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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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幸福한 家庭

이 세상에 있어서 행복한 가정이란 그리 쉽사리 이루어지는것이 아닌듯 싶다. 오늘날 백진주 선생이 찾아본 중추원 참의 송춘식과 은행가 장현도의 가정을 비롯하여 아직도 찾아보지 못한 검사정 유동운의 가정까지도 겉으로는 평화와 행복이 깃들여 있는것 같이 보였으나 실상은 행복과는 거리가 대단히 먼 가정들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 참된 행복과 평화가 깃든 가정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모인애와 그의 남편 고영수(高永秀) 청년이 이룬 가정이었다.

모인애는 여러분도 기억하다 싶이 태양환의 선주 모영택씨의 딸이며 고영수는 七년전 모상회가 쓰러저가던 무렵에 최후까지 남아있던 사무원이었다.

그들이 이룬 신앙과 사랑의 가정은 청량리에 있었다. 뒷뜰 넓은 터앞에는 전원취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가지각색의 채마밭과 꽃밭이 있었고 행길가에 면한 아담한 이층양옥은 아직 독신인 인애의 오빠 모인규박사의 개인병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백진주 선생이 이 사랑의 집을 찾은것은 복수의 일념으로 말미암아 활줄처럼 긴장한 자기의 정신적 활동에 피곤을 느끼고 한잔의 청량제(淸凉劑)를 마심으로서 다사로운 위안을 맛보고자 한 때문이었다.

『뭐, 백진주 선생이 오셨다고?......』

젊은 의학박사 모인규는 그렇게 외치면서 진찰실에서 뛰처 나왔다.

『아, 백선생님, 수고로히 오셨습니다. 선생님이 저이 집을 찾아 주시겠다던 말씀을 저는 꼭 믿고 있었습니다.』

저번 송준호의 집에서 그러한 약속을 한 두사람이었다.

『그 약속을 오늘이야 겨우 이행하였소.』

『자아,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선생님의 말씀을 전했더니만 내 동생과 매부가 선생님이 찾아 오시기를 어떻게 기다렸는지 아십니까? 지금 그들은 터앝에서 꽃씨를 뿌리고 있답니다. 한쌍의 원앙처럼 행복한 부부랍니다. 저걸 보십시요. 남편은 밭을 갈고 안해는씨를 뿌리고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모인규 청년은 세사람이 같이 쓰는 안채 서재에다 백진주 선생을 모신 후에 들창문을 열고

『인애, 빨리 들어와! 백진주 선생께서 오셨으니까.......』

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불렀다.

이윽고 인애와 그의 남편 고영수 청년이 손에 묻은 흙을 털면서 들어왔다.

이 집에 한 발을 들여노면서부터 백진주 선생은 실로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평화와 행복을 누릴수가 있었다. 그렇다. 실로 二十여년 동안 고스란히 잊어버렸던 평화며 행복이었다.

백진주 선생은 인애가 손에 묻은 흙을 털고 끓여온 홍차를 맛나게 마시며

『부인, 이처럼 실례를 무릅쓰고 부인과 부군의 얼굴을 자꾸만 처다보는 저를 과히 꾸짖지 마시요. 행복한 얼굴을 보는것처럼 기쁜것은 또 없을것입니다.』

『참, 선생님, 저희들은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행복은 하늘이 저희들에게 보내신 한사람의 천사가 갖고온 것이예요.』

그순간 백진주 선생의 얼굴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빨갛게 홍조를 띠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동을 감추려고 외면을 하였을 때, 그의 눈동자는 그보다도 좀더 큰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달려드는 그어떤 조그마한 물품위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멎었다.

그것은 외인편 벽에 놓인 장식장 유리문 속에 단정하게 진열된 세가지의 물품― 거의 퇴색한 수박색 모본단 돈지갑 하나와 봉투에 넣은 편지 한장과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포도알만한 금강석 한개!

『그렇습니다. 그 천사는 지금으로부터 七년전, 저희 집이 몰락하려던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서 지금 백선생님이 바라보고 계시는 저 유리장 속에 안치하여둔 지갑과 편지와 금강석을 선물로 보내셨습니다.』

하고 이번에는 인규가 말을 받았다.

『네, 그것은 정말 천사가 아니고는 하지못할 훌륭한, 아니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었답니다.』

하고 이번에는 고영수가 말을 하였다.

백진주 선생은 무엇이라고 대답할줄을 몰랐다. 아니, 입을 열면 걷잡을수 없는 감동이 무섭게 튀여나올것만 같았고 눈을 뜨면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나올것만 같았다. 그래서 백진주 선생은 입을 꽉 다물고 눈을 감은채 그저

『허어. 허어!......』

하고 두어마디 지나가는 대답을 하면서 오주주하니 전신을 습격해오는 밀물같은 감동을 감추고저 몸을 일으켜 유리장 앞으로 걸어 갔다.

그때 인규는 장문을 열고 지갑을 끄내여 경건한 마음으로 자기 볼에다 한번 부비면서

『이것은 제 아버지를 죽엄으로부터 구하고 저희들을 파멸에서 구하고 저희 집안을 치욕으로부터 구해주신 그 천사의 손이 닫던 지갑입니다. 그분의 덕택으로 우리는 오늘날의 행복을 차지할수 있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로 말하면 아버지께서 최후로 비상한 결심을 하시던 바루 그날, 그분이 손수 쓰신 글월입니다. 그리고 이 금강석은 그분이 인애의 혼인비로 쓰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백진주 선생은 꿈결처럼 편지를 펼쳤다. 가슴이 뭉클해 진다. 뜨거운 눈물이 꽈ㄱ하고 쏟아저 나오려는것을 간신히 참으면서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일수야 있겠습니까?』

『정말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 그 어른의 손도 한번 잡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매일처럼 신명께 기도를 올리지요. 단 한번이라도 그 어른의 손을 잡아보는 혜덕을 주십사고요.』

인애는 오빠의 말을 받아

『그때 저희 집을 찾아왔던 상해교역은행의 사원 허달준이라는 사람과 이 편지를 보낸 사람과는 틀림없이 같은 분일꺼예요. 그후 오빠는 여러번 상해로 건너가서 교역은행을 찾아갔었답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그런 사람은 통 없다구요.』

그때 백진주 선생은 이상하다는 얼굴을 지으며

『그러나 이상한 일두 있습니다. 실은 상해교역은행으로 말하면 바루 내가 경영하는 은행인데요.』

『엣?......』

『그러서요?......』

일동은 놀래여 백진주 선생을 꿈결처럼 처다보았다.

『그러나 허달준이란 이름을 가진 사원이 있다는 말은 통이 듣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것은 혹시 저 함일돈(咸一敦)씨라는 분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함일돈씨라고요?...... 그분이...... 그분이 어떤 분인가요?』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그렇게 물었다.

『함일돈씨는 말하자면 숨은 자선가(慈善家)지요. 열렬한 크리스챤이고요. 그분이 어째서 그처럼 훌륭한 자선가이면서도 자기 이름을 단 한번도 밝히지 않는가 하면 이 세상에는 「감사」라는것이 통이 없다, 즉 말하자면 고마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 그럼 선생님은 그분을 아십니까?』

『알지요. 키가 나와 거진 비슷한 사람인데 나보다 좀 몸집이 여위었을까요?...... 언제나 손에 연필을 들고 댕기는 분이지요.』

그말을 들은 인애는 희열이 만면한 얼굴로 달려들며

『그래요. 바루 그분이예요! 선생님, 저희들을 그분이 계시는 곳으로 인도해 주세요! 그러면 그분은, 사람의 「감사」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실꺼예요, 선생님!』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을 그분 옆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요! 그리고 저이들의 「감사」의 만분지일이라도 받아 드리시도록 하여 주십시요!』

인규도 백진주 선생의 손목을 잡을듯이 다가들며 애원하듯이 간청하였다. 일단 사라졌던 눈물이 핑하고 또다시 백진주 선생의 눈자욱을 뜨겁게 적시였다.

『그러나 함일돈씨와는 三년전, 북경에서 헤여진채 지금껏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을 모릅니다.』

『오오, 어쩌면 하늘은 저희들의 이 끝없는 감사의 마음을 이렇듯 저바리시나이까?』

인애는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하늘을 원망하였다.

『부인, 만일 함일돈씨가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본다면 그는 인생을 좀더 사랑할 마음을 가질것입니다. 부인께서 흘리신 그 성스러운 눈물은 그의 인생철학을 고치게 할것입니다.』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감사에 찬 목소리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분의 고향이 어딘가 아실것이 아니예요?』

『네, 고향이 단지 평안도라는 말만 들었을 뿐, 평안도 어디라는것은 나도 알수 없습니다.』

『아아.......』

하고 인애는 절망적인 부르짖음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부인, 너무 낙망을랑 마십시요. 하늘은 반드시 부인의 그 간곡하신 청원을 들어주실 때가 있을것입니다. 기다리시요. 기회가 올 때를 고즈낙히 기다리시요! 그러면 하늘은 반드시 이 평화로운 가정으로 그분을 인도하여 주실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선생님?......』

『하늘은 믿는 사람을 배반하지 않을것입니다.』

『믿겠습니다. 하늘을 믿겠습니다!』

『그런데 아모리 음덕을 베푸는 함일돈씨랄지라도 과거에 무슨 깊은 인연이 있었길래 그런 일을 한것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말하면 은혜를 갚는다던가 하는.......』

그말에 인규는

『네, 돌아가신 가친께서도 그점을 골똘히 생각해 보셨답니다. 그리고 아모리 생각하여도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은인은 우리들을 위하여 무덤속에서 나온 분이라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습니다.』

『무덤속이라고요?』

『네, 아버지께서는 옛날 가장 친하게 지내던 한사람의 친구의 이름을 문득 생각하고, 그 잃어버린 친구를 밤낮으로 골돌히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돌아가시기 바루 직전에 이르자 그때까지도 단지 하나의 추측에 지나지 못하던 아버지의 생각이 하나의 결정적인 결론을 얻으셨답니다. 임종시에 아버지께서는 저를 향하여 「인규야, 그것은 틀림없는 이봉룡이라는 사람이었다!」 하는 한마디를 남겨놓고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백진주 선생의 얼굴빛은 점점 더 창백하여진다. 전신의 피가 욹하고 물밀듯이 가슴패기로 기여올라 온다.

『아, 이만하고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백진주 선생은 시간이 늦었다는듯이 시계를 끄내보며 문밖까지 전송나온 세사람의 젊은이와 헤어저 창황한 걸음걸이로 총총히 사라진다.

『오빠, 백진주 선생은 어딘가 좀 이상한 분이 아냐요?』

『음,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 남달리 호의를 가지고 있는것 만은 확실하다.』

『네, 그분의 목소리는 저희들의 가슴을 부드럽게 파고 드는것 같아요. 그리구 아모리 생각해두 처음 듣는 목소리 같지가 않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