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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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 빼놓고 모조리 짐승이었다

항구(港口)야
계집아
너는 비애(悲哀)를 무역(貿易)하도다.

모─진 비바람이 바닷물에 설레이던 날
나는 화물선(貨物船)에 엎디어 구토(嘔吐)를 했다.

뱃전에 찌풋─이 안개 끼는 밤
몸부림치도록 갑갑하게 날은 궂은데
속눈썹에 이슬을 적시어가며
항구(港口)여!
검은 날씨여!
내가 다시 상륙(上陸)하던 날
나는 거리의 골목 벽돌담에 오줌을 깔겨보았다.

컴컴한 뒷골목에 푸른 등(燈)불들,
붕─
붕─
자물쇠를 채지 않는 도어 안으로, 부화(浮華)한 웃음과 비어의 누런 거품이 북어오른다.

야윈 청년(靑年)들은 담수어(淡水魚)처럼
힘없이 힘없이 광란(狂亂)된 JAZZ에 헤엄쳐 가고
빨─간 손톱을 날카로이 숨겨두는 손,
코카인과 한숨을 즐기어 상습(常習)하는 썩은 살덩이

나는 보았다.
항구(港口),
항구(港口).

들레이면서
수박씨를 까바수는 병(病)든 계집을─
바나나를 잘라내는 유곽(遊廓) 계집을─

사십구도(四十九度), 毒한 주정(酒精)에 불을 달구어
불타오르는 술잔을 연거푸 기울이도다.
보라!
질척한 내장(內臟)이, 부식(腐蝕)한 내장(內臟)이, 타오르는 강(强)한 고통(苦痛)을,
펄펄펄 뛰어라! 나도 어릴 때에는
입가생이에 뾰롯─한 수염터 모양, 제법 자라나는 양심(良心)을
지니었었다.

발레제(製)의 무디인 칼날, 얼굴이 뜨거웠다.
면도(面刀)를 했다.
극히 어렸던 시절(時節)

항구(港口)여!
눈물이여!
나는 종시(終是) 비애(悲哀)와 분노(憤怒) 속을 항해(航海)했도다.

계집아, 술을 따르라.
잔잔이 가득 부어라!
자조(自嘲)와 절망(絶望)의 구덩이에 내 몸이 몹시 흔들릴 때
나는 구토(口吐)를 했다.
삼면기사(三面記事)를,
각혈(咯血)과 함께 비린내 나는 병(病)든 기억(記憶)을……

어둠의 가로수(街路樹)여!
바다의 방향(方向),
오 한(限)없이 흉(凶)측 맞은 구렁이의 살결과 같이
늠실거리는 검은 바다여!
미지(未知)의 세계(世界),
미지(未知)로의 동경(憧憬),
나는 그처럼 물 위로 떠다니어도 바다와 동화(同化)치는 못하여 왔다.

가옥(家屋) 안 짐승 오직 사람뿐
나도 그처럼 완고(頑固)하도다.

쇠창(窓)살을 붙잡고 우는 계집아!
바다가 보이는 저쪽 상정(上頂)엔 외인(外人)의 묘지(墓地)가 있고,
하─얀 비둘기가 모이를 쪼읏고,
장난감만하게 보이는 기선(汽船)은 퐁퐁 품는 연기(煙氣)를 작별 인사처럼 피어 주도다.

항구(港口)여!
눈물이여!

절망(絶望)의 흐름은 어둠을 따라 땅 아래 넘쳐흐르고,
바람이 끈적끈적한 요기(妖氣)의 저녁,
너는 바다 변두리를 돌아가 보라.
오─이럴 때이면 이빨이 무딘 찔레나무도
아스러지게 나를 찍어 누르려 하지 않더냐!

이년의 계집,
오색(五色),
칠색(七色),
영사관(領事館) 꼭대기에 때 묻은 기(旗)폭은
그 집 굴뚝이 그래 논 게다.
지금도 절름발이 노서아(露西亞)의 귀족(貴族)이 너를 찾지 않더냐.

등대(燈臺) 가까이 매립지(埋立地)에는
아직도 묻히지 않은 바닷물이 웅성거린다.
오─매립지(埋立地)는 사문장
동무들의 뼈다귀로 묻히어 왔다.
어두운 밤, 소란스런 물결을 따라
그렇게 검은 바다 위로는
쑤구루루…… 쑤구루루……
부어오른 시신(屍身), 눈자위가 헤멀건 인부(人夫)들이 떠올라온다.

항구(港口)야,
환각(幻覺)의 도시(都市), 불결(不潔)한 하수구(下水口)에 병(病)든 거리여!
얼마간의 돈푼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만 지갑,
유독식물(有毒植物)과 같은 매음녀(賣淫女)는
나의 소매에 달리어 있다.

그년은, 마음까지 나의 마음까지 핥아 놓아서
이유(理由) 없이 웃는다. 나는
도박(賭博)과
싸움,
흐르는 코피!
나의 등가죽으로는 뱃가죽으로는
자폭(自爆)한 보헤미안의 고집(固執)이 시르죽은 빈대와 같이 술 술 술 기어다닌다.

보라!
어두운 해면(海面)에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
짐승과 같이 추악한 모습
항시(恒時) 위협을 주는 무거운 불안(不安)
그렇다! 오밤중에는 날으는 갈매기도 까마귀처럼 불길(不吉)하도다.

나리는 안개여!
설움의 항구(港口),

세관(稅關)의 창고(倉庫) 옆으로 달음박질하는 중년(中年) 사나이의
쿨─렁한 가방
방파제(防波堤)에는 수평선(水平線)을 넘어온
해조음(海潮音)이 씨근거리고
바다도, 육지(陸地)도, 한 치의 영역(領域)에 이를 웅얼거린다.

항구(港口)여!
눈물이여!
나는
못 쓰는 주권(株券)을 갈매기처럼 바닷가에 날려 보냈다.
뚱뚱한 계집은 부─연 배때기를 헐떡거리고
나는 무겁다.

웅대(雄大)하게 밀리쳐 오는 오─바다,
조수(潮水)의 쏠려옴을 고대(苦待)하는 병(病)든 거의들!
습진(濕疹)과 최악(最惡)의 꽃이 성화(盛華)하는 항시(港市)의 하수구(下水口),
더러운 수채의 검은 등때기,
급기야
밀물이 머리맡에 쏠리어올 때
톡 불거진 두 눈깔을 휘번덕이며
너는 무서웠느냐?
더러운 구덩이, 어두운 굴속에 두 가위를 트리어 박고

뉘우치느냐?
게거품을 북적거리며
쏠려가는 조수(潮水)를 부러이 보고
불평(不平)하느냐?
더러운 게거품을 북적거리며……

음협(陰狹)한 씨내기, 사탄의 낙륜(落倫),
너의 더러운 껍데기는
일찍
바닷가에 소꿉 노는 어린애들도 주어가지는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