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3권/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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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요[편집]

1[편집]

신경에 도착한지 보름 만에 영민은 눈에 감았던 붕대를 뗐다.

「어렴풋이 보여요. 유경이의 자태가 어렴풋이 보입니다.」

매일처럼 면회를 오는 운옥이었다. 그러한 운옥에게 어떤 날 영민은 그런 말을 하면서 무척 기뻐하였다.

다리도 거지반 나아 가고 귀도 한층 더 잘 들리었다. 양 옆구리에 나무 다리를 짚고 영민은 병원 마당을 걸을 수가 있었다.

어떤 날 영민은 면회 온 운옥이의 부축을 받아 한창 무성해 가는 느티나무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유경이의 모습이 뿌우옇게 나타난 사진처럼 보여요. 어서 안경을 장만해 써야겠소.」

그리면서 영민은 나무 아래 놓인 벤취 위에 걸터 앉았다.

영민의 눈이 보이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너무 똑똑히 보이는 날이 운옥은 두려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거 봐요, 유경이.」

영민은 운옥의 팔 소매를 잡아 댕겼다.

「오(늘) 아침 의사가 와서 하는 말이, 인제는 물체가 어렴풋이 보일 꺼라고 하기에, 안 보인다구, 통 보이지 않는다구 그랬소.」

「왜요?」

「잠자코 내 말을 들어 봐요. 저번 날 꿈에 내가 제대를 해서 탑골동 집에 가 있었다구 그랬지요?」

「네.」

「그 생각이 불쑥 났답니다. 나는 제대를 할 생각이야요.」

「제대라구요?」

「보이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다구 그러면 되지 않아요.」

「아,―」

운옥은 놀라면서도 한편 영민의 생각을 신통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니까 유경이도 말을 삼가서 해요. 나는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다고 완강히 주장할테니까요.」

「그러셔요, 그러셔요!」

운옥은 영민의 생각에 찬성하였다.

「내 죽엄의 의의를 규명하지 못하는 전쟁터에 또 다시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것은 실로 좋은 생각이었다.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 가서 유경이, 우리 곧 결혼식을 지냅시다.

응?」

영민은 운옥의 손을 다사롭게 더듬어 잡았다.

「아, 전, 결혼식을……」

운옥은 눈 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아아, 저 원망스러운 푸른 하늘이 이처럼 도 가혹하게, 이처럼도 무자비하게 학대를 받고 있는 허 운옥의 운명을 언제까지나 저렇게 무심하게, 언제까지나 저렇게 무신경하게 내려다만 보고 있어도 과연 무방할 것일까?

「유경이가 금동일 안고 내가 그 금동일 달래면서 우리 한번 멋드러진 결혼식을 지냅시다. 응?」

어린애를 안고 결혼식을 지낸다?―운옥의 인생관으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이야기를 어린애와도 같이 토하는 영민을 운옥은 눈이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뜨고 머엉하니 쳐다보면서

「하늘이여, 운명의 신이요, 얼마든지 저를 괴롭혀 주셔도 좋습니다. 제가 즐겨 택한 괴로움이오니, 이 괴로움 속에서 숨이 막혀 영원히 질식할 수 있다면 운옥의 행복이 예서 더 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운옥은 입을 악물고 하늘을 우러러 공손히 마음으로 합장을 하며 그 한 마디를 떠들지 않고 신명에게 조용히 보고를 하였다.

「유경이, 왜 말이 없소? 나는 이처럼도 기쁜데 유경인 왜 기쁘다는 말 한마디도 없소?―」

아무리 생각해도 영민은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옛날 같으면 이런 때 곧잘 명랑한 「윗트」로서 영민을 즐겁게 하여 주던 유경이건만 오늘의 유경은 어이하여 이처럼도 입이 무겁고 침울해 졌는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육체적으로 보나 정신적으로 보나 오늘의 유경은 옛날의 유경과는 전연 다르다. 한 사람의 처녀가 해산을 하고 나면 생리적으로 나 정신적으로나 이처럼도 욱심한 변모를 일으키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영민은 약화된 시력에 전신경을 모으며 핀트가 맞지 않은 사진처럼 희미한 운옥의 자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딘가 다른것 같다! 어딘가 분위기가 확실히 옛날의 유경이와는 다른것 같다……」

영민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유 모를 전율로 말미암아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유경이!」

영민은 이번엔 청각으로나 상대자의 정체를 알아 보려고 유경일 불러 놓고 귀를 솔깃히 기우렸다.

「네?―」

그러나 그 간단한 한 마디로는 좀체로 음성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언제든지 말을 절약해서 하는 유경의 의도를 영민은 점점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유경이, 손을, 손을 주어요.」

운옥은 대답은 없이 자기 손을 영민의 손에다 쥐여 주었다. 손, 팔, 얼굴, 등 할것 없이 영민은 조심스럽게 운옥의 육체를 더듬어 본다. 더듬어 보면서 영민은 한 발 한 발 이유 모를 의혹의 연못 속으로 끌리어 들어 가고 있었다.

2[편집]

신경 거리에 녹음이 짙다. 유월 하순 어느 날 오전이었다.

「안 보일 리가 없을 텐데……」

초자체 속에 충만하였던 충혈도 인젠 충분히 흡수가 되었을텐데 환자는 통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군의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탁성 야전병원에서 회송되어 온 수술 카―드를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그것에 의하면 초자체 속에 들어 박혔던 모래알같은 파편 세 개를 끄집어 냈다는 것이다.

군의는 귀찮어 수정체(水晶體)나 혹은 초자체(硝子體) 주벽(周壁)에 또 다른 무슨 원인 모를 고장이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두고 보자고 하였다.

고막천공은 거지반 회복되어 음성을 명확히 분간할 수가 없을 따름이지, 알아 듣기에는 그리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치유되었다.

맹관파편상도 거의 치유되어 나무 다리에만 의지하면 원거리에도 그리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七[칠]월 중순 경에 영민의 눈은 원인 불명의 고장으로서 당분간 치유의 희망이 없다하여 제대의 수속이 밟아지고 있었다.

그 즈음 운옥은 고민의 구렁지 속에서 딩굴고 있었다. 영민의 시력이 차츰차츰 회복이 되어 오늘 내일 잘못하면 영민이가 운옥의 정체를 알아 볼는지도 모르는 파탄의 날이 당도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정체가 탄로나 기 전에 영원히 영민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말까……그러한 생각을 운옥은 골돌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가 없어져 버린 때의 영민의 그 절망과 비탄의 경지를 상상해 볼 때, 운옥은 단 한번이라도 더 영민을 만나서 그의 기쁨과 행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 마음에 흡족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한번만…, 한번만 더」

하고 운옥은 영민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러던 어떤 날이었다.

「유경이, 기뻐해요! 제대의 수속을 밟고 있답니다.」

예의 그 느티나무 아래서 영민은 자기의 계획이 거지반 성공되어 가는 것을 무한히 기뻐하였다.

「적어도 한 주일 이내에 제대가 될 것이야요.」

「아이, 어쩌면……」

운옥도 진심으로 그것을 기뻐하였다.

「그런데 눈은?……」

「그런데 눈은 더 한층 잘 보이지요.」

그러면서 영민은 운옥을 앞에 세우고 두 손으로 운옥의 얼굴 모습을 찬찬히 더듬어 보다가 돌연

「응?……」

하고 외쳤다.

그 순간, 운옥은 무의식 중에 영민의 더듬는 손을 뿌리치고 홱 얼굴을 돌려 버렸다.

올 것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고 결단성을 내리지 못하고 만나러 왔던 오늘이 마침내 운옥의 가면을 벗겨 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불우의 여인 허 운옥의 삶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는지, 또는 더 한층 불행한 운옥을 만드는 원인이 될는지, 그것은 누구나 가 그리 홀홀히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앗, 운……운……운옥이가 아닌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 같은 놀람을 영민은 놀라는 것이다.

「아, 운, 운옥이다! 운옥이다!」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영민은, 두 손으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우고 영문을 향하여 쏜살같이 뛰어 나가고 있는 운옥의 뒤를 부리나케 쫓아 갔다.

「운옥이! 운옥이!」

그러나 나무 다리를 짚은 영민으로서는 도저히 운옥의 뒤를 따를 수가 없었다.

소노 온나오 츠카마헤데 「 ㆍ ㆍ ! 소노ㆍ온 나오ㆍ츠카 마 마 헤데ㆍ구다사이! (그 여자를 붙들어! 그 여자를 붙들어 주시요!)―」

영민은 후딱 생각이 나서 위병소를 향하여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위병소에서 두 사람의 위병이 뛰쳐 나왔다. 뛰쳐 나오면서 두 손을 벌리고 운옥이의 앞에 우뚝 막아섰다.

3[편집]

느티나무 아래로 영민은 다시 운옥을 끌고 왔다. 아니, 영민은 앞 못 보는 맹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위병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운옥은 얼른 발걸음을 돌려 허벙지벙 따라오는 영민의 손을 잡고 다시금 사람의 그림자가 드문 느티나무 아래로 돌아왔다.

「운옥이, 이게, 이게 대체 웬 일이요?―」

영민은 흐늑흐늑 느껴 우는 운옥을 와락 부여안고 꿈결처럼 외쳤다.

「운옥이, 운옥이!」

영민은 자기 품에 어린애 처럼 매어 달려 무섭게 울고 있는 운옥의 어깨를 역시 무섭게 흔들어 댔다.

「운옥이, 이게 꿈이 아니고 정말로 생시요?…… 운옥이, 보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소! 운옥이! 아아, 운옥이!―」

영민은 운옥의 몸뚱이가 오그라질 듯이 힘차게 끌어 안으며 파동치는 운옥의 어깨를, 등을 미친 듯이 쓰다듬어 주었다.

「운옥이, 실컷 울어요! 이 무정한 사나이를 실컨 원망해요!」

영민이도 운다. 눈물이 자꾸만 쏟아져 견딜 수가 없다.

「아, 아니야요! 제가 왜……제가 왜 영민씨를 원망할까요? 그저…… 그저 한번만…… 한번만 뵈옵고 싶어서……」

운옥은 영민의 품 안에 얼굴을 부비면서 너무나 커다란 설움에 억해진 외마디 대꾸를 간신히 하였다.

그렇다. 실컷 실컷 울어 보자. 一[일]년이고 二[이]년이고 이 탐스러운 품 안에서 울고 울다가 그대로 죽어 버리면 운옥은 행복하다.

「운옥이, 운옥이!」

영민도 자꾸만 운다.

「무정한 사나이! 운옥의 마음이 이렇듯 간절했건만 이 무정한 사나이는 그것을 조금도 몰라 주었소. 五[오]년 동안의 긴 세월을 두고 운옥은 이렇듯 나를, 나 만을 생각해 주었구려! 자세히는 모르지만두 관헌에게 쫓기는 몸으로서 온갖 세고와 갖은 풍파를 다 겪어 가면서 오직 나 혼자 만을 생각하고 살아 온 운옥의 외로움을 생각할 때, 아아, 운옥이, 운옥이!」

「영민씨, 영민씨도 저같은 사람을 위해서 울어 주시나요?」

「운옥이, 무슨 말을……무슨 말을……」

「분에 넘치는 행복을 이대로 받아도 죄가 되지 않을까요?……」

운옥으로서는 정말 너무나 과분한 행복이었다.

「무슨 말을 운옥은……」

영민은 눈물 젖은 얼굴로 창공을 우러러 보면서

「아아, 하늘이여! 운옥의 이 거룩하고도 위대한 사랑 앞에 영민은 무엇을 하면 좋습니까? 가르쳐 주십시요. 가르쳐 주시는 대로 영민은 무엇이라도 하겠읍니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읍니다! 이몸이 죽음으로서 이 거룩한 여인의 애정에 보답할 수 있다면, 영민은 죽겠읍니다. 능히 죽을 수 있읍니다!」

「영민씨, 영민씨! 무슨 말씀을……무슨 그런 송구하신 말씀을……」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거룩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영민의 입으로부터 서슴치 않고 흘러 나오는 것을 보니 순간, 운옥은 실로 하늘의 높이와 지구의 넓이를 가지고도 감히 측량할 수 없는 무한대(無限大)의 행복속에서 영원히 질식해 버릴것 같은 현기증을 일으켰다.

눈 내리는 겨울 밤, 도라지의 불쌍한 운명에 눈물짓던 소년 백 영민의 순정과 자비심이 최대한으로 발로하는 성스러운 순간이다.

4[편집]

「운옥이!」

「예?」

「운옥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무엇이라고…… 아무런 것도, 아무런 것도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저 한번 뵙구 싶어서……먼발치라두 한번 바라보구 싶어서……그래서, 그래서 왔던 것이…… 이처럼 혹독한 부상을 받으셨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로, 정말로 발길이 돌아 서지가 않아서……」

운옥도 자꾸 울고 영민도 자꾸 운다.

「운옥이!」

「예?」

「나는 운옥을 위하여 무엇이라도 할 수 있소. 아니, 무엇이라도 해야만 하겠소.」

영민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운옥을 꽉 부여잡고 놓지를 않는다.

「아니야요. 아니야요. 아무런 것도 하시지 않아도 괜찮으셔요! 영민씨의 그 말씀만 들어도 저는, 저는 숨이 막힐것처럼 행복한데요. 저는 영민씨에게 아무것도 요구하는 것이 없어요. 제가, 제가 무엇이기에 영민씨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을까요?」

「아니요, 아니요! 나는 지금 운옥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지 않고는 견뎌 배길 수가 없소!」

「아니야요. 저같은 사람을 지금껏 잊어 버리지 않으시고 기억해 주신 것만이 그저 황송하구 송구해요.」

그러면서 운옥은 두 손으로 영민의 장대한 품 안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보며

「아아, 벌써, 이처럼 크셨나요? 운옥은 정말 꿈인 것만 같습니다.」

거위 배를 쓸어 주던 때만 해도 알린알린 갈빗대가 들어나 보이던 소년의 잔 뼈가 이제는 꼭 어른들처럼 굳어져 있지 않는가. 아아, 이처럼도 탐탁하고 믿음직한 품 안이 그처럼도 외롭고 거치럽던 유랑의 여인 허 운옥이의 몸을 이렇게도 다사롭게 품어 줄줄은 정말로 꿈 밖이었다.

「영민씨는 저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하시지 않아도 좋아요. 이 행복은 너무 커서 내일 아침 자고 깨면 꼭 꿈일 것만 같아서 그것 만이 저는 무서워요.」

그 말에 영민은 한층 더 힘을 주어 운옥을 꽉 껴안으면서, 자기의 이 사소한 호의가 이처럼도 운옥을 행복하게 하는가?……를 생각하니 영민은 지나간 날의 자기의 냉정이 쓰라리게 가슴을 쳤다.

「운옥이, 인제 절대로 내 옆을 떠나지 말아요. 아까처럼 나를 버리고 달아 나지 말아요. 운옥이가 달아나면 나는 일생을 두고 단 하루라도 마음 편한 날을 가지지 못할 것이예요.」

그리고 이번에는 운옥의 몸을 온 정렬을 가지고 굳세인 포옹의 자세를 취하면서

「운옥이!」

하고 마치 열병환자처럼 운옥을 불렀다.

「예?」

「내일 아침 깨어도 오늘의 이 순간이 꿈이 되지 않도록 영민은 노력하겠소 그리고 그것이 운옥의 . 행복을 연장시키는 단 하나의 방법임을 나는 알았소.」

그러면서 영민은 이 세상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성스러운 온갖 정열을 부어 운옥이의 입술에다 입을 맞추었다.

오랫 동안, 오랫동안 입을 맞추었다.

「운옥이!」

「………」

운옥은 대답을 잃었다.

「운옥이!」

「………」

운옥은 대답이 없다.

영민은 눈을 가만히 감고 있는 운옥의 귀에다 입을 바싹 갖다 대고 열에 떠서 잠꼬대처럼

「운옥이! 나는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았지요. 내가 만일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였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하고요.

그러나 거기 대한 회답을 나는 발견하지 못 한채 그 데리케이트한 감정의 분석(分析)을 단념하곤 하였지요. 맑고 맑은 공기처럼 정화(淨化)된 거룩한 감정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광적(狂的)인 야욕과의 무서운 투쟁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상극도(相克圖)……아, 운옥이!」

「………」

「운옥이, 내 말을 잘 들어요!」

「………」

「꿈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테니 운옥이, 그건 조금도 염려 말아요.」

「………」

「어째 그러냐고요? ─ 운옥이!」

「………」

「이제 내가 제대가 되거든 곧 탑골동으로 돌아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우리 길이 같이 행복하게 살아요, 응?…… 태극사의 도승 법월은 불쌍한 도라지를 영영 죽여 버리고 말았지만……운옥이, 운옥은 절대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도라지의 운명을 걺어 져서는 아니 돼요! 운옥이!」

「………」

그러면서 영민은 차츰차츰 무거워져 가는 자기 팔에 더 한층 힘을 주었다.

「아, 운옥이?……」

그렇다. 이 너무나 커다란 행복 속에서 운옥은 그만 정신을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