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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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편집]

팔월 이십일일 밤 열시가 되자 경성역의 넓고 넓은 삼등 대합실에는 바눌 곶을 틈도 없을만치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전차, 인력거, 뻐어쓰, 자동차들은 쉬일 사이 없이 사람을 실어다가 토해 놓는다. 그 중에는 하기 방학으로 귀향하는 남녀학생들이 그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부산한 곳에서 철하와 명순이는 뻰취에 걸터 앉아 서서 있는 괴로움만은 면하게 되었다. 그것도 남보다 좀 일찍 나오게 된 덕분이었었다. 그러나 앉아 있는 것도 심히 괴로운 일이었다. 죄우에서 빽빽이 미는 바람에 가슴이 오그라지는 것 같으며 선 사람보다 낮은 곳에 있는고로 사람의 운김과 맥캐한 내음새가 코를 콕콕 찌르는 것 같아 철하는 시계를 치어다보니 청진행 열파가 떠날 시간은 아직도 한시간이나 남았다. 이러한 잡답하고도 괴로운 가운데서 한시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이틀을 기다리는 것보다도 더 마음이 조리조리하였다.

철하는 명순이를 보고 원망하듯

“공연이 일찍 나오자고 하여서 이런 곤경이 또 어디있오”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빙긋 웃으며

“늦게 왔더면 모양이 좋았겠읍니다. 제말대로 일찍 나오게 되니 이런 곳에 앉기라도 하지요”

명순이는 참으로 한시가 바뻤다. 명순이는 철하에게 함흥으로 같이 내려가자고 며칠이나 졸랐는지 몰랐다. 겨우 승락을 얻은 명순이는 오늘밤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오늘 아침 하기방학식을 마치고 하굿에 불이야 불이야 돌아와서 귀향의 준비를 하였고 밤 아홉시도 못되어 철하를 성화 같이 재촉을하여 정거장으로 나왔다.

경부선 열차와 인천행 열차가 떠나자 대합실안은 전보다 승객들이 적어졌다. 그러나 뒤따라 몰려오는 여객들은 그 비인 자리를 파고 들었다.

철하와 명순이가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수길이가 사람의 틈을 헤치고 나오더니 철하의 손목을 잡고 쾌활한 그 목소리로

“아! 이곳에 있는 것을 얼마나 찾었는지 몰랐네”

이렇게 말하고 난파에 시달린 어부가 큰 육지나 발견한 듯이 반겨한다. 철하는 수기의 손목을 힘있게 마주 잡으며

“이것 참 미안한 일일세”

“그런데 내가 함흥으로 간다는 것은 어디서 알었는가?”

“철하의 일을 내가 모를리가 있나 다 알지”

웃고만 앉았던 명순이가

“참 어디서 알었읍니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었는데요”

“도깨비 같은 사람이니까요 하하하”

수길이 가는 곳은 어디던지 조용한 곳이 없었다. 수길의 독특한 웃음, 쾌활한 말솜씨 그 모든 것이 누구던지 처음 대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수길의 말하는 것을 듣고도 그가 표리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넉넉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철하가 중학교시대부터 수길이와 사이가 가깝게 된 이유도 수길의 성격에 호감을 가지게 된것이 동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서울안에 친구들도 많았지만 속마음을 주고 받고 하는 친구는 오직 수길 한 사람 밖에는 없었다.

일본에 가서도 비록 학교는 달렀지만 한 일터에 나가서 같이 일하고, 한 ‘다다미’ 에서 잠을 자고 춘풍추우 가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하였던 것이었다. 그는 동경에 건너가 처음에는 어떤 대학의 영문과에 학적을 두고 통학을 하다가 일년도 넘지 못하여 그만두고 도서관으로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였었다. 그는 문학에 천재를 가졌다. 중학교 시대부터 ‘불붙던 날 밤’, ‘녹쓸은 칼’, ‘어머니’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고 지금도 어떤 신문에 ‘실업시대(失業時代)’라는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 조선 문단에서도 그를 신진작가로 상당한 대우를 하여 주고 있으며 장래를 촉망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흠은 젊은 사람으로 술을 즐겨하는 것이다. 철하는 늘 술을 마시지 말라고 충고를 하여도 수길이는

“술! 술 안마시고야 살어갈 자미가 있나 이렇게 괴로운 세상에 술마저 없다면 그야말로 꽃없는 동산에 나비와 같을 것이내 하하하”

이렇게 도리어 술을 찬미하는 노래만 부를 뿐이었었다. 그러나 수길이가 아무리 술을 취하도록 마셔도 자기의 개성을 무시할만한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았다.

철하는 수길의게 어떠한 말이라도 비밀이 없이 말하였지만 금번 명순이과 함께 함흥으로 가게 된 것만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함흥으로 가는 것이 어떠한 말못할 사정이 있어서 말을 아니한 것도 아니었었다. 다만 말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니한 것이다.

지금 당장 떠나려고 하는 자기 몸조차 함흥으로 내가 웨 가나? 하는 물음에 철저한 대답을 못할만치 정신이 멍 하였다.

뜻 밖에 수길이를 만나게 되자 자기가 무슨 큰 죄를 짓다가 들킨 사람 모양으로 가슴이 떨리였다. 철하는

“이 사람 그렇게 웃지만 말고 대답을 얼른 하게 어디서 알고 나왔는가?”

“모를리가 있나 철하와 명순이 사이에 일은―― 암만 자네가 나를 쏙 빼어놓고 무슨일을 하려고 하여도 안 될걸―― 하하”

“글쎄 함흥으로 간다는 말을 안한 것은 내 잘못이라고 둘러놓고 묻는 말이나 대답해야지”

이렇게 묻는 철하도 사실 어디서 알았는가 알고 싶어 묻는것도 아니다. 다만 수길에게 공연히 말을 아니한 것이 수길의 감정이나 상해주지 않았는가 하여 수길의 거동을 감시하려는 술책이었다.

그러나 수길이는 조금도 불평한 표정을 들어내지 않고

“복섬씨에게서 알었지 내가 어저께 아침나절에‘호일’ 고무공장에 볼일이 생기어 갔더니――아니 참 먼저 인사를 올려야지 복섬씨가 훌륭하게 되었던걸――그 회사의 여사무원이 되었더구만――”

“훌륭하기야 무얼 훌륭하겠는가. 몸만이 좀 편하게 되었을 뿐이지 전번 공일인가 그 회사여직공중에서 제일 성적이 좋은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이십여명을 뽑아서 사무원시험을 치루웠다나 그래 다행히 복섬이와 또 다른 아이 한명과 모두 두 아이가 합격이 된 모양이야”

“그것참 반가운 일일세 원체 학식이 있으니까――그래 사무실에서 복섬씨를 만나 자네 안부를 물었더니 오늘 밤차로 명순씨와 함께 함흥으로 내려간다고 하데――”

이 때이다. 차표 살어갔던 복섬이가 차표를 들고와서 황망한 목소리로

“오빠, 청진행 개찰구가 열리었읍니다. 어서 준비를 하세요”

옥을 바쇠는 듯한 그 목소리에 수길의 귀가 번쩍 열리었다. 복섬이가 수길을 보더니 빙긋 웃고나서

“선생님 나오섰읍니까”

하고 수집은 태도로 인사를 한다. 수길이는 우슴으로 대답하였다.

또렸한 두 눈, 볼그스름한 뺨, 호리호리한 키 ―― 수길이는 복섬이가 요사이는 더욱 어여뻐보였다. 사무실에 올라간 뒤로 세찬 일을 아니함인지 전보다 몸치장을 별달리 함인지 어찌 된일인지 평시보다도 더 어여뻐졌다.

아! 누가 알까 수길이와 수집은 처녀 복섬의 사이에 남모르게 자라나온 사랑의 싻을―― 오빠인 철하도 몰랐다. 그들 두 사람 밖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렁찬 “싸이링” 소리와 함께 청진행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철하와 명순이는 한쌍의 비둘기를 푸랫트홈에 남겨놓고 어둠을 헤치고 달음질치는 기차에 몸을 실고 경성역을 떠났다. 기차안은 살풍경이었다. 자리를 다투는 사람들이며 자리를 얻지 못하여 돌아다니는 사람들 서로 부비며 떠드는 사람, 얼떨떨한 판이어서 정신을 잃어버릴 듯 싶다. 철하는 명순이와 마주 앉아 시커먼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이 모양 같으면 오늘밤은 한잠도 자지 못할것 같읍니다.”

이렇게 말하였다.

“차츰 내려갈수록 내릴 손님도 있겠으니”

명순이는 철하의 불평을 없이 하기 위하여 무한한 노력을 하였다. 밤은 점점 깊어간다. 차는 쉬지 않고 어둠을 헤치고 달음질을 친다. 오전 두시가 넘어서야 그렇게 시끄럽던 차안도 차차 고요하여졌다. 일년 동안 부모의 따뜻한 품을 떠나 먼 객지의 학창에서 고생하며 고향을 그리다가 하기방학을 당하여 귀향하게 도는 학생들――철하는 일찍 그러한 반가움을 니끄어 본 일이 없었다. 그들이 끝없이 부러웠다. 즐거움에 웃고, 떠들고 하던 그들도 차차 고향의 벌판을 더듬고 있는 꿈속 사람이 되었다. 명순이도 앉은 채로 잠이 들어버렸다. 조을고있는 명순이를 바라보는 철하는 이상한 느낌이 일어났다.

“명순이가 무엇을 보고 나 같은 사람을 열중으로 사랑할까?”

이렇게 마지막 말까지 하며 졸림을 받았다. 명순이는 철하가 출품만 하는 날에는 그 작품이 특선이나 되어 일조에 철하의 이름이 세상에 높아질 줄로 알았다.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철하는 명순의 나이 스물두살인 허영심이 제일 성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보잘 것 없는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퍽 이상하게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많지 아니한가? 군위가 높은 사람, 돈 있는 사람, 학식이 많은 사람, 그러나 명순이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사랑하고 있으니 철하는 어떠한 말이든지 명순 앞에서는 어린 양과 같이 하였다. 금번 함흥으로 내려가게 된 것도 명순의 강경한 요구에 할 수 없이 승락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만일 명순이와 놀러 함흥으로 내려가는 것이라면 철하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자기의 본위가 아닌 미술전람회 출품준비로 내겨가게 되는 걸음이니 마음이 퍽 쓰리었다.

명순에게서 작년부터 졸림을 받아왔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거절을 하였던 것이다. 바로 일주일전 일이니 명순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웨― 출품하실 생각을 안 하십니까? 이론으로만 말씀을 하지 마시고 실지로 생각하여 봅시다. 우리 두 사람은 언제든지 결혼을 하여야 되지 않겠읍니까? 그 때면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겠읍니까? 먹지 살기 위하여서는 직업을 얻어야 되지 않겠읍니까? 어떠한 일을 하시든지 생활안전이 된 뒤에도 얼마든지 할수가 있지 않겠읍니까?”

철하는 명순이의 눈물겨운 말을 듣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이다. 이 모양으로 있다면 결혼 후의 생활이 문제다. “생활안전의 전술――”

그 때 철하는 이렇게 부르짖고 승락을 하였다. 명순이는 한 여름의 피서삼아 자기 고향인 함흥에 가서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명순이를 따라 함흥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었다. 차안은 끝없이 고요하다. 철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그러나 삼십분도 못되어 잠이 깨였다. 명순이는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린다. 철하는 쓸쓸한 이 세상에서 자기의 마음을 붙일 곳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의 고독한 몸이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 별로히 없었다. 철하가 세상을 극도로 저주하고 사회를 원망하는 사상을 가지게 된것도 그의 쓰라린 고독한 생활이 그렇게 고독한 생활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가 있었다. 세상에 모든 것은 모다 철하를 배척하였지만 명순이만은 그에게 따뜻한 사랑을 던져 주고 있지 않은가?

철하가 살어가는 것도 명순이가 있기 때문인것 같았다. 한마디의 위안이라도 하여줄 사람은 명순이 밖에 없었다. 서름을 하소연 할 사람도 명순이 밖에는 없었다. 기차는 쉬지 않고 달음질을 친다. 산을 뚫고 다리를 넘고 벌판을 지내기를 몇 번이나 하였는지? 시꺼멓던 차창은 점점 밝기 시작하고 잠자던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잠을 깨기 시작하였다. 사람의 말소리는 점점 높아갔다. 기차가 원산에 도착하였을 때는 날이 환하게 밝았다. 잠이 깨인 명순이는 하품을 하고 나서

“좀 주무섰읍니까?”

이렇게 철하를 보고 묻는다.

“어디 잘 수가 있어야지요”

“참 곤하시겠읍니다. 나는 어찌나 잤는지----”

명순이는 자고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원산까지 오고나니 자리가 좀났다. 철하는 함께 앉았던 사람이 내린 것을 기회로 곤한 몸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의자에 비스듬이 누었다. 그러나 다리를 마음대로 펴고 눕지 못하게 되는 것이 퍽 가깝하였다.

“명순씨 내가 명순씨의 요구를 들어드렸으니 명순씨도 나의 요구를 들어야 됩니다”

“어떠한 요구인지 들을만한 것이면 듣고 못들을만한 것은 못듣고요―――”

철하는 그말이 우스워서 한바탕 웃고나서

“아니 그런 말은 나도 할줄 압니다. 쉬운 일이면 구태여 요구까지 할 필요가 있읍니까? 꼭 들어야 된다는 말이올시다”

“무슨 요구입니까? 말씀이나 하십시요”

“들어주겠다면 말하지요 먼저 어떠한 요구든지 들어주겠다는 승락부터 하십시오”

“말씀도 들어보지 못하고 어떻게 승락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말을 하지요 꼭 들어주어야 됩니다”

“글쎄 말씀이나 하십시오”

철하는 한참 주저하다가

“내가 암만 생각하여도 함흥에는 합의할 화재가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나는 명순씨를 모델을 하여 그림을 그리려고 생각하였읍니다”

“제 까짓것이 어떻게 모델이 되겠읍니까? 그림이나 망치려구――”

“아니 그림을 망치고 않망치는것은 둘째 문제로하고 승락을 하시겠읍니까?”

“그러면 어떻게 모델을 하여 그리려고 합니까?”

“명순씨 말씀하였지요 저 서호진이라는 곳에 해수욕장이 있다고 안 하였읍니까?”

“그래― 말씀 하십시오”

“그 해수욕장에 가서 명순씨가 해수욕복을 입고 그림의 모델이 되여달라는 말입니다”

“아이고 망측해라 어떻게 사람많은 곳에서 뻔뻔스럽게 그따위 노릇을 하고있겠어요”

“그러면 그릴 것이 없읍니다 그만두지요”

“정말이세요……”

명순의 눈은 둥그래졌다.

“거짓말입니다”

“나는 또 참말이시라구 어찌나 가슴이 떨리었는지, 웨― 사람을 그렇게 골려만 주십니까”

“그래야 심심하지 않고 자미가 있지요”

젊은 남녀의 주고 받고 하는 그 웃음에는 거짓이 조금도 없었다. 철하와 명순이는 차장에 이마를 나란히 하여 차창 밖에 전개되는 북국의 산천을 바라보았다. 철하는 이 함경선이 처음이다. 명순이는 활동사진 해설을 하듯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에는 북국을 자랑하는 어조가 대부분이었다.

영흥, 문천등의 경계를 지나 기차는 함흥평야를 숨차게 달음질친다. 오전 열시 기차는 성천강 철교를 건너 함흥시가를 옆에 끼고 쑥 돌아가더니 그들의 목적지인 함흥역에 와서 ‘씩――’ 하고 정거 하였다.

철하와 명순이가 함흥에서온지도 벌써 심여일이 넘었다.

“명순아 참 그양반이 그림을 썩 잘 그리었더라 본궁(本宮)을 사생을 하신 것인데 아이구챰 그 제월루(霽月褸)――어쩌면 그렇게 신통하게――”

이것은 명순의 동무 연순(蓮淳)의 말이었다.

“너 어디서 봤니”

뜨거운 모래 위에 누워 헤염공부를 하고 있던 명순이는 이렇게 물었다.

“어저께 오후에 본궁에 있는 고모집에 갔다가 보았지”

명순이와 나란이 누워서 손으로 모래산을 쌓고 있던 연순이는 이렇게 대답하고 벌떡 일어선다. 명순이도 따라 일어서며 바다를 내다본다. 물새무디와 같이 수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헤염을 치고 있다. 헤염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얕은 곳에서 출렁대고 있다. 뜨거운 모래판에서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여름의 서호진 해수욕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웠다. 명순이는 이 수 많은 가운데서 철하를 찾아 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눈에 띠이지 않는다. 근심스러운 낯으로 바다에서 헤염치는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놓지지 않고 보았으나 철하 같은 사람은 없다. “바다에서 나왔으면 이곳으로 오실터인데” 이렇게 생각하고 옆에 서서 바다를 물끄럼이 내다보고 섰던 연순이를 보고 어깨를 툭 치며

“이얘 무엇을 이렇게 보고섰니 그런데 철하씨가 보이지 아니하니 어쩐 일이냐?”

연순이는 깜짝 놀랐다. 무슨 하지 못할 일을 하다가 명순이에게 들킨 사람 모양으로 낯빛이 빨개져

“글쎄! 아! 저쪽 끝에 쑥 나가서 헤염을 치고 있는 이가 철하씨인가 보다”

이렇게 말하고 가리킨다. 연순이는 아까부터 철하의 헤염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글쎄…… 철하씨인가 보다”

하는 말은 명순이가 자기를 이상하게 여길가봐 지어대는 말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묻는다면 연순이는

“웨 안보이십니까? 제일 먼 곳에 나가 헤염치고 있는이가 철하씨입니다. 나는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요” 이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속 모르는 명순이는 연순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

“아! 어쩌면 저렇게 헤염을 잘 치실까 저렇게 나가시면 위태하실 티인데――”

이렇게 걱정을 하였다.

“돌아섰읍니다”

연순이는 무의식간에 손벽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연순의 행동이 좀 불쾌하였다. 그러나 “친하게 지내는 동무이니까!”이렇게 속 생각을 하니 불쾌한 감정이 절반쯤은 스러젔다.

철하는 점점 가까이 온다. 바닷가에 선 두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점점 가까워 오는 철하를 바라 보고 섰을 뿐이다. 명순이와 연순이는 쌍동이와 같았다. 키도 똑 같고 똥똥한 몸집, 살빛, 더욱이나 해수욕모와 해수욕복까지 한가지 빛을 입었으므로 얼른 보기에는 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리만치 같았다.

명순이는 헤염칠줄을 모른다고 하던 철하가 그렇게 헤염을 잘 칠 줄을 몰랐다. 철하가 육지로 가까히 오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철하에게로 쏠렸다. 철하는 확실히 바다의 용사가 되었다. 그는 어렸을 때 연천에서 자라났으므로 바다에는 귀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재 아모리 헤염 잘 치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철하를 따를 사람은 없었다.

육지에 나온 철하는 명순이와 연순이가 있는곳으로 걸어갔다.

“웨 목욕들을 안 하십니까?”

이렇게 말하는 철하는 파덕이며 명순이의 옆에 와서 쓰러져 누웠다. 명순이와 연순이도 따라 앉았다.

“헤염칠 줄 모르신다고 하시던 이가 어쩌면 그렇게――”

명순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게 헤염을 치고야 어찌 헤염칠 줄 안다고 하겠읍니까”

“아이고 선생님도―― 그러면 선생님보다 더 잘 치는 이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번에는 연순이가 명순이를 앞질러 이렇게 말하였다.

“있고 말고요 물속에 고기를 못보셨읍니까? 하하하하”

명순이와 연순이는 이 말에 웃으워서 삥삥 돌아가며 웃었다.

명순이와 연순이는 한바탕 웃고나서

“연순아 저 양반을 인제부터는 물고기라고 별명을 짓자”

“…………”

연순이는 아무 말도 없이 웃고만 있다.

연순이는 철하를 안지가 일주일 밖에는 안되었으나 별로 허물이 없이 말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의 친한 동무의 애인이라는 관념에서 어떤 때에는 자기가 명순이보다 두살이나 덜 먹은고로

‘아저씨’ 라고 부르기까지 되었던 것이다.

‘아저씨’ 라고 부를 때마다 명순이는 연순이의 입을 손으로 가로 막으며

“이애 그런말을 하지 않고는 말을 못하니 남부끄럽게―――”

이렇게 말하였다.

연순이는 그것이 더 자미가 있어서 자꾸만 ‘아저씨-― 어저씨―’ 불렀다.

그러나 요사이는 연순이 입에서 ‘아저씨’ 라는 말이 안나왔다. 그것은 연순의 깊은 가슴 속에서 이상한 충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젊은 연순의 마음은 철하를 동무의 애인으로만 대하기를 허락게 않았다. 철하의 남자다운 성격 그것이 연순의 어린 가슴을 움직이게 하기 시작 하였다.

연순이는 지금도 철하의 남성미(男性美)에 무한한 충동을 받고 있다. 울근불근 솟은 발달이 된 팔과 다리의 근육, 쩍 버러진 앞가슴, 이 모든 것이 어린 연순의 가슴에 사랑의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연순의 마음은 괴로웠다. 나중에는‘명순이가 없었으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겠는데―――’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연순이는 그러한 표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것은 철하와 명순에 사이의 사랑이 어떠한 절정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만일 자기의 눈치를 명순이가 알아차리는 날에는 명순이와 절교될 것――― 아니 그것은 연순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 그보다도 철하와 한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라도 할만한 기회를 가지게 되지 못하겠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자―――찻시간이 거의 되었으니 갈 준비들을 합시다’

철하는 이렇게 말을 하고 각각 의복을 가라 입으러 갔다.

철하는 오늘이 서호진 해수욕장으로 오기가 처음이다. 그동안 내려 와서는 하루도 쉬지 않을 습작(習作)삼아 그리었나. 그것이 어저께까지 끝이 났으므로 하루의 여유를 얻어 해수욕장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내일부터는 또다시 그리기를 시작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세번을 그려서 그 중에 제일 자신이 있어 보이는 것을 취하기로 하였다.

뜻 없이 흐르는 세월은 어느 듯 이해의 여름을 걷어 가지고 가려는 팔월 이십일――― 그 날의 오후이었다. 명순이는 개학날자가 이직도 일주일이나 남았었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몸이라 일찍이 서울로 가서 셋집도 얻고 세간차림도 하여야 되겠으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고향에 남겨두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철하는 명순이가 서울로 올라간 뒤 명순의 주선과 연순의 호의로 숙소를 연순의 집으로 옮겼다. 철하는 연순의 호의를 감사히 여기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면 이곳을 떠나 경성으로 행할 것이니 관계는 없으나 다만 하루라도 연순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 퍽 미안하였다.

연순의 집은 퍽 훌륭한 집이었다. 모든 차림 차림을 보아도 생활이 유족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철하가 있는 방은 동쪽으로 쑥 나간 사랑방인제 방안은 다다미를 깔고 광선이 잘 통하는 방이었다. 연순이가 제일 깨끗한 방을 골라서 준 것이니 어찌 철하의 마음에 맞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바람이 잘 통하여 여름 더위를 까달을 수가 없을만치 시원하였다. 게다가 방 옆에는 넓은 마루가 있고 마루의 한복판에는 등탁자 등의자들이 놓여있다. 명순의 집보다 몇 백 배나 시원한 맛이 있고 훌륭하였으나 모든 것이 철하에게는 쓸쓸하였다. 명순이가 서울 간 뒤로는 모든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낮이면 본궁에 가고 저녁이 되면 돌아오고 하였다. 감사한 것은 연순이가 늘 동무를 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철하가 연순의 집에 옮아간 그 이튿날 밤이었다. 철하는 저녁을 먹고 나서 마루에 있는 등의자에 앉아 있으려니까 안으로부터 중년신사와 연순이가 나온다. 철하는 그 이가 연순이 부친인 것을 대번에 추측을 하였다. 철하는 일어섰다. 연순이와 그 신사는 마루에 올라와 등의자에 앉는다.

연순이는

“제 부친이 되시는 어른입니다”

이렇게 소개를 한다. 철하는 의자에 앉으면서

“댁에 와 신세를 지면서 일찍 찾어뵈옵지 못하여 대단 죄송합니다.”

공손이 말하였다.

“천만에 말씀이오. 주인의 몸으로――도리어 미진한 점이 많소이다.”

그 말에는 인자한 맛이 있다. 그 이는 함흥에서 실업가로 대우를 받으며 재산도 상당하였다. 지금 사람의 이상을 잘 이해를 하는 사람이며 사회사업도 돈을 아끼지 않고 유익되는 일은 어떠한 일이든지 하였다.

“자서한 이야기는 이애 게서 들었소이다. 나도 청년시절에 객지생활을 하여보았지만 얼마나 괴로우시오 객지의 모든 불안한 것이―”

“관계찮습니다. 저는 객지나 고향이나 별로히 특이한 느낌을 가져보지 못하였읍니다.”

그 말에는 세상을 원망하는 듯한 빛이 흐르고 있다.

연순의 온후한 성질은 그 아버지를 닮은 것을 철하는 깨달았다. 연순의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온유한 성품을 가진 이외에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서도 겸손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돈 있는 사람으로의 김충열(金忠烈)이가 함흥청년계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것도 천품이 남달리 특이한 까닭이었다. 철하가 처음 대하는 김충열이와 이야기하는데 실증을 느끼지 않는것도 그 사람에게 인자한 맛이 있었던 까닭이다. 연순이는 아버지가 안으로 들어간 다음 모기향을 새로 바꾸어 피우고 나서

“퍽 지리하였겠읍니다. 아버지께서는 젊은 청년들을 만나기만 하시면 이야기로 세월을보내는 성질이 계시니까요”

“천만에――참 좋은 아버지를 모시고 계십니다.”

철하의 이 말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부러워하는 말이다. 일찌기 아버지의 낯조차 모르고 자라난 철하는 “아버지”라는 소리가 어떠한 자비를 의미한 문구가 되어있던 것이다.

명순이가 올라간 뒤로 오늘밤만은 적막을 느끼지 않았다. 그보다도 엄벙덩벙 떠들고 노는 바람에 명순이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것도 연순이와 그 아버지가 다정하게 대우하여 주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연순이와 밤이 깊도록 단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명순에게 큰 죄를 짓고 있는것 같았다. 그렇다고 연순이가 안으로 얼른 들어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나지 않았다.

연순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웃음과 말소리――가벼웁고 삿틋하게 양장을 한 연순의 자태――보들보들한 팔다리의 육체미와 곡선미――양장위로 볼그스름하게 올리민 젖가슴――이 모든 것이 철하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어찌 그 뿐이랴, 연순이는 지금 철하에게 대한 애모의 마음이 불길 같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아직 명순씨와 정식으로 약혼은 안 하셨겠지요”

연순이는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려고 하다가도 멈추고 하였다. 연순의 마음은 괴로웠다.

이 한마디의 말이 참아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밤 열두시가 되었다. 연순이는 며칠전부터 이 말을 하려고 하다가 참아 하지 못하고 “오늘 저녁에는――”이렇게 굳게 결심을 하였지만 오늘 저녁에도 하지못하고 그대로 침실로 돌아갔다.

침실로 돌아간 연순이는 두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가 웨! 그 말을 묻지 못하였던가? 못난이다”

속으로 이렇게 자기를 꾸짖었다. 연순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보기도 하고 또 데굴데굴 구을러보기도하고 머리를 헡으려 좍―좍―훑어보기도 하였지마는 괴로운 마음은 괴로운 마음 그대로 남아있다. 연순이는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여 보기는 처음이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도 남달리 받아왔고 동경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는 몸이나 학자를 넉넉히 보태어 줌으로 세상의 고생이라는 것은 맛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금년 여름부터 철하를 만나게 되자 마음이 돌연히 괴로워졌다. 그것은 친한 동무의 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연정에 넘치는 연순의 앞에는 친구도 없었다. 다만 철하를 다른 여자가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하와 명순이와 두 사람이 열중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연순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회를 놓지면 안 된다.”

“세상에서 나를 즘생이라고 하여도 좋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내것을 만들어야 되겠다.”

“친구의 애인――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빼앗자 빼앗다가 빼앗지 못하면 죽어버리자”

이렇게 힘있게 웨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시게는 새로 세시를 친다. 집안은 죽은 듯이 고요하다. 하늘에는 초생달빛이 희미하게 흐르고 있었다.

연순의 발길은 대담하게도 철하의 있는 방으로 행하고 있다. 주검을 각오한 연순의 앞에는 아무 것도 헤아릴 것이 없었다.

“부끄러움” 그까짓 것이 무엇이냐

누가 여자를 약하다고 하였던가 연순의 마음을 보라!

연순이는 대담하게도 무장을 튼튼이 하여가지고 사랑의 싸움터로 나섰다. 연순이는 철하의 방 마루에 올라섰다. 방안에서는 철하의 곤하게 자고 있는 숨소리가 높았다 낮었다 한다. 연순의 가슴에서는 툭툭하는 심장의 고동이 연순의 왼몸을 떨게 한다. 떨리는 그의 손은 문고리에 닿었다. 잡아다리니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방안의 전기불은 꺼저 있다. 연순이는 나즉한 목소리로

“철하씨――”

이렇게 불렀다. 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다. 그는 좀더 큰 소리로

“철하씨 철하씨”

불렀다. 연순의 몸은 더욱 떨리었다.

그 때이다. 방안으로부터 황겁한 목소리로

“누구십니까 누구십니까”

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저입니다. 연순이예요”

이 말을 들은 철하는

“아니 웨 이렇게 밤중에”

“급히 이야기할 일이 있어서요 문을 열어 주십시오 네! 얼른”

철하는 연순의 목소리가 떨리며 나오는 것을 번뜩 깨달았다.

철하는

“내일 아침에 봅시다”

이렇게 말할 뿐이고 문을 열어주지 안았다.

연순이는

“지금 꼭 말씀하여야 될 일입니다. 문을 제발 좀 열어 주세요”

그 말에는 위협하는 기운이 있었다. 철하는 처음에는 거절을 하려고 하였으나 연순의 태도가 이상하게 되여 가므로 집안사람의 의혹이나 받을는지 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은 다음 문을 열었다.

연순이가 들어왔다. 흩으러진 머리, 떨리는 몸, 흥분된 낯 희미하게 흘러 들어오는 달빛에 철하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놀래었다.

방에 들어온 연순이는 아무 말도 없이 앉는다. 철하는

“무슨 볼일입니까 얼른 말씀을 하십시오 집안 사람들이 보면 이상히게 생각하겠읍니다”

아무 말도 없이 앉았던 연순이는

“한가지 물어볼 말씀이 있어서 나왔읍니다”

“예! 무슨 말씀입니까”

“실례의 말 갈읍니다마는 명순씨와 정식으로 약혼을 하셨읍니까”

그 말은 떨리며 나왔다.

철하는 연순이가 이렇게 묻는 것을 의외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 밤중에 나온 연순의 행동을 보고라도 그러한 종류의 말이 나올 줄을 미리 짐작하였던 것이다. 또 연순의 입에서 어느 때든지 한번은 이러한 말이 나올 줄을 알았다. 평시의 행동을 보아 쉬웁게 추측을 한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이렇게 묻는고로 무에라고 대답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라 한참 주저하다가

“약혼 말입니까 정식으로는 하지 않었지만 정식으로 한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앞에는 그러한 형식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만일 당신을 열중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말을 마치자 연순이는 철하의 앞에 쓸어저운다.

철하는 큰 벼락을 맞은 사람 모양으로 정신이 멍――하였다.

어둠컴컴한 방구석으로부터 명순이가 나타난다.

“악몽 아! 확실히 악몽이다.”

철하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명순이도 명순이려니와 연순의 가엾은 모양――연순의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 철하의 엷은 잠옷을 새어 살에 다을 때 철하는 이상한 충동을 받았다.

“아니다 나는 아내 있는 사람이다. 명순이가 있지 아니한가”

속으로 또 다시 부르짖었다.

“정조 그것은 여자의 생명이다. 철하는 처녀의 마음! 아! 악몽이다”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나서

“연순씨 돌아 가십시오 한 남자로 어찌 두여자를 사랑 할 수가 있겠읍니까 당신은 아직도 세상의 고로를 맛보아 보지 못한 행운아올시다. 이 시기를 주의하지 않으면 일생을 망칩니다”

연순이는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위험한 시기―― 철하씨 저를 절부지의 처녀로 아십니까 웨 그런 말씀을 하서요 나는 나의일생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일시의 허영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 말에는 힘이 있었다. 철하의 처지는 참으로 어지러웠다.

“연순씨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고 당신이 명순씨와 친하게 지내는 것만치 저도 동무로 친하게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명순이? 친구? 나에게는 친구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다만 주검 밖에――”

연순의 말은 더 강경하여 갔다. 철하는 마음이 조리조리 하였다. ‘집안 사람에게 들키면 이런 망신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연순이를 돌러 보내려고 충고도 하고 위로도 하였다.

연순이도 철하의 성질을 얼마쯤은 아는고로 할 수 없이

“그러면 철하씨 저는 이 자리에서 부탁을 하고 돌아 가겠읍니다. 이세상에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당신에게 거절을 당하고 외로히 울고 있다는 것을――― 잊지나 말어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철하는 연순이가 돌아간 뒤 그날 밤을 한잠도 자지 못하였다.

그후 철하는 평시와 같이 본궁에 가고오고 하였다. 그러나 연순의 집에 있는 것이 퍽 괴로웠다. 연순이가 그 이튿날 부터 병을 빙자하고 나오지도 않고 또 병문안을 들어가고 연순이가 울기만 하고 철하는 도무지 마음이 붙지 않았다.

철하가 상경하기로 작정한 날보다 이틀전인 구월 초하룻 날이었다. 저녁차로 본궁에 갔다 돌아오니 책상 위에 전보 한장이 놓였다.

철하는 화구를 마루에 던져 버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전보를 펴보았다. 그전보를 들고 있는 철하의 손은 떨리었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의 빛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그 전보는 강수길에게서 온 것이었다.

“복섬 병 위독 즉상경 강수길”

이것이 그 전보의 본문이었다. 철하는 다시 한번 내려보았다. 틀림없이 복섬의 병이 중하다는 문구이었다. 철하는 전보를 책상 위에 던지며

“이미 죽은게다! 죽었어! 오직 급하면 수길이가 전보까지 하였을까”

이렇게 낙망을 하고 힘없이 주저 앉았다.

철하는 자기가 동경에 건너가 공부할 때 복섬이가 공장에서 얼마 받지 못하는 돈을 푼푼이 모아다가 보내어 주던 일이 생각이 나며 눈물이 난다.

“불쌍한 그 애가 좋은 세상을 못보고 끝내 죽고 말었고나”

철하는 복섬이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은 듯이 이렇게 입속말로 중얼 거리며 눈물을 흘린다. 철하는 세상의 모든 고생을 당할 때로 당하였지만 눈물까지 흐르도록 마음이 괴로워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낯도 모르고 어머니의 슬하에서 세상의 모든 설움을 똑같이 받아온 두 남매―― 철하는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보다 마음이 더 쓰리었다.

“수길이가 전보를 할때에는 복섬이가 죽지 않고는 안 할 것이다”

철하는 몇 번이나 되풀이를 하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울고 하였다. 철하가 수길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까닭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튿날 오전차로 철하는 함흥을 떠났다. 숨차게 달아나는 기차가 오히려 더디인 것 같았다.

그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지내던 연순이가 정거장까지 나와 준 것을 속으로 퍽 고맙게 생각 하였다. 연순이가 눈물을 흘리며

“안녕히 가세요 또 후에 만날 기회가 있기를――”

작별의 인사를 할 때 철하는 그것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들 사에에 흔히 있는 애처로운 작별같이 생각 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던 연순이의 원망에 빛나는 두 눈이 지금도 무서워 보였다.

기차안은 이전에 내려올 때 보다 손님이 덜했다. 한 의자에 하나씩 앉고도 오히려 남은 자리가 많았다. 철하는 의자에 비스듬이 누워서

“잠이나 들자 모든 괴로움을 잊어나 버리게”

이렇게 부르짖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아니한다.

“괴로운 놈에게는 갈수록 괴오움 밖에 닥처오지 않는구나”

이렇게 탄식을 몇 번이나 하였는지 몰랐다.

그 이튿날 아침 기차는 경성역에 도착하였다.

기차에서 내리는 철하의 마음은 퍽 조리조리 하였다.

“아직 살아나 있었으면 낯이라도 한번 보게”

철하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수길이가 정거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철하는 수길이를 보고 대뜸

“어떻게 되었는가 살었는가? 죽었는가”

이렇게 말하였다.

“자서한 이야기는 병원에 가서 합시다. 아직 죽지는 않었오”

말하는 수길의모양이 퍽도 곤해 보이는 것을 처하는 깨달았다. 그렇게 웃기를 잘 하던 수길이가 딴 사람으로 변하여진 것 같다.

해쓱하여진 낯빛 잠에 몰린 듯한 두 눈이 모든 것을 보아도 목섬이가 얼마나 위독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장질부사나 아닌가”

철하는 궁금하여 전차에 오르며 물어보았다.

수길이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자리에 앉는다. 철하는 더 묻지도 못하고 수길의 거동만 보고 있었다.

대학병원 앞에 가서 철하와 수길이는 전차에서 내렸다. 철하는 수길의 뒤를 따라 병실로 통하는 복도를 걸어 들어섰다. 수길이는 ‘육호실’ 이라고 써 붙인 문을 가볍게 열어제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철하도 들어섰다.

방안에서는 비린 내가 코를 쿡 찌른다. 복솜의 입에서는 시컴운 피가 흐르고 있다. 이것을 바라보는 철하의 가슴은 딱 막히었다. 철하는 어쩔 줄을 모르고 섰다가 복섬이가 누운 침대곁으로 달려가서 복섬의 손목을 쥐며

“복섬아 복섬아 아! 복섬아 이게 웬일이냐”

그 목소리는 처참하였다. 옆에 앉은 간호부는 흐르는 피를 받아내고 있다.

철하는 더욱 황겁한 목소리로

“복섬아 복섬아”

불렀으나 복섬의 ‘응 응’ 하는 신음 소리가 모기 소리같이 간신히 들릴 뿐이고 아무 대답도없었다. 옆에 섰던 수길이가

“복섬씨 오빠가 오섰읍니다. 함흥으로 가섰던 철하씨가 오섰읍니다”

이렇게 말하니 ‘오빠’ 라는 소리에 복섬이는 감었던 눔으 힘없이 뜨고 손을 내밀며 허공을 더듬는다. 철하는 그 손목을 잡으며

“복셤아 웨 이렇게 되었니”

그 때이다. 복섬이는 죽을 힘을 다하여 철하의 낯을 치어다 보다가

“오빠! 용서……”

애써 말하는 모양 같으나 그 목소리는 가늘고 약하였다. 입에서는 기침을 할 때마다 시커먼 피가 튀여 나온다.

“이 사람 수길이 웨 저애가 저렇게 피를 흘리는가? 무슨 병이라고 하던가”

철하의 묻는 말에 수길이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간호부가

“독약을 마셨답니다. 얼마 마시지는 않었는데 일찍 치료하였더면 이렇게도 안 되었을 것인데요―”

이렇게 말하였다.

독약을 마셨다는 말― 철하는 참으로 뜻하지 않았던 말이다.

“독약? 이 사람 수길이 웨 이 애가 독약을 마셨는가 말을 좀 하게”

철하는 미칠 듯이 수길의 손목을 잡아 흔들며 말하였다. 수길이는 입을 열기가 괴로워서 한참동안 머믓머믓 하다가

“자네가 함흥으로 내려간 뒤 틈이 있는대로 복섬이를 찾어갔었네 복섬이는 이상하게도 낯빛이 달러가며 몸이 늘 아프다고 함으로 속으로 늘 걱정을 하여 왔네”

수길이는 한숨을 한번 쉬고나서

“나는 나의 볼일도 바쁘고 해서 며칠 동안 찾어보지 못하다가 어저께 아침 호일고무공장에 전회를 걸어 보았더니 병으로 출근을 못한지 십여일이 된다고 하겠지”

수길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말 한마디에 한숨이 한번씩 뒤따라 나왔다.

“나는 갑자기 이런 말을 듣고 곧 복섬이를 찾어가 보았더니 정신 없이 앓고 있는고로 의사를 불러다가 진찰을 시켜보았네”

여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끊어 버렸다. 철하는 마음이 갑갑하였다.

“이 사람 웨 말을 안하는가 얼른 말하게”

알을 재촉하는 철하를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

“의사가 진찰을 하고 나더니 그 의사의 말이 임신중인 듯 하다는 말을 하데그려”

“에? 무어 임신중이라고?”

철하는 이렇게 웨치며 의자를 밀치고 벌떡 일어서서 복섬이를 한참 들어다 보다가 다시 힘없이 의자에 앉는다. 머리를 숙이고 앉은 철하는 그 다음의 말은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수길이는 다시 말을 이어

“나는 의사의 말을 부인하고 벌컥 성을 내며 뒤떠들었으나 그러나 복섬이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내 손목을 잡고 목을 놓아 울데 나는 그때에야 복섬에게 말못할 비밀이 있는 것을 아었네 의사가 돌아간 뒤 복섬이를 달래며 물어 보았더니”

수길의 입에서는 땅이라도 꺼질 듯한 한숨이 나왔다.

철하는 아무 말도 없이 앉았을 뿐이었다. 복섬의 입에서는 피가 나올 대로 나오고 있다.

“저 짐생같은 호일고무공장 영감쟁이가―――”

힘없이 앉았던 철하가 이 말을 듣더니 또다시 벌떡 일어서서 두 팔을 힘있게 흔들며 병원안이 깨여질 듯함 소리로

“무얼― 변원식의 아버지 그 놈말이야 아! 악마 죽여버려야 된다”

이렇게 부르짖는 철하의 왼 몸은 부르르 떨려었다. 이마에서는 구술 같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정신 없이 누워서 죽어저가는 복섬이를 돌아보고

“이 더러운 연아 그러면 웨 진작 죽지를 못했더냐?”

하고는 의자에 덜컥 주저 앉는다. 수길이는 또 다시 말을 이어

“그래 나는 자네를 올라오게 하려고 진보를 놓은 것인데 그 날밤에 가보니 그 때에는 벌써 복섬이가 독약을 마시고 정신을 잃어 버리고 신음하고 있었네 내가 전보를 치고 곧 돌아갔다면 이 지경까지도 안 되었을 것을――”

말끝을 흐려버리는 수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수길이는 친구의 누이동생인 복섬 그것보다도 애인인 복섬의 처첨한 지경에 눈물을 흘리었던 것이었다.

그 날 밤 아홉시 복섬이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나라로 돌아가고 말았다.

철하는 죽은 동생도 불상하였지만 황금의 헐은 장난 그것이 더욱 분하였다.

“죽어야 되지 잘 죽었다. 황금의 앞에서 마음이 약하여진 연들은 백번 죽어도 좋다”

철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와 같이 흐르고 있었다.

“복수 복수다 오직 복수가 있을 뿐이다. 내손으로 그놈을 때려 죽여야――”

이렇게 부르짖는 철하는 이를 간다. 힘있게 가는 잇소리―― 소름이 끼치는 그 소리는 깊은 가슴 속에서 올리미는 굳은 결심을 의미하는 것같다.

철하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복수’ 그것 밖에는 없었다. 철하의 두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그 날 밤과 그 이튿날 수길이는 철하를 달래기에 무한한 노력을 하였다. 철하가 그 놈을 때려 죽여 버리겠다고 문을 차고 뛰여 나가려고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붙을 앉혔는지 모른다.

“이 사람 참어야 되네 앞으로 길고긴 세월이 있으니 복수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지 않은가”

수길이는 이렇게 달래듯이 말하였다.

그러나 극도의 흥분에 날뛰는 철하의 귀에는 이러한 말이 들어가지 앟았다. 수길이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말리었다.

“신중하게 생각하게 이 일을 그렇게 급하게 하면 우리에게 도리어 불리할 것이니”

수길이는 거듭거듭 이렇게 말하였다.

“그 놈을 죽이고 내가 죽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놓게 놓아”

수길이는 철하의 허리를 껴안고 놓아 주지 않았다. 철하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수길이도 그 놈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일을 하는데는 절차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함부로 덤빈다면 그야말로 죽도 안 되고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길이도 철하만큼은 복수할 결심을 가지고 있었다.

철하를 극력으로 만류하는 것도 철하의 신변을 위하여서 그 급격한 행동을 만류하였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은 자기가 계획하는 일에 지장이될까 보아 힘써 만류하였던 것이었다.

“그까짓것 쯤이야 무얼 그렇게 급하게 안 하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담당을 하여 할 것이니 안심을 하게”

이렇게 말하는 수길도 철하가 그러한 일을 홀로 못할 남자가 아닌 것도 알았지만 어떠한 말이라도 하여서 그의 흥분된 마음을 낮추게 하기 위하여 임시 변통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철하의 극도로 흥분된 마음을 주저 앉히기에는 이러한 말이 아무 효과도 없었다.

“당장에 죽여 버려야 된다. 복섬이와 같이 입에서 피를 토하게 만들고야 말 것이야”

“마음이 약하거든 죽어라”

이렇게 부르짖을 뿐이다.

“돈! 사람의 목숨을 희롱하는 돈! 썩어가는 사회―”

“확실히 세상은 독소(毒素)를 내뿜고 있다. 황금의 독소를!”

철하의 힘 있는 부르짖음―그 앞에는 주검도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수길이는 아무리 철하가 날뛰고 부르짖고 하여도 놓아주지 않았다.

“안되네 이 사람 나도 그러한 설음은 자네 이상으로 당하여 보았네 참게 참아 할 일이 따로 있으니”

수길의 태도도 철하만큼은 강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