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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무지개 뜨는 언덕/3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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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새로운 출발

은주는 눈이 동그래지며, 영란의 갑작스런 변화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를 통 알 수가 없었다. 자기를 그처럼 싫어하던 영란이가 왜 이토록 자기를 안고 자꾸만 흐느껴 우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러한 생각은 오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 선생은 묵묵히 피아노 앞에 그대로 앉아서, 두 소녀의 이 감격적인 광경을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왜 울어?”

은주는 영란의 어깨를 또다시 흔들었다.

“은주야! 용서해 줘!”

울음 섞인 목소리로 영란은 마치 애원하듯이 말했다.

“언니, 나보고 뭘 용서하라는 말이야?”

이처럼 갑자기 변해 버린 영란의 태도를, 은주는 헤아릴 수 없는 감정으로 바라보았다.

“은주야, 나는...... 내가 정말 너무했어! 너를 보고, 나를 그처럼 따르는 너를 보고 나는 왜 그처럼......”

영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동안 못되게 군 것을 뉘우치는 순간, 영란은 자꾸만 자기의 표독스러운 마음이 후회되었다.

“그처럼, 그처럼 훌륭한 노래를 부르는 너를...... 나는 쓸데없이 자꾸만 시기했어! 은주는 마음씨도 착하지만 정말로 훌륭한 성악가가 될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은주 너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이, 언니도......”

그 때 비로소 은주는 영란의 마음을 알았다.

“언니, 영란 언니! 무슨 그런 말을...... 언니가 나보다 잘하지, 내가 어떻게 언니를......”

오 선생은 이제 모든 것을 짐작하고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다.

“음.”

오 선생은 감격에 넘친 신음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피아노 앞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서로 부여안고 흐느껴 우는 쌍둥이 자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은주도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올라와 견딜 수가 없었다. 영란이 이처럼 모든 것을 후회하고 진심으로 자기를 동생이라고 불러 주자, 외롭고 허전하던 마음이 갑자기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아아, 영란 언니!”

“내 동생 은주!”

은주와 영란은 서로 부둥켜안고 자꾸만 울었다. 암만 울어도 설움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고 눈물이 계속 펑펑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얼마나 슬프겠니?”

그러면서 영란은 눈물 어린 얼굴을 들고 은주의 얼굴을 다정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똑같은 얼굴이었다. 자기와 똑같은 얼굴이 또 하나 눈앞에 있었다.

“언니가, 영란 언니가 생겨서 나는 좋아! 정말로 나는 행복해!”

은주는 얼굴을 들어 영란을 빤히 바라보았다. 똑같은 얼굴이었다. 자기와 똑같은 얼굴이 또 하나 눈앞에 있었다.

“은주야, 용서해 줘.”

“언니, 그런 말 하지 마.”

“이렇게 착한 너를 나는 공연히 못살게 굴었지! 나는 정말 무서운 벌을 받을 것 같아.”

그 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없이 두 소녀의 행동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오 선생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니다. 영란이는 누구한테도 벌을 받지 않아도 돼. 오늘 이 자리에서 있었던 영란의 행동은 용감하고, 참 아름다운 행동이었다. 그걸로 충분해.”

영란은 머리를 돌려 오 선생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영란이야말로 참다운 예술가, 참다운 음악가가 될 충분한 소질을 가진 학생이다.”

“아, 선생님!”

영란은 뛰어가서 오 선생의 품안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외쳤다.

“선생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오냐, 오냐!”

오 선생은 영란의 머리를 인자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용서하기 전에 하늘이 이미 너를 용서했고, 은주의 훌륭한 노래가 이미 너를 용서했다. 온갖 것에 굴할 줄 모르던 영란이가 오늘 은주의 노래에 감동했다는 것은 영란이가 훌륭한 예술가적 양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지.”

그렇다. 예술가의 소질을 가진 사람 가운데는 영란이와 같은 거만한 성품의 소유자가 때때로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참다운 예술 앞에 머리를 숙일 줄 모른다면, 영원히 참다운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모든 허영과 체면을 용감하게 내던지고 그 예술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란이는 오늘 용감하게 예술가의 양심을 되찾았단다. 영란이는 훌륭한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가졌어. 성악은 은주보다 약간 부족한 것 같지만, 그 대신 영란이는 피아노에 대한 소질이 아주 우수한 것 같다. 한 사람이 성악과 기악을 둘 다 잘하기는 드문 일이지.”

오 선생은 울고 있는 은주의 손을 잡아당겨 영란이와 함께 자기 품에 안으며 말했다.

‘너희 자매는 둘 다 훌륭한 음악가가 될 거야. 그리고 이번 콩쿠르에 너희 둘이 나가게 되면 우리 학교는 단연 우승할 것이다.”

그 순간 영란은 불현듯 머리를 들며 오 선생을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 제 노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은주만 못해요. 그런데도 무리해서 이중창을 하면 은주의 훌륭한 노래가 저 때문에 깎일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만두겠어요. 저 때문에 은주의 실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요.”

“아이, 언니도, 무슨 말을...... 언니가 나가야 돼. 나는......”

은주의 뱃속에서 참기름이 자꾸만 꾸르륵거렸다. 아랫배에 힘이 받쳐지지가 않아 이대로 가면 기운이 다 빠져서 정말로 자기는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는 영란이 말했다.

“아니야. 은주야, 조금도 미안해하지 마. 나는 진심으로 은주의 성공을 빌고 있어.”

“아냐, 나는 아무래도......”

“음, 영란의 말도 그럴듯하다.”

그 때까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오 선생이 쌍둥이 자매의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

“됐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중창은 그만두자. 대신 은주는 은주대로 독창을 하고, 영란이는 피아노 반주를 하기로 하자. 그러면 둘 다 자기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으니까.”

오 선생은 두 자매를 다 콩쿠르에 내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모습이 똑같은 너희 쌍둥이 자매가 무대에 올라가면......”

오 선생은 그 때의 광경을 상상하자 조금씩 흥분되었다.

“어때, 영란아? 참 좋은 생각이지?”

그 말에 영란이도 흥분된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는, 저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음, 그럼 됐어! 자아,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이따가 방과 후에 한 번 연습을 해보자.”

오 선생은 신이 나서 그렇게 말하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 때, 종이 땡그랑 땡그랑 울렸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