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노인과 닭
이러한 노인이 있었다.
난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 저 스스로도 그렇게 자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리에서도 누구나 다 그 노인을 그렇게 알았다.
동년배로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도 그에게선 법 밖에 나서 사리(私利)라든가 그런 데 탐내는 눈치를 조금도 본 일이 없다고 했다.
더욱이 그 노인이 조밭에 닭 보는 것이란 유명한 것이었다. 닭이 자기네 밭에 한 번씩 들어가 다 익은 조를 녹여내는 것을 보고도 닭 임자가 보면 미안해할까 보아 닭을 쫓는다는 게 큰 소리 한 번 지르지 아니하고 돌팔매한 번 들어 보는 일 없이 그저 “쉬―쉬―”하고 이랑마다 드나들며 닭을 몰아내는 것이다.
이 한 가지만으로 미루어 보아도 그 노인의 마음자리는 가히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지 않는 마을의 고집쟁이들도 이 노인만은 믿었다.
어느 해 여름, 그 노인이 부치는 밭 가까운 어떤 집에서 하루 닭이 두 마리나 없어졌다고 하면서 이는 필시 족제비의 소위(所爲)라고 떠들었다.
이 소리를 들은, 역시 그 노인네 밭과 연접해서 닭을 보는 어떤 아이가 하는 말이 아무개네 노인이 조밭에 닭이 들어간 것을 보더니 돌팔매질을 하고는 닭이 맞아 죽으니까 옷자락 앞섶에 감추어서 산으로 가져다가 던지는 걸 보았는데 닭 없어지는 게 그게 다 그 노인의 짓 같다고 했다.
그러나 마을의 누구도 그 아이의 말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자기가 닭을 보면서 닭을 어떻게 했달까 겁이 나서 공연히 노인을 걸어대 가지고 발뺌을 하는 것이라고들 했다. 닭을 잃은 집에서도 그건 그저 족제비 장난이라고 족제비 함정을 짜 놓고 족제비를 잡으려고만 애를 썼다.
하지만 그 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철이 접어들어도 닭은 여전히 없어지고 족제비는 한 마리도 함정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비로소 닭 주인은 의심을 품고 하루는 닭 보는 노인을 감시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말대로 노인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그저 닭채를 내두르며 “쉬―쉬―”하고 이 이랑 저 이랑 닭을 쫓아다니며 몰아낼 뿐, 돌 같은 것 한 번 손에 드는 걸 종일토록 보지 못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 노인이 남의 닭을 때려 잡으려고!”
중얼거리며 완전히 의심을 풀고 돌아왔다.
노인은 군자(君子)대로 여전히 행세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반면에 닭에 대한 의심은 그적엔 이 아이에게로 돌려 몰리게 되었다.
“그 자식 거 제가 닭을 잡아다가 팔아먹고 하는 사설이 분명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 그 아이는 자기의 말이 서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그 얼마나 하였을까. 아니 그 곡해(曲解)에의 안타까움은…….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해 보고는 사실까지를 무시하게 되는 믿음의 힘, 그 힘의 위대한 데 문득 놀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