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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실어온 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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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가 할아버지 영조(英祖)의 대통을 이어 등극한 이래, 주소를 불문하고 머리에 왕래하는 것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가 할아버지의 곡해를 입어 인륜상 처참지극한 죽음을 당한 비통한 사실이거니와 동시에 당신의 고모님 화평옹주(和平翁主)가 매사에 동생을 옹호하여 아버지 영조의 노염을 풀기에 지극한 노력을 하였고 아버지 사도세자도 누님을 하늘 아래에는 더 없는 사람으로 사모하고 의지하여 내 지하에 간들 어이 누님의 은의를 잊겠는가 하는 말을 항시 해왔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지라 정조는 원통히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아버지를 극력 수호해준 고모님을 고맙게 생각하여 고모님의 남편 박명원(朴明源)에 대해서도 특별한 신임을 해왔다.

누구의 말이거나 그 말이 옳으면, 그것을 배척하는 속 좁은 임금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고모님이나 그의 남편 고모부 ── 박금성위 말이라면 신중히 취급하고 어지간하면 거역치 않고 가납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하지 못할 정담도 고모에게는 하였고 고모부의 보필을 받아 오는 터이었다.

박명원은 인격이 고아한 사람이라 비록 임금의 신임이 특히 두터울지라도 그 권세를 남용해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일편단심으로 임금을 보필해서 왕가의 번영을 도모하기에 충실하였다.

그러므로 남의 부러워함은 받을지언정 미움은 받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척신의 한 사람으로 덕망이 높았다.

그러나 여기에 한사람 임금의 두터운 신임, 다시 더 형용하면 절대적인 신임을 아끼지 아니하는 벼슬아치 하나가 있었으니 그는 홍낙춘의 아들 홍국영(洪國榮)이다.

그러나 홍은 박명원과 같은 인격자는 아니었다. 그 권세를 남용하며 여러 사람에게 원망을 사고 횡포 무쌍한 처사는 물론을 일으키었다.

그러나 언제나 상감은 눈을 감고 그를 용서하는 것이었다.

일찌기 상감이 세손(世孫) ─ 뒤를 이을 손자)으로 있어서 극도의 신경질을 지니고 있는 할아버지 영조의 뜻을 받들고 있을지음 자칫하면 세손의 지위에서 떨어질 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위험할 번한 일을 홍국영의 예민한 돈지로서 무사히 면하게 되자 세손은 그 공훈에 감격하여 「내 다음날 보위에 오른 후에는 그대가 설혹 반역의 대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대를 살리리라.」

하는 수서(手書)까지 써 준 일이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고 상감은 홍국영의 여하한 죄과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상감(정조)의 세손 시대로 돌아간다.


어느 날 영조는 세손을 앞에 앉히고 여러 가지 문답을 하던 중 문득 어떤 불안이 머리에 떠올라서,

『너 요즈음 논어와 대학을 읽는 것은 안다마는 사기 사략 등속은 아니 읽느냐?』

하고 물었다.

『사략을 틈틈이 읽고 있읍니다.』

『그러면 중원 사략에는 왕자가 부왕을 시하고 부왕이 아들 왕자를 해치는 대목이 적지 않은데 그런 대목을 읽을 때의 생각이 어떻던고.』

『아직 그런 대목을 읽은 적이 없읍니다마는 수양제의 기록에 그런 대목이 있는가 싶사외다.』

『그렇지.』

『본래 부자는 천륜이라 그런 일이 있을 것으로 상상해 보는 것조차 상서롭지 못한 일이오므로 소신은 그런 대목이 기록된 책장을 찢어버리게 해두었읍니다.』

하는 대답을 하였다.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세손은 어린 생각에도 상감이 그 말을 묻는 심중을 잘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임시 처변으로 상감을 안심시키자는 생각이었다.

과연 영조는 매양 당신의 탓으로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인 뉘우침이 가슴을 여이고 손자 세손이 아버지가 할아버지 손에 죽었느니라 하는 생각을 할 때 할아버지에 대한 어떤 원한이 있지나 아니할가 이것이 항시 가슴 속에 뭉키어 있는 불안이었다.

『그 책장을 찢어 없앴단 말이냐? 그거 참 기특한 일이고나.』

하면서도 속 중에 제 내 앞에 하는 말이지 설마하니 찢어버리기야 하였으랴 하는 의혹이 들어서 상감은 정감 하나를 불러서,

『너 동궁에 가서 세손께서 읽으시는 사략 중의 수양제 사적이 쓰인 책을 달래서 가져 오너라.』

하는 영을 내렸다.

세손은 그 영을 듣는 순간 정신이 아뜩하고 가슴은 두방맹이질을 하였다.

기군망상의 죄를 면할 도리가 없다.

세손은 정신이 들락날락한 채 강잉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정감이 춘방으로서 사략을 들고 와서 위에 올렸다.

이 순간 세손은 금방 벽력이 머리 위에 떨어질 생각에 정신이 아뜩하여 머리를 숙이고 업디었다.

『어디 보자.』

상감은 책장을 집어 넘겨 보았다.

『오 ─ 과연 찢어 버렸구나, 허 ─ 참.』

하고 상감은 허 ─ 참 하는 탄복의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하느님이 도우사 너 같이 기특한 손자를 두게 하셨구나.』

하며,

『머리를 들어라.』

하였다. 말할 수 없는 만족의 빛이 만면하였다.

세손은 부지중 한숨이 나가고 등에 흐르는 식은땀이 척척한 줄을 깨달았다.

나중에 세손이 춘방에 가서 알어 본 일이지마는 이때 당직 설서(說書)의 관직으로서 춘방에 있었던 것이 홍국영이었다.

그는 정감이 와서 상감께서 세손이 읽으시는 사략 중 특히 수양제의 기록이 있는 책을 올리라는 전령을 듣고 번개같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 상감의 불안한 심지이었다. 그래서 상감과 세손간의 문답을 상상하고 잘못되면 그 꾸지람은 나중에 당할 결심을 하고 급히 양제가 태자일 시대에 부왕을 해치는 대목을 찢어내고 그 외에도 부왕이 왕자를 해치는 대목이 있는 다른 편의 책장마저 찢어내고서 시침을 뚝 떼고 정감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돈지가 크게 들어 맞아서 세손의 위급한 처지를 구하게 된 것이었다. 이 사실에 감격한 세손이 위에 말한 수서까지를 써 주게끔 된 것이다.

이러한 유래가 있어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홍국영을 후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조는 그를 후대하며 절대적인 신임을 하는 양 싶어도 기실 국사에 대한 중대한 상의는 금성위 박명원을 젖혀 놓고는 다시 더 없었다.

그런데 정조는 일찌기 문효세자(文孝世子)를 한 분 두셨지마는 불행히 일찌기 돌아가고 그 후로는 다시 왕자 탄생의 기쁨을 가져 보지 못하셨다.

만일 이렇게 지나시다가는 나라의 종사(宗嗣)가 끊일 것을 근심하는 여러 충신들은 널리 빈(嬪) 한 분을 간택해 들이어서 왕자를 탄생하시도록 상감께 권주하기를 마지 아니하는 중에도 박금성위가 가장 앞서서 상감께 권해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라 일에 매두몰신하다시피 정력을 기울이는 왕은,

『내 나이 아직 늙지 않았으니.』

하고 좀처럼 듣지 않았다. 그러나 박명원의 권도 권이려니와 고모님 화평옹주의 지성스런 권주가 정조의 맘을 움직여서 하루는 금성위를 보고

『과인이 이제껏 빈을 선택해 들이는 것을 반가이 여기지 않은 소이는 왕척이라 해서 농권코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싫어한 것인데 만일 그런 누가 없는 사족의 규수로서 적합한 인물이 있으면 좋으니 널리 간택할 것 없이 한 사람 구하여 보시오.』

이 말씀을 들은 박명원은 사실 그 동안에 적합한 자리가 심중에 있었기 때문에도 강경히 권주하였던 터이라 심중에 크게 기뻐서

『신의 지친 하나이 딸 하나를 두었는데 인물이옵든지 연기가 매우 적합하기로 간택 영이 내리시오면 그를 응케하올가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그거 매우 적합치 않으오. 지금 간택이니 어쩌니 하면 영화에 주린 작자들이 우하고 나서는 꼴 보기 싫소.』

하고 쓸어 맡기었다.

『그럼 본인의 부친을 만나서 내정해 두오리다.』

하고 장담하고 나왔다. 박명원은 경기감사를 지낸 자기의 당제(堂弟)의 딸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본인들의 말은 듣기도 전에 속담으로 맹꽁이 제뱃심 믿듯이 두말없이 흔연 쾌락할 것으로 여겨서 어전에서까지 누구의 딸이라고 이름은 대지 않았지마는 장담을 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그런데 급기 당제를 찾아가서 의논을 하여본 즉 당제는 박명원의 상상과는 정반대로 펄쩍 뛰었다.

『형님 천만의 말씀 마시오. 내 비록 가난하지마는 딸을 궁중에 들여 보내서까지 복록을 바란다는 소리 듣기 싫고, 딸로 하여금 그 번거로운 궁중에서 고생살이야 어찌 시킨단 말씀요. 그뿐 아니라 내, 내 딸이라고 반드시 아들을 탄생하리라고 믿을 수 있읍니까. 만일에 왕자도 탄생치 못하는 경우에는 그 처지가 더욱 불쌍하니까 그런 말씀은 다시 더 마십시오.』

하고 단단 거절을 하였다. 다시 말을 부처 볼 여지도 없었다.

상상과 어그러져서 불만은 하지마는 다른 일과 달라서 남의 자식의 일생에 관한 일을 억지로 권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박명원은 단번에 실패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직 밤도 아니건마는 자리를 펴고 누웠다.

큰일났다고 생각하였다. 이번 일만은 경솔히 했다는 책망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책망이니 비웃음이니는 문제가 아니다. 상감께 장담을 하고 나섰으니 이제 만일 말해보니 아니 듣습니다 하고 물러서잔 말도 못되고 그렇다고 해서 소신의 지친이란 말을 해논 이상 아무라도 규수 하나 골라 받칠 수도 없는 일이다.

기군 ─. 임금을 속인 죄를 면치 못할 것이고 대체로 신임을 받는 척신의 한 사람으로서 체모가 아니다.

박명원은 병이 아닌 병석에 누워서 꿍꿍 앓고 있었다.

수일 전부터 시작된 비가 오늘부터는 개인 듯하지마는 아직도 완전히 햇빛을 보지 못하여 흐리터분한 일기는 박명원의 가슴을 더욱 답답케 하였다.

하루가 지났다. 또 하루가 지나면 예궐해서 상감께 하회를 말씀 드려야 할 기일이다.

조바심 중에 하루 낮을 지내고 저녁때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병 칭탈로 며칠을 연기하는 도리밖에는 없다고서 단념하고 자리에 누워 있노라니 상노가 미닫이 밖에 와

『여주 사시는 박생원님이 대감께 뵙겠다고 오셨읍니다.』

하는 거래를 하자 그 박생원이란 이는 벌써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대감 만난지 오래서 기억하겠소? 여주 박생원요.』

하고는 웃간 장지틀 옆에 불안스러이 앉았다. 머리가 반백인 농촌 늙은이다.

여주 박생원은 그 이름이 준원(準源)으로 주인 박명원과는 십촌되는 족형이다.

박명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수인사를 마치고는,

『그래 어째서 서울 오셨소?』

하고 물었다.

『내야 늙어가는 놈이 무슨 구사하러 왔겠소.』

하는 그 사정을 들어보면 이번 수십일 전부터 몹시 내리는 장마에 여주 일경에서 수해를 본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지마는 박생원의 집은 사람만을 남겨 놓고 집 덩어리째 물에 떠나가 버리어서 부지깽이 하나를 건지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원래가 박토 몇 마지기를 부처서 간신히 입에다가 풀칠을 해오는 가난한 살림에 집은 송두리째 잃고 논 마지기란 것도 다시 부처먹을 수도 없이 사태에 파묻혀 버렸으니, 하도 기가 막혀 백지사지 생각한 나머지에 식구를 데리고 빌어 먹더라도 서울가서 빌어 먹자고 나섰다는 것과

『서울 안에 우리 일가가 여러 집 있지마는 모두가 돈냥이나 있고 벼슬깨나 한다고 나 같은 한미한 일가붙이는 문안에 들지도 못하게 하는데 대감은 그래도 그렇지 않은 것을 믿고 왔으니 이 족형놈 한 집안 우선 목숨을 이으게 해주오.』

하고는 구슬같은 눈물까지 흘리었다.

『그래 식구는 모두 얻다 두셨소?』

『남문안 보행 객주집에 우선 들여 앉혔구먼.』

『모두 몇 식구나 되우?』

『식구야 몇 되지 않지만 첫째 과년한 딸년을 그런데서 밤을 새게 하는 게 맘에 꺼린단 말여.』

『딸?』

하고 주인 박명원은 귀가 번쩍 띄었다. 더구나 과년한 딸이란 소리에 더욱 어떤 희망이 번개같이 뇌리에 스친다.

『시골서 가난하게 살자니 자연 혼기를 놓쳐서 지금 열아홉이 되었구먼.』

이 말을 듣자마자 박명원은 비스듬히 안석에 기대어 있던 몸을 바로 잡으며

『이리 오너라 ─』

하고 상노를 부르고는,

『너 수청방에 나가서 꿋꿋한 별배놈 두엇 들어 오래라.』

『네이 ─』

재빠른 상노 아이놈이 사라지자마자 거미하에

『소인 등대 하왔읍니다.』

『음, 너 여기 계신 이 생원님 공손히 모시고 남문안에 가서 생원님의 지시하시는 대로 시골서 올라오신 내행 공손히 보교를 모두 타시게 해서 모셔 오렸다.』

『네 ─ 이』

『작은 사랑 집사방에 가서 돈을 타가지고 나가 저 객주집 세음을 깨끗이 닦고 오너라.』

『네 ─ 이』


이리하여 모셔온 내행은 안으로 들여 보내고 누구보다도 먼저 족질되는 규수를 보자고 하여 박생원의 딸은 사랑으로 나와서 족숙되는 주인 박명원에게 현신하였다.

아 ─ 아 ─ 이 무슨 기적이냐. 박명원의 생각에는 시골 구석에서 빈한하게 자란 색시, 오죽이나 무무하며 시골태가 오죽 하랴, 이렇게 생각했더니 급기 대해본즉 눈이 확 티이는 느낌이었다.

그 청수한 용모, 단아한 동작, 순하면서도 명석한 대답소리 비록 옷은 무명옷일망정 바야흐로 귀인다운 풍도가 풍성하였다.

박명원은 정신이 홱 돌았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 족질녀를 만나게 해주신 것 같았다.

『허허 참 형님은 훌륭한 딸을 두셨소.』

하고 박생원을 기쁘게 하고, 족질녀에 대해서는

『안에 들어가서 형수씨껜 명조에 인사드리겠다 여쭙고 내 집에 오신 이상 남의 집이니라 생각 마시고 맘놓고 계시면 일간 곧 쓰실만한 댁을 마련해 드리겠노라고 여쭈어라.』

하여 안으로 들여 보내고는 밥상을 내다가 박생원과 더불어 밥을 먹으며 부리는 여종더러

『안행을 어디로 뫼셨느냐?』

『뒷채로 뫼셨읍니다.』

『깨끗이 치웠느냐?』

『말쩡히 소제하고 불을 많이 지폈읍니다.』

『안에 들어가서 대부인 마님께 희귀한 질녀를 만났으니 잘 데리고 노시다가 자도록 하시고 행여 서하게 대접 마시라고 여쭤라.』

하는 전갈을 하였다.

특히 질녀 운운을 한 것은 부인에게 자기의 고민이 그 질녀를 만남으로 해서 해소되었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아무 연유를 알지 못하는 박생원은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하고 어리둥절해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이튿날 박명원은 신이 나서 예궐하여 본인의 승락을 받았다고 아뢰고,

『친정이 빈한한 것이 한 개 험절이오이다.』

하였더니 정조는,

『그게 무슨 말씀요. 과인이 처가의 덕을 보잘 사람요. 친정의 빈부가 무슨 상관요.』

하고 기뻐하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