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서울/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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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기념의 날을 맞으며

기미년 만세 때
나도 소리높이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아니 숭내라도 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해에 났기 때문에
어린애 본능으로 울기만 하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광주학생사건 때
나도 두 가슴을 헤치고 여러 사람을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중등학교 입학시험에 미끄러져
그냥 시골구석에서 한문을 배울 때였다.
타고난 불운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그 뒤에 나는
동경에서 신문배달을 하였다.
그리하야 붉은 동무와
나날이 싸우면서도
그 친구 말리는 붉은 시를 썼다.
그러나
이때도 늦은 때였다.
벌써 옳은 생각도 한철의 유행되는 옷감과 같이
철이 지났다.
그래서 내가 우니까
그때엔 모두 다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8월 15일
그 울음이 내처 따러왔다.
빛나야 할 앞날을 위하야
모든 것은
나에게 지난 일을 돌이키게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울음뿐이다.
몇 사람 귀기울이는 데에 팔리어
나는 울음을 일삼어왔다.
그리하야 나는 또 늦었다.
나의 갈 길,
우리들의 가는 길,
그것이 무엇인 줄도 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또 늦었다.
아 나에게 조금만치의 성실이 있다면
내 등에 마소와 같이 길마를 지우라.
먼저 가는 동무들이여.
밝고 밝은 언행의 채찍으로
마소와 같은 나의 걸음을 빠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