 퍼지었으나 그 진상이 올곧게 전해질 까닭은 없었다. 워낙 어두운 밤에 생긴 일이라 목도한 사람도 드물었거니와 직접 당사자로도 제가 관계한 어느 대목만 알았지 머리에서 끝까지 사단 전체를 샅샅이 아는 이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일어났으되 전하는 사람을 따라 가지각색으로 변형이 되고 윤색이 되어 마치 수없는 사단이 일시에 일어난 것 같기도 하였다.

우선 사단이 일어난 본바닥인 불국사 중들의 수근숙덕거리는 수작도 가지각색이었다.

"음충맞은 아사달놈이 어떤 유부녀를 꾀어 내어 석가탑 속에서 끼고 자빠졌다가 그 본 사내한테 꼭 들켰대. 그래 경을 팟다발같이 쳤다네."

"딴은 무슨 그런 꿍꿍이속이 있기에 삼 년을 내려두고 탑을 짓는다 합시고 늘어붙어 있었겠지."

"그래 그럴듯도 한 일이야. 그놈이 낮에는 일을 않고 밤에만 일을 한다는 것이 벌써 수상쩍은 일이 아닌가베."

"그래 그러면 그놈은 대관절 어떻게 되었나. 그 계집의 본 사내 손에 맞아 죽었겠지."

"그야 여불없을 것 아닌가. 그 본 사내란 것이 한다하는 대갓집 아들로 어젯밤만 해도 수십 명 구종을 거느리고 와서 요정을 내었다는데."

"그래 아사달이가 죽었단 말인가."

"그러면 죽지 않고."

"그러면 송장은 어떻게 했단 말인가."

"원 그 사람은, 죽은 송장 어떻게 처치한 걸 누가 다 안단 말인가. 연못에 띄워 버렸든지 불에 태워 버렸든지. 그까짓 것 하나 처치를 못 할 위인들이 아닌밤중에 들이쳤겠나."

이 축은 명색만 중이지 절 안 켯속을 도무지 모르고 까닭 없이 아사달을 미워하는 위인들의 수작이다.

"아사달이가 죽기는 왜 죽어. 눈이 등잔같이 살아 있다네. 지금이라도 제 처소를 가보게나. 아침 공양상을 받고 앉았을 테니."

이번 말참례에 뛰어든 위인은 또래는 같은 또래일망정 턱없이 아사달을 추앙하는 터이리라.

"그러면 아사달이가 죽지를 않았단 말인가. 제 혼잣손에 어떻게 수십 명을 대적을 해내었단 말인가."

"그게 법술이란 말이거든. 그 사람이 탑 짓는 것을 보게. 여간 재주를 가지고야 그런 대공을 맡아 볼 생의나 내겠나. 그이야말로 이만저만한 신통력을 가진 분이 아니란 말이어."

"허, 그래 자네는 그 사람이 신통력 부리는 걸 보았단 말인가."

"그럼 보지 않고. 여러 놈들이 서리 같은 칼을 들고 덤비는데 그분은 조그마한 마치 하나를 가지고 이리 막고 저리 치는 바람에 몰려오던 군정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단 말이어."

"무엇이 우수수 떨어졌단 말인가."

"무엇이 뭐야, 무엇이 뭐야……."

아사달을 너무 추어올리다가 제 허풍이 너무 지나쳐서 필경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런 허풍쟁이는 생후 처음 보겠네. 그래 우수수 떨어진 게 뭐란 말인가. 사람의 머리가 떨어졌다면 피라도 흘렀을 것 아닌가, 에끼, 허허."

말막음은 필경 웃음으로 터지고 풍쟁이는 멀쑥해졌다. 정말 그날 밤 광경을 먼빛으로 본 중 하나를 돌라싸고 앉은 또 다른 한 축.

"그런 게 아니라네. 보기는 내가 적실히 보았다네."

"뭐 자네가 보았다. 자네 같은 잠충이가 그때가 어느 때인데 잠 안 자고 보았단 말인가."

"아닐세. 보기는 내가 정말 보았네. 마침 잠이 깨어서 염불을 모시고 있노라니 석가탑 근처에서 수선수선 인기척이 나기에 슬슬 올라가 보았더니 서리 같은 칼들을 빼들고 '년놈 바삐 나오라'고 소리들을 지르지 않겠나."

"년놈 바삐 나오라고, 옳지 옳아, 그래서."

"거물거물 관솔빛이 비치는데 아사달을 붙들어 내리우는 것까지 보았는데 어디선지 난데없는 호통이 일어나며 웬 신장 두 분이 나타난단 말이야."

"신장이?"

"그럼, 신장이 아니고야 단둘이서 어떻게 그 여럿을 해낸단 말인가. 두 신장이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여럿은 혼비백산이 되어 쥐구멍을 찾고 다 달아나 버렸다네. 신장의 칼이 아니고는 목도 여러 개 떨어졌을 터인데 사람은 상하지 않고 뭇놈을 쫓아 버린 것만 보아도 알조 아닌가."

"딴은 그렇기도 한데."

"그 탑 밑에 보물이 여간 많이 들었나. 신장이 아니라 부처님이 신통력을 부리신 게지."

"그게 신장이 아니라 금강역사라는 거야."

"아무튼 이상은 한 노릇이야."

실상인즉 그 야단통에 한둘 깨어 나와 본 중이 없지도 않았으나 칼날이 번쩍거리는 바람에 무서워서 가까이는 못 가고 먼발치에서나마 구경이라도 한 축은 그래도 대담한 편이고 대개는 그대로 제 방구석에 달려들어가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웃두리중은 밤이면 대개 제 사삿처소로 달아나고 절에 있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그 뒤부터는 절문 단속이 엄해지고 드나드는 잡인을 사실하게 되었다. 더구나 아사달을 찾아왔다는 사람을 절금하게 되었다.

그 사흘 되던 날 저녁때쯤 되어 웬 여자 거지 하나가 절문 앞에 나타났다.

110[편집]

그 여자 거지는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절문 앞까지는 가까스로 왔으나, 다시는 댓 자국도 더 옮길 수 없다는 듯이 대문 기둥을 부여잡고 간신히 몸을 의지하였다.

켜켜이 앉은 때와 흙물이 군데군데 묻고 짓수세미가 다된 옷으로 보아 땅바닥에나 아무 데나 문자 그대로 풍찬노숙한 것을 대번에 짐작할 수가 있었으나, 벌의 집같이 흩어질 대로 흩어진 머리, 때가 줄줄이 붙은 뺨을 보면 홑으로 거지만도 아니요, 미친 여자 같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결곡하게 생긴 그 얼굴 모양과 맑고도 다정스러운 눈매에 어디인지 기품이 있어 보이는 것이 수수께끼였다.

몇 해를 문을 지키어 열인을 많이 한 탓에 웬만한 사람이면 한번 보아, 그 지위와 인금까지 알아맞춘다는 문지기로도 이 여자 거지만은 대중이 나서지 않았다.

문지기는 이윽히 그 여자 거지를 치훑고 내리훑어 보다가,

"무슨 일로 이 절을 찾아왔소."

하고 물었다. 웬간만 하면 떨어지게 해라를 붙이고, 호령호령해서 쫓아 버릴 것이로되, 어쩐지 이 여자 거지에게는 함부로 못 할 인품이 있어 보였던 것이다.

"여기가 분명 불국사입지요."

말 한마디 대답에도 지쳤다는 듯이 기신이 없었으나, 그 목소리는 카랑카랑하면서도 보드라웠다.

"그렇소. 여기가 서라벌 제일 대찰 불국사가 분명하오."

"네, 여기가 분명 불국사……."

하고 그 여자 거지는 반색을 하며 호 한숨을 내쉬었다.

애를 애를 쓰다가 마침내 목적지에 득달한 안심의 숨길을 내뿜는 것 같다. 그러고 또 한마디,

"그러면 옳게 찾아왔구먼."

하고 스스로 중얼거렸다.

문지기는 더욱 수상해하며,

"아주먼네는 어디서 오는 길이오."

"부여에서 온답니다."

"부여에서! 먼 길을 오셨군. 무슨 소관이 있어 불국사를 찾으시오."

그 여자 거지는 고개를 숙여 무엇을 생각하는 듯 잠깐 망설이다가,

"이 절에 부여에서 온 석수가 있습지요. 아사달이라고."

그 여자 거지는 아사달이란 이름을 입길에 올리는 순간 살짝 얼굴을 붉히었다.

"있지요. 석가탑을 맡아 짓는 석수 말이오."

"그 어른을 뵈려고 온 길입니다."

엊그저께 밤에 아사달로 말미암아 심상치 않은 야료가 절 안에 일어나서 그 때문에 잡인을 금하게 되고, 밤중에 함부로 사람을 들이었다고 주지와 주장중으로부터 톡톡히 꾸중도 듣고 혼도 났던 판이라 문지기는 아사달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사가 와락 났다.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보자는 거요."

하고 문지기는 오래 동안 출입하는 사람을 적간하는 사이에 사나워진 눈알을 굴려 그 여자 거지를 노려보며, 말씨까지 까슬까슬해졌다.

"그 어른이 제 남편이에요. 그 어른을 뵈오려고 그 먼 길을 걸어왔답니다."

그 여자 거지는 문지기의 태도가 별안간 변해지는 것을 보고 바른 대로 쏘며 자기의 사정까지 약간 내비추었다.

"안 되오. 그 석수는 지금 볼 수 없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찾아왔담. 절간에 아무 여편네나 함부로 들이는 줄 아나 봐."

그 여자 거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듯 물끄러미 성난 문지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러면 저는 여자의 더러운 몸이라 이 절문을 들어서지는 못할 망정, 그 아사달님께 잠깐 나오시라면 어떠하실지."

"그것도 안 되오! 그 사람은 삼 년을 끌고도 아직도 마칠 일을 마쳐 놓지도 못했는데, 그런 막중대공을 맡은 몸으로 한만히 제 계집을 만나 보다니 될 뻔이나 할 일인가, 원."

하고 문지기는 볼멘소리로 뇌까리었다.

"원, 문지기 십 년에 별꼴을 다 보거든. 그 더러운 옷을 입고 얼굴도 몇 날 몇 달을 안 씻은 계집이 내 서방 찾아왔네 합시고 절 문간에 발목을 들여놓다니. 참 말세가 되어 놓으니 별별 더러운 꼴을 다 본단 말이거든."

문기둥에 붙어 섰던 그 여자 거지는 별안간 벼락이 뒷덜미를 내리짚는 듯 그대로 미끄러져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면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요."

이윽고 그 여자 거지는 가까스로 진정을 하는 듯하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로 또 한마디를 속살거렸다.

"어떡하면 좋을 걸 내가 어떻게 아랑곳한단 말인가, 원."

문지기는 갈수록 몰풍스러웠다.

그 여자 거지야말로 묻지 않아 아사녀였다.

111[편집]

아사녀는 사자수 푸른 물결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아사달의 이름을 부르짖고 나선 길에 서라벌을 향하였다.

남편이 있는 동쪽 서울을 멀리 바라보고 첫 발자국을 내어디딜 때 지금까지의 절망과 번민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감격과 희망에 그의 마음은 뛰었다. 노자 한푼 없는 외로운 여자의 홀홀단신으로 천리 안팎 머나먼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근심과 걱정도 그의 불 같은 희망을 흐리진 못하였다. 한 걸음 두 걸음 남편 있는 곳이 가까워 온다는 것만 어떻게 신통하고 고마운지 몰랐다.

하룻밤 하룻낮을 그는 꼬박이 걸었다. 한 걸음이라도 빨리 걷는 것이 남편 만날 때를 다가주는 것임을 생각하면 좀이 쏠아서도 한만히 쉴 수도 없거니와, 팽개 일파가 자기 뒤를 쫓아오는지도 모른다. 만일 머뭇머뭇하다가 그들에게 붙잡히는 날이면 또 무슨 욕을 어떻게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서라벌로 어서 가자! 불국사로 어서 가자!

그는 염불이나 외듯 하루에도 몇백 번 몇천 번을 '서라벌' '불국사' 하고 속으로 외고 또 외며 아픈 다리를 채찍질하였다.

그러나 사흘, 나흘 지나갈수록 젊은 여자의 먼 길 걷기란 죽기보다 더 어려운 줄 절절이 느끼었다.

갖은 슬픔과 번민과 근심에 부대끼고 쪼들리고, 마지막엔 병에까지 지친 몸이라 아픈 다리도 다리요 부르튼 발도 발이려니와, 첫째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발을 옮기다가 쓰러지고 두 발을 떼어놓다가 고꾸라졌다.

반 나절 한 나절 넘어진 채로 갱신을 못 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까무러쳐 가는 기운을 모진 마음으로 얼마든지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지닌 것이 없으매 어엿한 주막은 못 들 값에 노자 없는 것은 그의 처음 요량보다는 오히려 큰 고통이 아니었다. 물 한 모금 밥 한 술이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탓도 탓이려니와, 처음에는 입 떼기가 어려웠을망정 요기할 거리를 얻기는 그렇게 힘들지 아니하였다.

먹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잠자리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서서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면 더러는 몰인정하게 거절하는 집도 없지 않았으되, 세 집 중에 한 집은 선선히 승낙을 해주기는 해주었다.

"젊으나젊은 이가 어떻게 홀몸으로 길을 떠났소. 아무리 남편이 보고 싶기로 어떻게 그 먼 길을 간단 말이오."

늙은 아낙네 중에는 그의 사정을 들어 보고 측은한 눈물을 떨어뜨리며 반찬 있는 밥을 주고, 일부러 자는 방에 불까지 더 지펴 주는 이도 있었다. 겨우 칠월로 접어들었으니 추울 철도 아니지만, 노독을 푸는 데는 더운 방이 반갑지 않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친절이 값없을 때가 많지를 않았다.

전신만신이 바수어 내는 듯하여 채 깊은 잠은 이루지 못하고 어릿어릿하게 눈이 감길락말락할 적에 찌걱 하고 방문 여는 소리가 들리었다. 언뜩 눈을 떠보면 사내의 그림자가 나타나기가 일쑤이었다.

악을 쓰고, 달아나고…….

팽개와 작지는 부여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젊고 예쁜 여자의 살점을 노리는 아귀의 떼는 어디든지 우글우글 끓었다. 그 지긋지긋한 놀람과 고통은 끝끝내 그를 쫓아다니었다.

아사녀는 인제 밤이 되어도 인가에 찾아들지 않았다. 밤은커녕 해가 어둑만 해져도 산모퉁이로만 길을 잡아들어야만 한다.

산등 벗겨진 황토흙 바닥이나, 운수가 좋아야 포근포근한 잔디밭을 얻어 하룻밤을 밝히게 되었다.

호랑이나 이리의 떼보다도 사람이 몇 곱절 더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니 가뜩이 때묻은 단벌 옷이 이슬에 젖고 풀물이 묻고 흙물이 들어서 갈 데 없는 상거지가 되고 말았다.

가다오다 맑은 시내를 만나도 손으로 움켜 한 모금 해갈은 할지언정 결코 손등도 씻지 않았다. 더구나 얼굴에는 물 한 추기를 올려 보지도 않았다. 될 수 있는 대로 얼굴을 보기 싫도록 흉하도록 하는 것이 이 흉측한 아귀떼의 눈을 피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인 줄 터득한 것이다.

머리가 아무리 흩어지고 가려워도 손을 대지 않았다. 머리만 반지르르해도 그들의 눈에 뜨일까 보아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보니 저절로 미친년 꼴이 되었다.

이러구러 하루에 십 리 이십 리도 걷고 어떤 날은 사오십 리도 해내어 불국사까지 득달하기에 달포가 걸리었다.

112[편집]

세상없어도 남편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외곬의 마음이 하마하마 끊어질 듯한 목숨을 이끌고 근근 득달한 불국사가 아니었던가.

불국사, 불국사! 그는 몇 번이나 외고 또 외었던고. 그에게는 검님보다도 부처님보다도 더 거룩하고 더 반가운 이름이 아니었던가.

"여기가 분명 불국사요?"

하는 한마디는 마치 영검스러운 주문과 같이 그의 이날 이때까지의 액운과 슬픔과 설움을 쫓아 버리고 넘치는 기쁨과 영롱한 행복을 약속하는 말이 아니었던가.

이렇듯이 믿고 바랐던 이 문전에서 또 악착한 운명이 그를 기다릴 줄이야. 무참한 거절을 당할 줄이야.

아사녀는 하도 어안이 벙벙하여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문지기는 더욱 기고만장하게 호령하였다.

"아니, 이건 무슨 떼거리를 쓰는 거야. 남의 절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서. 냉큼 갈 데로 가지를 못하고."

"갈 데, 갈 데."

아사녀는 앵무새가 말 옮기듯 두어 번 곱씹다가,

"갈 데가 없어요."

하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어 보이었다.

"이건 제 갈 데 있고 없는 것을 뉘게 하소연이야. 냉큼 발모가지나 돌려 세우지 못해."

"……"

아사녀는 대꾸는커녕 대번에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비록 귀하고 넉넉지는 못했을지언정 무남독녀 외동딸로 고이고이 자라나서, 입때껏 외간 남자에게 이런 욕설은 처음 듣기 때문이다.

"저더러 가랬지 누가 쥐어질렀단 말인가, 울기는 왜 쪽쪽 운단 말인고. 원, 신수가 사나우려니까."

하고 얼굴을 외우시고 돌아서서 뒷짐을 지고 왔다갔다하는 것은 차마 그 우는 꼴까지는 보기 안된 탓이리라.

한번 쏟아진 눈물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원 저게 무슨 꼴이람. 젊으나젊은 여편네가 왜 남의 절 문전에서 말썽을 부리는 거야."

문지기는 말로는 빈정거려도 아사녀의 눈물만은 무서운지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아사녀는 흑흑 느끼는 소리로,

"여봅시오, 여봅시오. 정 제가 들어가서 아사달님을 뵈올 수도 없고, 또 아사달님이 저를 나와 보실 수도 없다면…… 그러하다면 저는…… 저는……."

말끝은 껄꺽거리는 울음에 막히고 말았다.

"그러하다면 어떡한단 말이오. 원 말을 해야 알 것 아니오."

문지기의 빗새는 말씨도 얼마쯤은 부드러워졌다. 아사달 미운 생각에, 그보다도 책망 들은 것이 분한 김에 얼음장같이 닫혀진 그의 가슴에도 실낱 같은 동정심이 움직이지 않음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제 맡은 직책상 아사녀의 소청을 들어 주자는 수도 없다.

'구슬아기 모양으로 은이나 몇 냥쭝 넌지시 집어 준다면 마치 모르지만.'

문지기는 털이를 통하여 여러 번 주만으로부터 은과 돈을 받아먹은 것을 속으로 따져 보고, 슬쩍 아사녀의 차림차림을 또 한번 훑어보았다.

꼴이 저 꼴이니 돈 한푼 지니고 있을 성싶지도 않았다.

생기는 것 없고 말썽만스러운 이런 손님은 어서 떼어 버리는 게 상책이다. 이런 판에 슬쩍 저편의 비위를 맞춰 주면 곧잘 말을 듣는 수도 있지만, 섣불리 사정을 보는 척했다가 저편에서 다시 돌아내리는 날엔 더욱 떼치기 어려운 위험이 있다.

아사녀의 느끼는 소리는 뒤를 이었다.

"정 그도 저도 못 하신다면 저는 죽는 수밖에 다시 두수가 없어요."

'아차, 큰일났구나. 이 계집에게는 조금치라도 사정을 보는 척하면 정말 죽는다고 발버둥을 치겠구나. 제야 무에라 하든 그대로 내버려둘걸. 괜히 말참견을 하였거든.'

문지기는 제 목소리 가운데 가장 몰풍스럽고 쌀쌀하고 엇먹는 소리를 골라 내었다.

"죽는다, 어 참 무서운데. 죽거나 뒈지거나 할 대로 하지. 누가 말릴 줄 아는 거야. 죽어 저승에 가서 혼이나 서방을 찾아다니지."

과연 이 말은 영절스럽게 효과가 나타났다. 첫째로 그 여자 거지의 몸이 찬물을 끼얹은 듯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맑은 눈동자에는 금세 눈물이 마른 듯 반짝 하고 반딧불이 이는 듯하였다.

그러나 문기둥을 부여잡고 비슬비슬 일어선다.

'옳거니 그러면 그렇지. 내님의 호통에 아니 쫓겨갈 장사가 있나. 인제는 저도 할 수 없는 줄 알고 돌아서려나 부다.'

속으로 생각하고 문지기는 더욱 기가 나서,

"원 누가 죽는다면 설설 길 줄 아는 거야. 그까짓 목숨이야 열이 없어진들 내게 하상대사냐 말이야."

하고 눈을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부릅떠서 아사녀를 부라리었다.

아사녀는 하도 억색하여 제 흉중에 먹은 대로 바로 쏘아본 것이 이토록 이 문지기를 노엽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13[편집]

아무리 사나운 언사와 표독한 태도로 으르딱딱거리고 훌뿌려도 그대로 물러서려야 물러설 수 없는 아사녀의 처지였다.

가까스로 몸을 가누고 일어선 아사녀는 조용히 눈을 들어 날뛰는 문지기를 바라보았다.

"여보세요. 제가 죽더라도 여기서는 죽지 않을 테니 그런 염려는 놓으시고……."

"바로 그렇다면 몰라도."

문지기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티를 넣었으나 고개는 역시 뒤로 잔뜩 제치었다. 자기를 쏘아 오는 그 맥맥한 눈길을 마주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염렬랑 마시고 제 청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그건 또 무슨 청이란 말이오."

문지기는 얼굴을 외우신 채로 말투는 역시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욕설만은 빼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첫째 아사달님이 몸 성히 잘 계시온지."

"사대육신이 튼튼하다오."

"식사나 잘 하시는지."

"고량진미에 파묻히어 발기름이 올랐다오."

"그러면 그 어른께 전갈 한마디만 전해 주세요. 부여땅에서 아사녀가 왔더라고."

"그건 그 말이 그 말 아니오? 안 되오, 안 돼!"

"아니 오늘로 서로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사녀가 찾아왔더라는 말이나마 전해 달란 말씀예요."

"안 되오, 안 돼. 그러면 젊은 사람이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그런 대공을 반둥건둥 해버릴 것 아니오?"

아사녀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 한동안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러면 그 탑이 다 이뤄진 다음에 그 말씀을 전해 주시면 어떠하실지."

"그것도 안 되오, 안 돼. 바쁜 사람이 누가 그걸 다 명념을 하고 있단 말이오."

하고 문지기는 외우신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었다. 그 청쯤은 들어주어도 좋으련만 버티는 김에 그대로 내버티고 만 것이다.

"그것도 못 하신다면…… 그러면 대체 그 탑이 언제나 끝이 날까요."

"언제 끝날지 누가 안단 말이오."

하고 문지기는 또 내어밀다가 오래 실랑이를 하는 것도 귀찮아서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아마 쉬이 끝이 나기는 날 거야. 삼 년이나 걸렸으니."

아사녀는 절망의 한 그믐밤 가운데 한 가닥 광명을 얻은 듯.

"그럼 그 탑이 끝나면 제가 다시 와도 괜찮을 것 아녜요?"

"그야 그렇지만……."

"그러면 날마다라도 오지요."

"안 되오, 안 돼."

문지기는 펄펄 뛰었다. 이런 성가신 손님이 매일 와서야 배길 노릇인가.

"오늘만 해도 처음 왔기에 망정이지, 두 번만 왔더래도 벌써 십 리 밖으로 끌어내치는 거란 말이야. 여자의 더러운 몸이란 멀리 비치기만 해도 부정을 타는 거요. 그 탑이 꼭 다 된 것을 보고 오란 말이오."

아사녀도 악이 아니 날 수 없었다.

"제가 어디서 그 탑이 다 되고 안 된 것을 보고 온단 말씀예요. 온, 그 탑 그림자라도 보아야 알 것 아녜요."

"그림자라도 보아야……."

하고 문지기는 말책을 잡았으나, 아무리 언변 좋은 그로도 여기는 말이 막히었던지,

"그림자, 흥, 그림자……."

하며 몇 번을 곱삶다가 문득,

"오 옳지, 되었다, 되어."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자기 깐에는 신기한 생각이 언뜻 떠오른 모양이었다.

"여보, 아주먼네, 그러면 좋은 수가 있소. 여기서 훤하게 내다보이는 저 길이 있지 않소?"

하고 아주 친절스럽게 아사녀에게 언덕배기 한복판으로 뚫린 흰길을 가리켜 보였다.

"저 길로 자꾸만 내려간단 말이오. 한 십 리만 가면 거기 그림자못〔影池〕이란 어마어마하게 큰 못이 있소. 그 못에는 이 세상에 어느 물건치고 아니 비치는 게 없단 말이오. 지금 아사달이가 짓는 석가탑 그림자도 뚜렷이 비칠 거란 말이거든. 자 그 연못에 가서 기다려 보오."

하고 어떠냐 하는 듯이 문지기는 배를 쑥 내어밀며 아사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생판으로 거짓말은 아니었다. 과연 거기는 둘레가 십 리에 가까운 크나큰 못이 있고, 물이 거울같이 맑아서 모든 그림자가 잘 비친다 하여 그림자못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당장 가보아도 그 탑 그림자가 비칠까요?"

아사녀는 기연가미연가하여 또 한마디 재차 물었다.

"암, 여부가 있소.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한단 말이오?"

문지기는 또다시 볼멘소리를 내었다.

아사녀는 선뜻 돌아섰다. 정녕 그렇다면 제 남편이 짓는 탑의 그림자라도 보기가 한시가 급하였던 것이다.

아사녀가 새로운 기운을 얻어 허전허전 몇 걸음 걸어가는 것을 보고 문지기는 무슨 생각이 또 났던지, 등뒤에서 "여보, 여보" 하고 다시 불렀다.

아사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런데 그 못은 참으로 영검스러워서 다 된 물건의 그림자는 비치어도 덜 된 것은 비치지 않는다오. 그 탑도 그림자가 나타나야 다 된 것이지, 그림자가 비치지 않거든 아직 덜 된 줄로 아오."

114[편집]

주만의 점심상을 물려 가지고 하인청에 갔던 털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구는 듯 들어왔다.

"아가씨, 아가씨, 크, 큰일났는뎁시오."

"무슨 큰일?"

주만도 마음에 키이는 것이 있는 판이라 깜짝 놀랐다.

"그저께 밤에 불국사에 큰 야료가 생겼다는뎁시오."

"응!"

"그날 저녁에 아가씨께서 돌아서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던들 큰 봉변을 당할 뻔한걸입시오."

"암만해도 그 등불이 수상쩍더니 그예 무슨 일을 내었구나. 그래 무슨 야료가 어떻게 생겼다더냐."

주만은 초조한 듯이 채쳐 물었다. 저번 밤 석가탑 사다리를 내려설 때 맞닥뜨린 사람의 그림자가 종시 마음에 키이고 꺼림칙한데다가, 그날 저녁에 또다시 그 수상한 등불을 보고 나니 섬뜩한 생각이 들어서 걸음이 내켜지지 않았었다. 더구나 겁쟁이 털이가 조바심을 하고 회정하기를 조른 탓에, 그 등불이 멀리 사라진 뒤 말머리를 돌려 집으로 돌아와 버렸던 것이다.

"그날 저녁 쇤네가 그렇게 아가씨를 조르지 않았던들 어느 지경에 갔을지 지금 생각해도 오마조마한뎁시오."

아무리 황급한 판에도 털이는 제 공치사를 잊지 않았다.

"그 잘난 공치사는 고만두고 어서 그 얘기나 해라. 갑갑하구나."

"그러니까 쇤네가 아가씨를 모시고 막 돌아온 뒨갑시오. 수십 명이나 되는 군정이 석가탑을 에워싸고 아사달 서방님을 마구잡이로 끌어내렸다납시오."

"뭐? 아사달님을 석가탑에서 끌어내렸단 말이지."

"그래 가지고 뭇놈이 달려들어 발길질 손찌검을 함부로 했다납시오."

"무슨 까닭일까. 그 어른이 남에게 원한 살 일도 없으실 테고."

"그게 큰일이라 말입시오. 그놈들이 아사달 서방님을 치고 때리며 '계집은 어디로 갔느냐, 이놈 계집은 어따가 숨겼느냐' 소리소리 지르더라니……."

"뭣이 어째!"

주만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리었다.

"그러니 그놈들이 분명 아가씨를 욕보이려고 들이친 것이 아닙시오."

"그래 내 이름을 부르며 찾더라더냐."

"아닙시오. 그건 우스운 거짓말이 퍼졌던뎁시오."

"우스운 거짓말?"

"뭐 아사달님이 유부녀를 꾀내어 석가탑 속으로 끌어들였다납시오. 그래 그 본 사내가 그걸 알고 제 집 구종을 몰아 가지고 들이친 게라납시오."

하고 털이는 입을 배쭉 하며 웃어 보이었다. 주만은 웃을 경황도 없었다.

"그래 아사달님은 어떻게 되셨다더냐."

주만은 무엇보다도 이것이 제일 궁금하였다.

"몹시 다치지나 않으셨다더냐."

"그게 또 이상한 일이란 말입시오. 그놈들이 한창 아사달님을 윽박지르는 판인데, 난데없는 신장 두 분이 나타나서 서리 같은 칼을 휘둘러서 여러 놈을 다 쫓아 버리고 아사달 서방님을 옹위하였납시오. 그래서 아사달 서방님은 손가락 하나 다치신 데가 없으시대요."

"그렇다면 만행이지만 어째 아니 다치실 수가 있겠느냐."

"아니랍시오. 쇤네도 첫째 그 서방님 다치고 아니 다치신 게 궁금해서 여러 번 따져 보았는뎁시오. 워낙 도술이 높으신 어른이라 신장을 마음대로 부리시는 터이니 조금이라도 상하실 리 없다고들 하던뎁시오."

"그게 어디 종잡을 수 있는 소리냐."

"아니랍시오. 아무튼 그 이튿날도 탑을 지으시는 정소리가 더 우렁차게 절 안을 울렸다는뎁시오."

"바로 그 이튿날로 다시 일을 잡으셨단 말이냐. 그러면 크게 상하시지는 않으셨던가."

하고 주만은 눈을 멍하게 떠서 천장을 치어다보았다. 그의 넋은 벌써 석가탑 안으로 헤매고 있음이리라.

"대관절 어느 놈들이 그렇게 들이쳤을깝시오."

하고 털이는 주만을 바라보았다.

"쇤네는 유두 전날 불국사 가시는 길에 고두쇠란 놈을 만나신 것이 암만해도 불길한 것 같은뎁시오. 그럴싸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날 저녁 등불을 들고 달아난 녀석도 그 키꼴 하며, 걸음걸이 하며 천연 고두쇠놈 비슷한 생각이 드는뎁시오."

주만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야 못난이 금성이 장난이 분명하지마는, 나는 그 신장 두 분이 누구신지 궁금하구나."

"그건 신장이라는데 누구신지를 어떻게 안단 말씀입시오. 바로 그날 밤에 목도한 중의 얘기라는뎁시오. 신장이 아니고는 칼을 그렇게 잘 쓸 수도 없고, 또 사람을 하나도 다치지 않았으니 신장의 소위가 아니냐 하던뎁시오."

"신라에 아직 사람이 있구나."

하고 주만은 혼자말같이 중얼거리고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115[편집]

주만은 바늘방석에나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하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사달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자기 때문이 아니었던들 그런 곤욕을 당할 까닭이 만무한 노릇이 아니냐. 차라리 그런 줄 알았으면 그날 밤에 회정을 말 것을. 아무리 기막힌 망신이라도 같이 겪을 것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이의 앞에 막아설 것을!

새록새록이 살이 떨리기는 금성의 행동이었다. 저와 나와 무슨 업원이 그대도록 맺히었던고. 한번 그만한 창피를 보았으면 으레 단념을 할 것이거늘, 끝끝내 남의 뒤를 밟고 안타까운 사랑에까지 헤살을 놓으려는 것은 그 무슨 못된 심청인고. 분한 대로 할 것 같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필마단도로 저의 집에 지쳐 들어가, 그 구축축하고 더러운 생각이 도는 머리를 뎅겅 베어 버려도 시원치 않을 것 같다.

"애규, 아가씨, 무슨 눈을 그렇게 무섭게 뜨십시오."

앞에 앉았던 털이는 질색을 하였다.

"금성이 소위가 분해서 견딜 수 없구나."

주만은 쓴웃음을 웃고 꼿꼿이 세운 눈썹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누이었다.

"아무리 분하신들 어쩌자는 수가 있어얍지요."

"그도 그렇다마는……."

"쇤네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더 걱정되는 일이 있는뎁시오. 금성 서방님이……."

"금성 서방님이 다 뭐냐. 금성이라고 마구 불러라. 그런 위인을 위해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구나."

"그럼 금성이갑시오. 아사달 서방님과 아가씨가 그렇구 저렇다는 소문이나 퍼뜨리지 않을깝시오."

"소문쯤 퍼뜨리는 거야 하상대사냐."

"저희들이 들이쳐 보아도 알마침 아가씨께서 계시지를 않으셨으니까 말썽을 부릴래야 부릴 건덕지가 없지마는 얼마 동안 불국사 행차는 정침을 하셔야 될걸입시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구나. 아사달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해 어디 견딜 수 있느냐."

"안 됩니다, 안 되고말곱시오. 단 며칠이라도 지나서 그 소문이나마 쑥진 뒤면 몰라도 지금 만약 행차를 하셨다가 혹시 중의 눈에나 띄어 보십시오. 당장에 해괴한 소문이 퍼질 것 아닙시오. 그 유부녀라는 게 아가씨로 지목이 될 것 아닙시오."

"딴은 네 말도 그럴듯하다마는 어디 궁금해서 견딜 수 있느냐. 그럼 너 혼자라도 잠깐 다녀올 수 없느냐."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쇤네가 가도 유표하게 보일 것은 마찬가지 아닙시오. 더구나 아가씨를 안 모시고야 그 어두운 밤길을 어떻게 갈 수 있어얍지요."

털이는 그 동그란 눈을 더욱 호동그랗게 떠서 무서움에 떠는 시늉을 해보이었다.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주만의 생각은 석가탑으로 살같이 닿건마는 털이가 종시 말을 아니 듣고 말리기도 하였거니와, 더구나 사초부인이 혼인 옷마름질을 조용한 별당으로 가져와서 밤늦도록 하기 때문에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하루는 저녁 나절 주만은 털이를 보고 간청하다시피 하였다.

"얘 암만해도 궁금해서 견딜 수 없구나. 오늘은 세상없어도 좀 가봐야겠다."

"글녓시오."

하고 오늘따라 털이는 굳이 말리지를 않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글쎄가 뭐냐. 가면 꼭 가야지."

주만은 일부러 화증을 더럭 내었다.

"벌써 여러 날이 되었으니 혹시 올까 하곱시오."

하면서 털이는 고개를 탁 숙이었다.

"오기는 누가 온단 말이냐. 아사달님이 온단 말이냐?"

"아닙시오, 저어……."

웬일인지 털이는 숙인 목덜미가 발그스름해진다.

주만은 수상쩍다는 듯이 털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려니까 털이는 더욱더욱 고개를 외우시는데, 그 뺨 언저리가 꽃불을 담아 부은 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하였다.

"누가 온단 말이냐. 말을 해야 알 것 아니냐."

주만은 더욱 괴이쩍어하며 또 한번 채쳐 물었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매정스러울깝시오. 벌써 여러 날이 되어 쇤네는 이렇게 보고 싶은데……."

하고 털이는 아주 얼굴을 뒤로 돌려 버린다.

"누가 매정하단 말이냐."

주만은 다시 채쳐 묻다가,

"오, 옳지, 차돌이 말이로구나."

스스로 깨우치고 오래간만에 얼굴을 펴고 웃었다.

"우리는 못 갈 사정이 있어 못 가나마 저는 어연듯이 와볼 수 있을 것 아닌갑시오. 그런데 당초에 올 생각도 않으니 그런 매몰한……."

"호호, 딴은 차돌이가 왔으면 얼마쯤 궁금한 생각이 풀리기도 하겠다마는……."

주종이 이런 수작을 주고받을 때에 별당문을 가만가만히 뚜드리는 소리가 났다.

116[편집]

"누가 문을 뚜드리는 것 같구나."

털이와 허튼소리를 주고받으나마, 찢어질 듯이 긴장한 주만의 신경은 그윽한 소리라도 귓결에 울려 왔던 것이다.

털이도 귀를 기울이며,

"글녓시오, 그 문을 뚜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하고 의아해한다.

별당문이란 바로 뒷길로 통한 것이므로 한 달에 몇 번씩 쓰레기를 쳐낼 적에나 쓰는 문이요, 별로 사람이 통행하는 문은 아니었다. 이마적해서는 주만이가 집안 사람 몰래 불국사 출입에 가끔 쓰기는 하였지만.

"그 문으로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혹시나……."

주만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혹시나 아사달님 신변에 또 무슨 일이 생겨서……."

"글녓시오, 쇤네가 한번 차돌이더러 별당을 찾으려거든 이러저러한 골목으로 들어와 뒷길로 통한 중문을 넌지시 뚜드려 보라고는 일러 주었습지요만."

"그럼 차돌인지도 모르겠구나. 얼핏 나가서 문을 열어 보려무나."

"차돌이가 아니고 딴사람이면 어떡해요."

"아직 햇구멍도 막히지 않았는데 설마 무슨 다른 변이야 생기겠니."

털이는 용기를 내어 바시시 몸을 일으켜 나갔다. 뜰 위에 짤짤 신 끄는 소리가 나고 중문이 덜컹 하고 열리자마자, 털이는 뎅겁을 하고 뒤짚어 뛰어들어오며 숨찬 소리로,

"아가씨, 아가씨!"

하고 연거푸 불렀다.

주만도 몸을 소스라쳐 방에서 급히 마주 나오며,

"왜? 또 무슨 일이 생겼느냐."

하고 채쳐 물었다. 털이는 가뜩이나 달라붙은 목을 자라처럼 더 옴츠려 붙이고, 새빨개진 얼굴을 바로 들지를 못한 값에 그 촉 쳐진 뺨이 벙글벙글 피어나는 꽃과 같다.

"왜 그러느냐. 방정맞게."

"저, 차돌이가 왔는뎁시오."

"응, 차돌이가 왔어! 범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만. 왜 얼른 들어오라지를 않니."

"……"

그 재재거리던 털이도 입을 닫히고 몸둘 곳을 모르는 듯 고개만 가볍게 도리질을 한다.

"인제 새삼스럽게 무에 그리 부끄러우냐. 난 네가 너무 방정을 떠는 바람에 또 가슴이 덜석 내려앉았구나, 호호."

주만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나서,

"어서 들어오라고 하려무나."

"싫어요, 쇤네는 싫어요."

하고 그대로 섬돌에 올라서더니 나는 듯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 한구석에 고개를 처박고 숨어 버린다. 마치 꿩이 제 대가리만 숨기는 격으로.

"원, 그 애는, 호호."

털이의 하는 꼴이 하도 우스워서 톡톡히 나무랄 수도 없었다.

주만이가 댓돌을 막 내려서려고 할 때에 차돌은 조용조용히 뜰 안까지 들어와 주만의 앞에 합장배례하였다.

주만은 다시 마루로 올라오며,

"오 차돌이냐, 너 참 잘 왔구나. 어서 올라오려무나."

차돌의 두 뺨도 꽃물을 들인 듯하다. 열다섯 살로는 숙성한 편이었으나 그 여상진 얼굴은 어리디어려 보이었다.

'저것들도 벌써 사랑을 아는구나.'

하매 주만이 저는 제법 노성한 듯이 자깝스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도 그들의 사랑은 우리보다 얼마나 더 수월하고 자유로운지 모른다.'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였다.

차돌이가 몇 번 멈칫멈칫하다가 웃방으로 들어오게 되자 털이는 다시 마루로 달아났다.

"아사달님이 그래 어떠하시냐? 저번 밤 야로에 다치신 데나 없으시냐?"

주만은 차돌이가 채 자리도 잡기 전에 다짜고짜로 물었다.

"천만다행으로 다치신 데는 별로 없다고 하셔요. 다만 동여매인 자리가 얼얼하시어 팔 쓰시기가 전만은 못하다고 하셔요."

"그러면 결박까지 지었던가."

주만은 새로운 사실에 또다시 놀랐다.

"그러면입시오. 그 나쁜 놈들이 아사달 스님을 칭칭 동여매고, 이리 차고 저리 굴리고 하는 판에 우리 용돌 스님이 뛰어드셨지요."

"용돌 스님? 말인즉은 두 분 신장이 나타나서 아사달님을 구해 내었다는데."

"그러면 자세한 얘기는 아직 다 못 들으셨군요. 그 두 분 신장의 한 분이 곧 용돌 스님이에요. 그 스님은 워낙 검술이 도고하시어 천하에 별로 당할 이가 없다시지만, 그날 밤 마침 그 스님을 찾아오신 손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어른의 검술은 또 용돌 스님의 선생님이시라니까요."

"오 옳지, 옳아. 그럼 그 두 분이 아사달님을 구하셨네그려. 신장이 아니라……."

"신장이란 말은 괜히 지어낸 소립지요. 용돌 스님과 아사달 스님께서 소승더러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쉬쉬하시기 때문에 말경엔 그런 헛소문까지 난겝지요."

"그러면 그 또 한 분은 누구시라던가?"

주만은 제 사랑의 위기를 구해 낸 은인의 명자를 알고 싶었다.

117[편집]

알뜰한 제 사랑 아사달이 절대의 위경에 빠졌을 때 표연히 나타나 그를 구해 준 이는 과연 누구이었던가. 그 중에 한 사람은 불국사에 있는 중이라 한즉 그 공은 갚을 수가 어렵지 않겠지마는, 그 중을 찾아온 손님이라는 또 한 사람의 근지가 더욱 알고 싶었던 것이다.

주만의 시선은 차돌의 입술에 맥맥히 몰리었다.

"소승도 분명히는 모릅니다마는 용돌 스님이 그 어른을 경신 서방님이라고 부르시더군요."

"경신 서방님?"

하고 주만은 깜짝 놀랐다.

"그러면 개운포(開雲浦)에 계시는 금량상 어른의 아우님이라더냐."

"글녓시오, 개운포 계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마는, 그 어른 형님 되시는 어른이 전에 무슨 높은 벼슬을 지내신 분이신데, 지금은 시골서 많은 낭도를 모으시고 교훈에 힘쓰신다고 해요."

하고 차돌은 그 맑은 눈동자를 깜박깜박하며 마루를 내다본다. 털이의 간 곳을 찾는 모양이리라.

"경신 서방님!"

주만은 혼자말같이 또 한번 뇌었다. 그렇다면 갈 데 없는 금량상의 아우 경신이가 분명하다. 궁술과 검술에 놀라운 재주를 가지시어 '천하영웅'이라고 아버지께서 입에 침이 없이 칭찬하시던 그이가 분명하다.

그 형님이 다녀가시고 그분도 쉬이 온다더니만, 그분이 어떻게 그 밤에 마침 불국사에 나타나 금성 일파를 쫓아 버릴 줄이야.

운명의 장난이란 새록새록이 공교롭구나. 저와 정혼한 남자가 저의 애인을 구해 낼 줄이야.

주만은 끝없는 생각에 잦아지다가 뻔히 아는 노릇이지만,

"그래 지쳐 들어온 작자들은 누구라더냐?"

"금시중 댁 사람들이래요. 그래 후환이 무섭다고 주장 스님은 벌벌 떠시고, 그런 소문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신칙이 여간 아니랍니다."

"그래 그 패에 다친 사람은 별로 없다더냐."

"왜요, 더러는 귀도 떨어지고 손가락도 떨어졌지만, 경신 서방님이란 그 어른이 인명은 해치지 말라고 용돌 스님에게 이르셨다니까요. 아무튼 세상에도 무섭고 인자한 어른인가 보아요."

"그래, 그 패들은 한 놈 떨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다 달아났다더냐?"

"맨 마지막에 두 사람이 남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그 댁 서방님이래요. 그 서방님이라는 이가 경신 서방님께 부복사죄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않겠다고 맹세맹세하였대요. 그리고 아사달님께도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사죄를 하였다니까요. 소위 행세하는 집 자식으로 그런 망신이 어디 있느냐고들 말을 하더군요."

차돌이가 계집애 모양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아이 고소해라."

달아났던 털이가 어느 틈에 다시 들어와서 말참견을 하고 낄낄대었다.

"오, 아사달님께도 잘못하였다고 절을 하였어."

주만도 얼굴을 펴며 웃었다.

"금성인가 뭔가 망신살이 뻗쳤는뎁시오. 그전에는 아가씨께 그런 혼뗌을 하고…… 아이 고소해라, 오호호."

털이는 연방 재재거리며 한번 터진 웃음보를 걷잡지 못하였다.

"그래 절 안에서는 무슨 까닭으로 금성이가 쳐들어온 줄 아느냐."

"똑똑히는 모르는 모양입디다. 분명히 아시기는 용돌 스님과 그 어른뿐인데, 뭐 그 금성이라는 이와 혼인말이 있던 뉘 댁 아가씨가 석가탑 속에 숨은 줄 알고 쳐들어온 거라나요."

"그러면, 그러면……."

주만은 낯빛이 변해졌다.

"그러면 그 못난 금성이가 내 이름까지 주워섬겼을는지도 모르겠구나."

"글녓시오. 그건 소승도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용돌 스님 말씀에 아가씨 말씀은 없으시던데요."

"저희들도 사람인데 설마 아가씨 함자까지 대었을깝시오."

"누가 아느냐마는 설령 내 이름을 대었다 한들 무슨 계관이 있겠느냐."

"아닙시오, 그렇다면 큰일입지요. 만일에 경신 서방님이 아셨다면 혼사가 터질 것 아닌갑시오."

"혼사가 터지는 게 그렇게 겁이 나느냐. 너는 내가 시집을 갈 줄 알았니."

하고 주만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다가,

"그보다도 더 큰 일이 또 한 가지 생겼구나."

수수께끼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동안에 차돌과 털이는 주만의 어깨너머로 슬쩍슬쩍 마주보다가 눈길이 서로 마주치면 피차에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히었다.

아사달 신변에 또 무슨 다른 변이 생기지 않았고, 또 이렇다할 만한 전갈이 없는 것을 보면 차돌이도 털이와 마찬가지로 풋사랑의 안타까운 실마리에 끌려들어 며칠을 그리던 제 사랑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118[편집]

차돌이가 돌아간 후 주만은 골머리가 아프다고 애저녁부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아아, 이상한 운명!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운명의 장난은 오밀조밀하다. 하고많은 날 가운데 하필 그날 그이가 용돌을 찾아가고, 하필 그날 금성이가 들이쳤던고. 하고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 그이의 구원을 받게 되었던고. 은혜를 입게 되었던고.

그이가 아니고 다른 분이라면 무슨 수를 어떻게 하더라도 그 은혜의 만분지 일, 만만분지 일이라도 갚을 수 있지마는, 그이에게는 갚으려도 갚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은혜를 갚기는커녕 그이에게는 원수가 될 이 몸이 아닌가. 그이가 장가를 오기 전에 나는 아사달과 달아날 사람이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고 꾸벅꾸벅 초행을 왔다가 신부가 달아나고 없다면 신랑에게 그런 모욕이 또 있을까. 아무리 내가 나쁜 년이고, 매친 년이고, 죽일 년이라고 돌리더라도 그이는 그이대로 못난이가 되고 웃음거리가 될 것 아닌가. 이 몸이야 내가 지은 업원 때문이니 천참만륙을 당한들 한할 줄이 있으랴마는 그이야 무슨 죄가 있는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그야말로 못된 놈 곁에 있다가 벼락을 맞는 격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경신의 처지가 딱하고 민망스러웠다.

전에라도 아버지께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그이를 욕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에 꺼림칙하지 않음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때는 그와 나와 아무런 계관이 없던 터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오늘날 와서는 그이는 아사달의 은인이요, 따라서 내 은인이 되지 않았는가. 비록 은혜를 갚지 못할 값에 도리어 그이에게 망신을 주고 창피를 주고 모욕을 준다는 것은 차마 못 할 노릇이 아닌가.

"아아 아사달님이 왜 하필 그이의 구원을 입었던고."

만 사람의 구원은 다 입어도 그이의 구원만은 입어서는 안 된다. 그이의 은혜만은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찌하리, 이왕 받은 은혜를 어찌하리. 지금 와서 주만이가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 보아야 아무 쓸데없는 일이었다.

"이 일을 장차 어찌할까."

주만은 이불자락을 걷어치고 돌아누우며 소리를 내어 또 한번 뇌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생각은 개미 쳇바퀴 돌듯 그 자리에서 그 자리로 뱅뱅 돌기만 할 뿐이요, 다시 한 걸음 내켜지지를 않았다.

"암만해도 이 혼인은 물리쳐야 한다. 그이가 망신을 당하기 전에 파혼을 해버려야 한다."

이것이 그이에게 은혜를 갚는 오직 한가닥 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렵다느니보다 차라리 될 수가 도무지 없는 일이었다.

여간 응석과 말버둥쯤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조른다 해도 정혼이 다된 오늘날 될 성싶지도 않은 일이다. 그러면 아사달과의 사정을 저저이 고해 올리는 수밖에 없겠는데, 아버지께서 이 걸맞지 않은 사랑을 용서하실 리는 꿈 밖이요, 필경 아사달과 부여로 닫는 실낱 같은 희망조차 부서지고 말 것이다. 이쪽에서 파혼을 시키기는 동해바닷물을 말리기보다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면 저편에서 파혼을 하도록 할 수가 없을까."

주만은 발딱 일어앉았다.

그렇다, 저편에서 파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상책이다. 정혼된 것도 신랑집에서 파혼하려면 못 할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신부가 망신을 당할지언정 신랑에게는 아무런 누가 없을 것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주만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한동안 생각에 잦아졌다. 그 맑은 눈동자에 이상한 광채가 반짝 하고 빛난다.

"내가 그이를 찾아뵈옵자."

주만은 마침내 마지막 결론을 얻었다.

아무리 어색하고 부끄러워도 내가 그이를 만나 보자. 우리의 사정을 낱낱이 일러 드리고, 혼인 못 할 내력을 알려 드리자. 아무리 이 몸은 깨끗하다 하더라도 마음의 정조는 벌써 깨어진 것. 어엿한 남편을 모시려도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직설거해 버리자. 한 칼로 수십 명을 휘몰아 내는 그이, 악한 놈들을 쫓고 옳은 이를 구할지언정 인명을 해치지 않는다는 그이, 영웅의 지혜와 도량을 가졌다는 그이가 아닌가. 사정만 듣고 보면 우리의 애달픈 사랑을 막지 않으리라. 안타까운 이 비밀을 끝까지 지켜 주리라. 너그럽게 모든 것을 용서하고 두말없이 파혼을 승낙해 주리라.

주만이가 이렇게 마음을 결단할 때는 벌써 밤이 환하게 밝았다.

미닫이에 부유스름하게 깃들인 새벽빛이 그의 어두운 운명의 길도 헤쳐 주는 듯하였다.

119[편집]

아사녀는 맥이 풀린 다리를 절며 끌며 문지기가 가리켜 준 대로 언덕배기 흰길을 쫓아 내려갔다. 가고 또 가도 훤하게 뚫린 길은 꼬불꼬불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고생고생하여도 이런 고생이 또 있을까. 그만하면 하마 끝날 때도 되었건만 산은 넘을수록 높고, 강은 건널수록 깊을 뿐.

그렇게도 그립고 그렇게도 보고 싶던 남편을 지척에 두고 못 만나는 슬프고 애달픈 마음이야 여북하련마는 대공을 쉬이 끝내게 된다는 것과, 몸 성히 잘 있다는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반갑고 든든한지 몰랐다.

이왕 고생길에 나선 다음에야 하루를 더하고 한 달을 더한들 어떠하랴. 그이의 대공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고 폐가 된다면 문지기가 설령 선선히 들어준다 해도 그이를 굳이 만날 염의가 없지 않느냐.

삼 년도 참았거든 단 며칠이야 더 못 참으랴. 더구나 그이가 짓던 탑 그림자가 비치는 못이 있다고 하지 않느냐. 거울 같은 물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그림자를 찾아내는 것도 그리 작은 기쁨은 아닐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아사녀는 고분고분히 불국사 문 앞을 떠난 것이었다.

다 된 물건의 그림자는 비치어도, 덜 된 물건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고, 그 탑도 비치거든 다 된 줄 알라는 문지기의 마지막 말이 지금 당장이라도 그 탑 그림자나마 보기를 즐겨 했던 아사녀에게 새삼스럽게 타격을 주었으나, 다시 돌아서서 그 문지기와 실랑이를 할 기신도 없거니와, 문지기의 그 말 속에 깊은 뜻이 숨긴 줄을 몰라 들었다.

덜 된 물건이라도 그림자가 아니 비칠 리도 없을 것 같고, 설령 문지기의 말과 같다 할지라도 다 이룩만 되면 으레 그림자가 나타날 것이고, 또 그 그림자가 나타날 날도 멀지 않은 것을 아사녀는 믿었다.

십 리 안팎 길이 이다지도 멀고 지리할까.

아사녀는 시오 리도 넘어 왔거니 생각할 때, 그 줄기찬 흰길이 산기슭 모퉁이로 돌아가며, 쪽으로 그린 듯한 휘넓은 못이 길 위로 넘칠 듯이 떠보이었다.

못을 발견한 순간, 그토록 몹시 쑤시고 저리던 다리도 금세로 거뿐해졌다.

아사녀는 거의 줄달음을 치다시피 하여 못가에 다다랐다.

어느덧 해는 떨어져 어둑어둑해 오는 황혼빛에도 그 못물은 넘실넘실 아사녀를 반기는 것 같다.

아사녀는 못 언덕 풀밭에 펄썩 주저앉아서 한동안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물 얼굴을 들여다보기에 넋을 잃었다.

초가을 물 밑이 맑기는 맑았으나 어스레한 저녁빛이라, 수없는 검은 그림자가 일렁거렸으되,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흐릿하여 뚜렷이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사녀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물 둘레가 이렇듯 넓고 못물이 이렇듯 맑으니 참으로 무슨 그림자라도 넉넉히 비칠 것만 같았다. 과연 그 문지기가 나를 속이지 않았구나 하며 몰풍스럽고 밉살맞던 문지기가 어떻게 고마운지 몰랐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누가 여기를 지시해 줄 것인가.

아사녀는 한시바삐 못 온 것을 한하였다. 조금만 일찍이 왔던들, 해지기 전에 왔던들 저 그림자들이 똑똑히 보였을 것을 원수엣다리가 지척거려 다 어두운 연후에야 대어 왔으니 어디 분간을 할 수가 있어야지.

'가만 있거라, 오늘이 며칠인가?'

그는 속으로 따져 보았다. 달이라도 있으면 오늘 밤에라도 알아볼 수 있으련마는, 그렇지 않으면 또 하룻밤을 밝히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날짜를 따져 보아도 알 길이 없었다. 부여 있을 적엔 아사달을 기다리느라고 하루하루 가는 것도 손꼽아 헤아려 보았건만, 길을 떠난 뒤로는 몇 날 몇 달이 걸려도 서라벌에만 득달하면 고만이니 날 가는 것을 아랑곳할 일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아사녀는 그 거물거물하는 많은 그림자 가운데 반드시 석가탑의 그림자도 가로누웠을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어두운 탓에 제 눈이 무디어 못 알아보는 줄로만 여겼다.

찰랑찰랑 밀려 들어오는 물결이 어떻게 살가운지 몰랐다. 손으로 한번 두번 움켜 보다가 문득 몇 달을 얼굴도 씻지 않은 더러운 계집이라는 문지기의 말을 생각하고 오래간만에 세수를 하기 시작하였다. 한번 손을 대고 보매 너겁이 켜켜이 앉은 때는 문적문적 일어났다. 씻고 또 씻어도 땟국은 줄줄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흥껏한껏 늘어지게 씻고 나매 온몸이 날 것같이 가뜬해지고 새로운 정신조차 돌아나는 듯하였다.

사내의 아귀떼를 막느라고 달포를 두고 때무겁으로 무장을 하였지만, 이젠 남편의 지척에 왔으니 그럴 필요는 다시 없었다.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거룩한 대공을 이루신 남편을 뵈어야 할 것 아닌가.

아사녀는 못만 보아도 마음이 느긋하였다.

남편의 곁에나 있는 듯이 마음놓고 이내 고달픈 잠 속에 떨어졌다.

120[편집]

"보아하니 젊으나젊은 이가 길바닥에서 이게 무슨 잠이란 말이오. 킁 킁."

누가 등을 흔들며 자꾸 깨우는 바람에 아사녀는 겨우 잠을 깨었다. 턱없는 안심으로 지치고 지친 피로가 잠을 퍼부어 밤새도록 나무등걸같이 내처 자고 만 것이다.

어느덧 곤한 눈시울이 섬벅섬벅하도록 햇발은 부시게 떠올랐다.

아사녀는 눈을 비비면서도 뎅겁을 하고 일어앉으며 첫밗에,

"그림자!"

하고 소곤거렸다.

"킁 킁, 그림자? 여보 일어나는 맡에 그림자는 뭐요, 으흐흐."

웃는 소리에 아사녀는 힐끗 제 옆을 보았다. 거기는 늙수그레한 여편네가 빨던 걸레를 쥔 채 쭈그리고 앉아서는 아사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머리털은 희끗희끗하나마 육색 좋은 얼굴은 기름기가 질질 흐르고 관자놀이는 옴쑥 파고들어갔으나 두 뺨은 이들이들하다.

"킁킁, 그래 얼토당토 않은 그림자는 왜 찾소. 에그 가엾어라. 저렇듯 옥 같은 얼굴이 아까워라, 킁 킁."

늙은이답지 않게 눈웃음을 쳐가며 연신 콧소리를 내었다.

아사녀는 잠이 완전히 깨자 생전 처음 보는 사람 듣는 데서 다짜고짜로 그림자를 찾은 것이 무색하였다.

"그래 그림자는 무슨 그림자요, 킁 킁."

그 늙은이는 짓궂게 아사녀를 놀리는 듯한 눈초리로 연거푸 묻는다.

"아녜요, 잠꼬대예요."

하고 아사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상긋 웃었다. 초대면한 이분에게 그림자 내력을 일러 들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굴도 저렇게 어여쁘고 목소리도 저렇게 상냥스럽고…… 킁 킁…… 그러면 내가 잘못 생각을 하였나."

늙은이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유심히 아사녀를 훑어보았다.

"여보 젊으신네,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하고 다시 정중하게 묻는다.

"부여에서 오는 길이에요."

아사녀는 제 본색을 감출 까닭은 조금도 없었다.

"킁 킁, 부여에서?"

그 늙은이는 깜짝 놀랐다.

"젊으나젊은 이가 그 먼 길을 어떻게 오셨단 말이오, 킁 킁. 그래서 옷꼴이 그 모양이었구먼. 난 그 옷꼴 하며 언덕배기에 자는 꼴 하며 실성한 인 줄로 알았구려. 그래도 그렇지 않아서 깨워나 볼까 하고 흔들어 본 거라오. 그러면 지나가는 나그네로 서라벌에는 아는 집도 없는가 보오구려."

하고 그 노파는 제 혼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생후 처음 온 곳이라 아는 집이라곤 없어요."

"오 그렇구먼, 오 그래, 킁 킁. 아이 가엾어라. 젊으나젊은 이라 잘 데도 만만치 않아서 한동을 한 거로구려, 킁 킁. 아이 가엾어라. 그 좋은 얼굴이 저렇게 파리한 걸 보면 굶기도 많이 굶었겠구려. 아이 딱해라. 지금이라도 시장치 않으시오, 아이 불쌍해라."

그 노파는 애처로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말뿐만 아니라 온 얼굴까지 찌푸려 보이었다.

아사녀는 시장치 않으냐 하는 말을 듣고 나니, 그 말이 떨어지기를 등대나 하고 있었던 것처럼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일어났다.

어제 낮에 밥 한술을 얻어먹고 여태까지 빈속이니 허기가 아니 날 수 없었다.

"참말 배가 고파요."

아사녀는 기이지 않았다. 비록 처음 보는 이라도 어떻게 친절하고 다정스러운지 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을 듯이 생각되었다.

"킁 킁, 배가 고프고말고, 아이 가엾어라. 자, 그러면 우리집으로 가요. 여기서 얼마 되지를 않으니, 킁 킁."

하다가 노파는 일어서서 손을 들어 가리키며,

"저길 봐요. 저기 수양버들이 보이지 않소. 벌써 잎사귀가 누렇게 된 저 버드나무 말이오, 킁 킁. 그 뒤에 조그마한 집이 보이지 않소. 그게 바로 우리 집이오. 자, 어서 갑시다. 찬 없는 밥이나마 요기를 하시게, 킁 킁."

노파는 성화같이 재촉을 하였다. 아사녀는 선뜩 몸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이젠 날이 다 밝았으니 첫째는 석가탑 그림자를 찾아보아야겠고, 둘째는 도중에 하도 여러 번 겪어 본 노릇이라 이 지나친 동정을 경계하는 마음이 없지도 않았다.

"어서 일어서구려. 왜 오금이 붙어서 잘 일어나지지를 않소, 아이 딱해라, 킁 킁. 자아, 내 손을 잡고 일어서구려."

하고 노파는 아사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 손은 늙은이 손으로는 너무 덥고 힘이 세었다.

"꺼릴 건 조금도 없소. 젊은 몸이라 염려가 안 될 리도 없지만 우리집에는 아무도 없소. 영감도 없고 자식도 없는 불쌍한 늙은이라오. 우리집에는 사내꼬불이란 약에 쓰려도 없다오, 킁 킁."

그 노파는 화경같이 아사녀의 속을 꿰뚫어보는 듯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