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5장
수수께끼의 여자
[편집]1
[편집]「무로마찌」三[삼]정목, 「니흠바시」「교오바시」를 지나 택시는 「긴자」 四[사]정목 뒷골목에 있는 어떤 지하 「빠」앞에서 멎었다.
「자아, 내려요.」
영민은 하는 수 없이 나미에의 뒤를 따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친구가 하는 곳인데 아주 맛 있는 칵텔이 있어.」
아직 초저녁이라 손님은 그리 혼잡하지 않았다.
나미에는 「바아 . 텐더」가 있는데 가서 이집 마담인듯 싶은 三十[삼십]이 훨씬 넘은 여인과 몇 마디 인사를 바꾼 후에 옆 파초나무가 서 있는 식탁을 끼고 영민과 마주 앉았다.
이윽고 칵텔과 위스키가 식탁 위에 놓여진다.
「자아, 오래간만인데 한 잔 들어요.」
자기는 칵텔을 마시고, 영민에게는 위스키를 권하면서
「그래 히데쨩, 지금 뭘하구 있어요?」
「아, 참 야마모도 선생은 출정을 했답니다.」
「출정? 어디로?」
「북지로요.」
「북지는 어디로?」
「그건 나도 잘 모릅니다. 소위 ○○방면이라구요.」
「흥, 히데쨩이 출정을 했다! 내 따귀를 갈기던 손으로 또 어느 년의 따귀를 갈기고 있을 테지.」
그 말에 영민은 뒤집혀진 스미즈를 그대로 입고 돌아 왔다가 따귀를 얻어맞은 지나간 날의 나미에를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뭐가 우스워요?」
「이것 저것이……그래 북경선 무엇으로 애국을 하십니까?」
「춤 추는 것도 애국이지.」
「허어, 나라를 위해서 춤을 춘다!」
두 사람이 다같이 얼굴이 벌게졌다.
「어째서 춤추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되느냐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알고 싶거든 북경엘 한 번 와 봐요. 북경에 와서 첸멘(前門[전문]) 앞 거리에 있는 캬바레 「용궁」을 한 번 찾아 와 봐요.」
「용궁?」
가만 있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 아닌가?……아, 그렇다!
지나간 겨울 방학, 서울 천일관에서 땅개에게 쫓겨 장 일수가 몸을 피하면서 던진 한 마디가 영민의 귀에 새로워진다.
「내 소식이 알고 싶거든 북경 정양문 앞에 있는 캬바레 「용궁」의 마담한테 연락을 하게.
바로 그 「용궁」이 아닌가.
「「용궁 . 홀」을 아세요?」
「알 리가 있읍니까. 북경서 온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드구먼요.」
「뭐라구들 평해요?」
「아주 훌륭한 홀이라구요. 그리고 거기 마담이 아주 미인이라구요.」
영민은 슬쩍 그런 말을 던져 보았다.
「후, 후, 훗……」
하고, 나미에는 웃음을 죽이면서
「용궁의 마담은 북경선 미인일지 몰라두 이 동경선 툇자만 맞는걸.」
「엣?……」
영민은 또한번 놀랐다.
그렇지 않구 뭐야요 「 . 히데쨩한텐 따귀만 얻어 맞구……미스터 . 백한텐 발길로 채이기만 하구……」
그러면서 영민의 앞에 놓인 위스키를 쭉하고 나미에는 한숨에 들이키었다.
「칵텔을 누가 싱거워 먹어? 하하하하……」
나미에의 매혹적인 웃음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2
[편집]「하세가다 . 나미에가 용궁의 마담이다?」
얼근하니 취했던 술기운이 갑자기 깨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있나?」
영민은 마음 속으로 머리를 기울였다.
그 전부터 수수께끼 같은 나미에이기는 하였으나 지금 자기의 눈 앞에 있는 바로 이 나미에가 용궁의 마담이라는 사실이 영민에게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장 일수의 말투로 보아 용궁의 마담은 장 일수의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건만 과연 그렇다면 장 일수는 일본 여자인 나미에를 그처럼 신임하는 것일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러한 인과관계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용궁의 마담이 최근 갈린 것이 아닐까?……하고
「언제부터 용궁의 마담을 하시우?」
하고, 물었다.
「한 三[삼]년 되죠.」
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장 일수가 말하는 용궁의 마담이란 분명히 이 나미에가 틀림없지 않는가. 그래 장 일수의 이야기도 물어 볼까도 하였으나 약간 꺼리는 바가 있어서 그만두고
「그래 북경선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지극히 행복해요. 내가 처음으로 내 정신을 팔아 본 사나이가 있으니까요.」
「허어, 축하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될런지 몰라요.」
「왜요?」
「그 사나이는 나를 쿠 ― 냥(.娘[고낭])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쿠 ― 냥?」
「표면으로는 용궁의 마담이 중국 여자 방월령(芳月齡)으로 되어 있죠.」
「방 월령?……」
아아, 그랬던가!
그때야 비로소 영민의 의혹이 풀렸다. 말하자면 장 일수는 나미에를 중국 여자 방 월령으로만 알고 신임하는 것임에 틀림 없었다.
그것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전국이 긴박할 때, 일본인이 국적(國籍)을 숨기고 중국인으로서 행사를 한다는 것은 필시 일본 특무기관(特務機關)의 밀정(密偵)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 그 사나이도 중국 사람인가요?」
「네. ── 그러니까 괴롭다는 말야요. 그 청년은 나를 어디까지나 동족으로 알고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나를 귀해 하지만……」
「음 ──」
영민은 깊이 한 번 신음을 하였다.
「진실한 청년인가요?」
「네, 진실하구, 열정가구……중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열열한 애국자야요.」
그리고는 푹 한숨을 내쉬며
「그만 했음 어째서 춤추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유를 아셨죠?」
「알았읍니다.」
「그러나 이건 비밀이야요! 그점두 잘 알았죠?」
「잘 알았읍니다.」
「나라를 위하느냐, 사랑을 위하느냐?…… 조국이냐, 장 욱(張旭)이냐? ── 이것이 내 인생의 분기점(分岐點)이야!」
「장 욱?……」
「네, 그 청년의 이름이야요.」
가만 있자, 장 욱이란 장 일수가 오 창윤의 집을 방문할 때 내놓은 명함에 씌어있던 또 하나의 이름이 아니었던가!
3
[편집]방 월령과 장 욱 ── 아니 나미에와 장 일수가 목숨을 내걸고 사랑을 한다. 그리고 장일수는 나미에를 중국 여잔 줄로만 믿고 자기의 활동에 관한 모든 비밀을 고스란이 나미에에게 제공을 할 것이 아닌가.
「위험 천만의 일이다!」
영민은 부르르 한번 몸을 떨었다.
장 일수가 국적을 속이고 중국인 행세를 한다는 것은 알 법한 일이지만 방 월령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처럼 신임한다는 것은 실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 일수에 관한 말을 자기 편에서 먼저 꺼내지 않은 것만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
「어떡허면 이 사실을 장군에게 전해 줄 수가 있을까?」
하였다. 그러나 장 일수의 주소를 알지 못하는 영민으로서는 사흘 후에 다시 북경으로 출발한다는 나미에게 편지를 부탁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때 나미에의 빨간 입술이 전등 밑에서 탄식하듯이 중얼거린다.
「조국이냐, 사랑이냐?……나는 암만 해두 애국자는 못 될 것 같은 걸요.」
「사랑의 용사(勇士)가 되시렵니까?」
「그것두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야요. 누구가 내 생명을 보증해 줘요?」
그러다가 나미에는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면서
「영민씬 어째 그리 사람이 벽창호야?」
「벽창호라구요?」
「목석(木石)두 정이 있다는데 어쩌면 그처럼 쌀쌀할까?」
「나와 가까이 함으로써 또 무슨 정보를 수집하려구 그러시우?」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말을 영민은 대담하게 내쏘았다.
「그런 말 함부로 하다가는 재미 없을걸!」
나미에는 무섭게 한 번 영민을 흘기고 나서 담배를 붙여 물며
「내 아까 뭐라고 했어? 그건 비밀이니까, 말조심 해요.」
「허어!」
「허어가 아니야. 내말 한 마디면 콩밥에 메주통이야. 어떤 세상인줄 알구 덤벼?」
「허어!」
「또 허어야? 어디 그래 봐요. 한 번 맛 좀 볼래?」
그 순간 나미에의 눈동자가 , 번쩍 빛나면서 담배 연기로 동그램이를 허공중에 세 번 그렸다.
「이것이 뭔지 알아? 신호야.」
「신호?……」
「당신을 체포하라는 신호, 몰라?」
그러는데 저편 구석에서 여급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캪을 쓴 사나이 하나가 뚜벅뚜벅 이편으로 걸어오지 않는가.
「봐요. 그래두 말조심 안 할 테야?」
영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네꼬(누님), 불렀읍니까?」
사나이가 영민을 힐끗힐끗 바라보면서 다가온다.
「불렀어. 이 학생 잘 봐 두어요. 이름은 백 영민, 「와세다」졸업반인데 후일 무슨 시끄런 일이 생겨두 관대히 봐 줘요.
「헤이, 염려마십쇼.」
「그럼 어 칵텔 한 잔 마시고 가요. 소 오줌 같은 합성주만 먹음 창자에 구멍이 뚫리잖어?」
「헤헤, 고맙읍니다.」
사나이는 나미에가 부어 주는 칵텔 한 잔을 맛나게 마시고 나서
「그럼 물러 가겠읍니다. 오늘 밤 재미 많이 보십쇼.」
그러면서 사나이는 빙글거리며 물러 갔다.
「어때요? 그만 했음 정신 차렸어?」
「………」
영민은 대답이 없다.
「그래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두 없어?」
「불유쾌할 따름이요.」
「호호호호, 언제까지나 철부지야!」
요염한 웃음이 앵도알 같은 나미에의 입술을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