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공무한/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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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얇게 입고 산보할 시절은 아닌 성싶다.

단영은 반시간 동안의 아침 산보에서 돌아오면서 입술이 파랗게 얼고 팔 과 무릎이 떨렸다. 손에 꺾어 든 산사나뭇가지의 붉은 열매도 찬 아침 공기 속에서는 앙상하고 스산하게 보인다.

산골짝 개울물 소리가 귀에 차고 여러 번째의 모진 서리를 맞은 단풍잎들 도 이제는 벌써 신선한 빛을 잃고 불그칙칙하게 시들어 버린 꼴이 시절의 마지막을 고하는 듯도 하다. 푸른빛은 물론 한 곳 찾아볼 데가 없고 붉은빛 도 누른빛도 차차 종적을 감추어 색채 없는 겨울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모 든 것이 차고 쌀쌀하게 보일 뿐 온천지의 풍물은 소슬하기 짝없다.

그 산골짝의 온천을 찾은 지 사오일에 나날이 절기가 달라짐을 느끼며 단 영은 추위에 몸이 움츠러듦을 깨달았다. 서울서도 경의선으로 하루가 걸리 는 그 북쪽의 산골을 찾은 것은 하기는 한적한 맛을 구해서가 아니었던가.

쓸쓸한 산속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에 마음은 완전히 가라앉고 한 가지의 목적만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던가. 벌써 온천을 찾아올 시절이 아닌 반지빠른 때이라 사람의 그림자 드문 골짝에서는 단영은 자기의 자태 가 새삼스럽게 돌아다 보이고 마음속에 품은 목적이라는 것이 선명하게 떠 올랐다. 고요한 곳에서 혼자서 가만히 가지려는 목적 ── 한 점, 그 목적 만을 노리고 마음을 통일시키면서 아침 저녁의 산보를 해오는 속에서 사파 에 대한 의욕을 말끔히 떨쳐버렸다고 단영은 생각했다. 그렇건만 아직도 살 아 있는 육체에는 아침 공기는 지나치게 차서 입술이 얼고 팔과 무릎이 떨 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감각의 슬픔이다.

여관으로 돌아오지마자 욕실에 내려가 더운 온수 속에 깊이 잠기니 얼었 던 몸이 녹으면서 육체의 안정이 비로소 소생된다. 더욱 김 속에서 전신의 피가 따뜻이 더워지면서 살았다는 기쁨이 본능적으로 솟는다. 마침 아침 햇 빛이 높은 창으로 새어들어 김이 자옥이 우거진 욕실은 보야면서도 밝게 드 러났다. 전면 하얀 타일을 깐 속에서 욕통의 바닥만이 푸른빛으로 그 속에 햇살이 쪼이니 맑은 물은 바다 속같이 깊게 보인다. 그 좁은 바다 속에 인 어같이 너볏이 몸을 잠그고 있으면 외에 아무도 없는 자유롭게 욕실의 아침 은 단영에게는 가장 즐거운 한때이기도 하다.

물속에서 나와 욕통전에 나른한 몸을 기대이니 불그스름하게 상기된 육체 가 하얀 타일의 배경 속에서 막 익으려는 풋실과 같이도 아름답다. 몸을 굽 어보고 매만져 보면서 단영 자신 자기의 육신을 더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생 각하는 것이었다. 곡선과 탄력과 색깔과 ── 세상의 삼라만상 중에서 인간 의 육체의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 것인가. 반생 동안 몸 구석구석 에 새겨진 육체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숨김없는 내 몸을 바라보노라니 새삼 스럽게 그 아름다움이 자각되며 인간됨의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그 근본적 인 행복 이외의 모든 일신상의 불행의 기억은 적어도 그 순간만은 머리 속 에서 사라져 있었다. 하나의 남모르는‘목적’을 생각하고 있는 그로서 오 히려 따뜻한 피의 쾌감과 육체의 아름다움에 한눈을 팔고 있는 터이다. 인 간과 사파에 대한 의욕을 참으로 말끔하게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인가. 욕 실의 한때는 확실히 번뇌의 한때였다.

채 목욕을 마치지 못하고 유유히 육체의 사상에 잠겨 있을 때, 욕실 밖에 서 부르는 소리가 나면서 하녀가 문간에 나타났다.

“손님이 오셨어요 ── 서울서 찾아오셨다나요.”

“나를.”

대답하면서 단영은 그 순간으로 누구인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물론 반가 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주인 없는 방에 뻔질뻔질하게 들어앉 은 것은 추측대로의 명도였다.

“긴치 않게 왜 또 쫓아왔단 말요.”

탄식과도 같고 책망과도 같은 단영의 어조였다.

승낙도 없는 자기 방안에 장대한 명도의 자태가 태연히 웅크리고 앉은 것 이 사실 단영에게는 억석같이 보였다. 욕실에서 얻은 아침 한때의 행복감이 그 순간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먼데서 온 손님을 대한 표정이 그래 기껏 그것인가.”

명도는 데설데설 웃으면서 들고 온 조그만 트렁크를 방구석으로 밀어 놓 는다. 단영과는 당초부터 신경과 기질이 다른 ── 종래의 그의 태도였다.

“애써 찾아선 무엇 하려구 이런 유축까지 따라왔을까.”

“남의 고심은 생각지두 못하구 잔소리는 ── 어떻게 이곳을 찾었게. 온 천이란 온천은 가까운 데서부터 차례차례 다 들쳐보았다나. 서울을 떠난지 며칠이 걸렸는지 이런 곳에 숨에 있을 줄은 꿈에두 몰랐군. 그 동안의 고심 참담이라니 이루 다 말할 수 없어.”

“누가 고심참담을 하랬게. 괜히 긴치 않게.”

단영은 전과 다름없는 심상한 낯으로 경대 앞으로 가서 앉는다.

거울에 비취어진 깨끗한 얼굴이 명도에게도 바라보인다. 욕실에서 가제 나온 시원한 여자의 자태란 각별히 아름다워 보인다. 그날 아침의 단영의 욕의만을 걸친 염염한 자태는 명도의 눈을 유별히 끌었다. 여러 날만에 보 게 된 탓도 있었을까.

“별안간 자태가 보이지 않는다구 회산 안이 떠들썩하였을 때엔 벌써 사 람들을 풀어 시내를 샅샅이 뒤졌으나 뵈어야지. 아파트 사람에게 물어서 행 방을 점친 것이 찾구 찾다 결국 이 산골이란 말이야. 그 동안 적적두 했지 만 제일 어찌된 일인구 하구 불안해서 한시나 마음 편했을까.”

고맙다구 치사의 “ 말을 하란 뜻이오? 치사의 말은커녕 되려 ── 남의 속은 모르구……”

전과 다른 것이 없는 여전한 말투와 태도 ── 따라서 두 사람의 관계도 그 후 조금도 변동이 없는 여일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줄기차고 끈기 있는 인연의 계속이었고 변동이 없는 까닭에 그렇게 오래 끌어가는 것인지도 모 른다. 명도는 우둔하리만큼 열정적으로 시종이 여일하게 애정을 구해 오는 것이요, 단영은 주체스러워 맥이 나면서도 이 또한 고집스럽게 막아오는 중 이었다. 겉으로 보면 아주 익숙하고 가까운 사이 같으면서도 마지막 일선은 엄격하게 지켜오는 두 사람이었다.

“결론부터 말할 텐데 ── 내게 발견된 이상 즉시 함께 돌아가야 해, 더 긴 말할 것이 없이 오늘밤으로래두.”

“무슨 탓으로 남를 가자나 말자니 하우. 인전 좀 더러 내 멋대로 내버려 두어요.”

얼굴 바탕을 만든 위에 분을 바르고 입술에 연지를 칠한다.

화장은 여자의 본능이라고 할까. 무엇 하자는 것인지 그 산속에서 오히려 단영은 평소와 같이 공들여 얼굴을 가다듬는 것이었다.

“무슨 탓이라니, 남에게 얼마나 손해를 끼쳐 놓구 그렇게 유유한 소리야. 촬영 준비를 앞두구 살며시 도망하는 법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구.”

사업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명도도 책임자인만큼 그렇게 홀홀히 굽어 들 지는 않았다.

“훈이 각본을 쓴 지가 벌써 언제구 배역이 작정된 지가 언젠데 지금 와 서 그런 늑장을 부려. 남의 생각두 해주어야지. 얼마 안 남은 이 시절을 놓 치면 어쩌란 말인구.”

“호령이요? 책망이요? 아무러나 내 뜻 하나지, 언제 누가 무슨 약속을 했다구 이 야단이란 말요.”

명도도 사실 처음에는 단영의 마음을 잡을 생각으로 시작한 노릇이 이제 는 벌써 사업 그것을 위해 어쩌는 수 없는 난처한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명도의 초조는 애욕과 사업 두 가지에 걸려 있었다.

“속세의 매력을 가지구 나를 낚을래두 벌써 때가 늦었어요. 내 맘속에 지금 무엇이 있게 그걸 휘일랴구.”

“어서 긴 소리 말구 내 목욕하구 나오는 동안에 잘 생각해 놓아요. 내게 두 화라는 게 있지 언제까지나 사람을……”

명도는 옷을 훌훌 벗더니 욕실로 갈 양으로 수건을 찾아 드는 것이었다.

명도는 단영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촬영 진행에 지장이 생겨 곤란을 느끼 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단영의 고집은 휘어내는 재주가 없어서 강잉한 반대를 받고는 그만 단영을 데리러 온 목적도 잊어버리고 그대로 주저앉는 것이었다.

뜻없는 반날을 지내고 저녁때가 되어도 명도는 자리를 뜰 생각은 안하고 도리어 유유한 휴양의 길이나 떠나온 듯 그대로 눌러앉는 태도였다.

그래 아무래두 안가겠다는 “ 말요. 어디 누가 못 견디어 나나 지구전을 해볼까. 나두 그렇게 홀홀히는 안 뜰걸.”

하면서 속으로는 그것이야말로 자기의 바라는 듯한 심보가 없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 명도의 심보를 단영인들 알아채지 못할 리는 만무했다. 명도의 이번 길의 태반의 뜻 ── 숨은 마음의 이유를 도리어 그 자신보다도 단영의 편 이 정확히 뽑아 쥐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이야말로 뜻을 세워 보고 목적을 뚫어 보겠다고 명도의 마음이 초조할 것은 사실이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가지고 내려오는 목적이요, 뜻인 까닭이다. 그것 한 가지를 위해서 가지가 지의 희생도 달게 겪어온 터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의 대가를 벌써 한도 이 상으로 치렀다면 치른 셈이다. 이제야말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주 장할 때가 왔다고 ── 명도가 마음 그 어느 구석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을 단영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여관 뒤편 낙엽송 수풀 속을 혼자 거닐면서 단영은 명도의 일건을 생각하 고 있었다. 휘추리만 남은 나무였만 원체 빽빽이 들어선 까닭에 그 속은 제 물에 으늑한 수풀을 이루고 있었다. 발아래에 떨어진 잎새는 쌓이고 쌓여 누런 보료를 깔아놓은 것과도 같다. 그 부드럽고 깨끗한 보료를 구둣발로 밟기가 아까워 맨발로 밟아 보았다. 그 푹신한 위에 전신을 뉘어 보았다.

팔을 베이고 반듯이 누우면 얼크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실같이 복잡하게 헤끄러져 보인다. 그 위에 한 조각 구름이 걸려 유유히 한가한 자 태를 보이고 있으나 그것을 우러러보는 단영의 심중은 한가하기는커녕 얼크 러진 나뭇가지같이 복잡했다.

“그래야 옳을까, 저래야 옳을까 ── 마지막으로 명도의 뜻을 들어주어 야 옳을까, 안 들어주어야 옳을까.”

하는 제목이 마음속에 떠돌며 어떻게 결론을 지을지를 몰라 갈팡질팡 몇 시 간을 그렇게 누워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자기 몸이나 희생해서 사내의 뜻 하나 살려 주는 것이 좋은 것두 같구 ── 그러나 그만한 의리를 위해 비위에 안 맞는 짓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두 같구……”

생각하다 못해 벌떡 일어나 다시 수풀 속을 거닐기 시작했다. 몸부림이나 칠 듯 뜻없이 나무를 흔드니 가지에 걸렸던 낙엽이 누런 눈송이같이 날려 떨어졌다.

결국 마음의 결정을 얻지 못한 채 방으로 돌아왔을 때 명도는 어둠침침한 저문 방 속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다. 반날 동안의 혼자의 술타령이었다.

단영이가 들어오자 술을 따르던 하녀가 제 시중은 그것으로 끝났다는 듯 슬그머니 자리를 물러나갔다. 명도는 술기운에 흐리멍덩하게 빛나는 눈으로 단영을 흘끗 바라보는 품이 마음의 결정을 하고 왔느냐는 듯도 한 눈치다.

단영은 맥없이 풀썩 주저앉으며 피곤을 느꼈다.

“수풀 속에서 종일 무얼 했어? 사람은 혼자 방에 버려두구. 이래두 한 평생 저래두 한평생인데 그렇게 꼬물꼬물 생각해선 무엇 하누. 흐리게두 살 구 맑게두 사는 법이지 고집을 피워두 소용없어. 자, 한잔.”

“…………”

“아, 취한걸. 싸움이래두 한번 하구 싶다. 날 당할 사람은 없으렷다. 오 늘은 내가 제일이야,”

아니 뽐을 내고 기염을 올리는 명도의 태도가 전에 없이 험상궃게 여겨지 면서 무슨 일을 치려는 것인고 하고 단영은 섬찟도 해졌다.

“이렇게 권해두 내 술 한잔을 안 들겠다.”

소리를 지르는 명도의 태도는 지금까지와는 판이한 것이었다. 단영의 앞 에서 고개 숙이고 애걸하고 복걸하고 사지를 못쓰는 명도가 아니요, 꿋꿋하 게 자기 뜻을 주장하고 입장을 세우려는 그였다. 무엇이 그에게 그런 용기 를 주었던가. 돌부처도 노여워할 때가 있듯 사람은 지치면 노여워지는 것인 듯하다. 별것 없이 명도도 노여워진 것이다. 애걸하다 못해 피곤해지고 피 곤한 끝에 화가 난 것이다. 화를 낸 사람같이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다. 명 도의 그날의 자태는 전에 없이 험상궂게 보였다.

“대체 여자라는 게 얼마나 강한 것인가. 오늘이 마지막 시험이야. 나를 질근질근 밟어만 왔겠다. 언제까지든지 밟혀만 지내라는 법 있나. 정말 누 가 강한가 어디 시험해 보구야 말걸.”

“무얼 믿구 장한 소리만 탕탕 하우. 술은 안 먹겠다는데 자꾸만 지근덕 거리면서.”

“왜 안 먹어. 내 술을 왜 안 먹어. 오늘에 하필 ── 입이 부르텄나. 난 사람이 아닌가.”

입에 거품을 뿜으면서 ── 흡사 투정하는 아이다.

“왜 아닌 곳에까지 좇아와서 남의 맘을 산란하게 휘저어 놓는단 말요.

그것두 사내의 권리요? 나는 나구 당신은 당신이지 어떻게 남의 맘까지를 휘이겠단 말요. 어디 휘일 수 있는 대로 휘어 보구료.”

단영도 대꾸는 하면서도 전같이 팔팔한 기색은 없었다. 그 어디인지 풀이 죽어 보이는 것은 물론 명도에게 대한 새삼스런 공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한 몸의 고민에서 오는 것이었다. 지금은 벌써 명도와의 관계의 결말 이 문제가 아니고 더 큰 생사에 대한 문제가 전폭적으로 마음을 잡고 있었 던 것이다. 명도의 주정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기맥도 생각도 없었다.

“세상에 사내라군 일마밖엔 없나. 천하 일남 천일마만이 모든 사랑을 독 차지해야 한단 말인가. 녀석의 무엇이 그렇게 여자의 마음을 끄는구. 희구 예쁘장한 얼굴과 후리후리한 키에 음악을 좀 알구 문화니 뭐니 나서서 휫줄 대구 ── 꼭 그래야만 여자의 맘을 끄나. 그게 연애의 법칙인가. 그렇지 않으면 평생 여자 하나 잡아보지 못한단 말인가. 나같이 이렇게 검은 무트 러기는 일생을 쓸쓸하게만 보내라는 팔잔가. 누가 맨든 놈의 법칙이야. 그 런 불공평한 법칙이 무엇 하자는 거야. 어디 내가 그 법칙 좀 깨트려볼껄.

깨트려버리구야 말걸. 이 무트러기두 사랑을 좀 차지해 보구야 말걸.”

하소연이나 하는 듯 항의나 하는 듯 나다분히 지껄인는 명도의 눈동자는 점점 열을 띠어갔다.

“다 같이 조물주의 아들인데 사랑을 누가 하지 말라겠수. 아무리 추물이 기로서니 사랑의 권리까지야 없겠수. 그러나 뜻같이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인 지 사랑인들 어디 뜻대로 되우. 뜻대로 된다면 당신은 왜 그리 몸부림을 하 구 낸들 왜 이리 괴로워하겠수. 사랑이 그렇게 수월한 문제랍디까.”

“맘으로 사랑하느니 뭐니 그런 비인 사랑의 말은 다 쓸데없어. 난 내 힘 으로 내 원하는 걸 가지면 그만야. 그가 날 미워하든 말든 뺏구 싶은걸 뺏 으면 그만야.”

하면서 명도는 다짜고짜로 단영의 팔을 낚는 것이었다. 부락스런 힘이 단영 의 가벼운 몸을 송두리째 뽑아 가는 것이었으나 단영은 굳이 항거하지 않으 며 그 역 마음속에 이미 작정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뺏을 것만 뺏으면 맘이 만족할 줄 아우. 그런 시험은 내가 벌써 언제 해보았게. 만족을 얻지 못했으니까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오.”

“내겐 정신이구 개뿔이구 다 일없어. 욕심뿐이야. 그것만 채우면 그만야.”

명도가 지금까지 자기에게 대해준 희생에 대해 그 대상을 치러 주어야겠 다는 생각이 단영의 마음 한구석에 싹텄던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지 금 그 생각은 차차 더해 가면서 하나의 결의로 변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지극히 대담한 생각이라고 말한대도 그만인 것이다. 단영이 그 것을 결심한 것은 물론 그의 생애의 마지막 계단에 있어서의 자포자기적인 태도에서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 깐의 마음의 이유로서는 첫째 명도의 호의에 대한 대상이 되기를 생각했고, 둘째로 그 비위에 거슬리는 비륜의 행동으로 자기의 육체를 멸시 학대함으로써 마지막의 계획 ── 죽음의 길 을 촉진시키자는 생각이었다. 자기의 육체를 벌써 혼 없는 기계로 여기면 그만이다. 잠시 기계된 몸으로 욕심쟁이 갈망자에게 만족을 주든지 혹은 환 멸을 주어서 자기와 똑같은 또 한 사람의 실망자를 세상에 만들어 놓든지 그만인 것이다. 몇 시간 남지 않은 생명으로 마지막 선심을 쓰자는 것이 기 구한 반생의 총결산으로서는 그다지 어그러진 것이 아닐 성도 싶었다. 명도 의 자태를 한순간이라도 종래와는 다르게 고쳐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추잡하게 얼굴을 물들인 험상궂은 장정을 양같이 온순한 일면도 있었거니 생각하면서 추물의 아름다움을 그런 데서라도 발견하려고 애썼다.

저녁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이미 밤이 되었을 때, 명도는 여전히 술을 계속했고 단영은 웬일인지 마음이 분주함을 느꼈다. 역시 마지막 준비와 마 음가짐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마음 그 어느 구석으론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 고 생명의 방울을 헤아리고 있었다. 명도의 거칠은 태도와 요란하던 잔소리 도 어느덧 머물러진 것을 깨달으며 언제부터 또 저렇게 점잖아졌노 하고 은 근히 그의 모양을 살피니 고개를 떨어트리고 우는 것이 아닌가. 탁자에 반 신을 의지하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울 듯이 막고 울고 있는 것이다. 얼굴 을 드니 두 볼에 눈물이 펀지르 흐르는 것이 이것은 확실히 양 이상의 온순 한 표정이다. 하품할 때 이외의 눈물치고 불순한 눈물이라는 것이 세상에 없다. 깨끗한 감동 없이 눈물이 흐르는 법은 없음으로다. 무슨 눈물인지는 모르면서도 단영이 그 눈물에 감동한 것은 사실이었다. 위장부의 우는 꼴이 란 보기 민망한 것이기는 하나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자태 중에서 그 우는 자태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던듯하다. 아름다운 것을 꼭 한 점이라도 발견하려고 하던 단영이 눈물에서 그것을 본 것이다. 몸을 부탁한다면 그 한 점이다. 그 한 점으로 모든 염오의 감정을 떨쳐버리고 몸을 맡길 수 있 는 것이다.

“거울이나 좀 빌려 줄까. 그 우는 꼴 흡사 두꺼비.”

농을 걸어,

“세상에 나같이 못난 놈두 드물걸. 못나서 그런지 맘이 착해서 그런지 마지막까지 부락스럽게 굴지 못하겠단 말야.”

진정으로 하소연을 받은 것이 단영의 결심을 한결 더 죄이는 결과가 되었다.

그럼 이번엔 “ 내가 또 용감해질 차롄가. 자, 이 못난 사내, 용기를 좀 내요.”

전신을 맡기다시피 하면서 손바닥으로 명도의 면상을 문지르는 것이었 다…….

단영의 계획은 성공되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의 마음의 경로였다. 그것 이 있기 전의 순간과는 판이한 감정이 마음을 엄습하면서 지금에 벌써 커다 란 파멸의 문이 그의 낡은 육체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눈물로 추잡한 면 상을 잠시 가리웠던 명도도 다시 눈물을 흘리기 전의 추물로 돌아가 보기만 해도 진저리나는 욕심쟁이로 변해졌고 잔인하게도 학대받은 자기의 육체도 누추한 환멸 속에 잠겨 생각만 해도 구역나는 등신으로 화한 것이다. 세상 에는 벌써 남은 것이 없다. 마지막이 온 것이다. 커다란 모욕과 타락 속에 서 최후의 결심을 실행함은 단영으로서는 가장 쉬운 노릇이었다. 당초의 계 획에 성공한 것이다.

웃음이 변해 눈물이 되었다. 단영은 반듯이 누운 채 눈물을 훔치면서 마 음을 가다듬었다. 배부른 추물은 어느덧 옆에서 잠들어 있다. 고요한 마지 막 일순이다.

“그것 하나를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게 나두 결국 구식여자에 지나지 못 했던가. 그러나 이 고전적인 습속이 지금 제일 비위에 맞는 것이다. 인연이 있다면 딴 세상에서나 또 일마를 만날까.”

침착하게 몸에 지녔던 그것을 내어 유리잔의 물과 함께 단숨에 내려 삼키 는 것이다.

피곤하고 고주가 되어 단잠이 들었던 명도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던지 아마도 일종 특별한 영감으로 말미암은 것인 듯하다. 옆자리에 누운 단영의 신음소리가 그의 잠을 깨우리만큼 높지는 않았다. 환몽 중에 벌떡 일어나 보니 의외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단영의 그 꼴이 눈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괴로워 몸부림을 치는 단영의 어지러운 옆에 흐트러진 약갑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괴롬의 뜻을 깨닫고 꿈이나 아닌가 하며 뛰어 일어났던 것이다.

엉겁결에 단영의 몸을 흔들어 보나 혼몽상태에 빠져 입에 거품을 머금고 괴로워만 할 뿐 눈을 뜨지는 않는다. 육체의 괴롬과 전신은 각각 동떨어진 다른 것인 듯 정신은 육체의 말을 듣지 않는다. 사태가 위급함을 깨닫자 명 도는 한꺼번에 겁이 치밀어 오르면서 허둥허둥 문을 밀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사람 구해 주오.”

소리를 치면서 설레는 바람에 아직도 깨어들 있던 하녀 방에서 하녀들이 뛰어나왔다.

밤이 이슥한 때이라 그러지 않아도 손님이 적은 한적한 여관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어서 등불만이 누르꾸무레하게 고요한 속에서 명도의 목소리는 그 지없이 당황하게 울렸던 모양이었다.

몇 사람의 하녀는 한꺼번에 달려와 방안에 몰려들었으나 단영의 모양을 보고는 더욱 놀랄 뿐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들 분별조차 생기지 않았다.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제 힘에 맞는 때뿐이다. 힘이 부치는 때는 벌써 놀람이 있을 뿐이다.

하녀들도 결국 명도와 한패가 되어 주인을 깨운다 하며 설렐 뿐이었으나 산골 벽지에서 그 몇 사람의 지혜로는 위급한 한 사람 생명을 구해내는 재 주가 없었다. 급변에 처할 준비와 지식을 사람은 평소부터 갖추어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 급변이란 드문 일인 까닭이다 ── 참으로 단영같이 신 여성이면서도 구식의 정신을 사랑하는 여자도 드물 법하다.

요행 여관 뜰 앞에는 자동차 한 대가 머물러 있었다. 역과 온천지 사이를 내왕하는 차는 대개 역 앞 차고에서 밤을 지내는 것이었으나 그날 밤은 공 교롭게도 운전수가 온천에서 밤을 지내노라고 빈차를 세워 두었던 것이다.

주인의 알선으로 운전수를 깨워 명도는 전속력으로 읍내로 향하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는 읍내에밖에는 병원과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야 밤중에 의사를 데려오는 수밖에는 없다. 밤중이자 벽지이자 ── 단영은 가 장 불리한 기회를 고른 것이다. 아니, 하기는 그의 요량으로서는 가장 유리 한 기회를 고른 셈이었을까.

급한 경우라 운전수도 불평이 없이 산골의 험한 길을 달렸다. 읍내로 향 한 길은 좁은데다가 더구나 그곳 일대는 험준한 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라 무 수히 구부러진 길이 위태위태하게 비탈로 뻗쳐 있다. 희미한 등불로 길바닥 의 잡초를 비취이면서 차는 되인 듯 산길을 더듬어 내렸다.

“약을 먹다니 웬일인가요.”

운전수의 질문에 명도는,

“뉘 아나요.”

범연하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곰실곰실 타고 드는 것이 있었다.

“겉은 멀끔하게 채려두 사람의 속은 편편하지 못한 모양이죠. 그 젊은 청춘이 약을 먹다니.”

“…………”

명도는 침묵 속에서 마음속 한 점을 노리고 있었다.

“내 탓도 있지 않을까 ── 적어두 죽음을 결심한 마지막 동기는 내가 주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 어디인지 자포자기적 태도가 있었다. 그런 태 도로 나를 마지막 발디딤을 삼고 죽음의 길을 떠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 깊은 자책의 염이 솟으면서 커다란 뉘우침이 가슴을 죄었다.

자기는 욕심쟁이 사내였다. 왜 한 여자의 순정을 그대로 살려두지 못했던고.

“여자의 마음이란 그렇게두 아름다운 것인가. 죽음으로 순정을 표현하다 니 ── 세상에 일마같이 행복스런 사내가 또 있을 것인가.”

찬 밤 기운에 몸이 젖으면서 마음도 함께 축축이 젖어갔다.

근 삼십 리나 되는 길의 안팎 육십 리를 내왕하니 밤중도 이미 지나 어느 덧 이른 새벽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촌 읍의 의사는 신경이 장작같이 둔하고 몸이 느린 것을 간신히 애걸해서 차리고 나서게 했다.

의사를 믿고 명도는 얼마간 마음이 든든은 했으나 다시 온천까지 돌아왔 을 때에는 어디서인지 첫닭이 한 홰 울고 난 뒤였다.

하녀 한 사람은 방에서 졸고 있고, 단영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신음하고 있는 중이었다.

명도는 급한 마음이 앞서서 아이같이 설레는 것이나 의사는 침착한 것인 지 무관한 것인지 심상한 태도로 베풀 수 있는 수단은 다 베풀었다. 주사를 놓고 입에 약을 머금었다. 의식 없는 속에서 약즙은 받지를 못하고 입 밖으 로 흘러나왔다. 약의 효과는 무한량하고 진득이 기다리고 있는 수밖에는 없 었다. 손을 다한 후에는 단영의 얼굴빛의 변화를 바라보고들 앉아 있을 뿐 이었다.

“회복의 가망이 있습니까.”

무시무시한 마음에 명도는 서성거리면서 간신히 이것을 물었다.

“글쎄요.”

“꼭 회복이 돼야겠는데.”

“요행 분량이 과하지 않았던 것 같아 안심은 됩니다만.”

의사는 단영의 옆에 흐트러진 약갑을 집어 올려 내용을 살폈다.

교갑에 든 흰 약의 불과 몇 개 축났을 뿐이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 정 도의 양으로도 목적의 효과가 나는 수가 있기는 있으나 실패하는 수가 많다 는 것이었다 단영은 겁결에 . 채 적당한 양을 못 마시고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 한 점에 명도는 희망을 붙이기는 했으나 다시 의사의 말을 빌면,

“그러나 봐하니 원체 몸이 쇠약한 모양이래서 필요 이상의 고생을 할 것 두 같습니다.”

라는 것이다.

최근 단영의 건강이 어느 때보다도 쇠약해졌던 것은 명도야말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한시도 그칠 바를 모르는 번민과 초려 때문에 그 염염하고 충 실하던 육체가 어느결엔지 바싹 바스러져서 명도를 놀라게 했다. 설사가상 의 재앙이 명도의 가슴을 죄었다.

“아무튼 목숨 하나만은 돌려야겠는데 선생의 재주껏 좀 다해 주십시오.”

손이라도 모고 빌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베풀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은 빤한 것이어서 의사도 그 이상 더 어쩌는 수 없이 다만 명도와 함께 앉아 잠시 더 동무를 해줄 뿐이었다.

분주한 몸에 밤을 새울 수 없다는 것이어서 밝기 전에 다시 자동차로 의 사를 읍내까지 보내게 되었다.

이럭저럭 밤이 훤히 밝게 되었다.

잠 한숨 못 이루고 줄곧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한 명도는 그렇다고 그다지 피곤도 느끼지 않으며 단영의 머리맡에 차지게 앉아 있었다. 그것이 지금에 있어서는 단영에게 보일 수 있는 단 하나의 정성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한 몸을 바스러트려서라도 그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그 정도의 정성쯤은 대단 한 것이 아니었다. 힘자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는 싶으나 지금에 할 일은 그밖에는 없었다.

아침이 되면 서울로 지급전보를 쳐서 친한 동무 의사를 부를 작정이었다.

저녁때까지에는 다다를 것이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볼 생 각이었다. 단영같이 소중한 사람이 세상에는 둘도 없음을 더욱 절실히 깨달 아 갔다.

참으로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을 이제 점점 느껴 가며 단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려니 뼈 속까지 쯔릿해 갔다.

얼마나 변한 얼굴인가. 어제까지의 건강한 얼굴이 아니고 초췌한 흰 얼굴 이다. 괴롬과 슬픔이 넘쳐 흐르는 얼굴이다. 무엇을 가져온들 그보다 더 가 엾은 것이 있을 것인가.

“단영에게나 내게나 왜 사람은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인구. 사람을 이렇게 슬프게만 해놓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꾹 감으니 굵은 방울이 무릎 위에 떨어졌다. 두꺼운 손등으로 눈을 비비는 명도는 흡사 아이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