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파리/개벽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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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화가 되어서 이제는 파-리의 뒤에도 칼찬 양반이 딸은다. 벌서 銀파리도 이제는 불령(不逞)파리라는 견서(肩書)에 보호 순사 하나쯤은 늘이게 된 것 갓다. 칼찬이의 천하인 세상에 아아 위험! 위험!!... 그러치만 약속은 약속대로 이번엔 독신생활을 서양놈 정의찻듯 방패로 내어 세우는 김양에게로 갈란다. 이 김양의 이악이를 들은 사람은 우선 그가 수만흔 청년의 가슴을 태우는 미모의 소유자이고 서울 어느 여학교를 마치고 해외에까지 단여 온 신여자인 것을 알아야 한다.

파리 『마님 혼자 계십니까? 아가씨는 어대 나들이 가셧서요?』

마님 『무슨 청년회라나 배례당(拜禮堂)이라나 거긔서 그 애 보고 연설을 해 달라구 햇다구. 그래서 거긔 갓단다.』

파리 『하하아 큰 아가씨 보구요?! 연-설을 해 달라구요. 무슨 연설을요.』

마님 『무슨 연설인지 내야 아니. 제가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

파리 『작은 아가씨는 어대 갓습니까. 작은 아가씨두 연설을 하러 갓습니까?』

마님 『그 앤 무슨 사무소라나 동대문 밧기라드라. 거긔 사무 보러 갓지. 제가 안 가면 사무가 안 된다구. 시간 늣지 말구 가야 한다더라.』

파리 『큰 아가씨는 연설을 하러 가구. 작은 아가씨는 사무를 보러가구. 대-단들 하십니다.』

마님 『딸 자식이라구 업수 여길 것은 아니지. 그것들이 저러케 졸업들을 해 가지구. 사회상에 출입을 하니... 저의 아버지나 생존해 계셧더면 오죽이나 조하하실 것을... 그거 하나가 섭섭하지.』

파리 『아무렴은요. 只今 세상에는 계집애라두 가르켜야지요. 그 이를 말이겟습니까. 그러치만 잘들 배우면 조켓지만 공부합네-하고 돌아 단이며서 이 댁 아가씨들처럼 밤낫업시 부랑자들하고 아니 아니 올시다. 그런데 큰 아가씨는 넘우 과년하셧는데 혼인을 아니 하십니까?』

마님 『내야 아들도 업시 저이 둘만 밋고 사는데 저이를 과년하도록 내바려 둘 수도 업서서 혼처를 구하려구도 하고 벌서 시골 부자들이 몃 번이나 구혼을 하건마는 제가 안간다는 걸 어떠케 하니.』

파리 『그래 아가씨 말만 듯고 그대로 처녀로 아니, 그냥, 그냥, 내버려 두실 터입니까.』

마님 『영-그냥 처녀로 그냥 늙겟다구 한단다. 암만 모녀간이라도 출가하면 외인인즉 홀로 계신 어머니를 버리고 갈 수도 업거니와 시부모와 남편과 가잇스면 사회상 사무도 만흔데 그 일을 하나도 못하게 되겟스니까. 그냥 저 혼자 저대로 사회에 출입이나 하고 어머니를 떠나지 안코 산다구 한단다. 마음이야 기특하지.』

파리 『그래서 그 사회상 사무가 만하서 밤이 깁도록 쏘대기가 매일 매야(每夜)요, 출입하지 안는 날이면 차저 오는 신사가 만쿠면요.』

마님 『그야사 나도 처음에는 말리기도 하얏지마는 구식으로 방구석에 들어 안저서 바느질이나 하고 벅게서 밥이나 짓고 하던 우리 따위 무식한 여자와 달라서 지금 신식 여자는 의례 누구던지 그러타고 제가 그러더라, 사회상 사무도 만흐니까 출입도 자연히 자저지고 또는 의논하러 차저오는 이들도 다 사회상에 유명한 양반들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이들도 하는 말슴이 지금 세상은 전과 달라서 여자들도 학문을 만히 배워 가지고 산애에게 지지 안코 일을 한다구. 전에 미개햇슬 때에나 외간 남자를 보고 내외를 하고 길엘 나가도 장옷을 옥을여 쓰고 단엿지만 지금은 안 그러타구. 그리고 그러케 사회상에 출입을 하며서 일을 하지 안코 방 구석에만 박혀 잇스려면 공부는 무엇하려 하겟느냐고 하더라. 공연히 모르는 사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하고 낫븐 소리들을 하지...』

파리 『딱도 합니다, 부모가 무식하여서 무슨 짓을 하던지 그저 신식 신식하고만 미드니까 귀여운 딸을 그르치지요. 밤출입 하는게 신식인가요, 집구석에부터 잇지 안코 돌아만 단이는게 신식인가요, 에그, 큰 아가씨가 오십니다. 깡깡이, 아니 사현금(四絃琴)을 들고...』

오늘도 부랑청년 몃 사람이 대문 압까지 딸아 왓스리라. 독신주의를 말하는 김양이 어대 가서 무슨 연설을 하고 오는지 사현금을 들고 들어와 모친 보고 인사나 하엿는지 아니 하엿는지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갓다.

...(잠간 후)...

파리 『아가씨, 어대 단여 오셧서요.』

김 『왜!? 동무집에 좀 갓다 왓다.』

파리 『동무집에 가서 연설을 하고 오십니까?』

김 『연설? 왜, 내가 연설한다던? 오 오, 마님이 그러시던 게로구나. 내가 아까 나갈 적에 그러케 여쭈엇지, 연설 하러 간다고 부러...』

파리 『그러면 동무 집에 가서 무얼 하셧서요, 독신주의 연설을 하셧습니까?』

김 『아-니, 동모하고 황금정(黃金町)에 가서 사진 박이고 왓지, 따로 독사진을 하나식 박이고 둘이한테 하나 박이고...』

파리 『그 만흔 사진이 다-나갓습니까. 독사진을 또 박히게... 또 누구하고 사진 결혼을 하십니까?』

김 『내가 언제 결혼한다디? 나는 독신생활을 할 걸?』

파리 『또 독신생활이 나오는 구면요, 대체 무슨 뜻으로 독신생활을 하십니까? 정말 효성스러운 마음으로 어머님 한 분을 버려두고 갈 수가 업스니까 그러십니까? 또는 개성을 넘우 존중하는 극단의 주의입니까...』

김 『...』

파리 『그러치 안흐면 어느 교리에 의한 신앙에 살기 위하야 독신으로 늙으시럅니까? 그럿습니까? 네? 야소교(耶蘇敎)입니까? 불교입니까? 녜?』

김 『성가시다. 잔소리 말아라.』

파리 『무에 잔소리야요, 아아 각교를 다 미드시지요, 사월 파-일이면 불교 교도고 크리쓰마쓰 날은 야소교 교도이고 천주교에 사람 만히 꿰는 날은 천주 교도고... 그러치요, 그래도 아마 그 중에 불교가 제일 가깝지요? 이마 적은 밤중에도 청량사(淸凉寺)에를 자조 나아가니까요.』

김 『왜 이러케 음성을 놉혀 가지고 떠드니, 안방에 들리라구...』

파리 『그래두, 불상한 과부 어머니는 끗가지 속히려고... 무어, 어느 청년회에서 연설을 해달라고? 잘도 속히우, 사회상 사무가 만하서 처녀가 밤 출입을 한다, 그게 무슨 사무요, 사무가 변해가는 세상 일을 아지 못한다고 한 분 계신 노모를 신식 신식으로만 우겨대고 밤이면 연극장으로, 낫이면 길거리로 한들한들하며 돌아단이는 그게 소위 당신의 사무-요? 그 꼴에 독신생활이란 어쨰서 하는 소리요, 더려가는 남자가 업서서 하는 소리요...?! 이상(理想)하는 바와 가튼 인물이 업서서 하는 소리요?! 집에 차저 오는 남자는 모다 유명한 양반이야? 어쨰 안 그러켓소, 청금록(靑衿錄)에 유명한 부랑청년들이지, 하루도 몃 놈씩 차저와서 음악을 알이킴네 무슨 회무(會務)를 의논합네 하고 노모를 속여 노코 엽헷 방 속에서 속살거리기, 밤이면 음악회에 출연을 합네, 연설을 합네 하고 속이고는 거름을 가티 하야 연극장에 가고 그나 그뿐이요? 작은 아가씨인가 그도 형만 못지 안흔 소위 사회 사무가(家)여서 남자 교제가 만코 용서치 못할... 아니 그러고 서로서로 자기의 일을 모친에게 고할가. 겁(怯)하야 알고도 모르는 체하며서 때때로 얼굴을 마주치고는 부끄러운 웃음을 서로 바꾸지요, 그러누라니 형은 형의 방에서 아우는 아우의 방에서... 그러고도 사람이로라고, 그래도 신(新)여자라고... 죄업는 노모는, 그래도 가르친 덕으로 사회에 출입을 한다고 깃버하고 안젓고, 따는, 결혼을 하야 일정한 남편이 잇스면 그 조흔 수입 만흔 영업사무가 볼 수가 업겟고, 따는, 당신의 독신생활이란 영업발전상 묘책이요, 아즉 학교에 단이는 X가 부모를 속이고 사다준 저 풍금은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랑자로 유명한 O이 도적질을 하다 십히하야 사 보낸 당신의 그 팔둑 금시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요, 이번 겨을에 생긴 만또, 그것도 공으로 그저 생긴 것은 아니지요? 그 모든 짓을 감추기 위하야 누가 당신의 정조를 의심할가 하야, 내어 세우는 방패가 그 독신생활이지요, 당신의 소위 사회사무가 발전될스록 교제가 만하진 지금, 도저히 한 사람을 남편으로 섬길 수 업기에 이르러서 나오는 소리가 독신생활이지요.』

김 『...』

파리 『왜 아모 대답이 업서요, 어머님 압헤서는 물 흐르듯 하는 당신의 구변이 왜 그리 업서젓습니까. 네-?

아아, 거룩한 독신자님! 혼인날 신랑이 세넷씩 달겨 들가봐, 독신생활을 하게 된 독신주의자, 것으로는 무한 깨끗한 독신주의자, 남 모르게 번민하는 독신생활! 사회사무를 위하야 자신을 희생하는 독신자, 노모를 위하야 자신을 희생하는 독신자, 당신 참 갸륵한 독신자...

아차차 이건 왜 이래요, 나를 잡으려구 얼빠진 부랑자처럼 그러케 당신 손에 얽혀 잡힐 줄 아오? 내 말이 거짓말이고 당신이 진정한 독신주의자이면 참으로 여자의 순결을 무덤에까지 가지고 갈 사람이면, 당신의 장 속에 일본서 사 온, 피임법(避妊法)이란 책이 왜 잇서요, 으응-그래도 독신주의요? 피임법 알려는 독신주의자-따는 유명합니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