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6장~10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편집]

『야!』

첫 번 부르는 소리는 비교적 작았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으매 두 번째는 꽤 큰 소리가 나왔다.

『야!』

삼청동 어떤 오막살이었다. 큰방에서 두 번을 연하여 부르는 소리에 건넌방에서 글을 읽고 있던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네?』

열 한두 살 난 소녀였다. 그는 대답만 하고 잠시 기다려 본 뒤에 문을 열고 나서서 큰방으로 건너갔다.

『부르셨어요?』

큰방에 들어선 소녀는 문을 고즈너기 닫으며 아버지를 보았다.

병상에 넘어져 있는 아버지―며칠 머리를 빗지 못했기 때문에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베개 위에 놓고 눈을 감고 있는 그 얼굴은 놀랍게도 여위었다.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로 말하였다.

『야―저……』

말하기가 숨찬 모양이었다.

『요란스럽다. 나가서 좀들 조용하래라.』

『네.』

한길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석전을 하느라고 야단들이었다.

『와아!』

『와아!』

수십 명의 아이들이 편을 갈라 가지고 쫓으며 쫓기며―이 근처의 집이 모두 떠나갈 듯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자리에 누워 있는 병인에게 있어서는 이 소리가 폐부까지 찌르는 듯이 역한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명령을 들은 소녀는 뜰로 내려와서 대문 밖에까지 나와 보았다.

『와아!』

『잡아라!』

『야아!』

열 여덟 살에서 비롯하여 열 너덧 살까지 난 아이 한 이십여 명이 몰려서 소녀의 집 앞을 달아났다. 그 뒤를 아 역시 그 나잇살이나 된 소년이 이삼십 명이 함성을 지르며 쫓아 갔다.

『이 자식들, 좀 조용해라! 왜 이리 야단이냐?』

소녀는 대문간에서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런 소녀의 소리는 그 함성에 싸여서 소년들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소년들은 제각기 함성을 지르며 달아간 패를 따라갔다.

『망할 자식들!』

소녀는 대문간에서 종알종알하면서 달아간 소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쫓겨 가던 패가 쫓겨 가는 동안에 다시 세력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와아!』

함성 소리가 다시 크게 울렸다. 따라가던 소년들이 일제히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이리로 향하여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 도망하는 패가 소녀의 집 앞을 통과하고 쫓는 패가 채 이르기 전에, 소녀는 활개를 펴고 길 복판 한가운데로 뛰어나갔다.

『이 망할 자식들아, 요란스럽대도 귀가 먹었느냐?』

쫓아 오던 패의 선봉이 이 소녀에게 길이 막혀서 부시시 섰다. 쫓던 아이들이 뒤를 따라서 모두 섰다.

『이 자식들아, 저기 가서 놀아. 왜 남의 집 앞에서 야단이야?』

『얽으망태야!』

쫓던 패의 맨 뒤에 달렸던 소년이 조롱의 한 마디를 던지고 돌아서서 달아났다.

『얽으망태, 졸망태!』

몇 소년이 거기 화창하며 달아났다.

『그래 얽었으면 어떻단 말이냐? 얽은 구멍마다 복이 박혔단다.』

소녀는 달아나는 소년들에게 고함을 퍼부었다.

이 소녀―삼청동에서 싸움 잘하고 동리 아이들 욕 잘 하는 이 얽은 소녀가 장래 자라서는 흥선 대원군을 적수(敵手)로, 삼천리 강산을 왼손으로 휘두른 고종비 민씨(高宗妃閔氏)의 전신이었다. 흥선 부인의 일가 아저씨 되는 민 치록(閔致祿)의 외딸, 당시 나이는 열 한 살―

이리하여 삼청동 구석에서는 한 개의 무서운 알(卵)이 성장되고 있었다.

『망할 자식들 같으니!』

일변 얽은 것을 조롱하면서 도망하는 소년들에게 향하여 소녀는 연거푸 저주를 퍼부었다. 성(性) 방면에 좀 오딘 이 소녀는 자기의 얼굴이 얽은 것을 비웃긴 것이 분하기가 짝이 없었다. 도망하여 길 모퉁이로 꺾어지면서 사라지는 소년들을 등을 바라보는 이 얽은 소녀의 눈에는, 푸르른 독기(毒氣)가 나타나 있었다.

소년들이 좌우로 모두 도망하여 없어진 뒤에 이 동리는 갑자기 조용하여졌다. 장안의 북쪽 끝 백악(白岳) 기슭에 놓여 있는 이 동리는 저편 앞에서 지금도 수 없이 일고 잦을 모든 군잡스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봄, 아니 봄이라기는 아직 좀 이른 늦은 겨울―바람은 아직 찼지만 쏘는 기운은 없는 바람이었다. 바람만 없는 곳에는 벌써 볕이 꽤 따스하게 내려 비치고 있었다.

갑자기 조용하여진 동리의 길 복판 가운데 좀더 버티고 서 있던 소녀는, 악동들에게 얽으망태라고 욕먹은 것이 그래도 분하여서, 종알종알 저주를 퍼부으면서 자기 오막이의 대문으로 향하여 돌아왔다. 그리고 급기 대문을 열려다가 저 편 길 모퉁이에 사람의 무리가 한 떼 나타나는 것이 시야(視野) 한편 끝에 보이므로 눈을 그리로 돌려 보았다.

웬 한 개의 안행차였다. 소녀는 다분의 호기심을 가지고 이 대낮에 지나가는 안행차를 바라보았다.

초라한 안행차였다. 다 빛 낡은 사인교에 해진 옷을 걸친 교군군이며, 겨우 한 명의 계집종을 거느린 이 안행차는 삼청동 같은 빈민굴에나 적합한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차였다. 행차는 소녀의 집 앞에까지 왔다. 가까이 이른 다음에 보매, 그것은 소녀가 익히 아는 흥선 부인의 행차였다.

『아이고 언니! 어떻게 오세요?』

『오 너냐! 잘 자라느냐?』

이 일가 형제는 서로 손목을 잡았다.

『아버님이 병환이 계시다기에 왔다. 병환은 어떠시냐?』

『무슨 환후인지 구미가 없으시고 때때로 토혈도 하시고―아주 심상치 않으신 모양이에요.』

『오오! 혼자서 얼마나 애를 쓰느냐?』

근본은 양반이라 하나 거지 이상의 가난한 살림을 하는 이 민 치록의 집안의 괴롭고 구슬픈 가사를 혼자 돌보는 소녀는 일가 언니의 위로에 그의 총명하게 생긴 눈을 쳐들었다. 이 꽤 커다랗고 맑은 눈―이 눈이야말로 후일 이 소녀가 변하여 고종 왕비가 된 뒤에 한 번 그느스럼히 뜨면 청국, 아라사, 모든 쟁쟁한 외교관들이 그 앞에서 개짐승의 시늉이라도 달갑게 하였고, 한 번 크게 뜰 때는 서슬이 푸르르던 국태공 흥선 대원군의 세력도 능히 부셔 버린 놀라운 눈이었다. 얼굴은 얽었으나마, 몸은 야위고 초라하나마, 이 소녀의 가슴 깊은 곳에는 놀라운 혼이 생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일가의 어른으로서 이 소녀를 따뜻이 위로를 하는 흥선 부인도, 후에는 이 소녀의 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애원할 날이 오리라고는, 소녀도 부인도 짐작할 바이 없었다.

『자, 들어가자. 어서 아버님께 뵈자. 나도 가난한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 긴 시간이 없다.』

『아버님도 늘 이즈음 외로와하시니깐 언니께서 오신 걸 얼마나 반가와하실지……』

이리하여 중로의 마나님과 소녀는 서로 손목을 마주잡고 병석에 누워 있는 주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도 그걸 무슨 말씀이라고 하시우?』

『아니, 내 탈은 내가 제일 잘 아는 것―다시 일어나지 못할 탈이외다.』

초라한 방 안, 병들어 누워 있는 민 치록의 곁에 흥선 부인은 병인을 위로하고 있었다.

『아직 장년에 그만 탈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시느니 못나시느니 너무도 약한 말씀이외다.』

『아니, 이 긴 병은 한 번 걸리기만 하면 다시 살지 못하는 것이외다. 낙척 십 년, 다시 세상의 밝은 빛을 보지 못하고 쓰러질 모양이외다. 아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이……』

치록은 손을 들었다. 그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떨리는 손을 들어서 발치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딸을 가리켰다.

『아직 젖비린내도 떨어지지 않은 저 애를 남겨 두고 이런 병에 걸리니 딱하기가 짝이 없소.』

여윈 치록의 가슴이 이불 아래서 들먹거렸다. 베개 위에 놓인 머리가 뒤따라 움직였다.

『훌!』

맥 없는 기침 한 마디―그 뒤를 따라서 또 한 마디―연하여 기침이 났다. 그 기침을 한참 하고 난 치록은 말을 계속하였다.

『하늘은 우리 일족에게 왜 이렇듯 야속하신지? 돈 없고 낙척한 우리네―내가 덜컥 죽는 날이면, 저 철 없는 계집애는 누구를 믿고 살겠소?』

쑥 들어간 눈에서는 눈물이 한 줄기 그의 여윈 뺨으로 흘렀다. 흥선 부인도 탄식하였다.

『이런 때에 우리라도 좀 그렇지 않게 지냈으면 서로 도울 길이라도 있으련만, 아저씨도 아시다시피 피차 일반으로 영락된 집안, 마음에는 있지만 힘이 자라지를 못합니다그려. 대감께서도 아저씨 병환이 중하시다는 기별을 들으시고 부랴부랴 나를 이 곳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가난하게 지내는 형세에 빈 손으로 올 밖에는 도리도 없고……』

『천만에! 일가 한 사람도 돌보다 주지 않는데, 흥선 대감이 이렇듯 조카님을 보내 주신 것만 해도 고맙기 짝이 없소이다.』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중병에 걸렸어도 일가의 돌아봄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치록과, 역시 가난하기 때문에 그 집안은 왕가와 가까운 혈족이면서도 온갖 수모와 멸시만 받고 지내는 흥선 부인과는 서로 위로를 주고 받았다.

『내가 여차하는 날에는 이 고아를 돌보아 주시오.』

『그 염려는 마세요. 불행한 날이 오면 뒷일을 다 맡아서 보아 드릴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하루 바삐 쾌차하시도록이나 노력을 하세요. 거기 대해서……』

흥선 부인은 하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침을 한 번 삼키고 숨을 돌려가지고 다시 계속하였다.

『아저씨! 승호(閔升鎬)를 아시지요?』

『승호?』

『네, 내 오라비 동생.』

치록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응, 생각납니다.』

『아저씨도 사당을 받들 후사도 아직 없으시니까 더욱 쓸쓸하시겠지요? 그래서 만약 아저씨 마음에만 계시다면, 승호를 이 댁에 양자로 드렸으면 어떨까 하고……』

치록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생각한 뒤에 다시 눈을 떴다.

『조카님 추천이 어련하리까? 그렇지만 이 일은 집안의 중대한 일이니 좀 생각해 보고 작정합시다.』

흥선 부인이 오늘 이 병든 치록을 찾은 것은 자기 오라비 승호를 일가 아저씨 민 치록의 집에 양자로 들여보낼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흥선 부인은 민 치록의 집에 밤까지 있었다. 그리고 간호를 하며 위로를 하며, 이 병든 외로운 일가를 위하여 하루를 보냈다. 밤에 댁으로 돌아오기에 임하여 부인은 다시 한 번 자기의 동생 승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내 동생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똑똑하고 영특한 애 외다. 영락된 이 가문에 들어와서 장차 이 가문을 부활시킬 만한 수완이 있는 애외다. 잘 생각해 보셔서 작정하도록 하십시오.』

거기 대하여 치록은 사례하였다.

『누구 하나 돌보다 주는 사람이 없는 이 치록에게 그렇듯 뒷일까지 생각해 주니 감사하외다. 잘 생각해 봐서 조카님 호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해 보지요.』

이만큼 하여 두고 부인은 댁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부인의 동생 민 승호는 부인의 내명으로 병들어 누운 일가 아저씨의 병 문안을 겸하여 인사를 하러 갔다.

승호는 흥선의 맏아들 재면과 연갑이었다. 역시 영락된 민씨 집안의 한 사람인 승호는 섞이어 같이 놀 동무도 없어서, 만날 흥선의 집에 와서 흥선의 맏아들 재면을 벗하여 놀았다. 촌수로 따지자면 외삼촌과 생질 사이나, 서로 나이가 연갑이고 어려서부터 같이 길러난 이 두 젊은이는, 촌수를 떠나서 벗으로 지냈다.

흥선의 맏아들 재면은 사람됨이 직하고 좀 우둔한 편이었다. 거기 반하여 승호는 날카롭기 비수 이상의 인물이었다.

좀 우둔한 재면과 날카롭고 민첩한 승호가 같이 노는 모양을 볼 때마다, 흥선은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 눈 기슭에 타오르고 하였다. 자기 맏아들의 우둔함과 이 승호의 민첩함이 대조되어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흥선은 승호의 재질을 사랑하면서도 자기의 맏아들과 같이 놀 때는 흔히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곤 하였다.

이렇듯 민첩하고 영리한 승호는 흥선 부인의 내명을 받고 일가 아저씨를 병상에 문안가서 충분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였다. 병상에 외로이 누워서 인생의 고적함을 느끼고 있던 민 치록은, 승호의 날카로움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 청년이면 뒤를 맡기고 자기가 죽더라도 결코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이 영락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만한 수완을 가졌을 것으로 보았다.

『틈이 있거든 내일로 또 와서 이 쓸쓸한 병인을 위로해 주게.』

숭호가 저녁에 하직하고 돌아갈 때에, 치록은 병든 몸을 반만큼 일으키고 이렇게 당부하였다. 얽은 소녀도 이 일가 오라비뻘 되는 승호에게, 또 내일도 오라는 듯이 그의 커다란 광채나는 눈을 그의 위에 부었다.

이리하여 한 번 두 번 승호가 이 집에 다니는 동안, 치록도 승호의 인물에 반하여, 드디어 흥선 부인을 찾아서 승호를 이 집 양자로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치록의 딸 얽으망이 소녀가 장차 자라서 왕비가 되어, 시아버지 흥선 대원군과 무서운 정권 쟁탈전을 할 때에 왕비의 부조자요 보호자요 심복이요 고문으로서 흥선 대원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민승호는, 이리하여 흥선 부인 민씨의 오라비로서 일가 민 초록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서, 얽은 소녀와 남매의 의를 맺게 된 것이었다. 현재로는 승호는 흥선의 처남―장래는 며느리의 양오빠다.

[편집]

토굴과 같은 집―

몇 해나 된 집인지 새까맣게 덜미고 또 덜미어서, 벽과 기둥의 경계선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된 그 위에는, 수증기와 기름때가 번지르하니 발리어 있다.

문에는 팔각등이 어렴풋한 빛을 겨우 비치고 있고, (키가 작은 사람이라도 허리를 잔뜩 굽히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낮은 문 밖에는 베 장이 늘이어 있으며, 그 틈으로는 김이 무럭무럭 문이 메게 나온다. 허리가 꺾어지도록 구부리고 그 안에 들어서 보면, 누린내와 고린내가 코를 쏘게 나는 그 안, 왼편에는 지금도 피가 뚝뚝 흐르는 쇠대가리가 눈을 부릅뜨고 걸려 있고, 그 아래 걸린 커다란 솥 안에는 전골탕이 우글우글 끓고 있다.

막걸리 냄새, 쇠대가리 삶는 냄새, 김치 냄새, 안주굽는 냄새, 사람의 땀 냄새, 저 편에서 몰려 오는 지린내―이런 가운데 흐리멍텅한 등잔 아래는 평민들이 모여서 그 날 하루 진일의 피로를 한 잔의 막걸리로 잊어버리려는―서울 명물의 막걸리집―

서서 술을 먹고, 서서 마음대로 안주를 집어먹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 원칙에 반하여 방의 한 모퉁이를 점령하고, 가운데 술상을 놓고 주전자로 술을 따라먹는 몇 사람의 손이 있었다.

모두들 벌써 반감은 지난 모양이었다. 어두운 등잔 아래 기름때가 내밴 그들의 얼굴은 검붉게 번들번들 광이 났다. 나이가 모두 사십 내외쯤, 계급으로 보아서 의관은 할 자격이 없는 상인들인 듯―

『이자식! 어서 먹고 잔 내라.』

남향을 하고 앉았던 사람이 자기 맞은편에 앉은 친구에게 이렇게 역정을 내었다.

『자식두! 서울서 매맞고 송도서 주먹질한다고 웬 짜증이냐?』

『후레자식! 내가 짜증이냐? 술잔을 내지 않기에 말이지. 네놈하고 술 먹다가는 모두 안달 나 죽겠다.』

『○○할 자식! 그럼 바리깨를 달래서 바리깨로 퍼부으려무나. 저자식 할애비가 술 못 먹어 죽었나베.』

『이자식! 우리끼리 다투면 다투지 조상은 왜 들추느냐? 그래도 우린 당당한 청풍 이가로다. 너 같은 상놈과는 다르다.』

『흥! 청풍은 도둑놈 많이 난다더라.』

싸움도 아니요 농도 아닌 말을 입에 거품을 물어 가지고 주고 받을 때에, 아직껏 잠자코 있던 다른 친구가 나섰다.

『자식들아! 나이 사십에 철따구니 없이 이게 쌈이냐 농이냐? 쌈을 할라거든 주먹이 왔다 갔다 하게 하거나……어린애들같이……』

『내야 누구 쌈을 하쟀나? 저자식이 술 타박만 연방하기에 말이지. 야, 이 어리석은 자식아! 이 철없는 자식아! 그래 조(趙)가 놈이 원님이 됐건 감사가 됐건, 네가 그렇게 샘을 할 게 뭐냐 말이다? 너도 원님 한 자리 벌려무나.』

즉, 아직껏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우던 「청풍 이가」는 풀 없이 머리를 푹 수그려 버렸다.

『글쎄 놈들아! 사나흘 전까지도 상투를 맞잡고 놀던 조가 놈이, 갑자기 원님이 웬 원님이냐 말이다.』

『그게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너의 누이를 무당이나 내리게 해서……』

그는 사면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합(羅閤) 댁에 들여보내려무나.』

『쉬! 남이 들었다는 목 달아날라.』

『걱정 말게. 내 소리는 쥐도 새도 못 듣네.』

『하하하하.』

그는 유쾌한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장상이 동석(將相同席)이면 아들도 거기 들어가지 못한다.

이리하여 옛날에는 문관(文官)과 무관(武官)을 같이 존중하였다. 뿐더러 그 부름에 있어서 「장상」이라 하여, 장을 먼저 놓고 상을 아래 놓아서 무관을 도리어 더 존중하였다.

이씨 조선 대흥(大興)의 명군인 세조(世祖) 때에 이르러서, 나라에서는 더욱 무를 숭상하였다.

이씨 오대 문종(文宗)이 승하하고 그 뒤를 이은 단종(端宗)은 아직 어린 임금이었다. 문종은 당시 재상 황보 인(皇甫仁), 남지(南智), 김 종서(金宗瑞) 및 집현전 학사 성 상문(成三問), 박 팽년(朴彭年), 신 숙주(申叔舟) 등에게 어린 세자를 부탁하였다. 문종 승하한 뒤에 보위에 오른 어린 상감(단종)에게 선왕의 유신들은 선왕의 유탁을 받잡고 충성을 다하여 섬겼다.

어린 상감이었다. 그 어린 상감을 보좌하는 신하들은 모두 선왕의 유탁을 받잡은 노신들로서, 상감 한 분뿐만 경지모지하고, 상감의 아래 널려 있는 이 나라의 백성을 돌볼 줄을 몰랐다. 이리하여 자를 가지지 못한 삼천리의 강토는 저 될 대로 의로 벋었다.

문종의 아우요 단종의 삼촌되는 수양 대군(首陽大君)은, 활달하고 명천한 머리의 주인이었다. 그는 조선이라는 강토가 차차 병들어 시들어 가는 모양을 보았다. 이대로 버려 두었다가는 그 병은 가까운 장래에 불치의 역(不治疫)에까지 이를 것을 보았다. 그래서 노신들에게 제삼 국가를 돌보기를 주의하였다.

그러나 선왕의 유탁으로 상감 보좌의 지위에 있는 노신들은, 불행히 나라를 돌아볼 활달한 눈을 가지지 못하였다. 어린 상감 한 분뿐을 기쁘게 하는 것이 즉 상감께 충성된 것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선왕께 대한 충성이거니, 이렇게 굳게 믿는 노신들은, 수양 대군의 충언을 무시하고 오로지 상감 한 분뿐을 기쁘게 하노라고 자기네의 늙은 머리의 지혜를 다 짜내었다.

「무사히!」

「평안히!」

이것이셔서 이 노신들의 유일의 모토였다. 상감 스스로 정치를 잡기까지의 기간을 무사히 평안히 지나는 것―이것이 노신들의 목표였다. 그런지라, 그들은(섣불리 하다가는 문젯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수양 대군의 충언을 묵살하여 버리고 말았다.

이 나라를 통솔할 분은 너무 어리고, 그 분을 도와서 일을 할 노신들은 위만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하는 동안, 위를 잃은 이 나라는 차차 병집이 커졌다. 그냥 버려 두었다가 다시 수습지 못할 만큼 병은 더하여 갔다.

여기서 수양 대군은 최후의 결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나라를 굳센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굳센 지배자가 필요하였다. 지금의 어린 상감과 무능한 노신들에게 그냥 맡겨 두었다가는, 가까운 장래에 나라가 망하겠다. 그 위태로운 지경에서 나라를 구해 내기 위하여 수양 대군은 스스로 서서 이씨 조선의 제 칠대의 임금이 되었다.

굳센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몸소 역모 멸친의 악명을 쓰고서 세조는, 이 문약(文弱)한 나라를 강한 나라고 만들기 위하여 무(武)에 치중하였다. 방방곡곡에서 무관을 뽑아 올렸다. 구 사람의 지벌의 여하를 막론하고, 힘깨나 쓰는 사람, 활깨나 쏘는 사람은 모두 등용하였다. 무인 전성의 찬란한 황금 시대가 세조의 무관 존중의 제도로 말미암아 한 때 벌어졌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겉이 있으면 반드시 속이 있는 법이다.

세조의 무관 존중 정책 때문에 무인(武人) 전성 시대는 현출되었다.

그러나, 그 폐해가 없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그 전성이 정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엉터리 무인들이 사면에서 생겨났다. 말 못 타는 대장, 활 못 쏘는 활량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문과에 급제하기는 힘들되, 무관에는 웬만만 하면 급제가 되므로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이리로 모여 들었다. 어젯밤의 A읍 아전 향리가, 오늘은 당하관이나마 당당한 무관으로서, 어제의 상관이던 사람과 동석을 하게 되는 예가 여기저기 생겼다. 어제의 B진사 댁 하인이 무과에 급제를 하여 오늘의 어제의 상전을 동무삼는 일이 드문드문 있었다.

엉터리 무 갑, 을, 병, 정, 누구, 누구 몇몇 사람의 선비(혹은 급제)가 모여서 한담들을 하다가 무슨 일이 생겨서 집의 하인을 부른다.

『여봐라 아무개야? 아무개야―』

몇 번 불러 보아도 대답 소리가 없으면,

『음, 그 놈 과거보러 간 게로군!』

이렇듯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무과 과거로 몰려들고, 몰려든 무리들은 대개는 급제를 하게 되었으므로 무인의 품질이 차차 떨어졌다. 군노, 향리, 종, 머슴 할 것 없이, 신수 좋은 사람은 다 급제를 하기 때문에, 무인들의 품질은 매우 낮게 되었다.

품이 떨어지면 따라서 존경도 받지 못하게 된다.

―장상이 동석이면……

이리하여 장과 상을 동급으로 쳤지만, 무인들의 품질이 차차 떨어짐을 따라서, 무인은 차차 문인에게 수모를 받게 되었다. 종이품(從二品)인 문참판(文參判)이 도리금 도리옥의 무판서(武判書)나 무판윤(武判尹)을 눈 아래로 깔아보고 인사도 변변히 안 할 뿐더러, 도리어 무장들을 건방지다 말썽을 부리는 일이 흔히 있었다.

무를 존중하자고 시작한 이 법은 차차 무를 멸시받게 하였다.

그렇게 된지라, 소위 양반의 자손들은 무과에 급제를 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알았다. 어느 보국 댁 어느 숭록(崇祿) 댁 몇째 아들이 무과에 급제를 하였다 하면(애당초에 가지도 않거니와) 그들은 피하고 머리를 돌리고 하였다. 여기 따라서 문과에 급제를 한 사람들의 긍지는 차차 높아 갔다.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 말은 본시는 문무를 구별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차차 어느덧 문과에 급제를 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되게 되었다. 무과 같은 것은 양반의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상놈들의 등용문이었다.

이렇듯 문과에 급제하는 것을 존중히 여기는 시대가 오래 계속되었다. 문과에 급제를 한다는 것은 온 백성의 바라고 희망하는 바였다.

문과에 급제한다는 일이 그렇듯 명예스러우니만큼 그 전형에 있어서 첫째도 지벌이요 둘째도 지벌이요 세째도 지벌이요, 무엇보다도 지벌이었다. 지벌이 나쁘면 제 아무리 재간이 비상하다 하더라도 절대로 급제를 하지 못하였다. 지벌이 나쁘기 때문에 무관이 하대를 받느니만큼 문관 등용에 있어서는 첫째도 둘째도 지벌이었다. 지벌이 급제의 제일 요소였다. 그리고 그것이 제일 요소인지라, 급제한 사람의 코는 더욱 높았다. 문과에 급제를 한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지벌이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였다.

그 자랑스러운 「문관」이라는 열매도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차차 따기가 쉽게 되었다. 어중이떠중이도 「문관」이라는 열매를 능히 딸 수가 있게 되었다.

영의정 하옥 김 좌근(領議政荷屋金左根)

하옥 김좌근은 현 왕비의 아저씨였다. 세도 김 병기는 하옥의 양아들이었다. 대제학 영초 김 병학(大提學穎樵金炳學)이며, 훈련 대장(訓練大將) 영어 김 병국(穎漁金炳國)은 모두 그의 조카였다. 영흥 부원군(永興府院君) 김 문근(金汶根)(현 왕비의 친정 아버지)이며 김 현근(金賢根), 김 흥근(金興根) 등이 모두 그의 일족이었다. 하옥은 이 당당한 일족의 그 어른 격이었다. 몸이 영의정이며 그의 아들이 세도인지라, 다른 일족이 없을지라도 그 세력은 무서울 것이다.

하옥에게는 앙씨라 하는 애첩이 있었다. 본시 나주 기생으로서, 출신이 기생이니만큼 간교하고 요염하여, 늙은 하옥을 마음대로 놀렸다.

하옥이 양씨를 위하여 집을 수리할 때의 일이다. 안방에서 긴 담뱃대를 피우고 있던 양씨는 갑자기 하옥을 안방으로 청하였다. 양씨의 명령에 의하여 하옥은 호인다운 미소를 얼굴에 띄워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나주 합하(羅州閤下)께옵서 왜 또 불러겝시나?』

벙글벙글 웃으면서 마루에 와 걸터앉은 하옥에게 향한 양씨의 눈찌는 그다지 곱지 못하였다.

『대감!』

『왜 그래?』

『대감, 대체 어쩌자는 셈이세요?』

『어두운데 주먹이라, 갑자기 왜 이리 노하셨나?』

양씨는 입에 물었던 기다란 담뱃대를 오른손으로 들고, 지금 한창 세우는 중인 사랑 용마루를 가리켰다.

『저것 보서요. 사랑 지붕에 가리워서 목멱산이 보이지를 않으니, 나 같은 천비는 남산도 보지 말고 살라는 셈이구료? 너무도 심하시외다.』

하옥은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허어! 남산이 보이지를 않는구면. 남산이 안 보여서야 되나. 당장에 이놈들을 꾸짖어야지.』

여기서 나온 하옥은 직접으로 목수를 호령하여 사랑 기둥을 잘라서 안방 마루에 앉아서도 남산이 우러러보이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양씨의 세력은 당당하였다. 하옥은 그의 손으로 나라를 주무를 권력을 잡았다. 양씨는 그의 손으로 하옥을 주무를 권력을 잡은 것이었다.

그런지라, 양씨는 하옥을 통하여 간접으로 나라를 주무를 권력을 잡은 것이었다. 세상이 양씨를 가리켜 나주합하(羅州閤下)라 하고 나합(羅閤)이라 함은 이 때문에 나온 이름이었다.

본시 기생인 양씨는 무당 복술을 몹시 섬겼다. 본시 천비인 양씨는 금전을 여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지라, 금전을 뇌물하거나 무당 복술의 손을 빌면, 시정의 상놈이며 시골 머슴군이라도 넉넉히 나주 합하 양씨에게 접근을 할 수가 있었으며, 양씨에게 접근하여 양씨의 총애만 얻으면 벼슬 같은 것은 마음대로 얻어 할 수가 있었다.

이 양씨의 손을 통하여 조선 각도에 퍼져 나간 수령의 수가 꽤 많았다. 그리고 이 수많은 수령들을 일변 만들어 보내고 일변 갈아 들이는 동안 양씨의 손 안에 들어온 금은 보화가 누백만이었다.

상놈으로 태어나면 절대로 얻어 할 수 없던 문관이 양씨의 덕택으로 상놈도 얻어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양씨에게 귀염받는 무당이나 복술을 자기의 친척 가운데 가지고 있으면, 그가 비록 상놈일지라도 넉넉히 벽지의 수령쯤은 얻어 할 수가 있었다.

『나합(羅閤)!』

비웃음과 경멸과 위포가 함께 섞여 이 이름은 서슬이 푸르르기 짝이 없었다.

조(趙)성 쓰는 상놈이 하나 있었다.

성애라고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정업은 투전이었다. 투전을 하여 요행 돈냥이라도 생기면 그것으로 술을 먹었다.

투전판도 알맞은 것이 없을 때는 길목을 지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생트집을 잡아서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 거기서 몇 잔의 술이라도 따 내고 하였다.

포도청 포교들이며 금부며 옥졸들도 이 조가는 꺼리었다. 조가는 옥에 갇히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예상사로 알았다. 나오기만 하면 당일로 또 다시 못된 일을 하였다. 뿐더러 자기를 잡아 가둔 포교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았다.

옥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맞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인지라 모두들 이 조가를 꺼리었다. 포교들이 밤중에 알지 못하고 조가를 붙들었다가도 조가인 줄 알기만 하면,

『이번에는 용서해 주거니와 이 다음 다시 잡히는 날은 용서하지 않는다.』

고 위협한 뒤에는 자기 편에서 슬며시 피하고 하였다.

이 조가에게는 고모가 하나 있었다. 그 고모는 무당이었다. 무당 가운데도 그다지 불리지 못하는 재짜 무당이었다. 그것이 어찌어찌하다가 우연히 하옥 애첩 양씨에게 불리게 되었다. 사람의 연분이란 기괴한 것으로서, 이 말째 무당이 한 번 두 번 양씨에게 드나드는 동안, 양씨의 신임과 총애를 얻었다. 그 무당이 양씨에게 신임을 받게 뇐 얼마 뒤에, 거리의 부랑자 시빗군 조가는 변방이나마 함경도 어떤 고을의 성주로 임명이 되었다.

―토굴과 같은 안국동 어떤 막걸리집 누린내와 지린내와 막걸릿내가 뒤섞인 마굴에서 술군 세 사람이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는 이 조가에 관한 말이었다.

『좌우간 좋은 세월일세. 조가 놈이 원님이 다 되어 간다니―그러면 우리도 원님 되지 말라는 법이야 없겠지.』

두 사람의 다툼을 말리던 친구가 탄식 섞인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청풍 이가」는 그래도 자기의 샘을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따윗 놈이 원님? 흥! 그 놈이 원님 노릇을 제대로 한다면 내×도 선달―흥! 선달? 판서를 하겠다. 판서? 정승이라두 하겠다. 원님이 다 뭐냐? 아니꼽게.』

『이 청풍 이가야, 양반아, 도둑놈아! 글쎄, 내가 조가를 원을 시켰단 말이냐? 왜 내게 시비냐? 내가 원을 시킬 수만 있다면 네 말마따나 네×도 정승을 시켜 주마. 공연히 떠들지 말고 잔이나 어서 내서 이리 내보게.』

불평객은 겨우 잔을 들었다. 꿀꺼덕! 목젖 소리를 내며 단숨에 막걸리를 들이키고 잔을 맞은편에 앉은 친구에게 던져 주었다.

『자 따라 주게. 그렇게 응얼응얼 할 게 아니라. 그 놈이 원님이 됐으면 우리는 술값이나 따 내러 놈을 찾아가구 함세나. 놈이 아무리 원님이 됐단들 우리야 괄시하겠나? 술값 떨어지면 찾아가구 함세나.』

호기로운 친구는 여전히 하하하 웃으면서 술잔을 들이켰다. 떠오르는 김, 몰려 오는 지린내, 누린내―이러한 가운데서 어두컴컴한 등잔 아래 이른 봄의 밤은 차차 깊어간다. 자기네의 그루우프 가운데서 한 사람의 원님을 낸 동지들은 이 값싼 향락처인 막걸릿집에서 그들의 종일 시달린 피로와 울분을 텁텁한 몇 잔의 막걸리로써 푸는 것이었다.

야반(夜半)을 알리는 종 소리가 꺼지는 듯한 무거운 여음을 남기면서 울었다. 그 종 소리의 여음을 기다리던 듯이 「수리어!」하는 장님의 웨치는 소리가 가까운 어느 곳에서 났다.

[편집]

봄―

길고 음침한 겨울이 가고, 어디선가 한 마디 노고지리 소리가 들리는 듯하면, 이 땅에는 홀연히 봄이 이른다.

이 땅에 이르는 봄에는 준비 기간이 없다. 길고 음침한 겨울, 그리고 어둡고 쓸쓸한 겨울에 잠겨서, 긴 담뱃대를 벗삼아 시민들은 모두 안일의 꿈에 잠겨 있을 동안 성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교외의 나뭇가지가 윤기가 돌기 시작한다는 기별이 들리는 듯하면, 이 땅에는 홀연히 봄이 이르는 것이었다.

서울의 집 제도는 방 안에 해가 미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남향으로 마루가 달리고, 방이라는 것은 마루를 통해서야 간접으로 바깥과 연하였는지라, 세상을 골고루 비치는 햇볕도 겨우 이 집의 마루를 스치고 지나가는 뿐, 방 안에는 들어올 기회가 없다.

해를 볼 수 없는 방 안―이 음침한 방 안에서 시민들은 길고 긴 겨울을 장죽을 벗삼아서 기름때 흐르는 얼굴에 눈만 반짝거리면서, 언제나 봄이 이를까 고대하면서 지낸다.

근방의 산을 모두 벗겨 온 수많은 솔잎이 연기로 화하여 시민들의 엉덩이 아래를 지나서 굴뚝으로 하여 하늘로 사라진다. 이 많고 많은 연기 때문에, 집이란 집, 기둥이란 기둥, 벽이란 벽은 겨울을 지내는 동안은 모두 시꺼멓게 덜민다. 기다랗고 시꺼먼 추녀 아래로 겨우 조금 내다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버이, 자식, 오라비, 누이 할 것 없이 혈색 나쁜 얼굴들이 한 방에 모여서 우글거리는 모양―그것은 흡사히 그림의 연옥이다. 높은 집을 허락하지 않고 높은 문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작다랗고 낮게 지은 집 안에는 비교적 거대한 체격의 주인인 시민들이 들썩거린다.

이 시민이 가진 집에는 뜰이 없고, 뜰이 있을지라도 나무가 없다. 이층집에서 생활할 권리가 없는 이 시민의 집들은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서 높은 곳에서 굽어 본다할지면, 일면이 거무튀튀한 먹물의 바다일 것이다. 거무튀튀한 기와와 검게 덜민 초가 지붕이 잇달리고 또 잇달려서, 이 시민의 가진 좁다란 길이며 좁다란 뜰은 추녀 끝에 가리어서 보이지도 않고, 고저(高低)가 없는 평균한 지붕 아래 감추어져 있는 이 시민의 생활처는 물결도 없는 커다란 먹물 바다일 것이다.

사멸(死滅)의 거리―이 거리에서 아침과 저녁에 불을 때느라고 뭉겨 오르는 연기만 없으면, 이 거무튀튀한 먹물 바다 아래 「사람의 생활」이 있으리라고는 누구나 뜻도 못할 것이다. 낙타(駱駝), 백련(白蓮), 목멱(木覓), 인왕(仁旺), 백악(白岳)의 등걸 속에 보호되어 있는 오십리 평방의 이 먹물 바다―그 안에는 오 서(署), 사십구 방(坊), 삼백 사십 동(洞)이 벌여 있고, 이십만의 생령이 그 속에서 사람의 가지의 희, 노, 애, 낙의 온갖 감정을 호흡하며 생활하리라고는 과연 몽상 외의 일일 것이다.

가늘고 기다란 담뱃대, 가늘고 기다란 목을 가진 술병, 가늘고 고불고불하고 기다란 거리의 길, 이것들은 모두 가늘고 약한 생활을 경영하는 이 시민의 심볼이다. 막걸리의 힘을 빌지 않고는 마음대로 크게 웃을 권리도 없고, 권리가 있을지라도 웃을 만한 기꺼운 일도 없고, 어둡고 음침한 생활만 계속되는 것이다.

이씨 사백 년 간, 그 동안에 한양은 망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서 한양 사람에게,

『너희는 돈 버는 방법을 아느냐?』

는 질문을 던질 것 같으면, 그들은 서슴지 않고 대답하리라.

『안다. 먼저 벼슬을 해야 한다. 그 뒤에 토색을 하면 저절로 돈이 생긴다.』

라고―음침한 방 안에서 장죽을 물고 이 시민들이 꾸는 꿈은 이런 것이다.

이 사멸의 도시(死滅都市) 한양은, 본시 고구려 때에는 북한산군(北漢山郡)이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한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려초에는 다시 이름을 양주(楊舟)라 고쳤다가, 고려 문종 때에 남경(南京)으로 삼고 목멱산에 궁궐까지 짓게 하고 충렬왕 때에 또 다시 이름을 한양이라 정한 것이다.

중 도선(道詵)의 예언에,

『장차 이씨가 왕이 되고 도읍을 한양에 정하리라.』

하는 말이 있었으므로, 고려 역대의 임금은 이것을 몹시 꺼리어서, 고려 숙종 때에 윤 관 등을 보내서 자세히 한양의 지세를 탐사시켰다. 그 결과에 의지하여 삼각산이 남산으로 뻗어 내려온 만경대의 한 줄기 백악(白岳)이, 도선의 비기(秘記)에 말한 바 그 곳이라 하여 이 곳에다가 오얏나무(李木)를 많이 심고, 이씨 성 가진 사람을 남경 부윤으로 보내고, 숙종왕은 매해 한 번씩 남경부에 순행하며, 남경부에 심은 오얏나무가 무성하면 잘라 버리고 무성하면 잘라 버리고 하여 이 한양주의 왕기(王氣)를 꺾기에 노력하였다.

이씨 조선의 역대 이 성계, 처음에는 고려의 궁궐인 수창궁에서 즉위하였지만, 고려의 구도에는 그냥 고려 왕조에 마음두는 구신들이 많으므로 도읍을 옮기기로 작정하고, 그 후보지로서 처음은 계룡산을 택하고 대궐 기공까지 하였다가, 계룡산은 그 지형이 좁고 토지가 더럽고 교통이 불편하고 물길이 멀어서 못 쓴다는 유근(柳覲) 등의 의견을 좇아서 한양으로 도읍을 고쳐 정하기로 하였다.

도읍을 한양으로 옮김에 임하여 태조는 정 도전(鄭道傳) 등에게 명하여함께 좋은 자리를 잡아서 대궐을 짓게 하였다. 삼각산이 흘러서 백악이 된 그 아래, 높기가 삼십 척의 돌담에 둘린 웅대한 궁궐―

基數移住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

이라는 글에서 따낸 경복궁이 이것이었다.

연침(燕寢)은 강녕전(康寧殿)이라 명명하고, 동소침(東小寢)은 연생전(延生殿), 서소침(西小寢)은 경성전(慶成殿)이요, 연침의 남쪽에는 사정전(思政殿)이요, 그 앞에는 근정전(勤政殿)이요, 근정문이 근정전의 정면을 장식하고, 융문융무(隆文隆武)의 두 문이 동서에 있고―동남서북의 큰 문은 동을 건춘(建春), 서를 영추(迎秋), 남은 광화(光化), 북을 신무(神武)라 하고, 각 문에는 누각이 있어서 그 위엄을 자랑하여,

『오 보에 일루(一樓)요 십 보에 일각(一閣)이라.』

는 아방궁은 따르지 못하지만, 이 삼천리의 통수자의 궁궐로서 부끄럼이 없도록 찬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이씨 조선의 창업을 자랑하는 찬란한 궁궐도, 임진왜란 때에 그만 불을 일으켜서 거진 타 버렸다. 그 뒤에 중수를 하였지만, 그 뒤부터는 역대의 상감을 혹은 창덕궁이나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에 기거를 하고 경복궁은 빈 궁으로 지냈다.

「사멸의 도시」 한양부는 폐허가 된 고궁 때문에 더욱 쓸쓸히 보였다. 여기저기 무너진 돌담 틈으로는 잃어버린 연(鳶)을 잡으러 드나드는 소년의 무리까지 있었다.

봄―

이 도시를 둘러싼 높고 낮은 뫼에는 봄의 다사로움이 찾아왔지만, 사멸의 도시와 폐허에 가까운 고궁에는 쓸쓸한 봄이 찾아왔다. 그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정숙의 도시」였다. 외국인이 명명한 바, 「은사국인(隱士國人)」의 생활과 어울리는 외로운 거리였다.

왕도를 한양에 정하면서 왕실의 위엄을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꾸민 이씨 조선의 궁궐이 얼마나 찬란하였는지, 우리는 우리의 조상의 기록을 보기보다 오히려 남의 손으로 된 기록을 살펴 보자.

임진왜란 때에 왕은 멀리 북으로 피하고, 빈 한양에 입성한 왜장 가운데 나베지나 나오시게(鎬島直茂)의 기록을 보면 이러하다.

『조선 왕성의 형세 장관은 진실로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한다.

그 동으로 흐르는 강을 여강(麗江)이라 하고, 서으로 흐르는 강을 서강(西江)이라 하고, 남으로 흐르는 강을 한강(漢江)이라 하며, 북쪽에 있는 산을 북산(北山)이라 하고, 남쪽에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 하고, 서북쪽에 있는 산을 삼각산(三角山)이라 한다. 이 세 산에 둘린 그 사이를 산마루며 골짜기를 타고 칠 리가 넘는 성을 돌로 쌓아서 그 가운데를 낙중(洛中)이라 한다.

북산 아래는 남면(南面)하여 자궁(紫宮)이 있고 돌을 아로새겨서 그 벽을 만들었다. 무슨 전(殿) 무슨 각(閣) 그 수효를 셀 수 없고, 맑은 시내가 서으로 흐르는 그 위에는 돌 다리를 걸고 난간 기둥으로 석련화(石蓮華)를 세웠다. 다리의 좌우에 돌 사자(獅子) 네 마리를 안치하고 그 중앙에 여덟 자의 돌담을 쌓고 그 네 귀에는 또한 돌 사자 네 마리를 장식하였다. 그 뒤에 자진, 청량(紫震, 淸凉)의 두 전각이 있는데, 역시 돌로 기둥을 삼고 사면에는 상룡 하룡을 새기고, 유리(璃瑠)로써 기와를 만들고, 그 꼭두머리에는 청룡(靑龍)을 두르고, 금은으로 판을 만들어 붙이고, 주옥으로 장식하고, 천장과 네 벽에는 오색 필채로써, 기린, 봉황, 공작, 용호 등을 그리고, 층계에는 가운데는 돌봉황을 새기고 좌우에는 돌 학을 깔았다.

왕성의 형세 언어에 절하여 선경(仙境)이나 용궁성(龍宮城)이라고나 감히 칭할까. 낙인(洛人)이 말하기를 이 곳은 경기도의 감영으로 이백 오십 년 전에 개성서 이리로 옮겨 한양부라 부른다―』고.

소박(素朴)한 당시 일본의 성시를 보아 온 일본 장수들이, 오색이 영롱한 궁궐에 얼마나 놀랐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찬란하던 궁궐도 임진란 때에 불을 일으키고 그 뒤 얼마만큼 중수는 하였지만, 오랫동안 우로에 젖고 또 젖어서, 이제는 보잘 나위도 없게 되었다.

지금의 종친으로 뉘라서 이 고궁을 보고 다시 돌이켜서 옛날 태조의 위업을 생각할 때에 한 줄기의 눈물이 없이 지날 수가 있으랴!

왕실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외척들만 세를 쓰는 지금의 세상에, 이 고궁을 돌아볼 자 누구며, 이 고궁을 간수할 자 누구냐?

사멸의 도시 한양에서 주인 없는 이 고궁은 나날이 더덜미고 쓰러져 간다. 태조 업을 일으키고 한양에 도읍을 정하였음은, 당신의 후손으로 하여금 오늘날 이렇듯 영락에 울게 하고자 하였음은 아니거늘―

이 쓰러져 가는 고궁과 사멸의 도시를 눈 아래 굽어볼 수 있는―한양의 정기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백악에도 봄이 이르렀다.

필운대의 살구꽃도 북문의 복사꽃과 홍인문 밖의 버들을 화류장(花柳場)으로 꼽고, 봄이 되면 삼삼오오 때를 지어 그리로들 놀러 가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백악바위 틈에도 진달래는 송이송이 봄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백악의 평탄한 한 군데를 자리잡아 가지고, 앞에 간단한 주안을 벌여 놓고 봄을 따려는 두 사람의 탐춘객이 있었다. 사멸의 도시를 눈 아래 굽어 보기가 싫어서 모두들 다른 데로 봄을 탄상하러 가는데, 이 탐춘객은 남들이 찾지 않는 백악을 답청장(踏靑場)으로 삼고 여기서 봄을 즐기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사십이 조금 넘음직한 중늙은이, 또 한 사람은 겨우 소년의 영역을 벗어난 열 칠팔 살의 청년―

그들의 앞에는 간단한 주효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술도 들지를 않았다. 잠시 동안을 두 사람은 각각 제 생각만 하는 듯이 온통 회색 지붕 아래 감추어져 먼지만 무럭무럭 울리는 정숙의 도회를 굽어 보고 있었다.

한참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중노인이 스스로 술을 한 잔 부어서 들이켰다. 그리고 그 잔을 보자기 위에 도로 놓으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

『여보게, 성하! 어디 자초지종을 다 한 번 다시 말해보게.』

청년은 조심하였다. 그리고 성하와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은 타락된 공자 흥선군 이 하응―

한참 저편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던 성하는, 그 눈을 굴려서 흥선을 쳐다보았다. 흥선은 음침한 얼굴로 비기어 성하의 얼굴은 광채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의 차이의 탓뿐이 아닌 듯하였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상세히 여쭈어 보지 못했읍니다.』

『왜?』

『며칠 전에 대감께 그 분부를 듣잡고 어제 대비마마께 가서 그 말씀을 여쭈어 보았더니, 마마께서는 너는 왜 당찮은 말을 묻느냐고 하시는데 무어라고 더 여쭈어 보겠읍니까?』

『그럼……』

흥선은 무슨 말을 곧 하려 하였다. 그러나 잠시 주저하였다. 주저한 뒤에 드디어 그 말을 하였다.

『그럼, 달리 돌려서라도 여쭈어 볼 게지.』

『어떻게 말씀이오니까?』

흥선은 대답지 않았다. 대답지 않고 성가신 듯이 두어 번 코를 울렸다. 이 성가신 듯이 흥선이 코를 울리는 것을 성하는 미소로써 쳐다보았다. 한참을 흥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가 성하는 자세를 바로하며 흥선을 찾았다.

『대감!』

다시 흥선을 찾을 때에는 성하의 입 가에 떠돌던 미소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대신 얼마만큼 엄숙한 기분이 나타났다.

『대감께서는 시생을 어떻게 보십니까?』

『?』

『왜 마음에 계신 대로 말씀을 안 하시고 한 겹 감추어 가지고 계십니까?』

흥선은 그의 굵은 살눈썹 아래고 이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권문들을 찾을 때에 늘 그의 얼굴에 흐르던 비굴한 표정은 어디로 감추었는지, 그다지 표정이 없이 굽어 보는 그의 눈찌지만, 그 눈찌에는 사람을 위압하는 위엄이 있었다. 이 눈찌―위압적 눈찌를 성하는 감사한 듯이 우러러 보았다.

정월 초승, 흥선을 조대비께 안내한 이래로 조 성하는 자주 흥선을 찾았다. 흥선도 성하를 자주 불렀다. 종실의 당당한 공자이지만, 가난한 살림을 오래 하기 때문에, 지금은 사람이 여간 비루하게 되지 않았다는 흥선의 소문은 성하도 일찍부터 들었던 것이었다.

그랬더니 섣달 그믐날, 자기의 악장되는 이 호준이 부러 자기를 불러서 말한 바에 의지하건대, 흥선군 이 하응씨는 결코 세상이 전하는 바와 같은 허튼방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이 전하는 바와 같은 여러 가지 기행(奇行)이 있는지는 모르되, 그것은 기행으로 볼 것이지, 세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전하는 바와 같이, 눈살을 찌푸리고야만 능히 말할 수 있는 비루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만약 또한 그런 일이 있다 칠지라도 그것은 무슨 다른 곡절 아래서 나온 일이지, 그의 인격과 품성은 고결하고 총명하기 당대에 드문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종반에 사람이 많고 많으되, 눈 있고 귀 있고 손 있는 이는 그이 한 분만이시다. 호방(豪放)하고 작은 일에 구애하지를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결코 상린(常鱗)이 아니니라. 종반 가운데 국운을 회복할 만한 역량을 가진 분은 흥선 대감밖에는 없으리라.』

호준은 사위에게 이렇게 흥선의 인물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성하가 조 대비의 조카임을 이용하여, 흥선군을 조용히 조 대비께 뵈올 기회를 지어 주기를 부탁하였다.그 때를 기축으로, 그 뒤에도 성하는 여러 번 흥선 댁을 찾았다. 여러 번 찾으며 찾은 때마다 관찰하고 연구한 바에 의지하건대, 흥선이라는 인물은 도저히 그 속을 알아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비굴한 행동 비굴한 말을 예사로 하는 인물이었다. 그 수모를 받으면서도 대관 댁이며 대신 댁을 그냥 지근지근 찾을 때에 그의 얼굴에 떠도는 비굴한 미소―그것을 한낱 연극으로는 결코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오래 가난에 젖고 또 젖어서, 그의 제이의 천성이 된 비굴한 성품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대체 그 비굴하게 구는 것이 한 개 연극에 지나지 못하다면, 그 때 받은 수모 때문에 이를 갈면서 분해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수모를 받은 뒤에마다 이를 갈면서 분해한 뒤에도 이튿날만 되면 또한 여전히 지근지근 그들을 찾는 것은, 속이 썩고 또 썩은 인물이 아니면 하지 못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썩고 또 썩은 인물인가 하면, 또한 때때로는 엄격하고 추상 같은 그의 일면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의 둘째아들 재황을 데리고 조용히 이야기라도 하는 기회를 어떻게 엿보면, 그런 때에는 흥선의 얼굴에 있는 엄숙하고 경건한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의 면을 가지고 있는 흥선의 어느 면이 참말 그의 면인지, 성하는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놀라운 야망을 품고 있는 흥선은 한 개의 명우(名優)인가?

혹은 가난에 젖기 때문에 속의 속까지 썩은 가련한 공자인가?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마음이 강직하기 짝 없는 이 호준의 눈에 들어 호준의 애서(愛?)가 된) 성하는 벌써 어른을 능히 잡아 먹을 만한 뱃심과 기백을 가졌던 것이었다. 이 성하가 흥선이라 하는 인물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세밀히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결과, 몸을 의탁할 만한 사람이면 자기의 몸을 의탁하려고.

수일 전 성하가 흥선을 찾았을 때에 이런 말 저런 말 끝에, 흥선은 성하에게 한 가지의 일을 부탁하였다. 즉 다른 일이 아니라 성하가 조 대비께 뵐 기회가 있거든 그 때에 조 대비께 동궁 책립에 대한 의향을 내탐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세자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지, 혹은 종친 중에서 누구를 동궁으로 책립하려고 비밀히 그 인선을 하는지, 그것을 내탐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머리를 교묘히 돌려서 얼른 듣기에는 무심히 하는 말같이 하였으므로, 성하도 그 날은 무심히 듣고 그럽시다고 응낙을 하였던 것이다. 오늘 탐춘을 겸하여 이 백악에 오른 것은 그 때의 그 부탁에 대한 회답도 겸하여서였다. 잠시 무거운 눈찌로 성하를 내려다본 다음, 흥선은 슬며시 머리를 돌렸다.

『자네게 한 꺼풀 감추는 것이 무엇 있나?』

『아니올씨다. 비록 아직 철 없는 성하입니다만 그만 눈치까지야 왜 없겠읍니까?』

머리를 돌리고 있는 흥선의 눈은 경계하는 듯이 두어 번 섬벅거렸다. 섬벅거리던 눈이 굴러서 성하에게로 돌아올 때는, 거기는 기괴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자네 말을 도무지 알 수가 없네. 그러면 이 흥선이 동궁이 되고 싶어 그런 운동을 하겠나? 당찮은……』

그 뒤를 이어서 흥선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성하는 보았다. 너털웃음으로 속여 버리려는 흥선이로되, 그 밑에 숨어 있는 커다란 실망을―성하의 회보에 어떤 기대를 분명히 품고 있다가, 시원하지 못한 대답을 듣기 때문에 초조해하는 것을―

『대감, 다시 말씀드립니다. 대감께서……』

그러나 흥선은 성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성하에게 등지고 두어 걸음 아래로 내려갔다.

『이러한들 어떠라리 저러한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가느다란 소리로 그의 조상 태종이 고려 충신 정 몽주를 시험하던 시조를 읊어 보다가, 홱 몸을 성하에게 돌이키며,

『성하!』

하며 찾았다. 그 갑자기 찾는 흥선에게 황급히 성하가 머리를 들 적에 흥선은 말을 계속하였다.

『이러한들 어떠하리, 저러한들 어떠하리. 성하 자네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모양일세 그려? 상감께는 후사가 없으시겠다, 석파에게는 아들이 있겠다. 석파는 왕실 친척이겠다, 여차하면 석파의 아들이 동궁에 간택될지도 모르렷다, 이런 생각으로 내가 자네에게 그 당부를 한 것 같이―자네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가 보이? 그러나 생각해 보게. 석파의 맏아들 재면이는 자네도 알다시피 천치야. 둘째아들 재황이도 애는 그다지 천치는 아니지만, 본시 천하게 길러나기 때문에 기역자 인 다리도 변변히 못 그리고, 장기라니 돈치기나 연 올리길세그려. 사기를 펴 보아야 돈치기 잘 하는 엿장사 흉내 잘 내는 임금이 다는 기록이 어디 있나? 나는 폐인, 술이나 먹고 투전이나 하고 쌈하다 매나 잘 맞고―그런 대원군이 있다는 기록이 어디 있나? 종실 친척이니깐 내가 동궁에 관해서 물어보면 자네는 그렇게 오해하기도 쉽겠지만, 나는 인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술망나니일시. 사십 년을 술과 투전으로 허송한 내가, 이제 늙마에 무슨 다른 꾀를 하겠나? 며칠 전에 자네에게 부탁했던 것은, 그저 말말 끝에 한 것이지, 무슨 다른 뜻이 없네. 인간 칠십은 고래희라는데, 반 팔십을 술로 허송을 했으니, 아아! 나는 과시 가련한 인생이로군―』

그 뒤에는 쓸쓸한 웃음―

『자, 한 잔 부어 주게. 모두 웃고 지낼 일일세. 나같이 웃고 지낼 일이야. 그 김가들한테 갖은 수모를 다 받기는 하지만, 그냥 모든 체하고 나 먹을 술이나 얻어 먹었으면 그뿐 아닌가? 수모한다고 가지를 않으면, 배 굶을 놈은 나뿐일세 그려. 안 간다고 그 놈들이 칭찬할 것도 아닐 일, 지근지근 찾아가면 공술잔이나 생기거든. 그것만해도 득이 아닌가?』

이런 말을 천연히 하는 흥선의 뱃속에 과연 별다른 배포가 있을까? 이것은 자기의 그 배포를 감추고자 하는 한 개의 연극일까? 성하는 차차 혼란되어 가는 마음을 억제하기 위하여, 잠자코 저편 아래 음침히 누워 있는 회색 바다―사멸의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참 잠자코 저편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다가 상하는 드디어 한숨을 쉬었다.

『대감, 바른 대로 말씀드리리다. 어제 마마께 뵙고 동궁 간택에 관해서 어떤 의향을 갖고 계신지 대비마마의 의향을 여쭈어 보에 대하여 더니, 마마께서는 직접 거기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계시고, 대감의 둘째도령 명복(命福―재황의 애명) 아기씨가 무슨 생이냐고 물으시기에 아마 금년에 열 살인가 아홉 살인가 된다고 여쭈었더니, 음영특하다는 말은 나도 들었다 하시고는 다른 말씀을 하시고 마십디다.』

흥선은 이 말을 들었는지? 적어도 귀담아 들었는지 성하의 이야기를 듣는 듯 안주만 연하여 집어먹고 있었다. 만약 흥선으로서 뱃속에 어떤 다른 배포라도 갖고 있다 하면, 승하의 이 말은 결코 거저 넘기지 못할 말이었다. 지금 종실의 어른이요, 세자 책립을 종묘에 복고할 자격을 가진 유일 인인 대왕대비가, 흥선의 둘째아들의 영특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는 것은 중대한 의의를 가진 것으로서,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장래 어떤 방면으로 사건이 진전될지, 그것은 예측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의하여 들으면 이런 중대한 의의를 가진 말이 승하의 입에서 나왔거늘, 그것을 당연히 들었을 흥선은 못들은 체하고 그냥 술에만 정신을 두는 것이었다.

만약 흥선으로서 그 말을 듣고도 심상히 여긴다면, 흥선은 세상이 전하는 바와 같이 별로 속도 없는 한 치인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흥선이 성하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의의를 알고, 그리고도 이렇듯 표면 천연히 「술밖에는 자기를 끄으는 아무 물건도 세상에 없다」는 듯이 자기의 온갖 감정과 표정을 죽여 버리는 것이라면, 흥선은 사람의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아직껏 흥선의 마음을 따져 보기 위하여 감추어 두었던 진상을 흥선에게 말하고, 거기서도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 성하는, 흥선의 얼굴에 움직이는 표정이라도 보려고, 눈을 들어서 흥선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흥선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 표정도 보이지 않고, 일심불란히 질긴 편포만 씹고 있는 것이었다.

경하는 흥선을 진맥하기를 드디어 단념하였다. 오래 사귀는 동안―그리고 자기의 심경을 모두 흥선에게 사뢴 뒤에 저절로 차차 알아질 것이지, 흥선과 같은 수수께끼의 인물을 단시간 내에 알아내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줄을 깨달았다. 조급히 알려면 알려느니만큼 부득요령의 결론밖에는 얻을 수가 없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 세상이 흥선을 비평하는 비평 이상으로 흥선을 알지 못할 것을 알았다.

흥선을 단시일 간에 알아보려던 노력을 포기한 성하도, 흥선을 본떠서 땅에 편 암주 보자기에서 편포를 한 조각 찢어서 입에 넣고 후물후물 씹기 시작하였다.

봄날 따스한 볕은 이 두 불우(不遇)의 공자 위에 고요히 내리비치고 있었다.

흥선과 조 성하가 백악에서 내려온 것은, 봄날의 짧지 않은 해가 멀리 인왕산 마루에 넘실넘실할 저녁때였다. 사멸의 도시 한양도 겨우 움직이기 시작하여, 집집마다 뽑아 내는 저녁 연기가, 가뜩이나 거무튀튀한 이 도시를 더욱 음침하게 만들고, 많은 부엌 며느리들은 시민의 양식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히 왕래할 때였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 흥선은 먹다 남은 부스러기 안주를 모두 다시 보자기에 싸서 간수하였다. 남은 부스러기라 하나, 마른 안주 몇 점밖에 없는 것을 찬찬히 싸서 그것을 허리에 찼다. 가난에 젖은 흥선으로서는 예사로이 하는 노릇인지 모르지만, 같이 일반으로 부유히 지나지 못하는 조 성하의 눈에조차 창피한 노릇이었다.

성하는 흥선 댁까지 흥선을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잠시 들어와서 저녁이나 같이 하고 가라는 것을 사양하고 흥선 댁 문 밖에서 흥선께 하직하였다.

싱거운 답청(踏靑)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하인들을 뒤에 달고 흥그러이 취하하여 사인교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이 날에, 흥선과 성하는 똑똑한 정신으로 (흥선조차 그리 술도 먹지 않고) 다시 아침에 떠났던 이 도시로 돌아온 것이었다.

흥선을 흥선 댁으로 들여보내고 혼자 된 성하는, 처음에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였으나, 마음이 유난히 뒤숭숭한 것이 집으로 돌아가기도 싫으므로, 그의 발에 온 권리를 맡겨서 지향 없이 거리거리를 헤매기 시작하였다.

흥선이라 하는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한 의문이 그의 온 머리를 덮었다.

단지 한 술망나니에 지나지 못할까?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감쪽같이 속이는 놀라운 명우(名優)일까? 단지 한 주착 없는 술군으로 보잘 때에는, 그 의견을 부인하는 몇 가지의 증거가 그의 머리에 휙휙 지나갔다. 자기의 장인 이호준은 강직하고 사람을 볼 줄 아는 인물이다. 그 이 호준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적에는, 칭찬할 만한 무슨 곡절을 가졌을 것이다. 정월 초승, 성하 자기와 오서도 반해 조 대비께 잠행을 했을 때도, 단지 주착 없는 술군일지면 거기서 망신스런 몇 가지의 행동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흥선의 언행은 비록 궁중 예의에는 벗어난 일을 하였을지라도, 눈을 찌푸릴 만한 망신스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야인비례(野人非禮)라고 너그러이 볼 만한 행동은 하였지만, 더러운 인물로 볼 만한 미루한 행동은 하지를 않았다. 권문 김씨를 앞에서 늘 흘리던 비굴한 미소도, 조 대비의 앞에서는 흘리지 않았다. 「하하하하!」그 때의 야인의 야성적 웃음을 궁중 예의에는 벗어났을지 모르나, 어디까지든 호활하고 천진한 야인이었다.

―흥선군은 소문과 달리 재미있는 사람이라.

고 조 대비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만큼, 그는 첫눈에 대비의 마음을 샀다.

그런 일면을 가진 그가 세상에 나와서는 한 잔의 막걸리를 위하여 비굴한 웃음을 연하여 웃으며, 한 점의 안주를 위하여 갖은 수모를 받으며, 권문 세가들을 지근지근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창피를 창피로 알지 않고,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두 가지의 면을 가진 괴인의 진정한 정체는 과연 어떤 것인가?

이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풀려고, 성하는 머리를 깊이 가슴에 묻고 황혼의 거리를 방향 없이 왔다 갔다 하였다. 저녁 짓는 연기가 숨을 쉬기조차 힘들도록 가득해 있는 이 어둠과 냄새와 더러움의 거리를―

성하는 우뚝 섰다. 맞은편에 무슨 시커멓고 커다란 것이 벌리고 섰으므로―

눈을 들어 보니, 지향 없이 황혼의 거리를 헤매고 있던 성하는 어느덧 남대문에 당도한 것이었다. 아래의 문에서 위의 누각으로 성하는 차차 차차 눈을 높이 올렸다. 차차 올라가던 눈은 숭례문(崇禮門)이라 쓴 커다란 현판에 가서 멎었다.

그 호활 뇌락(豪?牢落)한 필적의 현판을 잠시 우러러 볼 동안 성하의 낮에는 차차 미소가 나타났다.

필적의 주인인 양녕 대군(讓寧大君)―태종의 맏아드님으로 일찍이 세자로 책립이 되었다가 폐사된 양녕 대군―

어렸을 적에 읽은 역사상의 사실이 걸핏걸핏 성하의 머리 한편을 스치고 지나갔다.

―양녕 대군은 태종의 맏아드님으로, 일찍이 세자로 책립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님 왕의 마음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자기의 세째 동생 충녕 대군(忠寧大君)에게 있음을 알고, 양녕은 아버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미친 체하고 치인(痴人)의 흉내를 내었다. 이리하여 아버님의 노염을 사서 폐사가 되고, 동생 충녕 대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어서, 후일 태종의 뒤를 이어 제 사대의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이 분이다.

당시 양녕 대군은 아버님의 노염을 사기 위하여 어떤 행동을 취하였나?

부왕의 부름을 있을지라도,

『몸에 탈이 있어서 못 가겠읍니다.』

고 핑계하고 산과 들에 사냥을 다니던 양녕― 사월 파일날, 대궐의 담을 넘어 나가서 잡배들과 관등을 다니던 양녕― 달밤에 궁을 벗어나서 부랑자들과 짝을 지어 비파를 뜯으면서 거리로 헤매던 양녕― 잡놈 잡년들을 궁 담을 넘겨서 세자궁으로 끌어 들여 놀고 덤비던 양녕― 남의 아리따운 첩을 궁으로 뺏어다가 같이 즐기던 양녕― 허튼 소리를 흉내내며 대궐 뜰을 돌아다니던 양녕― 글을 읽으라면 굴은 안 읽고 다락에 놓은 새덫(鳥械)만 바라보고 있던 양녕―

이런 일들로 부왕의 노염을 사서 양녕은 뜻과 같이 폐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양녕의 사실 인격이 이렇듯 치인이었던가?

양녕이 폐사되매, 양녕의 동생 효령 대군(孝寧大君)은 형이 폐사가 되었는지라 자기가 당연히 세자가 될 줄 알고, 열심히 책상을 대하여 독서를 하였다. 이 모양을 본 양녕은 발길로 효령의 책상을 걷어찼다. 그리고 놀라서 쳐다보는 효령에게 은근한 소리로,

『어리석은 동생아, 충녕(忠寧)이 있다. 세자는 충녕이 될 것이다.』

고 깨쳐 주었다. 효령은 비로소 맏형 양녕의 속뜻을 알고, 궁을 벗어나서 절간으로 달아난 것이었다.

태종은 일찍이 금중(禁中)에 감나무를 심고 상완하였다. 어떤 날 그 감나무에 새가 앉아서 감을 쪼고 있었다. 그것을 본 태종은 좌우에 명하여 누구 저 새를 쏘라고 하였다. 그러나 꽤 멀리 감나무에 앉은 새를 쏘아 맞힐 자신이 있는 사림이 없어서, 모두들 먹먹히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사람이,

『동궁(양녕) 한 분밖에는 맞힐 이가 없소이다.』

고 하였다. 태종은 양녕을 불러서 쏘게 하였다.

과연 양녕은 첫 살로 명중시켰다. 양녕의 하는 일을 모두 밉게만 보던 태종도 여기에는 만족히 웃었다.

이것이 능히 치인이나 광인이 넉넉히 할 일일까?

글을 싫어한다는 평판이 높은 양녕의 필적은, 호활 뇌락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시원한 감을 일으키게 한다.

「讓寧爲世子 淫於聲色 不務學業」

이라 한 양녕이 어디서 그런 달필을 자아내었나?

그런지라, 뒷날 문종과 단종의 대를 지나서 이씨 조선 대흥의 명군 세조가 등극을 하고서, 무능하고 무책하고 지벌 권세만 자랑하자는 모든 왕족이며 대신을 모조리 없이할 때에도, 양녕 대군뿐은 그 화를 면할 뿐 아니라, 틈이 있을 적마다 세조는 친히 양녕 대군을 청하여서 그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치인이란 일컬음을 듣고 글을 싫어하였다는 기록을 남긴 양녕의 숭례문 현판의 필적은 뚜렷이 이 도시의 출입구인 남대문에 걸려서, 이래 사 백년 간 그 아래를 통과한 수 없는 사람에게 그 호활한 필적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황혼의 남대문을 장식한 옛날 현인의 필적을 우러러 볼 동안, 젊은 성하의 눈 가에는 감격의 엷은 눈물까지 보였다. 치인의 형세를 하고 미친 사람의 형세를 하여, 그 한때 생애를 모호히 한 옛날 현인 양녕 대군의 필적을 우러러볼 때에 성하의 머리에 다시금 떠오르는 것은 흥선의 인격이었다. 양녕이 미친 행세를 할 때에, 뉘라서 그것을 한낱 연극이라 간파하였나?

「讓寧雖失德廢嗣 晩年能隨時自晦」

라 하여, 젊은 시절의 실덕을 모든 사가는 시인하였다.

그것을 연극으로 보지 않았다.

『술망나니!』

『주착 없는 인물!』

『투전군!』

『비루한 사람!』

『치인!』

『상갓집 개!』

이런 수 없는 창피한 명칭으로 불리면서도, 그래도 그것을 싫다 하지 않고 그냥 지근지근 대관들을 찾아 다니는 흥선은, 사실에 있어서 치인으로 볼 인물일까, 혹은 옛날의 양녕과 같이 어떤 필요상 자기의 신분과 패기와 포부와 심정을 남에게 감추기 위하여―그리고 감춤으로써 자기의 일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세상을 모호히 하는 술책으로 볼 것인가?

―대감! 대감의 심성을 이 성하에게뿐은 감춤 없이 알려 주십시오. 성하는 영리하옵니다. 영리하면서도 또한 신과 의를 지킬 줄을 아옵니다. 지금 상서롭지 못한 세상―종실의 권위는 발 아래 떨어지고 외척들 때문에 삼천리의 강토와 수천만의 생령은 도탄의 괴로움에서 우옵니다. 종실 가운데서 한 현인이 나타나서 큰 청결을 하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는 이 나라가 꺼져 없어질 모양이옵니다.

―대감! 대감은 과연 현인이옵니까? 혹은 세상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한 개의 치인에 지나지 못하옵니까? 만약 대감으로서 사실에 있어서 현인이시고, 지금의 대감의 하시는 일이 모두 신분을 모호히 하시기 위한 술책이시라면, 성하에게만은 대감의 심정을 일러 주십시오. 성하 비록 어리고 무력하오나 대감의 앞에서 최후의 힘까지 다 쓰오리다.

황혼의 남대문―벌써 꽤 어두워서 눈에 힘을 주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현판을 우러러보며, 성하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옛날 현인의 휘호한 활달한 필적은 이 성하의 마음을 알아보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커다랗게 걸려서, 그가 사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자기의 아래를 통과한 수 없는 사람을 굽어 본 그런 무표정한 태도로 성하를 굽어 보고 있었다.

근 반각이나 그 아래 서 있다가 성하가 자기의 무거운 발자국을 뗄 때는, 성하의 양 뺨에는 희미하나마 눈물이 흐른 자취까지 있었다. 이십만의 인구를 감춘 장안은 고요히 고요히 밤의 장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밤은 차차 전개되려는 것이었다.

『나도 어떻다고 단언할 수는 없네.』

그 날 밤 조 성하가 자기의 장인 이 호준을 찾아서, 거기서 또 다시 장인에게 흥선군의 진정한 인격을 묻자 호준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떻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만치는 말할 수가 있네. 즉 자네도 알다시피 이전에 그 분은 사복시 제조(提調)로 계시고 나는 그 아래 주부로 있을 적에 친히 뵙던 그 분과, 지금의 대감과는 판이하게 달라. 강직하시고 활달하시고, 작은 일에 구애하지 않으시고, 가난을 가난으로 아시지 않더니, 이즈음은 그 날의 강직이 다 없어지시고 가난에 시달린 한 생원님같이 되시지 않았는가. 사람의 천성이란 그렇게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니. 이전에 그렇게 강직하시던 이가 갑자기 지금같이 변하신 것이, 첫째로 머리를 끄덕이지 못할 일―그 밖에 또 한 가지, 자네도 대감 댁에 출입하면서 보았지만, 그 댁 둘째 도령이 가난에 젖기 때문에 동리 허튼 애들과 돈치기나 하며 연이나 날리면서 놀지만, 인사 범절이며 학문 지식이 금중(禁中)에서 성장한 아기씨들보다도 훨씬 낫지 않은가> 이게 모두 흥선군의 교훈에서 나온 것일세 그려. 술이나 잡숫고 투전판이나 찾아 다닌다는 소문이 높은 대감이, 어느 겨를에 무슨 필요로 그렇듯 후사 교훈에 힘을 쓰시겠나? 이런 것으로 보아서 대감의 그―소위 주책없다는 일이 모두 지어서 하시는 일이 아닌가 하네.』

『네, 저도 그렇게 보았읍니다. 그렇게 보기 때문에 무슨 하교라도 계시면 견마의 힘을 다 쓰려는데, 대감께서는 저를 당초에 믿지 않으시고, 여전히 제게 향해서도 세상을 대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하십니다.』

성하는 쓸쓸한 듯이 장인에게 이렇게 호소하였다.

『그것은 자네게뿐 아니라 내게도 그러시네. 벌써 십 년 지교가 있고 사돈의 의가 있는 내게도 그러시니까. 아직 젊은 자네에게 왜 마음을 보이시겠나? 자네도 그만치 알고 모든 일을 나무럽게 알지 말고 꾸준히 그냥 모시게. 상린(常鱗)이 아닐세. 상린이 아니야. 언제까지든 못 가운데 계실 분이 아니고, 구름만 얻으면 능히 하늘을 보실 분일세. 대비마마께서는 어떻게 보시나?』

『마마께서도 제가 뵈올 때마다 흥선군의 안부를 물으시는 품이 나쁘게 보시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것 보게. 웬만한 지자(知者)는 사람으로 여기시지 않는 대비마마께서 그렇게 보신다니, 이게 상린의 염이나 낼 노릇인가?』

그리고 호준은 머리를 뒤로 높이 젖히면서 혼잣말같이 이렇게 말하였다.

『종실의 가장(宗室家長)과 종실의 용(龍), 적지 않은 풍운이 일어날 것이로다.』

어서 일과저! 성하는 축수하였다. 자기도 왕실의 척권의 한 사람이요, 더구나 현 종친의 어른 되는 대왕 대비를 연분삼은 척권이지만, 김대비의 척권되는 김씨 일파의 너무도 푸르른 세력에 눌려서 손 하나 들썩할 자유도 없는 조 성하는, 그 김씨의 세력을 미워하는 심정에서도 하루바삐 종실의 가장과 종실의 용의 악수와 활동을 바랐다.

조 성하가 장인 이 호준의 댁을 하직하고 나선 것은, 야반의 인견은 이미 울고 거리에는 드문드문 포교나 순라군의 무리밖에는 보이지 않는―밤도 이미 깊은 뒤였다.

그 날 밤 자리에 들어가서도 성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남대문에 높이 걸려서 그 활달한 필적을 사백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자랑하는 「崇禮門」의 석 자가 불 끄고 누워 있는 그의 눈앞에 연하여 어릿거렸다.

―대감! 양녕 대군이 됩소사. 결코 세상이 평하는 바와 같은 대감이 아니시기를 바라옵니다.

성하는 때때로 소리까지 내어서 중얼거렸다.

[편집]

『석파(石坡)가 올 터인데……』

『글쎄, 모르나?』

『석파의 코는 십 리 밖에서도 술 냄새는 맡는데 모를 까닭이 있나?』

『하하하하!』

『하하하하!』

필운대(弼雲臺)의 답청―

훈련 대장(訓練大將) 영어 김 병국(潁漁金炳國)을 비롯하여 서너 대관들의 탐춘 놀이였다. 서로 너나들이하는 가까운 벗끼리, 이 봄의 하루를 즐기려고 필운대에 모인 것이었다. 놀이, 제사, 잔치를 무론하고 대관 집 음식 차림이 있을 때는 어떻게 아는지 반드시 찾아 오는 흥선이 아직 오지 않으므로, 그들의 이야기는 자연히 석파 흥선군에게 미친 것이었다.

필운대의 명물인 만개된 살구꽃은 그윽히 그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직 성 안에는 봄 풍경이 그다지 명료히 오지 않았지만, 필운대며 그 근방에는 봄도 이미 무르익었다. 아리따운 기생 몇 명이 시중을 들었다. 좀 떨어진 곳에는 공인(工人)들이 한 상 받고 앉아서 서로 한담을 하고 있었다.

『대감! 자네는 흥선군과 흠 없이 지내는 처지이니 말이지, 한 번 말 좀 톡톡히 하게. 우리 보기에도 창피스럽데. 그렇게 먹을 데 바치는 사람은 쉽지 않아.』

숭정(崇政) 갑(甲)이 영어 김 병국에게 권고 비슷이 이렇게 말하였다. 영어는 미소하였다.

『그게야 자네는 지내 보지 못해서 경험이 없기에 하는 말이지. 시재 배고픈데 염치를 어떻게 차리겠나?』

『염치를 안 차린대도 분수가 있지, 그런 변이 어디 있겠나? 일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네 그려―』

일전 그 갑(甲)이 어떤 집안 어른을 모시고 봄 구경을 홍인문 밖으로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마침 그 근처를 배회하던 흥선에게 들킨 바가 되었다. 흥선은 얼굴에 굶주린 미소를 띄고 이 패에 섞이어 들어왔다. 갑이 모시고 갔던 어른은 이것이 너무 역하여, 그만 일어서서 저 편으로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러매 흥선은 빈 자리에 들어앉아서 마음대로 음식을 다 버르져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글쎄, 그런 변이 어디 있겠나? 내가 망신을 했네 그려.』

갑은 이렇게 술회하였다.

영어는 자기의 왼편 귀 아래 맺은 호박 갓끈을 어루만지면서 그냥 미소할 따름이었다. 지금의 권문 전부가 흥선 따위는 사람으로 보지도 않고 수모가 막심하였지만, 영어는 흥선을 수모로 하면서도 일종의 동정심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흥선의 무염치를 수모는 하면서도, 또한 남들과 같이 내놓고 멸시는 못하는 것이었다.

『석파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여기어 두어야 하네. 어느 어른을 모시고 갔었는지는 모르지만, 석파가 온다고 자리를 피하신 그 어른이 실수시지. 그래 자네 음식상 받았을 때 주린 짐승이나 새 버러지가 온다고 자리를 피하겠나? 그 어른의 실술세.』

『자네는 흥선군을 늘 두둔하데 그려?』

『불쌍하지 않나?』

『십상 팔구는 좀 있다가 여기로 올걸. 오면 내 한 번 망신을 시켜 주지.』

『그건 마음대로 하게.』

『자네 간섭했다는 안 되네.』

『내가 왜 간섭을 하겠나? 내가 석파의 조카인가 삼촌인가? 간섭할 까닭이 있나?』

갑은 기생을 돌아보았다.

『너희도 잠자코 보기만 해야 된다.』

그 기생들 틈에는 흥선과 가까이 지내는 계월이도 있었다. 계월이는 억지의 미소로써 대답하였다.

『대감의 코는 사냥개 이상이야. 허허허허!』

『?』

이 청년 재상들의 예상과 같이 낮 좀 기울어서 흥선은 옷자락을 날리면서 땀을 벌벌 흘리며 이리로 찾아왔다.

『갑갑해서 행화 구경을 왔더니……』

스스로 변명하는 듯이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인사를 하며 오는 흥선에게, 갑은 대짜로 사냥개의 코라 조롱하였다.

영어 김 병국은 호인다운 미소를 얼굴에 띄고 흥선을 보았다. 미리부터 흥선이 오면 망신을 시키겠노라고 벼르고 는 갑의 잔혹성을 잘 아는 영어는, 이제 갑의 일시적 희롱물이 될 흥선이 가엷었다. 희롱을 한다손 치더라도 흠 없는 희롱으로 그치면 좋으나, 갑의 잔혹성으로 미루어 한 때 웃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매, 영어는 그것이 속으로 얼마만큼 꺼리었다. 할 수 있는껏 불쾌한 희롱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갑이 다른 말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일으키면서 흥선을 맞았다.

『자, 어서 오시오. 대감 가야금을 들은지도 오래니 한번 들어 봅시다.』

『아들이 이렇듯 올라오라니 좀 올라가 볼까?』

『에익!』

흥선과 영어는 서로 흠이 없니 농담도 하는 처지였다. 비굴한 웃음 아래서 한 마디의 농담을 던지면서 흥선은 올라왔다. 올라온 흥선을 갑이 맞았다.

『땀을 벌벌 흘리며 예까지 온 이상에야, 대감 거저야 가시겠소? 계월이 너 대감께 한 잔 따라 드려라.』

계월이는 돌아왔다. 잔에 술을 부어 가지고 흥선에게 드릴 때에, 계월이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다분히 나타나 있었다. 땀을 벌벌 흘리며 무얼 찾아 잡수러 오셨소 하는 표정이었다. 나무라는 듯이 계월이가 술을 따라서 부어 주는 것을 흥선은 받아 채어서 먹었다. 권주가도 쓸데없이, 목마른 듯이―

갑이 잔포한 웃음을 띄고 영어를 찾았다.

『영어!』

『오?』

『자네는 언제 흥선군 댁에 양 들었나?』

『예끼 망할……』

『효잘세, 효자야! 물려 먹을 것 많으리. 깨진 항아리, 떨어진 도포, 투전목―하하하하! 또 뭐 있을까?』

이 자기에게 대한 모멸적 비웃음을 아는 모르는지 도리어 흥선이 갑의 말의 뒤를 받았다.

『또 있지요. 영어는 무엇보다도 내 낡은……』

말을 계속하려는 흥선에게 영어가 손을 탁 내밀었다. 그 손을 피하여 흥선은 한 자리 뛰었다.

『하하하하, 내 낡은……』

『예익!』

영어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흥선을 잡으러 한 걸음 달려 갔다.

영어를 피하여 흥선은 일어서서 상 맞은편으로 뛰어갔다. 영어와 흥선은 상을 가운데 놓고 서로 으르고 있었다.

『내 낡은……』

『저런, 버릇 없이! 아비에게 향해서!』

『오자(吾子) 영어야!』

『오손(吾孫) 석파!』

마주 서서 서로 아들이라 손자라 어르는 틈에 갑이 또 끼어들었다.

『대감도 왜 하던 말을 채 못 하시오?』

『그래 낡은 무엇을?』

『내 낡은 후랄 두 쪽을 자기 자당께 드……』

말을 채 맺지를 못하였다. 영어가 상을 건너뛰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몸집으로 흥선을 붙잡았다. 다음 순간은 흥선의 작다란 몸집은 영어의 양 다리 틈에 끼었다.

『자, 호부(呼父)허오, 호부해!』

『오자(吾子)!』

영어의 다리 틈에 끼인 흥선은 작은 소리로 응하였다.

『자, 호부 못 하겠소?』

영어의 다리 틈으로 겨우 좀 나온 흥선의 얼굴은 힘없게 영어의 다리에 끼웠기 때문에 검붉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냥 굴하지 않았다.

『오자 오손!』

『그냥?』

영어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영어가 다리에 힘을 줌에 따라서, 그 틈에 끼인 흥선의 입에서는 낑낑 하고 괴로운 소리가 났다.

『아이 답답해, 답답해!』

『호부하면 놔 주지.』

『아―버―님!』

흥선은 드디어 굴하였다.

『다시 한 번!』

『아버님!』

『그러면 그렇지!』

그러나 영어가 겨우 다리의 힘을 좀 늦추자, 거기서 뛰어 나온 흥선은 도망하여 계월이의 뒤로 피하였다. 그리고 계월이를 방패삼아 가지고 계월이에게 말하였다.

『자 계월아, 그래 누가 아비냐? 네가 판단을 해라.』

계월이의 얼굴에는 억지의 미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흥선을 가리키며,

『대감이 아버님이시지요.』

『요년! 무얼?』

『아니올씨다. 오늘 일기가 좋다고 여쭈었읍니다.』

한 토막의 희롱은 끝이 났다.

그 내막이 어떤 것을 모르는 흥선은, 농담이 끝난 뒤에 여전히 만족한 듯이 다시 상 앞에 와 앉았다. 그러나 영어는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흥선을 오는 참으로 망신시키려는 것을 자기가 가로 맡아 가지고, 아비라 아들이라 하여 슬며시 그 문제를 삭여 놓기는 하였다. 그러나 갑의 눈치로 보아서 어떤 망신을 흥선에게 줄 것은 분명하였다.

그것이 영어에게는 싫었다. 이 다음에 따로이 같이 흥선에게 망신을 준다는 것은 관여할 바가 아니로되 오늘 이 자리에서만은 망신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 고약한 년이로군!』

흥선과 희롱을 하기 때문에 구겨진 옷을 툭툭 털면서 영어도 도로 바로 앉았다. 상을 받고 술을 먹으려다가 영어 때문에 못 먹은 흥선은, 농이 끝나기가 바쁘게 다시 먹을 것에 달려들었다.

『나만 먹기 미안하외다 그려. 판서도 좀 드시지요. 오자는 안 먹겠소?』

혼자 상 앞에 마주 앉은 것이 미안스러운지 이런 말을 하였다. 흥선의 말마다 독한 대답으로 응하던 갑은 여기도 또 같이 응하였다.

『혼자 잡수시오. 대감 혼자서도 부족해 맞을 걸……』

『이걸 나 혼자야 어떻게 다 먹겠소.』

『뿐더러 대감 잡숫던 걸 누가 먹겠소?』

어성(語聲)은 예사롭지만 이 지독한 독설에 흥선은 들려던 젓가락을 멈추었다. 한 순간 눈과 귀가 움찔하였다. 그것을 폭발시킬지 삭여 버릴지 판단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이 가운데를 영어가 뚫고 들어왔다.

『농을 한바탕 했더니 목이 마르군. 갑 판서 을 판서는 많이 잡수셨으니깐 우리 부자끼리 몇 잔씩 더 합시다.』

『참 영어는 효자야! 우리 가문의 행복일걸.』

갑에게 대하여 폭발하려던 노염을 감추어 버리면서 흥선은 영어에게 미소를 던졌다. 이 미소―흥선의 마음이 불쾌하든가 어색하든가 싱겁든가 할 때에는 반드시 나타나는 이 미소는, 흥선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호신장(護身裝)인 모양이었다.

『호부(呼父)한 뒤에 인제 말을 고치면 대감 자당을 욕하는 게 된다오. 그런 불효의 짓은 하지 마시오.』

『오자―오손―에이 아들로 승격을 시켜주어라.』

이리하여 영어는 흥선과 상에 마주 앉았다. 갑 판서는 그 뒤에도 기회 생길 때마다 흥선에게 망신을 주려고 독한 입을 놀리고 하였다.

그러나 웬만한 망신은 흥선의 망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신경이 없는 사람이 아닌 이 이상에는 반드시 찔릴 만한 독설을 퍼부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흥선은 이것을 알아들었는지 혹은 못 알아들었는지 거저 넘기고 하였다. 이러한 흥선으로서도 거저 넘기지 못할 최극단의 독설이 나올 때는 영어가 어름어름 넘겨 버려서 그 독설 이 직접 홍선에게 및지 않도록 하였다. 하루를 유쾌히 놀려던 이 답청은 흥선 때문에 이상한 기분으로 종시되었다.

저녁때가 거의 되면서, 하루 종일 수많던 일기가 차차 이상하여 가기 시작하였다. 저녁 하늘에 한 점 거멓게 생겨난 구름 덩이가, 갑자기 퍼지기 시작하다가 순식간에 하늘의 절반을 덮었다. 원뢰(遠雷)의 소리까지 한 두 번 났다. 이 불쾌한 답청을 어서 끝내려고 기회만 보고 있던 영어가, 이 일기의 급변을 보고 즉시로 귀가를 재촉하였다.

『어, 날씨가 갑자기 변한다. 한 소내기 오실 모양이군! 비 오시기 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시다.』

이리하여 저편 딴 데서 놀던 하인들을 불러서 일변 걷어 치우며 일변 교군의 준비를 하며 하였다. 이리하여 흥선과 갑 판서의 사이에 생겨나려던 불상사는 무사히 패스가 되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인위로서 만들려는 불상사는 이 최후의 순간에 이르되 그만 폭발되고 말았다. 하인들이 남은 음식들을, 버릴 것은 버리고 그릇을 간수하며 하노라고 돌아갈 동안 흥선은 음식 치우는 그릇에서 한 조각의 포육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이 편에서 남녀의 준비를 기다리고 있던 갑 판서가 걸핏 그것을 보았다. 흥선을 망신을 시키려고 벼르기만 하면서 아직껏 진정한 망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적이 불만하던 그의 눈에 이 꼴이 띄었는지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보는 순간 그는 그 편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하인을 불렀다.

『여봐라!』

하인이 대령하였다.

『깜박 잊었다. 그 남은 음식들을 모두 종이에 싸서 흥선 대감께 드려라. 내버려야 새 짐승의 살이나 할 것이나, 잘 싸서 대감께 드려라. 한동안 반찬은 되리라.』

그리고 흥선을 향하여 말을 계속 하였다.

『대감, 사양하지 마시고 가져가시오. 신발 삭이고 이런데 찾아 다니시기보다, 저것을 가져가면 한동안은 댁에서도 넉넉히 자시리다. 근처에 개 짐승이라도 보이면 주고 말겠건만, 불행히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내버리자니 대감이 아수해 하시겠고……』

포육 한 조각을 집어 씹고 던 흥선은, 획 갑 판서를 등지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뒷덜미가 들먹거리는 것으로 보아서, 떠오르는 격분을 누르려고 노력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상전의 부름에 등대는 하였지만, 하인도 이 너무도 심한 영은 그대로 거행할 수도 없는지 허리만 굽히고 그냥 서 있었다. 이런 불쾌한 장면을 조정함에는 다시 영어가 들어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 판서의 영 때문에 그릇을 치우던 하인들이 손을 멈추고 있는 것을 보고 영어는,

『금방 비가 쏟아지려는데 왜들 꿈질거리느냐?』

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이 영어의 말에 갑 판서는 다시 매달렸다.

『얼른 종이에 싸서 드리지 않고 왜들 꿈질거리고만 있느냐?』

그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호령하였다.

『여보게 갑 판서, 그것 뭘 그러나? 농담은 인제 그만 두게나.』

영어는 하릴없이 갑 판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농담? 자네는 불효잘세 그려! 효성이 있으면 아버님 안주를 어떡허든 마련해 보려고 애쓸 터인데 생기는 안주까지 버리려는가?』

『예익 이 사람! 행차 준비 됐네. 어서 가기나 하세.』

『응, 가지. 자 썩 싸서 드려라. 한 점이라도 버렸다가는 용서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갑 판서가 발을 움직이려 할 때였다. 그 모양을 아니꼬운 듯이 보고 있던 계월이가 갑 판서에게 농담을 한 마디 던졌다.

『대감, 그게 그렇게 아까우세요?』

이 계월이의 말이 드디어 불집이 되었다. 발을 옮기려던 갑 판서는, 천천히 몸을 도로 계월이의 편으로 돌렸다. 오늘 흥선을 감싸는 태도를 보인 것부터 아니꼽게 여기던 터이라, 몸을 돌려서 계월이의 위에 부은 갑 판서의 눈자위는 놀랍게 충혈이 되었다.

『무어 어쩌구 어째?』

이것을 그냥 농담으로 여긴 계월이는 한 마디의 희롱을 더 던졌다.

『그렇게 아까우시면 소인이 대감 댁까지 가져다 드리리다.』

『요년! 너 그게 어디서 배운 버릇이냐? 기생년의 행실이 그러냐?』

『여보게 판서, 취했네. 가세 가.』

『가만 있게! 기생년이 양반에게……요년! 너 그게 어디서 배운 행실이냐?』

농담으로 알고 한 마디 던졌다가 막찔리운 계월이는 눈이 둥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둥그렇게 되었던 눈은 순간에 미소로 변하였다. 명기 현기라는 이름을 듣는 계월이의 혼은, 이 엉터리 트집 아래 머리를 든 모양이었다.

『대감, 소인이 대감께 그런 말씀을 드린 게 행실이 글렀다면 아무런 것을 해서라도 사죄를 하오리다. 그렇지만 대감께 거슬리는 말씀을 대감께서는 왜 다른 분께 하셨읍니까? 대감께서……』

말을 맺지를 못하였다. 갑 판서의 억센 손이 계월이의 뺨으로 날아 온 것이다.

『요 망할 계집 같으니! 이놈들! 썩 싸서 흥선 대감께 드리지 못하겠느냐?』

계월이는 고꾸라졌다. 그의 코에는 피가 쏟아졌다. 이 갑 판서의 호령에 아직 주저하던 하인들은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인들은 남은 음식을 되는 대로 종이에 쌌다.

『이 사람, 점잖지 못하게 이게 뭐인가? 어서 가세! 행차 얼른 등대해라.』

무안하고 거북하여 영어는 어쩔 줄을 모르고 돌아갔다. 아까 몸을 등칠 뿐 흥선은 죽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든지 어떤 표정을 하였는지, 다만 그의 등만 약간 떨리고 있었다. 갑 판서의 엄명을 거역지 못하여 한 사람의 하인이 음식 싼 종이를 흥선에게 가지고 갔다. 그리고 그것을 받으라는 듯이 그의 소매 아래로 들이밀었다.

흥선의 몸이 비로소 움직였다. 천천히 하인의 편으로 돌아섰다.

『요놈!』

놀라운 음성이었다. 산천이 드르렁 울리었다. 작다란 몸집의 어디서 그런 우렁찬 소리가 나왔나? 이 너무도 우렁찬 소리에 영어는 눈을 흥선에게 던졌다.

그 때 흥선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 그것은 왕자(王者)나 고승(高僧)의 얼굴이고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온화하고도 엄격하고 위엄성 있는 얼굴이었다. 영어가 흥선을 안 이래 삼십 년―아니 영어가 세상에 난 이래 처음 보는 위엄 있는 얼굴이었다. 영어는 그 얼굴에 위압되어 머리를 딴 데 돌리고 말았다. 갑 판서는 흥선의 호령에 얼굴을 흥선에게로 돌렸다. 돌렸던 얼굴을 황급히 다른 데로 구을리며 남녀로 향하여 발을 뗀 것은, 그도 이 위엄에 압도된 때문인 모양이었다.

영어, 갑 판서, 을 판서의 일행은 벽제 소리 요란히 구종별배를 달고 이 필운대를 떠났다. 계월이 외의 다른 기생들도 떠났다. 뒷설겆이를 하고 하인들도 돌아갔다. 그 뒤에 남은 것은 흥선과 계월과 좀 아랫쪽에 계월이의 교군군뿐이었다.

흥선은 묵연히 서 있었다. 그 곁에 계월이도 쫑그리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하늘은 새까맣게되었다. 금시로 소나기가 쏟아질듯 하였다. 와르르 와르르 천둥소리가 연하여 났다. 하늘을 날던 새 새끼들도 이 무서운 날씨를 피하여 각기 제깃으로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이런 날씨의 변화도 모르는 듯이 흥선과 계월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댁으로 모시랍쇼?』

교군군이 보다 못하여 채근할 때에도 계월이는 모르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드디어 계월이가 먼저 머리를 들었다.

『대감!』

흥선은 대답지 않았다. 못 들은 듯이 그냥 있었다.

『대감!』

『……』

『대감!』

『어, 날씨 고약하군! 비가 곳 올 모양이군. 계월이 너 왜 어서 가지 않느냐?』

『대감!』

『자, 어서 가거라. 여봐라, 교군군. 어서 모셔라.』

아아. 이 공자는 벌써 그 모욕을 잊었나? 계월이로서도 아직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거늘, 당자 흥선 대감은 벌써 잊었는가? 계월이가 너무도 억울하기 때문에, 눈물 머금은 눈을 쳐들고 흥선의 얼굴을 바라보매, 흥선의 얼굴에 아까 하인을 호령할 때에 나타났던 표정은 씻은 듯이 없어지고, 예사로운 얼굴로 자기를 쳐다보는 계월이를 마주 굽어 보았다.

그러나 계월이가 자세히 보매. 흥선의 얼굴에도 눈물 흘린 자취가 남아 있었다. 아까 묵연히 돌아서 있을 때에 남에게 감춘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 것이었다.

『대감, 내려가셔요.』

『먼저 가라. 나야 걸어갈 사람―비가 오실 터인데……』

우덕덕 커다란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이 군호였다. 한 방울의 비를 앞잡이삼아 소나기는 드디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우덕덕 뚝덕 좌―좌! 한 방울로 시작된 비는 한 순간 뒤에는 무서운 소나기로 변하였다.

『아이구, 이 비! 대감 어서 가세요.』

『내 걱정은 말고 먼저 가거라. 비라도 좀 맞아야겠다.』

속이 너무 탄다는 뜻으로 계월이는 들었다. 이 소나기에, 기다리던 계월이의 교군군은 또 달려왔다. 그것을 기회 삼아서 계월이는 흥선에게는 특별히 인사도 하지 않고 사인교에 몸을 실었다.

소나기 가운데로 달음질쳐서 사라져 들어가는 계월이의 사인교를, 흥선은 퍼붓는 소나기를 맞으면서 그냥 묵연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지도 않았다. 퍼붓는 소나기를 피하려지도 않았다.

흥선의 얼굴에서 줄줄 흘러서 땅으로 떨어지는 물―그것은 소나기뿐일까? 흥선의 비분의 눈물이 소나기에 감추어져서 함께 흐르는 것이 아닐까?

무서운 천둥 소리, 무서운 빗소리, 좔좔 골짜기를 흐르는 개울물 소리―이 가운데 흥선은 비를 겹다 하지 않고 죽은 듯이 서 있었다. 흥선이 겨우 그 곳서 발을 뗀 것은 계월이가 내려간 뒤에도 한참 지나서, 흥선의 초라한 옷은 속속들이 비에 젖어서 몸에 착 붙게 된 때였다.

필운대에서 내려오던 흥선은 도중에서 교군을 만났다. 계월이가 먼저 내려가서 흥선을 모시러 보낸 교군이었다. 비에 함빡 젖은 흥선은 계월이가 보낸 교군에 몸을 의탁하였다.

『대감! 자, 이 약주는 마음 놓고 잡수세요.』

계월이의 일가 친척 되는 집 아랫방이었다.

『어느 술은 마음 안 놓고 먹는다디?』

『대감 분하시지 않으서요?』

『흥! 그래야 난 손해 본 게 없다.』

계월이는 눈을 들었다. 원망스러운 눈찌로 흥선을 쳐다보았다. 아아! 이 공자는 왜 이다지도 속이 없나?

『대감!』

『그래서?』

『외람하다고 책망하시지 마세요.』

『무얼?』

『대감께서 놀고 싶으신 생각이 계신 때는 반드시 이 계월이를 찾아 주세요. 아예 다른 대감 댁에는 가시지 마세요. 이전에도 그만치 말씀드렸는데 왜 또 가셨읍니까?』

『야, 나보고 기부(妓夫) 노릇을 하란 말이로구나? 반가운 소식일세! 그럼 오늘부터라도 잘 벌어다 먹여 주게.』

계월이는 눈을 감았다. 성나고 싶은 감정 때문에 눈을 떴다는 곱지 못한 눈찌가 나타날지도 모르겠으므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대감!』

『불러 계시오?』

계월이는 눈을 천천히 떴다. 윤기 많은 커다란 눈을 정면으로 들어서 흥선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보는 동안 계월이의 광채 많은 눈에는 눈물이 한 껍질 씌어졌다.

『대감! 대감은 분해하실 줄은 모르십니까? 계월이는 분하외다. 특별히 계월이에게 관계되는 일은 아니지만 계월이는 분하외다. 왜 대감은 분해하실 줄도 모르십니까?』

흥선도 마주 계월을 굽어 보았다. 흥선의 눈에도 적적한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적적한 표정에 어울리는 적적한 말도 나올 듯하였다. 그러나 즉시로 그것을 도로 삼켜 버렸다.

『뭐이 분하단 말이냐? 계집들이란 별별 일을 다 분하다더라. 양반이 양반 자세하는데, 나 같은 상놈이야 수모받았지 할 수 있나?』

상놈? 너무도 심한 자가비하(自家卑下)였다. 수년 전 이(사도세자의 증손되는) 흥선의 집안과 (사도세자의 신하되는) 홍 국영의 후손과 혼인을 맺게 되었을 때, 홍씨 측에서 도리어 혼인을 꺼릴 만큼 영락된 흥선의 집안인지라, 이 한 마디는 과연 눈물겨운 자가비하였다.

『네, 상놈 대감! 이 양반 기생이 드리는 약주, 마음에 안 드시겠지만 한 잔 받아 주세요.』

『자, 기부 노릇을 할까? 네가 잘 벌지를 못하면 나는 내 재간껏 또 서투른 난촛장이나 그려서 팔지. 살 만한 고객이나 좀 지금부터 물색해 두어라.』

흥선은 잔을 받아서 마셨다.

『음! 여편네가 벌어다 주는 걸 먹으려니까 잘 목구멍을 넘지 않는다.』

『안주도 드세요.』

『들랄 것 없이 먹여 주려무나.』

흥선은 입을 쩍 벌렸다. 계월이가 젓가락으로 집어 주는 안주를, 혀를 기다랗게 뽑아서 받아 먹는 흥선―계월이는 마땅치 않은 듯한 표정으로 흥선에게 안주를 집어 주었다.

『어, 맛나군! 기부 노릇도 할 만한데!』

마치 아까 필운대에서 받은 수모를 계월이에게 갚으려는 듯이 하하하하! 웃어 가면서 흥선은 계월이의 비위에 그슬리게 굴었다.

그러나 계월이는 쓰다 하지 않고 흥선의 비웃음을 정면으로 받았다. 일찍이 마음을 바친 이 공자―한 때 불만한 젖이 있다고 박차 버릴 만큼 부박한 계월이가 아니었다. 흥선은 이 계집의 진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조소적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봄날의 새 움을 북돋아 주기 위하여 한바탕 내린 소나기는 어느덧 개었다. 추녀 끝에서 똑똑 때때로 떨어지는 낙수 소리가 지나간 소나기를 추억할 따름이었다. 낙수 소리에 한참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계월이가 적적한 소리로 흥선을 찾았다.

『대감!』

『그래서?』

계월이의 진실한 부름을 흥선은 여전히 농담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옛날 한 신(韓信)이가요!』

『그래서?』

『상놈의 샅으로 기어 들어갈 때 어땠을까요?』

『냄세났겠지.』

『대감!』

계월이는 못마땅한 듯이 흥선을 우러러보았다. 우러러보다가 갑자기 그의 상반신을 흥선의 무릎 위에 던졌다.

『대감! 왜 분해하실 줄 모르세요? 왜 모르세요?』

몸을 흥선의 무릎에 던진 계월이는 몸부림하듯 그의 두 어깨를 흔들면서 비비어 대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그의 눈에서 쏟아졌다.

『허! 기생이 울 때는 기부는 어떻게 위로해야 되나?』

『대감! 대감은 속도 다 썩으셨구료? 우리 같은 천비도 참기 힘든 수모를 어떻게 참으서요? 분하외다. 분해요.』

『허! 왜 갑자기 이 지랄인가? 의원 불러야겠네.』

그러나 입으로는 농담을 하는 흥선이었지만, 이 고마운 동정이 그의 마음에 찔리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왜 이러느냐고 농담으로 넘기려는 그의 눈에도 그득히 눈물이 괴었다. 남에게 몰래 흘려 본 눈물은 적지 않았지만, 남의 보는 앞에서는 철이 든 이래로 처음 내어 본 눈물이었다. 입으로는 농담, 눈에는 눈물―이런 가운데서 흥선은 손을 고요히 들어서 계월이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계월아!』

『?』

『한 신이도 잠자코 더러운 데로 기어 나갔느니라.』

계월이는 머리를 들었다. 눈물 괸 눈으로 흥선을 쳐다보았다. 그 계월이의 눈을 받으면서 흥선은 오른손을 들어서 무릎을 한 번 툭 치며 그가 즐겨서 부르는 시조 한 마디를 읊기 시작하였다.

『이러한들 어이하리, 저러한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까지 하리라.』

옛날 그의 조상 태종 대왕이 고려의 충신 정 몽주의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부른 시조―그리고 또한 가슴이 울울하고 불평할 때마다 흥선이 자기를 위로하기 위하여 부르는 시조였다.

『야! 가야금이나 내어 오너라. 울울하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져도 할 수 없지. 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우리는 한송정 소나무로 배나 무어 가지고 한강에 띄워 놓고 술이나 먹자. 계월이는 붓고 석파는 먹고―이렇게 한 백 년 살자꾸나. 하늘이 주시지 않는 복을 따려도 따질 것도 아니고, 따지지 않는 것을 따려는 것은 헛수고나 하는 것이고―자, 너도 한 잔 받아라. 그리고 가야금을 내어 오너라. 먹고 놀고 놀고 먹고. 한 백 년을 이렇게 지내면 그 이상 팔자가 어디 있느냐?』

흥선은 적적한 미소를 띄어 한숨을 내어 쉬면서 이렇게 술회하였다.

비 갠 봄 하늘에는 커다랗고 부연 달이 솟아올랐다. 문을 방싯이 열고 그 달을 우러러볼 때에 흥선의 눈물 괴었던 눈에는 또 다시 새로운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하늘을 나는 밤새의 기괴한 소리가 몇 마디 봄 하늘에 퍼져 나갔다.

『적적한 밤이로다.』

흥선은 혼잣말을 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봄밤―

가야금을 가운데 놓고 흥선과 계월이는 우두커니 마주앉아 있었다. 흥선은 안석에 가댄 채로 팔을 기다랗게 뻗어서 둥둥 두어 번 가야금의 줄을 튀겨 보았다. 그러나 곡조도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둥둥 두어 번 의미 없는 소리가 나므로 계월이는 힐끗 흥선을 보았다. 그러나 곧 도로 눈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고요하고 정숙하고 쓸쓸한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흥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계월아!』

『네?』

『너는 불러라, 나는 뜯으마.』

계월이도 비로소 머리를 들었다.

『무얼 부르리까?』

『탁문군의 상부련(想夫憐)―』

『네, 그럼 부르리다. 뜯어 주세요.』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의 입에서는 애음 끊어지는 듯한 「상부련」 한 곡조가 울려 나왔다.

흥선은 계월이의 노래를 따라서 가야금을 뜯었다. 혹은 성낸 물결과 같이 우렁차게―혹은 수풀의 벌레 소리와 같이 끊어지는 듯―가야금에 얼리어서 높고 낮은 음파는 부드러운 밤 공기를 헤치고 멀리까지 울리어 나갔다. 길을 가던 사람이며 밤 잠을 들지 못하여 혼자서 전전하던 젊은 과부들은, 이 너무도 절실한 음파에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였으리라. 한 곡조 끝이 났다. 그것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흥선은 계월이에게,

『또 불러라! 또 뜯으마.』

하였다.

『이번은 무엇을 부르리까?』

『네 장기대로, 네 마음대로 아무것이나―』

계월이는 다시 불렀다. 흥선은 다시 뜯었다.

그뇌스러운 봄밤을 계월이는 부르고 흥선은 뜯어서 새웠다. 한 마디가 끝나면 다시 새로운 것―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것―이리하여 동리의 젊은 과부로 하여금 한 잠도 못 자게 흥선과 계월이는 꼬박 밤을 세웠다.

자기네들의 온 정열을 부은 노래, 자기네들의 온 불평을 담은 노래, 자기네들의 온 희망을 실은 노래―이 절절한 노래는 동리의 젊은 과부뿐 아니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뉘 집에서 누가 불렀으며 누가 뜯었는지, 동리로 물으러 다닐 만큼 진실미를 띤 것이었다. 마음에 적지 않은 불평을 가지고 그 불평을 하소연할 곳이 없는 두 사람은 하루의 고뇌스러운 봄밤을 이리하여 너는 부르고 나는 뜯어서 세웠다.

『대감!』

『왜?』

『대감께 꽃 필 날이 언제 이르리까?』

『모른다. 고요히 기다려 볼 뿐이로다. 기다릴 줄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옛날 성현이 가르쳤느니라.』

엄숙한 구조로 이렇게 말하는 흥선을 계월이는 고뇌와 환희로 찬 마음으로 우러러보고 하였다. 거리의 술망나니, 주착 없는 치인의 일컬음을 듣는 흥선의 그런 양자는 씻은 듯이 없어지고, 당당한 왕실 공자다운 고아(高雅)하고도 경건할 이 밤의 모양에, 계월이는 자기의 눈이 결코 사람을 그릇 보지 않았음을 기뻐하였다.

동녘 하늘에 새벽 놀이 비치고, 참새들이 추녀 끝에 와서 노래를 할 때에야, 흥선과 계월이는 피곤한 몸을 금침 속으로―

봄날 새벽에 꾸는 계월이의 꿈은 매우 즐거운 것이었다.

[편집]

한양부의 남쪽을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 하류변(漢江下流邊)―

강 이쪽이며 건너쪽이며 할 것 없이, 서너 사람 대여섯 사람씩 몰려 서서, 무엇을 기다리는 듯이 강 상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안 오지?』

『벌써 오겠나?』

근처의 어부, 농군, 촌부 할 것 없이, 남녀 노소가 한 떼 한 떼씩 몰려 서서 공론들을 하고 있다.

『백 섬이라던가?』

『아니 오십 섬이라나보데.』

『오십 섬은? 스무 섬이야.』

『스무 섬만 치더라도 우리 집안이 이 년은 남아 먹을 걸세 그려! 돈도 흔한 사람들도 있지―』

『흔하지 않겠나? 매일 시골 생원들이 갖다가 바치는 것만 해두 수천 냥씩 된다네.』

『쉬! 허투루 못할 소릴세.』

말하던 사람, 금지당한 사람, 모두가 경계하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봄날 맑은 한강 물은 이런 상놈들의 평판을 담아 가지고 넘실넘실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나주 합하 양씨(羅州閤下梁氏)의 시반일(施飯日)이었다.

옛날 명종조(明宗朝)에, 대신 윤 원형(尹元衡)에게 난정(蘭貞)이라 하는 첩이 있었다. 간사하고 악착한 계집으로서, 뇌물을 즐기고 음사를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 난정이 일 년에도 두세 번씩, 밥을 여러 섬씩 지어서 실어 가지고 두모포(豆毛浦) 등지에 가서 강에 밥을 던졌다. 물고기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었다.

명종 시대의 윤 원형의 첩과 같은 길을 걷는 하옥 김 좌근의 첩 양씨도, 밥을 이십 섬어치를 지어 가지고는 오늘 한강에 던져서 고기들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떠나는 것이었다.

스무 섬이면 자기네 집안에서는 이 년을 먹고도 남겠다고 불평을 말하던 젊은이가, 이번에는 무슨 중대한 보고나 하는 듯이 함께 이야기하던(농군인 듯한) 친구에게 입을 가까이 대고 소근거렸다.

『아랫마을 차손이네 알지?』

『이 서방네 작은아들 말이지?』

『그래!』

『……』

『그 사람이 어쨌단 말인가?』

『알다시피 그 집에서는 작년 홍수에 농사를 통 망치고 사실 이즈음은 삼순구식하는 형편이 아닌가? 오늘 나온다네.』

『나오다니?』

『그……』

입을 더욱 귀에 가까이 대었다.

『물 속에 숨바꼭질해서 고기 밥을 건져 가겠다고 벼르데. 필시 나올걸!』

농부인 듯한 사람은 눈을 약간 크게 하고 친구를 돌아보았다.

『정말인가?』

『그럼!』

『흥!』

잠시 두 사람은 말을 끊었다. 농부인 듯한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웃마을에도 삼순구식하는 사람……』

『거진이지!』

『도둑놈들!』

또 말이 끊어졌다.

좀 뒤에 어부인 듯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나도 갈까 하네.』

『무얼?』

『한 치룽만 건진다 해도 얼만가? 사흘 고기잡이 해서 그걸 벌겠나?』

『고기밥 뺏어 먹는 셈일세 그려!』

『고기 잡아 먹고 고기밥 뺏어 먹고……용궁에서 알았다가는 그냥 안 둘 걸세.』

어부인 듯한 사람은 적적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하긴 김 대감 댁 밥을 이런 때 아니면 구경이나 하겠나? 많이 건져 오게.』

『암! 많이 건져 오다마다. 여보게, 창피한 말이지만 나는 오늘 조반도 아직 못 먹었네. 집에서는 어제 저녁도 변변히 못 먹었네. 그것 건지지 못하면 내일도 굶는 수밖에 없네.』

『고기 팔자만도 못 할세 그려!』

『도둑놈들!』

양씨의 시반선(施飯船)―

맨 앞에는 악공(樂工)들을 만재한 배였다.

둘째로는 이십 섬의 밥과 무당 그 밖의 하인들이 탄 배였다.

세째로는 오늘의 주인 양씨와 가까운 친척들과 하인들이 탄 배였다.

맨 뒤의 것은 드나드는 아랫사람이며 영인 잡배며 하인들을 실은 배였다.

오정쯤 되어서 이 호화로운 일행은 밥을 고기에게 던져 주려고 운파 오 리의 길을 떠났다. 출발하는 근처 좌우편 언덕에는, 이 장관을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들 때문에 입추의 여지도 없었다.

삼현 육각의 부드러운 소리를 선두삼아 가지고, 구름같이 모여든 구경군들의 탄성, 욕설, 비웃음, 칭찬―가지각색의 비평을 뒤에 남기고, 네 척의 배는 무당의 공수를 기다랗게 물 위에 퍼치면서 둥실둥실 떠 나갔다.

그 배들이 언덕에서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던 이 근처의 많은 아이들이 와르르 하니 몰려들었다. 이십 섬의 밥을 강 언덕에서 지었는지라 눌은밥이며 부스럭밥이 그 근처에 꽤 많이 흐르고 널렸다. 이 근처의 가난한 여인이며 아이들은 그것을 주워 가려 모여들었다. 거기서 지키는 하인들의 욕설이며 매며를 무릅쓰고, 꿀에 모여 드는 개미떼같이, 이 굶주린 무리들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밥 부스러기를 주우러 모여들었다. 그리고 제각기 많이 줍기를 경쟁하였다.

언덕을 떠난 자선선(慈善船) 네 척은 특별히 바쁜 길이 아닌지라, 그다지 젓지도 않고 물의 흐름을 따라서 고요히 고요히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세째 배에 탄 오늘의 주인 양씨가 보아 가다가 몸하인에게 명하면, 몸하인은 즉시로 다른 하인에게로 전하고, 그 하인은 앞의 시반선으로 전하여 앞 배에 탄 복술이 축원을 드리고 그 다음에는 밥을 한 함지박씩 떠서 물에 던지고 하는 것이었다.

이 날의 주인 양씨의 얼굴에는 득의의 표정이 흐르고 넘쳐 있었다. 대단히 엄숙한 얼굴로 좌우 언덕에 있는 구경군들을 살펴보다가는, 생각난 듯이 몸종에게 시반을 명하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결을 날리며 밥이 물에 떨어져서 잠겨 들어갈 때마다 몸소 일어서서, 마치 그 밥이 물 속에 잠겨서 고기들이 맛있게 먹는 양이 보이는 듯이 만족한 얼굴로 물 속에 가라앉는 밥을 굽어 보고 하였다.

내려가다가 뱃사공이 어떻게 실수를 하여 노(櫓)로라도 철썩하는 소리를 내면, 양씨는 안색까지 변하며 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기들 놀라리라. 가만가만 저으라고 그래라.』

이 동정심 많은 여왕은 몸종을 시켜서 사공을 꾸짖는 것이었다.

소리가 안 나게―배가 흔들리지 않게―그리고도 또한 배가 물결대로 마음대로 흐르지 않게 강의 중심을 내려가도록―이 힘드는 역할을 맡은 사공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를 조종하였다. 실수를 하여 물 한 방울이라도 이 귀인들의 몸에 뛰었다가는 제 몸에 좋지 못한 일이 생길 줄을 잘 아는 사공은, 배에서 연하여 물로 던지는 허연 밥을 슬금슬금 곁눈으로 보면서 배를 젓지 않는 듯이 젓느라고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이 풍악과 열락이 자지러진 자선선(慈善船) 일행은 기름같이 잔잔한 한강을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이십 섬의 밥을 처치해 버리기 위하여―

좌우 언덕의 굶주린 촌민들은 이 위대한 사업을 경이의 눈으로 서로 수군거리며 구경하였다. 「아랫마을」이 서방의 작은아들 차손이는 스물 한 살 난 총각이었다.

나주 합하 양씨가 오늘 행하는 자선 사업에 뛰어 들어서 밥을 좀 도둑질해 내려는 더러운 생각을 품고, 그는 강 언덕 갈밭 틈에서 자선선이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차손이가 벌어 오는 밥을 받아 가려고 그의 늙은 어머니가 광주를 가지고 함께 갈밭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변에서 생장한 차손이는 헤엄치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한강을 너덧 번은 넉넉히 왕래하며, 물 속을 숨바꼭질을 하여서라도 한 번쯤은 넉넉히 건너가는 것이었다.

『너 조반도 변변히 못 먹고 괜찮겠니?』

『걱정 마세요.』

『기운이 부족했다는……』

『도로 헤엄쳐 나오지요. 걱정 마세요.』

물에는 자신을 가지고 있는 차손이는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풍악 소리가 차차 가까워 왔다. 시반선 일행은 그들 모자가 숨어 있는 갈밭 앞 강을 천천히(일변 밥을 던지며) 흘러 내려갔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요.』

어머니에게 한 마디 당부한 뒤에, 차손이는 용감스러이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와스스, 스! 귀에 울리는 놀라운 물 소리를 들으면서 차손이는 강의 중심을 향하여 물 속을 헤엄쳐 나갔다. 아들을 물 가운데로 내보낸 늙은 어머니는, 이 전대 미문의 기괴한 모험을 감행하는 아들의 신상이 근심스럽기가 짝이 없어서, 거의 사색이 되어서 강의 사면을 두룩거리며 살필 때에 (그것은 이 노파에게 있어서는 무한히 긴 세월과 같았다) 아까 차손이가 물 속으로 사라진 자리에서 좀 하류쯤 되는 곳에, 물결이 잠시 괴상히 움직이다가 그 물 면으로 사람의 머리가 쑥 나왔다.

그러나 물 면에 얼굴은 내밀었지만, 차손이는 잠시도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얼굴이 백짓장같이 하얗게 된 그는 코를 찢어지도록 벌리고 씨근거리며 한참 숨을 돌리고 있었다.

한참 거기서 숨을 돌려 가지고 어머니 앞에 돌아온 때는, 차손이의 옆에는 물이 뚝뚝 흐르는 밥을 절반만큼 담은 자루가 끼어 있었다.

『후!』

아직 창백한 얼굴로 밥자루를 놓을 때에, 늙은 어머니는 귀여운 손자나 보는 듯이 자루를 채었다.

『핸 자루 못 되는구나!』

『더 넣을래두 숨이 막혀서 그만 왔어요. 또 한 번 가서 담아 오지.』

어머니는 자루를 열었다. 그리고 물에 젖은 밥을 광주리에 쏟았다.

『자, 자루 얼른 주세요. 또 한 자루 담아 오게!』

일변 밥을 한 덩이 입에 집어 넣으며 어머니가 쏟는 자루를 잡아 채었다.

차손이가 채는 자루를 어머니는 도로 뺏었다. 그리고 자루를 뒤집어서 한 알 한 알 붙은 것까지 털어서 광주리에 떨어뜨렸다.

『얼른 주세요.』

『가만, 아직 한 줌이나 붙어 있다.』

물에 던진 것을 주워 온 것이지만, 이 노파에게 있어서는 한 알 두 알이 아까운 모양이었다.

『한 자루만 더 얻어 오면 닷새는 걱정 없이 먹겠다.』

『이번에는 한 자루 가득 담아 오지요.』

차손이는 밥을 한 줌 또 쥐어 먹었다. 그리고 다시 물로 향하였다.

『좀더 내려가서 기다려 주세요. 지금 세째 배가 지나가는 그만치 가서 기다려 주세요.』

이러한 말을 남기고 이 총각은 다시 한 자루 얻어 오려 두 번째 물 속에 뛰쳐 들어갔다. 차손이는 물 속을 꿰어서 시반선 아래까지 이르렀다. 그 때 방금 시반선에서는 또 한 광주리의 밥을 물로 던진 때였다. 어른어른 차손이는 눈 앞으로는 허연 밥덩어리가 물 바닥을 향하여 헤엄치며 내려갔다.

차손이는 거기서 숨을 내쉬었다. 꿀럭꿀럭 한 뭉기의 기포가 물 면을 향하여 올라갔다. 그것을 보면서 차손이는 몸을 뒤채어 물 바닥을 향하여 거꾸로 내려갔다. 그의 눈 앞에는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흐느적거리는 크고 작은 밥 덩이들이 물을 통하여 부옇게 보였다. 차손이는 자루의 입을 벌렸다. 그리고 연하의 몸이 떠오르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왼편 밥을 물 바닥에 있는 바위 틈에 꽂아 놓고 밥 덩이들을 자루를 향하여 몰아 넣었다. 그 근처에 흐느적거리는 덩어리 밥은 모두 자루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행히 헤어진 밥이 많기 때문에 자루의 삼분의 일도 되지 못하였다.

겨우 차차 숨이 답답함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자루가 너무도 곯았으므로 얼른 새 밥을 좀더 담아 가지고 돌아가려고, 차손이는 곯은 자루를 옆에 끼고 한번 발버둥이쳐서 하류로 물 속을 꿰어 내려갔다. 눈을 감고 하류를 향하여 물 속을 헤엄쳐 내려가던 차손이는, 무슨 기괴한 물건이 자기의 양 다리를 꽉 붙잡는 것을 알았다. 온 몸에 소름이 쭉 끼치며 보매, 부연 물을 통하여 벌거숭이 송장(?) 하나가 그의 다리를 잡은 것이었다.

차손이는 거의 공포와 경악 때문에 심장의 고동까지 멎을 듯하였다. 두 다리를 힘있게 버둥거리면 버둥거리느니만큼, 그 괴물은 더욱 힘있게 차손이의 다리를 잡고 붙안는다. 그 괴물은 차손이의 다리로 비롯하여 차차 차차 몸을 끄을어 당겼다. 그리하여 그것에게 붙안겨서 차손이는 공포의 눈을 겨우 들면서 마주 보매, 그것은 송장도 아니요 괴물도 아니요, 웃마을 사는 최 서방이었다. 역시 시반을 훔치러 물 속에 기어든 최 서방은, 불행히 발을 바위 틈에 끼우고 뽑지를 못하여 안달하다가, 자기 곁으로 빠져 내려가는 총각을 붙든 것이었다.

차손이도 그것이 최 서방인 줄 알고 최 서방의 하반신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의의를 짐작하였다. 그래서 최 서방의 몸을 마주 쓸어안고 발로써 물 바닥을 힘껏 버티었다. 그러나 최 서방은 발을 어떻게 끼었는지 옴짝하지를 않았다. 이제는 차손이는 숨이 답답하여 왔다. 힘껏 최 서방을 안고 땅을 버티어 보았으나, 빠지지는 않고 숨은 답답하고 하여, 자기 혼자라도 피해 가려고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최 서방은 죽을 힘을 다해서 차손이를 끌어안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물 속에서 두 개의 벌거숭이 동물은 서로 비비여 대며 다투었다. 그러나 최 서방까지 구하면 여니와, 차손이 단독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도록 최 서방은 차손이를 안고 있었다. 이제는 차손이도 숨을 더 돌릴 수가 없었다. 꿀럭꿀럭 차손이의 입에서 기포가 또 물면을 향하여 떠올랐다. 차손이가 답답한 가슴을 펼 때에 그의 폐와 위로는 다량의 물이 들어갔다.

이 때였다. 아직껏 힘없이 차손이의 허리를 쓸어 안고 있던 최 서방의 팔 힘이 좀 풀리는 듯하였다. 그래서 차손이가 몸을 빼어 낼 때에는 아직껏 그렇게 힘써도 단단히 박혀 있던 최 서방의 발도 저절로 바위 틈에서 빠져 나왔다. 차손이는 한편 팔로 최 서방을 안은 채, 단 발로 물바닥을 힘있게 찾다. 두 개의 벌거숭이는 시반선 일행이 방금 지나간 물면을 향하여 떠올랐다. 물 면을 향하여 떠오른 두 개의 벌거숭이는, 양씨의 하인들이 탄 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아니, 구조되었다기보다 잡혔다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었다. 오늘의 신성하고 엄숙한 놀이를 더럽힌 고얀 놈으로서두 벌거숭이는 하인들의 배에 끌려 올라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때는 벌써 가련히도 최 서방은 물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저세상으로 마지막 길을 떠나고, 차손이도 아직 채 죽지만 않았지, 물을 많이 먹고 정신을 잃은 때였다. 최 서방의 시체와 차손이를 건져 올린 하인들은 시반선 일행을 떠나서 급급히 언덕으로 갖다 대었다. 그리고 거기다가 송장과 반송장을 내려 놓고, 사내 하인 셋이 내려서 지키기로 하고, 배는 그내로 일행에게로 따라갔다. 거기서 내린 하인들은 최 서방의 시체를 먼저 흔들어 보았지만, 물을 잔뜩 먹었기 때문에 배가 남산같이 된 최 서방은, 이제는 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완전히 떠난 것이었다.

모퉁이 모퉁이에서 오늘의 위대한 놀이를 구경하고 있던 근방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양반 댁 하인의 호령으로 근방 사람들이 차손이를 거꾸로 달고 두드리고 한 결과, 차손이는 많은 물을 토하고 겨우 회생되었다.

『지독한 도둑놈!』

물 면에 떠오르면서 기절할 때까지 차손이는 자루를 그냥 끼고 있었으므로 차손이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하인들은 알았다. 차손이가 깨어나기가 무섭게 하인들은 차손이를 발길로 차면서 지독한 도둑놈이라 욕하였다.

이튿날은 나합의 엄명을 들을 하옥 대신의 영으로 이 「지독한 도둑놈」을 포청에 내렸다. 뿐만 아니라, 차손이의 늙은 부모와 형과 형수―그의 온 집안까지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다. 나주 합하의 노염은 여간 크지 않았다. 엄숙한 놀이를 깨뜨린 데 대한 분함, 자기의 신성한 눈으로 벌거벗은 상놈의 시체를 본 데 대한 분함, 자기의 겸인이며 하인들의 배에 잠시나마 송장을 태웠던 데 대한 분함, 엄숙한 시반을 도둑질해 낸 행사에 대한 분함―이런 모든 일 때문에 합하의 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래서 이 하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상놈과 그의 일족을 당장에 박살을 하라고 하옥에게 엄명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나주 합하의 충복인 하옥일지라도 이 「지독한 도둑놈」과 그 일족을 박살까지는 할 만한 죄목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을 절충하고 타협한 결과로서, 이 중대 범인을 주범은 태형 백 개, 일족들은 오십 개씩을 때려서 내쫓기로 하였다.

양씨는 매우 불만족하였지만 드디어 하릴없이 여기 승복하였다.

이리하여 이 차손이는 시반을 도둑질하려던 죄로 엉덩이 뼈가 부러지도록 매를 맞고, 그의 가족은 그 밥을 바란 죄로 오십 개씩의 태형을 받고, 그 위에 자기네 조상 이래로 살아 내려오던 그 동리에서까지 쫓겨나게 되었다.

또한 최 서방은 도둑질도 채 하지 못하고 용왕의 노염을 사서 직접 피해자 양씨가 벌하기 전에 용왕께 극형의 벌을 받은 것이었다.

『천벌을 받기는 받았지만도, 그런 고약한 놈들이 어디 있어. 대체 밥을 도둑질한댔자 몇십냥 몇백 냥어칠 도둑질해 내겠다고, 천벌도 모르고 그런 무서운 짓을 한담.』

양씨는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이렇게 술회하고 하였다. 이 술회를 듣는 사람은 모두 머리를 조으며 천벌의 무서움을 탄식하였다.

『대감마님, 살려 줍시오! 갑자기 동리를 떠나면 어디가서 붙어 살겠습니까?』

뜰에 꿇어 앉아서 애원을 하는 것은 「지독한 도둑놈」이 차손의 늙은 아버지 이 서방이었다. 이 서방의 곁에 손을 읍하고 서서 이 서방의 애원할 때마다 허리를 굽실거려서 맞장구를 치는 것은 흥선댁 하인 누구였다. 대청에 긴 담뱃대를 물고 앉아서 이 애소를 듣고 있는 것은 무력한 공자 흥선이었다.

나주 합하의 엄명으로 동리를 쫓겨나게 된 이 서방의 일가는, 너무 딱하여 생각다 생각다 못 해서 그들이 가진 다만 한 가지의 방책을 써 보기로 한 것이었다. 즉 그들의 먼 일가가 흥선 댁에 하인으로 있는 것을 결련하여 흥선군에게 애소를 해서 피해 보려는 것이었다.

흥선의 무력을 그들도 모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짚이라도 붙들려는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으로, 흥선에게라도 한 번 매달려 보려 함이었다. 이 이 서방의 애소를 흥선은 다분의 곤혹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종실의 한 사람으로서 흥선은 무론 하옥의 집도 자주 찾아 다녔다. 얼마만큼 호인적 기품을 가지고 있는 하옥은, 젊은 재상들같이 노골적으로 흥선을 모멸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의 이 일은 하옥의 일존뿐으로 좌우될 성질의 사건이 아니었다. 하옥의 뒤에 숨은 양씨의 마음으로라야 결정이 될 것이지, 하옥은 그 처결권을 가지고 있지를 못한 것이다. 영의정 하옥이로되 영의정의 지배자가 또 그 뒤에 있는 이상에는 영의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 먹을 게 없어서 고기 밥을 도적해 먹는담?』

흥선은 담배를 떨어 버리면서 이렇게 을러 보았다.

『황송하옵니다.』

그래도 자기를 사람이라고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하는 이 서방을 볼 때에 사실 가엷었다. 그리고 거기 따라서 자기의 입장이 더욱 괴로웠다.

걱정 말아라, 무사히 만들어 주마―이렇게 안심시키고 싶은 생각은 얼마나 많았으랴? 일개 시골 기생―아무리 지금은 당당한 영의정 김 좌근의 총애를 받는다 할지라도, 역시 소실에 지나지 못하는 양씨의 세력이 너무도 큰 데 대한 미움도, 새삼스러이 흥선 마음을 더 아프게 하였다.

「奪民之食 施江魚 奪此與彼之禍 不亦甚於 鳥鳶?蟻 之問乎」

옛날 윤 원형의 첩 난정(蘭貞)의 일에 대하여 사가(史家)가 욕한 그것과 꼭 같은 양씨의 일을 정면으로 비평할 수조차 없는 자기는 무력한 공자였다.

이 서방은 연하여 땅에 머리를 조으며 애원하였다. 흥선은 연하여 긴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렇게 한나절을 무위히 앉아 있다가, 흥선은 벌떡 일어나서 침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 뒤에 청지기를 불러서,

『이 서방이란 놈을 끌어다가 문 밖에 내쳐라.』

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이 서방이 하인들에게 끌리어서 나갈 때에, 흥선은 문을 방싯이 열고 초연히 끌리어 가는 이 서방의 뒷모양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 서방을 그냥 내쫓은 흥선의 마음은, 쫓겨나가는 이 서방의 마음보도다 더욱 아팠다.

『음!』

―태조 강헌황제폐하(太祖康獻皇帝陛下)! 당신은 당신의 후손이 지금 이렇듯 가슴 찢어지는 듯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을 아시나이까? 찢어지는 듯하옵니다. 이 당신의 피를 물려받은 가슴이……

흥선은 눈을 깜박일 줄도 잊은 듯 묵연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