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일람 치마 입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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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저고리에 일람 치마를 입은 30대의 한 젊은 여인이, 필시 그 동생이리라, 빨간 저고리에 노랑 치마를 입은 스물이 채 되었을까 한 색시의 손목을 채 지게 위에 모로 누었다.

일견(一見) 선전(鮮展)의 낙선작품(落選作品)임이 틀림없다.

색채에 가난한 이 효자동 골목의 한낮은 이 여인의 자태로 해서 자못 화려하다. 오고가는 사람마다 그 여인에게 한 번씩 시선을 아니 던지고 가는 사람이 없다.

앞으로 이 여인은 이렇게 얼마를 더 가야만 주인을 만나게 되는 것인지 좁지 않은 골목에서 그 어떠한 종류의 선전광고처럼, 지게 위의 신세로 뭇 사람들의 눈에 오르내리게 됨이 짐짓 부끄러운 일일 것 같다.

작자가 이 그림을 그릴 때에는 일단의 정력이 화필 끝에 여념도 없게 입선 특선에의 꿈이 한껏 아름다웠으련만 회(會)가 열리는 날 이 그림은 정력에 의 보람도 없이 이제 지게 위에서 무색(無色)이 주인을 이렇게 다시 찾아 가지 않아서는 안 되는 슬픈 운명을 지녔다.

지게꾼은 그 슬픔 운명의 짐이 오히려 무거운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다. 여섯 자 길이에 다섯 자 넓이인 듯한 이 그림 한 개가 그리 과중한 짐은 아니련만 그의 힘에는 헐치가 않은 모양이다. 피와 땀을 정성껏 부어 담은 그 그림에의 생명이 그렇게도 지게꾼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일까?

어쩐지 그 지게꾼의 느끼는 무거움은 한 달, 아니 한 해도, 이태도 넘어 드렸을지 모를 그 작자의 힘의 표현일 것만 같게도 생각이 든다.

“역작(力作)이 아마 저렇게 되는 수도 있을 걸……?”

“어서 가요.”

같이 가던 비석(飛石)이 여기엔 대구(對句)도 없이 옷자락을 끈다.

그런 것에 눈을 팔며 군말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한 길이나 발락발락 어서 가자는 재촉이다.

사실 지금 우리는 하나같이 뽑혀서 장내(場內)에 진열(陣烈)되어 있을 그 작품에 눈 담고 떠난 길이다. 그까짓 지게 위의 신세를 면치 못한 그 그림에 발을 멈추고 기웃거리기도 실인즉 싱거운 일이다. 미련을 느낄 까닭도 없이 지게는 내려가는 대로 뒤에 두고 우리는 우리대로 전람회를 향하여 걸어 올라갔다.

여기에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그것은 최서해(崔曙海)의 단편 「탈출기(脫出記)」였다.

서해(曙海)의「고국(故國)」이 《조선문단》에 추천을 받을 때「탈출기」 도 같이 들어와 같은 선자(選者)의 눈에 거침을 받았으나 「고국」을 뛰어넘지 못하고 선외가작(選外佳作)이라는 쪽지가 붙어 다만「탈출기」라는 제목 석 자가 다른 투고자들의 그것과 같이 해지(該誌) 여백(餘白)을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때 작자인 서해(曙海)는 여기에 불만이 있었던지 없었던지 그 후 그로부터 이렇단 이야기 한마디 없이 고인이 되었으니, 이젠 영원히 알 길이 없으나 어쨌든 작자로서는 그「탈출기」를 차마 그대로 버리기는 아까웠던 모양이다. 씨(氏)는 그 후 해지(該誌) 기자로 입사가 되면서 곧 「탈출기」를 해 지상(該誌上) 발표하였다.

놀라운 것은, 그 결과였다. 당시의 문단은 이「탈출기」를 가지고 얼마나 떠들어 내었던고? 아니 지금까지도 서해(曙海)를 말할 때에는 누구를 물론하고 이「탈출기」를 그의 대표작으로 내세우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당선’, ‘입선’의 두 관문을 다 무시하고 최고의 입선 규정으로 영예의 ‘추천’을 받았던 「고국」은 그 당시의 반향(反響)도 없었거니와, 그러기에 오늘껏 그것이 그의 작품이었던지 아는 이조차도 드물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니 문득 그 지게 위의 작품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나며 그 작품을 이제 작가가 받을 때의 그 작자의 심경이 무척 알고 싶어진다. 자기의 예술적 기능 부족으로서의 낙선이라, 그저 부끄러움에 그 작품이 다시 거들떠보기도 싫게 머리가 숙을 것인가? 혹은 심사원의 감상안(鑑賞眼)을 여지없이 비웃음으로 자기 예술적 경기에 그저 그대로 태연히 만족이 되어, 그 작품이 의연히 제대로 사랑스러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