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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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新版)「흥부전(興甫傳)」[편집]

일곱시가 거진 되어서 정주사는 탑삭부리 한참봉네 싸전가게를 나섰다.

장기는 세 판을 두어 두 판은 이기고 한 판은 지고 해서, 삼판 양승으로 정주사가 개선가를 올렸다.

그러나 장기는 이겼대도, 배는 부르지 않았다.

또 마지막에 탑삭부리 한참봉의 차(車) 죽은 것을 물려 주지 않아서, 그래 비위를 질러 놓기 때문에 쌀 외상 달란 말도 내지 못했다.

정주사는 정말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천천히 콩나물고개로 걸어가고 있다.

시방 싸전집 아낙 김씨가 하던 말을 되생각하면서, 그가 꼭 그렇게 합당한 신랑감을 골라 중매를 서주려니 싶어 느긋이 좋아한다. 우선 배야 고프고 당장 저녁거리야 없을망정 그것 하나만은 퍽 든든했다.

그놈의 것, 기왕이니 내일이라도 혼담이 어울려, 이달 안으로라도 혼인을 해치웠으면 더 좋을 성싶었다.

그러기로 들면 적으나마 혼수비를 무엇으로 대며, 또 초봉이가 지금 다달이 이십 원씩이나 물어 들이는 그것마저 끊길 테니, 이래저래 두루 걱정은 걱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딸자식이 벌써 스물한 살인데 계집애로 늙히자고 우두커니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무 때 당해도 한 번은 당할 일인 걸, 늦게 한다고 어디서 돈이 솟아날 바 없고 하니, 그저 이 계제에 바싹 서둘러서 아무렇게나 해치우는 게 도리는 도린데…….

도리는 도린데, 그러나 당장 조석을 굶고 있는 형편에 무슨 수로? 냐는 데는 그만 궁리가 딱 막혀 가슴이 답답해 온다. 하다가 문득,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참으로 문득, 이런 생각이 훤하니 비치더란 말이다.

"혹시……? 응, 응…… 그래!"

물론, 그것이 점잖은 터에 자청해서 말을 낼 수는 없지만, 저쪽 신랑 편에서 혼수 비용 전부를 대서 혼인을 하겠다고 할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좀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형편이다.

"원 어디 그럴 법이야 있나!"

이렇게쯤 중매 서는 사람한테든지, 혹은 직접 신랑 편 사람한테든지, 낯닦음으로 사양을 해보다가 못 이기는 체하고 응낙을 하고, 하면 실없이 괜찮을 노릇이다.

그렇게 슬슬 얼버무려 혼인을 하고, 혼인을 하고 나서는 그 신랑이라는 사람이 속 트인 사람이고, 돈냥이나 제 손으로 주무르는 형편이면, 또 혹시 몇백 원이고 몇천 원이고 척 내주면서,

"아 거 생화도 없이 놀고 하시느니 이걸로 무슨 장사라도 소일삼어 해보시지요?"

이러랄 법도 노상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애 초봉이가 그렇잖은 아이니까, 제 남편더러 그렇게 해달라고 조르기라도 할는지 모르는 것…….

그래 저희들이 그런 소리를 하거들랑 짐짓,

"원, 그게 될 말이냐!"

고,

"그래서야 내가 돈에 욕기가 나서 혼인을 한 것이 되지 않느냐?"

고 준절히 이르다가 그래도 저희들이며 옆엣사람들이 나서서 무얼 그러느냐고 권면은 할 테니까, 그때는 못 이기는 체하고 그 돈을 받아…… 한밑천삼아서 장사를 해…… 미상불 그렇게 어떻게 잘만 하면 집안 셈평도 펼 수도 있기는 있으렷다!

정주사의 이 공상은 이렇듯 그놈이 바로 희망으로 변하고, 희망은, 희망이 간절한 만큼 다시 확신으로 굳어 버리던 것이다.

'둔뱀이'는 개복동보다도 더하게 언덕비탈로 제비집 같은 오막살이 집들이 달라붙었고, 올라가는 좁다란 골목길은 코를 다치게 경사가 급하다.

'흙구더기'까지 맞닿았던 수만 평의 논은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집이 들어앉고 그 한복판으로 이 근처의 집 꼬락서니와는 얼리지 않게 넓은 길이 질펀히 뻗어 들어왔다. 그놈을 등 너머 신흥동으로 뽑으려고 둔뱀이 밑구멍에 굴을 뚫을 계획이라는데, 정주사네 집은 바로 그 위에 가서 올라앉게 되었다. 그래 정주사는 굴을 뚫다가 그놈이 혹시 무너져서 집이 퐁당 빠지기나 하는 날이면, 집이야 남의 셋집이니 상관없지만 집안의 사람들이 큰일이라고 슬며시 걱정이 되는 때도 있다.

정주사는 집 가까이 와서 비로소, 번화할 초봉이의 혼인과 및 그 결과 대신, 오도카니 굶고 있을 집안 식구들을 생각하고는 맥이 탁 풀린다.

그러나 그는 지쳐 둔 일각대문을 힘없이 밀고 들어서다가, 뜻하지 않은 광경을 보았다. 초봉이가 부엌에서 밥을, 죽도 아니요 적실히 밥을 푸고 있고, 계봉이는 밥그릇을 마루로 나르고 있지를 않느냔 말이다.

오늘은 정주사한테 액일도 되지만, 좋은 일도 없지는 않은 날인가 보다.

밥이야 어인 밥이 되었든, 정주사는 밥을 보니 얌체없는 배가 연신 꼬로록거리고, 오목가슴이 잡아 훑듯이 쓰리다. 어금니에서는 어서 들어오라고 신침이 흥건히 흘러 입으로 그득 괸다. 대문 소리에 계봉이가 돌려다보더니,

"아이, 아버지 들어오시네……."

해뜩 웃으면서 방으로 대고,

"……병주야 병주야, 아버지 오셨다, 아버지 오셨어!"

연신 소리를 친다.

계봉이의 뒤통수에서는 몽땅하게 자른 '뽐' 단발이, 몸을 흔드는 대로 까불까불한다. 정주사는 이 까부는 단발과 깡총한 치마 밑으로 퉁퉁한 맨다리가 드러나 보이는 것이 언제고 눈에 뜨일 때마다 마땅치가 못해서 상을 찌푸린다.

초봉이가 밥을 푸다 말고 반겨 부엌문을 나서면서,

"아이, 아버지!"

하다가 부친의 초졸한 안색에 얼굴이 흐려진다.

"……시장허실 텐데!"

"오냐, 괜찮다."

정주사는 눈을 연신 깜작깜작, 대답을 하면서 대뜰로 올라서는데, 미닫이를 열어 논 안방에서 막내동이 병주가 퉁탕거리고 뛰어나온다.

"아버지이, 이잉……."

노상 흘려 두는 콧물에, 방금 울다가 그쳤는지 눈물 콧물을 온 얼굴에다 쥐어바르고 어리광으로 울상을 하면서 달려들어 부친에게 안긴다.

"오냐, 병주가 또 울구 떼썼구나?"

정주사는 손가락으로 병주의 콧물을 훑어다가 닿는 대로 마룻전에 씻어 버린다. 병주는 아직 얼굴에 남아 있는 놈을 부친의 그 알량한 단벌 두루마기에다가 문대면서 냅다 주워섬긴다.

"아버지 아버지, 내 양복허구, 내 모자허구, 내 구두허구, 내 자전거 허구, 또 내 빠나나허구……."

이렇게 정신없이 한참 외다가 비로소 헛다방인 것을 알고서,

"히잉, 안 사왔구만, 히잉 히잉……."

"오냐 오냐, 오늘은 돈이 안 생겨서 못 사왔으니 내일은 꼭 사다 주마. 자아 방으로 들어가자, 우리 병주가 착해."

달래면서 병주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고, 건넌방에서는 숙제를 하는지 엎드려 있던 형주가 그제야 고개를 내밀다가 만당 아무것도 사가지고 들어오지 않은 아버지는 나서서 볼 필요도 없던 것이다.

방에서는 부인 유씨가 서향한 뒷문 바투 앉아서 돋보기 너머로 바느질을 하느라고 고부라졌다. 유씨는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니면서 눈이 어두워, 돋보기가 아니고는 바느질을 한 코도 뜨지 못하던 것이다.

"시장한데 어딜 그러구 돌아다니시우?"

유씨는 올려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앉은 자리만 따들싹하는 시늉을 한다. 어디라니, 번연히 미두장에 갔다가 오는 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건 웬 거요?"

정주사는 초봉이가 또 월급을 선대받아 왔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고, 지금 유씨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바느질감이 들어온 덕에 그놈 바느질삯을 미리 받아다가 밥을 하느니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내가 해입구 시집갈려구 끊어 왔수."

유씨는 웃지도 않고 천연스럽게 실없는 소리를 한다.

"저 봐라! 병주야……."

정주사는 두루마기를 벗으면서, 다리에 매달려 이짐을 부리는 병주더러 한다는 소리다.

"……네가 말을 안 듣구 그러니깐 엄마가 시집가 버린단다! 응?"

"아냐, 거짓뿌렁야. 내 양복허구, 내 모자허구, 내 구두허구, 내 자전거허구, 그리구 빠나나랑, 얼음사탕이랑, 사다 준다구 하구 거짓뿌렁이만 하구, 잉……."

"내일은 정말 사다 주마."

"시타, 이잉, 또 거짓뿌렁할려구. 밤낮 거짓뿌렁만 허구."

병주는 앉은 부친의 무릎으로 기어올라 아래턱의 노랑수염을 훑으려 쥐고 잡아 흔든다.

"아프다, 이 자식아! 아이구 아이구……!"

정주사는 턱을 내밀고 엄살을 하다가,

"내일은 꼭 사다 주마, 꼭."

"거짓뿌렁이야."

"거짓뿌렁 않구 꼭 사다 주어, 꼭."

정주사는 속으로 너를 위해서라도, 네 큰누이의 혼인이 어서 바삐 그렇게 얼려야 하겠다고, 절절히 결심(!)을 더 했다.

"제호가 서울루 간답디다."

유씨는 초봉이한테서 이야기를 먼저 들었었다. 그리고 모녀간에는 벌써 합의가 되었었다.

"제호가? 서울루?"

정주사는 그다지 놀라질 않는다.

"……어째, 무슨 일루?"

"서울 가서 크게 장사를 시작한다구. 가게두 벌써 팔았답디다…… 그리구 우리 초봉이더러두 서울루 같이 가잔다구 헌다우."

"초봉이더러?"

이렇게 되짚어 묻는 말의 운이 벌써 마땅치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루 가면 월급두 한 사십 원씩 주마구, 또 객지루 혼자 내보내기가 집에서 맘이 뇌지 않는다면, 자기가 자기네 집에서 같이 데리구 있겠다구."

"거, 안 될 말……."

정주사는 서너 시간 전과도 달라 시방은 아주 흐뭇한 계획과 희망이 들어차서 있기 때문에, 서울이며 월급 사십 원쯤, 그런 소리는 다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월급은 사십 원 아니라 사백 원을 준다기루서니, 또 아무리 아는 친구의 집에 둔다기루서니, 장성한 계집애 자식을 어디 그렇게 함부루 내놓는 법이 있소? 나는 지금 예서 거기 다니는 것두 마땅찮은데……."

이 말은 노상 공연한 구실말은 아니다. 정주사는 마음먹은 혼인도 혼인이려니와, 가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섬뻑 서울까지 보내기를 많이 주저할 사람이다.

"그래두 내 요량 같아서는 따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집에다 둬선 무얼 하겠수? 육장 굶기기나 허구."

"그러니 어서 마땅한 자리를 골라서 여워 버려야지."

"말은 좋수……."

유씨는 시쁘다는 듯이 돋보기 너머로 남편을 넘겨다본다.

"……하루 한 끼 먹기두 어려운 집구석에서 무슨 수루 혼인을 허우?"

"그렇다구 계집애루 늙히나?"

"누가 계집애루 늙힌다우? 그렇게 가서 있으면, 제가 버는 것을 모아서라두 시집갈 밑천은 장만할 것이구, 또 제호 손에서 치어나면, 아따 무엇이라더냐, 시험을 보아서 장래 벌이두 잘하게 된다구 하니까, 두루두루 좋은 거린데, 왜 덮어놓구 막기만 허시우?"

"세상일이 다아 그렇게 맘먹는 대루만 되구 탈이 없으면야 무슨 걱정이야?"

"맘먹은 대루 안 될 것은 무엇 있수? 대체 십 년이나 없는 살림에 애탄가탄 공부를 시켰으니, 그런 보람이 있게 해야지, 어쩌자구 가난해 빠진 집구석에다가 붙들어만 두려구 드시우? 당신은 의관하구 다니면서 치마 둘른 날만치두 개명은 못 했습니다."

"그런 개명 부럽잖아…… 여편네가 얼개명한 건 되려 못쓰는 법이야."

필경 티격태격하면서, 보낸다거니 안 보낸다거니 서로 우겨 댄다.

오늘뿐이 아니라 언제고, 일이 이렇게든지 저렇게든지 끝장이 날 때까지는 둘이 다 지지 않고 고집을 세운다. 그러나 이 부부가 의견이 달라 가지고 서로 우겨 대다가, 필경 가서 누가 이기느냐 하면 영락없이 부인 유씨가 이기고 나선다.

그러니까 이번 일도 만일 달리 마새가 생기지만 않으면 초봉이는 마음먹은 대로 제호를 따라 서울로 가게 될 게 십상이다.

초봉이는 계봉이의 밥까지 수북하게 다 푸고 나서, 마지막으로 제 몫을 바라진 양재기에다가 반이나 될락말락하게 주걱데기를 딱 긁어 붙이고 솥에다 숭늉을 붓는다.

계봉이는 주걱데기를 시쁘게 집어 들면서 엄살하듯 한단 소리가,

"애개개! 요게 겨우 언니 밥이야?"

하나, 이건 그게 혹여 제 몫일까 봐서 꾀를 쓰는 소리.

"그 밥이 왜 적으냐?"

초봉이는 소댕을 덮고 부뚜막에서 일어선다.

"……너 아버지 진지랑 식잖게 뚜껑 덮었니?"

"시방 잡술 걸 뚜껑은 덮어선 무얼 해? 자아 인전 어서 국 퍼요."

"국은 불을 더 때야겠다. 아직 더얼 끓었어…… 나가서 뚜껑 찾아서 잘 덮어 봐라, 굳잖게."

초봉이는 물렸던 장작개비를 도로 지피고 불을 살군다.

"아이, 배고파 죽겠구먼. 언니두 배고프지?"

"나는 괜찮어."

"멀! 배고프문서두…… 언니 이따가 내 밥 같이 먹어, 응?"

"그래, 걱정 마라. 나는 누룽지두 훑어다 먹구 할 테니깐 네나 많이 먹구 배고프단 말 말아."

"그럼 머 인제 어머니가, 이년, 네 언니는 주걱데기하구 누룽지만 멕이구 너는 혼자서 옹근 사발엣밥 차구 앉어 고질고질 처먹구 있어? 이렇게 욕허게?…… 아이 참, 어머닌 나는 밉구, 언니만 이쁜가 봐? 그렇지? 언니."

"계집애가 별소릴 다 하네!"

초봉이는 웃으면서 눈을 흘긴다. 계봉이는 하하 웃고 부엌에서 뛰어나와 방으로 들어간다.

초봉이는 아궁이 앞에 앉아 지금 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고 있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돼가는가 해서 궁금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삐그럭 중문 소리에 연달아 뚜벅뚜벅 무거운 구두 소리가 들린다. 초봉이는 보지 않고도 그것이 승재의 발자국 소린 줄 안다.

초봉이는 승재와 얼굴이 마주쳤다. 승재는 여느때 같으면 히죽이 웃으면서 그냥 아랫방께로 갔을 것이지만, 오늘은 할말이 있는지 양복 저고리 포켓에다 손을 넣고 무엇을 찾으면서 주춤주춤한다.

초봉이는 고개를 돌이켰어도 승재가 말을 해주기를 기다린다. 그랬으면 초봉이도 그 말 끝에 잇대어 아까 가게에서 풍파가 났던 이야기도 하고…… 하면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둘이는 내외를 한다거나 누가 금하는 바는 아니지만, 딱 마주쳐서 어쩔 수 없는 때나 아니고는 섬뻑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버릇이 되었다. 한 것은, 가령 승재가 안에 기별할 말이 있다든지, 안에서 초봉이가 승재한테 무엇 내보낼 것이 있다든지 하더라도, 직접 승재가 초봉이한테, 또는 초봉이가 승재한테 해도 관계치야 않겠지만, 그러나 손아래로 아이들이 있는 고로, 다만 숭늉 한 그릇을 청한다 하거나, 내보내거나 하는 데도 자연 아이들을 부르고 아이들을 시키고 하기 때문에, 그게 필경 버릇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승재가 방을 세로 얻어 든 것이 작년 세안이라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둘이는 제법,

"나 승잽니다."

"초봉이어요."

이만큼이라도 말을 주고받기라도 하기는 금년 이월 초봉이가 제중당에 나가서부터다.

초봉이가 기다리다 못해, 그것도 잠깐이지만 도로 고개를 돌리니까, 승재는 되레 무렴해서 벌씬 웃고 얼른 아랫방께로 걸어간다.

초봉이는 승재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다 못 하고 저러나 싶어서, 그의 하던 양이 우습기도 하거니와 한편 궁금하기도 했다.

안방에서는…….

내외간의 우김질은, 아이들이 초봉이만 부엌에 있고 모두 몰려드는 바람에 흐지부지 중판을 메고 묵묵하다.

식구들은 누구나 다 말은 안 해도, 밥상이 어서 들어왔으면 하는 눈치다.

계봉이는 모친이 주름을 잡고 있는 남색 '벰베르크' 교직치마를 몇 번째 만져 보다가는 놓고, 놓았다가는 만져 보고 해쌓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리광하듯,

"어머니?…… 나두 이런 치마 하나만."

말은 해놓고도 고개를 오므라뜨리고 배식이 웃는다.

"속없는 계집애년!"

유씨는 돋보기 너머로 눈을 흘기다가 생각이 나서,

"……너는 네 형 혼자만 ꂛ겨 놓구, 이렇게 퐁당 들어앉어서 고따위 소갈머리없는 소리만 하구 있니?"

"다아 된걸, 머……."

계봉이는 그만 무렴해서 치마 만지던 손을 건사를 못 해한다.

"국두 더얼 끓었는데 다 돼? 본초 없는 것이, 어디서……."

계봉이는 식식 하고 웃목으로 가서 돌아앉아 버린다.

"요년, 냉큼 일어나서 나가 보지 못하느냐?"

"어이구 어머니두, 어머닌 내가 미워 죽겠나 봐?"

계봉이는 볼때기를 축 처뜨리고 울먹울먹, 발꿈치를 콩콩 구르고 마루로 나와서 부엌으로 내려간다.

그 볼때기하며, 계봉이는 성질도 그렇거니와 생김새도 형 초봉이와는 아주 딴판이다.

계봉이는 몸집이고 얼굴이고 늘품이 있다. 아무 데고 살이 있어서 북실북실하니 탐스럽다. 코가 벌씸한 것은 사람이 좋아 보이나, 처진 볼때기에는 심술이 들었다. 눈과 이마도 뚜렷하니 어둡지가 않다. 그러한 중에도 제일 좋은 것은 그의 입이다.

마음을 탁 놓고 하하 웃을 때면, 시원스럽게 떡 벌린 입으로 그리 잘지 않은 앞니가 하얗게 드러나기까지 하여, 보는 사람도 속이 후련하다.

초봉이의 웃는 입은 스러질 듯이 미묘하게 아담스럽지만, 계봉이의 웃음은 훤하니 터져 나간 바다와 같이 개방적이요, 남성적이다. 그런만큼 보매도 믿음직하다.

계봉이는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래잖아 초봉이의 남화(南畵)답게 곱기만 한 얼굴보다 훨씬 선이 굵고, 실팍한 여성미를 약속하고 있다.

이 집안의 사남매는 계봉이와 형주와 병주가 한 모습이요, 초봉이가 돌씨같이 혼자 딴판이다. 그러나 그 두 모습이 다 같이 정주사나 유씨의 모습은 아니다. 초봉이는 부계(父系)의 조부를, 계봉이와 형주 병주는 모계(母系)로 외탁을 했다.

초봉이는 부뚜막에 꾸부리고 서서 국을 푸다가 계봉이를 돌려다보다가 웃으면서,

"왜 또, 뚜― 했니?"

"나는 머 어디서 얻어다 길렀다나? 자꾸만 구박만 허구."

계봉이가 잔뜩 부어 가지고 서서 두런두런 두런거리는 것을, 초봉이는 그 꼴이 하도 우스워서 손을 멈추고 자지러지게 웃는다.

"깍쟁이가 왜 자꾸만 웃구 있어! 남 약올르라구."

"저 계집애가 왜 저래? 내가 무어랬니?"

초봉이는 그대로 웃는 얼굴이나, 부드럽게 타이른다.

"……이짐 부리지 말구 어서 아버지 진지상 가지구 들어가아…… 아버지 시장하시겠다. 너두 배고프다믄서 먼첨 먹구."

초봉이는 부친과 병주와 맞상을 본데다가, 국을 큰놈 작은놈 한 그릇씩 올려놓고, 그 나머지 세 오뉘와 모친이 먹을 국은 큰 양재기에다 한데 퍼서 딴 상에 올려놓는다. 따로따로 국을 푸재도 입보다 그릇이 수효가 모자란다.

밥상에는 시커멓게 빛이 변한 짠 무김치 한 접시와 간장에 국뿐이다. 철 늦은 아욱국이기는 하지만, 된장기를 한 구수한 냄새가 우선 시장한 배들을 회가 동하게 한다.

계봉이는 다른 때 같으면 아직 더 고집을 쓰겠지만, 제가 원체 시장한 판이라 직수굿하고 부친의 밥상을 방으로 날라다 놓고 다시 나온다.

그 동안에 초봉이는 승재 방으로 들여보낼 자리끼 숭늉을 해가지고 서서 망설인다.

진작부터 초봉이는 밤저녁으로 승재가 목이 말라도 조심이 되어 물을 청하지 못할 줄을 알고, 언제든지 제가 저녁밥을 짓게 되는 날이면 이렇게 자리끼 숭늉을 해서 내보내곤 한다.

오늘도 숭늉을 해 들고, 기왕이니 든 길에 내 손으로 내다 주어 볼까 하고 벼르는 참인데, 마침 계봉이가 도로 부엌으로 나오니까, 장난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무렴해서 얼핏 계봉이더러 갖다 주라고 내맡긴다.

"싫여!…… 왜 내가…… 난 싫여."

계봉이는 아직도 심술났던 것이 덜 풀린 채로 쏘아붙이는 것이다.

"싫긴 왜 싫여? 남 밤중에 목마른 때 먹으라구 숭늉 한 그릇 해다 주믄 좋잖으냐?"

"조믄 나두 좋아? 언니나 좋지……."

"머?"

초봉이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무어라고 말을 할 줄을 모르고 기색이 당황해진다.

"하하하하, 아하하하……."

계봉이는 언제 심술이 났더냐는 듯이 싹 풀어져 가지고 웃어 대다가,

"……내가 옳게 알아맞혔지? 저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요! 하하하하."

"저 애가!"

"암만 그래두 난 못 속인다누, 하하하하. 자아, 그럼 내가 메신저 노릇을 해주지, 헴……."

계봉이는 그제야 자리끼 숭늉을 받아 든다.

"……그렇지만 조심해야 해. 혹시 내가 남서방을 태클할는지도 모르니깐, 응? 언니?"

"너 이렇게 까불 테냐?"

나무라면서 때릴 듯이 으르니까, 계봉이는 해뜩 돌아서서 아랫방께로 달아나느라고 질름질름 숭늉을 반이나 흘린다.

초봉이는 나머지 밥상을 집어 들고, 뒤를 돌려다보면서 안방으로 들어간다.

계봉이는 아랫방문 앞으로 가더니 일부러 사나이 목소리를 흉내내어,

"헴, 남군 있소?"

"거 누구?"

미닫이를, 계봉이는 그래도 승재의 대답 소리를 듣고서야 연다.

승재는 아까 돌아올 때의 차림새 그대로 책상 앞에 가 앉아서 책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히죽 웃는다.

돌아올 때의 차림새라고 했지만, 극히 간단해서 위아랫막이를 검정서지로 만든 쓰메에리 양복 그것뿐이다.

이놈에다가 낡은 소프트를 머리에 얹었으면 장재동(藏財洞)에 있는 병원과 이곳 거처하는 초봉이네 집을 오고 가는 도중에 있을 때요, 그 위에다가 흰 가운(진찰복)을 걸친 때는 병원에서 의사 노릇을 하는 때요, 또 한 가지, 게다가 낡아빠진 왕진가방을 들었을 때는 근동(近洞)의 가난한 집에 병을 보아 주러 무료왕진의 청을 받고 가는 때다.

작년 겨울 승재가 이 방을 세얻어 든 뒤로 심동에 헌 외투 하나를 덧입은 것 외에는, 그의 얼굴이 변하지 않듯이, 그놈 검정 서지의 쓰메에리 양복도 반년이 지난 오늘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래서 대체 날이 더우면, 저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나설 텐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거니와 초봉이한테는 재미스런 궁금거리이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승재라는 사람이 속세의 생활을 한 고패 딛고 넘어서서 탈속(脫俗)이 되었다거나, 달리 무슨 괴벽이 있어서 그러냐 하면 실상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 몸 감장도 할 줄 모르는 탁객(濁客)인 소치다.

그러한데다가 그는 또 가난하다.

승재는 본시 서울 태생이었었고, 다섯 살에 고아가 된 것을 그의 외가 편으로 일가가 된다면 되고 안 된다면 안 되는 어떤 개업의(開業醫)가 마지못해서 거두어 길렀다.

아이가 생김새와는 달리 재주가 있고 배우고 싶어하는 정성이 있음을 본 그 의사는 반은 동정심에서, 반은 어떻게 되나 하는 호기심에서 승재를 보통학교로부터 중등학교까지 졸업을 시켰다.

승재는 학교에 다니는 한편 주인의 진찰실과 제약실에서 자라다시피 했고, 더욱 그가 중등학교의 상급학년 때부터는 그 이상의 상급학교는 바랄 수 없음을 각오하고, 정성껏 진찰실의 실제 공부를 전심했다.

그리고 중학을 마친 뒤에는 이어 삼 년 동안을 꼬박 주인의 조수 노릇 하면서 의사시험을 치를 준비를 했다.

그리하는 동안에, 주인과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주인도 승재를 어떻게 해서든지 의사시험에 잘 패스가 되어 의사면허장을 얻도록 해주려고 여러 가지로 지도와 편의를 보아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승재를 그의 동창이요 이 군산서 금호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윤달식(尹達植)이라는 의사에게 천거하는 소개장 한 장만 남겨 놓고, 마침내 저세상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승재가 이 군산으로 굴러오게까지 된 경로요…….

승재가 금호의원으로 와서 있기는 재작년 정월인데, 그 동안 그는 작년 오월과 시월에 두 번 시험을 쳐서 반 넘겨 패스를 했다.

인제 남은 것은 제일부의 생리(生理)와 해부(解剖), 제이부의 병리(病理)와 산부인과(産婦人科), 제삼부의 임상(臨床), 이 다섯 가지 과목뿐이다. 이 중에서도 임상에는 충분한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뒤로 미룬 것이요, 그 나머지만 준비가 덜된 것인데, 어쨌거나 금년 시월이나 명년 오월이 아니면 시월까지의 시험을 치르기만 하면 넉넉 다 패스가 될 형편이다.

승재가 군산으로 와서 있으면서부터는 시험준비의 진보가 더디긴 했다. 매삭 사십 원의 월급에 매달려, 그만큼 일을 해주어야 하는 때문이다.

금호의원의 주인 의사 윤달식은 승재의 임상이 능란한 데 안심하고, 거의 병원을 내맡기다시피 했다. 숙식(宿食)도 전부 병원에 달려 있는 자기 집에서 하게 했었다.

그러고 보니 밤으로도, 밤에 오는 환자와 입원환자 때문에 승재는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달식이도 죽은 친구의 부탁까지 맡은 터이라, 미안히 여겨 마침내 승재더러 따로 방을 얻어 가지고서 밤저녁의 거처 겸 조용히 공부를 하라고 여유를 주었다. 그래서 승재는 작년 봄부터 그렇게 했고, 그러던 끝에 작년 겨울에는 방을 옮기게 된 계제에 이 초봉이네 집으로 우연히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승재는 하필 병원에서 거처하기 때문에만 시험준비가 더디었던 것은 아니다.

"좀 더디면 어떨라구."

이런 늘어진 배포로서 그는 시험준비를 해야 할 의학서류는 제쳐놓고, 자연과학서류에 재미를 붙여 그 방면엣것을 많이 읽곤 했다. 그래서 그가 거처하고 있는 이 방에도, 책상 하나, 행담 하나, 이부자리 한 채, 이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술한 방이지만, 한편 벽으로 천장 닿게 쌓은 것은 책뿐이요, 그 중에도 삼분지 이 이상이 자연과학서류다.

그뿐 아니라 조용히 들어앉아 공부를 하겠다고 따로 거처를 잡고 나온 그는 도리어 일거리 하나를 더 장만했다.

동네에 병자가 있어 병원에도 다니지 못하고 하는 사람인 줄 알면, 그는 약도 지어서 주고, 다니면서 치료도 해준다. 그것이 소문이 나가지고, 이 근처의 일판에서는 걸핏하면 제 집의 촉탁의사나 불러 대듯이, 오밤중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이 불러 댄다. 그래서,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그 수응을 하느라고 매삭 돈 십 원씩이나 제 돈이 녹는다.

월급 사십 원을 받아서 그 중 십 원은 그렇게 쓰고, 이십 원은 책값으로 쓰고, 나머지 십 원을 가지고 방세 사 원과 한 달 동안 제 용돈으로 쓴다. 용돈이라야, 쓴 막걸리 한잔 사먹는 법 없고 담배도 피울 줄 모르고, 내의도 제 손으로 주물러 입으니까, 목간값이나 이발값이 고작이요, 그래서 처지는 놈은 책값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요새 몇 달째는 초봉이네 집에 방세를 미리 들여보내느라고 새어 버린다. 이렇듯 그는 가난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가난 이외의 것을 모르니까, 그는 태평이다. 그는 제가 의사시험에 패스가 되어 의사면허를 얻게 될 것을 유유히 믿는다. 자연과학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어 성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해서 근심도 초조도 없다.

"덩치는 덜씬 커가지구……."

계봉이는 승재가 언제나 마찬가지로 입은 다문 채 코를 벌씬하고 눈으로만 웃는 것을 마구 대고 놀려먹는다.

"……웃는 풍신이 그게 무어람! 그건 소가 웃는 거지 사람이 웃는 거야?"

승재는 계봉이의 하는 양이 도리어 귀엽다고 그대로 눈으로만 순하디순하게 웃고 있다.

"저거 봐요! 그래두 말을 안 듣구서 그래! 아 글쎄 기왕 웃을려거던 하하하하 이렇게 웃던지, 어허허허 이렇게 웃던지 응? 입을 떠억 벌리구 맘을 터억 놓구서 한바탕 웃는 게 아니라, 그건 뭐야! 흠, 이렇게, 입을 갖다가 따악 봉해 놓구 앉어서 코허구 눈허구 웃는 시늉만 하구…… 앵! 그 청년 못쓰겠군. 거 좀 속시원하게 웃어 제치지 못한담매?"

"인제 차차 웃지."

승재는 수염끝이 비죽비죽 솟은 턱을 손바닥으로 문댄다.

"인제란 게 언제야? 남서방 손자가 시방 남서방처럼 턱밑에 그런 수염이 나면? 그때 말이지? 하하하하……!"

계봉이가 웃는 것을 보고, 승재는 아닌게아니라 너는 퍽 시원스럽게 웃는다고 탐탁해 바라다만 본다.

계봉이는 이윽고 웃음을 그치고 나서 자리끼 숭늉을 문턱 안으로 들여놓아 준다.

"자아 숭늉요…… 그런데 이건 거저 숭늉은 숭늉이지만 이만저만찮은 생명수요! 알아듣겠지? 그 말뜻을, 응?"

승재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점직하다고 히죽히죽 웃기만 한다.

"하아! 저 청년이 왜 저렇게 무렴해하꼬? 무 캐먹다가 들켰나?"

계봉이는 마치 동물원에 간 어린아이들이 곰을 놀려먹듯 한다. 그는 지금 배가 고프지만 않았으면 얼마든지 장난을 하겠지만, 그만 하고 돌아선다.

마악 돌아서는데 승재가 황급하게,

"저어, 나 좀……."

"무슨 할말이 있는고?"

"응, 저녁 해먹었지?"

승재는 아까 마당에서 하듯이 양복 저고리 포켓 속에 손을 넣고 무엇을 부스럭부스럭 찾으면서 어렵사리 묻는다.

"저녁? 응, 해서 지금들 먹는 참이구. 그래서 본인두 어서 들어가서 진지를 자셔야지, 생리학적 기본요구가 대단히 절박해!"

"저어, 이거 갖다가…… 응?"

우물우물하더니 지전 한 장, 오 원짜리 한 장을 꺼내서 슬며시 밀어 놓는다.

"……어머니나 아버지 디려요. 아침 나절에 좀 변통해 볼려구 했지만 늦었습니다구."

계봉이는 승재가 오늘도 아침에 밥을 못 하는 눈치를 알고 가서, 더구나 방세가 밀리기는커녕 이달 오월 치까지 지나간 사월달에 들여왔는데, 또 이렇게 돈을 내놓는 것인 줄 잘 알고 있다.

계봉이는 승재의 그렇듯 근경 있는 마음자리가 고맙고, 고마울 뿐 아니라 이상스럽게 기뻤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얼굴이 꼿꼿하게 들려지지 않을 것같이 무색하기도 했다.

"이게 어인 돈이고?"

계봉이는 돈을 받는 대신 뒷짐을 지고 서서 준절히 묻는다.

"그냥 거저……."

"그냥 거저라니? 방세가 이대지 많을 리는 없을 것이고……."

"방세구 무엇이구 거저, 옹색하신데 쓰시라구……."

계봉이는 인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두어 번 까댁까댁하더니,

"나는 이 돈 받을 수 없소."

하고는 입술을 꽉 다문다. 장난엣말로 듣기에는 음성이 너무 강경했다.

승재는 의아해서 계봉이의 얼굴을 짯짯이 건너다본다. 미상불, 여전한 장난꾸러기 얼굴 그대로는 그대로지만, 그러한 중에도 어디라 없이 기색이 달라진 게, 일종 오만한 빛이 드러났음을 볼 수가 있었다.

승재는 분명히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혹시 나의 뜻을 무슨 불순한 사심인 줄 오해나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비록 마음이야 담담하지만 일이 좀 창피한 것도 같았다.

"왜애?"

승재는 속은 그쯤 동요가 되었어도, 좋은 낯으로 심상하게 물어 보던 것이다.

"거지의 특권을 약탈하구 싶던 않으니까……."

하는 소리도 소리려니와,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뒷짐을 딱 지고 도고하니 고개를 들고 서서 그런 소리를 탕 탕, 남달리 커다란 사내를 다譹는 양이라니, 도무지 깜찍하기란 다시 없다.

그러나 보매 그러한 것 같지, 역시 본심으로다가 기를 쓰고 하는 짓은 아니다. 그는 다만 아까부터 제 무렴에 지쳐서 심술을 좀 부리고 싶은 참인데, 그러자 전에 어떤 잡지에서 본 그 말 한 구절이 마침 생각이 나니까 생각난 대로 그냥 써먹은 것이다.

애꿎이 혼이 나기는 승재다.

승재는 마치 어른한테 꾸지람을 듣고 있는 아이같이 큰 눈을 끄덕끄덕하고 있다가 겨우 발명을 한다는 것이,

"나는 거저 허물없는 것만 여겨서, 그냥……."

말도 똑똑히 못 하고 비실비실한다.

"그렇지만 말이지……."

의젓하게 다시 책을 잡는 계봉이는 아이를 나무라는 어른 같다.

"……자선이나 동정 같은 것은 받는 사람의 프라이드를 뺏는 경우두 있는 법이어든."

"나두 별수없이 다 같은 가난한 사람인걸?"

"하하하하, 아하하하……."

별안간 계봉이는 허리를 잡고 웃어 젖힌다.

"……하하하하, 저 눈 좀 봐요. 얼음판에 미끄러진 황소눈이라니, 글쎄 저 눈 좀 봐요. 하하하하……."

계봉이는 승재가 아까부터 무렴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는 꼴이 우스워 못 견디겠는 것을 겨우 참고, 그가 하는 양을 좀더 보고 있던 참인데, 인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떻게 걷잡을 수가 없었다.

친하면 친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런 만큼 또 체면의 어려움도 없지 않다.

그러한 승재, 즉 남의 집 젊은 총각한테 늘 이렇게 한팔을 꺾이는 듯한 가난, 가난이라고 막연하게보다도 밥을 굶고 늘어지는 창피한 꼬락서니를 들키곤 하는 것이, 마침 열일곱 살배기의 처녀답게 무색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제 무렴이다.

아무튼 그래서, 그 복수는 충분히 했다. 거지의 특권을 약탈하고 싶진 않다고, 자선이나 동정 같은 것은 받는 사람의 프라이드를 뺏는 경우가 있다고, 장난은 역시 장난이면서, 그러나 버젓하게 또 꼼짝 못 하게 해주었으니까…….

그러고 나니까, 께름하던 마음이 풀리는데, 일변 승재의 하는 양이 그러하니 재미가 있어서도 웃고, 그저 우스워서도 웃을밖에 없던 것이다.

계봉이가 그처럼 웃는 것을 보고 승재는 겨우 안심은 했으나 꾀에 넘어가서 사뭇 쩔쩔맨 것이, 이번에는 점직했다.

"원, 사람두…… 나는 정말 노여서 그리는 줄 알구 깜짝 놀랬구면!"

"하하하…… 그렇지만 꼭 장난으루만 그린 건 아니우, 괜히."

"네에, 잘 알었습니다."

"그런데에……."

계봉이는 문제된 오 원짜리 지전을 내려다본다. 아무리 웃고 말았다고는 하지만 그대로 집어 들고 들어가기가 좀 안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종시 안 가지고 가기는 더 안되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그는 돈을 집어 든다.

"……그럼 이건 어머니한테 갖다 디리께요?"

고개를 까땍 하면서 돌아서서 가는 계봉이를 승재는 다시 한번 바라다본다.

엄부렁하니 큰 깐으로는 철이 안 나서 늘 까불기나 하고, 동생들과 다투기나 하고, 할말 못할말 함부로 들이대기나 하고, 이러한 털팽이요 심술꾸러기로만 계봉이를 여겨 온 승재는 오늘이야 계봉이가 엉뚱하게 속이 깊고, 깊은 속을 곧잘 표시할 수 있는 지혜와 영리함이 있음을 알았던 것이고, 따라서 탄복스럽던 것이다.

그것은 계봉이도 마찬가지로 승재를 한번 더 다르게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둘이는 마음이 훨씬 더 소통이 되고 친해질 수가 있게 되었다.

한밥이 잡힌 누에들이 통으로 주는 뽕잎을 가로 타고, 기운차게 긁어 먹는 잠박(蠶箔)처럼, 안방에서는 다섯 식구가 제각기 한 그릇 밥에 국을 차지하고 앉아 째금째금 후루룩후루룩 한참 맛있게 밥을 먹고 있다. 모처럼 얻어걸린 밥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계봉이는 어디 갔느냐?"

그래도 여럿이 먹다가 한 사람이 죽을 지경은 아니었던지, 정주사가 이편 밥상을 건너다보고 찾는다.

"아랫방 자리끼 숭늉 내다 주러 갔어요."

초봉이가 역시 이 애는 무얼 하느라고 이리 더딘고 궁금해하면서 대답을 한다.

"가서 또 쌔왈거리구 까부느라구 그러지, 그년이……."

유씨는 계봉이 제 말마따나, 어디라 없이 계봉이가 미운 게 사실이어서, 은연중 말이 곱지 않게 나오는 때가 많다.

"거, 너는 왜 밥을 반 그릇만 가지구 그러느냐? 밥이 모자라는 거로구나?"

정주사가 초봉이의 밥그릇을 넘겨다보다가 걱정을 한다.

"……그렇거들랑 이 밥 더 갖다 먹어라!"

집어 드는 건 밥상 옆에 옹근째 내려놓은 병주의 밥그릇이다.

제 밥은 아껴 두고 부친의 밥을 뺏어 먹고 있던 병주는 밥 먹던 숟갈을 둘러메면서 발버둥을 친다.

"어머니! 어머니!"

거푸 부르면서 그제야 계봉이가 식구들이 밥을 먹고 있는 안방으로 달려든다.

"……저어, 나아, 돈 오십 전만 주믄, 돈 오 원 어머니 디리지?"

식구들은 그게 웬 소린지 몰라 밥을 씹던 채, 숟갈로 밥을 뜨던 채, 혹은 밥숟갈이 입으로 들어가다 말고 모두 뚜렛뚜렛하면서 계봉이를 치어다본다.

이윽고 유씨가 시쁘다고 눈을 흘기면서,

"네년이 돈이 오 원이 있으면, 나는 백 원이 있겠다!"

"정말? 내가 오 원을 내놀 테니깐 어머닌 백 원을 내놔요?"

"저년이 한참 까부는구만? 남서방이 딜여보내는 돈일 테지, 제가 돈이 어디서 생겨!"

"해해해해, 자요, 오 원. 인제는 어머니두 백 원 내노시우?"

기연가미연가하고 있던 식구들은 모두들 놀란다. 초봉이는 비로소 아까 승재가 마당에서 포켓에 손을 넣고, 무슨 말을 할 듯이 우물우물하던 속을 안 것 같았다.

"이년아, 이게 네 돈이더냐? 바루 남의 돈을 가지구 생색을 내려 들어!"

유씨가 돈을 받으면서 핀잔을 주는 것을,

"그래두 내가 퇴짜를 놨어 보우! 괜히……."

계봉이는 지지 않고 앙알거리면서 밥상 한 모서리로 앉는다.

"그년이 점점 더 희떠운 소리만 허구 있어! 왜 남이 맘먹구 주는 돈을 마다구 해?"

"아무려나 거 그 사람이 웬 돈을 그렇게…… 거 원!"

정주사가 한마디 걱정을 하는 것을 유씨는 받아서,

"아침에 밥 못 해 먹은 줄을 알았던 게지요, 매양……."

"그러니 말이야. 방세두 이달 치를 지난달에 벌써 내잖었수?…… 그런걸……."

"허긴 나두 허느니 그 걱정이오!"

"거 원, 그 사람두 넉넉지는 못한 모양인가 부던데 내가 그렇게 신세를 져서 원……."

정주사는 쓰지도 않은 입맛을 쓰게 다신다.

병주가 돈과 부친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아버지? 아버지……."

불러 놓고는 냅다 속사포 놓듯 주워 꿰는 것이다.

"……내 양복허구, 내 모자허구, 내 구두허구, 내 자전거허구, 그리구 빠나나랑 미깡이랑 사주어, 잉? 아버지."

"저 애는 밤낮 그런 것만 사달래요……."

저도 한몫 보자고, 형주가 뚜우 해서 나선다.

"……남 월사금도 못 타게! 어머니 나 지난달 치허구 이달 치허구 월사금!…… 그리구 산술공책허구."

"깍쟁이! 망할 자식!"

밥 먹던 숟갈을 연신 들어 메면서 병주가 도전을 한다.

"왜 날더러 깍쟁이래? 이따가 너 죽어 봐. 수원 깍쟁이 같으니라구."

"저놈!"

정주사가 막내동이의 편역을 들어 형주를 꾸짖는다. 막내동이의 편역이 아니라도, 정주사는 유씨가 계봉이를 괜히 미워하듯이 형주를 미워하던 것이다.

"어머니, 나 월사금 주어야지, 머 나두 몰라! 머."

이번에는 계봉이가 형주를 반박한다.

"이 애야 월사금은 너만 밀렸니? 나두 두 달 치 밀렸다…… 어머니, 아따 월사금은 그믐께 주구, 나 위선 오십 전만 주우? 우리 회람문고(回覽文庫) 지난달 회비 주게, 응? 어머니."

"월사금이 제일이지 그까짓 게 제일인가? 머."

"월사금은 이 녀석아, 좀 늦게 줘두 괜찮아. 오십 전만 응? 어머니."

"이잉, 깍쟁이가…… 난 월사금, 몰라!"

"아버지 아버지, 내 양복허구, 내 모자허구, 내 구두허구, 빠나나랑 사다 주어 응? 자전거랑."

"오냐 오냐, 허허……."

정주사는 우두커니 보고 있다가 어이가 없다고 한단 소리다.

"……꼬옥 흥부 자식들이다, 흥부 자식들이야!…… 거 장가딜여 달라구 조르는 놈만 없구나!"

"그리구 당신은 꼬옥 흥부 같구요?"

"내가 어째서 흥부야? 여편네가 새수 빠진 소리만 하구 있네!"

"누가 당신 속 모르는 줄 아시우?"

"내가 어쨌길래?"

"어쩌기는 무얼 어째요? 이놈에서 일 원허구 육 전만 발라서 위선 담배 한 곽 사 피구, 일 원은 두었다가 미두장에 갈 밑천을 할려면서……."

"허허허허……."

정주사는 속을 보이고는 할 수 없이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기왕 그런 줄 알았으니, 그럼 일 원허구 육 전만 주구려. 허허……."

'......생애는 방안지라!'

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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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