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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단의 비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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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문에서부터

어둔 깊은 밤! 지옥길 같이 무섭고 어두운 중국 봉천의 깊은 밤!

상호는 이때까지 벽 밑에 숨어 서서, 악한들이 들어갈 때마다 하는 짓을 보고 배워 가진 암호 한 가지만 믿고, 순자를 구해 낼 욕심에 전후 위험을 생각할 사이도 없이 뛰어가서 그 마귀의 굴 같은 괴상한 벽돌집의 무거운 대문을 똑똑똑 일곱 번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안에서는 문지기 놈이 일곱번 치는 암호가 틀리지 않는 것을 믿고 문을 여느라고 덜컥덜컥 소리가 들리므로, 이제는 악한과 얼굴을 마주치케 될 것을 생각하고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일곱 번 두드리는 암호가 맞아 문을 열기는 하지마는 얼굴을 마주 대하면 당장에 탈이 날 것이니, 이 급한 경우에 어째야 좋을까 하여 저편 벽 밑에 몸을 움츠리고 서 있는 기호는 상호보다 더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습니다.

덜그럭덜그럭 마귀굴의 그 무겁디 무거운 문이 열리고 컴컴한 속에서 귀신 대가리같이 시꺼먼 얼굴이 쑥 나왔습니다. 들키느냐 죽느냐 하는 판이라 벽 밑에서 보고 있는 기호도 몸이 움찔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슴이 덜덜 떨리었습니다.

상호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두 손을 내밀어 왼손 주먹 위에 오른손 두 손가락을 얹어 두 번째의 암호를 해 보이려 하다가 별안간 튀어 나가는 총알같이 휘딱 뛰어서 뒤로 댓 걸음 물러서 별렀습니다.

내다보던 문지기 놈은 무언지 눈앞에 섰던 놈이 전기에 찔린 것같이 휘딱하고 없어지므로 이상히 여기어 등불을 들고 쫓아 나왔습니다. 나와서는 등불을 쳐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찾는데 그때 물러서서 벽돌집에 박쥐같이 착 붙어 있던 상호가, 다시 번개같이 날아서 달려들어 그 놈을 얼싸안고 엎드렸습니다. 그러고는 몸과 두 다리로 그놈의 몸을 누르고 손으로 주둥이를 내리막아 눌렀습니다.

원래 어려서부터 곡마단 왜광대로 길러진 상호의 솜씨라 어떻게 번갯불같이 날쌔게 들이쳤는지, 별안간 습격을 당한 문지기는 미처 정신 차릴 사이도 없이 엎혀 눌려 가지고 사지를 버둥버둥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꼴을 보고 있던 기호가 뛰어나와서 둘이서 그놈을 끊는 물에 삶아 낸 것같이 기운을 죽여 가지고, 우선 저편 기호가 숨어 있던 어두운 벽 밑으로 끌고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