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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뇌의 무도/싸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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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에 떠서 흐르는 날과도 같이,
강물을 따라가는 노(櫓)와도 같이,
나의 맘은 탄식이 되어 흩어지어라.
―싸멘

멀리 떠나서 지금(只今)은 소식(消息)조차 끊어진
지내간 오랜 옛날을 위하여
나의 벗 유암(流暗)에게 이 시(詩)를 모아 드리노라.

반주(伴奏)

[편집]

보리수(菩提樹)와 백양목(白楊木)과 백화(白樺)의 가지는 나부끼어라……
달은 강(江)물 위에 나뭇잎 같이 흩어지어라……
저녁 바람에 불리우는 머리털과도 같이,
어둡고 꿈꾸는 강(江)은 방향(芳香) 속에 누었어라,
강(江)물은 명경(明鏡)인 듯이 빛나라.
노(櫓)는 어두운 안에 흰빛을 놓으며,
꿈속을 내 배는 떠서 흘러라.
내 배는 환영(幻影)의 강(江)물 위에서
이상(理想)의 나라로 향(向)하여 흘러라.
내가 젓는 노(櫓)는 누이와 동생,
하나는 ‘고뇌(苦惱)’, 다른 하나는 ‘침묵(沈默)’이어라.
눈을 감고 박자(拍子)를 맞추면서
아아 내 말이여 노(櫓)를 저어라,
느리게, 한가롭게, 너그럽게 물을 따르면서.
달은 작은 산(山) 위에 몸을 기대고
강(江)물 위로 흘러가는 내 배의 고요함을 듣고 있어라……
내 외투(外套)위에는 새로이 꺾어 온 백합(百合) 세 송이가 시들어라.
핼금한 일락(逸樂)의 밤이여, 너의 입술로
그윽히 들어감은 백합(百合)의 화정(花精)이던가, 또는 내 영(靈)이런가,
은색(銀色) 밤의 흑발(黑髮)은 떨고 있는 갈잎인 듯 내리어라……
수면(水面)에 떠서 흐르는 달과도 같이
강(江)물을 따라가는 노(櫓)와도 같이,
나의 맘은 탄식(歎息)이 되어, 흩어지어라.

수상음악(水上音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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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악조(樂調) 빗겨 울음을 들어라!
먼 곳의 희미한 안개 속에서 일어나는
호롯한 악조(樂調)의 죽어 가는 그 소리처럼,
곱고도 살뜰한 것이야 다시 있으랴.
밤은 우수(憂愁)에 가득히 취(醉)하여
우리들의 맘을, 행복(幸福) 없는
세상(世上)의 노력(努力)에서 피(避)케 하여라,
사람으로 하여금 사모(思慕)를 간절케 하여라.
구름과 물 사이를
달 아래서 노(櫓)질하게 하여라,
내 세상(世上)과는 떠나서, 나의 맘은
우수(憂愁) 가득한 그대의 눈으로 들어라.
악조(樂調)의 빗겨 울음을 취(醉)하여
없어지려는 듯한 그대의 눈을
기묘(奇妙)한 달 아래에 핀
기이(奇異)한 꽃으로 나는 보노라.
악조(樂調)의 빗겨 울음을 들어라,
희미한 악조(樂調)의 소리 안에,
입술과 입술이 서로 마주 닿는 그것처럼
곱고도 살뜰한 것이야 다시 있으랴.

나는 꿈꾸노라

[편집]

나는 꿈꾸노라, 곱고도 그 곡조(曲調)의 살뜰한 노래를,
우모(羽毛)와 같아서 영(靈)에 닿아도 닿는 것 같이 아니한 노래를,
물 속 아래의 오필리아의 머리털과 같이,
섬세(纖細)한 정(情)이 녹아나는 듯한 황금색(黃金色)의 노래를.
말은 적고 운율(韻律)도 없고 기묘(技妙)도 없어
소리 없는 악조(樂調)의 노(櫓)같이 흐르는 노래를.
다 썩어진 낡은 포목(布木)과도 같으며
빗김 소리와도 같고, 구름과도 같이 잡을 수 없는 노래들.
말도 적은 여인(女人)의 기도(祈禱)에
때를 현혹(眩惑)케 하는 가을의 저녁의 노래를.
맘은 그윽한, 아릿아릿한 애무(愛撫)를 맛보는
미녀(美女)의 앵(櫻)두의 방향(芳香)에 취(醉)했던 사랑의 저녁 노래를.
얼마 아니하여 신경(神經)의 맘 고운 전율(戰慄)에 잠기어,
문(門)을 닫는 미온(微溫)의 속으로 스러져 가는 향료(香料)와 같이,
달콤한 현훈(眩暈)이 되어 영구(永久)히 죽어 가는 노래를.
황금색(黃金色)의 바이올린과 애상(哀傷) 가득한 악성(惡聲)을……
나는 꿈꾸노라, 시들려는 장미와 같은 고운 노래를.

희미하게 밝음은 떠돌며

[편집]

희미하게 밝은 빛은 떠돌며,
침묵(沈默)은 방(房)안에 가득할 때,
빛은 낡았으나 모양은 같은 고운 바이올린은
지나간 옛 고뇌(苦惱)의 여운(餘韻)을 타는 듯하여라.
한 절반(折半)은 맑은 물 가득한 수정(水晶)의 화병(花甁)에는
꽃 한 송이가 맑게도 꽂혀 있어라,
선명(鮮明)한 육색(肉色)의 장미꽃,
그 방향(芳香)은 하늘까지 취(醉)케 하여라.
되는 대로 벗어 던진 아낙네의 옷과
주름 깔린 옷에 손자리가 덥게 보이는 듯한 장갑(掌匣)은
타는 듯한 애정(愛情)을 써놓은 편지(便紙) 위에 버려 있어라.
하루는 가을바람에 불리어 색채(色彩) 놓은 유리창(琉璃廠)으로,
사랑의 애달픔과, 시들은 악성(樂聲)과, 아낙네의 우아(優雅)가
뭉치어 된 무엇이 스미어 날아갔어라
이 나래 있는 무엇을 나는 몰랐노라, 아아 이는 나의 영(靈)이었어라.

가을

[편집]

우리들은 가견(家犬)을 데리고 느린 보조(步調)로
낯익은 길을 아직도 아득이며 걸어라,
희멀금한 가을은 수풀 밭에 피를 흘리고,
상복(喪服) 입은 아낙네들은 들가를 지내여라.
사주(四周)는 병원(病院)이나 감옥(監獄)의 뜰과도 같이
가득한 적막(寂寞)에 다만 고요하여라,
때때, 황금색(黃金色)의 나뭇잎사귀는 하나씩 둘씩
추회(追懷)와도 같이 고요히 잔디 위에 떨어지어라.
침묵(沈默)은 우리의 사이를 걸으며……거짓 많은 우리의 맘은
조세(早世)의 여고(旅苦)에 싫증(症)이나 났듯이,
하염없는 생각에 잠기며, 자기(自己)의 집 길을 꿈꾸게 되어라,
그러나 오늘 밤 숲속에 가득한 우울(憂鬱)은
우리의 맘에 느낌을 주며, 자는 듯한 하늘 아래서
자기(自己)의 몸은 잊어버리고, 지나간 옛날을 생각게 하여라,
죽은 아이의 신세(身勢)를 말하는 것처럼, 고요하게도 낮은 말로……

지반소요(池畔逍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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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한 뜰 위에는 끝없는 정적(靜寂)이 있으며,
황혼(黃昏)의 영(靈)은 사원(寺院)의 종성(鐘聲)과 함께 빗겨 울어라,
아아 들어라, 때는 지금(只今) 핼금한 하늘의 천사(天使)와 같아라
새파란 빛을 띄운 신비(神祕)의 이 호수(湖水)를 보아라,
나의 누이여, 누구라서 큰 맘속으로 사랑의 샘물이
흘러나와 하늘까지 넘친 것이라 말치 않으랴?
어두움은 저녁의 골짜기를 희미하게 싸며,
먼 곳에서 빗기는 종(鍾)소리는 그 소리가 가늘어워서,
성녀(聖女)의 맑은 영(靈)을 가져가는 듯하여라.
지금(只今)이 때는 우리의 것, 보아라, 순간(瞬間)마다,
적막(寂寞)이라는 큰 옷은
이상(異常)한 빛을 자색(紫色)의 수목(樹木) 위에 입혀라.
갈색(褐色)의 나뭇잎 아래, 은색(銀色)의 무늬를 짓는 지수(池水)는
무정(無情)하였던 하루를 애달파하는 맘인가?
선명(鮮明)한 달의 올라옴을 꿈꿈과도 같아라.
나는 애모(愛慕) 가득한 네 눈빛에 싸이어,
나부끼며 흔들리는 갈대 속에서,
흐릿한 황혼(黃昏)의 흰듯만듯한 꽃을 꺾으려노라.
오오 내 애인(愛人)아, 나는 명상(冥想) 가득한 지수(池水)의 곁,
낙일(落日)의 뒤에 떠도는 향기(香氣)로운 그늘 속에서
너의 애모(愛慕)의 입술로 흐르는 너의 영(靈)을 마시려노라.
황혼(黃昏)은 보드랍고도 무거운 장막(帳幕)과 같아라,
아아 우리들의 맘은 서로 모여들어,
적아(寂雅)한 애모(愛慕)의 맘은 기쁘게도 소곤거려라.
고요한 임간(林間)에서 신생(新生)의 벌을 절한 듯,
맘의 비밀(祕密)을 그려내는 우리의 말소리는
어두운 안을 맑지게도 기도(祈禱)같이 떠서 올라라.
그러하다, 나는 지금(只今) 천사(天使) 같은 이 육체(肉體)를, 눈덥패 위에 키스하노라.

황혼(黃昏)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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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黃昏)의 천사는 꽃 사이를 지내가며……
묵상(黙想)의 여신(女神)은 사원(寺院)의 풍금(風琴)과 함께 노래하여라,
눈부시게도 떠도는 저녁 노을의 하늘에는
찬란한 임종(臨終)때의 광채(光彩)가 아득이어라.
황혼(黃昏)이 천사(天使)는 가슴속을 지내어……
소녀(小女)들은 미풍(微風)의 나래에 떠도는 사랑을 마시고 있어라,
가슴을 열어 놓은 꽃 위와 소녀(小女)의 위에는
가이없는 저녁 안개가 눈인 듯 내려라.
장미꽃은 어두워 오는 밤에 따라 머리를 숙이고,
슈만의 혼(魂)은 공간으로 떠돌면서
불치(不治)의 고뇌(苦惱)를 고소(告訴)하는듯 하여라.
여기서 고운 소녀(小女)가 반듯이 죽으리라……
나의 영(靈)이여, 일과(日課)의 기도(祈禱)에 표적(標蹟)을 두어라,
울며 드리는 기도(祈禱)를 천사(天使)는 들어주리라.

황혼(黃昏)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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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人跡) 없는 강안(江岸)에서 배는 썩도 고요하게 잠들게 되어
격렬(激烈)한 오늘 하루의 노작(勞作)도 지금(只今)은 겨우 끝이 났어라
황금(黃金)을 녹여 흘린 듯한 저녁노을의 떠도는 강면(江面)을
희멀금한 박명(薄明)은 약(弱)한 손으로 흐릿한 빗을 지어라.
떠들고 지껄이는 공장(工場)도 지금(只今)은 고요해 오고
피곤(疲困)한 여공(女工)들은 바람에 머리털을 날리며
쓸데없는 원망(願望)을 쌀알 같은 금강석(金剛石)에 잊으려고
금색(金色)이 빛나는 상점(商店)으로 한가롭게 걸어들어라.
오가는 사람들의 무리 짓는 거리에는
토이기(土耳基)의 구슬, 진주(眞珠) 같은 보드라움에
이 가을의 저녁 하늘은 죽으려 하여라.
지금(只今) 때는 박사(薄紗)를 입은 아낙네처럼 지내가며,
나의 영(靈)은 어둑한 어두움에 고요히 서서
꿈에서 샛별로 옮겨가는 광경(光景)을 명상(瞑想)하여라.

황혼(黃昏)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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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지금(只今) 핼금한 금색(金色)의 호수(湖水)와 함께 스러지려 하며
먼 곳을 바라보면 사람 없는 빈들도 묵상(默想)하는 듯하여라
적정(寂靜)과 공허(空虛)가 가득한 하늘에는
밤의 고적(孤寂)한 영(靈)이 넓어지어라
여저기에 희미하게 등(燈)불이 보일 때
매어놓은 암소 두 마리는 소로(小路)로 돌아오며
두건(頭巾) 쓴 노인(老人)은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초(草)가집 문(門) 가에서 고요한 황혼(黃昏)을 보내고 있어라.
종(鐘)소리가 들리는 먼 고촌(孤村)은 고적(孤寂)도 하여
뛰어 돌아다니는 흰 양(羊)을 끌고 가는 예수를 그린
낡고 값없는 그림 폭(幅)과 같이 소박(素朴)하여라.
별빛은 어두운 하늘에 내리는 눈과 같이 빛나며
여저기의 적은 산(山)머리에 움직않고 섰는
목인(牧人)의 고풍(古風)스러운 그림자는 꿈꾸는 듯하여라.

소시(小市)의 야경(夜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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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소리는 끊기어, 자근거리는
소리도 없는 밤 중(中)에 잘 뿐이어라.
나뭇가지인 듯한 낡은 가등(街燈)엔
가스 불이 쓰러질 듯이, 애닯게도 빛을 놓아라,
이러한 때러라, 밤하늘에는 달이 솟아,
집집마다 처마 끝은 희게 빛나며,
은색(銀色)의 유리창(琉璃廠)을 빛나게 하여라.
설더운 밤은 마로니에의 나무를 흔들며,
깊어 가는 밤에는 등(燈)불빛이 드물어라.
낡은 거리에는 모든 것이 아득하여 인적(人跡)이 없어라,
나의 혼(魂)이여, 낡은 철교(鐵橋)의 난간(欄干)에 의지(依支)하여
물의 냄새를 들어 마시라.
정적(靜寂)은 깊이도 내 맘을 떨게 하며
부석(敷石)의 위에는 내 발자취 소리가 빗겨라.
침묵(沈默)은 내 가슴을 뛰놀게 하며
야반(夜半)의 종(鍾)소리는 빗겨 울어라!
수도원(修道院)의 높은 담 벽(壁)을 끼고
나뭇잎들은 바람에 떨고 있어라.
수도녀승(修道女僧)이여…… 고녀(孤女)여……
여승(女僧)의 법의(法衣) 위에 나부끼는 댕기이여……
이곳은 물수련의 법원(法園)이어라.
적은 바람은 철책(鐵柵)을 뚫고
호흡(呼吸)과 같이 보드랍게도 불며,
저 편(便)쪽 장판(墻板) 안에는
빛도 희미한 별이 하나 반짝거리어,
푸릇한 수야등(守夜燈)과도 같아라.
오오 월광(月光)에 푸르게 된 지붕 아래,
밝은 방(房)안의 처녀(處女)들과 맑은 꿈과,
성의(聖衣)를 입은 둥글고 풍비(豊肥)한 목이여,
그리하고 흰 침대(寢臺)에 누워 있는 허물 없는 육체(肉體)여!
여기에는 가는 시간(時間)과 오는 시간(時間)이 한길 같아서,
사랑을 모르는 몸은 뜬 세상(世上)을 곁에 두고 고요히 잘 뿐이어라.
번개같이 밝은 달 아래,
통행(通行)하는 사람도 끊기어 적막(寂寞)은 한(限)이 없어라.
보아라, 역사(歷史) 있는 넓은 곳에,
오랜 의사당(議事堂)의 건축물(建築物)은
엄숙하게 가지런히 섰지 않은가.
저 편(便)쪽, 네 길거리엔 아직도 밝은 창(窓) 하나 있어라.
깊이 잠든 밤을 지키는 램프가 높이 걸렸음이여!
불빛은 엷은 커튼을 뚫고
한동안 움직이는 여인(女人)을 비추고 있어라.
얼마 아니하여 창(窓)은 방긋이 열리며,
옥(玉) 같은 팔을 아낙네는 푸릇한 야천(夜天)에 내밀고
주저리어라 세상(世上)에는 애달픈, 간절한 애원(哀願)을……
오오 작은 거리의 밤에 남 모르는 애정(愛情)이여!
심장(心腸)은 타며, 머리털은 흩어져, 어지러워라!
애달픈 사랑에 무겁고 고운 것을 푸른 손으로 잡고
간절하게도 비는 기도(祈禱), 아아 대답(對答) 없는 사랑이여!
들어라 대답(對答) 없는 사랑을 사랑하는 아낙네여!
그대의 육체(肉體)는 횃불같이 타리라,
사랑을 위하여 났다가 사랑을 그리워하는 이여!
그대는 실망(失望)하고 그대의 고운 육체(肉體)를 위하여 울어라,
그대는 그러다가 처녀(處女)대로 무덤에 눕고 말리라!
넓은 곳에 서서 생각에 고요한 내 영(靈)은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임을 보고 있어라.
엷은 커튼은 나부끼며,
램프는 꺼지자, 어느덧 한 시(時)의 종(鍾)은 울어라
사주(四周)는 고요하여라, 인적(人跡)이나 있으랴, 인적(人跡)이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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