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제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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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하고도 보름이나 지났다. 그 동안 한곡리 한복판에는 커다란 새 집 한 채가 우뚝하게 솟았다. 커다랗다고 해야 두 간 겹집으로 폭이 열 간쯤 되는 창고 비슷이 엉성한 집이지만, 이 집 한 채를 짓기에 회원들은 칠월 염천에 하루도 쉬지 않고 불개미와 같이 일을 하였다.

논에는 아시 두 번 호미질과 만물까지 하였고, 이제는 피사리만 하면 힘드는 일은 거진 끝이 난다. 그 동안의 한 달 반쯤은 농군들이 추수를 할 때까지 숨을 돌리는 농한기다. 그 틈을 이용해서 농우회관을 지은 것이다.

엉부렁하게나마 거진 이십 평이나 되는 집을 얽어 놓는 데 그 건축비가 불과 몇십 원밖에 들지 않았다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회원들끼리 거진 삼 년 동안이나 농사를 지어 모은 것과, 술 담배를 끊은 대신으로 다달이 얼마씩 저금을 한 것과, 또는 도야지를 치고 이용조합에서 남은 것을 저리로 놓은 것을 걷어 모으면 거진 오백 원이나 된다.

이발부의 수입은 모았다가 동리서 공동으로 쓸 솜틀을 칠십여 원이나 주고 샀고, 포패조합(捕貝組合)을 만들어서(회원은 다 여자인데, 앞바다 건너 안섬에다가 이 년 작정을 하고 굴을 번식시킨 뒤에, 조합원끼리 따먹고 장에 갖다가 파는 권리를 가지는 것) 불가불 소용이 참되는, 조그만 나룻배를 사십 원 가량 들여서 지은 것밖에는, 한푼도 쓰지 않은 채 있었다.

그들 중에서 이 회관을 짓는 데는 오십 원도 다 들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첫째, 기지가 민유지라 땅값이 아니 들었고, 재목은 단단해서 썩지도 않는 밤나무, 참나무, 아카시아나무 같은 것을 회원들의 집 앞이나 멧갓에서 베어 왔고, 수장목은 오동나무와 미루나무를 썼는데, '영치기 영치기' 하고 회원들끼리 목도질까지 해서 운반을 했으니 돈이 들 리 없었다.

터를 닦고 주춧돌을 박는 것부터 자귀질, 톱질이며, 네 올가미를 짜서 일으켜 세우고 새를 올리고 욋가지를 얽고 토역을 하는 것까지 전부 회원들의 손으로 하였다. 이엉을 엮을 짚도 농우회에서 연전부터 유념해 두었었는데, 여러 사람이 입에 혀같이 봉죽을 들었거니와, 회원 중의 석돌이는 원체 지위(목수)의 아들인데다가 눈썰미가 있어서 수장은 물론 문짝까지 제 손으로 짜서 달았다.

품삯이라고는 한푼도 아니 들었지만, 다만 화방 밑에 콘크리트를 하는 데 쓰는 양회와, 못이나 문고리며 배목 같은 철문만은 할 수 없이 돈을 주고 사다가 썼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손을 빌지 않고 거진 두 달 동안이나 열두 사람의 회원들이 땀을 흘린 기념탑이 우뚝하게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투른 목수와 토역장이들이 얽어 놓은 집이라 장마를 치르고 나니까 지붕이 새고 벽이 허물어져서 곱일을 하느라고 동혁이도 몇 번이나 코피를 쏟았다. 그랬건만 다 지어 놓고 보니 겉눈에 번듯하게 띄지는 않아도 거진 이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가 있게 되었고, 엉부렁하게나마 헛간으로 쓸 모채까지 세웠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무실, 도서실까지 오밀조밀하게 꾸며 놓았다. 도서실에는 기만이가 사서 기부한『농업강의록』과 농촌운동에 관한 서책이 오륙십 권이나 되고, 동혁이가 보는 일간 신문과 회원들이 돌려 보는《서울시보》,《농민순보》같은 정기간행물이며 각종 잡지까지 대여섯 가지나 구비되어서, 회원들은 조그만 틈이라도 타면 언제든지 모여 와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형편을 짐작할 수 있도록 차려 놓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락부를 새로 두었다.

"사철 일만 하는 우리의 생활은 너무나 빡빡하고 멋이 없다. 좀더 감정을 윤택하게 하고 모두 함께 즐기는 기회도 지어서 활기를 돋우려면 적어도 한 가지 통일된 음악이 필요하다."

는 견지에서 건배가 주창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빌리면 콩나물 대가리(보표(譜表)라는 뜻) 하나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무슨 관현악대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 농촌에 재래로 있던 징, 꽹과리, 장구, 수구, 호적 같은 악기를 장만한 것이다.

"그런 건 천천히 장만해두 좋지 않은가. 날마두 뚱땅거리구 뚜들기면, 공청을 지어 놓구 놀려구만 드는 줄루 오해들을 허면 재미 적으이……."

하고 동혁이가 반대를 하면,

"온 별소릴 다 허네. 자넨 구데기 무서워서 장두 못 당그겠네그려."

하고 건배는 기만이를 구슬러서 새로운 풍물 한 벌을 사들인 것이다. 그래서 회원들끼리만 잡이꾼이 되어서 노는 방식을 개량하고 두레를 노는 것까지도 통제를 하게 되었다.

"자, 우리 인제 낙성연을 해여지."

"추렴이래두 내서 내일 하루만 실컨 놀아 보는 게 어떤가?"

"암, 좋구말구. 이새 저새 해두 먹새가 제일이라네."

"우리가 두 달 동안이나 집의 일은 내버려두구설랑 그 ?볕에서 죽두룩 일을 했는데, 하루쯤 논다구 누가 시빌 허겠나."

"여보게, 우리끼리만 암만 공론을 허면 소용이 있나? 우리 대장헌테 하루만 술을 트자구 졸라 보세. 건깡깡이루야 신명이 나여지."

"애당초에 그런 말은 비치지두 말게. 일전엔 동화가 또 몰래 주막엘 갔다가 성님헌테 단단히 혼이 났다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다 못해서 오지그릇처럼 빤들빤들해진 회원들이 회관 한 모퉁이에 모여 앉아서 새로 사온 풍물을 두드려 보다가 낙성연을 할 음모를 한다.

저녁때였다. 찌는 듯하던 더위가 한 걸음 물러서고 축동 앞 미루나무에 쓰르라미 소리가 제법 서늘하게 들린다. 회원들은 서퇴도 할 겸 하나둘씩 은행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재벽한 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집을 쳐다보고 앉았다. 그 집을 바라다보는 그들의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을 만치나 컸다.

'힘만 모으면 무슨 일이든지 되는구나! 땀만 흘리면 그 값이 저렇게 나타나고야 만다!'

그네들은 회관집 한 채를 짓는 데 단결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과, 또는 노력만 하면 그 결과가 작으나 크나 유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한 것이다. 동시에 움집 속에서 또는 남의 집 머슴 사랑에서 구차히 모이던 때를 생각하니 실로 무량한 감개가 끓어올랐다.

'저게 내 손으로 지은 집이거니.'

하면 무한한 애착심도 느껴졌다. 그 집을 바라다보고 앉았으려면, 끌 구멍을 파다가 손가락을 다쳤거니, 사닥다리에서 떨어져서 허리를 삐고는 동침을 맞느라고 혼이 났거니, 중방과 도리를 잘못 끼다가 석돌이 녀석한테 핀잔을 맞았거니―--- 이러한 추억만 해도 여간 정다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네 저 기둥감을 베다가 영감님헌테 몽둥이 찜질을 당했지?"

"그건 약괄세. 이걸 좀 보게그려. 여태 이 지경이니."

하고 회원들 중에 제일 다부지고 땅딸보로 유명한 정득이가 헝겊으로 칭칭 감은 발을 끌러 보인다. 그것은 저의 집 산 울안에 선 참죽나무를 밤중에 몰래 베다가, 저의 아버지가 '도둑야!' 소리를 지르며 시퍼런 낫을 들고 쫓아 나오는 바람에 어찌나 급해 맞았던지 담을 뛰어넘다가 탱자나무 가시에 발을 찔렸었다. 누렇게 곪은 것을 그대로 끌고다니며 일을 해서 그저 아물지를 못한 것이다.

사실 그네들이 부모나 동네 어른들의 반대 속에서 초가집 한 채를 짓기는 대궐 역사만치나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쉬이, 대장 올러오신다."

하고 정득이가 구렁이 지나가는 소리를 한다. 동혁이는 건배와 기만의 가운데에 서서 올라온다.

기만이는 여전히 건살포를 짚었는데, 오늘은 헬멧(박통 같은 모자)을 썼다.

"거기들 모여 앉아서 자네들 역적 모의를 허나?"

건배도 그 넓적한 얼굴이 눈의 흰자위와 이빨만 남기고는 흑인종의 사촌은 될 만치나 그을렀다.

"아닌게아니라, 우리끼리 무슨 비밀헌 공론을 했는데요……."

하고 석돌이가 세 사람의 눈치를 번갈아 본다.

"무슨 공론?"

동혁은 농립을 벗어 던지며 은행나무 뿌리에 가 걸터앉는다. 응달에서만 지낸 기만의 얼굴과 비교해 볼 때 동혁의 얼굴도 더한층 그을은 것 같다. 손바닥이 부르터서 밤콩만큼씩 한 못이 박혔고 손톱은 뭉툭하게 닳았다.

"저어……."

하고는 석돌이가 뒤통수만 긁적거리니까,

"왜 목들이 컬컬헌 게지."

동혁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러잖어두……."

하고 이번에는 칠룡이가 응원을 한다. 건배는 기만의 눈치를 보면서,

"아닌게아니라, 이 기만 씨가 낙성연을 한번 굉장히 차리구 놀자는데……."

하는 말이 끝나기 전에, 동혁은 손을 들어 건배의 입을 막는다.

"안 되네, 낸들 벽창호가 아닌 담에야 그만헌 생각이 없겠나? 허지만 말썽이 많은 판에 동네가 부산허게 떠들구 놀면 되레 오해를 받기가 쉬우이. 지금두 면장이 나와서 나를 보자구 헌대서 큰말로 갔다 오는 길일세."

하고 반대를 하였다.

"왜 무슨 말썽이 생겼수?"

나중에 올라온 동화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묻는다.

"차차 알지."

형은 자리가 거북한 듯이 대답하기를 꺼린다.

"우리 회와 상관이 되는 일이면 회원들두 다 알어야 헐 게 아니유? 면장이 우리 일에 무슨 참견이라우?"

"글쎄 뒀다 알어."

동혁은 기만의 등뒤에다 눈짓을 해 보인다. 청년들의 일이라면 한사코 반대를 하는 기만의 형인 기천이가, 면장이 나온 김에 무어라고 음해를 한 것이거니 하고 동화와 다른 회원도 짐작은 하는 눈치다. 그러나 기만이는 형과 달라 이편을 들고, 농우회의 일이라면 금전으로까지 후원을 많이 해오는 터이지만, 아우가 듣는데 형의 욕은 할 수가 없었다.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초록은 동색이라고 저의 집에 이해관계가 되는 일이면 형에게 무어라고 연통을 할는지도 몰라서, 항상 경계를 하고 있는 터이다.

동혁은 기천의 집에 다녀오는 길에 건배와 기만이를 만나서 같이 오기는 했어도, 그들에게도 그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건배는 탕탕 대포를 잘 놓는 대신에 말이 헤퍼서 비밀을 지킬 만한 일을 들려 주기를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회원들은,

'무슨 일이 단단히 생겼나 보다.'

하고 불안을 느끼면서도 더 재우쳐 묻지를 않고, 낙성하는 날 술 한잔도 못 먹게 하는 동혁이가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다가 애매한 북과 장구만 두드린다.

기만이도 그 눈치를 챘건만, 이런 경우에 아무 말도 아니 하는 것은 도리어 여러 사람에게 오해를 살 듯도 해서,

"그런데 센세이(선생)가 또 뭐래?"

하고 들띠어놓고 묻는다. 그래도 동혁은,

"그까짓 건 알어 뭘 허우. 우린 우리가 헐 일이나 눈 딱 감구 허면 고만이니까……."

하고 역시 자세한 말대답하기를 피한다. 기만이는 자리가 거북하니까 꽁무니에다가 손을 찌르고 간다는 말도 없이 슬금슬금 언덕 아래로 내려간다. 제가 하는 일을 반대하고 양반을 못 알아보는 발칙한 놈들과 얼려 다니고 돈을 쓰고 한다고, 눈에 띄기만 하면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야단을 치는 저의 형이, 면소나 주재소까지 가서 무어라고 쏘새기질을 하고 온 것만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농우회관을 짓게 된 뒤부터 가뜩이나 시기심이 많은 기천이가, 두 눈에 쌍심지가 돋아서 그 태도가 부쩍 악화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동혁이가 입을 꽉 다물어 버리니까, 다른 회원들도 어떠한 예감을 느끼면서도 말이 없다.

건배는 무슨 일인지,

"저기 좀 다녀옴세."

하고는 기만의 뒤를 따라서 내려갔다. 조그만 일에도 궁금증이 나면 안절부절을 못 하는 성미라, 동혁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혹시 기만에게 들을 이야기나 있나 하고 그 속을 떠보려고 따라가는 눈치였다.

동혁은 한참이나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서 창호지로 새로 바른 들창이 석양에 눈이 부시도록 반사하는 회관을 쳐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골독히 하다가 회원들을 돌려다보며,

"우리 낙성식두 못 해서 피차에 섭섭헌데, 그 대신 기념될 일 하나 해볼까?"

하고 벌떡 일어선다.

"무슨 일요?"

하는 회원들의 얼굴에서는,

'간신히 오늘 하루나 쉬려는데, 또 무슨 일을 허자누.'

하는 표정을 역력히 읽을 수 있다.

"그저 괭이하구 삽허구만 들구서 나만 따러들 오게나."

하고 동혁은 회관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이을 때에 쓰던 사닥다리를 둘러메더니 산등성이를 넘는다. 회원들은 멋도 모르고 동혁의 뒤를 따랐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매미 쓰르라미 소리도 점점 엷어질 무렵에는, 회관 앞마당이 턱 어울리도록 두길 세길이나 되는 나무가 섰다. 전나무, 향나무, 사철나무 같은 겨울에도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는 교목(喬木)만 골라서 '봄이나 가을에 심어야 잘 산다'고 고집을 하는 회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다가 옮겨 심은 것이다.

그것은 동혁이가 근처를 돌아다니며 미리 보아 두었다가, 나무 주인에게 파다 심을 교섭까지 해두었던 싱싱한 나무들이었다.

새로운 회관에 들게 되는 날 아침에 동혁이가 부는 나팔 소리는 더한층 새되고 씩씩하였다. 조기회원들이,

"엇둘! 엇둘!"

하고 체조를 하는 소리도, 애향가의 합창도, 전날보다 곱절이나 우렁찬 것 같았다.

새 집을 구경도 할 겸 새로 닦아 놓은 운동장에서 체조를 하는 바람에, 그 동안 게으름을 부리던 조기회원들도 전부 다 오고, 타동에서 온 구경꾼도 오륙십 명이나 되어서 운동장이 삑삑하게 찼다.

오늘은 영신이가 조직해 주고 간 부인근로회의 회원들도 십여 명이나 건배의 아내를 따라서 참례를 하였다. 아무에게도 낙성식을 한다고 광고를 한 것도 아니요, 건배는 무슨 일이든지 크게 버르집고 뒤떠들려고만 든다고 동혁이와 의견 충돌까지 되었지만, 오늘 아침만은 누구나 은연중에 농우회관의 낙성식을 거행하는 기분으로 모인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은 평소와 같이 조기회가 끝난 뒤에도 헤어지기가 섭섭한 듯이 어정버정하며 동혁을 바라다본다. 그 눈치를 챈 건배는,

"여보게, 회원두 더 모집해야 헐 텐데, 여러 사람이 모인 김에 연설 한마디 허게그려."

하고 동혁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건 선전부장이 헐 일이지, 왜 나더러 허라나?"

하고 동혁이가 사양을 하니까, 건배는 그 말을 못 들은 체하고 회관 정문 앞으로 나서더니,

"여러분,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지금 이 회관을 짓자고 맨 먼저 발설을 했고, 우리들을 헌신적으로 지도해 주는 박동혁 군이 여러분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고 공포를 하고 나서는,

'인젠 말을 허든지 말든지 나는 모른다.'

는 듯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선다. 운동장에서는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 동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너 어디 두고 보자'는 듯이 건배의 뒤통수를 흘겨보고는 회원들의 앞으로 나섰다.

엄숙한 태도로 여러 사람의 긴장된 얼굴을 둘러보다가,

"준비 없는 말씀을 드리게 됐습니다."

하고 한마디 하고 나서 등뒤의 회관을 가리키며,

"이만한 집 한 채를 얽어 놓은 것이 결코 자랑할 거리는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집을 지으려고 여러 해를 두고 별러 오다가, 오늘에야 낙성을 하게 된 것을 여러분도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다만 한 가지 자랑하고 싶은 것은, 이 집은 연재 가락 하나, 짚 한 단까지도 회원들이 가져온 것이요, 목수나 미장이 한 사람도 대지 않고 우리가 이 염천에 웃통을 벗어붙이고 불개미처럼, 참 정말 불개미처럼 두 달 동안이나 일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만한 집 한 채나마 우리 한곡리 한복판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집은 농우회원 열두 사람의 집이 아니요, 여러분이 유익하게 이용하시기 위해서 지어 놓은 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곡리의 공청, 즉 공회당으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잠깐 눈을 내리감았다가 얼굴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

"여러분! 여러분은 이 말 한마디만 머릿속에 깊이깊이 새겨 두십시오. '여러 사람이 한맘 한뜻으로, 그 힘을 한곳에 모으기만 하면 어떠한 일이든지 이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름내 땀을 흘린 그 값으로 이 신념 하나를 얻었습니다. 처음으로 귀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버덤 더 많은 사람이 똑같은 목적으로 모여서 꾸준히 힘을 써나간다면, 이버덤 더 어려운 일도 성공할 수가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여러분과 함께 믿고저 하는 바입니다."

하고 부르짖고는 숨을 돌린 뒤에 목소리를 떨어뜨려,

"우리는 일을 크게 버르집고 겉으로 떠들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낙성식 같은 것도 하지를 않습니다마는, 그 대신 우리는 우리 동리 여러분께 좋은 음악을 들려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집터를 닦는 달구질 소리, 마치질 자귀질 허는 소리가 온 동리에 울리지 않었습니까? 저 소대갈산까지 찌렁찌렁 울리지 않었습니까? 그 소리가 무엇버덤도 훌륭한 음악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을 무너 버리고 깨뜨려 버리는 파괴의 소리가 아니라, 새로 짓고 일으켜 세우는 건설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소리가 어찌나 반갑고 기쁜지 조금도 괴로운 줄을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동혁은 그 말에 매우 감격해하는 여러 사람의 얼굴을 둘러보다가,

"여러분! 이 집이 터지도록 우리의 장래의 일꾼들을 보내 주십시오! 아침 저녁으로 글 배우는 소리가 그칠 때가 없도록 해주십시오! 이 집이 꽉차면 우리는 이 집버덤 더 큰 집, 또 그버덤도 더 굉장히 큰 집을 짓겠습니다!"

그 말에 회원들은 손바닥이 뜨겁도록 박수를 한다.

그때에 건배는 여러 사람의 앞으로 썩 나서면서,

"한곡리 만세!"

하고 두 팔을 번쩍 쳐든다.

"만세!"

여러 사람이 고함지르듯 하는 만세 소리에, 새로 심은 동청나무에 앉았던 참새들이 깜짝 놀라 푸르르 날아갔다.

하루는 동혁이가 회관에서 주학을 마치고 나오는데(새 집으로 옮겨 온 후 아이들이 부쩍 늘어서 주학까지 하게 되었다) 석돌이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저 강도사 댁 작은사랑 나으리가 저녁때 잠깐 만나자구 허시는데요."

한다.

"왜?"

동혁은 불쾌히 대답을 하였다. 석돌이는 눈썰미가 있고 영리한 대신에 얕은 꾀가 많아서 항상 경계를 하는 회원이다. 더구나 강도사 집 전답에 수다 식구가 목을 매어단 사람이어서, 이 집에 심부름을 다니는 것은 물론, 박쥐 구실이나 하지 않는지가 의문이었다. 강도사 집 살림살이의 실권을 쥔 맏아들인 기천이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까닭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글쎄, 왜 또 오라는 거야?"

동혁은 거듭 물었다.

"알 수 있에요. 조용히 꼭 좀 만나자구 일러 달라구 헙시니까요?"

"누가 왔든가?"

"아니오, 혼자 계시든걸요."

"음, 알었네."

동혁은 확실한 대답을 아니 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기천이는 면협 의원이요, 금융조합 감사요, 또 얼마 전에는 학교 비평 의원이 된 관계로 면장이 나와서 한곡리도 진흥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 회장이 되도록 운동을 해보라고 권고를 하고 갔었다. 기천은 명예스러운 직함 하나를 더 얻게 된 것은 기쁘나, 군청이나 면소에서 시키는 대로 무슨 일이든지 하는 체해야만 저의 면목이 서겠는데, 제가 수족같이 부릴 만한 청년들은 말끔 동혁의 감화를 받고, 그의 지도 밑에서 한몸뚱이와 같이 움직이고 있으니, 저는 개밥에 도토리 모양으로 따로 베져났다. 저의 집의 논을 하고 돈을 쓴 낫살먹은 작인들 같으면, 마구 내리누르고 우격다짐을 해도 그저 '잡아 잡수' 하고 꿈쩍도 못 하지만, 나이 젊고 혈기 있는 그 자질들은 까실까실해서 당초에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워낙 기천이가 대를 물려 가면서 고리대금과 장릿벼로, 동리 백성의 고혈을 빨아서 치부를 하였고(주독으로 간이 부어서 누운 강도사는 지금도 제 버릇을 놓지 못한다. 당장 망나니의 칼에 목을 베지려고 업혀 가는 도적놈이, 포도 군사의 은동곳을 이빨로 뽑더라는 격으로 여전히 크게는 못 해도 박물 장수나 어리 장수에게 몇 원씩 내주고 오 푼 변으로 갉아모아서는, 기직자리 밑에다 깔고 눕는 것이 그의 마지막 남은 취미다. 몇 해 전까지도 아들만 못지않게 호색을 해서, 주막의 갈보, 행랑 계집 할 것 없이 잔돈푼으로 낚아들여서는, 대낮에 사랑 덧문을 닫기가 일쑤더니, 운신을 못할 병이 든 뒤에야 그 버릇만은 놓을 수밖에 없이 되었다) 저 혼자 사람의 뼈다귀인 것처럼 양반 자세가 대단해서 적실인심을 한 터이라, 새로운 시대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청년들은 기천이만 눈에 띄면 무슨 노린내가 나는 짐승처럼 얼굴을 돌리고 슬금슬금 피한다. 그 중에도 성미가 부푼 동화는,

'조놈의 발딱 제치구 당기는 대가리는 여부없이 약오른 독사뱀 같드라.'

하고 먼발치로 눈에 띄기만 해도 외면을 해버린다. 그 아우는 '노새'라고 놀리기는 하면서도, '그래두 기만이는 강가의 중시조지' 하고 간신히 사람 대우를 하지만…….

'또 무슨 얌치빠진 소릴 헐려누.'

하고 동혁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기천이를 보러 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동화가 자꾸만 묻고, 건배까지,

"왜 혼자만 꿍꿍이셈을 치나?"

하고 궁금히 여기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니다. 면장이 왔던 날, 기천이는 술상을 차려 놓고 동혁이를 청하였다. 그날은 면장 앞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점잔을 빼고 사람을 깔보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이 박군이야말로 참 대표적으로 건실헌 우리 동지입니다. 이번 그 회관집만 허두래두 이 사람이 혼자 지은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하고 새삼스러이 동혁을 소개하였다. 소개가 아니라, 이러한 모범 청년이 제 수하에서 일을 한다는 태도다. 동혁은 '동지'라는 말을, 기만이 입에서 들을 때보다도 구역이 나서, 입에도 대지 않은 술잔을 폭삭 엎어 놓았었다. 그래도 기천이가 연방 '동지'를 찾으면서 하는 말을 종합해 보면,

"면장께서 바쁘신데도 일부러 나오신 건 다름아니라 우리 동네두 진흥회를 실시해야 되겠는데, 내야 어디 그런 일을 아는 사람인가? 허니 자네들이 힘을 좀 빌려 줘야겠네. 자네야 중요한 역원이 돼줄 줄 믿는 자리지만 다른 젊은 사람들두 다 함께 회원이 돼서 일을 해보두룩 허세."

하고 애가 말라서 간청을 하는 것이었다. 동혁은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난 헐 수 없에요. 우리 농우회 일만 해두 힘에 벅찬데, 한 몸으로 두 가지 일은 도저히 헐 수 없쇠다."

하고 딱 잡아떼고 일어섰다.

동혁이가 이번에는 버티고 가지를 않으니까, 기천이는 호출장처럼 명함을 들려 집으로까지 머슴을 보냈다.

"작은사랑 나으리께서 꼭 좀 건너오래유. 안 오면 이리루 오시겠다구 그러세유."

하고 머슴애는 어서 일어서기를 재촉한다. 기천이는 면협 의원이 되던 날 아침에 행랑 사람과 머슴들을 불러 세우고,

"오늘버텀은 서방님이라구 그러지 말구 나으리라구 불러라."

하고 일장의 훈시를 하였던 것이다.

동혁은 중문간 문지방에 걸터앉아서 입맛을 다시다가,

"저녁 먹구 건너간다구, 가서 그러게."

해서 머슴을 보냈다. 가고 싶은 생각은 손톱끝만치도 없지만, 집으로까지 찾아온다는 것이 싫어서 가마고 한 것이다.

저녁 뒤에 그는 말대답할 것을 생각하면서 큰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대문간에 들어서는데 작은사랑 툇마루에서,

"아 그래 제깐 녀석이 명색이 뭐길래, 내가 부른다는데 냉큼 오질 못헌다드냐?"

하고 그 되바라진 목소리로 머슴애를 꾸짖는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동혁은 '나 여기 대령했소' 하는 듯이 바로 지척에서 으흠으흠 하고 기침을 하고,

"저녁 잡수셨에요?"

하며 들어섰다. 기천은 도적질이나 하다가 들킨 것처럼 옴씰해서 반사운동으로 발딱 일어서기까지 하며,

"아, 자네 오나?"

하고 반색을 한다. 그 푼푼치 못하게 생긴 얼굴을 횟배 앓는 사람처럼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뜻밖에 동혁이와 마주치는 순간 금시 반가운 낯으로 표변하는 표정 근육의 민첩한 움직임은 여간한 배우로는 흉내를 못 낼 것 같다.

"아 이 사람아, 난 여태 저녁두 안 먹구 기다렸네."

하는 것도 허물없는 친구를 대하는 태도다.

"그럼 시장허시겠군요."

하고 동혁은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라는 듯이 툇마루 끝에 가 걸터앉았다. 방으로 들어가자는 것을,

"회관을 지은 뒤에 처음 총회가 있어서 곧 가봐야겠에요."

하고 한사코 들어가지를 않았다. 방으로 들어만 가면 으레껏으로 술상이 나오고 술을 억지로 권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 예서래두 한잔 해야겠네, 술을 입에두 안 댄다니 파계(破戒)를 시키군 싶지만, 워낙 자넨 고집이 센 사람이 돼놔서……."

하고 준비해 놓았던 술상을 내왔다. 술이란 저의 집에서 사철 떨어뜨리지 않고 밀주를 해먹는, 보기만 해도 고리타분한 막걸리 웃국이요, 안주라고는 언제 보아도 낙지 대가리 말린 것에 마늘장아찌뿐이다. 칠팔 년이나 면서기를 다니는 동안에 연회석 같은 데서는 남이 태우다가 꺼버린 궐련 꼬투리를 주워 피우면서도 단풍 한 갑 아니 사먹던 위인으로는, 근래에 교제가 부쩍 늘어서 면이나 주재소에서 양복쟁이가 나오면 으레 술까지 내는 것이다.

"하아 이거, 내가 사람을 앉혀 놓구서 인호상이자작(引壺觴而自酌)을 허니 어디 맛이 있나?"

하고『고문진보』뒷다리나 읽어 본 티를 내지 못해서 애를 쓴다. 그러나 숙습(熟習)이 난당(難當)이라고 써야 할 자리에 '수습이 난방이로군' 하는 따위가 예사여서, 정말 글방에서 종아리깨나 맞아 본 사람의 코웃음을 받는 때가 많다.

기천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술기운을 빌리려는 것이다. 사실 동혁의 앞에서는 무슨 말이고 함부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농우회에도 다른 회원들 같으면 그 반수가 저의 논의 소작인이니까 여차직하면 '논 내놔라' 한마디만 비치면은 설설 기는 터이니 문제가 되지를 않고, 건배만 하더라도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고 원체 허풍선이가 돼서 술 몇 잔에 속을 뽑히는데 농사 터는 한 마지기도 없이 엉터리로 사는 사람이니까 돈을 미끼로 물려서 낚아 볼 자신도 있다. 그러나 유독 동혁이만은 그야말로 눈의 가시다. 천생으로 사람이 묵중해서 당최 뱃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는데, 근처에 없는 고등교육까지 받아서, 마주 앉으면 제가 도리어 인금에 눌리는 것 같다.

기천은 다리를 도사리고 앉아서 고무신의 때가 고약처럼 묻은 버선 바닥을 쓰다듬던 손으로 술잔을 들고 쭈욱 들이켜고는, 족제비 털 같은 노랑 수염을 배비작거려서 꼬아 올리더니,

"좀 허기 어려운 말일세만……."

하고 반쯤 외면을 한 동혁의 눈치를 곁눈으로 훑어본다.

"말씀허시지요."

동혁은 '또 무슨 말을 꺼내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하면서도 들으나마나 하다는 듯이 어둑어둑해 가는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앉았다. 기천이는 실눈을 뜨고 손톱 여물을 썰더니,

"자네 그 회관 짓기에 얼마나 들었나?"

하고 다가앉는다.

"돈이요? 돈이야 얼마 안 들었지요."

기천은 다리를 도사리고 고쳐 앉으며 용기를 내어,

"이런 말을 자네가 어떻게 들을는지 모르겠네만 진흥회가 생기면 회관이 시급히 소용이 되겠는데, 당장 지을 수는 없구…… 거기가 동네 한복판이 돼서 자리가 좋아. 그러니 여보게, 거 어떻게 재목값이든지, 품삯꺼정 넉넉히 따져서 내게루 넘길 수가 없겠나? 자네들은 한번 지어 봐서 수단이 났으니까, 딴 데다가 다시 지으면 고만일 테니…… 자네 의향이 어떤가?"

하고 얼굴을 반짝 쳐든다. 너무나 염치빠진 소리에 동혁은 어이가 없어서,

'얼굴 가죽이 간지럽지 않느냐.'

는 듯이 기천을 뻔히 쳐다보다가,

"왜 돈 만 원이나 내노실 텝니까?"

하고 껄껄껄 웃었다. 기천은,

"아아니, 이 사람 웃음엣말이 아닐세."

하고 금시 정색을 한다.

"글쎄 웃음엣말씀이 아니니까 웃을 수밖에 없군요."

동혁은 별이 반짝이기 시작한 하늘을 우러러 다시 한번 허청웃음을 웃었다.

"허어 이 사람, 그래두 웃네그려. 그 집을 이문을 붙여서 팔라는데 실없이 웃을 게 뭐 있나?"

기천은 동혁이가 저를 놀리는 것 같아서 눈살을 찌푸린다.

"글쎄 생각을 좀 해보세요. 그 집은 돈 아니라 금덩어리를 가지구두 팔거나 사지를 못헙니다. 돈만 가지면 무슨 일이든지 맘대루 될 줄 아시는 모양이지만, 억만 원을 주구두 남의 정신만은 사지를 못헐걸요. 그 회관을 팔려면 단돈 백 원 어치두 못 될는진 모르지만 우리 열두 사람이 흘린 땀으루 터를 닦었구요, 붉은 정성으루 쌓어 논 기념탑이니까요. 우리 손으루 부셔 버린다면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두 그 집엔 손가락 하나 대지를 못헙니다!"

"아아니, 글쎄 그런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혹시나 허구 헌 말일세."

"혹시나라뇨? 한 단체가 공동으로 합력을 해서 지어 논 집을, 나 한 개인이 팔어먹을 생각을 혹시나 허구 있을 것 같어서, 그런 가당치 않은 말씀을 끄내셨나요?"

이 한마디에 기천은 고 빳빳하던 모가지가 자라목처럼 옴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

기천은 눈만 깜짝깜짝하고 담배를 붙여 물었다 부벼 껐다 하며 속으로 안간힘만 쓰고 앉았다.

'돈으로도 굴레를 씌울 수 없는 이 젊은 녀석을 어떡허면 꼼짝 못하게 옭아 넣을까.'

하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한곡리서 대를 물려 가며 왕 노릇을 해오던 터에 역시 대를 물려 가며 '소인 소인' 하고 저의 집 전장을 해먹던 상놈인 박가의 자식 하나 때문에, 위신이 떨어지고 돈놀이 해먹는 세력까지 은연중에 꺾이는 생각을 하면 이가 뽀드득뽀드득 갈렸다. 그러나 자는 호랑이 코침 주기로 동혁이를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열두 회원이 이해관계를 떠나서 벌떼처럼 일어날 듯한 데는 겁이 버럭 났다. 더구나 한번 심술만 불끈 하고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동화가 무슨 짓을 할는지 그것도 무서웠다. 동화에게는 두어 번이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모양 사나운 꼴을 당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자에 와서, 눈이 제자리에 박히고 귀가 바로 뚫린 사람이면 한곡리에서는 박동혁이가 중심이 되어 동리 일을 하고, 인망과 인심이 농우회원에게로 쏠린 줄로 인정을 하는 데는, 눈에서 쌍심지가 돋으리만치 시기심이 났다. 그래서 어떠한 수단이든지 써서,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헤살을 놓을 계책을 생각하느라고 밤이면 잠을 못 자는 것이다. 그러다가 장차 발기될 진흥회의 역원이 되어 달라고 간청을 해도 말을 아니 들으니까, 그 회관을 몇백 원이라도 주고 매수를 할 꾀를 낸 것이었다.

동혁은 갑갑한 듯이,

"그만 가봐야겠에요."

하고 뻣뻣하게 한마디를 하고 일어선다. 기천은 놓치면 큰일이나 날 듯이 동혁의 손을 잡고 매달리듯 하며,

"여보게 동혁이, 낫살이나 먹은 사람이라구 너무 빼돌리질 말게. 나두 동네 일이 허구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고 사뭇 애원을 한다. 동혁은, 잡힌 손이 냉혈동물의 몸에나 닿은 듯이 선뜩해서 슬며시 뿌리쳤다.

기천은 또다시 실눈을 뜨고 무엇을 생각해 보더니,

"그럼, 자네들 회에 나 같은 사람두 회원 될 자격이 있나?"

하고 마지막으로 타협안을 제출한다.

" '만 삼십 세 이하의 남자로 회원 반수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입회를 허락한다'는 농우회의 규약이 있으니까요."

동혁의 대답은 매우 냉정하다.

"그럼, 사십이 넘은 나 같은 인생은 죽어 버려야 마땅허겠네그려?"

기천은 간교한 웃음을 짓는다.

"아, 그래서 어떡허게요. 그렇게 유력허신 분이 돌아가시면 우리 동네의 큰 손실일걸요."

하고 동혁은 씽긋 웃으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