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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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식에 와달라는 영신의 청첩을 받은 동혁은 저의 일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기뻤다.

'아무렴 가구말구. 오지 말래두 갈 텐데…….'

하고 혼자말을 하면서 벽에 붙은 일력을 쳐다보았다.

'내일은 떠나야겠는걸.'

하고 노자를 변통할 궁리를 하였다. 추수라고는 하였지만, 잡곡을 섞어 먹는데도 내년 보리 때까지 댈 양식조차 없었다. 간신히 계량이나 하던 것을, 그야말로 문전의 옥답을 반나마 팔아서 강도사 집의 빚을 청산하였기 때문에, 풍년이 들었어도 광 속에는 벼라고 겨우 대여섯 섬밖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각종 세금과 비료대와 곗돈과 온갖 추렴이며, 동화가 각처 주막에 술값을 진 것과 일년 동안에 든 가용을 따지고 보면, 그 벼 몇 섬까지 마저 팔아도 회계가 닿지를 않는다. 노인을 모신 사람이 생선철이 되어도 비린내조차 맡아 보지를 못하고 제법 광목 한 필 사들인 적이 없건만 씀씀이는 논섬지기나 할 때버덤 더 줄지를 않는다. 그것은 동혁이가 집안일에만 매어달리지 않는 까닭도 다소간은 있겠지만, 소위 자작농이 그러하니 남의 소작을 해먹는 사람들은 참으로 말이 못 된다. 회원 중에도 건배는 실농군도 되지 못하지만 남의 논 한 마지기도 못 얻어 하는 사람이라 가을이 원수 같았다.

"난 타작 마당에서 빗자루만 들구 일어서는 꼴을 당허지 않으니까 배포만은 유허거든."

하고 배를 문질러 보이지만, 그 뱃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다. 실상은 삼사 년씩 묵은 빚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해서, 어떻게 해야 할는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를 않는 모양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노름허다 밤샌 건 제사지낸 셈만 치구, 돈 내버린 건 도적맞은 셈만 치면 고만이지."

하고 제 손으로 패가한 것을 변명하며 낙천가의 본색을 발휘하지만, 실상은 어린것들의 작은 창자조차 곯리는 때가 많다.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하는 그는 동네 일을 한다고 덜렁거리고 다니기는 해도 노상 횃대에 오른 오리 모양으로, 어느 때 어느 바람에 불려서 어디로 떠달아날지 모를 것 같은 기색이 올 가을부터 현저히 보일 때, 유일한 친구인 동혁의 마음은 어두웠다. 제 코가 석 자 가웃이나 빠져서 물질로 도와 줄 수 없는데, 그렇다고 끼니를 굶고도 먹은 체하고 농우회 일을 보는 것이 여간 마음 아픈 것이 아니다. 회의 일만 해도 그렇다. 회원들이 그렇게 집안의 반대와 괴로움을 무릅쓰고 일을 하건만 실상 생기는 것이라고는 드러내어 말할 것이 못 된다. 공동답의 수확은 작년보다 대여섯 섬이나 늘었다. 개량식으로 지은 보람이 있어 재미가 나고 구식만 지키는 사람들에게 자랑도 되지만, 한 마지기에 석 섬 마수나 타작을 하였대도 반은 답 주인 강도사 집으로 들어가니, 그것을 노느면 한 사람 앞에 한 가마니도 차례가 가지 못한다. 그것이나마 회관의 비용을 쓰려고 팔아서 저금을 하는 것이니 실속을 따지고 보면 헛수고를 한 셈이다. 회원들은,

"이거 너무 섭섭해서 안됐는걸."

하고 겨우 고무신 한 켤레와 삽 한 자루씩을 사서 노났을 뿐이다.

그러나 한 길이나 되는 볏단을 조리개로 큼직하게 묶어서 개상에다가 둘러메치자, 싯누런 몽근 벼가 와르르 쏟아질 때 회원들은 재미가 쏟아졌다. 도급기(稻扱機)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바심꾼들의,

"어거― 띠― 윗윗."

하고 태질을 하는 그 기운찬 소리를 들을 때, 황금 가루로 뫼를 쌓아 놓은 듯한 볏무더기 속에 발을 푹 파묻고 벼를 끌어 담으며,

"두 말이요―--- 두 말. 서 말이요―--- 서 말."

하는 처량스러운 듯한 소리를 들을 때만은,

"아이구, 이걸 다 남을 주다니……."

하는 분한 생각이 들어 한탄을 마지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해서 잘다란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노자를 변통할 궁리를 하던 동혁은,

'적어도 십 원 한 장은 가져야 헐 텐데…….'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언뜻 눈앞에 나타난 것은 기만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치사하게 그자헌테 돈을 취해 가지구 가긴 싫다.'

하고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서 산을 넘어 물이라도 건너갈 결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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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식 전날 영신은 십 리도 넘는 자동차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다. 의외로 근친을 하였기 때문에 그럭저럭 사흘 동안이나 빠져서, 급자기 준비를 하느라고 잠시도 떠날 사이가 없건만, 별러별러 찾아오는, 더구나 청해서 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앉아서 맞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낮차에 헛걸음을 치고 돌아와서,

'저녁차에는 꼭 오겠지.'

하고 저녁때 또다시 나갔다.

가슴을 졸이며 자동차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영신은 신작로로 뛰어나가며 손을 들었다. 차는 브레이크 소리를 지겹게 내며 우뚝 섰다. 동혁은 벌써 알아보고 뛰어내릴 텐데, 만원도 아니 된 승객을 훑어보았으나 땅이 두 쪽에 갈라져도 꼭 올 줄 알았던 사람은 그림자도 없다. 영신은 실망 끝에 어찌나 화가 나는지,

'이놈아, 왜 그이를 안 태워 가지구 왔느냐?'

하고 운전수를 끌어내려 퍽퍽 두드려 주고 싶었다. 그는 그만 낭판이 떨어져서, 가로수 밑에 가 펄썩 주저앉아서 거진 한 시간 동안이나 뻘겋게 놀이 낀 하늘만 원망스러이 쳐다보았다.

'못 오면 그 성실헌 이가 전보래두 쳤으련만…….'

하고 여러 가지로 추측도 해보고 공상도 해보다가, 내왕 이십 리 걸음이나 곱팽이를 쳐서 그만 풀이 죽어 가지고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공연히 짜증이 나서 학원에는 들르지도 않고 바로 사숙으로 갔다. 낙성식 준비래야 지도책을 펴놓고 만국기를 헝겊조각에다 물감칠을 해서 달 것과, 상량(上樑)할 때도 쓸쓸히 지낸 목수며 저와 함께 죽도록 애를 쓴 청년들을 점심이나 대접하려는 그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소위 내빈이라고는 청하지도 않았으나, 학부형들이나 모아 놓고 그 동안 경과를 보고하려는 것이다. 서울 연합회에 청첩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어, 회장이 못 오면 간사라도 한 사람 보내 달라고는 했으나, 속으로 오지 말았으면 하였다. 농촌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서 눈은 한껏 높은 하이칼라가 내려오면 보여 줄 만한 것도 없거니와, 대접하기만 거북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빈의 총대표라고 할 만한 동혁이가 오지를 않으니(건배 내외와 농우회원들에게도 형식적으로 청하기는 하였지만) 낙성식이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 싶도록 부아가 났다. 내일 온대도 정각인 아침 열시까지는 도저히 대어 들어올 수가 없지 않은가.

영신은 컴컴한 중문간에서,

"원재 어머니!"

하고 불쾌히 부르며,

"서울서 아무두 안 왔어요?"

하고 물으면서 운동화를 벗어 던졌다. 서울로 통한 길은 다른 방향인데 그 길로는 원재를 보냈던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자 자기가 쓰는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혹시 서울서나 누가 왔나?'

하고 물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꺼정 어디루 갔을까?'

하고 입 속으로 꾸짖으며 방문을 펄썩 열고 들어서다가 깜짝 놀라 문칫 하고 뒤로 물러섰다.

"왜 서울서 오는 사람만 찾으세요?"

방 한구석에 앉아서 각반을 풀다가 검붉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히 담고 돌려다보는 것은 동혁이다! 천만뜻밖에 떡 들어와 앉은 사람은 틀림없는 동혁이다!

"아― 이게 누구세요?"

영신은 놀라움과 반가움에 겨워서 가슴속은 두방망이질을 한다. 동혁은 벌떡 일어나 영신의 두 손을 덥석 쥐고 잡아 흔든다.

"아아니, 어디루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다니요? 이 두 바퀴 자동차를 타구 왔지요."

하고 동혁은 제 다리를 탁 쳐보인다. 영신은 혀끝을 내두르며,

"아이고 어쩌문! 배두 안 타구 돌아오셨으면, 한 삼백 리나 될 텐데……."

하니까,

"아따, 삼천 리는 못 올까요?"

하고 동혁은 그저 손을 놀 줄 모른다.

"그래 언제 떠나셨어요?"

"어저께 새벽에요."

영신은 그만 동혁의 가슴에, 그립고 그립던 그 널따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동혁은 두 팔로 영신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함께 한참 동안이나 말을 못 하였다.

영신은 얼굴을 들었다. 등잔불빛에 번득이는 두 줄기 눈물! 그것은 반가움에 겨워서만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다. 거칠고 어두운 벌판을 홀로 헤매다니다가 어버이의 따뜻한 품속으로 기어든 듯한 느낌과, 살이 찢기고 뼈가 깎이도록 고생한 것을 무언중에 호소하는, 그러한 눈물이었다.

동혁은 눈을 꽉 감았다가 뜨며,

"신색이 매우 못허셨군요."

하고는 손등으로 눈물을 부비고 난 영신의 얼굴을 무한히 가엾은 듯이 들여다본다. 반년 남짓이 만나지 못한 동안에 영신은 그 탐스럽던 두 볼이 여위고, 눈 가장자리에는 가느다란 주름살까지 잡혔다. 더운 때도 아닌데 입살이 까맣게 탄 것을 보니, 그 동안 얼마나 노심초사를 했나―--- 하는 것이 역력히 들여다보여서, 동혁은,

'그래 집 짓기에 얼마나 애를 쓰셨에요?'

하는 말이 입 밖까지 나오려는 것을 도로 끌어들였다. 그런 인사치레는 일부러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등잔불은 고요히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흔드는데,

"우리집 보셨지요? 동혁 씨 집버덤 잘 지었지요?"

한참 만에야 영신은 딴전을 부리듯이 묻는다.

"아까 잠깐 바깥으루만 둘러봤는데, 너무 훌륭허드군요. 한곡리 회관쯤은 게다 대면 행랑채 같어요."

하고는,

"집들은 엄부렁허게 지어 놨지만, 이젠 내용이 그만큼 충실허게 돼야 해요."

하고 동혁은 제가 주인인 듯이 영신의 손목을 끌어다 앉혔다. 회관의 설계도를 보고 또는 편지로 자세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여자 혼자 시작한 일로는 엄청나게 규모가 큰 데 두번 세번 놀랐다.

"좀 누세요. 여간 고단치가 않으실 텐데……."

하고 영신은 목침을 내어놓고 일어서며,

"시장두 허실걸. 원재 어머닌 어딜 가서 여태 안 들어와."

하며 일어나는데,

"아이고, 선생님이 벌써 오신 걸 몰랐네."

하고 마주 들어오는 것은 이 집의 주인이었다. 그는 손님이 혼자 와서 기다리는 것이 보기 딱해서 영신의 뒤를 쫓아 보낼 사람을 얻느라고 회관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이었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에게만은 동혁이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여서, 그 역시 동혁이를 여간 기다리지 않았었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며,

"어쩌문 그렇게 대장감으루 생겼어요? 첨 봐서 그런지, 마주 쳐다보기가 무서웁디다."

하고 혀끝을 내둘러 보이면서 밥상을 차린다. 청석골 밖에는 나가 보지도 못하였지만, 동혁이처럼 건장하고 우람스럽게 생긴 남자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천사와 같이 숭앙하는 채선생의 남편 재목이, 방 안이 뿌듯하게 들어설 때 그의 마음속까지 뿌듯하였다. 영신이도 동혁이를 칭찬하는 말이 듣기 싫지 않아서,

"그렇게 무서워 봬요? 아무튼 보호병정 하나는 튼튼허게 뒀죠?"

하고 느긋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원재 어머니가,

"찬이 없어서 어떡헌대유?"

하고 성화를 하니까,

"뭘, 돌멩이를 깨물어 먹어두 새길걸."

하면서도, 밥상을 들고 들어가서는,

"한곡리처럼 대접을 해드릴 수는 없어요. 우린 쩍의 반찬(배고플 적이란 뜻)밖에 없으니까요. 당최 ?에 들어설 틈두 없구요."

하고는,

"호호호호."

하고 명랑히 웃는다. 동혁은,

"내가 요릿집을 찾어온 줄 아슈?"

하고는 밥상을 들여다보더니,

"외상을 먹구는 언제 갚게요. 밥 한 그릇만 더 갖다가 우리 같이 먹읍시다."

하고 우겨서, 둘이 겸상을 해서 먹으며 피차에 지낸 이야기를 대강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 사람을 그다지두 그리워했었던가.'

하는 듯이, 피차에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기계적으로 숟가락질을 했다. 동혁은 숭늉을 마신 뒤에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더니,

"이 근처에두 주막이 있겠지요?"

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제아무리 장사라도 이틀 동안에 거진 삼백 리 길이나 줄기차게 걸어왔으니 노그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막은 왜 찾으세요? 어느새 망령이 나셨담."

하고 영신은 동혁을 붙잡아 앉히고는 홑이불을 새로 시친 저의 이부자리를 펴주고 나서,

"허구 싶은 얘긴 태산 같지만 오늘은 일찌감치 주무세요. 조옴 고단허실까."

하고 일어선다. 동혁은,

"아닌게아니라 내쫓아도 못 가겠쇠다."

하고 못 이기는 체하고 자리 위에 쓰러졌다. 영신은 안방으로 건너갔다가 자리끼를 들고 들어와서,

"문고리를 꼭 걸구 주무세요, 네."

하고 의미 깊은 웃음을 웃어 보이고는 나간다. 동혁이도 한곡리 바닷가의 오막살이에서 영신이가 오던 날 밤에 제가 한 말이 생각이 나서 빙긋이 웃으며,

"굿 나잇!"

하고 손을 들었다. 조금 있자, 문풍지가 진동하도록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소리가 안방에서 잠을 얼핏 이루지 못한 영신의 귀에까지 들렸다.

동혁은 한곡리서 나팔을 부는 시간에 자리를 걷어차며 벌떡 일어났다. 정신없이 쓰러져 잤건만, 온몸의 피곤이 회복되지를 못해서 사지가 나른한데, 잠이 깨어 누웠자니 비록 깨끗하게 빨아서 시치기는 했으나 영신이가 베던 베게와 덮던 이불에서 아렴풋이 풍기는 여자의 살 냄새는 코를 자극시킬 뿐이 아니었다.

그는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체조를 한바탕 하고, 샘을 찾아가서 냉수로 세수를 하고는 학원으로 올라가서 두어 바퀴나 돌면서 야릇한 흥분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늦은 가을 서리 찬 아침은 정신이 번쩍 나도록 상쾌하다.

'아아, 여기가 청석골이었구나!'

하고 동혁은 산중 벽촌의,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는 자연을 둘러보았다. 띄엄띄엄 선 초가집 앞의 고욤나무는 단풍이 지고, 미루나무는 벌써 낙엽이 져서 가지만 앙상한 것이 매우 소조해 보인다. 다만 흰 벽이 찌들은 예배당만이 한곡리에 없는 귀물이었다.

조반을 같이 먹으면서도 두 사람은 보통 연애를 하는 남녀와 같이 깨가 쏟아지는 듯한 이야기는 없었다. 영신이도 수다스러이 재잘대기를 좋아하는 성미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은 가슴속에 첩첩이 쌓였건만, 입은 나분나분하게 놀려지지를 않았다.

"이따가 내빈 총대(內賓總代)로 한마디 해주세요. 기부금 적은 사람들이 감동이 돼서 척척 내놓게요."

하고 특청을 하였고,

"어디 연설 말씀을 헐 줄 알어야지요."

한 것이 중요한 대화였다.

시간이 될랑 멀었건만 아이들은 거진 다 모여들었다. 그 중에도 계집애들은 명절때처럼 울긋불긋하게 입고 어깨동무들을 하고는 학원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계집애는 추석놀이를 하던 날 밤에 꽂았던 풀이 죽은 리본을 꽂고 자랑스러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닌다.

동혁은 운동장으로 내려가서 나비를 움켜잡듯이 제일 조그만 계집애 하나를 붙들어 번쩍 들고, 겁이 나서 빨개진 뺨에 입을 맞추고는,

"이 색시, 몇 살인구?"

"집은 어디지?"

"그래 채선생님이 좋아?"

하고 말을 시킨다. 다른 아이들은 고만 꼬리가 빠질 듯이 풍지박산을 하는데, 동혁에게 붙들린 계집애는 처음에는 겁이 나서 발발 떨며 울지도 못하다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일굽 살유."

"우리집은 청석굴이래유."

하고 사투리를 써가며 곧잘 말대답을 한다.

동혁은 체격과는 정반대로 아이들을 보면 귀여워서 사지를 못 쓴다.

"이걸 누가 해주든?"

하고 리본도 만져 보고 어깨 위에다 둘씩이나 올려놓고 얼싸둥둥을 하고 춤을 추듯 하며 다니는 것을 보고는,

'어디서 저렇게 생긴 사람이 왔을까?'

하고 도망을 갔던 아이들이 살금살금 모여들어서 동혁을 에워쌌다.

"저어, 이 아저씨가 사는 한곡리란 동네엔, 너희 같은 애들이 창가두 잘허구 유희두 썩 잘허는데 너희들은 아주 바보로구나."

하고는, 저 먼저 굵다란 목소리로 동요도 하고, 그 큰 몸집을 굼뜨게 움직이며 유희하는 흉내도 내어 보인다. 아이들은 그것이 우스워서 깔깔거리며 자지러지게 웃다가,

"애개개, 우리더러 창갈 헐 줄 모른대여."

하고 도리어 놀려먹으려고 든다. 동혁이가,

"그럼 어디 한번들 해봐라."

하고 꾀송꾀송하면, 아이들은 성벽이 나서 추석날 하던 유희와 창가를 되풀이하느라고 시간이 된 줄도 몰랐다.

땡그렁 땡땡, 땡그렁 땡땡.

언덕 위 학원 정문에 달린 종이 울린다. 그 명랑한 종소리는 맑고 푸르게 갠 아침, 한없이 높은 하늘로 퍼지는데, 아이들은 와아 소리를 지르며 앞을 다투며 달려간다.

땡그렁 땡땡, 땡그렁 땡땡.

그 종은 새로 사다가 한 번도 울려 보지 않았던 것이다. 동혁은 머리를 들어 종을 치고 선 영신을 쳐다보았다.

'이 돈은 꼭 저금을 해두었다가 새로 지으려는 학원 마당 앞에 종을 사서 달겠습니다. 아침 저녁 내 손으로 울리는 그 종소리는 나의 가슴뿐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혼곤히 든 잠을 깨워 주고 청석골의 산천초목까지도 울리겠지요.'

라고 띄웠던 편지 사연이 생각났다. 오늘 아침의 그 종소리는 누구보다도 동혁의 가슴 한복판을 울렸다.

학부형들과 집을 짓는 데 수고를 한 사람들이며 부인근로계원들은 물론 교실의 간을 터놓은 새 학원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도록 꽉 찼다. 동혁은 맨 뒷줄에 가서 앉았다가 구경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서 떠들어 대는 것을 보고,

'손님처럼 서서 구경만 헐 게 아니다.'

하고,

"여보슈, 어른들은 뒤루 나섭시다. 나서요."

"쉬― 떠들지들 맙시다."

하고 사람의 틈을 부비고 다니며 장내를 정돈시켜 주었다. 여러 사람은,

"저게 누군가?"

"어디서 온 사람이여?"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비슬비슬 비켜 선다.

그러자 교회의 장로인 대머리 영감이 단 위에 올라섰다. 장로는 서양 사람의 서투른 조선말을 그나마 어색하게 입내내는 듯한 예수교식의 독특한 어조로 개회사를 하고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인도한다. 겉장이 떨어진 성경책을 들고 예배나 보듯이 성경까지 읽는다. 그 동안 동혁은 꿈벅꿈벅하며 교단 맞은편 벽에 붉은 잉크로 영신이가 써붙인 몇 조각의 슬로건(표어)을 쳐다보고 있었다.

'갱생의 광명은 농촌으로부터!'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무지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

'우리를 살릴 사람은, 결국 우리뿐이다.'

이러한 강령 비슷한 것이 조금도 신기한 것은 아니건만 그 장로와 비교해 볼 때, 동혁은,

'이것도 조선의 현실을 그려 논 그림의 한 폭인가.'

하고 속으로 쓸쓸히 웃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에 양복쟁이들이 와서 앞줄에 가 버티고 주욱 늘어앉지 않은 것만은 유쾌하다면 유쾌하였다.

귀에 익은 손풍금 소리가 들리며, '삼천리 반도 금수 강산'을 부르는 찬미 소리가 일어났다. 그제야 장래는 활기가 돌기 시작하는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목청을 높여,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하고 소리를 지를 때는,

'그런 찬송가는 꽤 좋군.'

하고 동혁이도 따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찬송가가 끝난 후 장로는 일어서서 매우 경건한 어조로, 그러나 여전히 서양 선교사의 입내를 내듯이,

"먼저 여러분께셔, 이처럼 마안히 와주신 것 감샤합네다. 오늘날 우리가 이와 같은 큰 집 짓고오, 낙성식을 서엉대히 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은, 다아만 우리 청석동의 무지한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귀한 따님 한 분을 보내 주신 은택인 줄로 압내다."

하고 연단 아래서 머리를 숙이고 선 영신을 가리키며,

"지금 채영신 선생이, 그 동안에 고생 마안히 하신 말씀 하시겠습네다."

하고 뒤로 물러가 앉는다. 아이들이 딱딱딱 치기 시작한 박수 소리가 소나기처럼 장내를 지나갔다. 동혁이도 그 넓적한 손바닥이 아프도록 쳤다.

영신은 발갛게 상기가 되어서 연단 위로 올라갔다. 먼 광으로 보니, 영신의 얼굴이 파리하고 몸이 수척한 것이 더 분명해서, 동혁은 바로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이 새 집이 꽉차도록 많이 와주셔서 여간 기쁘고 고맙지가 않습니다."

하고 말을 꺼내는 목소리만은 여전히 짜랑짜랑하다. 영신은 말끝을 얼핏 대지를 못하고 아이들과 학부형을 둘러보더니,

"여러분은 이 집을 짓는 것을 처음버텀 여러분의 눈으로 보셨으니까,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들었다는 말씀은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또는 이만한 학원 하나를 짓느라고 고생한 것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생색이나 내는 것 같어서 얘기하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결국은 여러분의 자녀를 길를 집이니까 어떠한 예산을 세워 가지고 얼마나 들여서 지었는지, 그것은 아셔야 할 것입니다."

하고 들고 올라온 책보를 끄르더니 계산서를 꺼내 들고 공사비가 든 것을 조목조목 따져서 들려 주고 나서,

"들어 보십시요, 여러분! 우리가 덤벼들어서 품삯 한 푼도 덜 들이려고 죽기 작정하고 일을 했건만 칠백여 원이나 들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얼마를 가지고 착수를 한 줄 압니까? 단돈 백여 원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 돈이나마 누구의 돈인 줄 아십니까? 이 치마를 둘른 여자들이 죽지 못해 살어가는 처지에서, 삼사 년을 두고 푼푼이 모은 돈을 아낌없이 내놓은 겝니다! 여러분, 그 나머지 육백 원이나 되는 빚은, 조 어린애들이 졌습니다. 각처에서 꾸어 대고 외상일을 시킨 채영신이가 물론 책임을 집니다마는, 사실은 조 어린애들이 배우기 위해서, 길거리로 헤매다닐 수가 없어서, 저희들로서는 태산 같은 빚을 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당신네의 귀여운 자녀들이 이 집에서도 쫓겨나가는 걸 보시렵니까? 간신히 뜨기 시작한 조 영채가 도는 눈들을 다시 뽀얗게 멀려 노시렵니까!"

하고 주먹을 쥐고 목청껏 부르짖자 그는 몹시 흥분되었다. 발을 탁 구르며 무슨 말을 하려고,

"여, 여러분!"

하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별안간 무엇에 꽉 질린 것처럼 바른편 옆구리를 움켜쥔다. 금방 얼굴이 해쓱해지더니 앞에 놓인 교탁을 짚을 사이도 없이 그 자리에가 고꾸라지듯이 엎으러졌다.

*

"앗!"

"저게 웬일야?"

여러 사람은 동시에 부르짖었다. 그 소리와 함께 동혁의 눈은 휘둥그래지더니 두 팔로 헤엄을 치듯이 사람의 물결을 헤치며,

"애그머니, 우리 선생님!"

"절 어쩌나? 절 어째!"

하고 새되게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사뭇 파밭 밟듯 하고 연단으로 뛰어올라갔다. 같은 연단 위에 있던 장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동혁은,

"비키세요."

하고 밀치며 대들어서 침착히 영신을 안아 일으켰다. 입술까지 하얗게 바래 가지고 까무러친 것을 보고는,

'뇌빈혈이로군!'

하고 사지를 늘어뜨린 영신의 다리와 머리를 번쩍 들고 사무실로 쓰게 된 옆방으로 들어갔다. 원재 어머니와 청년들이며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 들어와서는 말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것을,

"너희들은 나가 있거라."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내몰고는, 저의 노동복 저고리를 벗어서 마루에 깔고 영신을 그 위에 고이 눕혔다. 그리고는,

"냉수를……."

하고 원재 어머니에게 명령하였다. 원재 어머니가 당황히 나가는데, 지카다비를 신은 사람이 술이 취해서 얼굴이 삶은 게빛이 되어 가지고 냉수 사발을 들고 찔끔찔끔 엎지르며 마주 들어온다.

"도 도무지 대체 우리 채선생이, 아아니 이게 웬일이란 말씀요?"

하고 모주 냄새를 풍긴다. 그는 영신의 감화로 오늘날까지 품삯도 못 받고 일을 한 목수였다. 아무튼 낙성식까지 하게 된 것이 덩달아 좋아서, 아침부터 주막에 가서 주렸던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는 엉덩춤을 추며,

"에헤 에헴, 내 손으루 지은 집 낙성식을 허는 데 한몫 끼어야지, 아무렴 그렇구말구, 어느 놈이 날 빼논단 말이냐."

하고 혼자말을 주고받으며 한창 뽐내고 들어오다가 영신이가 넘어지는 광경을 보고 허겁지겁 뛰어나가서 이력차게 냉수를 떠온 것이다.

동혁은 냉수를 영신의 얼굴에 두어 번 뿜어 주고 원재의 웃옷을 벗겨서 방석처럼 접어 어깨 밑에 괴어 머리를 낮추어 놓고, 두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천천히 인공호흡을 시킨다. 그리고 원재 어머니더러,

"아랫두리를 가만가만 주물러 주세요."

하였다.

영신은 한 오 분 동안이나 숨을 괴롭게 몰아쉬더니,

"휘유!"

하고 악몽에서나 깬 듯이 정기 없이 눈을 뜨고,

'여기가 어딘가?'

하는 듯이 실내를 둘러본다.

"정신이 좀 나세요?"

동혁이가 나직이 묻는 말에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네……"

하고 안심과 감사의 뜻을, 잡힌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표시한다.

"아이들은 다 어디루 갔어요?"

"밖에들 있어요, 마룻바닥이 차서 어떡허나?"

원재 어머니도 겨우 숨을 돌린 듯 동혁의 얼굴을 쳐다본다.

"좀더 진정을 해야 해요."

하고 동혁은 강당으로 나가서, 돌아앉아 중얼중얼 기도를 올리고 있는 장로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절대루 안정을 시켜야 허겠는데, 고만 다들 헤지라구 해주시지요."

하고 일렀다. 아이들은 문 밖에서 홀짝홀짝 울면서 가지를 않는다. 금분이는,

"우리 선생님! 아이고 우리 선생님!"

하고 선생이 죽기나 한 듯이 사뭇 통곡을 하다가, 동혁의 소매에 매달려 들어오더니 영신의 앞으로 달려들며 흐느껴 운다. 영신은,

"금분아, 너 왜 우니? 응 왜 울어? 선생님은 아무렇지두 않단다."

하고 달래 주고는,

'나가 봐야 헐 텐데…….'

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다가,

"아이구 배야!"

하며 아까 쓰러질 때처럼 오른편 아랫배를 움켜쥐며 지독한 고통을 참느라고 입살을 깨문다. 이제까지 태연한 기색을 보이던 동혁의 얼굴에도 당황한 빛이 떠돈다. 너무나 과로한 끝에 흥분이 되어서 일어난 단순한 뇌빈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튼 집으루 내려갑시다."

하고 동혁은 영신을 들쳐업고 뒷문으로 빠져서 원재 어머니의 집으로 내려갔다.

영신이가 거처하는 방은 사내아이 계집아이들로 두겹 세겹 에워싸였다. 부인친목계의 계원들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가지고 방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것을 동혁은,

"안됐지만 나가들 주세요. 조용히 누워 있어야 헙니다."

하고 원재 어머니만 남겨 두고 다 내보낸 뒤에 문고리를 안으로 걸어 버렸다. 땀이 이마에 숭숭 내배었건만 그는 씻으려고도 아니 하고 영신의 앞으로 가까이 앉는다. 영신은 고통이 조금 진정된 듯하나 기함이나 한 것처럼 누워 있다.

동혁은 한참 동안 눈을 꽉 감고 있다가,

"똑바루 누세요."

하고 영신을 반듯이 눕혔다.

그는 의사처럼 이마를 짚어 신열이 있고 없는 것을 보고 맥박을 세어 본 뒤에,

"여기에요? 아픈 데가 여기에요?"

하면서 영신의 배를 명치로부터 배꼽까지 여기저기 꾹꾹 눌러 본다. 영신은 말대답을 할 기신도 없는 듯 아프지 않은 데는 조금씩 고개를 흔들어 보일 뿐.

"그럼 여기지요?" 동혁의 손가락이 영신이가 두 번이나 움켜쥐던 오른편 배꼽 아래를 누르자, 영신은,

"아야야!"

하고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펄쩍 솟치다가 불에나 데인 것처럼 온몸을 오그라뜨린다. 동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서투른 의사의 진찰이건만, 저도 학창시대에 풋볼에 열중하다가 된통으로 앓아 본 경험이 있는 맹장염인 것이 틀림없었다.

"맹장염 같은걸요."

"네? 맹장염!"

하고 영신은 간신히 동혁의 말을 흉내내듯 한다. 그러다가 금시 아랫배가 뻗치고 땡기고 하다가는 사뭇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아서 자반 뒤집기를 한다. 그는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있다가,

'아이고 그럼 어떡해요?'

하는 듯이 동혁의 얼굴을 쳐다본다.

"안심허세요, 아는 병이니까요. 나두 한번 혼난 적이 있는데……."

하고 위로를 시키면서도 동혁의 마음속은 먹장구름이 뒤덮은 듯이 캄캄해졌다.

'급성이 돼서 까땍허면 큰일나겠는데, 이 시굴 구석에서 이를 어떡헌담.'

하고 뒤통수를 북북 긁는데, 그 머릿속에 번개같이 떠오르는 것은 '급성 맹장염은 이십사 시간 이내에 수술을 해야 한다. 때가 늦으면 생명을 빼앗긴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생리 시간에도 배웠고 저를 치료해 주던 의사에게도 들은 말이다. 그러나 서울 큰 병원은 생각도 할 수 없고, 도청 소재지에 있는 자혜의원 같은 데로 간대도, 꼼짝도 못 하는 사람을 어떻게 추슬러 가지고 갈는지 난감하였다. 그는 곰곰 생각을 해보다가 대야의 냉수를 떠오래서 수건을 담가 이마에 냉습포를 하게 한 후,

"영신 씨!"

하고 가만히 손을 잡았다.

"네……?"

영신은 눈을 감은 채 간신히 입을 연다.

"급성이면 한 시간이래두 빨리 수술을 해야 허는데요, 나 허자는 대루 허시지요?"

"어떻게요?"

"지금이래두 떠나서, 자혜의원에 입원을 허두룩 헙시다."

"……"

영신은 한참 만에 머리를 흔든다.

"왜요?"

"난 싫여요."

이번에는 머리를 더 내두른다.

"수술허는 건 겁낼 게 없어요. 오래 되지 않었으면 퍽 간단허게 된다는데요."

"……"

영신은 다시 아픈 것을 이기지 못해서 동혁의 손을 사뭇 쥐어뜯으면서도, 병원으로 가는 데는 승낙을 하지 않는다. 배를 째는 것이 겁이 나서 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없는 중에도 학원을 지은 빚도 많은데, 수술비와 입원 비용이 적지 않이 들 것을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여기서 낫게 헐 수 없을까요?"

하고 애원하는 것을, 동혁은,

"안 돼요, 한약으룬 안 돼요!"

하고 벌떡 일어서며 밖으로 나가서 자동차 시간을 물었다. 마침 오후 두 시에 S읍으로 가는 자동차가 있었다.

동혁은 한사코 싫다고 고집을 세우는 영신을,

"사람이 살구 볼 일이지, 내가 당신이 죽는 걸 보구 가만히 있을 듯싶어요?"

하고 강제로 들쳐업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십 리 길을 내처 걸었다. 학부형들과 청년들이며 아이들은 울면서 자동차 정류장까지 따라 나왔다.

친부모만큼이나 정이 들고 은혜를 입은 선생이 불시에 세상을 떠나서 영구차나 전송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동차 차창에 가 매달려 우는 것을,

"어서들 들어가거라, 내 열 밤만 자구 오마, 응."

하고 영신은 동혁에게 안겨서 손을 내젓는데 차는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떠난다. 원재 어머니와 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차에 오르며 간호를 하러 가겠다는 것을 다 물리쳤건만 중간에서 원재가 뛰어올랐다.

차는 두어 간 거리나 굴러 나가는데,

"여보 여보― 잠깐만 기다류."

하고 헐레벌떡거리며 쫓아오는 것은, 교회의 회계를 보는 장로의 아들이었다. 동혁은 자동차를 정거시켰다. 회계는 숨이 턱에 닿아서 땀이 나도록 쥐고 온 것을 영신에게 내주면서,

"학부형들이 급히 추렴을 낸 건데요, 위선 급헌대루 쓰시라구요."

하고는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뺑소니를 친다. 영신의 손에 쥐어진 것은 십 원, 일 원짜리가 뒤섞인 지전이었다.

"얼마예요?"

"모르겠에요. 온 염치없이……."

영신은 그 돈을 동혁에게 준다. 동혁은 돈을 세어 보고,

"이것만 가지면 급헌대루 쓰겠군."

하고 집어넣는다. 그는 하도 일이 급하니까 자동차 삯이나 병원에서 들 것은,

'설마 어떻게든지 되겠지.'

하고 닥치는 대로 떼거리를 쓸 작정으로 영신을 업고 나섰던 것이다. 그는 그때에 처음으로,

'왜 내가 돈이 없었던가.'

하고 돈 있는 사람이 부러워서 탄식을 하였었다. 영신이가 쓰러지는 것을 목도한 학부형들은 눈들이 휘둥그래서,

"허어, 이거 큰일났군!"

"아무리 억지가 세지만 잔약헌 여자가 석 달 동안이나 염체에 헐 일을 했나베."

"그러구 보니 우리들은 남의 집 색시 하나를 잡은 셈이 되지 않겠나."

"두말 말구 우리 기부금 적은 거나 빚을 얻어서래두 이번엔 다 내놉시다."

하고 이구석 저구석 모여서 공론을 하고 제일 머릿수가 큰 한낭청 집으로 몰려가서 그제야 그 말썽 많던 돈을 받아 낸 것이다.

……자동차 속에서도 차체가 자갈을 깐 길바닥에서 들까부는 대로, 영신은 창자가 울려서 아픔을 참기 어려웠다.

"아이고! 갈구리쇠루 막 찍어 댕기는 것 같어요."

하고 동혁의 팔과 손등을 막 물어뜯기를 여러 차례나 하였다.

동혁은 아프단 말도 못 하고,

"몇 시간만 눈 딱 감구 참읍시다."

하면서도 가엾고 애처로운 생각에,

'내가 대신 앓었으면.'

하다가,

'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혼자 이런 일을 당했드면 어쩔 뻔했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의료기관 하나도 없는 곳에서 고집을 세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을 것을 상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우리가 이생에 연분이 단단히 닿나 보다. 오늘 이런 일이 있을 걸 미리 알구 누가 불러 댄 것 같으니…….'

하고 미신 비젓한 운명론자가 되어 보기도 하였다.

자동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또 기차를 기다려 타고 날이 어둑어둑할 때에야 S읍에 도착하였다. 정류장에서 환자는 인력거를 태우고 삼 마장이나 되는 언덕길을, 원재와 둘이서 뒤를 밀어 주며 병원을 찾아 올라갔다. 자혜의원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문이 굳게 닫혀서 다시 개인병원으로 찾아갔다. 두 사람이 점심 저녁을 굶어서 몹시 시장할 것을 생각하고 영신은,

"어디서든지 요기를 좀 허세요, 네?"

하고 몇 번이나 돌려다보며 간청을 하는 것을,

"걱정 마슈! 하루쯤 굶어서 죽을라구요."

하면서도 동혁은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음식점 앞에서는 외면을 하고 숨을 들이쉬지 않고 걸었다.

속옷에 땀이 흠씬 배도록 인력거를 몰아 왔건만 병원문은 걸렸다. 초인종을 한참이나 누르니까 그제야 간호부가 나와서 분을 하얗게 바른 얼굴을 내밀더니,

"선생님 안 계세요. 연회에 가셨어요."

하고 슬리퍼를 짝짝 끌고 들어가 버린다.

"여보, 시각을 다투는 환자가 있는데 연회가 다 뭐요?"

동혁의 호령을 듣고서야 간호부는 요릿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의사는 한 삼십 분 뒤에야 인력거로 달려왔다. 진찰실에 전등은 환하게 켜졌다. 나이 사십 남짓한 의사는 술냄새를 제하느라고 가오루를 깨물며 끈끈이로 붙여 놓은 것처럼 어여쁜 수염을 배비작거리고 앉아서 동혁에게 대강 경과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짐작하겠소이다."

하고 영신을 눕히고 자세히 진찰을 해본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군요. 노형 말씀대루 급성 맹장염인데, 밤에는 설비 관계루 헐 수 없으니, 내일 아침에 수술을 헙시다. 위선 진통제나 한 대 놔드릴게 절대루 안위를 시키시오."

하고 영신의 팔을 걷고 주사를 놓고는,

"요행으루 맹장염인 줄 알어서 일찌감치 서둘렀으니까 수술만 허면 고만이지만, 이분은 몸 전체의 각 기관이 여간 쇠약허지가 않은걸요. 첫대 영양이 대단히 부족헌 것 같은데, 게다가 너무 무리허게 노동을 헌 게 맹장염까지 일으킨 원인이 됐나 보외다."

하고 일어서 손을 씻는다. 동혁은 비로소 안심을 하고,

"아무튼 선생께서 생명 하나를 맡어 줍시오."

하니까,

"네 염려 마시오."

하고 간호부더러 인력거를 부르라고 명령한다. 다시 연회로 가려는 눈치다.

동혁과 원재는 주사 기운에 말도 못 하는 영신의 어깨를 부축해서 병실로 데려다가 눕혔다.

자궁을 수술하였다는 환자가 옆방에서 신음하는 소리에 동혁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원재와 둘이서 영신의 침대 밑에 담요 한 자락을 깔고 누웠는데, 삼백 리나 걸은 노독도 채 풀리기 전에 종일 굶고 꺼둘려 와서,

'눈을 좀 붙였다가 일뽢 일어나야 헐 텐데…….'

하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맘이 바짝 쓰이는데다가 창자가 달라붙도록 속이 비어서 잠은 올 듯하면서도 아니 와 주었다. 원재도 춥고 시장한 듯 사추리에다가 두 손을 찌르고 새우처럼 꼬부리고 누워서 잠을 못 자는 것이 여간 가엾지가 않다.

영신이가 잠꼬대하듯 무어라고 혼자말을 하는 소리에 동혁은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세요? 나 여?에요."

하고 희미한 전등불빛에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영신은 주사 기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 눈을 반쯤 뜨고,

"뭘 좀 잡수세요, 원재두……."

하면서 어서 다녀오라고 손짓을 한다.

"난 괜찮어요. 우리 걱정은 허지 마세요."

하면서도 동혁은 원재 때문에 더 고집을 세울 수가 없어서,

"여보, 일어나우. 일어나."

하고 원재의 어깨를 흔들었다.

길거리 목롯집에서 술국에 밥 한 덩이씩을 꺼먹고 들어오는 걸 보고 영신은 가냘픈 웃음을 띠며,

"근처에 음식집이 있어요?"

하고 반겨 준다. 원재가,

"선생님, 시장허셔서 어떡허나요?"

하고 혼자 먹고 들어온 것을 미안쩍게 여기니까,

"시장헌 게 뭐요. 일부러 굶기두 허는데."

하고 동혁은 침대에 반쯤 걸터앉아서 영신의 손을 잡았다.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며,

"안심허구 잠을 청허시지요. 나두 눈을 붙여 볼 테니…… 가을 밤이라 꽤 지루헌데요."

하고 위로해 준다.

영신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창 밖의 귀뚜라미 소리를 꿈속처럼 듣고 있다가, 처량스러이 동혁을 쳐다보며,

"동혁 씨, 난 지금 죽어두 행복해요!"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끌어다린다.

"천만에, 죽다니요. 우리 둘이 이렇게 떠나지 않구 오래오래 살면, 더 행복허지 않겠에요!"

동혁은 사랑하는 사람의 여윈 빰과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영신은 눈을 내리감고 뜨거운 키스를 받았다.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린 듯 창 틈에서 재깍거리는 버러지 소리에 가을 밤은 쓸쓸히 깊어 갔다.

수술대 위에 올라서도 영신은 동혁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얀 소독복을 입고 매우 긴장한 빛을 띄우면서 수술할 준비를 하고 난 의사와 간호부가 두 번째나,

"고만 밖으로 나가 주시지요."

하고 재촉을 하여도, 영신은,

"나가지 마세요. 여기 꼭 서 있어 주세요!"

하고 온몸의 힘을 다해서 동혁의 손을 끌어다린다.

"네, 지키구 섰으께 걱정 마세요!"

하고 동혁은 환자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다. 의사가 가재를 덮은 코 밑에 마취액을 방울방울 떨어뜨려 들이마시게 하면서,

"하나…… 둘…… 셋……."

하고 부르는 대로 영신은 따라 부른다. 오 분도 못 되어 영신은 핀셋으로 살을 찔러도 모를 만치 전신의 감각을 잃고 손에 힘이 풀려서 동혁의 손을 놓았다.

동혁은 수술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응접실로 대합실로 복도로 왔다갔다하며 생명이 좌우되는 일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몹시도 초조하였다. 예수교 신자인 원재는 대합실 문 밖에 가 꿇어 엎드려 정성껏 기도를 올리고 있다. 동혁은 안절부절을 못 하고 왔다갔다하면서도, 원재와 같이 일종의 엄숙한 기분에 머리가 들리지 않았다.

배를 가르고 맹장에 달린 버러지 같은 것을 잘라 버리고 다시 꼬매면 고만인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건만, 그것이 거진 두 시간이나 걸린다. 몇 번이나 수술실 도어에 귀를 대고 들어 보아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없다.

동혁은 점점 불안해졌다.

"왜 여태 아무 소리두 없을까요?"

원재는 겁이 나서 우둘우둘 떨기까지 한다.

"글쎄……."

하면서도 동혁은 속이 바작바작 타서,

'좀 들어 볼까.'

하고 수술실 도어의 손잡이를 비틀어 열고 들어서는데, 그와 동시에 소독약 냄새가 확 끼치며 의사가 손을 닦던 수건을 던지고 마주 나온다. 수술대 위에 허어연 홑이불을 씌워 놓은 것이 언뜻 눈에 띄자 동혁은 가슴이 선뜩 내려앉아서,

"어떻게 됐습니까?"

하고 당황히 물었다. 의사는 수술복 소매로 이마에 흘린 땀을 씻으며,

"혼났쇠다! 맹장이 썩두룩 내버려뒀으니, 까땍허면……."

하고 담배를 피워 물고 쭈욱 들이빨다가 한숨과 함께 후우 하고 연기를 토해 낸다.

"아, 그래서요?"

동혁이와 원재의 눈은 의사의 입에 가 매달렸다.

"그 수술만 같으면 문제가 없지만, 대장허구 소장이 마주 꼬여서 간신히 제 위치로 풀어 놨는데……."

하더니,

"아아니, 여자가 무슨 일을 창자가 비꾀두룩 허게 내버려뒀드란 말씀요?"

하고 동혁을 나무라듯 한다.

"……"

동혁은 그 말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간호부가 눈앞을 지나 제약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온 것처럼 얼굴에 땀이 주르르 흘렀다.

"너무나 수고를 허셨습니다. 이젠 염려 없겠지요?"

"나 아는 대루 힘껏은 했소이다마는, 퇴원헌 뒤에두 여간 조심을 허지 않으면 재발될 염려가 있으니까, 거기까지는 보증헐 수가 없는걸요."

하고 시원하지 않은 대답을 하는 데 동혁은 또다시 우울해졌다.

병실로 떠메어 들어온 뒤에야 영신은 차츰차츰 의식을 회복하였다.

"어…… 어머니! 어머니!"

하고 헛소리하듯 어머니를 찾다가,

"도, 도…… 동혁 씨!"

하고 머리맡을 더듬는다. 동혁은,

"내 여?에요. 이젠 아주 안심허세요."

하고 가만히 그의 두 손을 잡았다.

"물을 좀. 어서 물을 좀……."

영신은 조갈이 나서 식도가 타는 듯이 목을 쥐어뜯으며 물을 찾는다. 원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안 돼, 지금 물을 마셨다간 큰일나게."

하고 붙들었다. 그래도 환자는,

"한 모금만. 네, 한 방울만……."

하고 어린애처럼 안타깝게 조른다. 물이 있고도 못 주는 동혁의 마음은 환자만치나 안타까웠다.

다행히 수술한 경과는 좋았다. 식욕도 나날이 늘어서 인제는 죽을 먹고도 잘 삭이고 붙들어 주면 일어나 앉아서 이야기를 해도 피곤을 느끼지 않을 만치나 원기가 회복되었다.

그 동안 청석골서 원재 어머니가 와서 아들과 교대를 하고, 교인과 친목계의 회원들이 그 먼길에 반은 타고 반은 걸어서 문병을 왔었다.

"아이고 여기꺼정 어떻게들 오셨어요?"

영신은 고마움에 겨워 그들의 손을 잡고 말도 못 하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그 중에도 원재 어머니가,

"인전 아무 염려두 마시구 어서 퇴원이나 허세요. 일전에 학부형들이 모두 새 집에 모여서 기부금 적은 걸 죄다 내기루 했어요. 집 짓느라구 빚진 건 한 푼두 안 남기구 갚게 됐으니깐, 학원 때문엔 조끔두 걱정을 마세요."

하는 보고를 들을 때, 영신은 어찌나 기쁜지 금세 날개가 돋쳐서 훨훨 날아다닐 듯싶었다. 전장에서 부상을 당한 병정이 승전고 울리는소리를 듣는 것만치나 감격하였다.

그러나 영신은 수술한 뒤로 마음이 여려져서 애상적인 감정에 지배를 받는 것은 물론 한 가지 까다로운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동혁이가 제 곁에 있지 않으면 긴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심도 있거니와 여자로는 보기 드물게 중심이 튼튼하던 사람이건만, 난산을 하고 난 산모와 같이 곁에 사람이 없으면 허수해서 못 견디어 한다. 어느 때는 도깨비나 보는 것처럼 손을 내두르며 헛소리를 더럭더럭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문병을 온 부인들이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불러서 들려 주고 하건만 귀에 들어가지 않는 듯,

"동혁 씨 어디 갔어? 동혁 씨!"

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찾는다. 그러면 동혁은 길거리로 산보를 나갔다가도 붙들려 들어와서 그에게 손을 잡혔다. 그래야만 환자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잠이 든다.

"저렇게 잠시잠깐두 떨어지질 못허면섬 입때까진 어떻게 따루따루 지냈다우?"

하는 것을 문병 온 부인네들의 뒷공론이었다. 동혁은 그런 말을 귓결에 듣고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이거 한곡리 일 때문에 큰일났군. 강기천이가 그 동안 또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데, 온 편지 답장들이나 해주어야지.'

하고 몹시 궁금해하였다. 동화와 건배에게 거진 격일해서 편지를 했지만, 무슨 연고가 있는지 답장이 오지를 않아서 몸이 달았다. 그러나 동혁이 역시 어떤 때는 어린애처럼 응석을 더럭더럭 부리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마를 때가 없는 영신을 차마 떼치고 떠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호인처럼 무뚝뚝한 사람이기로 죽을 고비를 천행으로 넘겨서 아직도 제 몸을 맘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난 볼일이 급해서 가야겠소."

하고 휘어잡는 소매를 뿌리치며 일어설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동혁은 그 사정을 건배에게 편지로 알리고, 밤이 들면 꼭 환자의 침상머리에 앉아서 신문이나 잡지를 얻어다가 읽어 주고, 어느 때는 흑인종으로 무지한 동족을 위해서 갖은 고생과 백인의 학대를 받으면서 큰 사업을 성취한 푸커 티 워싱톤 같은 사람의 분투한 역사를 이야기해서 들려 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농촌운동에 관한 의견도 교환하고,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 영신이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야 동혁은 벽 하나를 격한 대합실로 가서 의자를 모아 놓고 그 위에 담요 한 자락을 덮고는, 다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상에 잠겼다가 잠이 드는 것이었다.

"인전 갑갑해 못 견디시겠죠? 그렇지만 퇴원헐 때꺼정은 꼭 붙들구 안 놀걸요."

하고 영신은 하루 한 번씩은 동혁을 놀리듯 한다. 아닌게아니라 동혁은 펄펄 뛰어다니던 맹수가 별안간 철창 속에 갇힌 것 같아서 여간 갑갑하지가 않았다. 위험한 시기를 지나서 마음이 턱 놓이니까, 그 동안 바짝 옥죄었던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가닥가닥 풀리는 듯 아무 데나 턱턱 눕고만 싶었다. 사지가 뒤틀리도록 심심해하는 눈치를 챈 영신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나허구 이 주일씩이나 같이 있어 보시겠어요? 이것두 하나님의 덕택이지요."

하고는 염치불구하고 하루라도 더 붙들려만 든다.

"그 하나님 참 감사허군요. 죽두룩 일을 헌 상급으루 그 몹쓸 병이 나게 허구, 그것두 부족해서 배꺼정 짼 게 다 하나님의 덕택이지요?"

동혁이도 영신을 놀리며 청석골 교회의 장로처럼 합장을 하고 일부러 목소리를 떨어,

"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감사감사하나이다."

하고는 껄껄껄 웃어제친다.

"그렇게 하나님을 놀리면 천벌이 내리는 법이야요. 아무튼 나 같은 사람을 영영 버리지 않으시구 이만침이나 낫게 해주신 게 다 하나님의 뜻이지 뭐야요."

하고 영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곁눈으로 살짝 흘겨본다. 영신이가 평소에 동혁에게 대한 다만 한 가지 불평은 저와 같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부모형제간에도 종교를 믿는 것은 절대 자유요, 신앙은 강제로 할 수 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이 세상을 톡톡 털어도 단지 한 사람인 저의 애인이, 저와 똑같은 믿음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는지 몰랐다. 믿지를 않으면 국으로 가만히나 있지를 않고, 제가 밥상 앞에서 눈을 내리감고 기도를 올릴 때면 곁에서 일부러 헛기침을 칵칵 하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찌개 냄비를 코밑에다 들여대기가 일쑤다. 그럴 때면,

"저리 가세요! 자기나 안 믿으면 안 믿었지 왜 그렇게 비방을 해요?"

하고 여무지게 쏘아붙이기를 한두 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끝에는 처음으로 악박골 샘물터에서 밤을 새울 때에 뿌리만 따다가 둔 종교 문제를 끄집어내어 가지고 서로 얼굴에 핏대를 올려 가며 토론을 하였다.

동혁은 인류와 종교의 역사적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요, 편협한 유물론자처럼 덮어놓고 종교를 아편과 같이 생각하지는 않으면서도, 근래에 예수교회가 부패한 것과, 교역자나 교인들이 더 떨어질 나위 없이 타락한 그 실례를 들어, 맹렬히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권세에 아첨을 허다 못해 무릎을 꿇구, 물질과 타협을 허다 못해 돈 있는 놈의 주구(走狗)가 되는, 그런 놈들 앞에 내 머리를 숙이란 말씀요? 그 따위 교회엘 댕기다간 정말 지옥엘 가게요!"

하고 마룻바닥에다 헛침을 탁 뱉었다. 그러나 영신은,

"교회 속은 누구버덤두 직접 관계를 해온 내가 속속들이 잘 알어요. 아무튼 루터 같은 분이 나와서 큰 혁명을 일으키기 전엔 조선의 예수교회두 이대루 가다간 멸망을 당허구 말 게야요!"

하고 저 역시 분개하기를 마지않다가,

"나는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그 정열과 희생적인 봉사의 정신을 숭앙허구 본받으려는 것뿐이니까요. 그 점만은 충분히 이해해 주셔야 해요."

하고 변명을 한 후 새삼스러이,

"도대체 동혁 씨는 아무것두 믿으시는 게 없어요?"

하고 정중하게 질문도 하였다.

"천만에, 믿는 게 없이야 사람이 살 수 있나요?"

하고 동혁은 두 눈을 꿈범꿈범하고 잠시 침묵하더니,

"똑똑히 들어 두세요. '익숙한 선장은 폭풍우를 만나면, 억지로 폭력에 저항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미리 절망을 해서 배가 풍파에 뒤집히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항상 굳은 자신과 성산(成算)을 가지고 최후의 순간까지 온갖 지혜와 갖은 능력을 다해서 살어 나아갈 길을 열려고 노력한다'라고 한 맥도널드란 사람의 말이, 조선의 청년인 나로서의 인생철학이구요, 이것도 학창시대에 어느 책에서 본 것이지만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그 전력(全力)을 단 한 가지 목적에 기울여 쏟을 것 같으면 반드시 성취할 수가 있다'라고 한 칼라일이란 사람의 한마디가, 일테면 내 신앙이에요."

하고 실내를 거닐다가 한곡리 편으로 뚫린 유리창 밖으로 눈을 달리더니, 독백하듯이,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시퍼런 벌판을 바라보는 게 내 눈을 시원허게 해주는 그림이구요, 저녁마다 야학당에서 아이들이 글을 배우는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에요. 난 그 밖에는 철학이구 종교구 예술이구 다 몰라요. 더 깊이 알려구 들지두 않어요."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었다.

가장 불행한 일로 두 사람은 고요히 반성할 기회를 얻었다. 이일 저일에 책임을 무거이 지고, 그야말로 연자매를 돌리는 당나귀처럼 좌우를 돌려다볼 사이가 없이 눈앞에 닥치는 일만 하여 왔다. 사실 그들은 자기가 계획한 일을 맹렬히 실행은 하여 왔으나, 오늘날까지 실천해 온 것을 제삼자의 입장으로 냉정히 비판해 볼 겨를을 갖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는 그날그날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사는 품팔이꾼처럼 먼 장래를 바라다보고, 그 나아갈 길을 더듬어 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내 온 것도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동혁은 환자가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틈틈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 영신은,

"난 좀더 공부를 해야겠어요. 원체 무엇 한 가지 전문으로 배운 것두 없지만요, 그나마 인전 밑천이 달랑달랑허는 것 같어요."

하고 어떻게든지 공부를 더 할 의향을 보인다.

"그렇지요. 좀더가 아니라 이제버텀 공부를 하기 시작해야겠에요. 농촌운동이란 결코 우리가 처음에 생각허던 것처럼 단순헌 게 아닌 줄을 깨달었에요. 그렇지만 피차에 거진 삼사 년 동안이나 농촌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실지로 일을 했으니까, 그 체험헌 걸 토대삼어서 제일보버텀 다시 내디뎌야 되겠는데, 그게 지금 형편으로는 용단하기가 어려워요. 아무튼 영신 씨는 이번에 퇴원허시면, 적어도 몇 해 동안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헐 수 없으니까요. 병이 재발이 되는 날이면 정말 큰일이 날 테니, 여간 주의를 허지 않으면 안 돼요. 청석골은 어느 정도까지 일에 터가 잡혔구, 영신 씨가 당분간 떠나 있드란대두 원재 같은 착실헌 청년들을 길러 놔서 학원 일은 해나갈 만허니까, 휴양허시는 셈 치구 떠나 보시는 게 좋겠지요."

동혁은 이번 기회에 영신이가 해외로라도 나가 보기를 권고한다. 저와 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은 무한히 섭섭하지만, 만일 영신이를 다시 청석골로 보냈다가는 그의 성격이 몸만 자유로 쓰게 되면 잠시도 쉬지 않고 또 그러한 과도한 노동까지라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두 연합회에서 명색 사업보조비라구 보내 주는 게 있지요?"

"한 삼십 원씩 오더니 그나마 벌써 두 달째나 꿩 구워 먹은 자리야요. 거기서두 경비가 부족해서 쩔쩔들 매니까요."

"집으루 가서, 어머니 슬하에서 얼마 동안 쉬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싫여요. 나는 그저 어디서든지 몸 성히 있다는 소식이나 전허는 게 효돈데, 이 꼴을 허구 집으로 기어들어 보세요. 가뜩이나 나 때문에 지늙으신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간장을 태우실까."

"그두 그렇겠지만……."

동혁이도 좋은 방책이 나서지를 않았다.

'제에기, 우리집 형편이 웬만만 허면…….'

해보기도 하나 그것도 공상이기는 매일반이다.

"동혁 씨는 앞으로 어떡허실 테야요?"

영신은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묻는다.

"내야 한곡리 송장이 될 사람이니까요. 내가 없으면 처리헐 수 없는 복잡헌 문제가 많어서, 그 동안 나와서 있는데두 몹시 궁금헌데…… 사실 안직은 믿을 만헌 사람이 없에요."

하고 여러 날 빗질도 못 해서 푸스스하게 일어난 머리를 북북 긁으며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한다.

"입때까지 우리가 헌 일은 강습소를 짓고 글을 가르친다든지 무슨 회를 조직해서 단체의 훈련을 시킨다든지 하는, 일테면 문화적인 사업에만 열중했지만, 앞으로는 실제 생활 방면에 치중해서 생산을 하기 위한 일을 해볼 작정이에요. 언제는 그런 생각을 못 헌 건 아니지만 외면치레가 아니고 내부적인 문제를 생각허구, 또 실행해야 될 줄루 생각해요."

"참 그래요. 무엇버덤두 먼저 생활이 있구서, 그 다음에 문화사업이구 계몽운동이구 있을 것 같어요."

영신이도 매우 동감인 뜻을 보인다.

"그러니까 이런 점에두 우리에 고민이 크지요. 우린 가장 불리헌 정세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니만치, 우리 힘으로 헐 수 있는 한도까지는 경제적인 사업까지, 끈기 있게 헐 결심을 새로 허십시다."

하고 두 사람은 밤 깊도록 그 구체적인 방법을 토론할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