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3권/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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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과 운옥이[편집]

1[편집]

「아, 유경이가……유경이가 정말로 나를 찾아 왔구나!」

영민의 열 손가락이 미친듯이 운옥의 몸뚱이를 더듬기 시작하였다.

「유경이! 유경이! 말이, 왜 말이 없소? 유경이! 유경이!」

그러나 정신을 잃어버린 운옥이의 입으로부터 대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유경이! 대답을 해요! 울지 말고 대답을 해요!」

영민은 유경이가 울고 있는 줄로만 아는 것이다.

「울지 않아도 좋아요! 유경이가 나를 찾아 여기까지 왔으면 그만이예요!

아, 유경이!」

영민은 와락 달겨 들어 운옥의 볼에, 입술에 수없이 키쓰의 소낙비를 퍼부었다.

운옥이가 달게 잠든 잠자리로부터 깨어나는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을 때 자기의 몸뚱이는 영민의 품 안에 안겨져 있었고 자기의 입술이 영민의 입술과 덧두겨져 있음을 발견하고 정신이 펄떡 들었다.

운옥은 극도의 부끄러움으로 말미암아 얼굴을 붉히며 옷자락을 단정히 거둡고 영민의 품 안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요시다 위생병이 한 잔의 포도주를 들고 뛰어 들어 왔다.

「이것을 마십시요.」

「감사합니다!」

운옥은 권하는 대로 한 잔의 포도주를 조용히 들이 켰다.

「유경이,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떠나 왔소?…… 어떻게 여기를 찾아 왔소?」

영민은 운옥의 손목을 꽉 잡아 쥐고 연거퍼 물어 댔다.

「찾을래면 길이 멀어서 못 찾을까요?―」

운옥은 비로소 입을 열어 대답을 하였다.

「못도ㆍ오오끼나ㆍ고에데ㆍ하나싯데ㆍ구다사이.(좀 더 큰 목소리로 말을 하시오)―」

옆에서 위생병이 주의를 시켰다. 운옥이가 같은 내용의 말을 좀 더 큰 목소리로 되풀이 하였을 때, 영민의 입으로부터 흘러 나온 한 마디는 실로 세상의 행복과 환희를 독차지한 감동적인 그것이었다.

「오오, 유경이! 잘 말 했소. 유경이의 그 한 마디야 말로 이 세상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거룩한 말이요! 유경이, 왜 좀더 빨리 그 말을 들려 주지 않았소? 나는 영영 그 한 마리들 듣지 못하고 죽는 줄만 알았지요.」

「………」

운옥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 너무나 감격에 찬 영민의 가엾은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인젠 괜찮아요. 인젠 됐어요. 모든 오해가 풀리는 날, 유경은 꼭 날 찾아 줄줄 믿었지요. 내 꿈이 맞았어요. 어젯밤 꿈이 꼭 들어 맞았는걸요.」

「무슨, 무슨 꿈이시기에……」

「내가 탑골동 집에 누워 있었답니다. 부상을 받고 제대(除隊)가 되어 집으로 돌아 왔다는 거야요. 그런데 유경이가 탑골동으로 나를 찾아 왔어요.」

「탑골동으로……」

「그럼요. 모든 사실을 알았다구 하면서, 모든 오해가 풀렸다구 하면서 어린 애기를 업고 나를 찾아……아, 참 애기는, 애기는 어떡했소? 애기는 왜 안 데리고 왔소?」

「애기라고요?」

가느다란 외침이 운옥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말을 모르는 실내의 부상병들은 마치 외국 영화를 보는것 처럼 어리둥절해서 두 사람의 동작만을 열심히 바라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2[편집]

그러나 운옥이의 외치는 소리는 영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다행한 일이다.

「애기를 왜 안데리고 왔소? 애기는 어떻겠소?……」

영민은 운옥의 손목을 흔들면서 성급히 물었다. 뭐라고 대답할까?…… 뭐라고 대답을 해야만 할 것이 아닌가.

「이렇게 먼 길에 애기를, 애기를 어떻게 데리구 올 수 있어요? 그래서 유모한테 맡겨 놓구 왔답니다.」

운옥은 운다.

아 그렇겠군요 「 , . 그렇구 말구요. 애기 이름은 뭐라구 지었소.」

「애기 이름은……애기 이름은……」

뭐라구 할까?……운옥은 얼른 생각이 돌지 않아 이것저것 자기가 알고 있는 어린애들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운옥이의 주위에는 어린애가 그리 많지 않다. 나나……금동이……

「저, 저 금동이라구 지었어요.」

「금동이?……그럼 사내군요?」

「네, 네?」

「아아, 금동이!」

감격이 넘치는 목소리로

「유경이,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소?」

「고생은 제가 무슨……」

「아니요. 이 손을 보면 다 알아요. 손이 약간 거치러진 것 같고 좀 커진 것 같아요. 이건 유경이가 그 동안 고생을 했다는 증거지요. 그러나 폭풍의 역사는 이미 지나 갔소. 이제부터 우리들의 앞 길에 광명이 올 것이요. 행복이 올 것이요. 유경이!」

「네?―」

「인젠 오해 다 풀었지요?」

「네, 모두 다……」

운옥은 슬프다. 이와같은 마음에 없는 대답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될는지, 운옥은 정말 가슴이 쪼개진다.

「유경이.」

「네?」

「내가 너무 말을 독차지 해서 미안하오. 유경이, 어서 말 좀 해요.」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고? 운옥은 정말 딱하다. 입을 열면 슬픔이 폭포수처럼 터저 나올 것만 같은데 영민은 자꾸만 말을 하란다.

「오늘은 저는 듣기만 하겠어요. 그리구 후에 조용한 틈을 타서 죄다 말씀 드리겠어요.」

「아, 그러는 것이 좋아요. 그런데 유경이, 왜 안경은 벗었소?」

아까 키쓰의 소낙이를 퍼 부을 때부터 영민은 유경의 안경이 마음에 걸렸다.

아, 안경―유경은 안경을 썼었던가?

여기 「 올 때 그만 차에서 안경은 떨어져 깨져 버렸어요.」

「그래요? 안경이 없으면 불편할 텐데―」

「안경 쯤 없어서 뭐가 그리 불편할까요? 영민씬, 영민씬 앞을 보지 못하는 몸인데……」

운옥은 그 이상 더 북받쳐 오르는 혹독한 슬픔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그만 침대 위에 머리를 묻고 흐늑흐늑 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유경이가 아니야요! 나는 운옥이야요! 당신에게 버림을 받고 모진 비 바람 속에서 정처없이 떠 돌아 다니는 운옥이야요. 가다가다 당신이 마음이 내키면 불쌍한 사람이라고 불러 주는 그 허 운옥이야요!」

그렇게 호소하며 영민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운옥은 한번 실컷 울어 보고 싶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一[일]년이고 二[이]년이고 운옥은 울어도 울어도 끝이 없을것 같았다.

눈 내리는 겨울 밤, 거위 배를 쓰다듬으며 도라지의 구슬픈 전설로서 사랑의 정의(定義)를 가르쳐 주던 기억이 엊그제 같건만……아아, 영민씨, 영민씨! 한 마디라도, 단 한 마디라도 당신의 입으로부터 듣고 싶습니다. 운옥이라는 이름을…… 당신의 입은 어이하여 그처럼도 오랫동안 잊어 버리고 있나요? 무정하외다. 너무도 무정하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는데 제 정성이 모자라 한 사람의 인간을 움직이지 못했으니……

「유경이, 울지 말아요. 인제 그만 울어요.」

그러면서 영민은 자꾸만 우는 운옥이의 머리와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3[편집]

무서운 폭풍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영민의 눈은 다량의 초자체 출혈(硝子體出血)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래알같은 조그만 파편들도 초자체 속에 박혀 있었다. 수술을 베풀어 파편을 골라 내기는 하였으나 다른 병이 더치지 않더라도 二[이],三[삼]개월의 전치 기한을 예측했기 때문에 후방으로 이송하기로 영민은 되어 있었다. 일선으로부터 연달아 몰려드는 부상병들 때문에 자리가 좁은 탓도 있었다.

이튼날 오후, 영민은 신경(新京) 육군병원으로 이송되어 갔다. 트럭으로 상구까지 가서 기차로 서주에서 내린다. 서주서 진포선으로 바꾸어 타고 천진을 거쳐 신경으로 가는 것이다.

운옥은 요시다 위생병을 중간에 내세워 각별한 알선으로 상구까지 가는 트럭에 편승하는 도움을 받았다 . 상구서 신경까지 기차로 가는 도중에서도 수송관의 호의를 얻어 앞 못 보는 영민을 간호해도 무방하다는 승락을 받았다. 그러한 호의에 보답하기 위하여 다른 부상병들의 잔자부런한 심부름도 들어 주었기 때문에 운옥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병사들의 마음의 꽃송이가 되어 버렸다.

천진을 지날 무렵에 영민은 귀가 한결 잘 들린다고 말하면서 인젠 손바닥에 글을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하였을 때 운옥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도 분간할 수 있겠어요?」

「어디가요. 간신히 말을 알아 들을 뿐이지요.」

영민의 청각이 새로와짐을 따라 영민의 촉각도 차츰차츰 예민해 갔다. 고생 때문에 거칠어지고 커진 것이라고 단정했던 유경이의 손을 만질 적마다 영민의 촉각은 의혹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어딘가 분위기가 옛날의 유경과는 다른 것 같았다. 애를 나면 처녀시대와는 딴판의 분위기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그 보다도 유경의 성격의 변화가 한층 더욱 심한것 같았다. 자기를 만나 보러 일선까지 찾아 온 사람 치고는 너무나 열이 없고 소극적인 유경의 태도가 마음에 걸린다. 말이 적고 자꾸만 침울해 지고…그것 역시 애를 낳기 때문에 생리적 변화를 일으킨 까닭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딴판의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원인이 영민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호된 폭음과 폭풍의 세레를 받고 쓰러졌던 까닭에 자기의 모든 감각이 정상적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유경을 침울에서 건지기 위하여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네, 하세요. 그 운옥이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좀 더 듣고 싶어요.」

「그래서 말이지요. 백년 해로할 사람으로 하늘같이 믿고 있던 사나이가 최후의 선언을 남겨 놓고 훌쩍 집을 떠나 버렸으니 운옥이의 슬픔이 오죽 했겠어요. 그날 밤 운옥은 예배당 야학 졸업식에서 절망 끝에 그만 애국가를 불렀답니다. 그것이 화가 되어 동리 청년 하나가 도라지탑 옆에서 잠복해 있다가 운옥의 애정을 무서운 협박으로서 강요 했답니다. 그러나 운옥은 머리에 꽂았던 은장도로 그 청년의 눈을 찌르고 그날 밤으로 집을 떠나 정처없는 유량의 길손이 되었지요. 가엾은 여자, 불쌍한 운옥이랍니다.」

「그런 사람을 왜 영민씨는 그처럼……」

「아까도 말한 것처럼 운옥은 어디까지나 나의 존경하는 누님으로서의 사랑과 애정을 느껴 왔을 뿐 한 사람의 이성으로서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운옥이의 세계에서 뛰쳐 나온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좀더 나이가 찰 때까지 운옥이의 곁에 있었다면, 그리고 나의 눈 앞에 유경이라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었다면……」

영민은 거기서 후딱 말을 끊고 상대편의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려는 것처럼 얼굴을 약간 운옥의 앞으로 내밀었다.

「괜찮어요. 어서 이야길 하세요.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운옥은 전신의 신경을 오로지 눈동자에 모아 열심히 영민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만일 그랬더라면 나는 결국 운옥이와 결혼을 했을 꺼야요.」

「………」

오오! 운옥은 입을 열어 자기의 감탄사를 영민에게 있는 그대로 들려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도 원망스러웠다. 자기의 그 격렬한 감동의 한 마디는 필경 영민으로 하여금 의혹의 념을 품게 하는 결과를 맺을 것이 아닌가.

용솟음치는 행복이 운옥의 창백했던 혈관 속을 화려하게 감돌기 시작하였다. 짙은 홍조가 운옥의 파리한 두 볼을 소녀처럼 물을 들였다. 사람의 눈이 없었던들 운옥은 영민의 품 안에 안겨 들어 행복의 울음을 싫도록 울었을런지 몰랐다.

「보람이 있었다!」

그렇다. 수난의 여인 운옥의 삶의 보람이 마침내 있었던 것이다.

4[편집]

「유경이, 왜 말이 없소? 감정을 상했소?」

영민은 그러면서 운옥의 손을 가만히 더듬어 잡았다.

「아아뇨! 행복해서……행복해서 말을 잊었어요!」

영민에게 잡힌 손이 가늘게 경련을 하다가 이번에는 자기 편에서 대담하게 영민의 손가락을 힘껏 한번 쥐어 보았다.

장대한 손이었다. 귀여워서, 만져보고 쓸어 보고하던 어렸을 때의 그 조그맣던 장난 꾸러기의 손이 이처럼도 살이 붙고 뼈가 굵은 줄은 정말로 몰랐던 운옥이었다.

영민을 데리고 산 나물을 캐러 가서 흙에 더럽힌 손을 시냇물에 씻어 주며

「아이, 손등에 흠집이 왜 났을꼬?」

준길이 「 자식이, 준길이 자식이 도리지탑 앞에서 돌맹이루……」

그러면서 자기의 무력함을 부끄러워 하던 한 토막의 낡은 기억을 운옥은 사랑하는 것이다.

일찌기 이렇게도 화려한 행복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운옥이기 때문에 영민의 고만한 호의까지도 운옥에게는 한낱 허황한 꿈인 것만 같았다.

「아까 운옥이가 도라지탑 앞에서 욕을 보았다고 그러셨는데, 도라지탑이란 무언가요?」

운옥은 그런 것을 물어 봄으로서 현재의 행복을 연장시켜 보려는 것이다.

「아, 참 좋은 걸 물었소. 유경인 아다미에서 부부암의 전설을 이야기 했지만 도라지탑의 전설에 비하면 문제가 아니랍니다.」

「그럼 도라지탑에두 무슨 그런 전설이 있는가요?」

「아주 재미있는 전설이 있지요.」

「무언데 그리도 재미가 있을까?」

「옛날도 옛날, 태극령 고개 위에 태극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에선 해마다 四[사]월 八[팔]일만 되면 탑돌이를 했대요.」

「탑돌이가 뭔데요?」

「탑을 삥삥 돌면서 동리 처녀들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하는 것이야요.」

「옳―아, 탑 돌이!」

「그 처녀들 가운데 도라지라고 부르는 고은 처녀가 있었다구요.」

「도라지! 이름이 참 이뻐요.」

「그런데 그 도라지라는 아가씨가 태극사에서 도를 닦고 있는 젊은 중을 사모했대요. 법월이라는 중인데요.」

「버버리라고요?」

「아니요. 말 못하는 버버리가 아니고요. 법법 자, 달월 자, 법월이 말이야요.」

영민은 운옥이에게 들은 고대로의 말투로 도라지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오, 법월이!」

「사랑의 처녀 도라지는 법월을 한번 만나 볼려고 매일밤처럼 태극사를 찾았으나 도를 닦는 승려의 몸이라, 도라지의 애정을 알고도 모르는 척했데요.」

「아이, 박정두 하지.」

「그런데 어느 날 늙은 주지가 법월을 불러 놓고 하는 말이, 네가 이 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는 필시 몸을 망칠테니 내일이라도 곧 이 태극사를 떠나라구요.」

「아이, 주지두 너무 하지.」

「하는 수 없이 법월은 태극사를 떠나고, 그런 줄도 모르는 도라지는 매일 밤처럼 법월을 만나 볼까 태극사를 찾아 오고……그러던 어느 날 밤, 도라지가 생각하기를, 태극사가 불이 나면 법당에서 공부를 하던 법월이가 뛰어 나오려니, 그렇게 생각하고 태극사에 불을 놓았다구요.」

「아이, 가엾어라!」

「그러나 벌써 떠나 버린 법월이가 나타날 리는 만무하지요. 그래서 태극사는 죄다 불 타버리고 도라지 생각과는 달리 돌탑 한 기둥만 댕그라니 뜰 안에 남았다구요.」

「그 탑이 지금도 있나요.」

「있지요. 도라지 탑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까요. 도라지는, 불쌍한 도라지는 댕그라니 남은 돌 탑 앞에서 十[십]년 동안을 기다렸다구요.」

「법월이가 오기를 말이예요?」

「그럼요. 그러다가 마침내 도라지는 배리배리 말라 죽었대요. 그래 동리 사람들이 하두 딱해서 도라지의 시체를 돌 탑 앞에 묻었다구요.」

「불쌍한 도라지!」

「불쌍한 도라지요. 그런데 도라지를 파묻은 장소에서 보오얗게 보라빛이 도는 꽃이 한 송이 곱게 피었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꽃을 도라지 꽃이라고 불렀구요.」

「오, 그래서 도라지 꽃이구먼요.」

「그럼요. 그런데 법월이가 훌륭한 도사가 되어서 돌아와 보니, 도라지가 그 모양이 되지 않았어요? 법월은 하두 기가 막혀 대성통곡을 하면서 무덤을 파 보았더니 도라지 뿌리가 꼭 사람의 모양을 했더라구요. 배리배리 말라 죽은 도라지와 꼭 같더라구요.」

「어쩌면……」

「그래서 법월은 그 뿌리를 캐어 가지고 조선 八[팔]도 방방곡곡에 심어 놓았대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는 도라지꽃이 많다구요.」

「아이, 참 불쌍한 도라지!」

「어때요? 부부암의 전설 보다도 더 재미 있지요?」

「아주 재미 있어요.」

「이 전설은 아까 말한 그 운옥이에게 들은 것이랍니다.」

「네, 그러서요?―」

운옥은 행복하다. 얼마만의 행복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