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군고/진국공
원문
[편집]震國公
震國公姓大氏 名乞乞仲像 粟末靺鞨人也 粟末靺鞨者 臣於高句麗者也 或言大氏 出自大庭氏 東夷之有大氏自大連始也 唐高宗總章元年 高句麗滅 仲象與子祚榮 率家屬徙居營州 稱舍利 舍利者 契丹語帳官也 武后萬歲通天二年 契丹松漠都督李盡忠 歸誠州刺史孫萬榮 叛唐陷營州 殺都督趙文翽 仲象懼 與靺鞨酋乞四比羽及高句麗破部 東走度遼水 保太白山之東北 阻奧婁河 樹壁自固 武后封仲象爲震國公 比羽爲許國公 比羽不受命 武后詔玉鈐衛大將軍李楷固 中郞將索仇 擊斬比羽 是時仲象已卒
번역문
[편집]진국공
진국공(震國公)의 성은 대씨(大氏)이고 이름은 걸걸중상(乞乞仲像)인데, 속말말갈인(粟末靺鞨人)이다. 속말말갈은 고구려(高句麗)에 신하 노릇을하였다. 혹은 말하길, 대씨는 대정씨(大庭氏)에서 나왔는데 동이(東夷)의 대씨는 대련(大連)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당 고종(唐高宗) 총장(總章) 원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키니 중상(仲象)은 그의 아들 조영(祚榮)과 함께 가속(家屬)을 거느리고 영주(營州)에 살았다. 사리(舍利)라고 칭했는데, 사리는 거란어(契丹語)로 장관(帳官)이다. 무후(武后) 만세통천(萬歲通天) 2년에 거란의 송막도독(松漠都督) 이진충(李盡忠)이 성주자사(誠州刺史) 손만영(孫萬榮)에게 돌아가 당(唐)에 반기를 들어 영주를 함락했고, 도독(都督) 조문홰(趙文翽)를 죽였다. 중상은 두려워서 말갈추(靺鞨酋) 걸사비우(乞四比羽)와 고구려의 남은무리[破部]와 함께 동으로 달아나서 요수(遼水)를 건넜다. 태백산(太白山)의 동북을 지켰는데, 오루하(奧婁河)를 사이에 두고 성벽을 쌓고 스스로를 굳게 지켰다. 무후가 중상을 진국공으로 봉했고, 비우(比羽)를 허국공(許國公)으로 삼았다. 비우가 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무후는 옥검위대장군(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楷固)와 중랑장(中郞將) 색구(索仇)에 조서를 내려 비우를 공격해서 베었다. 이 때에 중상은 이미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