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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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어장(養魚場) 속에서 갓 들어온 금(金)붕어
어항이 무척은 신기(新奇)한 모양이구나.

병상(病床)의 검온계(檢溫計)는
오늘도 삼십구도(三十九度)를 오르내리고
느릿느릿한 맥박(脈搏)과 같이
유리(琉璃) 항아리로 피어오르는 물방울
금(金)붕어는 아득─한 꿈길을 모조리 먹어버린다.

먼지에 끄으른 초상(肖像)과 마주 대하야
그림자를 잃은 청자(靑磁)의 화병(花甁)이 하나
오늘도 시든 카네이션의 꽃다발을 뱉어버렸다.

유현(幽玄)한 꽃 향기(香氣)를 입에 물고도
충충한 먼지와 회색(灰色)의 기억(記憶)밖에는
이그러지고도 파리한 얼굴.

금(金)붕어는 지금도 어느 꿈길을 따르는가요
책(冊)갈피에는 청춘(靑春)이 접히어 있고
창(窓)밖으론 포도(葡萄) 알들이 한데 몰리어 파르르 떱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