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07장
7. 가방을 되찾은 신사
택시에서 내린 신사는 헐레벌떡 은철이의 일터로 달려갔다.
“여기 앉았던 소년은 어디로 갔지?”
신사는 이렇게 외치면서 은철이의 일터를 가리켰다.
쭉 늘어앉은 소년들 가운데 은철이와 봉팔이의 자리만이 텅 비어 있었다. 신사는 얼굴빛이 핼쑥해졌다. 가방을 가지고 두 소년이 도망친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였다. 누군가 신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가방 잊으셨지요? 이 가방!”
신사는 뒤를 홱 돌아보았다. 은철이가 가방을 가슴에 안고 뛰어오고 있었다.
“오오, 내 가방!”
조금 전까지도 잃어버린 줄 알았던 손가방을 본 순간 신사는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신사는 감격한 얼굴로 가방과 함께 은철이의 몸뚱이를 끌어안았다.
“아저씨가 이 가방을 잊고 가신 것을 알고 곧 전차 정류장으로 달려갔어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억제하면서 은철이는 말했다.
“너는 정말 착한 소년이다! 사실 전차를 타려다가 마침 빈 택시가 오기에 그걸 타고 갔었지.”
신사는 기쁨이 넘쳐흐르는 얼굴로 소년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들었다.
“오오, 내 가방......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신사는 가방이 무사히 자기 손에 돌아온 것이 정말 꿈처럼 신기했다. 그러나 은철이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너는 참 착한 소년이구나. 네 이름이 뭐나?”
신사는 은철이의 손목을 정답게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은철...... 서은철입니다.”
은철이의 목소리가 약간 떨려 나왔다. 자기가 2만 원을 빼낸 것도 모르고, 신사가 착한 소년이라고 칭찬해 주는 것이 두려웠다. 마음이 아팠다. 양심이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은철이는 차라리 2만원을 주머니에서 꺼내 놓고 엉엉 목 놓아 실컷 울고 싶었다.
‘나는 도둑이에요! 나는 죄인이에요! 나는 나쁜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와 같은 양심의 소리와 함께 마음속에선 악마의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아냐, 나는 이 돈을 훔친 게 아냐. 얼마 동안만...... 그래, 한 달 동안만 이 돈을 빌리는 거야!’
은철이의 마음속에 그런 고민이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신사는 그저 가방을 찾은 것이 너무 기뻐서, 가방을 열자마자 돈이 제대로 있는지 세어 볼 생각도 않고 그 중 1만 원짜리 한 뭉치를 꺼내 은철에게 내주었다.
“고맙다. 너 같은 소년만 있다면, 이 세상에는 법도 필요 없고 경찰도 필요 없을 거야. 자아, 이건 얼마 안 되지만, 너의 착한 행동에 대한 이 아저씨의 고마움의 표시다. 받아 두어라.”
“아...... 아저씨, 저는...... 저는......”
은철이는 짧게 외치면서 손으로 신사가 내주는 돈 뭉치를 떠밀었다.
“저는 그걸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돈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던 은철이로서는 신사의 행동이 정말 황송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황하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자 신사는 더한층 감동한 얼굴로 소년의 겸손한 마음씨를 칭찬했다.
“너야말로 요즈음 보기 드문 착한 소년이다. 아니, 너는 착할 뿐 아니라 훌륭한 소년이다! 아저씨가 이대로 돌아가기는 너무 서운하니까, 어서 이 돈을 받아라.”
신사는 굳이 사양하는 은철이의 주머니 속에 재빨리 돈 뭉치를 넣어주고는 사람들 사이로 총총히 사라졌다.
“아, 아저씨, 안 됩니다! 이 돈을 가지고 가세요!”
은철이가 사람들을 헤치고 신사의 뒤를 따라가려는데, 은철이의 팔목을 붙잡는 손이 하나 있었다.
“떠들지 마!”
봉팔이는 무서운 얼굴로 명령하듯이 말했다.
“아니야, 빨리 이 팔을 놔! 저 분을 놓쳐 버리면 안 돼!”
은철이는 소리를 높여, 이미 그 자리를 떠나 버린 신사를 불러 댔다.
“아저씨, 아저씨! 가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저씨, 잠깐만......”
그러나 신사는 벌써 저만큼 걸어가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므로, 은철이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빨리 날 놓아 줘! 저 분을 놓치면 큰일이야!”
은철이는 봉팔이의 손에서 빨리 벗어나 신사의 뒤를 쫓으려고 애썼다.
“이 자식아! 이리와!”
봉팔이는 아까처럼 은철이의 멱살을 잡고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너, 앙큼한 짓 곧잘 하더라! 누가 모를 줄 아나? 두 뭉치를 몰래 훔친 자식이 뭐 어째? 그냥 주는 한 뭉치는 못 받겠다고?”
순간 은철이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한 뭉치는 네가 갖고 두 뭉치는 이리 내놔! 그렇지 않으면 알지? 너는 내 말 한마디면 오늘 밤부터 유치장 신세야. 감옥살이라고!”
봉팔이는 무서운 얼굴로 은철이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은철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기의 멱살을 잡은 봉팔이의 팔목을 뿌리쳤다.
“이자식이...... 이 도둑놈의 자식이!”
마침내 두 소년 사이에는 아까처럼 또다시 무서운 격투가 벌어졌다. 때리고 차고 받고 물고...... 그러나 은철이는 도저히 봉팔이의 힘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은철이는 또다시 땅 위에 깔려 넘어졌다. 봉팔이는 깨져 나간 벽돌을 한 개 집어 들어, 은철이의 얼굴을 향해 내리치려고 손을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