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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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愚月大師

어연간 일년이 지났다. 삼천리 강산이 떠나갈 듯이 우렁차던 만세성이 멀어진지 어연간 一년이 지났을 무렵에 형무검찰관(刑務檢察官)이 해상감옥을 순찰한 일이 있었다. 인간미가 비교적 풍부한 검찰관이었다.

검찰관이 이 해상감옥을 순찰하였을 때, 그가 가장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접한것은 캄캄한 지굴감방에 수감되여 있는 두사람의 죄수였던 것이니, 그 하나는 수많은 보물이 매장(埋藏)되어 있는 장소를 안다고, 자기를 놓아만 주면 그 보물의 절반을 주겠다는 미치광이 늙은 중이었으며 또 하나는 늙은 아버지와 사랑하는 옥분이와 그리고 태양환의 선장이라는 빛나는 자리를 고스라니 놓아두고, 어느 귀신이 잡아왔는지 영문 모르게 부뜰려 온 이봉룡 그 사람이었다.

절망과 암흑과 분노와 저주 속에서 일년이라는 긴 세월을 박쥐인 양 캄캄한 지굴감방에서 무섭게 신음하며, 하늘과 땅과 그리고 신(神)밖게 이 억울한 사사정 호소할 방도를 갖지 못한 봉룡의 눈앞에

『그대는 나에게 무슨 히망을 말하고 싶지 않느냐?』

하고 물으면서 나타난 검찰관을, 봉룡은 하늘이 자기를 가호(加護)하려고 내려보낸 천사와도 가치 반가웠다.

『저는 다른 아모런 히망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무슨 리유로서 이곳에 들어왔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만일 저에게 죄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총살을 하여 주십시요. 그리고 만일 아모런 죄도 없다면 저를 곧 자유로운 몸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요. 저에게는 불상한 늙은 아버지가 계십니다. 내 안해가 될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리, 저는 결코 저를 관대하게 처분하여 주십사는것이 아니올시다. 저를 정당하니 재판하여 주십시요. 그리고 저를 심판한 재판관을 만나게하여 주십시요!』

이러한 봉룡이의 호소를 검찰관은 정당하게 들었는지, 머리를 끄떡끄떡하면서

『음, 한번 서류를 조사해 보마.』

그말이 떨어지자 봉룡은 감격하여

『나리, 나리의 음성은 분명히 저를 동정하고 계십니다! 나리, 단 한마디, 저에게 히망을 가지라고 분부하여 주십시요!』

『그런 말은 할수 없는것이야. 다만 그대에 관한 기록을 한번 조사하여 보겠다는것만은 약속을 하마.』

『아, 그렇습니까!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는...... 저는 자유로운 몸이 될수 있습니다!』

『그대는 누구의 손에 체포되었는가?』

『진남포에 계시는 유동운 검사대립니다. 그분과 서로 의논을 하여 주시면 잘 아실것입니다.』

『그러나 유동운군은 一년전에 해주(海州)로 전근을 가고 지금은 없는데.......』

『전근이라구요? 아아, 저를 도와줄 단 한사람까지 인제는 멀리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려.』

『유동운군은 그대를 미워할 그어떤 이유는 없는가?』

『천만에 말씀을...... 그분은 저에게 무척 친절히 하여 주신 분입니다. 그분의 말씀이면 무엇이던지 믿어도 좋습니다.』

『음, 잘 알겠다. 기다려 보게.』

『오오!』

하고 봉룡은 감격하여 땅바닥에 읍하며 두손을 하늘높이 올리고 검찰관을 주님의 사자처럼 전송하였다.

이윽코 봉룡의 감방에서 나온 검찰관은 미치광이 중 우월대사(愚月大師)의 지굴감방을 찾았다.

이 우월대사는 지금으로부터 오년전 비밀결사(秘密結社)를 조직한 중대한 정치범(政治犯)의 죄목으로 돌연 이 무서운 해상감옥으로 호송된 노인이었다.

『그대는 무슨 히망은 없는가?』

하고 물었을 때

『나를 가르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당신네들에게 대하여 하등의 히망이 있을 리 없소. 그러나 당신이 만일 나를 미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단 한가지 부탁이 있소.』

『그것을 말해 보라.』

『그것은 만일 나를 자유로운 몸으로 돌려보내 준다면 나는 정부에 一억원의 막대한 금액을 바칠터이요. 아니 나를 다만 그 보물이 매장되어 있는 장소까지 데리고 갔다가, 내말이 거즛이라면 다시 이 감옥으로 돌려보내도 무방하니까...... 아니, 그것도 내가 도망할 염녀가 있어서 않된다면, 그러면 내가 그 장소를 아리켜 드릴테니, 당신네들이 가서 그 보물을 발견하여 와도 무방할것이고.......』

그러나 검찰관은 그때 빙그레하고 입까에 우슴을 띠우면서

『그런 허황한 이야기는 두었다하고 식사같은것에 무슨 불평이나 없는가 말이야?』

『흥! 당신도 역시 나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을 하는구려. 어서 나가시우. 어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시우!』

우월대사는 그 한마디를 배앝듯이 남겨놓고 방바닥에 누어버리고 말었다.

이윽코 검찰관은 전옥실(典獄室)로 나오기가 바쁘게 봉룡이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수감자명부(收監者名簿)를 끄내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 있었다.


▲ 이봉룡— 과격한 독립단원. 三一만세소동에 있어서 상해 가정부와 사이에 연락을 도모한 자. 엄중한 감시하에 극비밀히 감금할 것.


아모리 인간성이 풍부한 검찰관일지라도 이와같은 죄인을 구해낼수는 도저히 없음을 깨닫고 그는 그 밑에다 「사면(赦免)의 방도 전무(全無)―」라고 써놓았다.

한편 봉룡은 검찰관의 구원의 손이 뻗치기를 목을 느려 기다렸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고 一년이 지나고 三년, 五년이 지나도 검찰관의 구원의 손은 좀처럼 뻗을줄을 몰랐다.

봉룡은 인제는 인간으로서 할수있는 온갖 히망을 버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봉룡은 인제는 사람을 버리고 신(神)을 대하였다. 그는 미친 사람인 양 열심히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원래 남처럼 교육을 받지 못한 몸이라 기도가 끝난 다음순간에는 사람을 원망하고 세상을 저주하였다. 머리로 담벼락을 떠받고 손톱으로 방바닥을 긁었다.

그는 마침내 죽엄을 결심하고 열흘 동안을 단식을 하여 식사를 취하지 않었다. 그의 몸은 쇠약할대로 쇠약하여 기운없이 방바닥에 누어서 잠만 잤다.

그러던 어떤날밤, 봉룡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바른편 담벼락 속에서 툭 툭 툭 하고 바위를 까내는 것 같은 마치소리가 규측적 으로 들리질 않는가?......

그것은 틀림없이 자기와같은 불우한 경우에 있는 수인이 자기 자신을 구할려고 탈옥(脫獄)을 계획하고있는 것이다.

『오오! 탈옥!』

죽엄을 각오하고 단식을 결행하던 봉룡의 가슴에는 그순간 한줄기 광명이 숨어들기 시작하였다.

하로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는 동안에 마치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 왔다. 봉룡은 히망을 갖기 시작하였다. 단식을 버리고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지굴속 감방에는 습기가 심하여서 사람이 하나 깔고 누우리만한 널판자가 하나 있었다. 밤에는 널판자를 깔고 자고 낮에는 널판자를 거두어서 바른편 담벼락에 세워두는것이 규칙이었다. 마치소리는 다행히도 그 널판자를 세워두는 담벼락쪽에서 났기 때문에 그곳에 구멍이 뚫려진대도 옥정의 눈에 띠이지 않고도 될만한 위치에 있었던것이다.

아아, 마치소리가 들리기 시작한지 보름만에 마침내 담벼락 돌이 하나 움지기기 시작하면서 쥐구멍만한 구멍이 하나 뚫러지지를 않었는가!

『오오, 주여!』

하고 봉룡은 웨첬다. 그순간, 그 조그만 구멍 저편에서 사람의 그림자 같은것이 움지기면서

『주의 이름을 입에 담는 자는 누구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 그것은 六년동안 옥정의 목소리밖에 듣지못한 봉룡이에게 있어서는 한방울의 생명수인 양 기뻤다.

『오오, 사람의 목소리다!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가!』

봉룡은 전신의 피가 갑자기 욹하고 머리위로 물밀듯이 기여올라오는것을 깨다르면서

『누구시오니까? 저를 해칠 분이오니까? 저를 구하실 분이오니까?』

봉룡의 목소리는 한없이 떨리었다.

『그러는 그대는 누구시우?』

저편의 목소리도 또한 떨렸다.

『저는 불우한 수인이 올시다.』

『고향은 어데인고?』

『진남포 올시다.』

『성명은?』

『리봉룡이.......』

『직업은?』

『선원(船員)이 올시다.』

『언제부터 들어와 있는고?』

『기미년 二월 二十八일부터 올시다.』

『무슨 죄로 들어왔는고?』

『아모런 죄도 없소이다.』

『그러나 명목상으론 그래도 무슨 죄명이 있을것이 아닌가?』

『상해에 계신 안도산 선생의 신서를 중앙에 전달할려던 독립단의 한사람으로서 올시다. 그래 당신은 언제부터 들어오셨습니까?』

『十년전부터요. 그런데 그대가 지금 있는 방의 복도는 어데로 향해있는고?』

『뜰로 향하여 있소이다.』

그때 저편 사람의 목소리가 극도로 놀래면서 부르짖는다.

『뭐, 뜰이라구? 아아, 十년 계획이 한데로구나! 나는 이 담벼락이 이 해상감옥의 성벽(城壁)인 줄로만 알구...... 아아, 모두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었다!』

히망에서 절망으로 떨어지는 비참한 부르짖음이었다.

『그러나 성벽밖은 황해바다가 아니오니까? 륙지까지 헤엄을 쳐 나갈수가 있소이까?』

『그담엔 모두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는것을 기다릴 밖에.......』

『그런데 누구시오니까?』

『나는...... 나는 二十七호— 그대는 몇살인고?』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스물 다섯인지 여섯인지.......』

『음, 아직 나이가 그처럼 젊었다는 말을 들으니 저윽이 안심이 된다. 그처럼 젊은 사람이 나를 팔지는 않겠지?』

『무슨 말씀을 하시오니까? 저를 버리지 마시고 저와 가치 도망을 하여 주십시요. 두리 가치 이야기를 하게하여 주십시요. 당신은 당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시고 저는 옥분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젊으신 분이라면 저의 동무가 되여 주십시요. 만일 당신이 늙으신 분이라면 제가 당신의 아들 노릇을 하겠습니다. 제게는 늙은 아버지가 계십니다만 살아 계시는지 어떤지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것 처럼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하겠습니다.』

봉룡의 이 순정한 호소가 저편 사람의 마음을 안심하게 하였는지

『잘 알았소!』

하는 굳센 대답이었다.

『자아, 그러면 이 커—다란 돌이 움지기니, 어데 힘을 주어 빼봅시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하여 사람의 몸둥이가 하나 드나들만한 돌 하나를 뺄수가 있었다.

그 돌구멍으로 벌벌 기여나온 한사람의 노인— 그것은 미치광이 중이라고 불으는 우월대사 그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