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산문집/서울
우리는 모도 서울서 산다. 그러나 서울이 얼마나 좋은곳인지를 나는 실상 모른다. 서울은 어쩐지 그리 반갑고 달가운 곳은 아닌듯 싶다. 우리는 도회인듯이 여긴다. 아닌것이 아니라 도회란 이상한것이라 시베리아벌판에는 수십리, 수백리를가야 사람하나, 개하나, 집하나 얻어 볼수없는데가있다는데 뉴욕의번화한거리에는 활동사진에서만 보아도 자동차가 개미떼같이 복작어리고 일분간에 백천의사람들이 한곳을 지나가고 마천루(摩天樓)라고 이름하는 저 거창한 건물들은 우리농담에 하늘높은줄만알고 땅넓은줄은 모르는격의 물건들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서울을 도회라서 서로 모여서살고 밤이면 본정거리에서 어깨를 맞부비는가. 도회라고하기에는 서울은 너무나 잔망스럽고 미지근한 도회다. 도회는 도회로서의 흥분이있고 향낙이있고 또 이를테면 그밖에 있어야할것이많다. 서울이 그러한것을 넉넉히 가지고 있지못한것은 우리가 잘안다. 그렇다해서 뉴욕서 갖나온 사람의눈엔들 이것이 한적한 농촌으로 보일리는 또 만무하다. 그러면 구지구지 이유도없는터에 구타여 이 몬지구석에서 뭉쳐서 살맛이 무엇이냐고 조금은 생각해봐야 할것같기도하다.
우리 아는 어느 시인이 서대문밭비탈인지 또는 아현마루턱이비탈인지 어디를보고 쓴것인지는 모르지마는 가난한 적은 초가집들이 더덕더덕 달라붙은것을 보고 서로의 체온(體溫)을 의지하랴고나 하는듯이 기대어있다고 쓴일이있었다. 이것은 집을 그리는데 사람을 비유로 한말이지마는 우리가 서로 뭉쳐사는것을 초라한집들이 서로의체온을 의지하려는것에나 도리켜 비유해 볼런가. 이것도 이유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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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서울서 사랑하는것이 분명 두가지는 있다. 하나는 활동사진이 나와비최는 은막(銀幕) 또하나는 두줄기 궤도(軌道)가 뻗혀나가는 정거장.
설명답게 떠들어놀것도 없는일이다──은막에는 「세계의애인」이 그 아릿답고 마음끄으는눈으로 우리를 물끄럼이바라보고 우리의 무식한 시선은 그 허리를 애무할수조차 있지아니한가. 나라에 문해닫고 양구자안드리고 살던것은 육십년전 옛일이라 하지마는 지금이래야 무엇하나 문열어논것같지도 아니한 우리에게 넓은세계의 공기를 막우 볼어넣주는것은 이 은막의은혜인듯. 우리와 어깨를 맞대이고 앉는것이 양복집사원이나 물산상회점원일 경우에도 어느순간 그들조차 미국이나 구라파의 가장 높은 교양을 닦은 청년들로 변해지고 만다. 나는 여기서 맛볼수있는 도취의 순간때문으로 대낮에 허멀끔이 서있는 은막 그것까지 마음껏 사랑해한다.
그러고 정거장! 저 차디차고 감게 반짝이는 한줄기쇠에다 귀를 대보라 아니 물끄럼이 드려다보라. 아! 북으로 북으로……철교……모스끄봐……빼리……파리…….
이 구름같이 피여오르는 연상을 어찌 수습하리! 동경(憧憬)의 모든 장미와 물질적으로 직접으로 꼭 연해가지고있는 이 쇠줄! 나는 숨을 딱 모아 끊고 이 비위맞후는 속살거림에서 귀를 싹씿으리라. 돌아서리라.
그러나 조선에서 볼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녀성들이물오리떼같이 건너다니는것을 보기를 사랑할수있는 종노거리를 이축에 넣지않는것은 오로지 그것이 나의 조심과 예의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