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61장~8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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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편집]

아사달은 굵은 빗발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기예 비가 오시는군요. 이렇게 뇌성벽력을 하니 비가 오셔도 많이 오시겠는데."

"비가 오시면 어때요. 비쯤 맞으면 어때요. 비걱정을랑 마시고 나를 데려가시겠다고 언약을 해주셔요, 맹서를 해주셔요. 부여든지 어디든지 아사달님 가시는 데 같이 간다고 속시원하게 일러 주셔요."

"……"

우루룩우루룩 천둥은 갈수록 잦아 간다.

쉴새없이 번개는 친다. 그 사나운 불채찍은 어둠을 후려갈기고 빗발을 누비질하며 번쩍거린다.

와지끈자끈 벼락은 닥치는 대로 바수어 내는 듯 온 누리가 이 호통의 으름장에 겁을 집어먹고 부들부들 떠는 듯하였다.

주만의 불을 뿜는 듯한 하소연은 그대로 계속되었다.

"불국사에서 처음 뵙던 그 순간 나의 운명은 벌써 작정이 된 것이야요. 다보탑 밑에서 신기하게도, 참으로 신기하게도 두 번째 만나 뵐 제 나의 일생은 귀정이 나고 만 것이야요. 그때부터 이 몸은 아사달님 없이는 이 세상에 못 살 줄 알았습니다. 아사달님 아니고는 나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줄 이가 또다시 없는 줄 깨달았습니다. 세 번째 석가탑 위, 지금 앉은 이 자리에서 혼절하신 모양까지 뵙게 된 것은 우리의 이상한 인연이 아주 굳어지고 만 것입니다."

비는 어느결에 폭우로 변하여 좍좍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옷이 다 젖으십니다. 이 바위부리 밑으로라도 잠깐 의지를 하십시오."

아사달은 딱한 듯이 또 한번 재우쳤다.

"왜 자꾸 딴말씀만 하세요. 이 옷이야 다 젖은들 어떠해요. 아사달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이 비를 맞고 그대로 짓물러나도 좋아요. 그대로 잦아져도 좋아요. 녜, 아사달님, 같이 가실 테지요. 함께 간단 말씀을 해요."

"……"

아사달도 노박으로 맞는 비를 피하려고도 아니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이윽히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다가 마침내 차마 하지 못할 말을 하고야 말았다.

"구슬아기님, 그것은 안 될 말씀입니다. 나에게는 어엿한 아내가 있답니다. 나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아내가 있답니다."

이 말을 하기에 아사달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하였다. 자기의 둘도 없는 아름다운 동정자에게 이 말을 들리기는 너무도 면난쩍었다. 너무도 무참하였다. 그 어여쁘고 고운 염통을 칼로 저미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아까부터 몇 번을 이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스러지고 혀끝에 뱅뱅 돌면서도 입 밖에 내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것은 한때의 고통. 이런 줄을 모르고 처녀의 마음을 끝끝내 바치게 하는 것은 크고 더 무서운 죄악인 양하였다.

그는 마침내 마음을 결단하였다. 이를 악물고 이 말을 하고 만 것이었다.

과연 열에 뜨인 주만에게도 이 말만은 여무지게 울린 듯하였다. 화살을 맞은 비둘기 모양으로 그의 몸은 흠칫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움츠러들 주만이가 아니었다. 날카롭게 찔린 상처의 아픔을 지그시 견디는 듯하더니 아까보담 더욱 흥분된 목소리로 그 말을 받는다.

"나도 알아요, 부인이 계신 줄을 나도 알아요. 장인이요 스승이신 어른의 따님이 부인이신 줄 나도 알아요. 의젓하고 아름다운 부인께서 댁에서 아사달님 돌아오시기를 나날이 기다리시는 줄 나도 알아요. 나도 그 때문에 얼마나 고민을 하였을까, 애간장을 끓였을까……남의 남편, 남의 서방님을 흠모하는 이 몸이 얼마나 미웠을까……."

하고 주만은 지나친 흥분에 잠깐 말을 끊었다.

"그러나 그것도 인제는 지난날의 몹쓸 꿈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것보담 더 높은 정이 없을까, 더 깨끗한 사랑이 없을까요. 아무리 부인이 계시다 한들 사랑이야 어떡하실까. 나는 그 어른의 형님이 되어도 좋고 동생이 되어도 좋아요. 나는 다만 아사달님 곁에만 있으면 고만예요. 하루 한 번, 열흘에 한 번이라도 아사달님을 뵈올 수만 있다면 고만이에요."

비는 점점 소리를 치며 내리퍼붓는다.

62[편집]

불덩이 같은 주만의 머리와 뺨에 빗발이 젖자 무렁무렁 김이 서리었다.

"나는 아사달님과 부부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아요. 그야 어엿한 부부가 될 수가 있을 말로야……."

하다가 주만은 코 안으로 흘러드는 빗물을 풀어 내었다.

"그야 애당초에 안 되기로 정해 놓은 노릇. 저는 차라리 아사달님의 제자가 될 터예요. 겨누와 정을 매만져 드리는 제자가 될 터예요. 십 년을 배우고 이십 년을 배우면 설마 그 놀라우신 재주의 만분지 일이야 못 배울까……."

"이손 댁의 귀동따님이 석수장이의 제자가 되다니 안 될 말씀, 안 될 말씀."

하고 아사달은 고개를 흔든다.

"왜 안 돼요. 안 될 까닭이 무엡니까! 삼단 같은 머리를 끊어 버리고 불제자도 되려든. 나무로 깎고 구리로 새겨 만든 부처님의 제자도 되려든. 살아 있는 이를 왜 스승으로 못 섬길까. 눈앞에 보여 주는 재주를 왜 못 배울까……."

"제발 마음을 돌려 주십시오. 이 아사달이 빕니다."

아사달은 머리를 푹 수그렸다.

"아무리 아사달님이 빌어도 내 마음은 돌리지 못합니다. 동해에서 뜨는 해가 서악(西岳)에서도 떠도 한번 먹은 내 뜻은 꺾지를 못합니다."

"괴롭습니다. 이 아사달이 괴롭습니다. 제발, 제발……."

"괴롭다면 내가 괴롭지 아사달님이야 왜 괴로워요. 여제자 하나 데리는 게 그렇게 괴로워요."

"제발 그러지 말아 주십시오. 부모님께서 정혼하신 자리로 떳떳이 시집을 가주십시오. 그러고 그 좋은 부귀와 영화를 누려 주십시오."

"부귀와 영화가 아무리 좋다 한들 내가 싫은 바에야 헌신짝만도 못한 것……."

"가난뱅이 석수살이.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왜 사서 하시려고……."

"아무런 고생살이라도 제가 즐겨 하는 거야 누구를 탓을 해요."

"말씀은 쉬워도 고생살이란 진저리나는 것. 풀자리에 베이불을 어떻게 견디실까. 안 될 말씀, 안 될 말씀!"

"돌 위에 그냥 자도 내 좋으면 그만이지요.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도 내 기쁘면 고만이지요. 아사달님을 그리고는 끊어질 이 목숨. 목숨도 태웠거든 세상에 못 견딜 일이 무에 또 있을까."

바로 머리 위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듯 천지가 뒤집는 울림이 일어났다. 정열의 용솟음에 허덕이는 그들도 아뜩하며 귀를 막았다. 눈에 불이 주렁주렁 흩어지며 세상에도 빠르고 세상에도 세찬 무엇이 홱 지나치는 듯하였다. 팽팽 내어둘리는 눈길에도 저 건너 산허리에 수없는 불바위가 디굴디굴 맞부닥뜨리며 구을다가 이내 스러져 버리는 광경이 환하게 보였다.

일순간 번하게 밝아 오는 듯하다가 다시 자욱해지더니 비는 꼬지락이로 따르었다. 대번에 탑 위에 물이 펑하게 고이며 양 가로 철철 흘러 떨어지는 소리가 난데없는 폭포를 이룬 듯하였다.

"이리로 오십시오. 이 돌부리 밑에나마 좀 들어앉으십시오."

아사달은 캄캄한 가운데서 더듬거리며 주만을 불렀다. 아무리 주만으로도 폭포수같이 내리지르는 이 빗줄기를 그냥 맞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는 몸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벌써 흠빡 젖은 옷자락이 다리에 휘감기어 댓 자국을 떼놓을 수 없었다.

아사달의 손은 가까스로 질척질척하는 주만의 소매를 잡을 수 있었다.

물펑덩이가 다된 주만의 몸을 옆으로 반나마 안다시피 하여 어훙하게 떨어 낸 바위부리 밑에 들여앉힐 수 있었다.

그 바위 밑은 둘이 맞비비대고 몸을 웅크려야만 간신히 노박이 빗발을 가리울 만큼 좁았다.

"아사달님 어디로 나가셔요. 어디로 이렇게 비가 딸쿠는데."

주만은 자기를 안아다가 놓고 몸을 일으키는 아사달을 보고 부르짖었다.

"여기도 괜찮아요. 여기도 의짓간이 있습니다."

아사달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는 모양이었다.

"거기 무슨 의짓간이 있어요. 노박이로 비를 맞으실걸 뭐."

"괜찮아요. 아무 말씀도 마시고 조금만 그러고 계십시오. 인제 곧 비가 뜸해질 것이니까요."

아사달의 말을 반박이나 하는 것처럼 비는 더욱 줄기차게 쏟아진다.

"고새라도 이 줄기찬 비를 그대로 맞으시면 병환이 덧치실걸. 어떡하나, 어떡하나."

주만은 보이지도 않는 아사달을 찾으며 조바심을 하였다.

"여기도 괜찮습니다. 여기도 비를 맞지 않습니다."

아사달의 목소리는 아까보담 얼마를 떨어져 나간 듯하였으나 그 숨길은 몹시 거칠게 들려 왔다.

63[편집]

부석의 병은 아사달이 떠나던 그해에는 별판으로 점점 나아갔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자 그 몹쓸 해소도 도수가 드물어지고 손수 정을 들어 여러 제자들에게 돌 쪼는 비결조차 가르쳐 줄 만큼 되었다.

그가 이렇게 속하게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은 첫째 온화한 기후 관계가 크기도 하였지마는 외동사위를 멀리 떠나 보내고 심신이 긴장한 탓도 탓이리라.

그는 세상없어도 아사달이 대공을 이루고 돌아올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 그 능란한 솜씨로 서라벌 석수들을 어떻게 찔끔하게 하고 천하에 으뜸가는 탑을 어떻게 지어 내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눈을 감으려야 감을 수 없었다.

만일 그 동안에 제 명이 이어가지 못한다면 홀로 남은 아사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하였다.

그는 아사달이 있을 때보담 제 몸을 돌보고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죽이나마 억지로라도 몇 술을 더 떠넣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때를 할 수만 있으면 줄이고 웬만만 하면 기동을 해보았다.

그러나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무서운 기침은 또다시 그를 찾았다. 온몸의 힘을 쥐어짜 내고 오장육부까지 뒤틀어 오르게 하는 그 무서운 해소는 맹렬하게 그의 덜미를 짚었다.

기침 한번 한번에 늙고 쇠한 기운은 빠져 달아났다. 몸에 억지를 부린 탓으로 그 반동은 더욱 무서웠다.

한겨울이 되자 몸져 눕고 말았다.

아사녀는 병상 곁에서 꼬박이 여러 밤을 밝히었다.

호된 기침을 하고 난 뒤에는 거물거물 그 자리에서 숨이 지는 듯도 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눈을 떠보십시오, 눈을 떠."

아사녀는 울며 부르짖었다. 푹 꺼진 눈자위는 눈알맹이가 있을 성싶지도 않고 가르렁가르렁하던 담끓는 소리도 가라앉고 숨소리가 들릴 둥 말 둥하자 아사녀는 질색을 하며 아버지를 깨워 보는 것이었다.

"음, 음, 왜."

하고 그 진땀이 배어서 번질번질해진 눈시울을 뜨면 아사녀는 돌아간 아버지가 다시 살아난 것같이 기뻐하였다.

"아버지."

"왜."

"아버지가 이렇게 편찮으시다가…… 만일……."

"만일에 죽으면 어떡하느냐 말이지. 안 죽는다, 안 죽어, 쿨룩쿨룩."

말끝은 기침으로 마쳐졌으나 부석은 자신 있게 딸을 위로하였다.

"아사달이 돌아오는 걸 못 보고 내가 죽다니 말이 되느냐. 아사달을 다시 못 보고 눈을 감으려니 감을 수 있느냐."

"아버지께서는 그 탑이 얼마쯤이나 되었을 듯해요."

"가만있자, 그 애 간 지가 한 일 년 되었느냐."

"올봄에 갔으니 아직 일 년은 채 못 되었지요."

"옳아, 그 애가 올봄에 갔것다. 공을 들이자면 그래도 일 년은 걸릴걸."

"뭐 일 년 템이나."

"참 짓는 탑이 둘이라지. 훌륭한 석수를 만나 하나씩 맡아 짓는다면 일 년에 끝을 내겠지만 두 탑을 혼잣손으로 다 맡는다면 이태는 더 걸릴걸."

"어유 이태!"

아사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태가 그렇게 먼 듯하냐. 까다로운 공사나 만나고 생각이 잘 안 돌면 사오 년도 걸리는 수가 있느니라."

"그렇다면 큰일나게요, 큰일나게."

아사녀의 눈은 호동그래졌다.

일 년이 채 못 되어도 이렇게 그립고 기다려지거든, 이태 삼 년이 걸린다면 아버지보담도 제가 먼저 말라죽을 것 같았다.

"여기서 서라벌이 얼마나 되어요."

"글쎄 몇 리나 될까. 한 오백 리는 더 될걸."

"오백 리, 그렇게 멀어요. 걸어간다면 여러 날 걸리겠는데요."

"암 여러 날 걸리지. 발이 부르트고, 쿨룩쿨룩."

"노독이나 나지 않았을까."

아사녀는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위태한 고비를 몇 번 넘기기는 하였지만 그해 겨울은 아무튼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그 이듬해 봄이 되고 여름이 되자 기침은 또다시 뜸해졌지만 너무 지쳐서 기운을 차릴 수가 없게 되었다.

64[편집]

그 이듬해는 여름이 되어도 몹시 지친 부석의 몸은 좀처럼 소복을 못 하고 호정출입까지 어렵게 되었다.

위험시절 가을은 또 닥쳐왔다. 혹독한 기침은 썩은 나뭇가지를 분질러 내듯 쇠약한 부석의 몸의 모든 부분을 샅샅이 바수어 내었다.

인제 쿨룩쿨룩하는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소리를 낼 만한 근력 한푼 어치도 그에게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주름살 많이 잡힌 얼굴이 마치 으등그린 송충이처럼 흉업게 찡그려 붙고 입을 딱딱 벌리는 걸로 보아 그가 지금 기침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어복이 말라붙은 종아리는 촛대뼈와 종지뼈가 앙상하게 드러나서 하릴없이 장작개비와 같이 뻣뻣하였다.

그가 살아 있다는 오직 한 개의 증거는 가르렁가르렁 씩씩 갖은 소리를 내는 담끓는 것뿐이었다.

금일 금일 하면서도 그의 생명은 기적적으로 끊어지지는 아니하였다.

"아사달을 다시 한번 못 보고 내가 죽다니 말이 되느냐. 안 될 말, 안 될 말."

그는 조금만 정신기가 나면 언제든지 다 부서진 제 몸에 용을 쓰며 중얼거리곤 하였다.

아사녀는 하도 여러 번 그 소리를 들어서 귀가 따가웠다.

이렇게 용을 한번 쓰고 나면 그 흐릿한 눈동자에는 언제든지 눈물이 친친하게 괴어 올랐다.

제 평생을 두고 닦고 배운 재주를 모조리 전장한 아사달, 그의 쓸쓸한 인생에 오직 한 개의 보옥인 딸까지 맡은 아사달.

그가 대공을 마치고 영광에 쌓이어 돌아오는 날까지는 세상없어도 이 쇠잔한 목숨을 지탱을 해야 한다.

그의 잿불처럼 꺼져 가는 생명을 부지하는 기적이 실상은 이 원력인지 모르리라.

아사녀는 이 용쓰는 것과 눈물이 보기 싫었다. 처음에는 그럴 적마다 울기도 여러 번 울었으나 인제 와서는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퉁퉁하게 부은 눈을 외우시고 만다. 이렇게도 원을 원을 하시는 것이 암만해도 원을 이루지 못하고 마실 것이 더욱 가슴을 찢어갈기는 듯하였던 것이다.

어찌어찌 그 무서운 겨울을 넘기기는 넘기었다.

추녀 끝에서 눈 녹아 내리는 소리가 또닥또닥 난다. 사자수가 풀리느라고 얼음장이 찡찡 우는 것이 제법 멀리 들려 왔다.

물동이를 이고 강가에 나간 아사녀는 어제 오늘 다르게 얼음이 한뼘 한뼘 녹아 없어지고 그 대신 찰랑찰랑하는 파란 물둘레가 넓어 가는 것이 신통하였다.

바가지로 물 한 동이를 퍼내 놓은 뒤에는 어린애 모양으로 두 손으로 그 수정 같은 물을 움켜 떠보고 손가락 새로 흘려 버리곤 하며 때 가는 줄도 잊었다.

봄이 온다.

아사녀의 염통은 뛴다. 겨우내 그 조그마한 가슴을 엎누르고 지지르던 그 두꺼운 얼음장도 녹아 내려 버린 듯하였다.

봄이 오면 첫째로 아버지의 병환이 돌리시리라. 그 무서운 기침이 차차 도수가 줄어지시리라.

지팡이를 끄으시고 뜰에 내려오시어 양지쪽 봉당에 앉으시게만 되면 그 몹쓸 병은 물러나는 날이다. 재작년도 그러하였고 작년도 그러하였으니 금년이라고 아니 나으실 리가 있으랴. 전보담 너무 지치신 듯한 것이 적이 염려가 되기는 되었지만.

그러고 더 좋기는 아사달님 돌아오실 날이 가까워 온 것이다. 떠나신 후 벌써 세 번째 봄이 돌아오질 않느냐. 아버지 말씀대로 탑 둘을 혼잣손에 다 맡아 짓는다 해도 이태면 된다 하셨으니 이번 봄이 오면 햇수로는 벌써 삼 년 날수로 따져도 고스란히 이태가 되지 않느냐. 설마 세 번째 봄이야 넘기실 리 있으랴. 이번 봄에는 기어이 돌아오시고야 마시리라.

참 세월이 쉽기는 쉽구나. 단 한 달도 단 일 년도 그릴 것을 생각하매 까마득하더니 어느결에 이태 삼 년!

아사녀는 정신을 놓고 물을 움키고 또 움키다가 이른 봄의 강물은 아직도 차서 손이 쓰린 것을 깨닫고 치마꼬리에 손을 씻었다.

"내가 미쳤나. 손이 이렇게 쓰린 것도 모르고……."

아사녀는 해죽이 웃고 치마꼬리에서 빼어 낸 새빨갛게 된 손을 호호 불었다.

다가드는 봄 자취와 함께 그의 집에는 기쁜 일과 좋은 일이 꼬리를 맞물고 한꺼번에 닥쳐오는 듯하였다.

65[편집]

물동이를 부엌에 내려놓고 아사녀는 쏜살같이 아버지께로 뛰어들어갔다. 오래간만에 저를 찾아준 기쁜 생각을 한시바삐 병든 아버지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막 기침을 하고 나셨는지 헉헉 하는 숨길이 턱에 닿고 번열이 난 탓으로 이불자락을 반나마 걷어쳤는데 그 칼등같이 드러난 갈비뼈를 보매, 아사녀는 지금 당장 꾸고 온 아름다운 꿈이 무참히도 부서지는 것을 느끼었다.

아무리 봄이 온다기로 이렇게 육탈한 아버지가 과연 회춘을 하실 것인가. 그렇게 기다리시던 아사달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아사녀는 그렇게 좋은 공상을 단념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아버지, 아버지 인제 봄이 와요."

아사녀는 무두무미하게 아버지의 귀에다 대고 부르짖었다. 작년 겨울부터 귀까지 절벽이 되어서 작은 말낱은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무슨 보에 싸인 듯이 흐릿해 보이는 그의 안광이 이때따라 생기가 도는 듯하였다.

"응 누가 와, 아사달이가 와!"

하고 올강볼강하는 팔꿈치로 한옆을 짚고 힘을 부진부진 준다. 그는 분명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아녜요, 아녜요. 아사달님이 온다는 게 아녜요. 봄, 봄이 온다는 말씀예요. 강물이 다 풀리고……."

"뭐, 뭐, 봄, 봄이 와."

부석은 싱겁다는 듯이 떠들썩하게 쳐들었던 몸을 메다붙이듯 가라앉히고 만다.

"얼음장이 풀리고 물이 제법 졸졸 소리를 내고 흘러요."

"……"

부석은 자기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스르르 눈을 다시 감아 버린다.

"봄이 오면 그 몹쓸 병환도 나으실 게고……."

"봄이 온다고 내 병이 나을 듯싶으냐."

"그러면요. 일기만 따뜻해지면."

부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고개를 흔들었다느니보담 차라리 흔드는 시늉을 해보이었다. 그리고 역정이 몹시 날 때 하던 버릇으로 눈썹을 치켜올리고 그 영채 없는 눈으로 잔뜩 천장을 노리었다.

봄이 온다는 말이 이렇게도 아버지의 귀에 거슬릴 줄이야.

아사녀는 한참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문득 아침밥이 늦어 가는 것을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침을 짓는대야 아버지는 미음을 끓여 드리고 밥 먹을 이는 저 하나뿐. 그리고 누룽지를 치워 줄 삽사리 한 마리. 신신치 않은 일이나마 문병 오는 제자들이 달려들기 전에 아침밥을 먹어 치워야 한다.

아사녀는 막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할 제 부석은 매우 못마땅한 눈치로 거의 흘겨보다시피 돌아본다. 말은 안 하여도,

"나 혼자 남겨 놓고 또 어디를 나가느냐."

하고 꾸짖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요새 와서 걸핏하면 화를 내시고, 더구나 아사녀가 곁을 떠나는 것은 질색이었다.

어질고 자상스럽던 성미도 병에 부대끼어 변해진 듯하였다.

아사녀는 다시 아버지 곁으로 왔다.

"아버지 잠깐만 혼자 계십시오. 아침밥을 짓고 들어오께."

아사녀가 다시 들어오자 아버지는 돌아누워 버리고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녜 아버지, 아침을 지으러 나가야 되지 않아요."

"그래라" 하고 대꾸는커녕 고개까지 끄덕여 주지 않았다.

"녜 아버지, 저는 나가 봐야……."

또 한번 재우쳐 보았건만 아버지는 눈까지 감고 제 딸이 거기 서 있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아사녀는 망단하여 서성거리며 아버지의 축난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 푹 꺼진 눈자위에 눈물이 펑하니 괴어 오른다.

"아버지, 아버지!"

아사녀는 억색하여 부르짖었다.

"그래 봄, 봄이 오면 아사달이 온다더냐."

다시 눈을 뜨는 아버지는 눈귀와 눈초리가 깊은 탓인지 눈물은 흔적도 없이 잦아져서 방금 우신 것 같지도 않으나 그 말소리는 몹시 떨리었다.

그러면 아버지도 자기와 꼭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가.

"오고말곱시오. 떠난 지 벌써 세 번째 봄이 오는데."

"음, 세 번째 봄이. 음, 봄이 완구히 오기 전에 아사달이가 와야 될 텐데. 요 며칠 안에 아사달이가 와야 될 텐데……."

"……"

아사녀는 무슨 뜻인지 잘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음, 요 며칠 안에…… 암만해도 너 혼자 남겠구나……."

아버지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66[편집]

부석은 자기가 염려하던 바와 같이 그 봄이 채 다 못 와서 썩은 나무가 물오르기 전에 부러지듯이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며칠은 제법 정신기가 돌아났다. 시늉만 보이던 그 악착한 기침도 도수가 줄어진 것 같고 담끓는 소리도 한결 나은 듯하였다.

하루 아침은 물을 길러 나가려는 아사녀를 눈으로 불렀다. 곁에 와 앉은 딸을 퀭한 눈으로 치어다보며 자꾸 안간힘을 쓴다.

"아버지, 아버지 왜 이러셔요."

팔뚝 전체로 방바닥을 짚고 모로 다리를 꼬는 병인을 보고 아사녀는 또 무슨 변이 생기는가 하고 질겁을 하며 부르짖었다.

"왜 이러셔요, 아버지. 글쎄 아버지 가만히 좀 누워 계셔요."

그래도 병자는 부진부진 혼자 애를 쓰다가,

"이, 일으켜. 나를 좀 일으켜."

하고 버르적거린다.

"어유 큰일나게. 안 됩니다, 안 돼요. 몸을 움직이시면 또 그 몹쓸 기침이 나게요."

아사녀는 질색을 하였다.

"아 딸아, 아사녀야. 나, 나를 좀 일으켜 다오, 후, 후."

한참 기를 쓴 탓에 지쳤던지 숨을 모두 꾸려 쉬며 마치 애원이나 하는 것 같다.

"숨길이 이렇게 가쁘신데 일어나셨다가 덧치시면 어떡하게, 어떡하게."

"누웠으니 답답해, 어유 답답해. 이, 일으켜라, 일으켜, 좀."

"글쎄 안 됩니다, 안 돼요. 병환이……."

"병은 인제 다 나았다. 나를 일으켜라, 응. 아가, 아가."

비대발괄이나 하는 것 같다. 이 안타까운 청을 아니 들으려야 안 들을 수 없었다.

아사녀는 두 손을 병자의 등 밑으로 넣었다. 손에 만져지는 아버지의 살은 마치 물기 도는 바위와 같이 엄청나게 무섭고 미끈거렸다.

아사녀는 제 팔이 천근들이 쇳덩이나 얹힌 것처럼 휘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아버지는 뜻밖에도 거뿐하게 일어앉는다.

아사녀는 병자가 쓰러지지 않도록 이불을 둘레둘레 모아 앞과 양옆을 두리꺼리고 뒤에는 안석삼아 두둑하게 괴었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는 일어앉기가 무섭게 한바탕 된통 기침을 하였으나 그 몹쓸 고통도 잊은 듯 그 눈물이 펑한 눈으로 웃어 보이었다.

오래간만에도 그 엉덩그려 붙인 얼굴을 펴는 웃음살!

한번 일어나 보시는 것을 이렇듯 신기해하시고 기뻐하실 줄이야! 그런 줄 알았더면 진작 일으켜 드릴 것을!

아사녀도 눈물겨웁도록 그 웃음이 반가웠다. 하마터면 깨어질 듯하던 제 환상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 어떻게나 기쁜지 몰랐다.

봄이 온다! 강물도 풀리고 아버지의 얼굴에도 봄이 온다.

그날 아침에는 물을 길으면서 저도 모르게 콧노래까지 옹알거리었다.

강물은 엊저녁보담 몰라보리만큼 더 풀리었다. 도끼로 찍어도 깨어지지 않을 성싶던 그 두껍고 튼튼하던 얼음장이 둥둥 떠서 헤실헤실 녹으며 흘러간다. 아직 덜 풀린 얼음장 위에도 덧물이 져서 콸콸 소리를 치며 오는 봄을 그리는 것 같다.

그날 저녁에 아버지는 밥을 달라고 떼를 썼다. 미음도 잘 못 넘기던 어른이 죽도 마다하고 밥을 먹겠다는 데는 아사녀도 기가 막히었다. 부녀간에 얼마를 승강이를 하다가 끝끝내 밥을 반 주발이나 말아서 자시었다. 매우 염려를 하였지만, 그날 밤에 배탈도 나지 않았다.

그 이튿날 아침에는 아사녀가 채 눈도 뜨기 전에 병자는 제 혼자힘으로 일어앉고 말았다.

"어떻게 혼자 일어나셨습니까."

아사녀는 하도 신통해서 웃으며 물었다.

"왜 내 혼자는 못 일어난다더냐."

하고 아버지는 웬일인지 웃지를 않았다. 또 무엇에 역정이 난 것 같았다.

"쌀이 얼마나 남았느냐."

아버지는 불쑥 이런 말을 물었다.

"입쌀은 한 댓 되밖에 안 남았어요."

"그러고 좁쌀은?"

"저번에 팽개님이 팔아 온 것 서 말은 남았을까."

"팽개, 팽개가 좁쌀을 팔아 와."

매우 불쾌한 눈치를 보이다가 땔나무는 누가 해오느냐, 내 옷은 몇 벌이나 되느냐, 너는 봄이 되어도 입을 옷이 있느냐, 내가 잘 장식해 두라던 돌 다루는 기구는 다 어찌 하였느냐, 갖은 것을 미주알고주알 파고 캐며 챙기었다.

그날 해가 어슬어슬해지자 아버지는 오한이 든다고 이불을 덮어도 또 덮으라 하였다.

며칠 뻔한 탓에 마음을 놓았던 아사녀는 더욱 허둥지둥하였다.

밤중이 되자 아사녀의 눈에도 아버지의 얼굴빛이 아주 달라지는 듯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여러 제자들을 불러, 불러오리까."

아사녀는 울며 부르짖었다. 병자는 손을 내어젓고 무슨 말인지 입만 달싹달싹한다.

"네, 아버지, 네, 아버지."

딸은 아버지의 입에 귀를 대었다. 병자는 차오르는 숨길 가운데 낱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 아, 사달."

이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67[편집]

초종은 여러 제자들의 운력으로 어렵지 않게 치를 수 있었다. 그 중에도 가려운 데 손이 닿도록 오밀조밀한 팽개의 힘이 더욱 크고도 곰살궂었다.

얼른 보기에 덜렁하고도 투미할 듯하던 그가 큰일을 당하매 이대도록 차근차근하고 자상스러울 줄은 정말 생각 밖이었다.

그는 아사녀가 입을 상복의 치수까지 아는 듯하였다. 어느 때 어떤 절차로 절을 하고 곡을 하는 것까지 또박또박이 알리었다. 제수에 드는 것은 하나도 빼어놓지 않을 뿐인가, 고기가 얼마 생선이 얼마, 심지어 여러 가지 과실 갯수까지 남고 모자라는 것이 없도록 분별해서 사들이었다.

그러고 상청에 들어서면 어느 제자보담 가장 섧게 울었다. 울음이 끝난 뒤에 여러 제자들은 아사녀를 위로하는 척하고 둘러앉아서 지싯지싯 실없는 수작도 더러는 꺼내었지만, 그는 제 할 일만 끝나면 선선히 일어서서 사랑으로 나가 버렸다.

그의 아사녀에 대한 태도는 너무 점잖아서 오히려 데면데면한 편이었다.

장달과 싹불 같은 다른 제자들은 아사녀와 말 한번 주고받을 기회만 있으면 할 말을 다 하고 난 뒤에도 딴청을 부리고 수작을 질질 끌려 하였다. 그러나 절차를 어떻게 할 것과 흥정을 어떻게 할 것 등으로 아사녀와 접촉할 기회가 가장 많은 팽개는 단 한두 마디로 일을 처리할 뿐, 아사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버지마저 여의고 홀로 남은 아사녀, 의지할 곳 없는 아사녀, 홀아비의 손엘망정 귀히 고이 자라나고 풍파란 겪어 보지 못한 아사녀, 아직도 나이 스물셋!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는 팽개의 이 행동이 어떻게 고마운지 몰랐다. 어떻게 든든한지 몰랐다.

슬픔과 설움이 겹겹이 쌓인 중에도 날과 달은 흘렀다.

엉덩둥 장사도 지났다. 닥쳐오는 하루하루, 휘젓하고 무서운 하루하루가 한달 두달이 되었다.

장달, 작지, 싹불, 웃보는 번차례로 혼자 오고 둘이 오고 대들고 대나며 아사녀를 찾아 주었다. 외로운 그이거니 그들의 오는 것이 반갑지 않음이 아니지만 그 눈치와 말투들이 괴란쩍을 때가 많았다. 걸핏하면 싸움판도 벌어지기도 하였다.

하루는 꼭두식전에 장달이가 그 기다란 키를 휘영휘영 흔들며 들어오다가 먼저 와 앉아 있는 웃보를 보고,

"요 녀석이 어느 틈에 벌써 왔어. 새침데기 골로 빠진다고."

"왜 못 올 데 왔단 말이냐."

"요 녀석이 왜 새벽 대령을 하고. 무슨 자갑스러운 짓을 또 저지르려고."

장달은 그 멍청이 같은 눈알을 디굴디굴 굴린다.

"이 싱거운 키다리가 못 할 말이 없네. 그건 어따 하는 수작이야. 이 기급절사를 할 놈아."

"그러면 왜 왔어, 왔어."

"너는 왜 왔니. 그 짤막한 키를 질질 끌고, 맙시사."

하고 웃보는 아사녀를 향해 웃어 보이었다.

"요 녀석이 살살 눈웃음을 치고 간지럽게. 아사녀님이 아무리 한들 너 따위에 넘어갈 줄 아느냐."

"왜 아사녀님이 무동이라 재주를 넘느냐. 넘어가시게, 하하."

웃보는 제 재담에 만족한 듯이 또 한번 웃어 보이었다.

"요 녀석이 칠월 열중이 모양으로 입만 까가지고."

"너는 입을 안 까고 그 황새 같은 다리부터 먼저 깠니, 킥킥."

"요 녀석이 또 웃어. 요 녀석아, 네가 그 웃음으로 건너마을 술청 갈보는 호려 내었지만도……."

"이 얼간망둥이 같은 녀석을 그대로 내버려두니까……."

웃보는 눈살을 꼿꼿이 세우더니만 대번에 장달의 따귀를 갈기었다.

장달이 화다닥 일어서자 웃보도 발딱 몸을 일으켰다. 장달은 그 휘청휘청하는 긴 팔을 늘이어 웃보의 멱살을 잡았다. 웃보는 그 턱밑에서 뺑뺑 돌며 그 작달막한 다리로 후당퉁탕 장달의 허벅지를 차느라고 애를 썼다. 장달은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웃보를 휘술레를 돌리었다. 웃보는 깡충 몸을 솟구치듯 하더니 그 여무진 대가리로 장달의 턱을 냅다 받았다.

"아야야!"

장달은 비명을 치고 멱살을 놓자 이번에는 웃보의 허둥거리는 다리가 정통으로 허벅지를 내리지르고 작으나마 세찬 주먹이 장달의 앙가슴을 쥐어질렀다.

"헉!"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장달은 그 꾸부정한 등을 훨신 펴는 듯하더니 그대로 털썩 하고 나동그라졌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아사녀는 쩔쩔매며 자빠진 장달에게로 또 달려들려는 웃보의 팔뚝에 매어달렸다.

"놓아 주세요, 놓아 주세요."

"이런 놈은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 놓아야."

웃보는 무엇이 그리 분한지 어깻숨을 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68[편집]

장달과 웃보가 싸웠다는 소문은 대번에 쫘 하고 퍼졌다. 한입 두입 건너는 동안에 터무니없는 귀가 달리고 발이 붙어서 소문은 별별 괴란쩍고 망측스러운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웃보가 턱거리를 하는 바람에 장달의 턱이 떨어지고 말았대."

"웃보란 놈이 키는 작아도 다부지기는 무섭지. 그 키다리가 나가떨어지는 걸 좀 봤더면 정말 장관이었을 텐데……."

"아무리 하면 근력이야 장달을 당할 수가 있나. 그 검센 주먹으로 내리쳐서 웃보의 갈빗대가 부러졌대."

"아마 두 개가 부러졌다지."

"아니야, 세 개래."

부러진 갈빗대 수효까지 따지며 살가죽을 헤치고 보고나 온 듯이 말하는 위인도 있었다.

"대체 싸움은 왜 했다는 거야."

"여태까지 그것도 모르시오. 그야말로 종일 통곡에 부지하 마누라 상사격이구려. 장달이가 막 들어서니까 웃보가 아사녀를 끼고 앉았더래."

"저런 망할 녀석 봤나."

"아니야, 그 싱거운 키다리가 새벽같이 달려들어 채 잠도 안 깬 아사녀에게 덤벼들었대."

"그 코끼리 같은 놈이."

"그래 그걸 보고 웃보가 후려갈겼다나 봐."

"웃보란 놈은 새벽에 뭣 하러 아사녀한테 갔던가."

"그야 모르지."

"아니래. 웃보가 먼저 가 있었대."

"장달이가 먼저 갔대도 그러네."

"그야 어느 놈이 먼저든지 똑같은 놈들이지."

"그는 그래."

"아무튼 아사녀가 큰일났군. 아사달이란 놈은 한번 가더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고 아비마저 죽고 없으니 그 젊은것이 탈이 아니 날까."

"그 승냥이떼 같은 제잣놈들이 그냥 둘 리 없지."

"이쁘기나 여간 이뻐야지."

"이놈, 너도 생각이 다르구나."

"말이야 바른 말이지, 침이 그대로 꿀떡꿀떡 넘어가는걸 뭐."

손바닥만한 동리의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뭇 입길에 아사녀의 이름이 오르내리었다.

제자들은 아사녀에게 달려와서 제각기 분개한다.

"그놈들이 어디 싸움할 데가 없어서 여기를 와서 치고 받고 하다니 고약한 놈들 같으니."

"그놈이 사람이란 말이오. 스승의 상청이 바로 여기 있는데."

"돌아가신 스승의 눈에 채 흙도 들어가기 전에 그 외동따님을 놀려대다니 똥으로 쳐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 같으니."

하고 작지는 입에 게거품까지 흘리었다.

"그런 놈들은 인제 이 문전엔 발그림자도 얼씬 못 하게 해놓아야."

싹불이가 이를 득 갈아 붙이었다.

"그래 웃보란 놈이 아주머니 젖가슴에 손을 댔다지요."

작지는 흉장이 막힌다는 듯이 숨을 헐레벌떡거리며 물었다.

"아녜요. 그런 일은 없어요."

아사녀는 고개를 빠뜨리며 얼굴을 붉히었다.

"아니 그놈이 아주머니를 두리쳐 끼고 입을……."

아사녀는 귀를 막고 싶었다.

새빨갛던 그의 얼굴은 대번에 파랗게 질리었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하나. 설마 그럴 리야 있겠나."

"그럴 리가 다 무엔가. 나는 장달에게 바로 들었는데."

"아니라네. 나는 웃보에게 들은 말이지만 장달이란 놈이 아주머니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사녀는 그 자리에 고꾸라질 듯하는 몸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이럴 때에 팽개라도 왔으면 싶었다. 그가 왔으면 이 무도한 자들을 물리쳐 줄 것 같았다. 저희들끼리는 서로 뜯고 으르렁거려도 팽개의 앞에는 고개를 못 드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팽개의 발길은 너무도 드물었다.

그는 특별한 일 없이 결코 아사녀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올 적마다 빈손으로는 오지 않았다.

쌀이 떨어질 만하면 영락없이 쌀을 팔아 가지고 오고, 나무가 거의 다 없어져서 오늘 저녁을 어떡하나 할 때에는 기별이나 한 듯이 나무를 꾸려 가지고 왔다. 하다못해 고기 매와 생선 마리라도 들고야 왔다.

온다 해도 방에는 말할 것 없고 마루에도 잘 올라앉지 않았다. 아무리 아사녀가 권하여도 마루 끝에 그냥 걸터앉았다가 그대로 일어서 버리었다.

말을 한대야 집안 두량에 관한 말뿐 별로 다른 수작이 없었다.

다른 제자들은 오기만 하면 눌러붙고 상없고 무참한 소리를 거침없이 지절거리는 데 진절머리가 난 아사녀에게는 그가 마치 거룩한 부처님같이 보이었다. 너무 설면설면한 것이 도리어 야속할 지경이었다.

69[편집]

기다리고 기다리던 팽개는 그날 다 저녁때나 되어서 매우 침통한 얼굴찌로 나타났다.

아사녀는 반색을 하며 일어나 마루 끝까지 나와 맞았다.

"어서 오세요, 올라오세요."

그러나 팽개는 그 말에는 대답도 하지를 않고 석고대죄나 할 사람 모양으로 두 손길을 마주잡고 허리를 구부리고 선 채 이윽히 말이 없다.

지금까지 시끌덤벙하던 뭇 아가리들도 자갈 먹은 말처럼 쭉 닫혀지고 말았다. 나이 탓도 탓이려니와 워낙 얻어먹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팽개라면 꿈쩍도 못 하였다. 더구나 오늘같이 된 소리 안 된 소리 떠들고 있다가 팽개의 엄숙한 거동을 보매 더욱 찔끔을 한 것이었다.

한참 만에야 팽개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주머님 세상에 그런 변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죽이나 놀라셨을까. 모든 것이 내 불찰입니다. 그런 놈들을 단속을 못 한 내 잘못입니다. 무슨 낯으로 아주머님을 뵈올까."

"왜 팽개님 탓이에요, 왜 팽개님 탓이에요."

하고 아사녀는 억색하여 한 말을 되풀이하며 무에라고 뒤끝을 맺을지 몰랐다. 장달과 웃보의 싸움도 싸움이려니와 그 싸움으로 말미암아 해괴한 소문이 나서 차마 입에도 못 담을 소리를 들은 것이 더욱 분하고 원통하였다. 그렇다고 싸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이러한 것은 생판 헛소문이라고 변명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더러운 말을 어찌 입결엔들 올릴 수 있으랴. 그는 오라비 겸 아버지 같은 팽개에게 매어달려 실컷 마음껏 울고 싶었다.

"그런 짐승만도 못한 놈들. 스승의 따님이면 저희에게도 누님이 되려든. 그러니 그런 해참한 일들이 어디 있단 말씀입니까."

"오라버님!"

아사녀는 한번 힘있게 불렀다.

"그러면 오라버님도 그 터무니없는 소문을 믿으십니까."

아사녀는 그 자리에 엎어져 울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팽개는 제 말이 조금 지나친 것을 깨닫고 당장에 돌려 대었다.

"내가 왜 그 종작없는 소문이야 믿겠습니까. 그놈들도 설마 사람인데 그런 일이야 있겠습니까. 내 말은 그놈들이 아주머님께 어쩌고저쩌고 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아주머님 앞에서 말다툼인들 왜 하느냐 말입니다. 더구나 치고 받고 하다니 그런 해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팽개는 십년공부가 나무아미타불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는 사람으로 뿌옇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 아주머님 앞에 언감생심인들 그놈들이 그럴 리야 만무하고 말고, 만무하고말고. 내가 미쳤다고 그런 소문을 꿈엔들 믿겠습니까."

얼락녹을락하는 제 변명에 아사녀가 솔깃해지는 눈치를 차리자 팽개는 슬쩍 싹불을 보고 눈짓을 하고 나서,

"다들 사랑으로 나가!"

불호령을 내리며 눈으로 휘몰아 내듯이 좌중을 부라리었다.

싹불이가 무엇에 튕기는 듯이 발딱 일어나 서며,

"자,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떠들고 있을 게 아니라 일어서 나가세."

하고 제가 먼저 마루에서 내려선다. 여러 제자들도 쭉 따라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팽개의 일령지하에 찍소리도 못 하고 움직이는 광경이 아사녀의 눈에 팽개를 여러 곱 돋보이게 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장사를 치르고 난 뒤에 묵혀 둔 사랑에는 먼지가 켜켜이 앉았다.

싹불은 앞장을 서서 비를 들고 나가서 부산하게 쓰레질을 하였다.

팽개의 명령으로 장달과 웃보도 불리어 왔다. 당사자 둘을 대면을 시키고 그 괴변을 듣자는 것이었다.

여러 제자들은 그 두 사람을 치훑고 내리훑어 보았으나 장달의 턱도 그대로 붙어 있고 웃보의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인 듯하였다.

팽개의 문초에 그들은 서로 손찌검을 저편에서 먼저 하였다고 빡빡 세우며 끝장이 나지 않았다.

"너희놈들끼리 손을 먼저 대고 나중 댄 것은 여벌문제다. 아사녀에게 손을 먼저 댄 놈이 어느 놈이냐."

팽개는 원님보담 더 무섭게 호령하였다.

"어느 놈이냐, 어느 놈이야."

몇몇 제자들도 목에 핏대를 올리며 부르짖었다. 기실 두 놈이 싸운 것보담 이 문제가 그들에게 가장 크고 가장 흥미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아사녀에게 손을 대어?"

장달은 무슨 영문인 줄도 모른다는 듯이 도로 묻는다.

"이놈, 웃보, 너는."

"이 키다리가 아사녀 듣는 데서 내가 술청 갈보를 호려 내었다고 해서……."

"이놈아 누가 술청 갈보 말이냐, 아사녀 말이지."

"그놈 멀쩡한 놈, 왜 갈보 얘기를 끄집어낼까."

"그래 이놈아, 네 눈은 아사녀가 갈보로 보이더냐."

"그놈 혓바닥을 끊어 놓아라."

여럿이 욱대기는 바람에 웃보는 얼굴이 노래지고 변명 한마디 못 하였다.

아무튼 두 놈이 다 같은 놈이니 이후로는 스승의 문전에는 발그림자도 못 하도록 결말을 지었다.

70[편집]

제절제절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에 아사녀는 잠이 깨었다.

가뜩이나 수수산란한 심사가 장달과 웃보의 사단으로 말미암아 더욱 어지러워져서 한 경만 자고 나면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아사달이 집에 있고 아버지 생전에는 누가 동여 가도 모르던 잠이었다. 그러던 것이 남편이 떠나면서 잠마저 가져간 듯, 난생 겪어 보지 못한 잠 안 오는 밤이 이따금 그를 찾게 되었다.

첫 이별의 쓰라린 맛도 견디기 어려운데 소태 같은 불면증까지 그를 괴롭게 할 줄이야. 그러나 그것도 한해 두해가 지나가자 고달프고 고소한 잠이 다시 애젊은 그를 찾아왔더니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매 슬픔과 설움도 둘째 셋째요, 첫째 휘젓하고 무서운 증이 나서 또다시 잠을 이루려야 이룰 수 없었다. 금방 들다가 금방 깨고 코 한번 옳게 못 골아 보고 훤하니 밝는 수도 항다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아찔은 삽사리가 허덕대고 짖는 것이었다. 그 컹컹 소리만 들으면 아사녀는 질겁을 하고 일어앉았다. 간이 콩만해지고 가슴은 까닭 없이 뚝딱거린다.

'누가 오나!'

이런 생각을 하면 괜히 머리끝이 쭈뼛해지고 마음이 오마조마하였다. 햇구멍 막히기가 무섭게 닫아걸었지만 문새들이나 잘 걸려졌는지 방 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기도 하였다.

'혹시 아사달님이 오시나.'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아무리 무서워도 기어코 방문을 바시시 열어 보아야 직성이 풀리었다.

텅 빈 뜰에 달그림자만 어른거릴 때도 있고, 또는 바람이 일렁일렁 불어 일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캄캄한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개는 이리 오르르 저리 오르르 뛰어다니며 세차게 짖었다. 하도 여러 번 속아서 인제 개 짖는 소리도 시들해지고 혼자 자는 데 단련이 되어 어찌하면 잠도 곧잘 오게 된 판에 그 지긋지긋한 사단이 벌어졌다.

이럴까 저럴까, 천 가지 만 가지 사려에 어젯밤도 고스란히 밝혔다가 새벽녘에야 잠깐 눈을 붙인 것이 해가 돋도록 지나쳐 자고야 만 것이다.

방문을 열고 나와 보매, 제비 두 마리가 빨랫줄 위에 납신 올라앉아서 추녀 끝을 쳐다보며 고 어여쁜 대가리를 갑신거리며 연상 재잘거린다. 햇빛을 담속 안고 그 흰 뱃바닥과 남빛 날개는 윤이 자르르 흐른다.

아사녀는 가벼운 하품을 한번 하고, 고 혀를 돌돌 말아 붙이고 꽈리를 불어 터뜨리는 듯한 소리를 어느 때까지 듣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움트기 시작한 '봄'은 벌써 활짝 피었다.

'제비도 옛 집을 찾아오는데.'

아사녀는 날짝지근한 몸에 기지개를 한바탕 늘어지게 켜면서 혼자 생각하였다.

아사달은 웬일일까. 늦잡아도 이태면 이룩될 탑이거늘 어째 입때 오지를 않는가. 올 때 지난 지가 벌써 오래이거든 어째 온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가.

오늘따라 아사녀는 아사달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아침 저녁 밤과 낮으로 문득문득 생각 안 나는 것이 아니지만 인제 기다리기에도 지치어서 처음 모양으로 뼈끝이 저리도록 기다려지지는 아니하였다. 더구나 요새 와서는 제자들이 들고 나고 엄벙덤벙하는 바람에 마음놓고 아사달 생각조차 못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제비가 온 것을 보자 심청이 나도록 아사달이가 그리웠다.

'제비도 왔으니 그도 오려나.'

불현듯 이런 예감이 그의 뒤숭숭한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도 오늘은 꼭 올 거야, 꼭 올 거야.'

마침내 스스로 단정을 해버리었다. 세상없어도 오늘이란 오늘은 아사달이가 터덜거리고 들이닥치고야 말 것 같았다.

금시로 들어설 듯 들어설 듯하여 사립문을 내다보고 또 내다보았다.

"어서 밥을 지어 놓아야."

그는 부리나케 물을 긷고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밥솥에 불을 지피면서도 몇 번을 내다보곤 하였다.

밥을 다 지어 놓고 아사달의 몫으로 밥 한 그릇을 떴다.

삽사리도 주인의 뜻을 아는지 그 몽탕한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들어 치맛단 위에 깡충깡충 뛰어올랐다.

"너도 서방님이 오늘 오실 줄 아니."

하고 아사녀는 그 숱 많은 대강이를 어루만져 주었다.

오래간만에 차려 놓은 겸상! 밥 한 그릇 더 올려놓은 것만 보아도 휑뎅그레한 집 안이 그득히 차는 듯하였다.

밥상을 차려다 놓고 행길에 나와서 서울길을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았다.

"내가 미쳤나."

다시 들어와 숟가락을 들었으나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지를 않았다.

"설마 오늘 해 안으로야."

그래도 아사녀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71[편집]

그날 해도 떨어졌건만 아사녀의 바라고 기다리던 보람도 없이 아사달은 영영 그림자를 나타내지 않았다.

저녁이 되었다. 온 하루를 속았건만 또다시 남편의 저녁밥을 떴다.

암만해도 마음이 키인다.

이대도록 마음이 키이기는 갈린 지 삼 년 만에 처음인 양 싶었다. 세상없어도 오늘 밤에는 들이닥치고야 말 것 같다. 하필 오늘 제비가 날아오고 아침밥 뜨는 것을 보고 삽사리가 꼬리를 흔들며 좋아라고 뛰던 것이 심상할 까닭이 없다.

온다, 온다. 아사달은 분명히 온다.

어둑한 밤길을 재촉하며 허위허위 걷는 아사달의 모양이 자꾸만 눈에 밟히었다.

어디만큼 오시는가. 방장 숫재를 넘어서시는가.

"입때 숫재를 넘어서야 될 말인가. 그야말로 오밤중에나 들어오시게."

아사녀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숫재는 오늘 낮에 넘어섰으리라. 도적놈이 덕시글덕시글한다는 그 험한 재를 이 밤에 넘으실 리 만무하다. 하마 고란사 앞을 지나시는지 모르리라. 벌써 버드나뭇골 여울을 건너 우리 마을 골목으로 휘어잡아 드신지 모르리라…….

장사 지내고 남은 초로 불까지 환하게 켜놓고 아사녀는 턱없는 공상에 잦아졌다.

오늘 밤따라 삽사리도 철이 났는지 수선도 피지 않고 허청으로 짖지도 않는다. 비록 미물일망정 제 주인의 발자취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사녀는 웃목에 묻어 놓은 밥그릇을 몇 번을 다독거리고 몇 번을 만져 보며 귀에 정신을 모으고만 있었다.

어젯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 또는 외곬으로 정신을 모은 탓인지 이내 꾸벅꾸벅 졸며 쓰러졌다. 손으로 밥그릇을 부둥켜쥔 채로.

얼마 만에 아사녀는 번쩍 눈을 뜨고 질겁을 하며 일어났다.

'분명히 아사달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가.'

속으로 속살거리고 아무도 없는 방 안을 휘 둘러보며 무안한 듯이 해죽이 웃었다.

잠을 깨려 하면 할수록 게으름이 길길이 나고 두 눈은 졸아붙는다.

'사립문을 단단히 걸어 두었는데 만일 내가 깜박 잠이 들어 정작 아사달님이 돌아오시어 문을 뚜다려도 모르면 어떡하나.'

졸린 중에도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문간으로 나갔다. 잠 오는 품이 암만해도 한번 잠이 들면 좀처럼 깨어날 것 같지 않다. 차라리 자물쇠를 열고 문고리를 벗겨 두는 것이 나을 성싶었다.

자물쇠를 열어 가지고 들어와 보니 또 허수해서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문을 열어 놓다시피 하고 홀로 자다가 무슨 변이 정말 생기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닌가.

자물쇠를 쥐고 한참 망단해하다가 마침내 다시 나가서 채우고 들어왔다.

'잔뜩 정신만 차리고 잔다면야 설마 그렇게 잠귀가 어두울까.'

사면이 솔가지로 되는 대로 막아 놓은 엉성한 울타리지만 사립문이라도 잠가 놓으니 아까 열어 놓은 때보담 한결 든든하였다.

그 대신 밤마다 닫아걸던 방문 단속을 그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꼬끼요, 어디선지 첫닭이 운다.

"닭이 울어도 안 오시네."

그는 소리를 내어 종알거렸으나 반은 잠꼬대였다.

잠을 설자리라 하고 여러 번 마음에 새기었지만 변으로 고단한 잠은 요도 안 깔고 쓰러진 그의 몸에 나른하게 퍼지었다.

앞뒤 정전을 돌며 캥캥 하고 사나웁게 짖는 삽사리 소리를 듣고 잠결에도,

'인제야 아사달님이 오시는가 보다.'

생각을 하고,

"요개, 요개."

하며 손까지 내저었으나 꼬박꼬박 오는 잠은 쉽사리 물러서지를 않았다.

뒤꼍에서 버석버석 울타리 뜯는 소리가 나고, '쉬쉬' 하며 개를 으르는 인기척까지 어렴풋이 들렸으나 잠은 막무가내로 퍼붓는다.

'아사달님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번쩍 들며 아사녀가 질겁을 하고 일어날 때는 사푼사푼 하는 발자국 소리가 이미 앞으로 돌았다.

천방지축으로 방문을 열고 나선 얼떨떨한 아사녀의 눈에 웬 검은 그림자가 성큼 하고 마루에 올라서는 것이 보이었다.

72[편집]

"아사달님!"

아사녀는 허둥지둥 마주 달려나가며 그 검은 그림자를 향하여 부르짖었다.

"응, 응."

그 검은 그림자는 고개를 수그리고 옷에 먼지를 툭툭 털며 웅얼웅얼 대답을 한다.

"아사달님!"

아사녀는 또 한번 부르짖고 회오리바람처럼 그리고 그리던 남편의 가슴패기에 몸을 던지려 하였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는 슬쩍 몸뚱이를 모로 돌리고 왼팔을 꾸부정하게 들어 옆으로 어색하게 아사녀를 껴안으며 오른손으로 눌러쓴 벙거지 차양을 밑으로 잡아늘이었다.

"객지에 고생이 오죽하셨을까."

하고 아사녀는 두 팔로 남편의 등과 배를 얼싸안으며 그 겨드랑이에 얼굴을 비비대고 복받쳐 나오는 울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남편은 너무 억색하여 말을 이루지 못하는 듯,

"응, 응."

역시 코대답만 하고 아내를 안은 팔뚝에도 정겨운 힘다리 하나 없었다. 매우 난처나 한 것같이 엉거주춤하고 서 있을 뿐. 아내는 한참 만에야 샘솟듯 하는 눈물을 가까스로 거두고,

"그래 대공은 다 마치셨어요."

가장 먼저 알고 싶은 말부터 묻고 갸웃이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래."

남편의 대답은 또한 자세치 않았다.

촛불빛이 약하여 워낙 마루까지는 흘러나오지 않았고, 더구나 모로 선 까닭에 귀밑 언저리만 으렷이 보일 따름이었다.

'삼 년 동안에 변하기도 무척 변하였구나.'

아사녀는 마음 그윽이 놀랐다.

밤눈에나마 목덜미와 귀의 모양까지 변한 듯하였다. 그렇다면 제 팔 안에 든 등과 배도 떠날 때와는 딴판으로 두툼하게 살이 오른 것을 느끼었다.

더구나 그 음성조차 못 알아듣도록 달라졌다. 그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청은 어디로 가고, 몇 마디 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꺽꺽하게 쉬어진 것 같다. 서라벌 사투리가 우락부락하다더니 그새에 사투리가 목소리에까지 젖고 말았는가.

"내가 왜 이러고만 있을까. 오죽이나 다리가 아프실라구.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요."

하고 아사녀는 남편의 겨드랑이에 댄 이마를 떼었다.

그럴 겨를도 없이 그 검은 그림자는 얼른 제가 앞장을 서며 팔을 뒤로 돌려 아사녀를 옆에 끼고 어구적어구적 걸었다. 한번 잡은 아내를 놓칠까 보아 두리는 듯.

아내는 뒤에서 남편이 방문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에구머니나, 키도 작아졌네.'

혼잣속으로 속살거렸다.

'몸이 난 까닭에 키까지 달라붙어 보이는가.'

방 안에 들어선 남편은 아랫목으로 아니 가고 웃목 촉대 앞으로 먼저 갔다.

내젓는 손이 얼진 하고 불 위를 스치는 듯하였다. 그 마디가 굵은 뭉툭한 손가락이 환하게 아사녀의 눈에 뜨이자마자 갑자기 촛불은 탁 꺼지고 말았다.

"왜 불을 꺼요."

아사녀는 기겁을 하였다.

"손길에……."

그 검은 그림자는 황급히 변명을 하였다.

"그러면 석유황 개피를 찾아야."

하고 아사녀는 끼인 몸을 재빠르게 빼어 석유황 개피를 얹어 둔 문틀 위를 더듬더듬 찾는데 별안간 그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고 손이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아니나다를까, 그 검은 그림자는 등뒤에서 다짜고짜로 아사녀를 부둥켜안으려 하였다.

아사녀는 선뜩 몸을 빼쳤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억센 오른손 아귀에 아사녀의 왼 손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아사녀는 손을 뿌리치려고 바둥거리며,

"누구요, 누구요."

소리를 질렀다.

"내다, 내다."

그 검은 그림자도 허청거렸다.

"내가 누구란 말이오. 내란 누구야."

"나를 몰라, 나를 몰라."

"몰라요, 몰라."

돌변한 아사녀의 태도에 검은 그리자도 화증을 더럭 내었다.

"아사달을 몰라."

내던지듯 한마디하고 잡힌 손을 으스러지도록 쥐어 낚아챘다.

"아야야, 아니야, 아사달이 아니야."

아사녀는 휘둘리어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버티며 외쳤다.

"아니면 어떻고 기면 어떠냐."

마침내 검은 그림자가 거짓탈을 벗어 버리고 제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어 다시 한번 휘술레를 돌리는 바람에 아사녀의 갸날픈 몸은 허깨비같이 자빠졌다.

어두운 가운데도 아사녀는 그 검은 그림자가 뒤덮는 듯이 제 몸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사람 살리우, 사람 살리우."

아사녀는 바윗덩이에 지질린 것 같은 제 몸을 버르적거리며 악을 악을 썼다.

73[편집]

"사람 살리우, 흥, 누가 죽이느냐."

검은 그림자는 씨근씨근 짐승 같은 숨길을 자빠진 아사녀에게 내뿜으며 덤벼들었다.

"애구 죽겠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천근이나 되는 듯한 사내의 몸뚱어리가 무겁게 엎누르는 것을 떠다박지르며 아사녀는 바락바락 악쓰기를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악지가 무슨 악지냐."

검은 그림자는 버둥거리는 아사녀의 두 손목을 한 손에 겸쳐 잡으려고 곱이 끼었다가 소리치는 입부터 틀어막으려 들었다.

밑에 깔린 이가 고개를 사납게 뒤흔들기도 하였거니와, 어둠 속이라 누르고 있는 놈의 손은 허청만 짚고 얼른 입을 찾을 수 없었다.

"사, 사람 살려."

쇠된 소리는 연거푸 밤공기를 찢었다.

검은 그림자는 할 수 없이 깔아 붙였던 몸뚱이를 웅크리며 두 손으로 아사녀의 입을 움키려 하였다.

그 서슬에 아사녀는 잽싸게 몸을 빼쳐 화다닥 일어나며 젖 먹던 힘을 다 들여 대드는 검은 그림자를 뿌리쳤다.

"도적이야, 도적이야."

소리소리 지르며 아사녀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려 하였건만 문은 손쉽게 열리지 않았다.

마침내 쇠깍지 같은 팔뚝은 아사녀의 가는 허리를 휘청하도록 부둥키고 말았다. 장작개비처럼 뻣뻣한 팔꿈치로 잡힌 이의 겨드랑이를 치슬러 버통개를 지르며 억센 손은 더듬어 올라와 아사녀의 코와 입을 얼싸 틀어막는다.

"끙, 끙."

아사녀는 인제 소리는커녕 숨도 옳게 못 쉬고 안간힘만 쓰며 몸부림을 쳤으나 마치 독수리의 발에 채인 참새가 팔딱거리는 데 지나지 못하였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그 흉측한 팔뚝과 손아귀에는 더욱 무서운 힘이 오르며 잡힌 몸이 바스러지는 것 같다.

"내가 매친 년이야, 매친 년이야."

경황없는 가운데에도 아사녀는 제가 저를 꾸짖었다.

천리 밖에 있는 남편이 어떻게 오리라고 그 걸신을 하였던고. 하마하마 들이닥칠 줄을 어찌 어림없이 믿었던고. 다른 날 다른 밤을 다 내놓고 하필 이 끔찍한 오늘 밤에 그가 돌아온다 생각하였던고.

아무리 잠결인들 이 흉한 놈이 울타리 뜯는 것을 번연히 듣고도 그냥 내버려두다니. 그 흉물스런 발자취를 아사달님의 기척으로 반기다니.

어림없이 마음이 달뜬 탓에 이런 욕을 볼 줄이야.

이 짐승 같은 놈을 남편으로 그릇 알아본 이 눈을 빼고 싶다. 이 흉측한 놈을 아사달님이라고 부른 입술을 뜯고 싶다. 그 더러운 몸뚱어리를 얼싸안은 이 팔뚝을 잘라 버리고 싶다…….

아사녀는 이젠 팔딱거리는 기력조차 풀려지는 것을 느끼었다.

제 입술을 깨물며 마지막 용을 쓰는 순간, 그 흉한도 대항거리로 우쩍 기운을 내어 아사녀를 팔랑개비같이 쓰러뜨렸다.

아까 한번 놓친 데 혼이 났던지 흉한은 쓰러진 이의 가슴을 무릎으로 잔뜩 깔아 용신을 못 하게 하고 한 손으론 여전히 입을 틀어막고 있다가 무엇을 생각하였던지 제 벙거지를 벗었다.

벙거지를 뚤뚤 말아 아사녀의 복장과 제 무릎 밑에 끼우고 나서 다시 제 허리끈을 끌렀다.

그리고 다시 제 벙거지를 빼내어 도레질하는 아사녀의 입을 아갈잡이를 하고 허리끈으로 친친 동여맨다.

"이래도 소리를 지를까, 씩."

흉한은 코웃음을 치고 발버둥치는 아사녀의 두 다리를 제 두 무릎 사이에 끼워 누르며 이번에야말로 맥이 풀린 아사녀의 두 손목을 한 손에 휘잡게 되었다.

"인제도, 인제도, 흥, 흥."

아사녀는 무엇보담도 그 흉한의 웃는 소리에 소름이 끼치었다.

놈의 말마따나 인제 아무리 앙탈을 해도 헤어날 길이 없다.

"죽여라, 죽여!"

아사녀는 울대에 피를 끓여 올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개도 제 주인으로 속았는지 짖지도 않는다.

그때였다. 뒤꼍에서 두런두런하는 인기척이 아드막해진 아사녀의 귀에도 들려 왔다.

"그놈이 여기를 뜯고 들어갔네그려."

"원 죽일 놈 같으니."

죽은 듯이 아무 소리가 없던 삽사리가 이제야 어디서 내닫는지 캥캥 하며 오르르 뛰어나온다.

별안간 방문이 환해지며 횃불을 들고 오는 듯한 발자취가 벌써 우둥우둥 마루에서 났다.

74[편집]

인기척이 나자 흉한의 손짓은 더욱 황급해졌다. 헤치던 옷자락을 인제 마구 찢어 제친다.

그러나 뜻밖의 사람 소리에 새 기운을 얻은 아사녀가 모질음을 쓰는 바람에 한 손에 겸쳐 쥐었던 두 손목을 놓치고 말았다.

추근추근하고 미련한 흉한도 그제야 만사가 틀린 줄 깨달은 모양이었다.

"엑, 에잇!"

혀를 한번 차고 꼬았던 다리를 풀고 달아날 문을 찾았으나 그 손길이 채 문에 닿기 전에 바깥에서 먼저 문을 열어 젖뜨렸다.

흉한의 코빼기를 지질 듯이 횃불을 들이대고 들어오는 사람은 팽개와 싹불이었다.

"이놈 작지야."

팽개는 흉한을 보고 호통을 쳤다. 흉한은 허리끈을 끄른 탓에 고이춤이 훨렁 벗겨져 내려가는 것을 두 손으로 잔뜩 쥔 채 핏발 선 눈을 희번덕거리며 이 생각지 않은 방해자들을 노려본다.

이런 경우에도 찬찬한 팽개는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들어와 횃불로 먼저 초에 불을 다리고 아사녀 곁으로 와서 우선 아갈잡이한 것부터 끌러 놓았다.

풀어헤쳐진 젖가슴에는 사나운 손자국이 지나간 자취가 불긋불긋 여기저기 꽃잎을 그리고 짚수세미 다된 아래옷이 그나마 갈기갈기 찢어져 눈덩이 같은 허벅지가 반나마 드러났다. 깨문 입술에는 피가 방울방울 맺혀 떨어진다.

"아주머니!"

팽개는 어색한 듯이 한마디 부르짖었다.

아사녀는 긴장했던 마음이 일시에 풀리자 정신조차 잃어버린 듯 눈까지 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늘어졌는데 쌔근쌔근하는 가쁜 숨길만 지나간 모진 싸움의 벅차고 괴롭던 것을 알리는 듯하다.

"아주머니!"

팽개가 또 한번 부르짖자 그 은행껍질 같은 눈시울이 살짝 열리다가 제 꼴이 너무 사나운 것을 알아차렸던지 옳게 깔아 놓지도 못한 이불자락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돌아누워 버린다. 팽개는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작지에게로 고개를 돌리었다.

작지는 팽개가 아사녀의 곁으로 간 틈을 타서 몸을 빼치려 하였으나 싹불이가 문을 막아서서 있기 때문에 달아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숨만 헐레벌떡거린다.

"이놈, 이 짐승만도 못한 놈, 이게 무슨 짓이냐."

팽개는 어느 틈에 작지 옆에 와서 섰다.

작지는 맹렬한 기세로 돌아서며,

"네놈은 그게 무슨 짓인지 입때 모르느냐. 네놈은 왜 아닌밤중에 남의 홀아씨 자는 방엘 들어왔느냐."

하고 시뻘건 눈을 부라리며 도리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이놈이 별안간에 환장을 했나. 이놈아, 내가 네놈 모양으로 혼자 왔느냐."

팽개는 적반하장격으로 대어드는 작지의 기세에 적이 서먹서먹해졌다.

"이놈아, 둘이만 다니면 고만이냐. 싹불이는 네놈의 병정. 싹불이 같은 놈 열 놈을 데리고 다니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네놈이 눈 한 번만 껌적하면 언제든지 꽁무니를 뺄 놈인데……."

"이놈을, 이놈을."

하고 싹불은 펄쩍 뛰며 작지의 뺨을 냅다 갈기었다.

"오냐, 너희놈은 두 놈이고 나는 혼자다. 실컷 때려라, 때려. 이놈 싹불아, 너도 사람의 외양을 갖춘 놈이 그래 쌀됫박이나 얻어먹는다고 친구 여편네 호려 내는 데 병정이나 서고 다닌단 말이냐."

"이놈이, 이놈이."

싹불은 치를 떨며 작지의 멱살을 잡아 끈다.

"이놈 이리 나오너라, 마루로 나오너라."

"나가마, 염려 마라. 너희놈들이 헤살을 논 다음에야 내가 아사녀 방에 만년을 있으면 뭘 하느냐."

후당퉁당 두 놈은 마루에서 엎치락뒤치락하였다.

팽개도 평일의 점잔빼던 것은 어디로 갔는지 덤벼들어 늘신하게 작지를 후려갈겼다.

"이런 놈은 죽여 버려야."

싹불은 작지의 목을 지그시 밟았다.

"어규, 어규, 사람 죽네. 이놈들이 사람 죽이네. 이놈들아, 웃보와 장달도 발을 끊었고, 나도 내일부터는 이 문전에 얼씬을 않을 테니 너희 두 놈이 아사녀를 볶아먹든지 삶아먹든지 마음대로 뜻대로 하려무나. 왜 이놈들아, 너무 좋게 되어서 사람을 죽이려 드느냐."

"이놈이 그래도 아가리를 함부로 놀려."

"그놈을 아갈잽이를 해라. 저 방에 끌러 놓은 제 벙거지와 제 허리끈으로 우리 아주머니 원수를 갚자."

"흥, 우리 아주머니! 이놈 팽개야, 이 음흉한 놈아, 낫살이나 먹은 놈이 어디 계집이 없어서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면서 행투를 내려 드느냐. 아서라, 아서."

작지는 죽도록 얻어맞으면서도 노상 입정을 놀리었다.

75[편집]

그 이튿날부터 팽개와 싹불은 아사녀 집의 사랑방을 치우고 들게 되었다.

장달과 웃보 사단쯤은 오히려 깨소금이요, 무참한 작지의 흉행이 또다시 생기는 날이면 한 번은 천우신조로 요행히 모면을 하였지만, 두 번째까지야 외롭고 연약한 아사녀로 다시 막아 내기 어려운 노릇이니 돌아가신 스승의 은혜를 생각한들 멀리 간 친구의 우정을 생각한들 제백사하고라도 외동따님과 젊은 아내를 극진히 두호하고 방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물론 팽개의 발설로 아사녀에게 그런 사연을 떡먹듯이 일러 듣기었고, 당일도 또 조무래기 제자들을 모아 놓고 어엿이 공포를 하였다. 우두머리 제자들이라야 장달 웃보 작지를 빼어놓고는 팽개와 싹불뿐이요, 그 중에도 우두머리 가는 팽개의 처단하는 일이니 어느 뉘 하나 감히 반대들을 못 하였다.

딴은 그런 고약하고 흉측한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바에야 밤낮으로 파수 보는 사람 하나 둘은 있기도 있어야만 할 일이었다.

"스승의 뼈가 아직 썩지를 않고 아사달이 서라벌에 눈이 등잔같이 살아 있거늘 이런 변괴가 어디 또 있단 말이오. 아무리 말세가 되었기로 그런 인륜도 모르고 스승의 은혜도 모르는 죽여도 죄가 남을 놈들이 어디 있단 말이오."

팽개가 눈물과 소리를 한꺼번에 떨어뜨리며 한바탕 늘어놓을 제 어린 제자들 중에는 덩달아 눈물을 흘리고 작지의 소행에 이를 갈아붙이는 이도 있었다.

아사녀도 팽개와 싹불이가 이젠 노박이로 와 있다는 말에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그날 밤에 작지가 팽개와 싹불에게 얻어맞으면서 끝까지 발악을 하던 말을 아사녀가 아니 들은 것도 아니었다. 어찌하면 '그놈이 그놈이다' 하는 의심이 그의 놀란 가슴을 다시 두근거리게 하지마는 뒤미처,

'아니다, 아니다. 그이는 그럴 이가 아니다. 만 사람을 다 못 믿어도 그이만은 믿어도 좋다.'

이날 이때까지 팽개의 행동을 되삶고 곱삶아 보아도 그런 사색조차 채인 일이 없다.

다른 제자들은 입정도 마구잡이요, 음담패설을 함부로 늘어놓는다. 적이 염양이 있는 위인도 입으로는 딴청을 부려도 자기를 보는 그 눈에는 음탕한 빛을 감추지 못한다. 그 중에 점잖다는 장달이 그러하였고 살살 웃음으로 발라맞추는 웃보가 그러하였다. 더구나 없는 정도 있는 듯이 척척 부닐고 추근추근하게 수작을 붙여 보려고 곱들이 끼이었다.

그러나 팽개는 언제든지 제 할 말만 하면 고만이요, 한번 자기를 바로 보는 눈길조차 보지 못하였다. 지그시 아래로 내려감든지 그렇지 않으면 딴 데를 보았지 다른 제자들처럼 낯이 간지럽도록 맞대해 바라보는 법도 없었다.

그런 이가 그런 나쁜 심정을 가졌다고 생각만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어 미안한 일이다, 은혜를 모르는 일이다, 하늘이 무서운 일이다.

작지가 악풀이로 휘동대동 함부로 팽개를 먹어 댄 데 지나지 않는다.

'그이가 그럴 리야, 그 어른이 그럴 리야.'

속으로 뇌고 또 뇌며 아사녀는 여러 번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작지에게 워낙 혼이 몹시 난 터이라, 아무리 팽개를 믿지마는 밤이 되면 방문을 꼭꼭 닫아거는 것을 아사녀는 잊지 않았다.

인제 그는 아사달이가 돌아오기를 그리 몹시 기다리지도 않는다. 오지도 않는 남편을 까닭 없이 오려니 달뜬 생각을 하였다가 그런 몹쓸 변을 당하지 않았는가. 애닯은 그리운 정이 드는 것도 인제 이에 쓴물이 난다. 정말 아사달이가 왔다 해도 밤에는 만나지 않으리라고 속으로 맹서하였다.

그런 끔찍한 일이 골똘한 제 생각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줄이야, 아사달이 꿈에도 모를 노릇이로되 어쩐지 요새 와서는 남편이 야속하고 무심한 것만 같다.

아무리 부여와 서라벌이 멀다 한들 어찌 편지 한 장이 없을까. 삼 년이나 길고 긴 동안에 설마 인편 한 번을 못 얻을까.

'서라벌에는 아름다운 여편네도 많다는데!'

언뜻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아사녀는 안절부절을 못 하였다. 믿고 믿는 남편이지만 '혹시나' 하는 터무니없는 공상이 독사와 같이 그 부드러운 창자를 물어뜯었다.

팽개와 싹불이가 사랑에 와서 지킨 지도 어느덧 달포가 넘었다.

아사녀의 어림짐작이 그대로 들어맞아 싹불은 더러 안에 드나들었지만 팽개는 이렇다할 볼일이 없고는 결코 안에를 들어오지 않았다.

아사녀가 정 심심하면 도리어 사랑으로 놀러를 나갈 지경이었다.

하루는 싹불이가 안에 들어와 마루에 걸터앉으며,

"아주머니, 난 오늘 서라벌 소식을 들었어요."

무두무미하게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76[편집]

"네? 서라벌 소식을 듣다니요."

아사녀는 제 귀를 의심하는 듯이 채쳐 물었다.

"오늘 아침결에 서라벌에서 온 사람을 만났지요."

"그래 아사달님이 잘 있대요."

하고 아사녀는 무릎을 세워 손으로 턱을 괴고 맥맥히 싹불의 입을 바라본다.

"잘 있기는 있답니다마는……."

싹불은 아사녀의 눈길이 부신 듯이 얼굴을 외우시며 어물어물한다.

"있기는 잘 있는데…… 혹은 무슨 일이?"

아사녀는 눈이 둥그래진다.

"아주머니 들으시기엔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라서……."

하고 싹불은 또 말끝을 흐리마리해 버린다.

"좋으나 나쁘나 적실한 소식만 들어도 얼마큼 속이 시원할 것 아녜요."

"바로 며칠 전에 서라벌을 떠나 온 사람이요, 제 귀로 듣고 제 눈으로 보고 왔다니까 소식이야 적실하지요만, 별로 신통치를 않아서……."

싹불은 채 말도 다 하기 전부터 장히 언짢은 듯이 눈살을 잔뜩 찌푸려 보인다.

"대관절 아사달님께 무슨 변고나 생겼대요. 어서 말씀을 좀 하셔요."

하고 아사녀는 날아 나갈 듯이 주저앉는다.

"허, 바른 대로 말씀을 하면 아주머님께서 상심만 하실 게고…… 어떡하나. 애당초에 말을 끄집어내지 말걸. 방정맞게 입이 가벼워서."

싹불은 매우 난처한 듯이 스스로 개탄하고, 스스로 꾸짖는다.

아사녀는 갈수록 초조해졌다. 무슨 소식이기에 저렇게도 말하기가 거북할까. 뜻밖의 불행과 변괴가 겹겹이 닥치는 내 팔자이거니 남편의 신상인들 좋은 일이 있을 리 있으랴. 무소식이 호소식으로, 불길한 소식이라면 차라리 귀를 막고 듣지 않는 것이 나을지 모르되 한번 허두를 듣고서야 뒤끝이 궁금하여 또 견딜 수 없었다.

"아무리 언짢은 소식이라도 들려 주세요. 이 위에 더 큰 불행과 슬픔이 있다 해도 나는 조금도 겁을 내지 않을 테니까요."

아사녀의 목소리는 벌써 울멍울멍해졌다.

"차마 아주머니께는 알리기 어려운 소식인데!"

하고 싹불은 제 머리를 짚는다.

"대관절 탑은 어떻게 되었답디까."

"탑이고 뭐이고…… 탑보담 더 큰 일이 생겼답디다. 그래서 탑공사도 벌써 끝이 났을 텐데 입때 미룩미룩하고 있답디다."

"탑보담도 더 큰 일이 무슨 일일까요. 그러면 그렇게 원을 하던 대공도 아직 못 이루고!"

"대공을 이루기는커녕 까딱하면 귀어허지가 될 모양이랍디다."

"녜?"

아사녀는 거의 외마디 소리를 쳤다. 그 차마 하지 못할 이별을 한 것도, 자기가 이 악착한 고생을 하는 것도 오직 대공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 탑 쌓는 일조차 허사라면!

아사녀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단단하고 착실하고 얌전한 사람이 그렇게 변할 줄이야."

싹불은 딱하다는 듯이 고개를 빠뜨리고도 슬쩍슬쩍 아사녀의 기색을 곁눈질하며 괴탄괴탄을 한다.

"아사달님이 사람이 변하다니요."

갈수록 심상치 않은 저편의 말에 아사녀의 가슴엔 무엇이 와지끈와지끈 부서지는 듯하다.

"그렇게도 아주머니와 금실이 좋던 그 사람이 변심이 될 줄이야, 변심이 아니라 무여 환장이라니까요."

싹불의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와 같이 아사녀의 가슴을 에어 내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서라벌에서 온 사람 말을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 여무진 사람이 그럴 리가 있느냐고 곧이듣지를 않았지요. 그런데 그 사람인즉 바로 불국사 아랫마을에 사는 사람인데 제 말이 거짓말이라면 눈이라도 빼어 놓겠다고 다짐까지 두었습니다. 그 사람이 올 때에 아사달을 보고 내가 지금 부여로 가는 길이니 가신이라도 있거든 전해 주마고 부탁까지 하였는데 편지 한 장을 부치지 않더라니 그것만 보아도 아사달이가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냐고요. 젊은 아내가 빈방을 지키며 남편 돌아오기만 고대고대를 하는데 저는 그래 한다하는 신라 귀인의 집에 장가를 들어 거드럭거리다니 그런 고약한 인사가 어디 있느냐고 노발대발을 하잖겠습니까."

"설마 장가야 들었을까."

그래도 남편을 어디까지 믿는 아사녀이었다.

싹불은 비웃는 듯이,

"설마 장가가 다 뭐예요. 벌써 자식까지 낳았다는데."

"벌써 자식까지!"

아사녀는 부르짖고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77[편집]

팽개는 사랑방에 번듯이 누워서 눈을 껌벅껌벅하며 무엇을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다가, 싹불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앉는다.

"어떻게 되었나."

싹불이가 채 자리도 잡기 전에 황황히 물었다.

"어떻게 되긴, 그야 여불없지."

하고 싹불은 싱글싱글 웃는다.

"그래 아무 의심도 않고 자네 말을 꼭 믿는 듯하던가."

"믿는 듯하기만 해, 내님의 말솜씨가 어떠마한데 제가 안 넘어가고 배기나."

"어유 장하다."

"장하다뿐이냐. 세상에 날고 기는 놈도 내님의 능청에 안 속을 장사가 없거든 고까짓 계집애의 여린 속쯤 뒤흔들어 놓기야 여반장이지."

하고 싹불은 의기양양하게 뽐낸다.

"그래, 자네 말만 들을 만하고 있고 아사녀는 아무 말도 않던가."

"말이 무슨 말인가, 그 자리에 그냥 고꾸라진걸."

"그 자리에 고꾸라지다께?"

"아사달이가 자식을 낳았다니까 대번에 폭 고꾸라지고 말데."

"자식까지 낳았다는 건 너무 과한데."

"장가만 들었다니까 어디 믿던가. 그래 얼른 자식까지 낳은 걸 보고 온 사람이 있다고 꾸며 대었지."

"원수엣놈, 능청맞게 자식 낳았다는 건 어떻게 생각이 났더람."

하고 팽개는 무릎을 탁 친다.

"딴은 말을 들여대자면 게까지 가기는 가야 될 거야."

"자네 시키는 대로 계집만 얻었다면 기연가미연가하지만 자식을 낳았다고 해야 아주 콱 믿는 것이거든."

"아사달이 그놈도 객지에서 삼 년이나 뒹굴었으니 그 흔한 서라벌 계집애 어느 눈먼 년 한 년 안 걸릴 리 없지만두 자식까지 낳았다는 건 생판 거짓말 같지 않을까."

"원 이런 사람 보게. 아니 그러면 귀인 댁에 장가들었다는 건 곧이들리겠나. 시골뜨기 석수장이 따위에게 어느 귀인 댁 따님이 미쳤다고 거들떠나 볼 것인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그렇기도 하지. 아무러나 아사녀가 감쪽같이 속아넘어가기만 하면 고만이니깐."

"그 말을 듣자 그 자리에 기급절사를 하였다는밖에."

"그래 고꾸라진 걸 어떡하고 나왔나. 또 음충맞게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껴안아 일으키고 수선을 피웠겠구나."

팽개는 능글능글 웃으며 농담 비슷하게 말은 하나마 그 눈에는 쌍심지가 선 듯하였다.

"그야말로 삼십리강짤세. 누가 눈독을 들이는 게라고 내가 손가락인들 대겠나."

"그러면 뒷수습은 어떻게 했단 말인가."

"뒷수습인지 앞수습인지 아주 학질을 뗐네. 누가 뒤에서 세찬 발길로 냅다 지르기나 한 듯이 코방아를 찧고 폭 엎어지며 숨도 쉬지 않네 그려. 그대로 기색이나 될 줄 알고 아주 쩔쩔매었네. 급한 마음으로는 잡아일으키고도 싶었지만 자네 강짜가 무서우니 손도 댈 수 없고."

"그 좋은 계제에 자네 같은 개잘량이가 손을 안 대고 배겨."

하고 팽개는 눈을 흡뜨다시피 하고 싹불을 노려본다.

"맙시사, 왜 또 작지놈의 신세가 되게, 헤헤."

한번 웃고 싹불은 개가 제 주인을 쳐다보듯 팽개의 눈치를 살피고 나서,

"그래 할 수 있던가. 손은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뒤제침을 잔뜩 하고…… 헤헤…… 입만 아사녀 귀에다 대고 초혼 부르듯 불렀지."

싹불은 두 손을 비끄러맨 듯이 엉덩이에 붙이고 입이 거의 방바닥에 닿도록 고개를 숙여 그때 시늉을 해보이었다.

팽개도 의심을 풀고 껄껄 웃었다. 싹불은 팽개가 웃는 바람에 더욱 신이 나서,

"아주머니 아주머니, 왜 이럽시오. 제발 정신을 좀 차립시오, 녜,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고 한동안 비대발괄을 하다시피 하니까 그제야 엎어진 채로,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하는 그 꾀꼬리 같은 고운 목소리가 들려 오겠지. 그러더니 바시시 몸을 일으키는데 그 상기된 얼굴은 발그스름하게 도화빛이 돌고 어떻게 어여쁜지 송두리째 아삭아삭 깨물어 먹고 싶으데."

"에끼, 흉측하게. 남은 죽네 사네 하는 판인데."

"누가 죽네 사네 하게 만들었기에. 이번 일엔 상금이 후해야 되네."

"성사가 된다면야 주다뿐이냐."

"속기는 아주 쩍말없이 속았느니. 몸을 일으키는 길로 뒤도 아니 돌아보고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탁 닫아 버리데. 아사달을 바라고 기다리는 게 헛일인 줄 안 다음에야 자네 품속으로 기어들 것은 뻔한 노릇 아닌가."

78[편집]

그 이튿날 한낮이 겨워도 아사녀가 일어나는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아침밥을 지으려 물동이를 이고 나갈 때면 으레 사랑방을 갸웃이 들여다보고 방긋 웃으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는 법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림자도 나타내지 않을 뿐인가, 팽개와 싹불이가 번차례로 안을 기웃기웃 엿보았으나 아사녀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어째 일어나지를 않을까."

팽개가 싹불을 보고 걱정을 한다.

"아사달놈이 자식을 낳았다는 바람에 무척 속이 상한 게로군. 그것 보게, 내님의 구변이야말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재주를 가졌단 말이어."

하고 싹불은 맹숭맹숭한 턱을 쓰다듬으며 거드럭거린다.

"또 제 자랑인가. 너무 구변이 좋아서 아주 죽을 작정을 하고 일어나지 않는 것도 큰일인데."

"그쯤 되어야 아사달놈을 잡아먹고 싶을 것 아닌가."

"웬만하고 마음이 돌아서야지, 너무 애절을 하는 것도 도리어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원 그 사람 다심도 하네. 계집이란 한번 토라지면 고만이지 방해가 무슨 방해란 말인가."

"계집의 독한 마음에 자결이나 해버리면 그야말로 십년공부 아미타불 아닌가."

"죽기를 그렇게 간대로 죽어. 몇 번 쪽쪽 울고 제 손으로 제 가슴이나 뚜다리다가 말겠지. 그 기틀을 자네가 잃지 말고 슬슬 녹여 내어야 되는 법이거든."

하고 싹불은 팽개를 보며 눈을 끔쩍끔쩍해 보인다.

"괜히 섣불리 서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게. 한동안 뜸을 들여야."

하고 팽개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가,

"아무튼 계집의 질투란 무서운 거야. 아사녀같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계집도 제 사내가 외도를 했단 말에 그렇게 치를 떠니……."

"이제야 알았나."

"우리 단둘이 얘기지만 실상 이번 꾀도 내 여편네가 가르쳐 준 것이나 진배없네."

"그러면 아주머니께서도 그 켯속을 아신단 말인가."

"원 그 사람, 그 왈패가 알아보게, 큰일나게. 스승의 따님이 홀로 있는데 뭇 제자놈들이 덤비니 스승의 은혜를 생각한들 극진히 보호를 해야 된다고 그럴싸하게 꾸며 대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 왈패가 어디 곧이를 듣는가. 아따 성인군자 또 나셨네. 그래 당신이 아무 다른 마음 없이 아사녀를 보호만 하겠소. 그야 말짝으로 괭이에게 반찬가게를 보라는 격이지. 그래서 부부간에 대판 싸움까지 하였다네."

"그 아주머니 눈이 무섭지 무서워. 벌써 자네 속을 화경 들여다보듯 환하게 아시네그려."

"아사녀 그년도 매친 년이지. 제 서방이 벌써 삼 년째 안 올 때는 벌써 알아볼 조지, 빈방만 지키고 있으면 뭘 한단 말인고. 열녀비나 하나 얻어 걸릴 줄 알고. 냉큼 적당한 자리에 개가나 갈 게지, 하지 않겠나. 그 말을 듣고 보니 딴은 아사달놈이 삼 년 템이나 계집 없이 얼무적거릴 리도 없겠고 아사녀도 제 사내가 딴 계집을 얻었단 말만 들으면 피장파장으로 놀아날 것도 같단 말이거든."

"어규 용해라. 나는 그 꾀만은 그래도 자네가 지어 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주머니 꾀란 말이지."

"슬쩍 지나가는 말이라도 얼른 듣고 터득을 해내는 것이 더욱 용하지 않은가."

"성사가 되어도 걱정은 걱정인데, 아주머니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아사녀 마음이 나한테로만 쏠린다면야 그까짓 계집 열 명을 버린들 아까울 거야 있겠나. 그것도 아사녀에게서 미끄러진 바람에 화풀이로 얻은 것이니."

하고 팽개는 한숨을 휘 내어쉬었다.

실상 아사달과 경쟁을 하다가 무참히 패한 팽개는 꽃거리로 달뜬 마음을 달리었었다. 지금 같이 사는 계집은 그때에 얻은 것으로 어엿한 장가처도 아니지만, 아사녀에게로 골똘히 쏟아진 마음 때문에 다른 좋은 자리가 바이 없지도 않았으되 입때까지 그럭저럭 지내 온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어떠신데 자네가 함부로 내버렸다가는 큰코다치리. 요새도 자네는 하루가 멀다고 번을 들지 않는가."

"어떡하나. 이 일이 되기 전에야 제 비위도 맞춰 줘야지. 잠깐잠깐 다녀오는 것이지만 이틀 밤만 걸려도 마구 강짜를 부리니."

"누구 계집은 안 그런 줄 아나. 그러기에 계집 둘 가진 놈의 창자는 호랑이도 먹지를 않는다는밖에."

"정작 둘이나 되고 그러면 좋기나 하게."

"그야 떼어놓은 당상이지, 헤헤."

"사람 놀리지 말고 아사녀에게 좀 들어가 보게."

79[편집]

팽개의 안에 들어가 보란 말에 싹불은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었다.

"나는 싫으이. 인제는 자네가 어쩌든지 하게. 나는 그 우는 꼴을 다시 보기 싫으이."

"누구는 그 우는 꼴이 보기 좋다던가. 자네가 꾸며 논 일이니 자네가 들어가 보게나."

"자네는 장래 실속이나 바라지만 내야 무슨 까닭인가. 그 말끄러미 바라보는 눈길과 딱 마주치면 아주 아찔이야. 까닭 없이 가슴이 뻑적지근해지고……."

싹불은 연상 고개를 흔든다.

"어제 쌀 닷 말 보낸 것이 적어서 그러나. 지금 와서 그런 약한 소리를 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그 고개를 배틀고 앉은 꼴은 차마 볼 수가 있어야지."

하고 싹불은 그 밀룽밀룽한 눈두덩을 잔뜩 찌푸린다.

두 짝패는 한동안 승강이를 하다가 필경엔 둘이 다 같이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팽개와 싹불은 아사녀의 방문 앞까지 왔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싹불이가 먼저 불러 보았다. 방 안에서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아무 대꾸가 없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왜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하고 싹불은 넌지시 방문을 잡아당겨 보았으나 문고리가 안으로 걸린 듯하였다.

싹불은 팽개를 돌아보고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가만히 속살거렸다.

"문까지 꼭꼭 닫아걸었는데."

"또 좀 불러 보게. 잠이 든지도 모르니."

팽개는 싹불을 재촉하였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문고리를 좀 벗겨 주세요."

싹불은 또다시 외쳤다.

방 안에서 뒤쳐 눕는 기척이 나며,

"나가 주세요. 제가 몸이 아파서……."

모기만한 소리가 들려 왔다.

"편찮으시다고 온종일 아무것도 자시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편찮으실수록 곡기를 하셔야 기운을 차리시지요."

이번에는 팽개가 자상스럽게 타일렀다.

"오라버니세요."

방 안에서도 팽개의 목청을 알아듣고 반색을 하는 모양이었다.

"됐네, 됐네. 자네 목소리를 듣고 저렇게 반길 때는……."

싹불은 눈을 깔아 메치며 팽개를 보고 수군거렸다.

팽개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싹불을 쿡쿡 쥐어지르고 나서,

"네, 팽개도 왔습니다. 문을 잠깐 열어 주십시오."

방 안에서는 이윽히 문을 열까말까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럼 조금 이따 들어오십시오. 방을 좀 치워야……."

"방이야 치우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잠깐 뵈옵기만 하면 고만이니까요. 그대로 누워서도 좋습니다. 별일 없으신 신관만 뵈오면 고만입니다."

팽개의 말씨에는 정이 뚝뚝 떨어졌다.

"어떡하나."

방 안에서는 난처한 듯이 혼자말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그러시다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겠습니다마는!"

"아녜요, 아녜요. 그냥 들어오십시오."

하고 문고리를 벗기는 소리가 났다.

팽개가 앞서고 싹불이가 뒤따라 들어오는데 아사녀는 기신 없는 몸을 끌다시피 하며 벽에 쓰러진 듯이 기대이고 이불자락으로 미처 버선도 못 신은 발을 가리었다.

어찌하면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여위었을까. 척색진 두 볼은 우벼 파간 듯이 말라붙었고 그 어여쁜 눈시울은 통통히 부어올랐다. 볼록하던 가슴 언저리가 눈에 뜨일 만큼 가라앉았는데 숨 한번 들이쉬고 내어쉬는 것도 무척 힘이 드는 듯 어깨가 들먹들먹한다. 팽개와 싹불이도 차마 바로 보지를 못하였다.

"어디가 그렇게 편찮으신지 우선 약을 지어 와야겠는데."

팽개는 눈을 떨어뜨려 방바닥만 내려다보며 딱한 듯이 물었다.

"약 안 먹어도 차차 낫겠지요."

"아닙니다. 하룻밤 사이에 저렇듯 얼굴이 틀리신 걸 보면 여간 중병이 아니신데 약을 안 잡수셔야 될 말입니까."

"약을 먹는다고 나을 병이 아녜요."

하고 아사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이 싹불에게 들어 알았습니다마는 아사달이가 괘씸이야 하시겠지만 그래도 너무 상심을 하시면 몸이 부지를 하실 수 있습니까."

위로한다는 팽개의 말이 도리어 아사녀의 속을 점점이 에어 내는 것 같았다.

"죽어도 아까웁지 않을 목숨인데 몸이 좀 축가는 거야……."

아사녀는 호 한숨을 내쉬었다.

80[편집]

그 이튿날부터 아사녀는 몸져눕고 기동조차 못 하게 되었다. 머리는 쪼개는 듯 몸은 불덩이같이 달고 뼈 마디마디가 쑤시고 저리었다. 그의 마음의 병은 마침내 몸의 병을 이루고 만 것이다.

잠이나 들었으면 그 몹쓸 고통을 잊으련만 잠을 청하려 눈을 감으면 오라는 잠은 아니 오고 갖가지 무서운 환영이 그를 사로잡고 괴롭게 굴었다. 기껏 잠을 이룬대야 이내 가위가 눌리고 정체 모를 어마어마한 괴물이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그를 찍어눌렀다.

"윽, 윽."

하고 비명을 치는 소리가 분명히 제 귀에도 들리건만 얼른 잠이 깨이지 않아서 무한 애를 켠다. 그 괴물은 어느 때는 징글징글한 작지의 모양도 되어 보이고, 어느 때는 웃보, 장달, 싹불의 낯짝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어찌 보면 이 네 사람 얼굴 외에 난생 처음 보는 기괴한 탈을 뒤집어쓴 무리들이 떼를 지어 달려들기도 하였다.

간신히 그 지긋지긋한 잠을 깨고 나면 처음에는 천장도 보이고 벽도 보이고 방바닥도 보이고 이것이 우리집이거니, 이것이 내 방이거니 생각하매 겨우 안심의 숨길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뒤미처 그의 핑핑 내어둘리는 시선에는 더 진저리나고 악착한 헛것이 보이었다.

귀밑머리를 충충 땋은 아름다운 서라벌 계집을 끼고서 아사달이 현연히 내닫는다. 그 아름다운 눈매는 그 계집을 살가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들여다본다. 그 연연한 입술엔 행복에 가득 찬 웃음을 웃고 있다. 그의 팔은 다시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그 계집의 허리에 감긴다…….

"무슨 그럴 리야, 무슨 그럴 리야."

아사녀는 뇌고 또 뇌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지만 제 눈시울 속속들이 들어박힌 듯한 그 헛것은 더욱 또렷또렷하게 생생하게 살아온다.

아사달이가 아이놈을 갸둥질쳐 주는 광경까지 보인다.

아이놈의 상판은 쥐새끼같이 작고 가무잡잡한 것이 볼품이 없었으나, 그 숱 많은 머리가 다팔다팔하며 좋아라고 깔깔거리는데 그걸 보고 그 계집과 아사달이가 입이 벌어져서 찢어지도록 웃어 댄다…….

"나는 이 고생을 하는데……."

아사녀는 고만 새삼스럽게 설움이 복받치고 눈엣불이 번쩍번쩍 나는 듯하였다.

처음 싹불에게 아사달이가 딴 계집을 얻어 자식까지 낳았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아사녀는 앞뒤를 생각할 나위도 없이 벼락이 내리치는 것처럼 정신이 아뜩하고 말았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해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되는 대로 쓰러져서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쳐 나갈 것만 같았다.

이 세상에 육친이라고 오직 한 분밖에 없는 아버지를 여의는 큰 슬픔을 지그시 견딘 것도, 모래알을 씹는 듯한 길고 긴 삼 년의 날짜를 보낸 것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그 해참한 변을 겪은 것도 누구를 위함이었던가. 무엇을 바람이었던가.

지금 방장 당하는 처지가 쓸쓸하면 쓸쓸할수록 답답하면 답답할수록 지긋지긋하면 지긋지긋할수록 아사달을 만나는 날의 기쁨이 크고 더 알뜰하고 더 깨가 쏟아질 것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캄캄한 어둠이 저를 겹겹이 에둘렀지만 내일!이면 찬란한 햇발이 저를 맞으리라.

방장 걷는 이 길은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는 것 같지만 모레!면 꽃밭 속으로 포근포근한 잔디를 밟게 되리라…….

아무리 슬픈 가운데도, 아무리 억색한 가운데도, 아사녀의 앞에는 언제든지 희망의 오색영롱한 무지개가 뻗쳐 있던 것이다.

작지의 변을 죽을 애를 쓰고 모면을 하고 나매, 그 달뜨는 정은 얼마쯤 움츠러들었지만, 기다리지 않는 척하고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하였다.

"웬걸 올라고."

하며 마음을 단속을 하면서도 실상인즉 무망중에 쑥 들이닥치면 더욱 반가울 것을 미리 장만을 해두려는 것이다.

"아직 공사 끝날 날이 멀고말고."

스스로 조비비는 듯한 마음을 타이르고 꾸짖었지만,

"이 보름 안으로야, 이달 그믐 안으로야."

하고 전보담 날짜만 멀리 잡아 보았었다.

가깝게 잡은 날짜가 맞지 않는 것은 오히려 심상하였지만, 멀리 잡은 날짜도 맞지 않는 데는 화증이 절로 났다.

'혹시나' 하는, 검은 구름장이 그 빛나는 희망의 무지개를 가끔 흐리게 시작하기는 이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