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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단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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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宣祖) 十八[십팔]년 임오(壬午) 가을 어느날 아침이었다.

왕께서는 일찍부터 근정전에 납시어 모든 신하들의 예궐을 기다리고 계시었다.

왕께서 이렇게 일찍부터 ─ 신하가 예궐하기 전에 근정전에 납셔 조회를 기다리시는 전례가 없었다.

왕은 우수의 빛을 용안에 가득히 실으시고 용상 앞을 거니신다. 벌써 반 시간 동안이나 이처럼 묵묵히 거니시며 이따금 넓은 뜰을 내어다 보신다.

오늘에 한해서 특히 늦은 것은 아니지마는 왕은 신하들의 태만이 괘씸하시다는 듯이 불쾌한 눈으로 멀리 대문 쪽을 바라보신다.

품석이 늘어서 있는 넓은 뜰에는 황엽된 낙엽이 소슬한 바람에 휩쓸리어 이리저리 굴러 다닐 뿐이었다.

상감께서 벌써부터 근정전에 납셨다는 소식은 영상 박순(朴淳)을 몹시 초조케 하였다. 그는 예궐하는 대관들을 동독하여 황황히 전내로 들어왔다.

좌상 노수진(盧守愼) 우상 권철(權轍) 기타 여러 관원이 영상의 뒤를 따랐다.

왕은 이제껏 용안에 실려 있는 불쾌한 빛을 눅히시고 조용히 용상에 오르셨다.

희노애락을 얼굴에 나타내지 아니하고 왕의 관인대도를 보이시기 위하심이었다.

영상 박순은 여러 관원과 황황히 들어오며 어제 왕께서 분부하신 성지에 대하여 아뢸 것을 생각해 보았다. 어제 조회를 파하고 삼상(三相)이 자리를 같이 하여 서로 의견을 바꾸어 보았으나 결국 신통한 것을 얻지 못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은 어찌 하든지 아뢰어야 할 자기의 책임을 생각할 때 어찌 하든지 선조께서 구하시는 인물을 다소간 인망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결정해서 아뢰지 않을 수 없었다. 종계변무(宗系辯誣),[1]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문제요 십여차례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종계개록에 대한 승인을 얻으려 하였으나 실패에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선조께서는 기어히 이 문제를 밝히시고 대명(大明)의 승인을 얻으려 결심하시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몇번이나 선조께서도 친히 사신을 대명에 보내시었으나 도무지 시원한 승인을 얻지 못하시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 문제는 비단 나라에 있어서 뿐 아니라 왕가(王家) 종계(宗系)에 큰 문제라 하루 바삐 변무코자 하시었으나 명에서는 이리저리 구실을 부쳐가며 승인을 거절하였던 것이었다.

이와같이 거절당하는 도수가 늘어 갈 때마다, 선조께서는 이 책임이 명나라에 들어가는 사신의 잘못보다는 같이 들어가는 역관(譯官)의 불찰이라 생각하시었다.

그리하여 어제 조회에서 영상에게 사개(使价) 간택하라고 분부를 내리시고 그 대답을 기다리시느라고 오늘 이와 같이 일찍부터 납신 것이었다.

선조께서는 모든 신하가 부복한 것을 한참이나 내려다 보시다가 짐짓 명쾌한 어조로 영상에게 하교를 내리시었다.

『사개를 간택하랬더니 어찌 되었소?』

영상 박순은 몇 걸음 앞으로 나와서

『잠시 여유를 주시면 곧 결정해 올리겠나이다.』

하고 좌우 양상을 슬며시 돌아보았다.

어전에 벌려 선 모든 여러 벼슬아치들은 이것이 여러번 실패를 거듭한 중대한 소임이라 혹여 피선이나 될까하고 염려하는 빛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묵묵히 생각하고 있던 영상 옆에서 권철이 입을 열어 영상에서 말을 하였다.

『대감 어제도 말하였거니와 지금 조정을 휘둘러 보아야 상사될 재국은 율곡 밖에 없으니 상감께 율곡(栗谷)으로 아뢰는 게 지당하겠소.』

하고 자기의 의견이 가장 탁월하다는 듯이 영상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영상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짐짓 침착한 어조로

『그야 지금 조정 인물 가운데에 율곡을 당할 사람이 없는 걸 모르는 건 아니로되 동서당론(東西黨論)이 갈리어 사류(士類)가 불화하는 이때 사론(士論)을 진압할 사람이 누구이오? 율곡이 아니고는 다시 없으니 이러한 위기에 율곡으로 하여금 잠시라도 조정을 떠나게하는 것은 크게 재미없는 일이오.』

이와같은 이론이 생기어 얼마 동안을 결정치 못하다가 급기야 상사에 황정욱(黃廷彧)과 부사에 김계휘(金繼輝)로 하자는 말이 유력하게 되어 그대로 선조께 아뢰게 되었다.

선조께서는 이 두 사람을 탑전으로 부르사 특별히 이번에 수고할 것을 부탁하시고 다시 하교를 내리시었다.

『상사 부사는 이미 결정되었거니와 이와같이 몇 차례를 거듭 실패한 그 원인은 역관의 실책이라 만일에 이번에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면 단연코 역관을 참하리라.』

이와같이 하교가 내리자 역관들은 얼굴빛이 질리어 얼마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 역관이란 벼슬은 그리 대단치 않은 벼슬이지마는 중대한 통역을 하는 관계로 인물 선택을 소홀히 할 수 없고 그 사명의 성부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엄지(嚴旨)를 받은 역관들은 서로 아무 말 없이 다만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할 뿐이었다.

나라를 위해서 가는 이 길, 누가 갈는지 아직 역관들 가운데서 작정은 안 되었으나 그들 앞에는 크나큰 재앙이 가로 막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어찌하던지 이번에 역관으로 뽑히기를 회피할 구실을 얻으려고 애들을 썼다.

임금을 위해서 죽는 것이 떳떳한 바 아닌 것은 아니지마는 미미한 일개 역관자리에 있는 그들은 공을 이루고 임금과 나라를 위하는 것보다도 자기네들의 보신지책이 더 큰 것이었다.

세상에 요행이라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동안 수십차례를 오고 가고 해도 이루지 못한 일을 이번이라고 특별히 이루어지리라고는 누구 한 사람 믿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헛된 수고이거니 하면서도 선조의 지중하신 명령이라 싫거나 좋거나 신하된 도리에 가야 할 길이 아닌가? 갔다 오기만 하면 목숨이 없어질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일이었다.

누가 죽음을 일부러 찾아 다니리오마는 이 길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가는 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야 할 이 길 누구든지 가고야 말 이 일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생각에만 그칠 일도 아니요, 가야 할 커다란 사실을 앞에 놓고 있는 그들은 다만 누가 갈 것인가가 큰 문제였다. 평상시에 저 잘났다고 큰 소리 하던 위인들도 생사를 목전에 놓고 있을 이런 위기를 당하면 갑자기 저 잘났다고 떠들어대던게 후회나는 법이다.

그리하여 다만 그들 가운데서는 최후에 가까운 가장 비장하고 침통한 목소리로

『무슨 좋은 방법이 없소?』

하고 마치 몇 백길 함정에서 실낱 같이 보이는 햇빛을 붙잡으려는 사람 같이 요행으로 좋은 의견이나 없나 하고 서로 얼굴을 쳐다 볼 뿐이었다.

역관 가운데에는 여러나라 말에 따라 이번 문제에 하등 관계가 없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당면한 역관들은 정신이 아뜩해서 아무 묘책도 생각이 들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묘책을 세워서 이번 일을 성공해서 다시 없는 공을 세워 보겠다는 기개보다도 어떠한 구실이든지 지어가지고 이번 길에 빠지려는 생각이 가득한 그들에게 묘책인들 있을 수 있으랴.

이같이 착잡한 분위기 속에 침묵이 계속될 뿐이었다. 이때 침묵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구인지

『홍순언이가 있었더면.』

한다. 이 소리를 들은 그들은 별안간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었다.

이 말을 무심히 한 사람은 몽고어 역관이었다. 그들 가운데서는

『홍순언……홍순언…….』

하고 두어번이나 뇌까리는 사람조차 있었다.

『그러나 홍순언이는 금부에 갇혀 있으니 될 수 있나…….』

그들은 마치 죽음 속에서 살길을 잡았다 놓친 것 같이 다시 시커먼 절망으로 달음질할 뿐이다.

『여보 할 수 없소. 누구든지 가야 할 것이니 이번에 가는 사람이야 운수니까 할 수 있소? 그러니 운수거니 하고 누구든지 작정을 합시다.』

최후로 모든 것을 단념하고 갈 사람을 결정하려 할 때 누군가 무릎을 탁 치며

『옳지 그러면 되겠군…….』

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러 사람은 이 이상한 부르짖음에 새로운 살길이나 찾은 듯이 일제히 그 사람에게 시선을 던졌다.

『여보 좋은 수가 있네. 사람이 죽으란 법이 있소?』

이 말에 여러 역관은 아주 살길이나 찾아진듯이 좋아하였다.

그러나 아직 어찌하면 좋다는 말을 듣지 못한 그들은 그 다음 말이 궁금하였다.

『아니 좋은 묘책이 계시면 말 좀 하시우.』

『아까까지도 별반 좋은 생각이 아니 나더니 어느 분이 홍순언이 이름을 말씀하시니까 좋은 묘책이 있기는 하나 여러분의 의향이 어떠실는지…….』

그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 여러 사람의 얼굴을 돌아 보았다.

『의견이고 여부 있소. 우리의 안전지책만 선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요.』

사실은 그러하였다. 지금의 그네 앞에는 죽음이 가로 놓여 있지 않은가?

죽음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 어디 있으랴. 그들은 이 어려운 책임만 무사히 벗어 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사양치 않으려 하였다. 이와같은 눈치를 안 그는

『그러면 말씀하지오. 돈 이천냥만 있으면 여러분은 무사히 이 책임을 벗을 수가 있지만 여러분이 돈 이천냥을 아까워하시지 않으실는지…….』

죽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천냥도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천냥으로 목숨을 바꿀 수는 없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돌아보며 이번 문제를 당면한 몇사람 역관이 이천냥을 각각 노나 맡기로 공론을 작정하고 그 쓸 곳을 물었다.

『여러분이 그렇게까지 하시겠다면 말씀하지오. 지금 금부(禁府)에 갇히어 있는 홍순언이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연전에 역관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나랏돈 이천냥을 흠포한 죄로 갇히어 있지 않읍니까? 그 사람이 이 돈 이천냥을 못해 놓으면 불문가지 그 사람의 목숨은 없는 것인데 이래도 없는 목숨이오 저래도 죽을 목숨일 바에야 여러분이 그 돈 이천냥을 물어주고 그 사람을 빼낸 다음에 이번 사행떠나는 길에 역관으로 보내었으면 여러분은 돈 이천냥으로 그 사람의 목숨을 사서 보내는 것이니 이 아니 좋은 묘책이오.』

이 뜻밖에 좋은 묘책을 들은 여러 역관들은 고개를 끄떡이어 그의 묘한 의견에 은근히 탄복하였다.

자기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똑 같이 다른 사람도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다. 위기를 당하여 돈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사서 보낸다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죄수로 말하면 이천냥이나 되는 큰 돈을 자기 힘으로 판출할 힘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그 때는 나랏돈을 쓰고 물어 놓지 못하면 목숨으로 대신하는 법이다. 그런 고로 그네들은 결코 좋은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나 이왕 죽을바에는 한동안 세상구경이나 다시 하다 죽는 것도 결코 언짢은 일은 아니었으며 그 덕에 자기네들의 위험을 벗어날 수 있는것을 생각하고 당장에 돈 이천냥을 마련해 가지고 금부로 이 죄수를 찾아 가게 되었다.

여기서 이야기는 잠간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선조 십육년 늦은 봄, 만화방창에 향기가 무르녹아 만인의 마음을 호탕케 하는 때였다.

선조께서 내리신 엄중한 하교를 받고 멀리 명나라를 향하여 떠나는 사신을 따라가는 한 역관이 있었으니 그는 홍순언(洪純彥)이었다. 그는 비록 미미한 역관의 자리에 있어 사람에게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천성이 호방하고 마음이 활달하여 일찌기 의로운 일을 사랑하고 남의 어려움을 자기 일같이 구해주는 의협심이 가득한 사나이었다. 이와같이 마음이 호방하니만큼 그 반면에 가끔 어지러운 발자취가 청루를 밟는 때도 있던 것이다.

역관의 중임을 지고 열흘만에 의주를 지나 심양을 거쳐 다시 산해관을 지나서 며칠만에 북경서 삼십리 떨어져 있는 통주(通州)까지 다달아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원래 조선서 들어가는 사신은 누구나 통주까지 들어가서 하룻밤을 쉰 다음에 북경까지 들어가는 것이 전례가 되어 있는 것이라, 이 곳 통주라 하는 곳은 그리 넓지는 않은 곳이나 각국 사신이 들어오면 반드시 이 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는고로 비교적 적으면서도 중국의 문물을 자랑하기에 그리 부끄러움은 없을만큼 된 곳이었다.

통주까지 이르러 하루를 쉬게된 이 일행이 여러날 행로에 시달린 몸을 정결한 공관(公舘)에서 쉬이게 되었다. 홍순언은 저녁을 먹은 다음 몇차례나 역관으로 이곳에 와 본 일은 있었으나 한가히 이곳 통주의 풍경이나 물색을 구경할 겨를이 없었던 것을 늘 유감으로 생각하던 끝이요 더욱 이 날은 유난히 달이 밝아 뜰 앞에 벌려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이 풍기는 향내음새가 이상하게 마음을 충동하는지라 순언은 달빛의 유혹을 받고 꽃 향기에 이끌리어 통주 길거리로 거닐게 되었다.

달빛에 잠겨있는 통주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깨끗하면서도 고요한 거리는 잠든 듯할 뿐이요, 이따금 화류춘몽에 들뜬 젊은 탕아들의 몽롱히 취한 발자취가 잠든 듯한 공기를 흔들며 지나갈 뿐이었다. 그는 이리저리 걸으며 고국서 이 곳까지오면서 군데군데 지나던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일 들어가 역관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을 다 할 방책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일찌기 떠날 때부터 이길이 첫번이 아닌지라 물론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걸으면서 이렇게 떠오르는 머릿속 생각을 몇번이나 잊어버리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와같이 오락가락하는 토막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 곳까지 왔는지 지금까지 고요하던 거리가 갑자기 소란하며 환한 불빛에 무심히 길 양편을 바라보니 이 곳은 통주에서도 가장 유명한 청루촌(靑樓)이었다. 그는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이 곳까지 온 것을 새삼스럽게 후회하는 듯이 도로 오던 길로 돌아 서려 하였으나 거리의 번화한 것이라든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거문고 소리나 또는 여자의 간질간질한 웃음 소리가 그의 마음을 이곳으로 끌기 시작했다.

무심히 이 곳까지 온 것을 후회하던 생각은 어느듯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이 알 수 없는 유혹에 끌리어 여러날 객지에서 쓸쓸히 지내던 마음을 이곳에서 하루 밤 어여쁜 기녀(妓女)에게 풀어 버리려는 호방한 마음이 것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리하여 마치 무슨 힘에 끌리는 사람 모양으로 이집 저집을 물색하고 걸으며 하루 밤의 객회를 위로할 상대를 은근히 고르기 시작하였다.

그 곳에는 이곳 저곳에 이상한 현판이 붙어 있었다. 혹은 백냥방(百兩房)이라고 써 붙인 집도 있고 삼백냥방(三百兩房)이라고 써 붙인 집도 있었다.

이러한 집에서는 거문고 소리도 들려나왔으며 남자의 거칠은 웃음 소리에 섞이어 여자의 웃음 소리도 들리었다.

이렇게 이곳 저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이에 홍순언의 눈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이와같이 백냥방 혹은 삼백냥방이라 써 붙인 집에서 조금 떨어져서 커다란 글자로 천냥방이라고 써 붙인 집이 있었다.

『천냥방?』

그는 이렇게 엄청난 거액을 써 붙인 그 집을 바라보고 입을 딱 벌이었다.

『이 세상에 하루 저녁에 천냥을 던질 그런 사람이 있을가? 과연 굉장한 현판이다.』

이렇게 속으로 뇌까리면서 어찌된 일인지 그의 발이 이곳에서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천냥? 천냥? 하루에 천냥이나 하는 그 기녀는 어떠한 사람일가? 물론 인물이 뛰어나게 아름답겠지?』

궁금한 생각 끝에 일어나는 호기심에 끌리어 한발 두발 가까이 이르러 그는 전후를 생각할 여지없이 자기도 모를만큼 이상해진 순간에 이 집 안으로 발길을 들여놓았다.

이 집에서 객을 인도하는 파파는 이 뜻밖의 낯설은 손님이 들어온 것을 어린듯이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이 허리를 굽히어 인사를 한 다음에 아무 말이 없이 그를 정결한 객실로 인도하였다.

그는 술취한 사람같이 인도하는 대로 객실에 들어가 앉아서 이 파파의 거동을 살필 뿐이었다.

정결하면서도 청초한 이 객실이 은연 중에 주인의 마음을 말하는 것 같은 감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과연 어떠한 여자이길래 이렇게 대담한 현판을 붙였나?』

하는 궁금한 생각에 그의 마음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손을 바라보던 파파는

『오늘 이 곳에서 쉬어 가시겠읍니까?』

하고 객의 마음을 공손히 물었다.

그는 자기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듯이 고개를 돌리며

『그야 물론 자려기에 온 것이지. 그런데 대관절 이집 낭자는 얼마나 잘 생기었나?』

하고 웃음 섞인 어조로 물었다.

그야 당장 들어올 테니까 『 아시지요 보시면. 아이구 참 이상도 하지. 내가 이 집에 온지가 다섯 달이 되어도 손님이라고 오는 것을 보질 못했더니 이렇게 오시는 손님이 다 계시니 이제는 낭자의 소원을 이룰 때가 되셨군.』

이렇게 혼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나가는 파파의 말이 이상하게 그의 귀에 울리어지는 것이다.

『소원이라니? 무슨 소원일구?』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지꺼림보다 낭자 본인이 한없이 궁금하였다.

그가 하룻밤에 은 천냥이라는 막대한 돈을 한때 호탕한 마음으로 내놓지 않으면 안되게 된것을 후회하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기왕 저질러 논 일을 이제와서 슬그머니 도망질 해서 나갈 수도 없는 일이라, 다만 자기의 경솔한 것을 꾸짖어 가면서도 은 천냥이라는 것은 두말없이 내 놓고야 말 형편이 되고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에는 어찌되던지 될대로 되어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늘 저녁에 은 천냥과 몸을 바꾸어 자기의 여러날 시달린 피로를 위안해 줄 그 여자가 어떠한 사람인가가 한 없이 궁금하였다.

무엇 때문에 하루 저녁 소창에 지나지 않는 이 청루의 계집으로 이러한 고가의 화대를 붙이었을가? 더욱이 오륙삭 동안을 한사람도 손님이라고 찾아오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는 파파의 말도 그에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원체가 하루 밤에 천냥이나 하는 큰 돈을 아무리 오입을 일삼고 청루를 집을 삼아가며 자기의 오입의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어려운 일이라기보다 없을 것이 더 환한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는 지금에 이 세상에서 남들이 감히 생각도 못하는 오입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생각할 때 한 옆으로는 마치 돈을 잊고 다만 의협과 의기로 일생을 보내는 호협한 사나이도 된 것과 같으며 남이 따를 수 없는 영웅적 기상이 자기에게만은 충분히 있는것 같은 자긍하는 마음도 한편 구석에선 속살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그런 크나큰 돈을 어렵지 않게 이런 청루의 계집을 위해서 내던질만한 힘이 있었던가? 그것은 자기로서도 큰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떠한 돈이든지 쓰게 된 이상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오늘 저녁에 천금이나 던져 가며 하루 밤의 쾌락을 얻으려는 흥에 겨운 마음을 여지없이 두들겨 버리는 것 같아서 그는 이런 자디잔 생각을 아니하려고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었다.

그가 이와같이 착잡한 생각에 깊이 묻혀서 멀거니 앉았을 때 죽은 듯이 고요하게 닫쳐 있던 객실 문이 바시시 하고 열리었다. 그는 이 문 열리는 소리와 아울러 오늘 저녁에 돈 천냥을 낚으려는 장본인이 들어오려니 하는 예감에서 날카로운 시선을 열리는 문쪽으로 던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엄청나게 어그러졌다. 이제쯤은 지분을 곱게 다스리고 찬란한 의상에 싸인 선녀같은 계집이 자기의 넋을 빼려 들어오려니 하던 것이 뜻밖에 열두어살 밖에 안되는 어린 계집애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아이가 이 집 주인 앞에서 심부름하는 계집 하인이라는 것을 즉각으로 깨달은 순간에 일어나는 불쾌한 생각을 억제할 수 없었다.

『저 아씨께서 안으로 모시고 들어 오시래유.』

어린 계집애는 공손히 허리를 잠간 굽혀 이렇게 객에게 전갈을 한다. 홍순언은 두말 않고 이 계집애의 뒤를 따라 인도하는대로 서슴치 않고 따라 들어갔다.

조그마한 복도를 지나서 다시 아담하게 모아논 화원 사이를 거쳐서 침실 앞까지 이르렀을 때에 그 앞에 이편에서 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얼마 아니하여 순언의 눈에는 그리 화려한 의상을 입진 않았으나 달빛에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여자의 얼굴을 발견하였다. 그 여자는 이편에서 가까이 감을 기다려 공손히 고개를 약간 숙이어 맞이하는 인사를 수집은 듯이 하고는 아무말 없이 침방 문을 열어 홍순언으로 하여금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을 보이었다.

홍역관은 서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밖에서 지금 길 인도하던 시비를 보낸 다음 그 여자는 고요히 다시 문을 닫고 홍역관 곁에서 조금 떨어져 앉은 다음 아무 말이 없이 자기의 발끝을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다.

홍역관은 찬찬이 그의 모양을 먼저 살피어 보았다. 나이는 아직도 이십이 못 된 듯하나 두 볼에 약간 부끄러움을 띄운 듯한 불그레한 빛이 다물고 있는 입술빛과 조화가 되어 더욱 그의 예쁘게 생긴 코를 희게 하였다. 그리고 그리 사치하게 입지 않은 그 의상이 기녀라기보다 양가의 규수에 가까울만큼 고결한 자품이 은은히 보이었다. 그러나 마치 피려는 꽃이 반쯤이나 피려할 때 몇방울 이슬에 젖어 달빛 아래서 가벼운 바람조차 이길 수 없어 하늘거리는 것같이 청초하고 고결하면서도 뛰어나게 성적으로 상대를 정복하려는 강한 힘이 홍역관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기에 조금도 부족이 없었다.

『과연 천냥도 아깝지 않다.』

이렇게 속으로 칭찬하면서 그의 번화하지 않은 것이 조금 부족한 듯하였다. 잠자는 듯이 가만이 앉았던 그 여자는 갸날프면서도 분명한 음성으로

『상공께서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같이 말을 하고는 비로소 객의 얼굴을 고요히 쳐다본다.

그 여자의 쳐다보는 얼굴에는 조그마한 티도 찾을 수 없었다.

『관계 있나?』

홍역관은 말끝을 웃음 속에 흐려 버리고 어린듯이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홍역관의 마음은 이 한마디 주고 받는 사이에 이상하게도 마치 그전부터 친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마음을 느끼면서 어느 한편으로는 차마 그 여자를 가까이 범하기 어려운 무엇이 가로 막힌 것같은 답답한 증을 느끼었다. 그러나 그는 얼른 이런 마음을 없애 버리려고 말끝을 끊지 않으려 하였다.

『내 낭자의 이름을 일찍 듣고 한번 보려 하였으나 멀리 외국에 있는 고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한자리에 그대의 얼굴을 보게 되니 저윽이 마음에 즐거우나 이런 곳에 있기에는 너무나 ──.』

홍역관은 이렇게 말을 느러놓고 여자의 대답을 기다리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여자는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도 없을 뿐이다. 홍역관은 싱거운 듯이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차를 들어 한 목음 마시며 그 여자의 어깨가 이상히 파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홍역관은 이상한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 여자는 울고 있었다. 무슨 설음이 속에 있는지 천냥이나 되는 거대한 돈을 거침 없이 던지러 들어온 세상에 드문 호엽한 손님 앞에서 우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이 알 수 없는 손님, 더군다나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닌 조선사람을 앞에 앉히고 울고 있지 않은가?

이 수수께끼같은 광경을 당하고 있는 홍역관의 마음은 마치 알 수 없는 요정(妖精)에게 유혹을 당하여 헤메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태연히 앉아서 한참이나 소리없이 흐느끼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내 이곳에 들어옴은 여러날 행로에 울적해진 마음을 위로하러 왔거늘 우는 까닭이 무엇이뇨?』

하고 물었다. 그 여자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가만히 들어 미안하다는 듯이 객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단히 죄송합니다. 객인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상공 앞에 추졸한 꼴을 보이게 되었으니 실로 무엇이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읍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그 여자는 다시 눈물을 거두고 자리를 고쳐 앉으며 『 상공은 멀리 조선서 오신 듯한데 저만한 여자를 무엇 때문에 천금을 아끼지 않으시고 이같이 누추한 곳까지 찾으셨는지요?』

하고 물으며 홍역관의 얼굴을 가장 의미있게 쳐다본다. 홍역관은 이 질문에 창졸간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태연히

『그야 내게 묻는 것보다도 그대가 생각하는게 더 빠르지 않은가? 사나이 마음이란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손쉽게 하는 때 같이 마음이 상쾌할 때는 없으니까.』

이렇게 막연히 얽어대 버리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객의 이 말을 결코 무의미하게 듣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 한가지 알 수 없는 일은 어찌하여 천냥방이라는 거대한 현판을 붙이었나?』

이렇게 재처 질문을 던지고 고요히 그의 대답을 기다리었다. 그 여자는 다시 옷깃을 다스린 다음

『그렇게 간곡히 물으시니 말삼하지오. 청루에 있는 창녀의 몸으로 이런 말삼을 드리는 것은 크게 의심을 받을 말이나, 첫째는 천냥이라는, 사람이 내기 어려운 방을 붙이어 제몸을 헛되이 더럽히지 않자는 것이오, 그 다음에 만일에 천냥을 아끼지 않고 던지는 분이 계시면 그 분을 쫓아 일생을 마치자는 작정으로 그리 한 것이랍니다.』

홍역관은 창녀의 몸으로 몸을 깨끗이 갖기 위해서 천냥이라는 방을 붙이었다는데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이 여자는 아직도 동정(童貞)을 깨뜨리지 않은 깨끗한 처녀였던가? 깨끗한 처녀로 이런 곳에 대담히 나선 여자라면 그 이면에 반드시 무슨 깊은 사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홍역관은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그러면 그대가 이 곳까지 몸이 떨어지게 된 데는 무슨 까닭이 있겠지?』

이같이 묻고는 그 여자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이 물음에 얼마간 주저주저 하다가 모든 것을 결심한 듯이

『천한 몸에 관계되는 말삼으로 상공의 정신을 어지럽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마는 그 같이 친근히 물어 주시니 말삼하지요. 그러나 말삼하기 전에 한가지 제 결심을 어찌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하며 홍역관의 얼굴을 쳐다본다.

『무엇인데.』

홍역관은 이렇게 재처 물었다.

『다른게 아니라 어느 분이든지 저에게 천냥을 던지시는 분을 따라 일생을 받칠 결심을 했는데, 오늘 천만 뜻밖에 상공께서 이같이 찾아 주시니 이것은 실로 제가 창녀가 된지 다섯달만에 처음으로 손님을 맞는 자리라 상공께서 더럽다고 버리시지 않으시면 이 몸을 받쳐 일생을 상공 곁에 모시겠읍니다마는 저의 나라법이 외국사람을 따르지 못하게 하옵기 이것이 저의 마음을 괴롭게 하오니 어찌하면 좋을지요.』

이같이 말을 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너무나 자기의 모든 환경이 숙명적인 것을 한탄하는지 처참한 빛이 가득해진다. 홍역관은 이 말에 무어라 대답하여야 좋을지 몰랐다. 실로 그는 한때의 협기로 이 곳에 들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이상한 결심을 가진 여자를 앞에 놓고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이상하게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 속으로 그 여자의 자세한 내력을 들어 본 다음에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기로 마음에 작정을 하였다.

『그거야 형편이 되어가는대로 해도 늦지 않은 일이나, 나는 무엇보다도 그대의 내력을 듣고 싶은데.』

말끝을 마치지 않고 그 여자의 입에서 스스로 나오는 말을 기다렸다. 간곡히 묻는 홍역관의 말에 그 여자는 감사에 넘치는 눈물이 눈속에서 핑 돌았다. 그리고 자기의 환경을 간곡하게 말하게 되었다.

그 여자는 호부시랑(戶部侍郞)의 무남독녀 외딸이었다. 아버지가 그 같이 상당한 관직에 있는지라 규중에서 고이 길리어 규수(閨秀)로서의 모든 교육과 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가며 열일곱살되는 작년 겨울까지 고이 길리웠던 것이다. 원래가 그 아버지는 청빈(請貧)한 터이라 치산에 힘쓰지 않아 집안이 넉넉지는 않았으나 그다지 군색한 것을 모르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불량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국고(國庫)에 이천냥이 없어지자 아버지는 그 혐의를 입고 그만 벼슬을 잃고 옥에 갇히고 말았던 것이다. 별로 친척도 없고 또한 집안에 많은 재산이 없으매 아버지를 구할 길이 막연하여 백방으로 생각하던 끝에 그 규수는 옥에 갇친 아버지로 하여금 다시 백일을 보시게 하기 위하여 아직도 세상에 아무 갈피를 모르는 처녀의 몸으로 이 청루에 몸을 던져 아버지를 구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결한 그는 서뿔리 뭇 사람에게 몸을 받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해 겨울에 통주에는 청루 하나가 늘었으니 곧 이 여자의 집이었다. 그러나 이 엄청난 방이 대문에 붙어 있는고로 웬만한 오입장이는 며칠동안 기웃거리다가 이제는 들여다 보는 사람조차 없게 되었다. 이와같이 됨을 따라 문전은 한없이 냉락하여지기 시작하였다.

그 집에 있는 파파는 차마 보다 못하여 낭자에게 현판 고치기를 몇번이나 말했으나 그는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아니하고 다섯달 동안을 때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에 찾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운명이거니 하였다. 그리고 만일 천냥을 아끼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아버지도 구해 드릴 수 있으려니와 자기의 일생을 받쳐도 믿을만한 인물이 될 것을 짐작한 까닭이다.

눈물겨운 처지에서 자기의 숙망을 위하여 꾸준히 다섯달이나 싸워오던 끝에 마침내 나타난 사람이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닌 홍역관이었다. 그 여자는 이 알 수 없는 숙명의 상대자를 앞에 놓고 마음 속으로 한없이 울었다. 비록 나이는 엄청나게 틀려서 마치 딸이 아버지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할지라도 오늘까지 같은 나라 사람으로 이같이 호협하고 대담하게 찾아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그의 마음은 더 한층 쓸쓸하였다.

여기까지 자세한 사정을 듣고 난 홍역관은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한 때 호협한 마음으로 청루에 무심히 발을 들여 놓았다 이같은 세상에 드문 사실을 듣고 나니 다만 마음 속이 답답하였다. 그리고 아까까지도 야비한데 가까운 생각이 떠오르던 것이 안개같이 사라지고 마치 선경에 앉은 것같이 마음이 고요하여지며 이 눈물겨운 이야기에 사나이의 굵다란 눈물이 그의 옷깃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몰랐소이다. 그 같이 하늘이 감동할 효성이 있는 사람인줄 모르고 한낱 지저분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큰 잘못이오. 자 돈 이천냥이 여기 있으니 아버지를 바삐 구하시오.』

홍역관은 돈 이천냥을 서슴지 않고 그 여자에게 주고 그 자리를 일어섰다.

그 여자는 뜻밖에 객의 이 같은 의협한 행동에 넋이 날아가는 듯하여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섰다가 표연히 떨치고 나가는 객의 소매를 힘있게 붙들었다.

『여보세요, 이같이 많은 돈을 아끼지 않고 이 천한 몸을 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마는』

『천만에요, 이것은 내가 주는게 아니라 하늘이 당신의 효성에 감동하사 주시는 것이오.』

이같이 대답하고 뿌리치고 나오려 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홍역관의 소매를 놓지 않았다.

『가실 때 가시더라도 제 말 한 마디만 듣고 가세요.』

이같이 애원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는 처량히 들려 지는 것 같았다. 아까까지 아름답지 못한 생각을 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리고 한번 자기가 의협을 내어 그 여자에게 동정을 해준 이상 잠시라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자기로서는 괴로웠던 것이다 . 그러나 그 여자는 이 세상에 다시 없는 은인의 성명이라도 알려고 그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만

『이것을 놓시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옥중에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찾아 가시오.』

이렇게 말을 하고 그는 붙잡는 소매를 가만히 뿌리쳤다.

『아버지를 구해 주시는 은인,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존함이나 일러주시면 일생을 두고 잊지 않겠읍니다.』

하고 간곡히 묻는 말에 성명 쯤 일러주는 것도 그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 같았으나 그것은 마치 은혜를 끼처준 사람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만,

『나 같은 사람의 성명이 필요 있오? 다만 홍역관으로 알아 두시오.』

그는 이렇게 일러 주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나와 버리었다.

홍역관이 귀국한 이튿날 나졸들이 금부의 명령이라 하여 그를 몰아 금부로 갔다.

그가 금부로 잡혀간 원인은 공금 이천냥을 험포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돈 이천냥을 물어 놓지 않으면 그는 영영 이 옥을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나중에는 이천냥으로 해서 목숨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홍역관은 별로 후회하지도 않았다. 다만 가만이 앉아 닥쳐올 죽음을 고요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가 옥에 들어 간지 벌써 두 해가 지나갔다.

그는 세상에 봄이 와서 꽃이 피거나 명랑한 가을 달 아래 단풍잎이 붉은 웃음을 웃거나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다만 초췌해진 얼굴이 가죽만 남아서 보기에 너무나 눈물겨운 꼴이었다. 그가 역관으로 있을 때에는 같은 동관에 친구도 많았으나 몸이 한번 옥에 들어온 후로는 한 사람도 찾아 주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친구의 무정함을 원망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이태 동안이나 보지 못하던 역관들이 친히 자기가 있는 옥문으로 찾아왔을 때 그는 한없이 이상히 생각을 했다.

『홍형, 얼마나 고생이 되시오?』

이렇게 묻는 말도 그리 반갑게 들리지 않았다.

『고생이랄 거 있소.』

다만 이렇게 대답하고 말 뿐이었다.

『홍형, 우리들이 백방으로 주선해서 험포된 돈을 오늘 바치었으니 이제는 나가시게 되었소.』

이 역관들의 하는 말에 그는 놀래었다. 무엇때문에 그들이 내가 쓴 돈을 대신 물어 놓았을가. 그것도 적은 돈이라면 모르겠으나, 이천냥이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한사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거액이다. 그런 것을 무슨 까닭으로 대신 바치었을가? 그것은 알 수 없는 큰 의문이었다. 이미 바치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거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제형의 후의를 감사히 생각하오.』

그는 다만 간단히 이렇게 감사한 뜻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있지 않아 옥졸은 그의 있는 곳까지 와서 굳게 잠긴 문을 열고 오랫 동안 갇혀 있던 홍역관은 비로소 하늘 빛을 보게 되었다.

오래간 만에 옥문 밖을 나선 그의 정신은 아찔하였다. 그리고 볕빛까지 노랗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이렇게 옥문밖에 나온 홍역관은 자기 스스로 알 수 없는 기적을 걷는 것 같았다.

아무리 같은 동관들이나 그들이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 이천냥이나 되는 거대한 돈을 아끼지 않고 내던지어 오랫동안 영오(囹圄)에 싸여 신음하던 자기를 구해낸 것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색하기 짝이 없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자기에게 호의를 보여줄가? 그에게는 오히려 오래간 만에 백방이 된 즐거움보다도 알 수 없는 불길의 조심이 앞에서 기다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자기 목숨이 이천냥과 바뀌어진 것을 알았을 때 사람의 무상한 심사를 쓸쓸히 느끼면서도 특별히 그들을 얄밉게 생각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네들이 이번에 자기에게 한 일이 한 없이 약고 현명하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홍역관은 옥에서 나온 다음, 이번에 죽을 역관을 대신하여 마지막 죽음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몇 차례나 핀잔을 맞고 쫓겨나온 이 일이 이번이라고 특별히 허락이 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이와같은 것을 잘 아는 홍역관은 이번 길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마음이 침착하였다.

사람은 언제까지든지 사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죽어야 할 커다란 사실을 앞에 놓고 삶을 주름잡고 죽음 앞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이 가는 것이 곧 사람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옥중에서부터 죽음을 각오한 그는 고요히 걷고 있을 뿐이었다.

번화한 중국의 문물도 그의 눈에는 마지막이었다. 그가 이태만에 또 다시 산해관을 지나 통주까지 이르렀을 때는 이태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고요하면서도 번화한 통주 거리. 그에게는 한없이 감개가 깊었다. 그 여자는 지금쯤 어찌 되었을가? 그러나 그는 이것을 알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알아 보기보다도 그의 머리에서는 벌써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이 멀리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행의 뒤를 따라 북경(北京) 조양문(朝陽門)을 향하고 걸었다. 이 문을 바라보고 가고 오고 한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할 때도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 가운데서 일루의 희망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한 생각조차 들지도 않았다.

그전의 조양문은 알 수 없는 희망의 재(嶺)로 보였으나 그러나 이번에 조양문은 마치 저승 길을 들어가는 관문같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가 사신을 따라 조양문을 들어 섰을 때 이상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문부터 시작해서 길 양편에는 비단 장막을 드리우고 사람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마 오늘 어떤 대관의 행차가 이리 가는가 보다 할 뿐이었다.

이것이 자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이렇게 굉장히 해놓았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와같이 이상하게 차려논 길 양편을 돌아보며 무심히 갈 때 중국 대관이 수많은 종자를 데리고 이 편을 향하여 가까이 와서 차에서 내리더니 상사 일행을 향하고 걸어 왔다. 이 편 일행도 말에서 내리어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천천히 걸어 이 편으로 오더니

『홍역관이 어느 분이십니까?』

홍역관은 상사를 맞이하러 나온 사람이거니하고 상사일행을 따라 뒤에 섰다가 자기를 찾으매 홍역관은 공손히 허리를 굽혀 존경하는 뜻을 보이고

『제가 홍역관이올시다.』

하고 한 걸음 나섰다. 홍역관이 한 걸음 나서는 것을 보더니 중국 대관은 반가운 빛이 얼굴에 가득하여 땅에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장인께서 오시느라고 얼마나 수고를 하시었읍니까?』

이와같은 뜻밖에 광경을 당한 홍역관과 상사일행은 이 뜻 모를 광경에 다만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누구신지 나를 장인이라 부르시니 사람을 잘못 아신 게 아닙니까?』

하고 그를 얼빠진 사람같이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실 겝니다. 하여간 자세한 말씀은 집에 가서 여쭙겠지만 집에서도 장인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장인을 뵈오면 한없이 즐거워할 터이니 같이 잠간 가시지요.』

하고 홍역관의 소매를 끌어 같이 마차에 탄 다음에 풍우 같이 몰아가는 것이었다.

홍역관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끌려갈 뿐이다. 그는 끌려 가면서도 상사 일행을 생각하였다. 너무나 급하게 끌려가는 바람에 미처 상사에게 한마디 말도 못하고 이렇게 알 수 없는 봉변을 당하고 보니 상사에게 책망 당할 일도 민망하였다.

『이태나 두고 오시기를 기다려도 영 ── 오시지를 않아서 퍽 궁금히 생각했읍니다.』

이같이 이태나 자기를 기다렸다는 말에 더 한층 홍역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저 같은 미관 말직에 있는 사람을 어찌 아십니까?』

『네, 저는 예부시랑(禮部侍郞)(지금의 외무차관 같음)으로 있는 석성(石星)이 올시다.』

홍역관은 더욱이 놀래었다. 이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면 자기 같은 사람쯤은 존재조차 알아줄 까닭도 없는 일이다. 예부시랑 하면 외국 사신과 마주 앉아 모든 외교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서 일개 역관에 지나지 않는 자기를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공손히 우대를 해줄가? 그러나 홍역관으로서는 아무리 머리를 기웃기웃하고 옛 생각을 더듬어 보아도 이렇게 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억이 조금도 없었다.

어느듯 마차는 석시랑의 궁궐같은 집 앞에 닿았다. 석시랑은 먼저 내려서 홍역관에게 공손히 내리기를 권고하였다. 홍역관은 다만 그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역관은 석시랑의 뒤를 따라 그가 인도하는대로 번화하게 차려논 객실로 들어갔다.

석시랑은 홍역관을 객실로 인도하여 정한 자리를 권하여 앉힌 다음,

『자세한 말씀은 제가 하는 것보다도 미구에 나와서 반가이 할 사람이 있으니 잠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나 홍역관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석시랑의 하는 양만 바라볼 뿐이었다. 대체 나를 만나 말할 사람은 누구일가? 일찌기 중국에 역관으로 몇 차례 드나들기는 했으나 한 사람도 친한 교제를 해본 사람이 없는 홍역관으로서는 도무지 궁금한 것보다 마치 꿈 속 같애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홍역관은 알 수 없는 불안에 싸여 그 시간이 오기만 기다릴 뿐이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석시랑은 홍역관이 초조해하는 얼굴 빛을 보고 빙그레하고 웃고 있을 뿐이다.

홍역관은 속으로 불안한 마음 한편에 의심증조차 치받치어 올라왔다.

그러나 석시랑에게 대해서

『여보 대체 나를 어찌할 셈이요.』

하고 묻고 싶기도 하였으나 차마 체면에 그렇게 화증을 낼 수도 없고 더욱이 정도가 넘치도록 해주는 석시랑의 친절에 그만 기가 질려서 그런 말이 입 밖에 나오질 않았다.

홍역관이 이같이 불안과 초조에 싸여 있는 동안 객실 문밖에서 가만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객실 앞까지 와서 그쳤다. 그 다음에 객실 문이 소리 없이 가만이 열리더니 찬란한 의상을 입은 귀부인이 두 계집 종을 데리고 소리없이 들어왔다.

홍역관이 뜻밖에 들어오는 미인을 보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석시랑은 홍역관의 소매를 붙잡으며

『장인께서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따님을 보시지 않고 어디로 피하려 하십니까?』

이 말이 떨어지기 전에 그 귀부인은 가만이 걸어 홍역관 앞에 와서 부형에게 보는 예로 공손히 절을 하였다. 홍역관은 다만 멍하니 서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다.

그 귀부인은 다시 자리를 고쳐 앉은 다음에 홍역관을 가만이 쳐다보며

『아버지께서 저를 잊으셨읍니까?』

홍역관은 비로소 그 여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본 듯한 얼굴이나 얼른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글쎄요, 뵈온 듯한 생각이 없지는 않으나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저 ── 이태전에 통주에 오셨을 때 천냥방에서 뵈었지요?』

이 뜻밖의 말에 홍역관은 다시 그 여인을 쳐다보았다. 하루 밤 만나서 눈물에 얽힌 효녀의 말에 감동해서 나랏돈 이천냥을 두말 없이 내주고 오늘 자기는 죽음의 길을 밟고 있지 않은가? 그의 의식은 분명하여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이태 전 그는 의복도 달랐고 있던 곳도 달랐었다. 그러나 이태 후 오늘에는 그는 의복이라든지 있는 곳이라든지가 하늘과 땅 같이 변하지 않았는가? 홍역관이 한참동안 알아보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 뜻밖의 해후에 홍역관은 다만

『어 ── 참 그렇군.』

하고 말할 뿐이었다. 그 여인의 눈에는 구슬같은 눈물조차 맺쳐졌다.

『제가 그때 하늘 같은 은혜를 받은 다음 아버지도 무사하시게 되었고 더군다나 오늘에는 이렇게 석시랑의 아내가 되어 몸이 영화로우매, 아버지께 대한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할가 하고 늘 ─ 조선서 사신이 들어올 때면 석시랑이 반드시 대하는 때문에 늘 부탁을 해도 오시지 않아서 자나 깨나 마음이 편치 못했읍니다.』

이같이 지낸 말을 간단히 한 다음에 즐거움과 만족에 넘치는 빛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실상 오늘 조양문에서부터 비단 장막을 쳐논 것도 홍역관이 이번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가지고 석시랑이 자기 아내의 은인에게 대해서 조금이라도 우대하는 뜻으로 특별히 해 놓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취후의 사명을 띄고 들어온 커다란 용무도 이 석시랑이 결정하기에 달린 일이었다.

이같이 뜻밖의 해후가 홍역관에게 커다란 힘을 주었다. 그 뿐 아니라 이같이 홍역관이 마지막 책임을 지고 말하자면 목숨을 내놓고 들어오게 된 것을 안 석시랑은 별말 안하고 오랫동안을 두고 승강이해 오던 종계변무를 두말없이 주선해서 주었다.

홍역관은 물론 상사도 이같은 전후 사연을 알고 춤을 출 듯이 기뻐하였다.

상사 일행이 뜻밖에 성공을 해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오는 날 석시랑 부처는 조양문 밖까지 전송을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름 모를 비단이 수백필이 쌓여있었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나 은인을 생각하는 간곡한 정성이오니 받아 주십시오.』

하고 그 수많은 비단을 홍역관에게 주었다. 그러나 홍역관은 좋게 거절을 하였다.

『아버지, 언제 뵈올지 모르겠사오나 길이 안녕하십시오.』

하고 인사를 마친 석시랑의 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옷자락을 눈에다 대었다.

홍역관은 모든 사람을 작별하고 주는 비단까지 굳게 사양한 후 길을 재촉하여 조선을 향하여 떠났다.

『이번 일은 전혀 홍역관의 공일세.』

돌아오는 도중에 상사 황정욱은 홍역관을 돌아보며 만족한 듯이 말하였다.

『천만에요. 다 성상(聖上)의 복이시고 대감의 공이지요.』

이렇게 서로 말하며 어느듯 압록강을 건느게 되었다.

상사 일행이 압록강을 막 건느자 그곳에는 한떼의 중국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상사 일행이 가까움을 보고

『이것 석시랑께서 이곳까지 갖다가 홍역관께 드리고 오라고 하세요.』

하며, 수백필의 비단을 내놓았다. 이것은 먼저 굳게 거절했던 비단이었다.

『여보게 홍역관, 너무 남의 정을 막지 말고 받아 두시게.』

상사도 석시랑의 넘치는 정성에 이렇게 홍역관에게 권했다. 수백필 비단에는 끝마다 비단 수실로 보은(報恩)이라고 수가 놓여 있었다. 선조께서 이번에 오랫동안 끌어 내려 오던 종계변무가 무사히 통과됨을 한없이 기뻐하시었다. 그리고 더욱이 홍역관의 전후 내력을 들으시고 한없이 기뻐하시며,

『이번 일은 전혀 홍역관의 공이다.』

하시고, 홍역관의 공을 표창하시와 당릉군(唐陵君)을 봉하시었다. 비단 끝에 수논 비단이 처음 들어온 후로부터 그 비단을 보은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당능군이 사는 동네를 보은단골이라고 불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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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나라에서는 조선 태조 이성계를 고려 말의 권신 이인임의 아들로 기록하였고 200여 년 동안 넘도록 고쳐주지 않고 있었다. 이 억울함을 바로 잡아 종계를 바로 하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