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16
16
[편집]그날 저녁 미스 영의 집에서는 LC당의 간부 회의가 열렸다.
T라는 최고 고문 영인이 의장이 되었다. 일을 결행할 찬스가 이르렀다고 미스 영의 주장으로 모인 것이었다. 최고 고문 두 사람 간부 네 사람의 회의─.
“미세스 매켄지.”
T가 찾았다.
“네?”
“어디서 나온 재료오니까?”
오늘 밤 열두 시에 찬두를 찾아가면 찬두는 그 공채를 곱다랗게 LC당에게 내어주기로 되었다는 것을 말할 때에 T의 질문이었다.
“신용할 만한 사람이 가운데 나서서….”
미스 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김소춘이의 행방은?”
“여러분이나 일반 나도 모릅니다.”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문득 T가 이런 말을 하였다─.
“당에서는 결코 반역자를 용서치 못합니다. 그 점은 다 아시겠지요?”
네라도 대답하는 사람 머리를 끄덕이는 사람─ 그 방 안의 여섯 사람은 다 이 점을 승인하였다.
“미세스 매켄지.”
“네?”
“미세스가 가지신 권총을 잠깐 봅시다.”
“?”
“아니 잠깐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스 영은 제 권총을 꺼내어 T에게 주었다.
“또 없읍니까?”
“없소이다.”
이 대답을 들으면서 T는 일어섰다.
“여러분, 내 말씀을 들으시오. 우리는 우리 LC당 당수 매켄지 씨의 부인일지라도 또는 우리 당 최고 고문일지라도 LC당에게 대해서 반역 행동을 할 때는 당규를 쓸 권리가 있읍니까 없겠읍니까?"
방 안에는 문득 불안한 공기가 흘렀다. 미스 영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되었다.
“있겠지요.”
간부들의 대답.
“옳소이다. 있읍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보고하는 한 가지 사실은 절대로 어김 없는 사실이니 그렇게 들으시오. 그그저께 밤에 우리는 전부 이 방안에 모여서 당수를 의장으로 한 가지의 일을 결정한 일이 있었읍니다. 즉 서인준이라는 조선 사람이 우리의 일을 너무 심히 방해할 뿐더러 우리 당의 내용을 현재로도 알고 있고 그 위에 더 탐색하고 하므로 서인준이를 죽여버리기로 결의를 한 일이 있읍니다. 그리고 김소춘이가 그 역할을 맡아 가지고 서인준이의 아파트로 향해 갔읍니다. 결의가 끝난 뒤에는 간부급들은 모두 제 주소로 돌아갔읍니다. 그런데 간부급들이 돌아간 직후에 웬 한 복면한 여자가 이 집에서 몰래 나왔읍니다. 그 여자는 달음박질해서 택시회사까지로 가서 거기서 서인준이에게 전화를 했읍니다. 꼭 필요가 있으니 지급히 옷을 입고 산보를 나오라고. 그런 뒤에 택시를 한 대 가지고 서인준이 있는 아파트로 갔읍니다. 서인준이를 죽이러 가던 김소춘이는 도보로 갔으니 자연히 이 택시가 먼저 아파트에 도착이 되었을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 여자는 서인준이를 유출해 가지고 목적도 없이 택시를 몰아서 인천까지 갔었읍니다. 김소춘이가 서인준이의 아파트에 도착한 때는 이미 서인준이는 그 여자에게 유출을 당해서 택시로써 인천을 가던 그때입니다. 그러니까 물론 목적을 달하지 못했읍니다. 또 여자도(그때 운전수의 말에 의지하건대) 아무 목적도 없었던 모양으로 무슨 이야기도 그다지 없이 인천까지 갔다가 날이 밝아서 그냥 도로 경성으로 돌아왔읍니다. 택시에서 내릴 때에 여자는 서인준이에게 무엇을 간곡히 당부하는 모양이었으나 불행히도 그 운전수는 영어를 알지 못해서 무슨 당부인지는 알지 못하겠답니다."
T는 말을 계속하였다.
“그 날의 그 여자가 누구냐 하면 여기 있는 우리 매켄지 대좌의 부인 우리 당 최고 고문의 한 사람.”
그냥 무슨 말을 하려 하다가 T는 귀를 기울였다. 아까부터 전화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분명히 전화였다. 매켄지 부인 전용의 전화였다.
T는 그 방으로 달려갔다. 갔다가 즉시로 돌아왔다.
“분명히 서인준이가 걸던 전화인데 기수를 챘는지 끊어 버립디다.”
그리고 T는 아까의 말을 그냥 계속하였다.
매켄지 부인의 그 괴상한 행동을 안 뒤부터 T는 부인을 엄중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이상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서인준이와도 자주 만나서는 무슨 밀의를 거듭하고 하였다.
그러던 중에 더욱 놀랄 일은 이 반역자 매켄지 부인은 LC당 전부를 경찰에 넘겨 주는 데까지 조력을 하는 것이었다. 어젯밤 매켄지 대좌만을 먼저 상해로 돌려보냈으니 인제는 경찰의 손이 언제 자기네 위에 내릴지 모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T는 그 대책을 강구하면서 일변으로는 부인 대한 감시를 그냥 엄중히 하는 중 웬 수상한 한 사람이 부인에게 무슨 수상한 편지를 가지고 오는 것을 발견하고 붙들어서 그 편지를 뺏어 보았다.
T는 거기서 매켄지 부인의 T 놀랄 만한 반역 음모의 실증의 얻었다. 그 편지는 서인준에게서 매켄지 부인에게 오는 것으로서 내용인즉 오늘 밤 열두 시에 LC당원을 윤 백작의 집에 보내서 공채를 빼어 올 것과 뺏어 오면 즉시로 부인이 맡아 둘 것과 그런 뒤에는 서인준이는 내일 아침 경찰에 LC당원 전부를 검거하도록 조력하고 어떤 장소에서 부인과 만나서 비행기로 상해로 달아나자는 뜻이 적히어 있는 것이었다.
T는 이 너무도 놀라운 반역 행동에 어떤 대책을 세울지 알 수가 없어서 다른 간부급 당원들과 의론을 하려던 차에 마침 부인이 윤 백작 댁 공채를 오늘 뺏어 낼 의론을 하자고 간부들을 이리로 청한 것이었다.
“내가 지금껏 한 말에 대해서는 전부 책임을 지리다. 첫째로 부인과 서인준이를 태우고 인천까지 갔다가 온 택시의 운전수가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거할 것이고 둘째로는 이 편지.”
T는 편지를 내어 휘둘러 보였다.
“편지가 증거물이 될 것이고 그 밖에도 부인 반역의 증거물이나 증거물을 얻어 내자면 비일비재일 것이외다.”
T는 여기서 일단 말을 맺었다. 그리고 미스 영을 보았다.
산 사람의 살빛이랄 수 없도록 창백하게 된 얼굴을 푹 수그리고 미스 영은 잠자코 있었다.
“미세스 매켄지, 내 말에 대해서 반증을 들 수가 있읍니까?”
T는 험한 눈을 미스 영에게 던지며 물었다.
미스 영은 대답치를 못하였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때의 미스 영의 마음을 단지‘공포’라고 간단히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LC당에서 반역자에게 내리는 벌─ 그것은 극형이었다. 사소의 용서도 없는 법이었다.
“미세스 매켄지, 왜 대답을 못하시오?”
위협이라기보다 오히려 비웃음을 띤 질문이었다.
미스 영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모든 일을 당수 매켄지 대좌의 결재에 의지해서야 할 것이외다.”
한 가지의 길─ 매켄지 씨의 결재를 요구한다는 방책 밖에는 눈앞에 이르른 이 위험을 임시로나마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외다.”
엇바람 T는 반대하였다.
“일은 급하외다. 경성 와 있는 당원 전체의 주소 성명도 서인준이는 알고 있읍니다. 언제 경찰의 손이 이를는지 알 수 없는 지금 형편이외다. 경찰이나 서인준이가 손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우리 할 일을 치러 버리고 도망치 않으면 안 될 형편이외다. 당수 안 계신 곳에서는 일이 위급한 경우에는 임기응변으로 처결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 이상 우리는 우리끼리 의론해서 이 일을 처결할 수 있읍니다.”
자, 이 일을 어쩌나?
인제는 꼼짝을 못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 자리의 최고 권위자는 T다. 본시부터 너무도 T의 잔표무쌍한 성격을 싫어하기 때문에 미스 영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T는 매켄지의 가장 신임하던 부하였다.
미스 영은 매켄지의 안해였다.
T와 미스 영과의 사이에 의견이 서로 다를 때에는 매켄지는 언제든 미스 영의 의견을 좇고 하였다. 이 때문에 영은 T에게 매우 질시까지 받고 있었다.
그러던 터에 오늘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 인제는 피할 길이 없었다.
T가 또 말을 꺼내었다.
“물론 우리 당수의 안해요 최고 고문의 한 사람인 매켄지 부인이니까 여러분들도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리다마는 일개 최고 고문의 생명보다 당수 부인의 생명보다도 LC당의 생명이 더욱 귀하외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최후의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서인준이가 아까 전화를 걸다가 끊어 버렸으니까 언제 어떤 위험이 이를지 알 수 없어. 그러니까 여러분께 십 분간의 여유를 드릴 터이니 그 십 분간에 마음으로 작정을 해서 어떻게든지 처결을 하고 우리도 이곳을 피할 필요가 있을 줄 압니다.”
그리고 T는 시계를 제 앞에 꺼내어 놓았다.
“자, 십 분.”
십 분까지의 필요도 없는 일이다. 아무리 당수의 안해라 할지라도 당을 배반하고 당을 멸망케 하려던 계획이 드러난 이상에는 즉시로라도 대답을 할 수가 있는 일이다.
한 분이 흘렀다. 두 분이 흘렀다. 세 분이 흘렀다.
십 분도 어언간 흘렀다.
“자, 시간이외다. 용서요? 처벌이오?”
“처벌이외다.”
이구동성으로 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또 한가지 아까 서인준에게서─ 매켄지 부인에게 편지를 가지고 왔던 인물은 보통 인물이 아니요 분명히 서인준의 부하. 그 자는 어떻게 하잡니까?”
“동시 처벌 !”
역시 사구동성이었다.
T는 무거운 걸음으로 그 방을 나갔다. 나갔다 돌아올 때는 결박진 안 군을 덜레덜레 끌고 왔다.
미스 영도 간부들의 손으로 결박을 지웠다. 그리고 미스 영과 안 군의 두 사람을 남향쪽 담벼락에 갖다 세웠다.
“상해서의 우리의 당규는 권총으로 사살하는 것이지만 저기서는 음향을 삼갈 필요가 있으니까 칼을 던져서 심장에 꽂기로 합시다.
이의가 없었다.
네 사람의 당원은 두 사람씩 좌우편으로 갈라서서 지켰다. T는 인제 바야흐로 형을 받을 사람들의 맞은편 쪽에 가서 섰다. 손에는 어느덧 시퍼런 해군 나이프가 두 자루 쥐어 있었다.
“미세스 매켄지, 마지막 할 말은?”
미스 영은 대답치 않았다.
“너는?”
이번에는 안 군에게 물었지만 안 군도 대답치 않았다.
“할 말도 없는 모양이니 그럼─.”
해군 나이프를 쥔 T의 오른편 팔은 차차 높이 올라갔다.
“T씨 잠깐 기다리시오.”
고요한 음성이 어디선지 들렸다.
“내 양손에는 권총이 있으니 손을 드오.”
아까 레스토랑에서 미스 영에게 전화를 걸다가 이외에도 웬 굵은 남성의 목소리를 들은 서인준은 덜컥 수화기를 도로 걸어 버렸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왜 그런지 갑자기 불안증이 생겼다. 무슨 불길한 일이 생겨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미스 영의 신변에 무슨 위험이 박두한 듯한 공포심조차 일어났다.
가져다 놓았던 음식도 채 먹지 않고 인준이는 그 레스토랑을 뛰어나왔다.
미스 영의 집으로 서인준은 거의 달음박질하다시피 해 갔다.
담장이라고는 달리 없고 행길과 뜰의 경계선을 구별키 위하여 낮다란 쇠울이 있는 것을 넘어서 인준이는 그 집 뜰로 들어갔다.
경성 시내의 비교적 한산한 동리라 통행객도 인젠 없었으며 뜰로 황폐해 보이는 그 틈으로 인준이는 집 건물이 있는 쪽으로 차차 가까이 왔다. 불이 켜 있는 방이 두셋 있었다. 불 켜 있는 첫 방을 들여다보매 하인의 방인 듯싶었다. 그래서 다음 방으로 발소리를 감추어 가면서 갔다. 커어텐을 내려서 방 전체는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집의 구조상 식당인 듯싶은 방이었다. 식탁 같은 탁자를 둘러 사오 인이 앉아 있었다. 휘장을 내렸는지라 다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휘장틈 한편으로 여자의 옷 모양이 보였다. 미스 영인지? 그 좁은 휘장 틈으로나마 정면으로 보이는 인물은 T였다. 잔혹한 미소를 간간이 얼굴에 나타내며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T라는 인물은 인준이도 상해서 간간 보던 인물이었다. 권총 경기회나 검술 명기회 같은 데서 간간이 인준이와도 시합을 해본 일도 있는 인물이었다.
인준이는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무슨 말이 행여 새어 나오지나 않나 하고, 그러나 두터운 담벼락과 겹창에 격해서 안에서 하는 말은 들리지를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한 가지 말이 들렸다.‘반역자’라는 말이었다.
인준이는 가슴이 뜨금하였다. 미스 영의 반역적 행동이 발각되지나 않았나 근심되었다.
인준이는 지극히 가만히 들창을 들어 보았다. 걸리지는 않은 모양으로 조금 올라갔다. 여기서 인준이는 용기를 내었다. 마침 곁에는 무슨 거적이 하나 놓여 있었다. 들창 밖에는 마침 무슨 못이 박혀 있었다. 이 요행스런 두가지의 일을 이용하여 인준이는 그 거적을 못에다가 걸어 놓아 들창을 열지라도 바람이 안으로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 뒤에는 문 여는 공작에 전력을 다하였다. 현미경으로나 보아야 알아볼 수 있을이만치 조금씩조금씩 들창은 열렸다. 그 열리는 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 그것은 미스 영의 반역 행동이 발각이 된 것이 분명하였다.
드디어 미스 영에게는 사형의 선고가 내렸다.
어디 가두어 두었었는지 안 군도 이 방으로 끌려 왔다. 두 사람을 함께 사형에 처하려는 것이었다.
일변 미스 영을 결박지며 안 군을 끌어오며 이렇듯 좀 소란스런 기회를 타서 인준이의 몸은 가볍게 들창턱을 넘어섰다. 만약 누구든 그 방향을 주의하여 보는 사람이 있었더면 커어텐이 약간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였겠지만 모두 이 놀라운 반역(당수의 안해가 당을 배반했다는)에 정신이 팔려서 이쪽은 주의도 안하였다.
반역에 대한 벌로서 사형을 집행하려 하였다. 바야흐로 해군 나이프는 미스 영의 심장을 향하여 나타나려 하였다. 그때는 인준이는 양손에 각기 권총 한 자루씩을 쥐고 인제 자기가 취할 행동의 순서를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경악에 떨었다. LC당 간부들만 아니라 미스 영이나 안 군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너무도 의외이요 너무도 극적이었다.
“T씨, 권총 경기대회에서 T씨는 내가 권총을 어떻게 쏜다는 것을 보신 일이 있지요? 손에 든 칼을 내려뜨리지요. 저기 네 사람도 꼼싹달싹 말고….”
모두 명령대로 안할 수가 없었다.
“안 공, 엎디어서 기어서 이리로 오시오. 내 권총 쏘는 데 방해가 안 되도록.”
안 군은 허리를 구부려서 키를 기껏 낮추어 가기고 인준이에게로 왔다.
인준이는 다시 LC당원에게 명하였다.
“다섯 명 다 한 곳으로─ 저 서북쪽 모퉁이로 모이시오.”
다섯 사람은 그리고 모였다.
그편으로 오른손에 잡은 권총 부리를 향한 채 인준이는 왼손으로 안 군의 결박을 풀러 보았다. 그러나 왼손 한 손으로는 끄를 수가 없도록 단단히 매었다.
“안 공, 저 T씨가 내려뜨린 칼을 좀 발길로 이리로 끌어오시오.”
그 칼을 가지고 인준이는 안 군의 결박을 잘랐다.
“자 안 공, 미스 영의 결박을 끄르고 저 다섯 명을 모두 좀 비끄러매어 주시오.”
미스 영의 결박은 끌러졌다. 다섯 명의 LC당원은 안 군의 손으로 결박지어졌다.
“선생님!”
“선생님!”
미스 영과 안 군은 눈물진 눈으로 인준이를 우러러보면서 가까이 왔다. 하마터면─ 하마터면이 아니다. 벌써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선생님, 어떻게 여기를.”
“미스 영. 그것은 차차로 할 수 있는 말─ 지금 형세가 급하외다.”
“네?”
“아까 이 앞까지 이필호 형사가 내 뒤를 따라왔는데 당연히 이리로 들어올 터인데 안 오는 걸 보니 경찰서로 응원대를 부르러 갔나 보이다.”
“네?”
여러가지의 큰 일이 딱 눈앞에 이르렀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된 이상에는 윤 백작 댁 공채 문제도 급속히 해결을 지어야 할 것이다.
LC당원도 한꺼번에 몰아 잡아야 할 것이다.
자기네들이 도망칠 활로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급속히 어지럽게 전개되었다.
LC당원의 힘으로 윤 백작 댁 공채를 훔쳐 내려 했었는데 지금은 그것은 바랄 수도 없다. 그 공채 문제를 인젠 내던지지 않을 수가 없게 보였다.
지금까지 삼사 년간을 쌓아 오고 계획해 오던 탑─ 그것을 일시에 허물어버릴 것인가.
당원들이 탄 배는 지금 한창 황해 바다를 닫고 있겠지. 그 당원들은 한결같이 인제 내일이면 서박사가 공채를 가지고 비행기로 자기네 위를 날아갈 줄로 믿고 있겠지.
그러나 인제는 그것을 뺏어 낼 방책이 없다. 이필호의 눈은 잠시를 떠나지않고 자기의 위에 부어질 것이며 다른 당원들은 다 돌려보낸 지금에 있어서는 어찌할 방책이 없었다.
어떻게 하나? 포기하자니 그 새 들여 온 공력이 아까웠다. 포기치 말자니 도리가 없었다.
“참 미스 영. 이 사람들이 LC당원이라는 증거품이 있어야겠는데.”
“저도 그걸 생각했읍니다. 여기 상해 본부 당원의 명부록과 각각 그 아래 당자의 사인이 있읍니다. 이번 조선 왔던 사람들은 모두 상해 본부 소속이니까 이걸 가졌으면 되겠지요.”
미스 영은 장 서랍에서 무슨 커다란 책 하나를 꺼내어 준다.
펴보매 당수의 이름을 어느덧 칼로 오려 내어 있었다.
“최고 고문 매켄지 부인의 이름은 왜 지우지 않았읍니까?”
당원 명부를 들여보다가 인준이가 이렇게 물을 때에 미스 영은 미소하면서 대답하였다─.
“미세스 매켄지라는 인물은 이 지구상에 존재치 않으니까요.”
“다른 증거품은 없읍니까?
“또 있읍니다. 이 편지를─ 이것은 모두 조선 잠입해 있는 당원들에게 그 새 당수며 매켄지 부인에게 보낸 편지들입니다. 매켄지 씨의 이름을 감출 필요상 봉투는 모두 불살라 버렸읍니다. 일의 경과며 진행에 대한 보고서들인데 그 필적은 유력한 증거품이 되겠지요.”
“특징 있는 Y자를 가진 타이프라이터는?”
“저것.”
미스 영은 모퉁이 책상 위에 놓인 타이프라이터를 가리켰다.
“기관총이며 기타 무기들은?”
“저 골방 속.”
그러나 여기 그냥 가장 중대한 문제는 남아 있었다. 윤 백작 댁 사십만 원은 그냥 어떻게 처치할지 해결이 없었다.
“미스 영 중대한 문제가 남았읍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십 분 이내로 이필호 형사가 이리로 올 듯싶습니다. 지금 경찰서로 응원대를 부르러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 전으로 해결지어야 할 중대한 문제 두 가지─ 하나는 윤 백작 댁 공채 절취 문제 또 하나는 미스 영과 안 공의 탈출 문제.”
“윤 백작 댁에는 제가 몸소 가리다.”
“네?”
“안 선생이시라고요? 저 안 선생님을 모시고 제가 가겠읍니다.”
“미스 영 자신이?”
“네.”
“능히?”
“선생님 잊으셨읍니까. 저는 LC당의 최고 고문의 한 사람이올시다. 그만 일은 몇 백 번 겪어 보았는지!”
“참.”
서인준이도 미소하면서 머리를 끄덕이었다. 동시에 민첩한 인준이의 머리에는 또 새로운 플랜이 즉시로 섰다.
“미스 영, 부탁합니다. 수고해 주십쇼. 인제 즉시로.”
“경찰의─ 온 활동력이 LC당에 모인 틈을 타서 인제 즉시로 LC당 검거만 끝나면 그 뒤에는 당연한 순서로 윤 백작 댁으로 보호의 힘이 퍼질 테니까 그 전으로 결행해야겠읍니다. 나는 경관들을 데리고 LC당 잠복 장소를 찾아다녀야겠읍니다. 그동안에 미스 영은 윤 백작 댁에 가셔서 목적물을 손에 넣은 뒤에 자동차로 ×× 정 ×× 상회 앞에 기다리고 계셔요 검거가 끝나고 그것이 기뻐서 두선들거리는 틈을 타서 나는 몰래 거기서 비어져 나와서 미스 영이 기다리고 계신 곳으로 가리다. 그리고 윤 백작 댁에서 공채를 강탈당한 사건이 경찰에 보고될 때쯤은 우리는 경성이라는 위험 지대를 벗어나게 되도록 이렇게 플랜을 세웁시다.”
“선생님은 왜 우리와 같이 윤 백작 댁에 가시지 못하세요.”
“큰일 날 말씀─ 필호가 경관들을 데리고 이리로 달려왔다가 내가 없으면 제일 먼저 윤 백작 댁을 경계하리다. 그러니까 나는 한참 동안은 마음에는 없지만 필호와 함께 돌아다니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그러면 몇 시쯤?”
“그건 검거의 지속에 달렸으니까 미리 시간을 작정할 수 없읍니다. 좌우간 그리로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갈 테니 거기서 기다려 주세요. 필호 일행이 오기 전에 어서 이 집을 피해 주십쇼.”
이리하여 인준이는 미스 영과 안 군을 내어보냈다. 그때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결박진 T에게 가서 T의 주머니를 뒤지매 아까 인준 자신이 안군에게 부탁해서 미스 영에게 보내려는 편지가 과연 있었다. 인준이는 그 편지를 불살라 버리고 재까지 흔적 없이 날렸다.
이 일을 방금 끝내자 몇 대의 자동차의 싸이렌 소리가 요란히 나더니 이 집으로 한 무리의 사람이 몰려 들어왔다. 필호와 사복 경관 이십여 명이었다.
“선생님 조력하러 왔읍니다.”
들어오면서 이렇게 말하는 필호를 돌아보며 인준이는 미소하였다.
“왜 늦게 오셨소?”
“선생님, 저 올 줄을 아셨읍니까?”
“내 뒤를 밟다가 이런 광경을 본 이상에야 올 줄 알지 않구….”
하며 인준이는 손을 들어서 거기 결박되어 있는 네 명의 이름을 차례로 말하였다.
“선생님, 여자도 한 사람 있는 듯하더니.”
“아마 시원한 공기라도 마실 양으로 나간 모양이외다. 가해자만 잡았으면 피해자야 차차 알아본들….”
이만치 어름거려 두고 인준이는 아까 그 LC당의 명부를 필호에게 내주었다.
“LC당 상해 본부에 속한 당원의 이름과 싸인과 사진─ 거기 곁에 적선(赤線)을 그은 것은 내가 그은 것인데 현재 경성에 와 있는 사람들이외다.”
“그 주소는?”
“전부 압니다.”
“인제로라도 체포할 수 있겠지요?”
“무론….”
“선생님, 그 피해자라는 여자는….”
형사의 눈은 아무리 하여도 미스 영을 그저 넘기기 싫은 모양이었다.
“글쎄, 무얼 하는 여자인지 어느 나라 여자인지도 모르겠는데─ 예의상 레디에게 너무 캐어서 묻기도 어렵고 해서. 그만그만 해두었더니 어디로 나가 버렸구료.”
필호는 경관들에게 이 집을 온통 수색하기를 명하였다. 뜰이며 방이며 마루 아래며를 무론하고 통 수색을 시켰다.
세 대의 기관총이며 기타 다수한 무기가 나왔다. 매켄지 씨에 관해서 증거될 물건은 이미 미스 영이 죄 없이한 뒤라 나오지 않았지만 LC당에 대한 증거품이 꽤 여러가지 나왔다.
그러나 아까 수상턴 여인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이 방에서 방 두 개를 건너서 있는 방이 그 여인이 거처하던 방인 듯한데 방의 주인만 없을 뿐 아니라 주인의 근본을 말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선생님 그 여자가 누구인지 모르십니까?”
“아까는 모른다 했지만 내 아는껏 말하리다. 미세스 매켄지.”
“미세스 매켄지. 그럼 LC당의 최고 고문의 한 사람입니다그려.”
“그런 모양입니다.”
“그럼 아까 그 광경을 어떻게 해석해야겠읍니까?”
“미세스 매켄지는 내 상해 시대의 친구외다. 우연히 여기서 만나서 그 부인이 LC당의 최고 고문인 것을 간파하고 그런 좋지 못한 곳에서 탈당하기를 권유했더니 승낙을 합디다. 승낙할 뿐더러 LC당원들의 경성 기숙소까지 알으켜 주고 내 조력을 많이 했어요. 아마 그것이 발각이 되어 당규에 의지해서 벌을 하려던 모양이지요.”
그럴듯이 꾸미어는 대었다.
그러나 필호는 역시 머리를 기울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에는 최대 스피드로서 LC당을 검거하지 않았다가는 도로혀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이다.
사복 경관 여섯 명을 이 집 모퉁이 모퉁이에 배치를 하여 누구를 물론하고 이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검속하도록 마련되었다.
이미 서인준에게 잡힌 다섯 명(최고 고문 한 명 간부 네 명)은 자동차에 실어서 경찰서로 몰아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의 경관들은 서인준의 지휘 아래 제이급에서 제사급까지 LC당원들을 잡아 내려 이 집을 나섰다.
일견 보통 오입장이쯤으로 보이게 변장한 사복 경관들이었다.
그것을 마치 시험관 속에 든 물건을 집어 내듯 LC당원은 하나씩 죄다 잡았다. 잠잘 준비를 하던 사람, 이미 잠들었던 사람─ 조금의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모두 곱다랗게 잡혔다.
×× 경찰서에는 서장 이하 각 주임이며 경찰부며 검사국에서까지 모두 와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를 인준이의 지휘로 잡혀 온 LC당원 전부와 잡은 경관들과 필호와 인준이는 개선장군과 같이 들어섰다
“선생님 덕분으로.”
“천만에.”
인사는 서로 사괴어졌다.
이 LC당 검거의 치하가 모두 끝나자마자 사법계 주임이 필호를 불렀다.
“여보게 이 군.”
“네?”
“또 한가지 괴변이 생겼네.”
“뭣입니까?”
“여기 잡아온 게 LC 당원 전분가.”
“경성은 전부올시다.”
“괴상한 일이 생겼어. 한 사십 분 전쯤 윤 백작 댁에서 전화가 왔는데 LC 당원이노라고 자칭하는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가 그 댁에 들어가서 윤찬두씨를 위협을 하고 무슨 귀중한 물건을 뺏어갔다고? 그래서 즉시 임검을 하고 싶으나 이 일도 또 적지 않은 일이라서 자네네들이 돌아온 뒤에 임검을 하려고 우선 경관 네 사람만 먼저 보냈는데 이게 대체 웬일이겠나?”
필호는 깜짝 놀라는 것이 분명하였다. 필호의 당황해 하는 눈치가 한순간 인준이에게로 왔다가 즉시 주임에게로 돌아갔다.
“남녀 한 쌍이라지요.”
“응.”
“짐작합니다. 각 파출소에 수배해서 이십 사오 세 가량 된 외국 여자가 경성을 탈출치 못하도록 지급히 해주시면 좋겠읍니다. 현장 임검도 즉시로 하십시다.”
그리고 필호는 돌아서서 서인준이에게로 왔다.
필호가 가까이 오는 동안 인준이의 심장 고동은 가속도로 높아 갔다.
“서 선생님!”
“?”
“잠깐 저 밖으로 나가십시다.”
인준이는 대답 없이 필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선생님”
“?”
“설명해 주십시오.”
“?”
“무론 미세스 매켄지일 것입니다. 선생님의 지휘일 게입니다. 지금 미세스 매켄지는 어디쯤 있겠읍니까?”
“….”
“선생님 제 마음을 양해해 주세요. 저는 차마 선생님 어깨에 제 손을 얹을 수 없읍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국법을 어기시면 할 수 없읍니다. 이번 일도 무론 선생님의 지휘로써 전 경찰력이 LC당에게로 모인 잠깐의 틈을 이용해서 미세스 매켄지가 한 일로 봅니다. 선생님께서 미세스 매켄지의 있는 곳만 가르쳐 주시면 저는 매켄지 부인을 개인적으로 방문해서 그 공채를 도로 달래다가 바치고 범인은 놓쳐 버렸다고 보고할 생각입니다. 제 마음을 양해해 주세요.”
인준이는 괴로웠다. 이 호의를 무시한다는 것은 너무 몰인정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의 받은 사명을 또한 어찌 버리랴.
의리와 인정─ 이 틈에 끼여서 잠시를 인준이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 인준이는 결심하였다. 몰래 오른손으로써 필호의 옆구리를 꽤 힘있게 질렀다. 필호는 푹 그 자리에 넘어졌다.
필호가 인제 깨어나려면 적어도 이삼 분. 그동안 인준이는 몸을 피하여 미스 영과 약속한 곳으로 달려가서 이후에 취할 길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필호의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인준이는 몸을 날려서 경찰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약속한 곳까지 뛰어가 보니 미스 영과 안 군이 택시 안에서 인준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빨리 문을 열어 준다.
그러나 인준이는 택시에 오르지 않았다.
“미스 영, 얼른 잠깐 내리십쇼.”
심상치 않은 음성이었다. 재쳐 그 까닭을 물어 보지 못하고 미스 영은 택시에서 내렸다.
“이리로.”
인준이는 당황히 미스 영을 이끌고 좁은 골목짜기로 들어갔다.
“미스 영, 일이 급하게 되었소이다. 이필호가 전부 기수챈 모양이외다. 지금 각 파출소며 주재소에 양장한 여인과 남자가 경성을 탈출치 못하도록 수배를 명했읍니다.
“네?”
미스 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면?”
“나는 방금 이필호 형사를 기절시켜 놓고 여기까지 달려왔읍니다. 사태는 급하외다. 이야기를 길게 할 틈도 없읍니다. 그러니까 미스 영은 두말 말고 내 명령을 절대로 복종하십쇼.”
“선생님의 명령을 복종치 않은 일이 있읍니까?”
인준이는 주머니에서 무슨 뭉치를 하나 꺼냈다.
“조선은행권 오천 원이외다. 이것을 자동차 운전수에게 주십쇼. 저 안 공네 집에 팽 양(孃)이라는 우리 여동지의 낡은 옷이 있을 겝니다. 그 옷을 곧 바꾸어 입으시고 운전수는 자동차에서 내려 쫓은 뒤에 미스 영이 운전수로 되시고 안 공은 조수로 되어서 비행기 은닉소까지로 곧 가십쇼!”
“선생님은?”
“미스 영은 단지 양장한 이십 사오 세 되는 미인이라고만 수배되었지만 서인준이는 생김생김까지 똑똑히 알아서 소위 지명수배가 될 것입니다. 함께 가다가는 둘이 다 잡히는 날이외다.”
“그럼?”
이 질문을 받고 인준이는 머리를 숙였다. 숙이고 한참을 있다가 대답하였다.
“아마 나는 빠져 나갈 길이 없을 듯싶소이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어요!”
“글쎄, 알 수 없소이다.”
필호에게 대한 의리로 보더라도 잠깐 형무소 생활을 각오치 않을 수가 없었다.
미스 영은 잠시 인준이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그러다가 와락 달려들었다.
“선생님!”
“미스 영, 시간이 흐릅니다. 빨리 하라는 대로 하셔요. 아까의 약속이외다. 절대로 복종하마고…”
“선생님 윤씨 집에서 범행을 한 사람은 제가 아닙니까. 제가 경찰에 자수를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조종한 일이라는 것을 필호는 잘 압니다. 그뿐 아니라 미스 영이 경찰에 잡히면 그 공채는 누가 상해로 가져갑니까? 나는 이미 지명수배를 당한 이상 도저히 탈출할 수는 없고…”
“저는 무슨 자격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리까?”
“미세스 서의 자격으로….”
“선생님!”
끝이 없었다. 미스 영을 위로할 말도 없었다.
차마 놓지를 못해서 그냥 매달리는 미스 영을 인준이는 무정히 떼어버렸다.
“미스 영, 상해 가시거든 여러분께 내가 안부하더라고 해주십쇼. 내 누님이 계십니다. 퍽 미스 영을 귀애하리다. 우리 동지들의 배가 아까 낮에 인천서 상해로 출발했는데 내일 그 배를 발견하시면 그 위에서 저공 비행을 해주십쇼. 내가 동지들과 약속한 바입니다.
이런 몇 가지의 부탁을 한 뒤에 인준이는 그냥 정신없이 서 있는 미스 영을 재촉하여 할 일을 시켜 놓고 자기는 어두운 가운데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