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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무지개 뜨는 언덕/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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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은주의 배탈 소동

오후 수업이 끝나자 음악 연습은 다시 시작되었다.

영란은 피아노를 치고 은주는 노래를 불렀다. 오 선생은 의자에 걸터앉아서 지그시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오 선생은 눈을 감은 채 그렇게 말했다. 영란의 반주에 맞춰 은주는 노래를 다시 불렀다.

“음.”

영란의 반주는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영란의 손은 좋은 터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음색이 아주 맑고 둥글었다. 템포도 정확했다.

오 선생은 그 사실을 영란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콩쿠르의 기악 부문에는 3학년의 김경숙이가 나가서 피아노를 치지만, 내년에는 영란이가 나가도 좋을 것 같구나. 역시 영란이는 성악보다 기악이 더 낫다.”

오 선생의 그 한마디가 영란을 무척 기쁘게 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영란의 감정은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 선생은 얼굴을 은주에게로 돌리면서 물었다.

“영란이의 반주는 그만하면 손색이 없는데, 은주는 어째 그리 기운이 없지?”

그러면서 오 선생은 은주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

은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어디, 한 번 더!”

그래서 다시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났을 때도 오 선생의 얼굴빛은 밝아지지 않았다.

“이상한걸! 아무래도 은주의 노래에 힘이 없어졌다. 은주, 어디 몸이 좋지 않니?”

오 선생은 그러면서 뚜벅뚜벅 걸어와서 은주의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열은 없는데...... 배탈이 난 게 아니냐? 배탈이 나면 기운이 빠지는 법인데.”

그래도 은주는 잠자코 있었다. 점심 때부터 은주는 벌써 세 차례나 화장실 출입을 했다. 기운이 쭉 빠지고 맥이 풀려서 노래가 목구멍에서만 맴도는 듯했다.

“어디, 다시 한 번!”

오 선생이 다시 노래 연습을 재촉함과 동시에 영란의 피아노 소리가 울려 나왔을 때, 은주는 그만 책상 위에 탁 엎어지면서 흑흑 울기 시작했다.

“아니, 은주야!”

오 선생은 깜짝 놀라며 교단에서 뛰어 내려왔다.

“어머, 은주야!”

영란도 뛰어왔다.

“은주야, 왜 그래? 어디가 아프니?”

오 선생은 은주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은주야, 너 어디 아프니?”

영란이도 은주를 안았다.

“아, 선생님!”

“오냐, 어서 말을 해 봐라.”

“선생님, 죄, 죄송합니다! 선생님 뵐 낯이 없어요!”

은주는 괴로운 듯이 헉헉대며 입김을 내뱉었다.

“뵐 낯이 없다니, 무슨 말이냐? 어서 자세히 말을 해 봐라.”

오 선생은 가슴이 뜨끔했다. 내일모레가 대회 날인데, 이 귀중한 시기에 은주가 앓아누우면 큰일이었다.

“선생님, 저는 아무래도 대회에 나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응?”

오 선생과 영란은 다 같이 놀랐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영란 언니가 저를, 이처럼 좋아해 줄 줄 모르고...... 그만 저는......”

은주는 결국 오 선생 품에 얼굴을 묻으며 사실을 털어놓았다.

“저는 그만두고...... 영란 언니가 콩쿠르에 나가게 하려고...... 아침에 집을 나올 때, 기름을...... 참기름을 마셨어요.”

“뭐라고?”

“어머나?”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커다란 충격으로 인해서 오 선생과 영란은 입을 딱 벌렸다.

“은주야, 너는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느냐?”

그러면서도 오 선생은 은주의 지나치게 착한 마음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나! 은주야?”

영란도 찡한 마음에 주르르 눈물을 홀렸다.

자기는 그처럼 쌀쌀맞게 은주를 냉대했는데, 어쩌면 은주는 자기를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러한 은주의 곱고 착한 마음씨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은 자꾸만 꼬리를 물고 복받쳐 오르고 눈물은 폭포수처럼 펑펑 쏟아져 나왔다.

“자아,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빨리 병원으로 가야겠다.”

오 선생과 영란은 은주를 데리고 허겁지겁 음악실을 나왔다.

이윽고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만 병원으로 세 사람은 들어갔다. 의사는 이 학교 출신이었다.

“얼마나 먹었니?”

“반 병쯤 먹었어요.”

“무슨 병으로 반 병?”

“커다란 약병으로요.”

“음.”

의사는 은주의 배를 이리저리 진찰해 보고나서 말했다.

“내일 모레까지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별로 손을 쓸 여지가 없어요. 저절로 뱃속에 있는 음식물이 다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요.”

“모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운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 선생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름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위가 좀 약해졌어요. 그러니까 무거운 음식은 피하고, 죽 같은 가벼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의사는 영양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포도당 주사를 한 대 놓아 주었다.

“내일 아침부터 죽을 조금씩 먹여 주세요.”

이리하여 결국 은주가 기운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