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공무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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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호텔의 아침 한때.

거리로 향한 사층 전면에 벌집같이 무수한 방을 가지고 있는 호텔 ── 이 층 한가운데 단영과 명도는 앞 뒷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영이 자기 방에서 세수를 하고 아침 화장에 정신이 없을 때 노크를 하고 멋대로 들어온 것은 명도였다.

“누구예요.”

“나.”

번히 근 줄을 알고 묻는 단영이나 근 줄을 알고 대답하는 명도나 능청 맞 기는 일반이다.

“말두 없는데 왜 들어와요.”

“반드시 허락이 있어야 되나.”

“그럼은요. 숙녀의 방이 아니예요.”

“알량한 숙녀.”

“뭐요 ── 안돼요. 어서 나가요.”

단영은 화장대 앞에서 일어나서 명도를 노린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단영의 자태란 아직 침대에서 빠져 나온 그대로의 허 랑한 것인 까닭이다. 휘줄한 잠자리옷 속으로는 얇은 속옷만을 걸쳤을 뿐이다. 옷섶 위로 목덜미와 가슴이 내솟고 옷자락 아래로는 벗은 다리와 발이 허옇게 드러났다. 그 염염한 자태가 명도의 눈에는 무서운 독임을 단영은 잘 아는 것이요, 한편 아무리 서름서름하지 않은 그의 앞이라고는 해도 역 시 여자로서의 본능적인 수치의 염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나가라니깐요.”

가까이 와서 발을 구르니 화장냄새가 확 치밀어 오면서 명도는 도리어 유 혹을 느낀다. 옷자락 사이로 드러나는 종아리가 꽃방치같이 눈을 갈겨 정신 을 어지럽힌다.

“짜증을 낼 땐 꼭 소학교 여선생 같구료 ── 남을 언제까지나 생도 취급 을 하면서.”

“당신은 조금두 나아질 줄 모르는 악동이예요. 생도치군 아주 열등생이예요.”

“그렇게 섭섭히 굴지 말구 ── 우리 타협할까. 자, 이렇게 돌아앉을께.”

의자를 돌려 놓고 화장대와는 반대쪽 문께를 향해 앉는 명도의 꼴이 말할 수 없이 추접해 보인다.

“사내는 왜 이리 모두 춥춥스러운지.”

단영은 하는 수 없이 물러가는 것이었으나, 문득 무엇을 생각했던지 침대 로 가서 담요를 집어다가는 돌아앉은 명도의 머리를 별안간 푹 씌워 버렸다.

“고려장을 지내려나.”

“어서 그러구 가만있어요. 싫거든 나가구요.”

“생판 지옥이지 이게……”

담요 속에서 흘러나오는 명도의 목소리가 모기소리만하다.

그 괴로운 어둠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오히려 방을 나가지 않으려고 함을 보면 여자의 곁에서의 어둠이 차라리 참기 나은 모양이었다. 중년의 사나이 가 요를 쓰고 우스운 꼴로 천연스럽게 앉아 있는 것이 단영에게는 측은하게 도 보였다 ── 사내는 왜 이리 천덕구닌고. 흡사 동물이 아닌가.

“저렇게 춥춥스러우니까 되려 천대를 받지.”

“어떻게 하면 천대를 안 받을꾸.”

요 속에서 새어나오는 모기소리가 몹시도 답답하다.

“좀 의젓하게 해봐요.”

“일마같이 쌀쌀하게 말인가.”

“비밀을 일러줄까요.”

단영은 일마라는 이름에 제흥에 젖으면서 목소리를 부드럽힌다.

“터놓구 말하면 여자는요……”

“그래.”

“너무 끈끈한 사내를 좋아하지 않는다나요.”

“…………”

“좀 쌀쌀하구 교만한 사내가 더 정을 댕긴다나요.”

“그건 일마를 두구 하는 소리지.”

“일마에게 대한 내 생각만이 아니라 알구 보면 세상 여자의 구미가 다 그 래요 ── 잔소리 말구 잘 들어 둬요. 이게 연애에 이기는 비밀예요.”

“아구 답답해. 다 됐나. 숨이 막힐 지경이니.”

“가 가만있어요. 조금만 더 참구 있어요.”

명도가 담요를 벗을 듯이 하는 것을 단영이 기급을 하고 소리를 치며 막은 것은 지금 막 속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던 까닭이다. 슈미즈 위에 피스를 걸 치고는 부랴부랴 양말을 신는다.

아무도 모르는 방에서의 두 사람은 정 있는 듯이 보이면서도 기실 그렇게 서름서름한 것이었으나 일단 차림을 차리고 방을 나설 때에는 지극히 다정 한 것으로 적어도 ── 호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사실 나란히 서서 층계를 내려가는 그들의 모양은 비록 각방은 쓸지언정, 그리고 방안에서의 사이가 개와 고양이든 간에 자별한 두 양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그들에게로 집중되는 것이었고 어느 한 사람 그들의 사이를 부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명도 편으로 보면 그것이 원하는 것이기도 해서 숨은 곳에서는 구박을 받을지언정 지금 층계를 내려가는 그의 태도는 버젓한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두 통쾌하단 말야.”

웃음을 섞어 가면서 지껄이는 것을 마침 옆에 보는 사람이 없는 까닭에 단 영은 긴치 않다는 듯이 흘겨본다.

“── 어젯밤에 일마를 골려 준 것 말야.”

“그 자리에선 꼼짝 못하고 이제 와서 숨어서 웃는단 말요. 졸장부 같으니.”

“난 단영이 그렇게 용감한 줄은 몰랐어. 일마 앞에서라면 설설 기는 줄만 알았더니 아주 대담하단 말야. 고쳐본걸. 사내 앞에선 그래야지 쩔쩔매선 못써.”

하다가 문득 일마에게 대한 단영의 태도뿐이 아니라 자기에게 대한 단영의 태도를 생각하고 속으로 쓴웃음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일마에게 대한 단영의 태도가 대담하다면 자기에게 대한 그의 태도는 얼마나 더 용감 ── 하다느니 보다는 모욕적이었던가.

“남의 소리 그만두고 당신이나 어서 일마의 앞에서 천하게 굴지 말아요.

못난이같이 옆에서 보기 딱하게.”

“사내끼리야 그까짓 아무튼지 상관 있나. 단영의 그런 태도가 내겐 반가 워하는 소리지. 일마의 태도두 물론 반갑단 말이구.”

“시끄러워요.”

단영은 휭하니 먼저 내려간다.

두 사람의 조반이 제일 늦은 모양이었다. 식당에는 손님들이 듬성했다. 부 부같이 마주 대해 앉은 식탁 위에 보이가 늦은 아침을 나르기 시작했다. 단 영도 보이 앞에서는 별수없이 부부인 척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왈컥 부딪쳐 가니까 춤추던 것이 별안간 쓰러질 듯 밀려가면서 나아 자인지 한 여자가 무어라드라 ── 질색하면서 이게 무어야 하고 짜증을 냈 겠다. 유쾌했어.”

식사를 하면서도 명도는 간밤의 일이 잊히지 않아서 중얼거리니까 단영도 나아자라는 바람에 귀가 띄어 숭숭거리는 마음에 한마디 없을 수 없었다.

“아니 정말 일마는 나아자하구 어는 정도로나 친해졌을까. 아주 단짝일까.”

“어젯밤 눈치 봐서는 단짝은커녕 세상에 자기들 둘밖에는 어디 더 있는 것 같던가.”

명도가 부채질하는 바람에 단영은 더욱 달뜨고 마음이 쑤신다.

“속상해, 제에기.”

“겉볼안이 아니야. 일마가 겉은 참하면서두 아주 난군이란 말야.”

“어떡하면 좋아. 물구 뜯을 수두 없구, 원.”

“물구 뜯다가 나아자에게 되물리려구.”

“내가 나아자만 못하우. 그래 아무델 뜯어봐두 설마 나아자만야⋯⋯”

“내게야 단영이 나아자보다 열 곱은 나 뵈여두 일마 눈에 그렇게 뵈여야 말이지.”

단영의 달떠 하는 것이 명도로서는 기쁜 것이다.

“세상일이 요렇게 틀어지구 맘대로 안되니까 재미있거든.”

“속상해.”

그러나 한 번 놀음에 주저앉을 단영이 아니었다. 한숨짓는 가슴속에는 굳 은 결의가 서리워졌다.

“── 하는 데까진 해 볼걸.이케 된 바에야 사생결단이지.”

편편치 못한 심화로 단영은 구미조차 없어 식사도 하는 둥 만 둥 객실로 나왔을 때 답답한 판에,

“송화강에나 나가 볼까.”

“지금이 어느 때게 강엘 나간단 말요. 한여름인줄 아나부다.”

“시원한 데 가서 바람을 쐬여야겠는데.”

하다가 마침 벽에 걸린 경마대회의 포스터를 보고,

“오라, 경마가 있구나.”

“잘됐군.”

“말이나 실컷 보구 올까부다.”

두 사람은 그 길로 호텔을 나섰다.

추기경마대회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단영들은 서울서도 일년에 두어 번씩 열리게 되는 경마에서 마권을 몇 번 사본 경험이 있어서 그 길에는 반드시 서툴지는 않았다.

신시가로 나가 우선 백화점에 들렀다.

추림백화점 (秋林百貨店)은 외국인 경영의 하얼빈서도 으뜸가는 가게였다.

점원이 전부 외국인인데다가, 특히 금발 벽안의 여점원들의 응대는 그것만 으로도 눈을 끌었다. 반드시 한 가지 나라 말만이 쓰이는 것이 아니요, 로 서아어도 들리고 영어도 들려서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언어의 혼란을 일으켜 흡사 국제백화점인 감이 있었다. 층층으로 진열된 물품에는 구라파적인 은 은한 윤택과 탐탁한 맛이 드러나 보인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 요, 천여 년을 두고 쌓아 내려온 굳건한 전통의 빛이 그 어디인지 흐르고 있다. 구라파 문명의 조그만 진열장인 셈이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속으 로 단영들은 특이한 냄새와 공기를 느꼈다. 늘 맡는 문명의 냄새를 진짬으 로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단영의 목적은 쌍안경을 사자는 것이었다. 층을 올라서 사치품부에서 알맞 은 것을 골라 들었을 때 미목이 수려한 금발의 여점원이,

“경마장에 가시나요.”

하고 애교를 보인다.

“봐요, 경마에 쌍안경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단영이 명도를 가르쳐 주면 명도는,

“달아나는 말의 다리를 보자는 셈이지. 어느 말이 몇 자 몇 치나 더 빠른 가를.”

“말두 보구, 경치두 보구, 사람두 보구 ──”

하면서 쌍안경을 눈에 대고 나사를 돌리며 초점을 맞추어 본다.

“저것 봐.”

창밖 먼 거리에 초점을 박은 까닭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렌즈에 비취어 온 것이다.

“저 저것.”

초점이 움직이기 때문에 초조하게 나사를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세계적 미인을 그만 놓쳤네.”

한참 후에 다시 옳게 그것을 찾아냈는지,

“옳지, 저것 저것 좀 봐요.”

“미인을 찾아낼 수 있다면 하긴 쌍안경이 필요한 것이긴 하군.”

명도와 단영의 양을 빙그레 바라보고 섰던 여점원은,

“맘에 드시나요.”

하고 흥정을 시작한다.

쌍안경을 사가지고 백화점을 나왔을 때 단영은 아이같이 기뻤다. 신기한 것이나 찾아낸 듯 마음이 뛰었다.

“두 눈으로두 족한데 쌍안경까지 끼이구 인생을 본다.”

“둔 눈이 더하니까 더 잘 보거든요.”

“자연에 대한 반역이야.”

“내 이제 신발명을 해내지 않나 보죠 ── 인생의 신발명을 해낼께요.”

자동차에 앉아 경마장을 분부했다.

마가구(馬家溝)의 넓은 길을 쏜살같이 내닫는다. 주택지대인 그 구역에는 수목이 울창해서 그윽한 별천지를 이루었고 가도 양편에는 느릅나무의 고목 이 정정하게 늘어서 길 위에 그림자를 던졌다.

마가구를 벗어나니 무연한 벌판이다. 비행장을 옆으로 구부러졌을 때 단영 은 쌍안경을 눈에 댔다. 먼 경마장이 비취어 오고 그 속에 아물거리는 사람 들이 렌즈 속에 차려차례로 나타났다.

넓은 벌판에 한 점을 찍은 경마장 가까이 가보면 그것이 또 하나의 넓은 벌판이다.

그 속에 아물아물 사람들이 들어서서 아닌 곳에 장 마당을 이루었다.

수천 명의 남녀노소가 무엇을 구하러 그 외딴 벌판 속으로들 모여 들었는지 ── 사람은 경영을 위해서는 언제나 곳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거리의 생활만으로는 감격이 부족하다는 것일까. 벌판에까지 그것을 연장 시켜 가슴을 죄이고 피를 끓여 가면서 감격 속에 살자는 것일까. 말다리에 그날의 운명을 맡기고 하루의 행운과 불운을 점치자는 것이다. 행운에 웃고 불운에 울자는 것이다. 타원형의 테두리를 둘러싸고 서서 달리는 말들을 바 라보면서 흥분과 낙담 ── 기쁨과 실망에 서성거리는 그 굴곡 많은 하루의 생활을 사러 사람들은 모여든 것이다.

그날의 코스는 벌써 삼사 회를 거듭하고 있었다.

단영과 명도가 경마장에 이르러 구내에 들어선 것은 네 번째 경주가 막 끝 난 때였다.

사람들은 반원형의 좌석에서 와르르 흩어져서 각기의 기쁨과 실망을 털어 버리고는 다음회의 마권을 사러 뒤편 마장으로들 내려갔다. 그 밀리는 파도 속에 명도와 단영도 섞여 있었다. 하얼빈의 거리가 그러하듯 그곳에도 각 사람들이 다 모여 국적과 인종의 진열장이었다. 두 사람은 수많은 낯선 얼 굴들 틈에 끼어 누가 누구인지 바로 옆 사람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서름서름 한 속에서 역시 공통된 흥분에 사로잡혀 요란한 공기속에 스스로 화하는 듯 이 보였다.

마장에서는 다음에 출장할 칠판 필의 말들의 조교가 있었다. 가볍게 단장 하고 채찍을 든 기사들이 각각 자기들의 사랑하는 말을 끌고 나와서는 뭇사 람 앞에서 걸려 보이고 타보고 하면서 말의 능력을 시험하는 한편 마권을 살 사람들에게 판단의 표식을 주는 것이었다. 차례차례로 나타나는 말들은 그 자신들의 능력의 경쟁으로 그들을 사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사람들은 세밀한 주의로서 말들을 관찰하고 감정하는 것이었다.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모자를 쓴 기사가 데리고 나온 말은 ‘태양’이라는 이름이었다. 후리후리하고 늠름한 기상이 단영에게는 첫눈에 들었다. 보던 중 주의를 끌었다.

“난 단연 저 말로 했어요.”

언하에 작정하는 것을 명도는 더 한 수 신중하게 보면서,

“허울만 좋아두 쓸데없어 ── 말두 사람과 일반이어서 허울보단 매친데 가 있어야 힘을 쓰지 저렇게 키다리구서야 ──”

반대하니까 단영은 더욱 자신을 가지고 주장한다.

“웬 소리요, 외양이 첫째지. 그밖에 무얼로 속을 판단한단 말요. 외양이 훌륭하고야 속두 훌륭하지 외양이 변변치 못하면 힘인들 쓸 수 있수 ── 단연 ‘태양’이야.‘태양’이 이기지 않나 두구 보구려.”

그래도 명도는 웬일인지 굽어들지 않고 자기 생각을 옳은 것으로 여기면 서 다음에 나타난 말‘아킬레스’나‘멘텔차아’를 도리어 우수한 것으로 인정했다.

“나두 경마로는 여러 해 속을 태운 사람인데 외양엔 늘 속아 넘어왔어.

허울 외에 보는 데가 또 있다나 ── 무어라구 할까. 그 어디인지 영악하구 탐탁해 보이는 것 ── 사람이나 말이나 그게 첫째야. 늠름한 외양이란 아 무 소용없는 거야 ── 가령 내 눈에는‘아킬레스’나‘멘텔차아’가‘태 양’보다는 훨씬 웃질이야. 좀 있으면 알 일이지만 두구 보구려.”

“말을 골라두 꼭 당신같이 ──‘아킬레스’가 어딜 보니‘태양’보다 낫 단 말요. 그게 눈이요, 뭐요.”

“두구 보면 알 일인 것을 고집만 피우다.”

“단연‘태양’이예요. 두말 말구 어서‘태양’을 사요.”

바른 의견이 소용없었다. 단영의 고집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어서 명도도 하는 수 없이 그를 좇아‘태양’의 마권을 사는 수밖에는 없었다.

오 원 권을 각각 한 장씩 사가지고 벨이 울릴 때 두 사람은 마장을 올라 가 타원형의 코스를 향해 좌석에 앉았다.

제오회째 경주가 시작되었다 . 시그널이 떨어지자 말들은 내닫기 시작했다.

수천의 눈이 쏜살같이 뻗치는 말의 행렬로 일제히 향해 당긴 활같이 긴장들 했다. 말들의 흐름과 함께 눈들은 타원의 코스를 몇 바퀴이고 돈다. 바퀴를 거듭함을 따라 각 사람의 한결같은 긴장을 풀리면서 차차 각각 득의와 실망 의 고개를 향해 따로따로 닫는다.

‘태양’이 단연 우수해서 처음에는 ‘아킬레스’에게 떨어질 듯 질듯하더 니 마지막 두어 바퀴를 남겨 놓았을 때부터 앞장을 서기 시작하는 것이 끝 가지 뭇 말을 빼는 것이었다.

말의 의기가 오름을 따라 좌석에서는 수선거리는 기색이 보이고 환희의 목 소리가 솟았다.‘태양’을 산 사람이 가장 많은 모양이었다. 단영도 물론 그 총중의 한 사람이어서‘태양’이 바로 눈앞을 달릴 때에는 자리에서 반 쯤 허리를 세우고는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했다.

“봐요.‘태양’이 이기지 않고 배기나 ── 내 눈에 어김이 있을 줄 알구.”

통쾌한 김에 박아대면 옆에 앉은 명도는 자기도 산 말이니 기쁘지 않은 바 는 아니었으나 한 수 휘인 것이 불만이어서,

“아직 한 바퀴 더 남았다나.”

하면서 애틋한 듯 서너 번째로 떨어진‘아킬레스’에게로 눈이 간다. 이왕 이면 자기가 주장했던 그 말이 이겨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단영과의 은근한 경쟁이었다. 물론‘아킬레스’도 전력을 다해 닫 는 것이며 초록옷 입은 기사는 채찍을 들고 말허리에 납작 엎드려 말과 마 음을 같이하는 것이나‘태양’과의 거리는 벌써 너무도 멀어졌다.

“한 바퀴 아니라 두 바퀴래두 저렇게 솟은 것을 무엇이 따라낸단 말요.

자, 저래두 못이겨요.”

“최후의 일 분간이라니.”

“다 진걸 뭣 하자는 일분이란 말요. 그래두 행여나‘아킬레스’가 이길까 해서. 저 떨어지는 꼴이란.”

“어서 작작 기뻐하구.”

“저것 봐, 뛴다 뛴다⋯⋯”

“아직두 반바퀴.”

“솟는다 솟는다⋯⋯”

“사 반바퀴.”

“날은다 날은다⋯⋯”

“좀더.”

“날은다 날은다⋯⋯난다 난다⋯⋯옳지.”

“‘태양’만세!”

사람들이 왈칵 일어서면서 좌석에는 기쁨의 목소리가 파도같이 터져나왔다. 태양’이 일착인 것이다.

“‘태양’만세!”

“만세!”

모자가 날으고 손수건이 흔들리고 수선스런 소리가 좌석을 들어갈 듯도 하다. 와르르들 흩어지면서 각각 황겁지겁 자리를 밀려 내려간다.

틈에 끼어 비비대노라고 단영은 베레에 모자가 비뚤어지고 손에 든 핸드백 이 사람들 허리 사이로 솟아나곤 한다. 명도의 손이 간신히 그의 팔을 낚우 어서 마당 쪽으로 인도했다.

“맛이 어때요 ── 아, 유쾌해.”

“단영 덕에 나두 마권을 옳게 산 셈인가.”

“내 눈에 어김이 없다니까요. 거저 나 사는 대로만 좇아 사요. 틀림없을 테니.”

“어쩌다 한 번이나 그랬지 판판이 그럴 줄 아나. 내겐 내 요량이 있어.

‘태양’이 언제나 이길 말이 아니구‘아킬레스’가 번번이 실패할 말은 아 니거든.”

“지구서두 우기는 그 낯짝.”

자기 몫의 우승의 배당을 얻으려고 사람들은 사무소 좁은 창 앞으로 꾸역 꾸역 모여들었다.

‘태양’의 배당은 한 구멍에 이십 원 남짓하게 들어왔다. 단영과 명도는 각각 한 장씩을 샀던 까닭에 합 사십 여 원이 수중에 들어왔다.‘태양’을 겨눈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배당으로서는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영 들에게는 처음 산 마권으로 첫 배당이었던 까닭에 기쁜 마음은 측량할 수 없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여남은 장은 샀을 것을.”

하는 욕심까지 솟기 시작했다.

“열 장이면 이백 원이게.”

“뻔히 이길 줄 알면서두.”

“욕심이 과해.”

“난 또‘태양’을 살걸요. 아주 맘에 들었어요.”

“번번이야 좋을 줄 아나.”

“결과만을 봐요.”

한 번을 쉬고 일곱 번째 회에 다시‘태양’의 출장이 있었다.

단영은 명도를 쑤셔서 처음 배당액으로 몽탁‘태양’을 샀을 뿐 아니라 채 표까지를 각각 한 장씩 샀다. 명도도‘태양’이 출마하는 한 단영의 앞에서 는 거역할 수도 없어서 이번에는 순전히 단영의 지시대로 좇으면서 좌석에 앉게 되었다.

회마다 더해 가는 흥분 속에서 일곱 번째 경주가 시작되었다. 확성기가 소 리를 높여 코스의 사정을 방송하니 보는 사람들의 흥은 한층 높아갔다.

주의는 이번에도 대부분이‘태양’으로 향했다.‘태양’의 일거일동으로 말미암아 날카로워진 신경 끝에 불꽃이 나는 듯도 하다. 고함과 한숨이 섞 여서 원형의 좌석은 감정의 수라장이다. 행이냐 부냐, 백이냐 흑이냐 ── 운명의 판단을 각기 골라낸 말에게 맡기고 약동하는 타원의 흐름을 노리는 것이다.

아까 번과 마찬가지로‘태양’은 처음 몇 바퀴는 불리하던 것이 바퀴를 거 듭함을 따라 뭇 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한 필 두 필을 뽑을 때마다 단영 은 고함을 치면서 몸을 엉거주춤 들먹거렸다.

두 바퀴를 남겨 놓고‘태양’은 기어코 뭇 말을 앞장을 섰다. 회오리바람 같이 환희의 소리가 스치는 속에서 단영은 꿈결같이 몸이 화끈해 감을 느꼈다.

“어쩌면 아까 번과 똑같이 된다 말요.”

반쯤은 일어나 서서 쌍안경이 눈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글쎄 말야. 오늘 경마가 우리들을 위한 경마란 말인가.”

명도는 미상불 기뻤다.

“내 솜씨가 어때요. 경마에는 대장이죠.”

“나두 이렇게 될 줄야 몰랐구료. 오늘은 사실 경마에 온 보람이 있는데.”

“이번에 이기면 배당이 얼만지 계산이나 해봐요 ── 이십 원씩이면 일백 육십 원, 삼십 원씩이면 이백사십 원⋯⋯”

“오십 원씩이면 사백 원 ── 백 원씩이면 팔백 원인가.”

“팔백 원!다 내가 번 셈이죠.”

“아무렴 ── 뭐든지 청하는 대로 안 사주리. 목도리든지 보석이든지⋯ ⋯”

“목도리든지 보석이든지⋯⋯”

앵무같이 말을 받아서 외이다가 단영은 문득 앞으로 주춤하면서 쌍안경을 바싹 대었다.

“⋯⋯아니 저기.”

“왜‘태양’이 첫짼데 뭘.”

“일마가 아닌가.”

렌즈 속에 뚜렷이 비취어 온 먼 좌석에 한패는 틀림없는 일마들이었다.

“나아자와 ── 또 한 사람 왼편의 여자는 누군구!”

일마와 나아자와 ── 또 한 사람 에미랴의 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들 역시 쌍안경을 손에 들고 경마에 열중해 있는 것이었다.

“일마들이 왔다구.”

명도도 의외라는 듯이 소리를 지르나 단영은 벌써 경마에는 정신이 없어지 고 그들 한패에서 쌍안경을 돌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아, 일등이야 일등.‘태양’이 또 일등이야 ──”

별안간 명도가 외치는 소리도 단영에게는 시들해지고 눈 속에는 일마들의 자태만이 있었다. 그들은‘태양’을 사지 않았던 것일까. 세 사람의 얼굴에 는 실망의 빛이 역력히 나타나 보인다.

그날 일마는 마침 에미랴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이 거뿐하다는 판에 소풍 겸 나아자와 함께 세 사람이 경마장을 찾았던 것이다.

일마에게는 경마가 서툴렀으나 나아자와 에미랴에게는 마권을 사는 솜씨가 익숙했다. 그러나 일마는 자기 요량이 있어서 마권을 살 때 의견을 고집스 럽게 내세우게 되었다. 마장에서 말의 조교를 보고는 비위에 드는 말을 골 라 나아자가 무어라고 충고하든 간에 그 말을 샀다. 웬일인지 판판이 실패 여서 일곱 번이나 회를 거듭함에도 한 번도 등에 들지 못하고 참패를 계속 해 오는 중이다.

단영이 쌍안경으로 멀리 일마들의 자태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일곱 번째 실망 속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가운데 일마를 두고 양편에 나아자와 에미 랴가 앉아서 세 사람은 한 표정이다.

“보세요.또‘태양’이 이기겠어요.”

나아자가 민망해서 일마를 보면,

“그러게‘태양’을 사자니까요.”

하고 에미랴는 초조해 한다.

“이기면 이겼지 ── 오늘 경마가 아직 반밖엔 안 나갔는데.”

일마는 표면 태연해 하기는 하나 속이 조급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주머니 속도 홀쭉해졌거니와 무엇보다도 맥이 드는 노릇이었다.

“다음 번엔 난 꼭‘태양’을 살 터예요. 누가 뭐라든지.”

에미랴는 어린 마음에 짜증까지 내본다.

“저것 봐요. 저 저것.”

“기어쿠‘태양’이 일착이구나.”

“속상해.”

옆자리에서 물 끓듯 일어나는 기쁨의 고함 속에서 세 사람은 낙망해 바로 일어나 설 맥도 없었다.

그 양을 단영도 멀리서 바라보면서,

“고것 싸다.”

하는 심술궂은 심정조차 솟아 기쁨이 곱절 더해졌다.

“사람을 골리기만 하면서 무엇이 잘되겠다구.”

그 회의 단영들의 배당은 이백 원이 넘었다. 단영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그 이백 원의 뭉치로 일마의 눈을 보기 좋게 갈겨 주었으면 하는 욕망조차 들었다.

그 자리로 일마들 편으로 달려가고자 하는 것을 명도가 간신히 붙잡아 앉 혀 멀리서 그들의 거동을 더 살피기로 했다.

자태를 행여나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단영은 쌍안경을 눈에서 떼지 않 았다.

일마들은 휴게실에서 몇 회를 쉬고 낮을 훨씬 지내니 경마는 열 회를 넘어 앞으로 삼사 회를 남기게 되었다.

기울기 시작한 해가 엇비슷이 내려 쪼이고 경마장은 한층 어지럽게 수선거 리기 시작했다. 하루의 운명의 결단을 낸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긴 사람은 이겼고 진 사람은 져서 그날 운은 그것으로서 단정이 난 것이다. 아직도 힘 과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더 그날의 운과 싸우려는 것이었다. 일마도 그 중 의 한 사람이었다.

제 십이 회가 시작되려 할 때, 일마는 마지막 배짱을 작정하고 매장 앞 창 구멍으로 최후의 마권을 샀다.

‘아킬레스’를 샀다.‘아킬레스’외에 공교롭게‘태양’이 또한 그 회에 출마하였다. 제오회째와 똑같은 말의 배치였다. 오회에서는‘태양’이 크게 이겼다.‘이킬레스’를 고를까,‘태양’을 고를까 하는 선택에서 사람들의 의견은 간단했다. 오회에서와 마찬가지로‘태양’을 고르면 그만인 것이다.

태양을 사려는 사람이 조수같이 밀리는데 반해‘아킬레스’의 매장 앞에는 일마들 쯤이 섰을 뿐이었다.

명도가 아킬레스 를 ‘ ’ 발견한 것같이 일마도 누구보다 그 말의 된 품을 속 으로 알아맞히고 있었다. 여러 회나 그 말을 사서 실패했던 것이나 굴하지 않고 이제 마지막으로 또 한번 ── 서슴지 않고‘아킬레스’를 산 것이다.

명도도 이번만은‘아킬레스’를 작정했던 것이 단영의 고집으로 또다시

‘태양’을 사게 되었다. 단영은‘태양'에 홀짝 반했던 것이요, 지금까지의 승리가 온전히 그 덕이었던 까닭에 명도도 거역할 수 없었다. 이백원으로 몽딱‘태양’을 산 것이었다.

여러 번 실패의 뒤이라 일마가‘아킬레스’를 사는데 나아자들은 물론 가 만있지는 않았다.

“진력스럽게 또‘아킬레스’예요?”

불만이 아니라 반대의 소리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일마는 빌듯이 도리어 사정한다.

“이번 이번하다 자꾸만 지는 걸요.”

“이번만은 다를 테니.”

“뉘 아나요.”

“운명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늘 같아만 진다면야 세상일 문제가 없게. 엉뚱하게 변화를 하니까 재미두 있는 게지.”

“그래 이번에 변화를 한단 말인가요.”

“그러리라구 생각하나까 진력스럽게 또 걸어보는 게 아니오?”

나아자를 타이르기는 수월한 노릇이었으나 에미랴는 막무가내였다.

“아무래두 이번에 속지 않을 테예요.”

아이같이 투정을 부리면서,

“전‘태양’을 살 테예요.‘아킬레스’는 싫어요.”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구.”

“싫어요. 절대로‘태양’을 사요.”

하는 수 없이 에미랴에게는‘태양’을 사게 하고 대신 일마는 결김에 그들 의 몫까지 합쳐‘아킬레스’의 마권 다섯 장을 샀다 ── 다시 말하면 주머 니의 밑천이 다섯 장 값밖에는 남지 않았던 것이다. 나머지의 일 원으로는 그 회의 채표를 샀다. 되는지 안 되든지 ── 모든 것을 털어 그 한회에 바 친 것이다. 장쾌한 모험이요, 운명과의 싸움이었다(모험의 결과를 ── 떨 어진 골패쪽의 결과가 일마에게 얼마나 이로웠나를 보고함에 작자는 무한한 흥분과 흥미를 느낀다. 다음에 적는 젓은 다만 충실한 보고일 따름이나 그 거짓말 같은 행복을 작자도 미상불 신기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실상으로 그런 행운이 있음을 알고 깊이 안심하는 바이다).

처음 몇 바퀴 째는 태양이 우세해서 뭇 말의 앞장을 섰다.‘태양’을 산 사람이 많았던 까닭에 좌석에서는 관객들이 죄다 기립을 하다시피 하고는 눈앞을 달리는 말을 향해 성원을 보내는 것이었다. 흡사 스포츠의 응원을 하는 셈이었다. 자기들의 선수‘태양’을 행해 군중은 열렬한 응원을 하는 것이다.

단영도 응원단의 한 사람인양 자리를 일어서서 고함을 치면서 한편 연해 쌍안경으로 일마들의 자태를 바라보았다. 응원이 없이 잠자코만 앉아 있음 은 또‘태양’을 사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생각하면서 은연중 통쾌한 심사도 솟았다. 그러나 단영의 기쁨도 이번만은 오래가지를 않았다.‘태양’이 언 제까지나 우세하지 못했던 것이다.

두 바퀴를 남겨 놓고‘태양’이 점점 떨어지는 대신 훨씬 뒤편에 섰던‘아 킬레스’가 차차 솟아나기 시작했다. 한 필 두 필을 지나 반 바퀴를 달리는 동안에 완전히 앞장을 서고야 말았다.

“아앗!”

일마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치면서 자리를 일어섰다.

“‘아킬레스’달려라!”

일마의 뒤를 따라 응원을 하는 사람이 없음은 의외에‘아킬레스’를 산 사 람이 없었던 까닭이다. 별안간의 침묵 속에서 장내는 물을 뿌린 듯이 조용 하다.‘아킬레스’가 솟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태양’은 훨씬 떨어졌습니다.‘아킬레스’는 필사적으로 닫습니다.”

확성기는 어느 때보다도 소리를 높여서 코스를 설명한다.

기운을 얻은‘아킬레스’는 하늘에나 오를 듯이 양양히 날으고 그 등에 어 거한 초록빛 기사는 새 날개같이 가벼워 보인다. 다른 말들과는 동이 뜨게 멀리 앞을 선 오늘의 선수는 벌써 몇 치 앞에 골을 바라보게 되었다.

“옳지, 옳지 ── 한숨만 더 ── 더 ── 더 ── 으앗, 만세!‘아킬레 스’만세.”

‘아킬레스’는 드디어 일착이었다. 기적인 듯만 싶다. 일마는 목이 쉬어 라 고함을 치고 나아자는 일마의 팔을 곡 부둥켜안고 눈물이 핑 돌 지경이 었다.

실망으로 수선거리는 수천 군중 속에서 감격에 우는 사람은 참으로 일마들 한패뿐이었다.

소위‘아나’라는 것이었다. 일마들만이‘아킬레스’의 배당을 몽딱 차지 하게 되었다. 모험에서 온 행운이었다.

마권 한 장이 칠백 원 배당으로 다섯 장에 삼천오백 원이 차례진 것이다.

또 한 가지 내친 걸음에 채표가 일체로 맞아 거짓말같이 일천이백 원이 제 물에 들어왔다 합 오천 원에 가까운 거액이 순식간에 굴러든 것이다. 꿈속 일만 같아서 일마는 정신이 황당했다.

“이게 제 일 같지는 않구려.”

나아자는 일마의 팔을 꼭 붙든 채 이유 없이 떨었다.

“그렇게 되는 걸 어쩌겠수.”

“기쁘다느니 보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도적질이 아닌 바에야 무섭긴 무에 무섭단 말요.”

타이르기는 하나 일마 자신 현금으로 오천 원의 지폐뭉치를 손에 받았을 때에는 사실 알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까닭에 하필 내게 이 행운인구.”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에 불안스러워졌다.

“난 지금 딴 세상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자꾸만.”

단순하게 기쁨을 말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에미랴였다.

“오늘의 영웅 ── 우리들의 영웅!”

일마를 지금과는 종족이 다른 딴사람으로 우러러보았다.

경마에 이긴 것은 물론‘아킬레스’였나 동시에 그것을 산 일마였다. ‘아 킬레스’는 일마요 일마는 ‘아킬레스’였다. 그날의 영웅은‘아킬레스’이 자 일마였던 것이다. 에미랴에게 일마는 별안간 하늘 위 사람만큼이나 뵈였다.

“괜히 생고집을 피웠었죠. 이렇게 될 줄은 모르구.”

일마에게 거역하고 혼자‘태양’을 샀던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일마들의 행운이 반면에는 무수한 불운의 패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단 영은 가장 심한 편이었다.

‘태양’에서 얻은 수백 원을 그 한 번에 고스란히 날려보내고 그날 운수 는 도로 나무아미타불이었다. 단번에 그렇게 무참히도 참패한 것을 생각하 면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명도도 이겼을 때 말이었지 지고서까지야 단영에게 굽힐 리는 없었다.

싫은 소리가 늘어갔다.

“누가 아니래. 위험한 짓을 하다가 그저 ──”

“그럴 줄 알았나 누가.”

단영은 대꾸는 하면서도 마음속은 물론 편편치 못하였다.

“태양 태양하다 잘됐지. 남의 말을 더러 듣지 않구서.”

“압다, 가만있다가 지게 되니까 이제 와서 싫은 소리구료. 아까 두 번이 나 이긴 건 무어요.”

“이긴 게 지금 어디 있어. 도루 제 턱이면서.”

“제 턱이면 됐지 어쩌란 말요. 괜히 화나는데 자꾸만 ──”

쌍안경에 비취어 오는 일마들의 기뻐하는 양도 꼴사나운데다가 명도 조차 지긋거리는 것이 견딜 수 없이 화를 북돋았다.

“저것들이 결국 남의 행운을 도맡어 뺏어간 셈이지 ── 우리의 건 몫두 모조리 저 수중에 들어갔으렷다.”

생각할수록에 불심지가 솟았다.

“이대로 가만있을 줄 알구. 가서 꼴들을 봐야지.”

쌍안경을 떨어트린 단영은 명도를 끌고 사람들 속을 비집었다.

기어코 일마들 앞에 나타났을 때 빈정대는 어조로,

“굉장은 한데. 두 손에 꽃 들고---어디 영웅의 낯 좀 똑똑히 볼까.”

나아자는 단영을 보고 전잘 밤 일을 생각했던지 질색하면서 외면했다.

“경마엘 다 쫓아 나왔어.”

“당신 이긴 속에 우리 몫두 섞인 줄이나 알아둬요.”

더 어울리다가 귀찮아질 것을 생각하고 일마는 나아자의 손을 끌고 자동 차 있는 편으로 향했다.

벌써 황혼이라 경마장을 물러가는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