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환금은
연산갑자사화(燕山甲子士禍)에 간신의 이름을 받고 죽은 한치형(韓致亨)의 문인으로 있던 조성산(趙誠山)은 처자의 권에 못 이겨 길을 떠났다.
오백여리 먼 길을 노자 겨우 열아문 냥을 지니고 길을 떠난 조성산은 과객질을 하며 가기로 방침을 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그의 가슴을 무지근하게 한 것은 처자가 굶주리는 참경을 차마 볼 수 없어 행여나 하고 길을 떠나기는 하였지마는 관서 백한감사(關西伯韓監司)의 심지를 잘 아는지라 과연 얼마의 전곡을 얻어 올 수 있을가, 그것에 대한 자신이 도무지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그런 인사가 어디 있겠소 아무리 인색하고 무정하다 할지라도 배은망덕도 분수가 있지, 설마하니 오백여리를 걸어간 노인을 그냥 돌려 보낼 리야 있소, 벼락을 맞을 일이지.』
하고 이웃 사람들도 처자와 함께 권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지나간 일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한치형은 단독자 하나 뿐으로 슬하에 자식이 귀하더니 급기 사화를 당하여 죽을 때에는 그 외아들조차 아직 강보에 싸여 있는 고단한 신세이었다.
게다가 더욱 비참한 것은 간신으로 몰리어 죽는 신세이라 재산은 몰수를 당하고 삼족이 다 함께 죽을 운명에 있었으니 방가위 멸문의 재앙을 당하는 터이라, 그 집의 은덕을 직접 간접으로 입은 문인들도 사방으로 헤어지고 일가 친척도 화에 걸릴가 두려워하여 누구 하나 돌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한 정경을 본 조성산은 세상 인심이 야박한 것을 한탄하고 격분하였다. 그래서 밤중에 남 몰래 강보에 싸인 한씨의 고아를 업어다가 자기집에 감추고 유모까지 얻어서 길렀다.
다소라도 은의를 입은 한씨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혈통을 이어 주려는 것이었다.
만일에 한씨의 고아를 숨겨 기르는 사실이 탈로되면 조성산은 한씨와 동죄로 몰릴 것은 정한 이치이었다.
그러므로 이 비밀을 아는 막역 친구들은 자기네끼리 모이면
『참 갸륵한 일이지 후분(後分)에 복을 받으리.』
하고 칭송을 마지 않았다.
당시 조성산은 남부럽지 않게 사는 터이라, 자기 자식과 다름이 없다느니 보다 한층 더 한 고아를 애지중지하고 갖은 호강을 다 시켜가며 길러왔다.
글도 특히 독선생을 앉히고 돌아간 그의 아버지 한치형의 거륵한 인격을 이야기해 들리어 은근히 그의 성격에 좋은 영향이 끼치도록 하고 겸하여 적개심을 고취하여 발분케도 하였다.
이래저래 장가들 나이가 되매 조성산은 우선 관례를 시키고 그 사정을 아는 어느 상당한 집과 통혼하여 장가까지 드렸다. 그리고 집을 사고 세간 배치까지 하며 한 집안을 이루게 해주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줄 몰랐다가 차차 장성함을 따라 성정이 괴악하고 심지가 착하지 못한 것이 들어나매 이웃 사람들은,
『조씨가 그러다가 기른 개에게 정강이 물리는 꼴을 당할 것을.』
하고 애처러이 생각도 하고 또 직접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조성산은,
『내가 무슨 덕을 보려구 했겠소. 내가 할 도리만 했으면 고만이지.』
하고 들은 체 하지 않았다.
어언 이렇게 지내기를 십수년 하매 별로 생재할 길이 없는 조성산의 살림은 나날이 줄어들어 가지마는 조는 한고아의 살림범백을 전부 맡아 해주었다.
한고아가 과거에 급제하여 종관(從官)이 되어 가는 때에도 제반 치행을 조씨가 도맡아 해주었다.
이러므로 조씨의 형세는 극도로 영락하여 이제는 다솔식구에 그날 그날을 지내기가 곤난하게 되었다.
이때는 이미 가세가 풍유해진 한가이건마는 은덕을 입은 조씨의 궁핍한 형세를 모르는 체 하고 돌아보지 않았다.
조씨 역시 조석을 제때에 먹지 못하는 형편에 있으면서도 한가의 심지를 아는지라 속으로 괘씸히 여길 뿐으로 한톨의 쌀도 바라지 아니 하여 왔다.
그랬더니 이제 한고아가 평양감사로 영전되어 가서 있고 가세는 점점 극도로 궁핍하고 하니 자연히 생각나는 것이 한고아의 일인 데다가 이웃 사람들도,
『설마하니 오백여리 간 사람을 모르체야 하겠소.』
해서 조씨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조씨는 노경에 먼 길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길을 떠난지 십여일만에 조성산은 평양부중에 이르렀다. 도착한 것이 저녁 때라 조성산은 낭택을 거꾸로 하여 보행 객주집에서 하루를 자고 이튿날 감영에 이르렀더니 문금(門禁)이 엄엄하여
『무어 어째 감히 삿도께 뵙겠다구, 이 사람아, 기의 행색을 좀 보아야지.』
하며 관속들은 조씨의 초라하고 남루한 의표를 보고 발 한걸음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조씨는 그들 관속과 다투기에는 너무나 착하였다.
그는 감영 부근을 방황하는 수 밖에 없었다. 분함과 슬픔이 가슴에 치밀어 부지불각에 눈물이 옷을 적시는지라, 그의 걸음걸인들 어찌 평탄할 리 있으랴. 행보가 차상하고 얼굴이 비감에 싸인지라 때마침 지나가던 감영 서리 하나이,
『웬 노인이온대 그다지 비감해 허슈.』
하고 물어준다. 조씨는 대략 이야기를 하매
『그럼 이 장담을 뒤로 돌아가면 일각 뒷문이 있으니 그리로 들어가서 앞뜰로 돌아가면 거기가 바로 삿도가 거처하시는 데입니다.』
하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조씨는 그리로 들어가는 것이 떳떳한 행동이 아닌 것은 알지마는 지금 형편에 예의를 돌볼 수 없어서 그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서 앞뜰로 돌아가니 과연 한감사가 장죽을 물고 댓돌 위를 거니던 중이라 조씨가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대감.』
하고 부르는 소리에 이편을 바라보고
『아 이게 누구요, 조시어가 아니요.』
조씨는 전일에 한치형의 덕으로 시어 초사를 얻어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별안간 아무 소식도 없이 어찌하여 날 찾으셨소.』
조씨는 냉낙한 감사의 말에 비감이 먼저 솟아 오르는 것을 간신이 억제하고 대총대총 자기의 형편을 이야기했더니 한감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낫살이나 자신 시어가 어찌 그리 생각이 없소. 감영 영문에 그대같이 남누한 외표로 날 찾았다니 그게 무슨 지각 없는 일요. 그래서야 나의 존엄이 어디 있겠소 이 길로 나가서 수청방에서 기다리슈.』
하고 돈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조씨는 얼굴에 불을 담아 부은 듯이 부끄러웠다. 더구나 막객(幕客) 수삼인이 역시 대상에서 내려다 보는 이 자리에서 모욕을 당하매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여 봐라 ―』
『녜 ― 이.』
『저 손을 데려다가 수청방에서 묵게 해라.』
『녜 ― 이.』
범강장다리 같은 관졸은 조씨의 등을 밀다시피 하여 밖으로 몰아낸다.
조씨는 하는 수 없이 수청방으로 내몰리었다. 그러나 차라리 죽는 게 옳지 수청방에 앉아서 처분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영문 밖으로 나가려 한즉 서리 하나이를 뒤를 쫓아 나오며
『여보쇼.』
『……?…….』
『삿도께서 노자를 주시며 곧 서울로 가시라고 하십디다.』
하며 돈 열아문 냥을 내주는 것이었다.
조씨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노잣냥 얻으러 오백여리를 왔겠소. 감사께 오죽 가난해야 그러시겠냐고 도로 갔다 드리우.』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다소 어색한 기분이 풀리었다.
그러나 노자가 없는 것도 사실이요, 다리가 아파서 꼼짝을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에라 구걸하긴 매한가지다.』
하고 하룻밤을 묵은 객주로 도로 와서 하루를 쉬기로 하였다.
봄의 평양도 좋으려니와 가을의 평양은 더욱 볼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조씨의 형편은 그것을 구경할 형편도 되지 못하려니와 그리할 생의도 없다. 그래서 아랫목에 누워 있노라니 웃목에서 무엇을 적고 앉아 있던 위인이
『처음 오신 노인 같은데 금수강산의 구경이나 하려 나가시지 어째 그리 누워 계십니까.』
하고 말을 건넌다.
『구경이 좋겠죠마는 그런 생각을 낼 처지가 되지 못허우.』
『그게 무슨 말씀요, 구경하는 사람이 따로 있단 말씀요. 허면 허는 게죠.』
이것이 시작이 돼서 말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조성산은 평양감사를 찾아온 까닭과 이전에 지내온 바를 하소연 삼아 이야기하였다.
『저런 죽일………아니 그게 사람의 자식이란 말씀요.』
『쉬 ― 그런 소리 함부로 마오 무슨 화를 당할는지 아우.』
『금일 동, 내일 서(今日東來日西)하는 낸데, 무슨 화가 온단 말슴요.』
하고 주인을 불러 술을 차려다가 대접을 하고 저녁 대접도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하여 당면의 기갈을 면하게 하여 주었다.
이튿날 저녁이 되었다 . 조씨는 그날 밤부터 신열이 대작하여 꼼짝을 하지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에도 일어날 기력이 없어하는 것을 보고 어제 과객이 약을 지어다 먹인다 미음을 쑤어 먹인다 하여 저녁때는 생기가 돌았다.
『활인 부처란 곡곡이 있는 게지.』
조씨는 속으로 이렇게 감사하기를 마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밤에 신음을 하면서도 곰곰히 생각하였거니와 무면도강동도 분수가 있지 무슨 낯을 들고 집으로 갈 것인가.
굶주리는 처자식은 손을 꼽아 애비의 돌아 오기를 고대할 것이 아니냐 말께 전곡을 싣고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조성산은 세상을 비관하였다. 죽자, 죽어서 이 고해를 벗어나자 고생에 시달린 몸이 부질없이 살아 있어서 무엇하리, 뒤에 남은 처자식이 불쌍은 하지마는 하다못해 남의 집 살이를 하더라도 제 입야 먹지 못하겠느냐.
조성산은 한많은 몸을 간신이 가누어 대동문 밖으로 나가 강 언덕에 쭈그리고 앉았다.
날이 캄캄하게 되면 몸을 강에 던져 죽으리라.
무심한 선인들은 제 때를 만난듯이 석양이 비낀 강상에 노를 저으며 애수가 흐르는 뱃노래를 불러 상심된 조노인의 눈물을 자아내고, 깃을 찾아 날아가는 새 무리도 오늘은 유달리 뜻있게 지저귄다.
부지중 조씨의 눈에서는 하염 없는 눈물이 흘러나려 옷깃을 적시는 것이었다.
오십사세 한 평생에 마지막 이 땅에서 객사할 줄 어찌 알았으리!
그동안 한고에게 내준 돈만 하여도 족히 평생을 살 것인데 나 좋아 주었으니 다시 뉘를 원망할 수는 없지마는,
『내 눈이 멀었던가. 내 눈이 삐었어.』
하고 뉘우쳐지기가 한량 없다.
이윽고 해는 서산에 떨어지고 붉은 노을이 서천을 물드렸을 때 조씨는 마침내 강물에 투신코자 강편을 향하여 한 걸음 내어드디었을 때 웬 거대한 젊은 사람 하나이 백마를 달려 가까이와서 말께 내리며
『노인이 평양 감사를 찾아 온 서울 어른이시오니까?』
하고 묻는다.
『그렇소마는 어째 찾으시우.』
『우리 장군께서 잠간 뫼서 오라구 해서 왔소이다.』
(장군이라니 이 평양에 장군이 있는가?)
『장군이라니 중군영에서 오셨소』
『아따 그건 가보시면 아실 것이니 어서 말에 오르시오.』
하여 어리둥절하는 조씨를 휘몰아 말에 태워가지고 말을 모는데 집채같은 군마가 어찌나 속히 달리는지 귀에 바람 소리가 잉잉하고 울릴 지경이었다.
조씨의 생각에는 부중 어느 곳인가 하였더니 말은 북문을 나서서 한 이십리 가량을 숨 쉴 새도 없이 달려간다.
『여보 장군이 어디 계시길래 이처럼 멀리 가우?』
『인제 얼마 아니 가면 됩니다.』
하고는 더욱 말 볼기에 채찍질을 자주 하더니 어느 산길로 잡아 들어 양장같은 굽은 길을 산속으로 들어간다.
조씨는 어안이 벙벙하여 내심에 생각하기를 기위 죽으려고 한 몸이니 어디를 간들 무서울게 있으랴 하였다.
이윽고 한 등성이를 넘어서니 거기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하고 허다한 사람이 나와서 조씨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께 내리는 조씨를 부축하다시피 하고 정청으로 올라가 방으로 들어가니 실내의 조도라든지 깔려 있는 비단 보료 등속이 이 집 주인의 부유함을 말하는 듯하였다.
앉아 있은지 조금 후에 장군이 나왔다. 그의 늠늠한 풍도가 가위 장군이었다. 그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
『전일에 지면이 없는 터에 먼 데를 오시라고 해서 죄송하지마는 기실은 부하의 보고를 들으니 당신께서 한감사를 찾아 왔다가 봉욕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남의 일이라도 어찌나 의분이 일어나는지 며칠 동안 잘 노시고 가시게 할 양으로 뫼서 왔읍니다. 나는 녹림에 몸을 숨기고 사는 위인이올시다마는 의리 인정만은 다소 짐작하는 터이니 아무 기탄 마시고 노시다가 가십시오.』
하고 동자를 부르더니 백반을 드리라는 영을 내렸다.
조씨는 너무나 의외의 일이라 대답을 못하고 있는 중에 배반이 들어오는데 산해진수란 이를 두고 말한 듯 전에 보도 듣도 못하던 진귀한 음식이 교자상에 그득히 배치하여 있다.
『가양술이라 맛은 없어도 진국이올시다. 어서 한잔 드지오.』
장군은 그 교자상과 함께 들어온 소녀들을 시키어 미록 가득 부어 권한다.
조씨는 워낙 술을 즐겨하는 터일 뿐더러 이미 세상을 비관한 울울한 가슴을 풀기에는 술 밖에 없는 것을 아는지라, 권함을 따라 연거퍼 술을 마셨다.
아무리 속에 근심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술만은 무심하여 취해 오른다.
취하면 맘이 호탕해 지는 것이다. 나중에는 취흥이 도도하여 밤이 짙도록 술을 마시고 비단 이불에 싸이어 그밤을 지냈다.
하루 밤을 숙수하고 일어난 조씨에게는 새로운 오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하여 하루는 앞내에 낚시를 느리고 뒷산에 사냥하고 하루는 시회를 여는 등 사오일 동안을 모든 근심을 잊고 놀았다.
간간이 집 생각이 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마는 우선 눈앞에 있는 오락에 울울한 가슴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마는 그것도 한정이 있는 일이라 사오일 지난 후에 조씨는 장군을 보고
『인제는 서울로 돌아 가서 굶어 죽은 처자식의 시체나 건져야겠소.』
하고 하직을 하였다.
『설마 산입에 거미줄야 치겠읍니까마는 노인의 정경이 그러실 듯하외다. 그럼 곧 길을 떠나시게 하시오.』
하고 백마에 안장제구를 갖추어 싣고 돈 삼백냥을 부담 삼아 실으며
『이건 약소하지마는 노자에 쓰시고 남으시거던 서울댁 살림에 보태 쓰십쇼.』
한다.
삼백냥이면 넉넉히 일년을 살 돈이라 조씨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활인부처가 따로 있겠오 언제든지 이 은혜는 갚고야 죽어도 눈을 감겠오.』
하고 길을 떠났다.
『내 집이 어디로 떠났소?.』
하고 조성산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 도착하는 길로 내자동 자기집에 와서 본즉 집은 밖으로 처박고 사람의 기척도 없다.
『어디로 떠나신 것을 들으시기 전에 길을 떠나셨읍니다그려. 바로 이삼일전에 떠나셨읍니다.』
『어디로 갔단 말요.』
『자하동으로 이사하셨는데 나 역시 가보지는 못해서 자세히 알려 드릴 수는 없읍니다마는 자하동에 가서 무르시면 모르는 사람이 없답니다.』
이게 웬 소린고 가난뱅이가 많이 사는 자하동으로 떠났다는 것은 그럴 듯도 하지만 떠나온지 일양일밖에 아니된 자기집을 물어만 보면 안다는 수작이 너무나 허무하다.
하여튼 아니 가볼 길이 없어서 조씨는 자하동으로 올라가서 물어본즉 과연
『저기 저댁이 조시어 댁이외다.』
하고 가라키어 준다.
줄행낭이 사오 간이나 되고 높은 장원이 둘러선 소슬대문의 당당한 와가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조씨는 스스로 어이된 곡절을 헤아리지 못하고 중문에 이르러 안을 들여다 보니 완연히 자기 마누라가 대청에 앉아서 반빗아치들을 지휘하고 있다.
조씨는 안으로 뛰어 들어 가며,
『여보 마누라.』
하고 소리를 쳤다. 아내는 맨발로 축대에 내려 서며
『선문도 없이 인제 올라 오시오. 어서 이리 올라 오시지, 왜 그렇게 마당에 서 계시오.』
『아니 이게 대관절 뉘 집요.』
아내는 호호하고 웃으면서,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슈. 당신 댁이지 누구 집에 내가 있을 것 같소.』
한다. 조씨는 안방으로 들어가면서도 갈피를 차릴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이전에 있던 고리짝 부담짝은 형사를 감추고 화류 농장과 의거리가 으리으리하다.
『자꾸 그렇게 이상스러이 여기시지 말고 이 편지를 보시구려. 생각이 나실 테니.』
하고 부인은 장농 설합에서 한봉 편지를 내어준다.
조씨는 그 편지를 읽어본즉 그것은 자기가 병중에 있으므로 대필하여 보낸다 하는 서두를 쓰고 돈 삼천냥을 보내니 우선 집을 사서 나가고 세간 즙물도 남부럽지 않게 장만하라는 뜻이 적혀 있다.
『그 편지하고 돈을 가지고 왔길래 그날로 나서서 이 집을 흥정해 들고 세간서껀 다 장만을 하지 않았겠수.』
한다.
조씨는 아랫목에 펄썩 주저 앉아서 감루를 흘리었다.
『이것은 필시 그 녹림장군의 짓일 것이다.』
올라 올 때 돈 삼백냥을 주며
『이것은 노자로 쓰십시오. 서울 가시면 뜻밖에 편하게 계시게 될는지 뉘 알겠읍니까.』
하던 말이 다시 생각난다. 반드시 그 장군의 짓일 것이다.
조씨는 서관 쪽을 향하여 합장하여 몇 차례나 속으로 그 장군의 복록을 축수하였다.
『대관절 웬 곡절인지 자세한 말씀이나 해 들려 주시구려.』
이번에는 아내가 놀랄 차례가 되었다.
이제까지 남편이 보낸 돈인 줄만 여기고 있던 부인이 이제 남편의 하는 양을 보매 어이 된 곡절을 아지 못하였다.
조씨는 비로소 자기의 소경사를 낱낱이 이야기하고 그 녹림객의 후의을 눈물로써 감사하여 마지 않았다.
아내도 기쁜 눈물을 흘리며
『나는 한감사의 덕인 줄만 여기고 사람이 잘 되면 마음까지 후하게 된다고 오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여 칭송을 마지 않았더니 이제 말씀을 들으니 그런 못된 위인이 어디 있단 말씀요, 그럴수록 그 녹림장군이란 이는 생부지 초면에 이런 후덕을 베푸니 세상에 같은 사람에도 어쩌면 그다지 틀린단 말요. 올해는 날이 점점 추워가니 다시 서관에 가실 수야 있소마는 내년 봄이 되거들랑 다시 한번 그 산속에 찾아 들어가서 치사나 하구 돌아 오슈.』
『그것 참 좋은 말요. 그래야만 사람의 도리가 되겠소.』
하고 무한이 기뻐하였다.
이로부터 조씨는 상당히 풍유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워낙 식구가 단출한데 논을 열아문 섬지기 장만하여 수백석의 추수를 하게 되니 살림이 부르면 부를수록 자연히 집안에 일이 생기어 어언일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갔다.
어느 날 초저녁때이었다. 때는 초여름이라 조성산은 사랑마당에 교의를 내다 놓고 걸쳐 앉아서 바람을 들이고 있을 즈음에 별안간 웬 사람 하나이 사랑 일각대문을 뻐기고 들어오며
『사람 좀 살리쇼.』
『………?………』
『나는 녹림호객으로 지금 포졸에게 쫓기어 갈 곳이 없어서 댁으로 뛰어들어 왔으니 어디든지 좀 숨겨 주시면 재생의 은의를 잊지 않겠소이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황황한 태도로 밖을 기웃거린다. 녹림호객이란 말에 연전 생각이 나서 급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니 천만 뜻 밖에 자기에게 후의를 베푼 그 녹림객이라,
『아 이게 누구요.』
하며 손을 잡으매 그 역시 자못 놀란 낯을 하며
『자아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날 좀 어서 숨기어 주시오.』
한다. 조씨는 그의 손을 붙들고 곧 안으로 들어가서 여인들을 뒷채로 내몰고 안방 벽장 속에 은신케 하였다.
그러자 마자 홍사 오라를 허리에 찬 포졸 삼사인이 조씨 집으로 돌입하여
『우리는 방금 도적 괴수의 뒤를 쫓는데 그 괴수가 갈데 없이 댁으로 들어 왔은즉 은휘치 말고 내나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장적(藏賊)의 율을 면치 못하오리다.』
『아닌 밤에 남의 집에 무람히 돌입하는 것도 해괴하거니와 허다한 집에 하필 내 집에 들어왔단 말이 이 무슨 억택인가.』
『우리는 도적놈 잡는 것으로 생계를 삼는 놈이올시다. 한번 여기다 하면 틀려 본 적이 없소. 더구나 댁은 외딴 집으로 다른 데로 기구 샐 데가 없읍니다. 그러지 말고 어서 내놓시우.』
『듣자 하니 점점 해괴 망칙한 일이지, 도적을 감추다니 내가 무엇 부족해서 장적의 율을 범한단 말인가.』
포졸들은 저이끼리,
『여보게 긴 말할 필요가 없네, 뒤져 보면 알 것이 아닌가.』
하더니
『그럼 댁을 뒤져볼 테이올시다.』
『뒤져보거나 말거나 자기네들 속 편할대로 해보게나그려.』
여럿은 광 허간 뒤곁 심지어 장독대와 마루밑까지 샅샅이 뒤져보고는
『안방 누다락을 좀 봅시다.』
한다.
『무어 어째 안방을 보자니 이런 변이 어디 있노. 아무리 불학무식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안 부녀들이 있는 안방을 보자니, 그런 법이 어디 있소.』
하고 호령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도적을 잡으러 왔지 부녀를 잡으러 온 게 아니올시다. 만일에 안방을 안 뵈시려거든 쥔께서 대신 포도청으로 갑시다.』
하고 눈을 부라리며 조노인의 두 팔을 붙잡는다.
『포도청이 아니라 이 목이 부러져도 안방에 못 들어가지.』
하고 호령을 그치지 않는다. 포졸들은
『누가 억지로 보자우. 쥔이 대신 가잔 말요.』
『대신 아니라 내가 도적의 누명을 쓰고 죽더라도 못할 건 못하는 법이지.』
하고 더욱 강경한 태도를 지은다. 포졸들은 조노인의 몸을 꼭두잡아 시키다시피하며 두어 걸음 대문께로 나아간다.
이때에 벽장을 박차는 소리가 나더니 그 녹림장군이 마루로 뛰어 나오며
『너희들은 어서들 다 가거라.』
하고 소리를 지르매 포졸들은
『녜 ― 이.』
하고 허리를 굽실하고는 물러나가 버리었다.
조씨는 어안이 벙벙해서 얼른 말이 나오지 않는다.
녹림객은 조씨의 손을 붙들고 사랑으로 나오며
『세상에 인제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을 보았고. 은의를 아는 사람을 만났으니 이런 만족할 일이 없읍니다. 지금 들어온 포졸은 다 나의 부하로 노인의 심지를 시험해 보고자 한 것이외다.』
하고 초연히 말을 이어
『나는 본시 남의 얼자로 세상에 등용되지 못함을 한탄하여 녹림에 몸을 숨겼더니 이제 멀리 압록강을 넘어 다른 천지에서 일을 해 보기로 되었기 서울 온 김에 노인을 찾아 뵌 것이외다.』
하고 인히 작별을 하며
『일간 내가 가졌던 금은을 모두 보내드릴 것이니 받아 두십쇼.』
『아니 이제 작별하면 언제 다시 뵈올지 모르거던 어찌 박주 한잔 나눔이 없이 해어질 수 있소.』
하고 극구 만류했지마는 그 녹림객은
『몸이 유다르니 용서하시오.』
하고 기어이 소매를 나누고 말았다.
이런지 이틀 후에 십여 마리의 말이 금은 전곡을 싣고 와서 조씨 집에다 풀고 갔다.
조씨는 그것이 녹림객의 보냄인 것을 알고 받아 두어 거익부호가 되었다.
그러자 소문에 평양 감사 한씨가 파관이 되어 상경하였다는 말이 들리매 조성산은
『저는 나한테 그리 했지만 나는 내 도리를 차려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하루는 한감사를 그의 사저로 찾아 갔다.
한감사는 조씨의 의표가 화려하고 신수가 티인 것을 보고 심중에 이 사람 부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전일의 냉랭한 태도와는 딴판으로 아유하는 웃음을 지어 웃으며
『그 동안 나를 얼마나 원망했겠소. 실상은 발분해 돈을 모으라고 일부러 그랬소이다.』
하고 청직이를 불러서
『이 애 광문을 열고 돈 오백냥을 꺼내서 이 나으리 댁으로 보내 드려라.』
『아니올시다. 지금은 다행히 남의 부조를 받지 않고서 살게 됐읍니다.』
『글쎄 그렇더라도 돈이란 많다고 귀찮은 것은 아닙네다.』
청직이는 광문을 열러 다녀 들어오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대감 큰일 났읍니다.』
『응?』
『광속에 있는 돈 포대 속엔 돈은 한푼 없고 말끔 해골 쪼가리 뿐이올시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감사 자신이 밖으로 뛰어 나가서 광속을 검사해 보니 과연 돈은 한 잎도 없고 전부가 해골 쪼가리 등속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어 만든 졸부는 역시 하룻밤에 거지가 되고 말았다.
조씨는 속으로 녹림객의 짓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마는 그런 내색도 아니한 것은 물론이었다.
<끝>