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톰 소여의 모험/6장
월요일 아침이 찾아오자 톰은 불쌍한 아이가 되었다. 월요일 마다 톰은 그렇게 되었는데 -- 학교에서 고통받는 또 다른 한 주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톰은 대개 월요일이 휴일 사이에 끼어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과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족쇄를 차고 갖히는 것보다 더 싫은 일이었다.
톰은 누워서 생각했다. 지금 아프게 되면 학교를 안가고 집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톰은 몸을 살펴 보았다. 병같은 건 없었다. 그는 다시 뒤져보았다. 이젠 배가 아픈듯도 하였기에 따져볼만하다고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금방 가라앉더니 사라져 버렸다. 톰은 더 찾아보았다. 그는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였다. 윗쪽 앞니 하나가 흔들리는 것이다. 운 좋은 일이었다. 톰은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일로 다툼의 법정에 서게 되는 것을 "시동 걸기"라고 불렀다. 톰은 이빨을 거꾸로 움켜 쥐었다. 폴리 이모는 그것을 잡아당겨 뽑을 것이고 꽤나 아플 것이다. 기다릴 것도 없이 톰은 예전에 의사 선생님이 이런 일이 생기면 환자가 일어서는 데 이삼 주가 걸리고 손가락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이 녀석은 아픈 발가락을 침대 시트 위에 올려 놓고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이 때 톰은 어떤 증상이 필요한 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회가 되기엔 충분해 보였기에 그는 앓는 소리를 더욱 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시드는 의식 없이 자고 있다.
톰은 더 크게 앓는 소리를 냈고 진짜로 발가락이 아픈 것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드는 반응이 없다.
톰은 이번엔 온 힘을 다해서 아픈 척 하였다. 잠시 쉬고 난 뒤에 엄청나게 큰 소리로 앓는 척을 하였다.
시드는 코를 골았다.
톰은 악의가 뻗쳤다. "시드! 시드!"하고 부르고는 그를 흔들었다. 이 것은 잘 먹혔고 톰은 다시 앓는 소리를 냈다. 시드는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더니 일어나 팔꿈치를 끌어 안고는 톰을 바라보았다. 톰은 앓고 있었다.
"톰! 말해봐, 톰!" (응답이 없다) "이봐, 톰! 톰! 무슨 일이야, 톰?" 하면서 시드는 톰을 흔들며 근심스래 얼굴을 살폈다.
톰이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 하지마 시드. 흔들지 마."
"왜, 무슨 일이야 톰? 이모 불러야겠다."
"안돼 -- 신경 쓰지마. 지나가겠지, 아마. 아무도 부르지마."
"불러야겠어! 아프지마, 톰. 엄청나네. 얼마나 아픈거야?"
"몇시간 째야. 아야. 아, 또 이러네. 시드, 날 죽여줘."
"톰, 왜 날 더 빨리 깨우지 않았어? 아, 톰, 안돼! 소리를 들으니 내가 다 오싹하네. 톰, 무슨 일이야?"
" 모든 걸 용서할께, 시드. (앓는 소리) 말해줘, 시드. 그리고 시드, 내 창틀이랑 외눈박이 고양이를 마을에 새로 온 소녀에게 줘, 그리고 그 애에게 말해줘 --"
하지만 시드는 옷을 꿰어차 입더니 나가버렸다. 상상은 잘 먹혀들어서 톰은 이제 진짜로 아픈 것 같았다. 그 덕에 톰은 정말 그럴듯하게 앓는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시드가 아랫층으로 뛰어들었다.
"아, 폴리 이모, 여기요! 톰이 죽어가요!"
"죽어가!"
"예, 어서 빨리 오세요!"
"헛소리! 믿을 수가 없구나!"
하지만 이모는 별수없이 시드와 메리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입술은 떨렸다. 이모는 들어서서 외쳤다.
"얘, 톰! 톰, 무슨 일이니?"
"아, 이모, 나는 --"
"무슨 일이야 -- 이게 무슨 일이니, 얘야?"
"아, 이모, 내 다친 발가락이 변했어요!"
이 나이 든 여사는 의자에 털썩 앉고는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동시에 슬쩍 눈물을 내비췄다. 안도한 이모가 말했다.
"톰, 이녀석 보게나. 냉큼 헛소리 집어치우고 기어나와."
신음 소리는 멈췄고 발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톰은 슬쩍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폴리 이모, 변한 것 같았단 말이예요. 그래서 이빨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어요."
"네 이빨! 그래, 이빨이 왜, 톰?"
"한 개가 흔들려요. 정말 아파요."
"그래, 그래, 어디 좀 보자. 신음 소리 좀 내지 말고. 입 벌려라. 어디 -- 이빨이 흔들리는 구나. 그런다고 죽지는 않아. 메리야 비단 실 하고 부엌에서 불덩이 좀 가져오렴."
톰은 엄살을 부렸다.
"아아, 이모. 뽑지 마세요. 안 아파요. 안 건드리면 돼요. 하지 마세요. 이모. 학교 갈께요."
"어딜 간다고? 오호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학교 안가고 낚시나 하려고 낸 꾀란 말이지? 톰아, 난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그런데 넌 늘 터무니 없는 일로 이 늙은이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구나." 때마침 치과 도구가 준비되었다. 폴리 이모는 실의 한쪽 끝으로 고리를 만들어 톰의 이빨을 단단히 묶은 다음 다른 쪽 끝은 침대 기둥에 묶었다. 그런 다음 이모는 갑작스레 불덩이를 톰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그러자 이빨은 침대 기둥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하지만 모든 심판은 이것으로 상계되었다. 톰은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갔다. 톰이 빠져버린 윗니 틈으로 침을 뱉는 새롭고 근사한 방법을 선보이자 아이들은 부러워 마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톰의 행동을 흥미롭게 여기며 따라다녔다. 한 아이가 베인 손가락을 보여주며 잠시 매혹과 존경이 중심이 되었지만 조금 지나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영광은 사그라들었다. 그 아이는 침울해져서 톰 소여처럼 침을 뱉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다른 아이가 "신 포도냐?"[* 1]하고 면박을 주자 멀찌기 물러났다.
톰은 술주정뱅이의 아들로 마을에 사는 어린 부랑자인 허클베리 핀에게 갔다. 마을의 모든 엄마들은 허클베리가 게으르고 무법자에 천박하며 나쁜 애라며 진심으로 혐오하고 두려워하였지만, 실상은 모든 아이들이 허클베리를 흠모하고 그의 금지된 모임 안에서 즐거워하며 그와 같이 살기를 바라마지 않았기 때문이다. 톰은 착실한 아이로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 허클베리의 현란한 부랑 생활을 부러워하였고 그와 놀지 말라는 엄격한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톰은 기회만 있으면 허클베리와 놀았다. 허클베리는 늘 너덜너덜한 다 큰 어른들의 옷을 입었는데 여기 저기 헐어빠진 데다 넝마처럼 펄럭였다. 망가진 모자는 챙이 터져서 초승달 모양의 틈새가 벌어져 있었다. 입고 있는 외투는 거의 발목까지 닿았고 단추들은 등허리에 매달려 있었다. 한 쪽밖에 없는 멜빵이 바지가랑이를 물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잡아 두었는데, 바지가랑이는 축 늘어져 있는데다 그 안에 무언가가 담겨있다고도 하기 어려웠다. 다리에 먼지가 딱지지어 달라붙은 솜털이 나 있었지만 털을 미는 일은 없었다.
허클베리는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오고 갔다. 날씨가 좋으면 계단 위에서 잤고, 날씨가 궂으면 호그즈해드[* 2] 통에서 잤다. 학교도 교회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를 주인님이라 부를 일도 없었고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다. 허클베리는 내키는 때에 내키는 곳에서 낚시를 하고 수영을 즐겼고 만족스러울 때까지 머물렀다. 싸우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얼마든지 늦잠을 잘 수도 있었다. 허클베리는 언제나 봄에 가장 먼저 맨발로 돌아다니는 아이였고 가을에 가장 늦게까지 맨발로 남아 있었다. 그는 씯는 일도 없었고 깨끗한 옷을 입는 일도 없었다. 그는 멋지게 욕을 해댔다. 한 마디로 그의 모든 것이 소년들이 살고 싶어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허클베리는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가장 성가시고 거추장스럽고 동시에 가장 흠모받는 소년이었다.
톰은 이 낭만적인 부장자를 불렀다.
"안녕, 허클베리."
"너나 안녕. 이거 좋아 보이냐?"
"뭘 주웠는데?"
"죽은 고양이."
"한 번 보자, 허크. 이런 완전히 뻣뻣해졌는데. 어디서 주운거야?"
"어떤 애한테 샀어."
"뭐 주고?"
"파란 딱지 하나랑 도축장에서 얻은 오줌보 한 개."
"파란 딱지는 어디서 났는데?"
"이 주 전에 벤 로저스에게 굴렁쇠를 주고 샀지."
"이봐, 죽은 고양이가 뭐에 좋다고?"
"뭐에 좋냐고? 사마귀 때려고."
"안돼! 그런거. 내가 좀 더 괜찮은 걸 알고 있지."
"아닐껄. 뭔데?"
"나무둥지 물."
"나무둥지 물! 난 절대 나무둥지 물은 안쓸거야."
"안쓴다고? 써보지도 않았지?"
"안해봤지. 하지만 밥 테너가 해봤데."
"누가 그래?"
"그야, 걔가 제프 데처에게 말했고, 제프는 조니 베이커에게 말했고, 조니는 짐 홀리스에게, 짐은 벤 로저스에게 말했고, 벤이 어떤 검둥이에게 말해줬는데 그 검둥이가 내게 말해줬지. 이렇게 된거야!"
"글쎄, 그럴까? 걔네들 몽땅 거짓말 한 거야. 최소한 그 검둥이 빼고 모두. 그 검둥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검둥이가 거짓말하는 건 본 적 없으니까. 젠장! 그럼 밥 테너가 어떻게 했다는 건지 말해봐, 허크."
"그야, 걔는 잘린 나무 둥지에 고인 빗물에 손을 담궜다던데."
"낮에?"
"그렇지."
"얼굴을 그루터기로 향하고?"
"그래,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뭐라고 말하면서?"
"그건 모르겠는 걸. 난 몰라."
"아하! 그렇게 바보 같은 식으로 나무둥지 물로 사마귀를 고친다고 말했단 말이지! 왜 바른 방법으로 하지 않았을까. 네가 직접 숲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나무둥지 물을 찾아. 그리고 한 밤 중에 그루터기를 등지고 손을 담그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콩-옥수수, 콩-옥수수, 인디언 식사는 짧지. 나무둥지-물, 나무둥지-물, 이 사마귀를 삼켜라.
이렇게 하고는 재빨리 나무둥지에서 열한 걸음 떨어져서 세바퀴를 돌아. 그리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까지 걷는거야. 왜냐면, 말을 하면 주문이 깨지니까."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하지만 밥 테너는 그렇게 안했어."
"그럼요, 선생님. 내기를 해도 좋다구요. 왜냐면 그 아인 이 마을에서 가장 사마귀가 많은 녀석인걸. 나무둥지 물을 어떻게 쓸지 안다면 그럴리 없지. 난 이렇게 해서 내 손에 사마귀를 수천 개는 땠다고, 허크. 내가 개구리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노는데. 늘 사마귀가 덕지덕지 할만도 하잖아. 가끔은 콩을 써서 없애기도 해."
"그래, 콩도 좋지. 해 봤어."
"해 봤어? 어떻게 했는데?"
"콩 하나를 가르고 사마귀를 피가 나도록 잘라내. 그 피를 콩 한 쪽에 묻히고는 그믐날 한밤중에 사거리에 파묻는 거지. 그리고 나머지 한 쪽은 태워버리는 거야. 그러면, 피묻은 한 쪽이 다른 쪽을 붙으려 계속 끌리고 끌리니까 사마귀의 피를 빼내는데 도움이 되지. 그래서 곧 없어지는 거야."
"그래, 그러야, 허크. 콩 한 쪽을 불태울 때 '내려가라 콩, 떨어져라 사마귀, 더는 귀찮게 하지마'라고 말하면 더 좋지. 그게 조 하퍼가 한 방식이야. 그는 어디보다도 쿤빌 근처에서 살았지. 그런데, 죽은 고양이로는 어떻게 하려고?"
"뭐, 고양이를 묘지로 가져 가는 거야. 누군가 묘지에 묻힌 한 밤 중엔 악마가 두셋 나타나는데, 보이지는 않지. 그냥 바람 소리 같은 것만 들려. 아니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고. 그러다가 소리가 사라지면 고양이를 들어 올리면서, '악마는 시체를 따르고, 고양이는 악마를 따르고, 사마귀는 고양이를 따라가라. 난 더 볼일 없다!' 하고 말하는거야. 그러면, 어떤 사마귀건 떨어지는 거지."
"그럴듯한데. 해봤어, 허크?"
"아니, 그렇지만 홉킨스 할머니가 말해줬지."
"뭐, 알겠어. 할머니가 마녀라고들 하더군."
"이것 봐! 톰, 난 할머니가 그렇다는 걸 알아. 할머니가 울 아빠에게 마법을 걸었거든. 아빠가 직접 말했다고. 어느날 혼자서 가고 있는데 할머니가 아빠에게 마법을 걸더란 거야. 그래서 아빠가 돌덩이 하나를 집어 들었데, 할머니가 피하지 않았으면 맞췄을 걸. 그런데 아빠는 하던대로 그날 밤도 술에 취했는데 팔이 부러져 버렸지."
"이야, 굉장한데? 네 아빠는 할머니가 마법 거는 걸 어떻게 알았데?"
"주여, 아빠는 간단히 말했지. 아빠 말이 누군가 계속 노려보고 있으면 마법을 거는 거래. 특히나 중얼거리고 있으면, 왜냐면 주의 기도문을 거꾸로 중얼거리는 거야."
"야, 허크. 언제 고양이 가져 갈꺼야?"
"오늘밤! 악마들이 늙은 호스 윌리엄스를 오늘밤 대려갈꺼란 걸 아니까."
"하지만 그는 토요일에 묻혔는데? 토요일 밤에 대려가지 않았을까?"
"왜?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거지? 한 밤중까지 주문을 걸 수 있을까? -- 그러면 일요일이 되는데? 악마들은 일요일엔 그닥 어슬렁대지 않는다구. 내가 알기엔."
"그렇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렇군. 나도 데려갈래?"
"당연히 -- 무서워하지만 않는다면."
"무서워해? 어림도 없는 소리. 야옹하고 신호 할 거지?"
"그래 -- 그러면 너도 야옹해. 기회가 있다면 말야. 헤이스 할아버지 집까지 나오면서 계속 야옹거리다가 돌을 집어 던지면서 "망할 고양이!"하고 말해. 그러면 나는 벽돌을 창문으로 던질께. -- 하지만 말하면 안돼!"
"말 안할께. 밤에는 이모가 지켜봐서 야옹거릴 수 없지만, 그 시간엔 야옹거릴께. 야 -- 저건 뭐야?"
"아무것도. 그냥 진드기야."
"어디서 났어?"
"숲 밖에서."
"왜 가지고 다니는데?"
"몰라. 팔진 않을거야."
"좋아. 그나저나 진짜 작은 진드기네."
"오, 누구든 진드기를 잡기야 하겠지만 따라다니게 할 수는 없지. 난 이게 좋아. 내겐 정말 좋은 진드기지."
"널린 게 진드기인데 뭐. 나도 마음만 먹으면 천 개는 잡을 수 있어."
"뭐, 그러면 왜 안 잡는데? 넌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그렇지. 이건 일찍 나온 진드기야. 내가 알지. 올 해 처음 본 진드기니까."
"야, 허크. 진드기랑 내 이빨을 바꿀께."
"어디 보자."
톰은 종이 뭉치를 꺼내서 조심스래 풀었다. 허클베리는 탐내는 눈빛으로 그 것을 보았다. 유혹은 매우 강렬했다.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이거 진짜야?"
톰은 입술을 밀어 올려 이빨이 빠진 자리를 보여주었다.
"그럼 좋아." 허클베리가 말했다. "바꾸자."
톰은 눌러 여는 뚜껑이 달린 상자에 진드기를 넣었다. 바로 전까지는 집개벌레를 넣어 두었던 상자다. 두 소년은 서로 이전보다 부자가 된 기분으로 해어졌다.
톰은 보부도 당당하게 씩씩한 걸음걸이로 마을 어귀에 떨어져 있는 학교로 갔다. 톰은 모자를 걸고 재빨리 자기 자리에 앉았다. 왕좌라도 되는 듯 높이 솟은 팔걸이가 달린 목제 의자에 졸린듯 앉아 웅얼거리며 가르치고 있던 선생님이 별안간 그를 불렀다.
"토머스 소여!"
톰은 자기 이름이 풀네임으로 불리는 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예!"
"이리 와! 자, 이제 늘 그렇듯 오늘도 늦은 이유를 말해보시겠어요?"
톰은 거짓말로 핑계를 둘러댔었는데, 지금 뒤쪽에서 양 갈래로 머리를 딴 금발이 보였고 그건 이 학교의 여자 아이들 자리에서 단 하나 뿐인 머리 모양이란 것을 깨닫자, 번개처럼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톰은 즉시 대답했다.
"오는 길에 허클베리 핀과 이야기를 하느라 늦었어요."
선생님은 일어나서 가망이 없다는 듯 바라보았고, 아이들은 웅성거렸다. 학생들은 이 멍청한 아이가 정신을 잃은게 아닌가 의심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 너, 무얼 했다고?"
"허클베리 핀과 이야기를 하느라 늦었어요."
잘못 말한 게 아니다.
"토머스 소여,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것 중에 가장 발전적인 자백이로구나. 매를 맞는다고 이런 대답을 하진 않겠지. 재킷을 벗거라."
선생님은 주걱매를 들어올렸던 팔을 내리며 명령했다.
"자, 여자 아이들 자리에 가서 앉으세요. 이게 경고가 될 거다."
교실 여기 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 소리가 톰을 따라다녔지만, 톰은 자신이 경배해 마지 않는 알 수 없는 우상 옆으로 간다고 하니 이 보다 더 큰 행운이 있을 수 없었다. 톰은 끝 자리의 소나무 걸상에 앉았고 소녀는 머리를 돌려 그를 외면하였다. 아이들은 서로를 팔꿈치로 찌르고 윙크를 하고 귓속말을 해댔지만, 톰은 본 척도 하지 않고 긴 책상위에 팔을 올리고는 책을 보며 공부하는 것 처럼 보였다.
점차 톰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고 교실은 다시 웅얼거리는 소리로 가득차게 되었다. 이제 이 소년은 소녀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소녀는 이를 알아채고는 샐쭉하더니 한순간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녀가 조심스래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복숭아가 하나 책상에 놓여 있다. 소녀는 그것을 밀쳐냈다. 톰이 다시 복숭아를 그 아이 책상에 올렸고, 소녀는 다시 밀쳐냈지만 악의는 없었다. 톰이 다시 복숭아를 올려 놓자 소녀는 그것을 그냥 두었다. 톰이 석판에 끄적였다. "가져, 난 더 있어." 소녀는 석판을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제 소년은 왼 팔로 가리고는 석판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소녀는 한 동안 알은 채도 하지 않았지만, 소녀도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호기심은 스스로 작동하여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소년은 확실히 아무 생각이 없는 듯 그림만 그렸다. 소녀는 말은 안했지만 보고 싶은 게 역력했다. 하지만 소년은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마침내 소녀가 머뭇거리며 속삭였다.
"보여줘."
톰이 일부를 살짝 가린 채 보여 준 그림은 두 개의 박공 창문이 달린 집이었다. 굴뚝에서는 코르크 마개를 따는 스크류처럼 연기가 휘돌아 나오고 있었다. 소녀는 금방 흥미를 보였고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림이 완성되자 소녀는 잠시 살펴보더니 속삭였다.
"근사한걸, -- 사람도 한 명 그려봐."
이 화가는 앞 마당에 남자 한 명을 그려 넣었다. 그는 기중기를 설치하고 있었고 지붕 위라도 오를듯 보였다. 소녀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는 이 괴물이 마음에 들었고 이렇게 속삭였다.
"근사한 사람이네. 조금 더 해 봐."
톰은 모래시계와 보름달을 그리고는 거기에 지푸라기 같은 사지를 붙이고 쫙 편 손가락에 거대한 부채를 들려 주었다. 소녀가 감탄했다.
"진짜 근사하다. -- 나도 그릴 수 있었으면."
톰이 속삭였다. "쉬워. 가르쳐 줄께."
"와, 진짜? 언제?"
"정오에. 너 밥먹으러 집에 갈거니?"
"가르쳐 준다면 남을게."
"좋아. -- 한 방 먹였군. 이름이 뭐야?"
"베키 뎃쳐. 너는? 아, 나 알아. 토머스 소여."
"그건 내가 혼날 때 듣는 이름이고. 난 톰이야. 이게 좋을 때 불리는 이름이지. 톰이라고 불러줄래?"
"그래."
이제 톰이 다시 석판을 가리고 무언가를 끄적였다. 베키는 무엇인 지 보고 싶었지만 톰은 보여주지 않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아니야."
"진짜 아무것도 아냐. 보려고 하지마."
"아니, 볼거야. 진짜로 볼거야. 제발 보여줘."
"말할거지?"
"아니 말 안할게, 진짜 곱하기 진짜로 말 안할께."
"누구에게도 말 안할거지? 살아있는 동안 절대로?"
"응, 절대로 말 안해. 이제 보여줘."
"아, 보고 싶지 않을텐데."
"이제 네가 날 놀리는 거네. 볼거야." 베키는 그 작은 손으로 슬쩍 저항하는 톰의 팔을 붙잡아 치우고는 석판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이렇게 써 있었다. "사랑해."
"야, 나빴어." 그녀는 톰의 손을 찰싹 때렸다. 그렇지만 얼굴은 빨갛게 물들었다.
이 순간부터 톰은 시간이 무척이나 느리게 흐른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 울릴 때까지 그는 계속되는 감정의 고양을 느꼈다. 톰은 또다시 타닥이는 불꽃같이 터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선생님은 톰을 일으켜 새우고는 얼마간 꾸중을 하더니 마침내 말한마디 없이 교단을 내려갔다. 톰은 귀가 따갑거나 말거나 마음 속 깊이 환희가 넘쳤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톰은 공부에 열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일으킨 소동은 너무나 컸다. 읽기 교실로 가서는 수업을 망쳐놓았고, 지리 교실에서는 호수는 산으로 산은 강으로 강은 대륙으로 바꿔놓아 또다시 혼란이 일었다. 철자 교실에선 간난아이나 쓰는 낱말에서도 "불합격"을 받아 들었는데, 그럼에도 톰은 수 개월 동안 바라던 그 백랍 메달을 탄 소년이라고 칭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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