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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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누가 한다.

명필 추사(秋史)의 선생 조광진(曹匡振)이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니, 잠자리에서 갓 깨어 일어난 참새들이 뜰 앞 나뭇가지에서 재재거리는 소리에 그만 필흥(筆興)이 일어나 저도 모르게 필묵을 베풀어 새벽 새라고 ‘효조(曉鳥)’ 두 자를 제물에 써 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흥에 겨워 쓰면 언제나 만족한 글씨를 얻게 되는 것이, 흥에 겨워 쓰기는 썼는데도 ‘효조(曉鳥)’라는 鳥[조]자의 맨 밑 넉 점을 싸는 치킴이 제대로 올라가지를 못하고 아래로 축 처져서 심히 거슬렸다. 그래 다시는 더 거들떠보기도 싫어 문갑 밑에다가 되는대로 밀어 던지고 말았다.

그랬던 것을 하루는 어떤 손님이 찾아와서 글씨를 청하므로 다시 필흥(筆興)이 생기지 않아 그것을 그대로 내어주고 말았다.

그런 지 10년 후, 조광진이 중국에 여행을 갔다가 어떤 귀족의 사랑에서 뜻도 않았던 그 ‘효조(曉鳥)’의 鳥[조]자 치킴이 쳐져 내버리는 셈치고 그 손님에게 내어주었던 그 글씨가 중국에서도 유명한 귀족의 사랑에 족자로 걸려서 상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조씨는 그 鳥[조]자의 치킴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거슬리어 주인이 잠깐 밖으로 나간 짬을 타서 필묵을 꺼내 鳥[조]자의 치킴에 가획(加劃)을 하여 처진 치킴을 바싹 올려붙여 놓았다.

그랬더니 주인이 들어와 이것을 보고 남의 귀한 글씨에다가 손질을 해서 버려 놓았다고 꾸짖으며 노했더라는 것이다. 그래, 조씨의 말이 실인즉 그것이 자기의 글씨인데 鳥[조]자의 치킴이 되지를 않아서 내버렸던 것으로 지금 보아도 그게 마음에 거슬려 붓을 좀 넣어 본 것이라고 하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주인은 어성(語聲)을 놓여 하는 말이 당신은 글씨를 쓸 줄만 알고 볼 줄은 모른다고 하면서 효조(曉鳥)라면 새벽 새일테니 잠자리에서 갓 깨어나온 새가 무슨 흥이 있어서 꼬리가 올라가랴, 언제나 보아도 새벽 새는 꼬리를 처트리고 우는 법이라 자기가 이 글씨에 고가(高價)를 주고 사다가 머리맡에 걸고 사랑하는 것도 그 ‘효조(曉鳥)’라는 데 있어 조자(鳥字)의 치킴이 용하게 처트린 데 가치를 찾았던 것으로 이제 아까운 글씨를 버렸다고 하면서 떼어 던지더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문득 졸작(拙作) 「병풍(屛風)에 그린 닭이」를 생각했다. 해작(該作)은 작자(作者)인 나에게 있어서는 열작(劣作)의 부류(部類)에 미련없이 처넣고 다시 한번 눈도 거들떠보고 싶지 않은 그러한 작품인데 그렇지 않다고 하는 벗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좌석에서 문학 이야기가 났을 때, 나는 시인 모씨(某氏)로부터 네 작품 가운데는 「병풍에 그린 닭이」 하나밖에 없느니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이 시인이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태도를 엿보았으나, 결코 그러한 의미에서가 아님을 분명히 알았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놀라며 그러할 리가 없다고 부인을 했다.

그러나 이 시인은 제 작품은 제가 모르는 법이라고 하면서 작자에게는 그 「병풍에 그린 닭이」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보여도 그래도 그 작품 하나가 지금까지 써 온 중에서는 후세에 남으리라고 극언까지 한다.

그래도 나는 그 말을 전적으로 부인하였더니, 제 작품을 제가 모르는 예는 가까이 시인 김동명 씨(金東鳴氏)에게도 있었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해씨(該氏)가 시집 『나의 거문고』를 출판할 때, 그 어떤 시 한 편이 심히 마음에 거슬려 그 시집에서 빼내려 하는 것을 그 중 백미편(白眉篇)이 그것인데 그것을 빼낸다고 친구들이 아까워해서 마음에는 없는 것을 그대로 넣어 출판을 했던 것인데, 그 후 신간평(新刊評)을 보면 평자(評者)마다 작자로선 빼내려던 그 한 편을 도리어 대표작으로 들어 내세우고 평을 하였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대개는 작자가 자작(自作)의 가치판단에는 눈이 어두운 것이라고 단안(斷案)을 내린다.

그러나 내 귀에는 이 소리가 조금도 들어오지 아니하고 그저 내 작품의 가치는 내가 가장 잘 알 것만 같게 여겨진다. 언제나 읽어 보아도 「병풍에 그린 닭이」는 문장이라든가 구성이라든가 그 어느 부분 한 곳에 마음 붙는 데가 없다. 다만 그저 「병풍에 그린 닭이」하는 그 제목만이 언제나같이 마음에 들 뿐이다.

여기에 한 가지 궁금한 문제가 남는다. 시인 모씨(某氏)는 「병풍에 그린 닭이」를 그렇게 제일이라고 쳐도 작자인 나는 그대로 덜 되게만 보이는데 김동명 씨는 아직껏 그 시편이 나와 같이 여전히 마음에 안드는지, 또는 그 ‘효조(曉鳥)’에 대한 조광진(曺匡振)의 심경은……? 글씨는 어디까지든지 글씨요, 그림이 아니니 효자(曉字)가 붙으면 조자(鳥字)의 꼬리가 처져야 하고 주자(晝字)가 붙으면 조자(鳥字)의 꼬리가 올라가야 하고 이렇게 글씨에 임시응변(臨時應變)이 있어야 할 것임이 마땅할 것은 아니나, 그 중국인의 설명을 듣고 글씨를 떼어 버리는 것을 목도(目睹)했을 때의 그 때의 조씨의 심경을 좀 엿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무척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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