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18장
18. 동생의 얼굴과 똑같은 소녀
“아주머니, 은주가 차에 치였어요!”
민구는 헐레벌떡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고함을 쳤다.
“뭐, 은주가?”
은주 어머니는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지금 대학 병원에 입원했는데......”
“에구머니나!”
어머니는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민구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런데 머리만 좀 상했지,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은, 은주가?”
어머니는 온 기력을 다해 간신히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오늘은 어째 이처럼 나쁜 일만 생긴다니? 은철이는 경찰에게 붙들려가고......”
“네? 은철이가 경찰에게 붙들려갔다고요?”
“아까 경찰이 와서 붙들어 갔단다. 은철이가 뭐 남의 돈을 빼앗았다든가 훔쳤다든가......”
“아, 그렇다면 봉팔이 자식이 일러바친 게 틀림없어요. 아주머니, 아무 걱정 마시고 누워 계세요. 제가 잠깐 다녀올게요.”
민구는 솟구치는 분노를 느끼면서 부리나케 비탈길을 뛰어 내려갔다. 탁, 탁, 탁, 탁...... 무서운 기세로 달음박질을 치는 민구의 발자국 소리가 한적한 동네의 적막을 깨뜨리며 기운차게 울려 퍼졌다. 민구는 파출소로 은철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은철이는 파출소에 없었다. 경찰에게 물어보니 경찰서로 넘어갔다고 했다. 민구는 다시 경찰서를 향해 달음박질을 쳤다.
그 즈음 은철이는 경찰에게 끌려 혜화동 영란의 집 현관 밖에서 영란의 어머니와 마주 서 있었다.
“이 댁 주인 되시는 분은 어디 가셨습니까?”
경찰은 영란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회사에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바로 이 녀석이 이 댁 주인인 이창훈 씨의 돈을 훔쳤습니다.”
“네?”
그것은 영란 어머니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옆에서 동생 영민이와 함께 서 있던 영란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아니, 영란의 놀라는 목소리가 한층 더 날카롭고 높았다.
은철이는 머리를 들지 못했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뛰어 들어가 자기의 얼굴을 영영 감추어 버리고 싶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멀쩡한 것이 남의 돈을 훔친담!”
영란의 목소리가 다시 튀어나왔다.
“누나, 쟤가 도둑놈이야?”
영민이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그렇대도. 구두나 닦는 줄 알았더니, 어쩜 도둑질까지 한담!”
“그래서 경찰이 붙잡아 왔어?”
은철이의 머리는 더욱 깊이 수그러져 들었다. 머리를 들어 소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싶었으나, 은철에게는 머리를 들 용기가 전혀 없었다. 눈물이 주르륵 은철이의 볼을 소리 없이 스치며 흘렀다.
“돈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입니까?”
경찰은 영란의 어머니에게 또 물었다.
“네, 어젯밤에 들은 얘기로는 2만 원인가 3만 원이 없어졌다고요. 자세한 것은 남편이 돌아와 봐야 알겠지만요.”
그 때 경찰은 은철을 향해 물었다.
“분명히 2만 원을 가방에서 꺼냈지?”
“네, 꺼냈습니다.”
머리를 숙인 채 은철이는 모기 소리처럼 힘없이 대답했다.
“그 돈은 어디 있지? 지금도 가지고 있느냐?”
은철이는 대답을 못했다.
“지금이라도 그 돈을 이 어른께 드려라.”
입을 꽉 다문 채 은철이는 대답이 없다.
“저것 좀 봐! 남의 구두나 닦으러 다니는 것이 무슨 양심이 있을라고?”
영란의 비웃는 목소리가 또다시 튀어나왔다.
그 순간, 은철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리 창피하고 부끄러워도 은철이는 그냥 그대로 머리를 수그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은철이는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 위에 주먹 같은 눈물이 떨어져 내리는 얼굴을 번쩍 들고 소녀의 얼굴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아이, 무서워!”
영란은 한 걸음 흠칫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눈물이 앞을 가려 은철이는 소녀의 그 오만한 얼굴을 똑똑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은철이는 팔소매로 쏙 눈물을 닦으면서 소녀의 얼굴을 다시 뚫어질 듯이 바라보았다.
“아이, 무서워! 저 무서운 얼굴 좀 봐!”
그러나 다음 순간, 은철이는 “훅―” 하고 숨을 들이켜면서 한 발을 뒤로 물렀다. 하늘 아래 땅 위에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던 사랑하는 동생 은주의 얼굴이 바로 그 곳에, 자기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 세상에!”
은철이는 너무 놀라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