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58장
샹하이·도라
[편집]1
[편집]정양 문밖 대가로 일단 배달되었던 백 영민의 암호 편지가 동장안가의 호화로운 조무장(跳舞場)「용궁」으로 다시 배달되어 온 것은 二[이]월 하순 어떤 날 저녁 무렵이었다.
「저 장 선생께 편지가 왔어요.」
목란(木蘭)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국인「땐씽·껄」이 영민의 편지를 가지고 이층 마담의 방문을 열었을 때, 방 월령은 마침 경대 앞에 꿇어 앉아서 저녁 화장을 하노라고「파프」로 콧등을 열심히 두두리고 있었다.
「장 선생?……」
거울 속에서 월령의 표정이 약간 긴장미를 띄우며 홱 돌아 앉는다. 저번 밤 발코니에서 바람처럼 사라지고는 다시는 자태를 나타내지 않는 그리운 사나이 장 욱의 이름이 아닌가!
「네, 장 선생 ─」
「무 ─ 랑(목란), 쎄쎄(고마워).」
목란은 편지를 내주고 의미 있는 웃음을 생긋이 던지며 내려가 버렸다.
월령은 아니 인제부터는 ─ , 나미에라고 불러야겠다. 나미에는 「파프」를 던지고 곧 편지 겉봉을 들여다 보았다. 분명히 장 욱에게서 온 편지였다.
그리고 뒤에는 단지「於徐州驛」, 孤馬」(서주역에서, 고마)라고 밖에 더 씌여 있지 않았다.
「고마?……」
나미에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봉투를 떼 보았다. 그 순간 나미에는 총 소리에 놀란 참새처럼 호다닥 몸부림을 쳤다.
「오오, 이것은…… 이것은……」
그렇다. 그것은 틀림없이「용궁」의 지배인 문 정우(文政愚)가, 아니 「샹하이·도라」 고지마 도라오가 눈이 벌개서 그 출처를 찾고 있는 소학생의 산술 문제가 아닌가.
「고마? 고마?…… 고마란 대체 어떠한 인물일꼬?……」
나미에의 전신은 타오르는 듯이 확확 달아 온다. 장 욱은, 그렇다. 장 욱은 확실히 저 대담한 암흑의 대통령의 일당임에 틀림이 없었구나!
「그러나 오오, 내 사랑 쨩위(장 욱)!」
나미에의 생리(生理)는 과거에 있어서의 모든 남성의 체취(體臭)를 망각해 버릴 수가 있었다.「히뎃쟝」(야마모도·히데오)의 그 유둘유둘한 애무에의 향수며 시굴뚜기 백 영민에게 향하는 자기의 그 야릇한 심정이며 ─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도 능히 삶을 향락할 수 있었던 나미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아아……」
장 욱이 없는 세상을 나미에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곧 절망이요, 암흑이요, 허무였다. 조국애(祖國愛)에 자기 목숨을 불살리기 전에 좀더 조급히 자기의 연정(戀情)을 장 욱의 품 안에서 불살려 버리고 싶었다. 그것이 나미에였다. 그것이 나미에의 생리의 부르짖음이었다.
바람처럼 자기 눈 앞에서 사라진 장 욱을 찾아 나미에는 그 이튿날 아침 조 양문(朝陽門) 안으로 장욱이가 하숙하고 있는 아파 ─ 트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장 욱은 벌써 자취를 감추고 그의 초라한 책상 위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일본 말로 적혀 있는 조그만 종이 조각을 발견하였다.
「도라」 노·에 사니·나루·요리와 (호랑이의 밥이 되기 보다는) 고 히노·도리 꼬니·낫데·미나 (사랑의 노예가 되여 보아라) 나미에·가와 이야 (나미에 귀엽도 다) 나미에·가와 이야 (나미에 귀엽도다) 나미에 가 반드시 찾아 올 줄로 믿고 적어 놓은 장욱의 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륙의 풍운아(風雲兒) 장 일수의 거치러운 심금(心琴)에서 울어 나온 참된 뜻이기도 하였거니와 한편으로는 또「샹하이·도라」의 수족(手足) 이 되어 버린 여간첩(女簡捷)방월령을 야유하는 한 구의 풍자시(諷刺詩)이기도 하였다.
2
[편집]분수(分數)와 가감승(加減乘)의 기호로 된 이 암호 편지를 나미에는 책상 앞에 꿇어 앉아서 편지와 똑같은 암호의 기호를 딴 종이에 베끼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편지를 베끼고 난 나미에는 두 통의 편지를 접어서 핸드빽 속에다 넣은 후에 손을 뻗쳐 책상 위에 놓인 수화기를 들어 장 욱의 아파 ─ 트에 전화를 걸었다.
「二[이]층 十二[십이]호실, 장 욱씨에게 좀 대 주세요.」
「十二[십이]호실 손님은 지금 안 계십니다.」
아파 ─ 트를 관리하는 젊은 사무원의 목소리였다.
「언제 외출했어요?」
「한 열흘 전부터 외박을 하시는데 때때로 돌아와서 편지 같은 것을 가져 가지요.」
「그럼 그 분의 외박하는 장소는 모르세요? 좀 급한 일이 생겼어요.」
「모릅니다.」
나미에는 잠깐 동안 망설거리다가
「저 그럼 말씀예요. 그 분이 혹시 돌아 오시거든 캬바레·[용궁]으로 좀 전화를 걸어 주십사고 전해 주세요. 미스터·꼬마 한테서 중대한 편지가 왔으니 찾아 가도록 좀 연락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알아 들으시겠어요?」
「잘 알아 들었읍니다. 미스터·꼬마 한테서 편지가 왔다구요.」
「네네, 그렇게만 전해 주시면 아실테니까요. 고맙읍니다. 꼭 좀 부탁해요.」
「네, 네, 염녀 마십시오.」
나미에는 전화를 끊었다.
사흘 전 남지 방면으로부터 (南支) 돌아온 문 정우, 아니 고지마·도라오가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四十[사십]을 훨씬 넘어선 중년 신사다. 중국복에다 중절모를 썼다. 눈썹이 유달리 시커먼 사나이 골격이 장대하고 부얼부얼한 얼굴에 광채 있는 눈동자를 가졌고 코 밑에 곱게 기른 수염이 그 유돌유돌한 얼굴 모습을 약간 갸냘프게 장식을 한다. 그렇다.「샹하이·도라」란 바로 이 인물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나미에의 눈동자가 일순간 오들오들 떨면서 책상 위에 놓인 핸드빽 위로 쏟아지듯이 쏠려 갔다. 그 핸드빽 속에는 이 사나이가 눈이 벌개서 그 출처를 찾고 있는 암호 편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미에는 태연하게
「신사라면 노크도 없이 숙녀의 방을 들어 서는 법은 없을텐데……」
「문 정우는 신사가 아니야.」
대화는 순전한 중국어다.
「그럼 뭔데?……」
「문 정우는 방 월령의 남편이야!」
「후후훗 ─」
웃음을 깨밀며 나미에의 눈초리가 화려하게 흘긴다. 풍만한 육체와 짙은 저녁 화장이 얼근하게 취해버린 고지마의 식욕을 흐뭇하게 자극한다.
「월령, 내 무릎 위에 좀 앉아 못 볼까?」
고지마는 책상 앞에 털썩 주저 앉으면서 나미에의 몸둥이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또 어떤 잡년과 술추념을 했는고?」
「그런건 물어서 무얼 해? 내가 월령을 이처럼 고와하면 그만이지.」
고지마의 두터운 입술이 월령의 하얀 목덜미를 빨았다.
「흥, 자기는 이년 저년, 단물만 빨아 먹으면서 남보군 잠깐 한눈만 팔아 두 바가지야?」
「흥, 그만 하면 알아 들을 법두 하지만…… 그래 장 욱이 녀석이 그처럼 좋을까?」
「장 욱?……」
나미에의 눈초리가 또 책상 위에 놓인 핸드빽으로 무심중 쏠려 갔다.
「암만 봐두 그 녀석 눈초리가 이상하거든. 잘 못 하다가는 큰 코 다칠라.」
「또 바가지야?」
응 그것무 「 , 있지만…… 암만 봐두 중경(重輕)의 향캉(스파이)이야. 이편 발목을 잡히기 전에 먼저 저편 발목을 잡아야 해.」
은근한 협박이다. 그러나 이편 발목은 벌써 잡혀버린 나미에가 아닌가 에이, 모르겠다. 눈 앞에 있는 핸드빽을 열어 장욱에게 온 암호 편지를 끄내줄까?
그러나 다음 순간
「─ 「도라」노·에사니·나루·요리와(호랑이의 밥이 되기 보다는), 고 히노·도리 꼬니·낫데·미나(사랑의 노예가 되여 보아라), 나미에·가와 이야·나미에·가와 이야(나미에 귀여워라, 나미에 귀여워라) ─」
장 욱의 노래가 핸드빽을 열려는 나미에의 손목을 잡아 버렸다.
들창 밖 행길에서 호궁의 애달픈 노래가 들려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 할아버지가 또 왔어요.」
고지마의 무릎에서 자기 몸을 빼기에는 좋은 기회였다. 월령은 발딱 몸을 일으켜 핸드빽을 들고 들창가로 걸어 갔다. 지전을 한 장 끄내 내던지면서
「할아버지, 오늘은 무척 이르네.」
「몸이 좀 거북해서 오늘은 일찌감치 들어 갈려구요. 헤. 헤,……」
「몸조심 하세요. 할아버지.」
「둬쎄, 둬쎄, 쇼우제(고맙습니다 아가씨)!」
그러면서 호궁의 거지는 아니, 고지마·도라오를 저격(狙擊)할 목적을 가진 강 시후 노인은 자꾸만 굽혀 절을 하면서 저편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루사이, 야로오다(귀찮은 자식이다)!.」
나미에의 등 뒤에서 고지마의 퉁명스런 일본말이 한 마디 튀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